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46화 (46/175)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 46화.

신성 바티칸이 붕괴로 가장 큰 이익을 보는 곳은 어디일까.

이곳이 전생이라 가정한다면, 지나가던 개마저 그거야 당연히 ‘불사왕’이라고 뭘 그런 뻔한 사실을 묻느냐는 듯 답했을 것이다.

성자파와 교황파의 분쟁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본래라면 조화로운 삼두정치를 시행해야 할 바티칸의 권력은 차츰차츰 급진적인 성자파에 몰린다.

그 원인은 상상 이상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1세대 각성자이시자 이미 이 세상을 한번 구원한 바가 있는 위대한 성녀님이 노쇠하시고,

힘과 권능 보다는 그 ‘신실함’으로 좌에 오른 교황 역시 서서히 세월에 풍파를 피할 순 없었다.

젊은이들은 분노한다.

언데드를 수용하고, 양육하고 연구하는 프랑스를 더 강압적으로 억압해야 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신성 바티칸의 원로들은 알고 있었다.

세계인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프리드리히 파울라스’를 함부로 건드렸다간, 바티칸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지를 말이다.

“...그러니까. 지들끼리 눈치나 보고 자빠진 두 세력 앞에, 네가 계신지 뭐시껭인지로 알게 된 성녀의 후계자를 딱 대령하면···. 바티칸의 붕괴를 막을 수 있다. 그거야?”

철혈검희 이서영은 그리 말하며 확인을 구하듯 나를 바라보았다.

아직까진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은 적이 없는 바티칸의 내막을 그녀는 단박에 이해했다.

역시 두뇌 회전이 빠른 사람다웠다.

그러나 딱 한 가지 틀린 것이 있었다.

“아니요. 바티칸의 붕괴는 막을 수 없습니다. 성녀의 후계자가 제대로 자리를 잡아도, 붕괴를 조금 늦출 뿐이죠.”

“그건 왜지···?”

“성자 카르막 베르무트는 또라이거든요.”

“또라, 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가만히 나를 응시하는 이서영.

“성녀를 찾아 교황파에서 보호하게 되면, 그날 밤 성녀는 독살로 죽을 겁니다. 카르막은 그런 인간이거든요.”

제3세력, 성녀의 등장은 어딜 어떻게 보아도 자연스레 ‘성자’인 자신에게 몰릴 권력을 양분화시키지 않겠는가.

바티칸의 모든 크루세이더들과 팔라딘들이 음지에서 성녀를 확보하는데, 혈안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누군가는 그 무고한 소녀를 이유 불문 죽이려 하고,

누군가는 그 무고한 소녀를 보호하려 하는 중이니까.

그리고 바로 여기서 프리드리히 파울라스가 등장한다.

신성 바티칸의 흥망성쇠를 좌지우지할 키.

무릇 무고하고 연약한 성녀를 원하는 자는 교황파와 성자파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불사왕은 제가 성전사들에게 전해준 그 계시의 내용을 듣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계시의 내용···. 근데, 계시가 어쩌고 성녀가 어쩌고 그걸 알 정도면서 놈들은 왜 진작 바티칸 말단을 잡아 족치지 않고 널 노리는 건데.”

“성전사를 비롯한 바티칸의 성직자들에게는 ‘계율’이라는 게 있어요. 심장이 멈추지 않는 한, 발설하지 않기로 한 말을 발설할 수 없는 맹약 같은 거죠.”

“그러니까, 놈들은 아무리 잡아 족쳐도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없다. 그거네?”

“정확하십니다.”

‘계율’의 영향을 받는 건, 어디까지나 그들의 ‘주신’에게 권능을 하사받은 성직자뿐.

그러나 이번 ‘성녀의 후계자’라는 특급 기밀 사항에는 나라는 이레귤러가 끼어있다.

“그, 그러니까. 그 왕악당은 당장 건우를 어떻게 할 마음은 없는···. 그런 거지?”

이제야 한숨 돌리겠다는 듯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심한 얼굴이 되는 남궁연.

아무래도 빌런의 왕이 나를 만나러 온다는 사실에 가장 놀란 건, 다름 아닌 그녀였던 것 같았다.

“안심하세요. 저는 괜찮을 겁니다.”

그나저나 왕악당이라니, 남궁연답게 퍽 귀여운 표현이었다.

실제 ‘불사왕’은 결코 그런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존재이지만 말이다···.

그때 옆에서 내 얼굴을 가만히 응시하던 이서영은 대뜸 날카로운 말을 꺼냈다.

“...근데 이건우 상병. 혹시 뭐 기발한 계획이라도 떠올린 거야?”

“예? 방금 떠올리긴 했는데, 그걸 어떻게···.”

“네 얼굴. 너 이상한 거 생각할 때면 항상 이상한 얼굴이 되거든.”

“이상한 얼굴이라니요······.”

“됐고 말해봐. 이번에는 또 뭔지 일이 터지기 전에 들어나 보자.”

이서영이 원래부터 이렇게 남에게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나.

아니 분명 그렇지 않았을 텐데···.

신기하게도 그녀는 싱글벙글 웃으며 내 입에서 나올 말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뭐, 기대해주는 게 나쁜 것은 아니니까.

나는 그녀의 기대를 배반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늦지 않게 입을 열었다.

“이번 작전명은···. 마포대교는 무너졌다 이 새끼야. 입니다.”

두 사람의 얼굴에 수많은 물음표가 떠올랐다.

***

새벽 5시 25분.

김포국제공항에 에어프랑스의 로고가 큼지막하게 그려진 항공기 한 대가 안착했다.

분명 이른 시각임에도 공항은 믿을 수 없을 만큼의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는데, 그들이 들고 있는 거대한 푯말에서 인파의 정체는 곧장 파악할 수 있었다.

[Justice Guardians]

그 이름도 유명한 독일과 프랑스의 랭커 연합.

저스티스 가디언즈의 열성적인 팬들.

그뿐인가.

국내에 내로라하는 방송국에서는 이미 공항에 협조를 구해 입국장부터 리무진 탑승장까지 거대한 카메라를 쭉 깔아두었고, 국내의 언론사들 역시 카메라와 수첩을 들고 대기중이었다.

거기에 국방부 장관, 부협회장 이초희까지 가지런한 자세로 서서 방금 안착한 항공기에서 내릴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만큼의 인파, 인물 그리고 준비.

“대체···. 이게 뭐가, 나는 권력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습니다~ 라는 건지.”

이 같은 모습이야말로 ‘왕의 행차’를 맞이하는 백성과 관료의 모습이 아니고 뭐겠는가.

“삐죽대지 말고 가만히 있어. 네 말대로 총리가 그런 인간이라면 더 그런 태도는 삼가야지. 안 그래?”

내 옆에 서 있던 이서영은 홀로 헛구역질하는 시늉을 하던 나를 쳐다도 보지 않고 그리 말했다.

“...그냥 ‘적’을 위해 이러고 있다는 게 좀 토쏠려서요.”

“하아···. 엄연히 말해서 여긴 널 위한 자리기도 하잖아. 저기 카메라들도 계속 너만 찍고 있으니까. 자제해.”

“노력은 해보겠습니다.”

우윽, 아무리 그래도 속이 뒤집히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저스티스 가디언즈’라 거창한 이름으로 불리는 저 집단은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불사왕’에게 새 생명을 얻은 빌런들로만 이루어진 사상 최악의 무력집단이었으니까.

“어! 들어온다!”

“총리!”

““파울라스! 파울라스!””

““파울라스! 파울라스! 파울라스!””

입국장에 나타나자마자 미친 듯이 터져 나오는 함성.

세계의 균형을 수호하고, 질서를 바로잡는 이 시대 최고의 각성자 단체가 바로 그들 아니시던가.

당장 눈앞의 광경만 보아도 이렇게 광기 있는 팬클럽이 또 있을까 싶다만, 사실 한국에서 그들의 인기는 유럽과 미국에 비교하면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할 수준이다.

거긴 아예 주 두세 개는 우습다 싶을 만큼의 인파가 몰려드니까.

‘이게 약과라니···.’

스스로 생각하면서도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뭐, 이 정도의 인기이니 언데드를 대놓고 받아들여도 신성 바티칸에서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가 없는 것이지만 말이다.

프랑스의 총리, 파울라스가 입국장을 통과해 카메라 앞에 섰다.

“와아아아아!”

“총리! 총리!”

“저스티스! 저스티스!”

이윽고 그가 손을 슬쩍 들어 올리는 것만으로도 터져 나오는 환희.

누가 보면 아주 월드 스타의 내한공연이라도 시작되는 줄 알겠다.

그리고 그런 파울라스를 따라 하나, 둘 국내에 들어오는 이들은 저스티스 가디언즈의 핵심 구성원들.

흑색 마탑의 노교수와 독일의 S급 헌터로 이름이 잘 알려진 이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 상태로 그들은 올곧게 한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는데···. 돌연, 정면에서 기다리던 부협회장 이초희와 국방부 장관을 무시하고 방향을 틀었다.

시선을 돌린 파울라스가 바라보는 인간은 오직 한 명의 헌터, 다름 아닌 나였다.

“그대인가. 새로운 정의의 수호자가”

참 오글거리는 단어였지만, 그게 프리드리히 파울라스의 입에서 튀어나오니 퍽 느낌이 달랐다.

그는 실제 천 개가 넘는 게이트를 저지한 인류의 수호자였으니까.

희다 못해 은빛 광택이 돋보이는 머리카락에 ‘마탑주’를 상징하는 휘장을 가슴께에 달고 푸른 로브를 휘날리며 나타난 매서운 인상의 남자.

그가 바로 프리드리히 파울라스.

훗날 인류의 악몽이라 불리게 될 남자였다.

“존경하는 파울라스 총리, 직접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리고 나는 방금까지의 헛구역질은 아예 없었던 일처럼, 태연히 가슴에 손을 얹고 허리를 살짝 굽히며 귀족의 예법에 맞은 인사를 건넸다.

“호오?”

“허···.”

그러자 정면과 측면에서 전혀 다른 반응이 나왔다.

자신이 선호하는 예법을 정확히 지킨 나를 보며 놀라는 불사왕과 내 돌변한 태도에 혀를 내두르는 이서영.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내 감정을 숨기는 것 따위 일도 아니거늘, 20대의 이서영은 반응이 좀 격한 것 같았다.

“어린 나이에도 예를 아는군.”

이서영과 잠시 눈을 맞추고 있던 사이, 정면에 다가왔던 시대의 ‘왕’이 목소리를 냈다.

나는 곧장 고개를 돌려 그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답했다.

“이리저리 굴러다니다 보니 자연스레 터득하게 되더라고요. 총리.”

“그대는 나를 앞에 두고도 아무렇지가 않군?”

“전혀요. 이래 봬도 무지하게 긴장하고 있는 겁니다.”

너스레를 떨면서도 불사왕의 반응을 살핀다.

이렇게나 많은 이목이 쏠린 이 순간, 어차피 이 자애롭고, 너그러운 총리는 내게 그 어떤 제재도 가하지 못할 테니까.

날카롭게 부릅뜬 그의 눈과 초연한 나의 눈이 교차한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있고, 파울라스 총리는 슬쩍 입꼬리를 올리며 마침내 입을 열었다.

“새로운 지평을 맞이하게 된 것을 축하하마, 작고 여린 등불아.”

“저야말로 만나서 반갑습니다. 파울라스 총리.”

우선 한발 먼저 물러나는 것은 다름 아닌 파울라스 쪽이었다.

“그대와 나누고픈 대화는 태산만큼 쌓여 있으나 긴 여정의 피로를 푼 그 이후로 하도록 하마.”

그는 그리 말하며 참으로 무덤덤하게 몸을 돌려 아까부터 오직 자신만을 위해 도열해 있던 국내 주역들을 향하기 시작했다.

가벼운 탐색전은 딱 여기까지라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난 같잖은 탐색전이나 벌이고자 어렵게 병상에서 일어나 이곳까지 온 것이 아니었다.

“파울라스 총리.”

나는 무례하다는 평을 퍽 듣게 될지라도 뒤돌아 나아가는 그를 멈춰 세웠다.

“총리께서는 지금 상당히 피곤한 상황이니 어린 등불께서는 때와 장소를 가려···.”

“아니, 듣겠다. 말해보라.”

파울라스 옆에 들러붙어 있던 흑색 마탑의 노교수는 당장에 눈을 부릅뜨며 내게 물러날 것을 권하려 했지만, 의외로 파울라스 본인이 그 노교수를 막고 대화에 응했다.

뭐, 어찌 됐건 기회는 기회.

나는 지난 하룻밤 동안 준비해둔 계획의 결행을 위해 대담하게 나서기로 했다.

“총리의 시간은 금보다 더 값지시지요. 저는 세계인을 선도하는 총리의 시간을 잠시라도 낭비하게 만드는 것은 우자(愚者)들이나 범할 행동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협회의 사옥으로 향하는 프랑스 분들의 전용 차량에 저도 함께 탑승해도 되겠습니까. 저를 찾아오셨다 들었습니다. 쇠뿔도 단김에 빼는 게 좋은 법이니까요.”

이번에야말로 나는 정중히 고개까지 숙이며 간청했다.

세상 물정을 몰라도 한참은 모를 법한 어린 헌터가, 도리어 모든 S급 헌터들의 수장 격인 웃어른을 돕기 위해서 머리를 숙인 것이다.

아무리 속은 썩어 문드러진 불사왕이라도 표면적인 그는 아직 열렬한 휴머니스트이자 박애주의자이니까.

그는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거절을 입에 담을 수 없다.

“좋다.”

잠깐의 텀을 둔 그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고, 이후의 일들은 정말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어차피 나와 ‘성녀’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목적이었던 그다.

이미 나와 대화를 나눌 판을 나 스스로 마련해줬으니 다른 것은 아무래도 좋은 것이겠지.

-툭.

소음이 아닌 하나의 음악처럼,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닫힌 리무진의 뒷문.

공항에서의 짧은 인터뷰가 있고 나서 잠시 후, 나와 파울라스, 그리고 그를 보필하는 저스티스 가디언즈의 랭커들은 드디어 한곳에 모였다.

“긴말 않겠다. 어린 등불이여. 우리는 그대가 ‘계시’를 받았음을 안다.”

휘~

처음부터 거침없이 치고 들어오는 한마디에 나는 내심 감탄했다.

출발한 지 3분도 안 되어 입을 연 그는 파울라스 총리가 아닌 아까부터 ‘왕’의 말을 대변하려 노력하던 흑색 마탑의 노교수였다.

노구에 걸맞지 않게 참 급한 성격이시네.

“바티칸에서는 그 계시를 특급 기밀 사항으로 취급한다고 들었는데, 프랑스는 보기보다 그들과 친밀한 사이인가 보군요.”

“프랑스에게 있어서도 바티칸에 대한 것들은 사활이 걸린 문제이니까. 스파이 하나, 둘은 우스운 법이지.”

급진적인 성자파가 중앙집권세력이 되면 프랑스는 매우 불리한 상황에 처한다.

물론 겉으로는 말이다.

“우린 언데드에 대해 그나마 온건한 정책을 펼치는 교황파가 힘을 얻었으면 한다. 그렇기에 새로운 성녀가 성자파에게 붙잡히는 건 꼭 막고 싶은 미래이지.”

퍽 진솔한 감정이 엿보일 만큼 진중한 태도와 진정성이 느껴지는 표정으로 힘있게 말하는 노교수.

내가 미래를 몰랐다면 정말 속을 수밖에 없는 연기력이었다.

말은 정말 잘하시네.

성자가 그토록 격한 급진주의에 물든 것도, 하루빨리 프랑스를 이 세상에서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든 것도, 모두 자신들이 열심히 ‘유도’한 결과물이면서 말이다······.

“그건 듣는 것만으로도 정말 소름이 끼치는 미래로군요. 무고한 흑마도들을 참살하려는 미치광이 성자가 바티칸의 키를 잡는 건 정말 위험한 일입니다.”

“그래. 그런 것이다. 어린 등불이여. 우리는 그저 그런 스킬을 각성했단 이유로 핍박받고 억울한 누명을 쓴 이들을 지키고 싶을 뿐인 게야.”

살짝 눈시울이 붉어지며 감성마저 듬뿍 담긴 노구의 절절한 목소리.

역시 어떤 의미에서는 불사왕 본인보다 더 위험인물로 손꼽히는 ‘천의 얼굴’, 베르디르 다운 연기였다.

그러나 이를 참 안타깝게도 나는 이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넘겨줄 마음이 티끌만큼도 없었다.

만신창이인 몸, 내 주위를 둘러싼 이들은 모두 적이다.

심지어 현재 이 리무진은 드디어 마포대교에 올랐기에 도주는 꿈도 꿀 수 없다.

어찌 보면 절체절명의 순간임이 너무도 자명한 현재였지만, 나는 도리어 입꼬리를 올리며 이 세상 어느 누가 와도 감히 내뱉지 못할 말을 태연하게 내뱉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감성적 호소, 압박되는 상황,

그 모든 것들이 뒷받침되어, 그럴 마음이 애초에 없었어도 알아서 허리를 굽히고 들어가야 정상인 상황에···.

나는 빙긋 미소를 지으며 말을 한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이 끝나고도 딱 2주만 저를 안전하게 지켜주시길 약속해주신다면, 저도 이번 회담이 끝난 뒤, 계시의 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그게 무슨···. 어, 어린 등불이여. 그대는 지금 프랑스의 전 국민과 모든 죽음 사역자들의 목숨보다도 자신의 안위를 우선시하겠다는 건가?”

당연히 이런 나를 미친놈처럼 바라보는 리무진 내부의 헌터들.

심지어 ‘천의 얼굴’ 베르디르는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온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허나, 오직 프리드리히 파울라스 본인의 만큼은 반응이 사뭇 달랐다.

“이번 정상회담이 끝나고 정확히 14일, 그대의 조건은 정녕 그것으로 끝인가.”

“초, 총리?!”

“파울라스님?”

나를 미친 듯이 쏘아보던 주위의 헌터들은 갑작스러운 파울라스의 발언에 퍽 놀란 눈치였다.

“무엇을 그리 놀라는가. 비정한 바티칸의 전사들 역시 기밀을 누설한 이를 좋게 보지 않을 텐데, 어린 등불이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은 당연한 행동일 뿐이다.”

“하, 하오나···.”

“굳이 저희가 정상회담이 끝나길 기다릴 필요까지는···.”

“됐다. 저 어린 것도 살고자 이리 궁리하는데, 성숙한 자가 되어 고작 나흘을 기다리지 못하겠느냐.”

처음부터 끝까지 그저 무덤덤한 태도를 고수하며, 무뚝뚝하면서도 자애롭게 자신들의 제자들보다 위험에 처한 나를 우선해서 생각해주는···.

그야말로 박애주의를 하루가 멀다고 제창하는 파울라스 총리다운 모습이었다.

뭐, 정작 그 광경을 면전에서 보던 나는, ‘또 지랄이네.’라고 생각했을 뿐이지만 말이다.

“제 아집을 너그럽게 이해해주시니, 진심으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총리.”

이런 상황 자체가 이들이 참 자연스럽게 행하는 ‘연출’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다.

애당초 내가 이 같은 대화의 흐름을 이끌어내고자 그런 당돌한 말을 했던 것이니까 말이다.

허나, 결론은 엄연한 결론.

“그럼···. 이 시간부로 저는 파울라스 총리의 비호 아래 있는 것으로 여겨도 되는 겁니까.”

내가 확인을 구하듯 그리 묻자.

뭘 굳이 당연한 말을 하냐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프랑스의 헌터들.

나는 이 같은 사실을 공공연히 확인한 뒤에야, 어젯밤부터 준비해두었던 한 ‘버튼’을 지그시 눌렀다.

-꾸욱.

아무런 소음도 없이 조용하게 내 주머니 속에서 눌린 ‘버튼’

하지만 그 작은 행동은 상상을 초월하는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쿠··· 쿠구구구궁!

갑작스레 일어나는 압도적인 굉음!

버튼을 누른지 정확히 3초.

특수 항마력 처리가 되어있는 협회의 리무진의 창밖은 이미 검붉은 화염으로 뒤덮여 흡사 지옥을 떠올리게 만드는 비주얼을 보인다.

그럼에도 내부에서는 아무런 열기도 느껴지지 않음에 감탄을 하면서도, 이 거대한 ‘흑염 폭발’은 끝내 이 거대한 마포대교를 무너뜨리고 만다.

갑작스럽게 상승하는 창밖의 풍경.

아니, 이건 창밖의 풍경이 상승하는 게 아니다.

리무진이 한강을 향해 수직으로 낙하하는 거지.

시야를 가리는 흑염에서 빠져나오자 곧바로 사방에서 날아드는 형형색색의 마력 덩어리가 있었다.

그것은 어느 누가 보아도, 누군가의 고의성이 엿보이는 마력 포격.

무너진 마포대교,

쏟아지는 대마력 단위의 포격,

“캬아아아!”

“햐하하!”

이윽고 조류의 거대한 날개를 등에 달고 있는 수수께끼의 인간들이 ‘팬텀의 뼈가면’을 뒤집어쓴 모습으로 오롯이 이 리무진을 향해 묵직한 둔기를 집어던지기까지 한다.

자, 바로 여기서 문제다.

과연 이들은 프랑스의 작자들은 마력 회복조차 불가능한 병상의 환자인 나를 과연 지켜낼 수 있을까.

피식,

미소가 절로 나온다.

왜냐하면, ‘계시’에 관한 정보를 내가 꽉 쥐고 있는 이상, 어차피 이들은 나를 지켜야만 하니까.

오퍼레이션, ‘마포대교는 무너졌다. 이 새끼야.’는 바로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지난밤 나는 국내에 거주하는 A급 이상의 모든 악인에게 현상금을 제시했거든.

다름 아닌 헌터 ‘이건우’의 목을 가져온 자에게 3000억을 주겠다는 현상금을 말이다···.

마포대교는 무너졌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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