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 47화.
“마포대교는 무너졌다 이 새끼야···?”
“씨발, 야! 어떤 또라이 새끼가 게헨나 가오 떨어지게 이딴 의뢰를 받아왔어. 어이 주인장! 어떤 새끼야. 내가 산채로 포라도 떠주려니까 당장 말해봐!”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고는 절반이 욕지거리투성이인 이들이 모여있는 곳.
이곳은 다름 아닌 한국의 범법자들이 모이는 강원 태백에 있는 지하 도시, 게헨나.
게이트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희뿌연 석탄 가루나 날리던 갱도와 지하 탄광을 석공들이 개조해 벙커로 쓰던 것을 다시금 범죄자들이 빼앗아 형성된 작은 사회였다.
방금 미치광이처럼 눈을 부릅뜨고 단검을 날름거리는 문신쟁이도, 그 옆에서 가만히 서 있는 흰색 가면을 쓴 자도, 모두 이 게헨나의 주민인 것이다.
“떠들지 말고 그 밑에 숫자나 세어봐라.”
그때, 시원하게 욕지거리를 터트린 이를 쳐다도 보지 않고 유리잔을 헨들링하며 그리 중얼거리는 바텐더 복장의 남자.
“에이 씨발, 말은···.”
문신쟁이는 인상을 팍 구기며 바텐더를 노려보았다가도 그의 말대로 현상금 수배지 밑에 적힌 0의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씨발 뭐가 이렇게 많아! 야! 야야! 0이 열한 개면 대체 얼마인 거야.”
“3천···억···.”
“삼, 삼천 뭐···?! 어어, 억?!”
그리고 같은 시각,
그 게헨나의 거리를 좌지우지하는 두 거대한 세력.
자신들의 본토에서 밀려난 일본의 각성자 야쿠자 집단 ‘츠바사’.
그리고 본디 강원도 전역을 주름잡던 대산적, ‘마운틴 드러그’를 양 측에 끼고 중앙에 누군가 서 있었다.
그인지, 그녀인지 모를 존재는 특이하게도 보기 드문 ‘인식 왜곡’의 법진이 새겨진 이상한 ‘뼈가면’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래. 어디 다시 한번 말해보라.”
“누구의 목을 원한다고···?”
다른 건 모르겠고, 그저 ‘키가 작다’라는 사실 하나만은 인식할 수 있는 그 수수께끼의 존재는 참 대범하게도 이 ‘게헨나’의 두 주인을 직접 보고 싶다고 요청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길잡이’에게 가볍게 쥐여준 돈만 무려 천.
범상치 않은 거래 대상임을 파악한 ‘길잡이’는 난리를 피워 지하도시의 두 주인을 이렇게 한곳에 모았고, ‘뼈가면’은 참으로 기이한 말을 꺼냈다.
“내일까지 S급 헌터 이건우의 목을 가지고 와라.”
이에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은 얼굴이 되는 수많은 범법자들.
특히 ‘츠바사’의 수장인 호리자키 케이타로에게는 그 정도가 더 심했다.
“네가 어디서 굴러먹던 말 뼈다귀인지는 관심도 없다만, 남에게 뭔가를 부탁할 때는 그에 걸맞은 태도부터 취할 필요성을 모르는가?”
‘츠바사’는 아무런 대의 없이 생을 허비하는 이 게헨나의 재활용 불가 쓰레기들과는 그 근본부터 다른 존재들이다.
‘츠바사’는 망가져 가는 일본을 바로 세우겠다는 신념으로 움직이는 깨어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니까.
“너희는 돈을 받고 일을 한다. 그냥 그뿐인 이야기지. 뭐가 더 있어.”
“이런 어리석고 지리멸렬한 땅꼬마를 보았나.”
“땅···. 이 썩은 멸치 대가리처럼 생긴 게, 너 지금 뭐라고 했냐.”
“그래. 그렇게 나오셔야지. 잘은 안 보이지만, 네 허리춤의 그건 검이겠지? 이곳은 힘의 도시, 게헨나.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돈 몇 푼으로 궁둥이를 들썩거리는 용병대들과는 그 질부터가 다른 것이다.”
잠시 가만히 서서 눈앞의 케이타로를 노려보는 ‘뼈가면’.
케이타로는 자신의 허리춤에 달린 도끼를 쥐며 작게 읊조렸다.
“해볼 테냐. 네가 지면 가진 돈은 싹 내어놓고, 네 발로 이 게헨나를 나가야 할 것이야. 그게 싫다면, 당장 머리를 조아려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그냥 나가면 된다.”
새카만 하오리를 펄럭이며 게헨나의 두 수장 중 하나인 케이타로가 그리 말하자 좌중은 금세 뒤집혔다.
“하하하하! 어이! 네가 머리에 뒤집어쓴 그 우스꽝스러운 가면도 놓고 가라고!”
“하하! 역시 야쿠자 행님! 시원시원하셔~”
“꺼질 테냐? 싸울 테냐? 빨리 결정하라고!”
이리저리 무질서하게 도발적인 언행을 취하며 그 중앙에 선 ‘뼈가면’을 한껏 조롱하는 모습을 취하는 ‘츠바사’와 ‘마운틴 드러그’.
-툭.
그때, ‘뼈가면’의 손에서 내던져진 가방은 바닥을 굴렀고 딸깍, 소리를 내며 자동으로 열렸다.
그 안에 들어 있던 것은 오만원권 지폐다발.
심지어 퍽 큰 서류가방이었는데도 빈공간 하나 없이 돈으로 꽉꽉 들어차 있었다.
“하! 이게 뭐 어쨌다는 것이냐. 고작 이 정도의 돈으로 우리 츠바사를 움직···!”
-툭.
-툭.
당연히 케이타로는 ‘뼈가면’의 행동을 비웃으려 그런 말을 꺼냈지만, 그 ‘뼈가면’은 말없이 ‘허공’에서 돈가방을 계속 꺼내기 시작했다.
-툭.
-툭. 툭.
“이, 이런 돈에 우리 긍지 높은 츠바사가···.”
-투두두두둑.
-투두두두두두두둑.
꿀꺽.
비아냥거리기 바쁘던 이들이 입을 떡 벌리고 침을 삼키는 소리만 고요히 울리는 바로 그 현장에서···. 드디어 ‘뼈가면’은 입을 열었다.
“선금 400억. 내일까지 어떻게 해서라도 이건우의 ‘목’을 가지고 온다면, 완수금으로 다시 3천 600억을 마저 지급하지.”
4···. 4천억.
언젠가 세력을 키워 일본으로 돌아갈 날만을 꿈꾸던 케이타로에게 이런 ‘큰 건’은 그가 매일 같이 기다려오던 일이었다.
그는 무겁게 쥔 도끼를 들어 올리며, 눈을 매섭게 부릅뜨고는 수수께끼의 ‘뼈가면’을 무섭게 노려보다가······.
“돌아가시는 길, 제가 편안하게 모시겠습니다! 고객님!”
90도 반듯하게 허리를 굽히며 케이타로는 ‘뼈가면’을 향해 정중한 인사를 건넸다.
“돈 지랄도, 생각보다 재미있네”
어째서인지 중앙에 가만히 서 있던 ‘뼈가면’에게서는 그런 이상한 중얼거림이 들려온 것 같았다.
***
무력의 이서영과 빠른 발의 김용운 중령의 합작으로 어젯밤 탄생한 거대한 메시지.
-이건우의 목에 걸린 현상금 3천억.
심지어 이름있는 큰 규모의 범죄집단의 경우 거기에 천억을 더 얹었다.
‘물론, 그 모든 돈이 전부 불사왕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고.’
어차피 스러져가던 생이다.
언제나 인생 한방, 인생 역전 따위를 부르짖으며 내일을 고려하지 않고 살아가던, 오합지졸의 빌런들에게 이만큼 자극적인 스파이스는 달리 존재할 수 없다.
자연히 단 하룻밤 만에, 그들은 수를 세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세를 불려 나타났다.
현재의 나에게는 무려 ‘저스티스 가디언즈’와 인간의 이해를 아득히 뛰어넘는 괴물, ‘불사왕’ 본인이 있지만, 놈들에게 그런 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쿠··· 쿠구구구궁!
“마포대교가 저, 정말로 무너진다!”
“신호다! 모두 달려들어!!”
놈들은 그저 앞에 무엇이 있건 날파리때처럼 달려들 뿐이었다.
수십의 마력 포격과 수백의 갈고리가, 떨어지는 항마법 리무진을 향해 날아들었다.
강 속에서 머리를 들이미는 빌런,
심지어 하늘에서는 ‘츠바사’라는 야쿠자 빌런들이 거대한 날개를 펼치고 비행하며 다가오기까지 한다.
그 수는 어림잡아도 천 이상.
그러나, 숫자라는 개념 자체가 무의미한 남자가 지금 내 앞에 있다.
“흠.”
아주 작게 콧바람을 내쉬며, 손에 들고 있던 고전 서적의 페이지를 부드럽게 넘길 뿐인 남자.
그에게 있어 밤하늘의 은하수와도 같이 날아드는 마력 포격 따위는, 아주 잠깐 눈을 돌릴 가치도 없는 것에 불과했다.
-팔랑.
그가 페이지를 넘기며 탄력 있는 종이가 튕기는 소음이 들린다.
그토록 무심하고 무감각한 행위.
허나, 그 직후 세계는 이미 잿빛이었다.
-쿠구구구궁!
-쾅!
-휘이이잉!
각양각색의 속성을 가진 포격이 뒤엉켜 휘몰아치고, 밀려든다.
그 위력은 얼핏 보아도 일반적인 A급 헌터를 한 줌의 먼지로 말소시킬 레벨.
하지만 나와 프랑스의 랭커들이 탑승해 있는 리무진에는 미동도 없었다.
-팔랑.
이윽고 넘겨지는 두 번째 페이지.
그 순간 세계를 잿빛으로 물들이던 ‘에너지 덩어리’는 서서히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다.
뼈가, 근섬유가 잿빛의 마력에서부터 돋아나고 약 3초 만에 온전한 형태를 갖춘다.
그것은,
인간의 수백 배,
혼혈 거인 ‘자이언트’의 수십 배 크기를 자랑하는 순혈의 거인···.
“타이탄.”
머리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인 위상을 뽐내, 스카이 타이탄이라 불리던 몬스터.
50년 전, ‘에계해 제도’ 전역을 혈혈단신으로 공포에 몰아넣었던 그 거악(巨惡)이 지금 불사왕의 그림자에서부터 깨어났다.
“저, 저게 뭐야?!”
“빌딩이 움직인다!”
“미친놈아! 저건 몬스터야!”
“...괴, 괴물!”
“크, 크기가···. 마, 말도 안 된다고···!”
-GAAAAAAAA!!
스카이 타이탄은 포효를 내지른다.
되살아난 시체가 되어, 지성 없이 소리를 지르고 팔을 휘두르며 발을 구르는 것만으로도 갖은 천지지변을 일으키는 거악.
-팔랑.
그리고 지금까지 한 번도, 자신이 들고 있는 고전 서적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던 파울라스가 마지막으로 페이지를 넘기자.
한강에 숨어 있던 빌런들은 괴멸,
큰 날개로 그 존재감을 뽐내던 야쿠자 ‘츠바사’는 절반 이상이 정신을 잃고 강바닥으로 추락했으며,
셀 수 없이 밀려들었던 오합지졸의 빌런들은 꼬리를 말고 도망쳤다.
거기에 무너진 마포대교는 일그러진 그대로 허공에 떠 있고···.
마탑의 노교수 베르디르가 나무젓가락같이 생긴 완드를 허공에 휘적이자, 수천 조각으로 나뉘어 추락하던 마포대교는 마치 시간이 되감기듯 본래의 모습을 찾았다.
마치 오퍼레이션 ‘마포대교는 무너졌다 이 새끼야.’ 자체가 없었던 일이 된 것만 같은 광경이었다.
다만, 일어난 일을 부정하기에 한강 서 있는 저 스카이 타이탄의 존재감은 너무나도 컸다.
이것이 바로, ‘세계 vs 개인’을 정말로 성사시킨 괴물···. ‘불사왕’의 힘.
그 아주 조그마한 편린의 위엄이었다···.
***
-이른 아침, 휴거교를 상징하는 ‘뼈가면’을 뒤집어쓴 다수의 테러리스트가 마포대교를 폭파해 프랑스 총리와 한국의 자랑인 S급 헌터 이건우를 동시에 습격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번 일은···.
-삑.
‘정상회담’의 원활한 참가를 위해 다시금 중환자실에 누워 TV를 보고 있던 나는, 1시간째 같은 말을 반복하는 앵커에게 진절머리를 느껴 TV 전원을 꺼버렸다.
결코, 자랑할만한 일은 아니지만, 한국은 다른 나라들과 달리 ‘길드’를 인정하지 않는다.
거기에 부조리가 판치는 ‘군’이 나라의 핵심 무장세력으로 존재하기에, 불한당이라 부를 만한 각성자가 퍽 많은 편인 나라, 그게 한국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휴거교로 인해 골머리를 썩이고 있는데, 전생에는 사회 혼란을 틈타 그 ‘지하도시’의 불한당들이 차츰차츰 모습을 드러냈고, 사태는 더더욱 악화되어갔다.
‘허나, 이번 작전으로 상황은 180도 다른 방향으로 돌아가겠지.’
나는 빠른 발의 김용운에게 부탁해 아직 ‘황금 게이트’ 내부의 상황이 자세하게 전달되지 않았을 지방의 빌런들에게 ‘뼈가면’을 전달해주며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다.
‘이건우를 습격하러 갔을 때, 이 뼈가면을 쓰고 가면 무려 5천!’
심지어 직접 공격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가면을 쓰고 멀리서 지켜만 보아도 5천만 원인 것이다.
어느 누가 혹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마찬가지로 훗날 휴거교가 득세하면 스멀스멀 기어 나와 한국을 더 최악의 사태로 몰아넣을 ‘츠바사’, ‘마운틴 드러그’ 같은 빌런 세력에게도 더 많은 현상금과 선금을 주며 이번 작전에 참여하길 유도했다.
그리고 마무리는 역시나 휴거교에서 그토록 좋아하던 ‘언론의 힘’이다.
【속보】 금일 새벽 프랑스 총리를 공격한 대규모 무장세력, 부협회장은 이를 국가 비상사태로 받아들이겠다. 선포···.
【속보】 휴거교를 상징하는 ‘뼈가면’을 쓴 자들의 습격, 이를 일망타진한 영웅, 파울라스 총리!
【속보】 부협회장 이초희, 프랑스에 공동 수사를 요청. 파울라스 총리, 긍정적인 검토···!
냉정히 생각해보면 ‘불사왕’이 사흘이나 일찍 국내에 방문한 이유는 ‘성녀’ 말고도 더 있을 것이다.
예를 들자면, ‘태고의 흡혈귀’에게 완벽한 세뇌를 받아 휴거교도가 되어버린 마령, 알프레드 아들러라거나?
혹은 국내 아주 깊숙한 곳에 숨겨둔 ‘뒤집힌 십사자의 성배’도 그 이유 중 하나가 될 수 있겠지.
무려 불사왕이 직접 그 무거운 엉덩이를 들고 움직인 대사건이다.
놈들의 목적이 하나이리라 여기는 건 너무 순진한 발상이라는 소리다.
바로 그랬기에, 나는 그 하룻밤 오퍼레이션 ‘마포대교’를 구상했다.
그리고 그 작전의 가장 초석이 되는 마포대교 폭파 습격이 성공한 이상, 이제 ‘불사왕’과 그 일당의 목적이 뭐고 어쩌고는 중요하지 않다.
현재 중요한 건, ‘뼈가면’을 뒤집어쓴 휴거교가 감히 세계인의 영웅인 파울라스 총리를 공격하려 했다는 사실뿐.
“후···.”
이제 내가 할 일은 단순하다.
침대에 눕는다.
중간중간 TV를 켜서 일이 잘 굴러가고 있는지 확인한다.
그리고, 편안하게 침대에 기대어 앉아 과자를 와구와구 씹어먹는다.
그게 전부다.
“후후후후후···.”
프랑스에게도 순정이라는 게 있다.
세계의 주목을 받고, 세계를 선도하는 파울라스가 총리로 있는 국가에서 공격을 받고 가만히 있다?
말이 안 되는 거다.
당연히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그들은 사실은 같은 편인 휴거교도들을 자신의 손으로 소탕해야 한다.
‘그 김에 지하도시 게헨나의 그것들도 같이 휩쓸어주면 더 좋고’
나는 누워있다.
하지만 훗날, 언젠가는 꼭 방해물이 될 예정이었던 빌런들은 참 신비롭게도 매일 같이 이승을 떠나고 있다.
다름 아닌 ‘불사왕’의 정예병들인 ‘저스티스 가디언즈’에 의해서 말이다.
“하!”
불사왕의 주머니를 털어 나온 돈으로, 빌런을 움직여 그들이 불사왕의 손에 죽게 만든 것이다.
“크으.”
-콰작.
“오늘따라 과자 맛이 좋네.”
손 안 대고 코 푼다는 건, 바로 이런 상황을 말하는 거겠지.
후후후,
정말 즐겁다.
***
“미친놈···.”
이번 작전에서 가장 나를 잘 도와주었던 철혈검희 이서영은 침대에 누워 과자를 먹으며, 연신 히히덕거리는 나를 보며 제일 먼저 그런 말을 했다.
“...말이 너무 심하십니다. 대대장님.”
“자기 목에 현상금을 3천억이나 거는 놈을 그럼 뭐라고 부를까.”
“책사?”
“책으로 맞을래?”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첫날, 천여 명이 넘는 인원이 모였던 것에 반해 둘째날부터 빌런들은 다시 쥐죽은 듯 지하로 숨어버렸다.
그러나 복수불수(覆水不收).
한번 엎질러진 물은 도로 주워 담을 수 없는 법이다.
손님인 프랑스 총리를 건드렸다는 사실 하나로 국내 모든 용병대는 격노를 터트렸고,
부산의 4군단, 경기도의 7여단은 주저 없이 두 대대급 병력을 동원해 전국을 이 잡듯이 뒤지기 시작한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 불사왕의 동행인들은 ’흑색 마탑‘의 원로들이다.
그들이 ’겉으로‘라도 협조하는데, 휴거교의 간악한 주술 따위가 살아남을 수나 있었겠는가.
“아직 뉴스는 못 봤는데, 어제도 많이 잡았나요?”
“...어. 또 신기록 갱신, 지금까지 성전사랑 흑마도랑 협조해서 한 달 동안 잡은 수보다 그들이랑 협조한 사흘이 더 많아.”
-국내에 이렇게나 많은 휴거교도가 숨어 있었다니?!
현재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는 키워드가 바로 그것이었다.
지난 3일간 일반인 흉내를 내며 사회 속에 숨어 있던 스파이를 잡아낸 수는 무려 4천 8백여 명.
상상을 초월하다 못해 머리가 아득해질 정도의 수였다.
“아무튼, 준비해. 이제 시간 얼마 안 남았어.”
“저라는 헌터를 얼마에 팔아넘길지에 대한 경매 말이군요.”
“개소리 그만하고, 그냥 ‘정상회담’이잖아. 그리고······. 널 팔아넘길 머저리 따위, 국내에는 없어. 만일 있으면 내가 책임지고 베어줄 테니까. 걱정 말고.”
의외로 이서영은 꽤나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그런 말을 해주었다.
“대대장님이 그렇게 말해주시니 긴장이 좀 풀리네요.”
“...그래?”
드물게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가는 이서영.
전생, 내 비서관으로 있으면서도, 검제로 살면서도 잘 보여주지 않던 정말 희귀한 모습이었다.
-스마일 치즈···. 찰칵!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주머니에 있던 스마트폰을 꺼내 그녀를 찍고 있었다.
“...뭐하냐.”
곧바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퍽 싸늘했고 나는 뒤늦게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아···. 그으으.”
“그으으···?”
전생에서의 연이 워낙 길다 보니, 반사적으로 장난스럽게 그런 행동이 나와버렸는데, 생각해보니 현재로서는 당장 머리가 깨져도 할 말이 없는 무례였다.
“그게, 대대장님 웃는 얼굴이 너무 예, 예뻐서···?”
“왜, 왜 의문형이야. 아무렇게나 나오는 데로 짓거린 거면···.”
“아닙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 겁니다. 그래도 마음에 안 드시는 것 같으니 얼른 지우겠습니다!”
이럴 땐 빠르게 행동에 옮기는 게 상책이다.
이서영은 화나면 정말 무서운 여자거든.
그래서 내가 정말 예쁘게 나온 핸드폰 사진을 잠시 응시하다 삭제 버튼을 누르려 하자, 밑에서부터 불쑥 솟아오른 작은 손이 나의 핸드폰을 가로채 갔다.
“됐어. 뭘 귀찮게 지우긴 뭘 지워.”
“예···? 하지만···.”
“가지고 있어도 된다고, 대신···. 아무한테도 보여주지 마. 알았어?”
그렇게 부끄러워할 거면 그냥 지우는 게 낫지 않나?
내 머릿속에는 곧바로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서영은 정말로 핸드폰을 나에게 툭 던지고는 몸을 돌려 병실의 출입구로 향했다.
“...대답은”
“알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말하며 병실을 나서는 그녀의 귀는 왠지 모르게 조금 불그스름한 색이 감돌고 있었다.
전생에 몇 년이나 그녀와 가까운 벗으로서 지낸 바가 있던 나는 뒤늦게, 이서영이 전생에도 이따금 이런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보여주었던 것들이 새삼 떠올랐다.
이건···. 이번 생은 아직 몇 년의 세월을 함께하지도 않았는데도, 벌써부터 나를 가까운 벗으로 생각해주기 시작했다는 증거일까.
나는 그런 의문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부협회장 이초희가 준비해준 맞춤 정장을 입고 병실을 나섰다.
***
-끼이이익.
둔중한 소음과 함께 문이 열린다.
그 안에 서 있는 사람은 수많은 대한민국 헌터 협회의 요원들과 그들의 차기 수장, 부협회장 이초희였다.
그리고 중앙에 앉은 그녀와 완벽한 대적점, 또 다른 중앙에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앉아 있는 그는···. 다름 아닌 프리드리히 파울라스.
시대의 ‘왕’과 백귀야행의 주인은 서로를 마주 보고 그 뒤에는 ‘저스티스 가디언즈’, ‘흑색 마탑’의 흑마도들, 협회의 요원들, 국내 1위 용병대인 ‘황해’의 중역들과 황해 용병단장 조성우.
가만히 눈을 뜨고 그저 바라보기조차 쉽지 않은 광휘의 올스타들이 모두 이곳에 있었다.
“주인공이 납시셨군.”
이윽고, 문이 열리며 입장하는 나를 발견한 사람은 프랑스 총리의 바로 옆자리, 일본 대표로 이번 회담에 출두한 스즈키 히로히사 외교관이었다.
“오오오오! 직접 보는 건 처음이로군! 값비싼 친구.”
이어서 엄숙한 분위기를 단박에 깨부수며 멋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오는 남자는···.
현 사우디아라비아의 최고 권력자. 흑왕의 둘째 아들이자 차기 왕, ‘흑태자’ 반 압둘 아자즈 알 사우드 칼레드였다.
“직접 얼굴 보는 게 이렇게나 힘들어서야···.”
그 외에도 중국의 마천신교 칠각주에,
미국의 초거대 길드 ‘제이슨 스트라우스’의 부길드장까지···.
이 헌터 세계를 뒤흔드는 진정한 의미의 괴물들이 바로 이곳, 헌터사, ‘정상회담’ 회의장에 모두 모였다.
내로라하는 영웅들이, 최고의 정치가가, 최흉의 빌런이 이곳에 있다.
그들의 시선은 오롯이 나와 흑태자에게 쏠렸고, 흑태자 칼레드는 기다렸다는 듯 그 누구보다 먼저, 이 회담장에서 나눌 가장 중요한 사안을 입에 담았다.
“그래 친구. 난 귀찮은 거 싫어하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마. 너 얼마냐?”
역시나, 이런 식으로 나올 줄 알았다.
애초에 ‘황금 게이트’가 열리면 ‘정상회담’을 연다는 시스템 자체가 헌터사를 뒤바꾸는 ‘황금 게이트’의 보상을 정당하게 가로채기 위한 강대국들의 폭정이다.
당연히 그 보상을 거머쥔 데다 훗날 S급 헌터가 될 잠재력까지 있다는 나를 데려가려 하지 않겠는가.
여기까진 모두 예상했던 수순.
그래서 나는 퍽 싱그럽게 미소를 지으며 흑태자의 면전에 대고 답했다.
“저는 비매품입니다만···. 렌탈 정도라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자, 이제 시작이다.
세계정세 자체가 ‘불사왕’의 손아귀에 놀아나는 오늘날, 그 흐름을 조금이라도 뒤틀기 위해서는 지금부터가 중요한 것이다.
정론에는 정론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