[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 49화.
전통과 관습은 깨라고 있는 거다.
휴거교처럼 ‘재앙’에게 직접 세례를 받는 미치광이 광신도 집단과 공동생활을 해본 적이 없는 나라들은 아직도 오랜 관례가 절대적인 법칙처렴 여겨지겠지만,
이미 세상은 변하고 있다.
“뭡니까. 그러다 눈알 빠지겠습니다. 스즈키 외교관.”
“네가 이런 자리에서 내기라는 한심하고, 어리석고, 어쭙잖은 제안을 꺼냈다는 건···. 응당. 그에 걸맞은 것을 걸 준비가 되어있다는 소리겠지?”
격노로 이성을 반쯤 내려놓은 상태일 텐데도, 퍽 유효한 말을 꺼내는 스즈키 외교관.
역시, 헌터이기보단 정치가의 성향이 강한 스즈키 히로히사다운 모습이었다.
이에 나는 주저 없이 답했다.
“물론이죠.”
“그래. 뭘 걸고, 무엇을 원하는지. 말해라.”
“제가 원하는 건, 국가마다 다르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지금 이 자리에서 약속드리죠. 이번 내기에서 저를 이기시면, 이거. 그냥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내가 내민 것은 다름 아닌 이번 ‘황금 게이트’의 보상인 신화급의 무장, 묠니르였다.
-콰직!
그저 손에서 놓는 것만으로도 강도 높은 재질의 마강석으로 이루어져 있는 정상회담장에 큼지막한 균열을 만드는 압도적 무게.
본래 신화에서도 그러하지만, 이 묠니르는 주인을 제외한 그 누구도 들어 올릴 수 없다.
만일 이를 들어 올린 자가 있다면, 그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우를 범하지 않은 숭고한 자뿐이겠지.
내가 대놓고 묠니르의 위엄을 뽐내자 주변에서는 꿀꺽, 침을 삼키는 소리를 냈다.
탐날 것이다.
이쪽은 몇백억을 들이 부어가며 자리를 얻고, 변칙적이다 못해 기존 세상의 법칙을 가볍게 무시하는 난제를 통과해 가까스로 얻은 보상.
그것을 그냥 주겠다는 것 아닌가.
이미 각국 대표의 시선은 내가 아닌 묠니르에 쏠려있었다.
“난···. 우선 헌터 이건우가 제안하려 한다는 그 내기의 조건이나 내용을 듣고 판단하는 게 어떨까 합니다만···.”
그때 침묵 속에서 손을 들고 입을 연 것은, 조금 전 스즈키 외교관의 뒤통수를 쳤던 중국 대표, 칠각주였다.
군침이 돌다 못해, 줄줄 흐르는 상황을 만들어줬는데 침착하게 그런 말을 꺼내다니.
중국의 새로운 정치세력인 ‘마천신교’는 내 생각보다 이성적인 자들로 구성된 듯했다.
“...맞습니다. 제 귀에도 중국 대표의 말은 옳은 것 같습니다.”
“그렇지. 그 정도는 알아야. 우리도 저 신화급 무장에 걸맞은 보상을 걸고 참가할 명분이 서지.”
“확실히···. 헌터 이건우의 성격을 보아하니, 상당히 예측 불허의 내기를 제안할 위험성이 있어 보이오.”
방금까지만 해도 침을 줄줄 흘려대던 이들이 갑자기 눈을 바로 뜨고 정상적인 말을 하기 시작했다.
쳇.
뭣도 모르고 뛰어든 불나방들에게 간이고 쓸개고 다 빼먹을 생각이었는데, 아쉽게 되었다.
본래라면 이때, ‘아 쫄리면 뒈지시던지요.’라고 말하며 다른 이들을 더 도발할 예정이었지만, 회장 자체의 분위기가 다시 가라앉았으니 어쩔 수 없다.
“당연히 내기 조건 같은 건, 먼저 말씀드릴 예정이었죠. 저, 그 정도로 상도덕이 없진 않습니다.”
“...”
돌아온 반응은 다소 싸했지만, 나는 미소와 함께 말을 이었다.
“뭐 거창하게 내기라고는 말했지만, 사실 저는 헌터의 가장 기초 실무능력을 확신하고 싶을 뿐입니다.”
내가 제시한 내기는 헌터의 기초이자 기본.
‘게이트 공략’이었다.
그런데 이게, 그냥 ‘게이트’는 아니고···.
이들은 만나본 적도, 그다지 경계하지도 않고 있는 대한민국의 오점, ‘휴거교’를 한 숟가락 끼얹은 게이트지만 말이다.
“그··· 그러니까. 난이도가 어찌 되건, 어떤 종류이건. 이 대한민국에 다음으로 모습을 드러낼 게이트를 가장 먼저 공략하는 ‘국가’에 묠니르를 넘기겠다. 그 말인가?”
너무나도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한 허무한 미소를 지으며 그리 묻는 스즈키 외교관.
“예. 다만 높은 확률로 ‘휴거교’를 마주치게 될 테지만요.”
그리 말하며 주변을 쭉 훑자, 스즈키뿐만이 아니라 대다수의 국가 대표자들은 어이가 없단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흠···. 헌터 이건우? 그러고 보니 자네, 각성한 지는 얼마나 되었다고?”
“마침 이번 달이 딱 1년이군요.”
각성한 지 1년.
지금까진 나를 뒤에서 뭔가를 꾸미는 책략가로 취급하며 경계하던 국가의 대표자들마저 나의 자신만만한 이번 발언에는 도저히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온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이윽고 잠시 후,
사우디아라비아와 프랑스 그리고 주최 측인 한국을 제외한 12개국은 모두 출사표를 던졌다.
***
“너 미쳤니?”
‘정상회담’이 일시중단되고 하루.
내게 배정된 협회 사옥을 초인종도 누르지 않고 들어와 나를 보자마자 시원하게 욕부터 박고 들어오는 이는 부협회장 이초희였다.
“그렇지 않아도 어젯밤부터 매스컴에서 저를 크레이지 루키라고 부르던데, 무리하게 유행을 따르려고 노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부협회장님.”
“유행이고 자시고 난 모르겠고, 이번에는 진짜 아니야. 건우야. 아닌 것 같다니까?”
“하긴요. 러시아에서 내기에 참여하겠다고 내건 게 고작 만년설에 묻힌 빙설화 하나라니. 제가 봐도 아닌 것 같긴 해요.”
-휘이이잉!
너무도 진지하고 급해 보이는 이초희의 모습에 나는 일부러 더 장난스러운 어조로 받아쳤지만, 돌연 불어닥친 매서운 묵빛 칼바람은 내 동작을 멈추기에 충분했다.
“건우야···. 장난하는 거 아니니까. 나 똑바로 봐.”
“...예. 그러죠.”
“S급들은 왜 공략 명단에서 제외하자고 한 거니? 지금의 한국은 S급들의 이름값으로 파워벨런스를 맞추는 국간데, 정작 S급을 빼면 어떻게 해.”
보통 자기 입으로 저걸 말하나.
아니, 이초희는 자기객관화를 잘 하니까. 자신 스스로 역시 하나의 국가 병기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부협회장님이나 만검의 천검일로, 황해의 검은 산군이 참전하겠다고 하면 누가 내기에 참여하겠습니까.”
“그래도! 불리한 회담을 적절한 도발로 내기까지 끌고 간 건 잘했는데, 갑자기 왜 네가 그런 위험부담을 감수하냐고!”
“이득은 크면 클수록 좋잖아요?”
이번에도, 지난 ‘경매’를 통해 불사왕의 돈을 조 단위로 가지고 왔기에, ‘마포대교’ 작전이 가능했다.
여러 가지의 ‘카드’를 쥔다는 건, 그만큼 빌런의 세력을 약화시킬 다양한 방법이 생긴다는 것.
나는 그런 의미로 이득을 논한 것이었지만, 이초희의 미간 주름은 깊어져만 갔다.
“...리스크가 너무 커. S급에 힘이 편중된 한국과 달리, 일본이랑 중국은 벌써 10년 넘게 A급인 베테랑 헌터들도 많단다.”
“알고 있습니다.”
“그들을 정말로 네가 이길 수 있겠니? 아니, 어쩌면 그놈들은 게이트 안에 들어가자마자 널 죽이려고 할지도 몰라, 그럼 너는···.”
“예상한 범주입니다.”
“예상···? 예상?! 야 이건우! 네가 죽을 수도 있는 일이라니까? 왜 그렇게 침착한데! 뭐가 그렇게 자신만만해!”
드물게 불안한 듯 동공을 떨며 그리 목소리를 높이는 백귀야행 이초희.
왜 이렇게 흥분했나 했더니, 결국 내 안위를 걱정해주는 거였나.
아니, 이 사람은 객관화를 잘하는 사람이니까.
그녀는 ‘나’라는 개인을 걱정함과 동시에, 내가 사라진 대한민국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 냉정하고 이성적인 사람이, 나를 걱정하며 이렇게 흥분하다니···.
다른 건 둘째치고, 이건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니 나는 더더욱 강인한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이번 내기는···. 무조건 이길 겁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렇게 나의 진지한 눈을 마주보다 돌연 놀란 눈을 뜨는 이초희.
그녀는 뒤늦게 자신의 비정상적인 행보를 자각한 듯 다리에 힘이 풀린 사람처럼 옆으로 주저앉았다.
마침 그곳에는 푹신한 소파가 있었기에 그녀는 자연스레 소파에 앉은 모양새가 되었다.
“부협회장님?”
갑작스러운 모습에 내가 이초희를 부르자 그녀는 양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덮으며 잠시 텀을 두고 입을 열었다.
“미안······. 내가 좀 흥분했구나.”
“괜찮습니다. 저를 걱정해주신 건데요. 오히려 감사하죠.”
“하아······. 얘 건우야.”
“예. 부협회장님.”
“...너 미래시는 아니어도 비슷한 거 할 줄 안다고 했지?”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가 했더니.
꽤 예전에 했던 농담을 아직도 기억하는 거였나.
“뭐······.”
“있잖니···. 혹시, 나 죽니?”
“예?”
꽤나 돌발적인 발언에 놀라는 한편, 내 머리는 이에 대한 전후 사정을 단번에 캐치해냈다.
-...당신이 죽게 놔둘 순 없다. 뭔가, 방법을 찾아야겠지.
황금 게이트의 ‘경매’가 있기 직전 내가 협회 본부로 숨어 들어가 잠든 이초희의 옆에서 작게 중얼거렸던 그 한마디.
문을 닫고 나가자마자 우당탕 소리가 들려 혹시나 했는데, 아무래도 이초희는 그 말을 꽤나 진지하게 받아들인 듯했다.
“지금까지 네 예언이 틀린 적은 없으니까···. 나 최근에 꽤 생각했단다? 내가 사라진 뒤의 한국 사회 말이야.”
“그래서···.”
그렇게 흥분했던 거였나.
나는 뒤늦게 평소답지 않던 이초희의 심경을 이해했고, 그녀는 초연한 눈으로 허공을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말했다시피 한국은 헌터 강국이라고 불리고는 있지만, 현존하는 S급 세 사람의 영향력이 큰 것뿐이잖니. 그런데 그중 하나가 갑자기 죽어버리면······.”
그 이후로도 이초희는 뭔가를 더 중얼거렸지만, 나를 향해 말하는 것은 아닌지 제대로 들리진 않았다.
그러다 유일하게 귓가를 스치고 지나가는 다소 애절한 한 마디,
“협회장님은 날 믿고, 향후 20년의 한국을 맡겨주셨는데··· 나는······.”
무능한 자신에 대한 허망한 개탄이 뒤엉킨 목소리.
그 모습은 마치 ‘대항군’의 동료가 쓰러져가는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옛 ‘나’를 떠올리게 했다.
갑자기 가슴에서부터 목구멍까지 훅 올라오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은 구역질인가, 아니면 지긋지긋한 후회인가.
정확히 정의할 수 없는 그 감각을 느끼자 나의 몸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텁.
나는 무기력하게 내려놓은 그녀의 손을 양손으로 포개어 잡고, 살포시 잡아끌었다.
“당신은 죽지 않습니다···. 내가 그렇게 놔두지 않아.”
“...거, 건우야?”
한쪽 무릎을 바닥에 꿇고 앉아 마치 기사처럼 자세를 취한 나는, 고개를 든 이초희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내가 당신을 지키겠습니다. 그러니 자신을 이미 죽은 사람처럼 말하는, 서글픈 행동은 그만두세요.”
“어······.”
“믿지 못하겠다면 원하는 만큼 말씀드리죠. 내가 당신을 지키겠습니다. 당신이 죽게 놔두지 않아. 미래는 바꿀 수 있는 것이니까요.”
실제로도 이미 나는 일어날 미래를 바꾼 바 있다.
그러니 이건 허무맹랑한 헛소리도 어린아이의 아집도 아닌, 진실한 결의.
그리고 이러한 나의 굳은 의지를 정면으로 바라본 이초희는 얼굴에 분홍 꽃이 핀 것처럼 옅게 상기되더니 그녀의 눈을 강하게 응시하던 내게서 휙, 하고 고개를 돌렸다.
“내, 내가 죽을 나이가 다 돼서 그런가. 가, 갑자기 덥고 그러네.”
“죽는다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니까요.”
“아, 아아, 알았어. 잠깐만 저기 딴 데 좀 보고 있어 봐.”
딴 곳을 보라고?
나는 다소 당황스러운 그녀의 주문사항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우선은 그녀의 말을 따랐다.
“하아아아. 후우우우우. 그, 그래. 이런 거구나···. 서영이가 너를 조심하라고 했던 게 무슨 말인지 이제 좀 알겠네.”
“저를···. 조심하라고 했다고요? 대대장님이?”
갑작스러운 충격 발언에 놀라 이초희를 바라보자 그녀는 더 붉게 상기된 얼굴이었고,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 눈을 크게 떴다.
“저, 저기 보고 있으라니까!?”
“아, 죄송합니다?”
내가 죄송해야 할 일인가 싶다만, 우선 흥분한 고양이마냥 날카롭게 반응하는 이초희의 말을 따랐다.
이윽고 잠깐의 시간이 지나자 몇 번이고 더 심호흡을 마친 이초희는 나를 불렀다.
“큼, 크흠! 그래서? 네가 무조건 이길 거라고 확신한 거니까. 이번에도 뭔가 생각이 있는 거니? 말해봐, 도와줄 수 있는 건 도와줄 테니까.”
그렇게 곧바로 ‘일’ 이야기를 꺼내는 그녀는 평상시와 똑같은 이초희가 되어있었다.
아니?
아주 조금이지만, 그녀의 얼굴에 있던 진한 다크서클과 한 달 동안 불철주야 일만 하며 생긴 피부 트러블 따위가 옅어져 있었다.
“부협회장님 혹시, 화장하셨습니까?”
시선을 돌리게 해두고서 뭘 하나 했더니, 갑자기 화장이 하고 싶어졌던 거였나.
나는 순수한 의문을 담아 그리 물었지만, 그녀의 반응은 다소 격앙돼 있었다.
“어? 아, 아니······. 여, 역시 이, 이상한가···?”
“아니요. 이서영 대대장님과 자매라고 해도 믿을 정도라 조금 놀랐을 뿐입니다.”
“...에이! 야! 그 정도는 아니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꽤 기분 좋은 듯한 표정을 짓는 이초희.
그녀는 자신이 40대 중반인 나이를 퍽 신경 쓰는 듯했지만, 사실 고레벨 헌터의 육체는 대부분 전성기 시절에 고정되니 겉보기의 그녀는 20대 중반의 외향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뭘 그렇게까지 나이에 집착하는 건지.
전생의 나는 그런 말을 30대 중반의 검제, 이서영에게 했다가 등짝 스매싱을 맞아본 적이 있기에 굳이 입에 담진 않았다.
“아무튼, 아무튼! 본제로 돌아가자 본제로!”
잠깐 사이에도 표정을 휙휙 바꾸던 이초희는 이내 양손을 허공에 휘적거리며 그리 외쳤고, 나는 화장이니 나이니 하는 말을 멈추었다.
이윽고 상기되었던 뺨이 본래의 살구색으로 돌아갈 때쯤이 되어, 이초희는 다시 입을 열었다.
“건우, 들어보니 너는 이번 내기에서 질 거라는 가정 자체를 안 하는 것 같은데···.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니···?”
“사실, 뭐 특별한 건 없습니다.”
그렇게 말한 나는 버릇 적으로 손가락 두 개를 펼쳐 보였고, 이초희는 이를 응시했다.
“지난번 황금 게이트에서 붙잡은 두 휴거교도 있잖아요?”
“아, 그. 네가 뼈가면을 씌워서 휴거교도라는 게 강제로 커밍아웃된 그 스파이들?”
“예. 협회랑 군에 특별히 얘기하진 않았지만, 그 두연놈들은 사실, 개벽의 장로, 노을의 전도사라고 불리는 휴거교도 거든요.”
지난번에 이초희에게도 말한 바가 있지만, 휴거교도 중 직함 앞에 ‘개벽’이니, ‘노을’이니 특별한 명칭이 붙는다는 건, 아직 시행되지 않은 계시에서 중요한 역할이 있다는 걸 의미한다.
그리고 아직 역할이 있다는 건···.
휴거교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들을 되찾기 위해 일을 벌일 거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뭐? 그, 그걸 왜 이제 말해! 난 그런 것도 모르고 다른 휴거교도들이랑 똑같이 타르타로스에 처박아 뒀는데!”
“잘 하셨습니다.”
“잘하긴 뭘 잘해 그랬다가 타르타로스에서 놈들이 뭉쳐서 무슨 짓이라고 벌이면······. 설마, 너 처음부터 그걸 노리고?”
아까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놀란 눈을 뜬 이초희는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그런 그녀를 향해 피식 웃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아니, 솔직히 좀 어이가 없잖아요? 지들은 휴거교 저주가 얼마나 끔찍한지 겪어본 적도 없으면서 ‘고작 그런 사이비’라니요.”
‘정상회담’장에서는 휴거교가 별것도 아니라고 떠들어 재끼던 이들에게, 나는 재앙과 직접 계약을 맺은 그 사이비 종교 집단의 매운맛을 직접 맛보게 해줄 계략이었다.
“그 잘나신 외교관분들은 똥인지 된장인지 직접 찍어 먹어 봐야 아는 분들이니까요. 그렇게 궁금하다면, 맛보게 해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후후후,
지난 ‘황금 게이트’ 때부터 차곡차곡 쌓아온 나의 설계는 사실 오직 이 순간을 위한 것이었단 말이다.
이렇게나 일이 계획대로 흘러가니, 기분 좋은 미소가 절로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너 언제 이렇게 사악, 아, 아니. 똑똑해졌니.”
나의 기분 좋은 웃음소리를 듣는 이초희는 웬일인지, 내게서 조금 거리를 벌렸다.
아직도 뭐가 민망한 걸까.
***
‘정상회담’이 일시중단된 지 이틀째.
협회와 군에서 공동으로 관리하는 최첨단 마공학 감옥 ‘타르타로스’에서 거센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외부적으로는 ‘정상회담’이 순탄히 진행 중이라고 알렸기에, 본래라면 회담의 마지막 날이자 전 국민의 시선이 집중되는 이 날, 놈들은 탈옥을 감행한 듯했다.
다만, 최첨단 마공학으로 점철된 타르타로스의 방어시설은 폼이 아니다.
당연히 간수들은 사상자 없이 모두 대피했고, 문을 밖에서부터 걸어 잠가 내부에는 산처럼 쌓여 있던 몇천의 ‘휴거교도’들이 고립된 상황.
당연히, 협회와 군의 진압대가 출전하면 일은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예상외의 일이 터진다.
휴거교를 상징하는 ‘적광의 게이트’가 타르타로스 내부 감지 CCTV에 포착된 것이다.
‘적광의 게이트’.
처음 보는 기현상에 대다수의 외교관은 치를 떨었지만, 이 같은 이상 현상에 대해 익히 알고 있던 일본 그리고 중국의 헌터들은 빠르게 움직였다.
“자아아아아아! 오늘도 왔습니다. 왔어요! 망할 게이트 철거 방송! 심지어 오늘은 한국의 시건방진 S급 헌터···. 가 될 예정인 땅꼬마 C급 헌터를 참교육하는 날이라고?!”
이윽고 도착한 타르타로스의 봉쇄된 출입구.
침묵과 함께 흑색 검을 뽑아 든 흑검대와 대조되게, 일본측의 헌터들은 형형색색으로 물들인 머리를 마구 흔들어가며 야단법석을 떨기 시작했다.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오늘의 교육 대상 이건후! 같은 전격 방출계 헌터이자 전격계 헌터들의 정점인 나, 뇌왕에게 쫄아서 도망간 것 아니겠어? 아 후원 고마워!”
그들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떠다니는 드론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시끄럽게 떠들어댔는데, 주위에 있는 협회요원들 그리고 흑검대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볼륨을 높였다.
이것은 일본의 독특한 헌터 문화였다.
헌터를 일종의 ‘스타’로 인식하는 문화가 있는 일본에서 ‘개인 방송’으로 게이트 실황을 중계하는 방송은 언제나 관심을 모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요란한 노란 색으로 머리를 염색한 남자.
‘뇌왕’은, 그러한 개인 방송 문화에 누구보다 특화된 전격 방출계 헌터였기에 일본 본토에서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수준이었다.
“구독과 좋아요를 눌러주면··· 아아아! 광고를 틈타 바로 지금! 망할 이번 교육 대상이 모습을 드러냈다고!!”
야단법석의 진수를 보여주는 뇌왕은 자신의 생체전기로 드론을 조작해 화면을 돌렸고, 그곳에는 이건우와 함께 이번 ‘적광의 게이트’ 공략을 위해 선발된 대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이건우를 비롯한 한국의 공략대가 모두 화면에 나타나자 뇌왕은 돌연 성난 목소리를 냈다.
“어이, 어이, 어이! 저게 뭐야. 소풍 왔어? 게이트가 장난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앙?!”
왜냐하면, 이건우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그의 공략대원들은···. 모두 하나 같이 예쁜 외향을 뽐내는 여성 헌터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금발 미녀, 흑발 미녀, 심지어 코닥지만한 키에 자기보다 더 큰 검을 가진 애도 있잖아! 무슨 만화야? 서브 컬쳐야? 장난치러 온 거냐고!”
뇌왕이 정신 사납게 드론을 양손으로 잡고 흔들며 격앙된 자신의 감정을 고스란히 배출했지만,
근처까지 다가온 이건우는 꼴사나운 무언가를 바라보듯 뇌왕을 잠시 응시하고 자리를 떠나버렸다.
“저 녀석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뇌왕은 이토록 당당한 이건우의 반응에 도리어 당황한 눈치였지만···.
사실 이건우는, 내기를 통해 모든 공략대는 4인 구성으로 한다는 조항을 정한 순간부터 이 같은 파티맴버를 생각하고 있었다.
‘섬광’으로 휴거교의 저주를 해주하는 남궁연.
‘신성력’으로 휴거교와는 극한의 상성을 가진 성전사 메리.
그리고 특유의 저주가 없다면 그 알프레드 아들러마저 제압해낼 수 있는 최강의 검사. 철혈검희.
남들의 눈에는 이건우가 어떻게 보일지 몰라도, 이 파티 구성은 그야말로 이번 게이트에서만큼은 최상의 시너지를 발휘할 것이 분명했다.
이윽고 일본 측 헌터들로 인해 번잡하고 어지러운 소음이 계속해서 들려오던 그때,
“그럼 열겠습니다!”
타르타로스의 간수장이 목소리를 높이고, 수직으로 500M의 길이를 자랑하는 지하감옥, 타르타소스의 문은 열렸다.
전격 방출계 헌터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