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 45화.
철혈검희 이서영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얼핏 폭풍우 같기도 하고 밀려드는 해일과도 같은 그것은, 이서영이 검에 담아내고서야 비로소 짙은 밀도로 활용하는 게 가능한, ‘오러’였다.
두 눈을 시작으로 그가 든 망치에 특히 흘러넘치는 에너지가 맺혀 흐른다.
막대한 크기,
그리고 똑바로 응시하기 힘들 만큼 찬란하게 빛나는 황색의 전격.
그것은 너무나도 선명히 이서영의 눈앞에 있었고, 그것을 전신에 품고 있는 자는 다름 아닌 이건우였다.
“...이 극악무도한, 계시의 대적자!”
이건우를 정확히 인지하자마자 모든 안면근육을 뒤틀며 절규하는 알프레드.
그의 흥분과 동시에 솟구쳐오른 피는 곧장 하늘에서 송곳의 형태를 갖추었고, 그 피 송곳은 일말의 틈도 없이 미칠듯한 속도로 쏟아져 내렸다.
-쏴아아아악!
갑작스럽게 폭우처럼 쇄도하는 비수.
그러나 건우는 금안(金眼)으로 이를 응시하다 아주 조금 은색 망치를 들어 올리는 것으로 응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 아주 작은 동작에서부터 요동치는 금빛의 오러.
마나의 개념을 초월한, 그 전격 형태의 오러는 이건우의 전신을 타고 흐르며 회오리쳤다.
-파지지지지직!
두 에너지의 맞부딪힘에서 공간 자체를 일렁이게 할 만큼의 압력이 터져 나왔다.
허나, 그러면서도 건우는 그저 무덤덤한 얼굴로 한 걸음을 내딛고···.
“아니?!”
경악하는 알프레드를 향해 다가간다.
들어 올리는 망치.
압도적 굉음 속에서도 고요히 울리는 이건우의 숨소리.
“후우우우”
이윽고 그가 망치를 휘두르자 밀려드는 황금빛 오러를 막기 급급하던 알프레드의 머리는 그대로 터져버렸다.
-터엉!
들려오는 소리만으로도 그 묵직함이 느껴지는 타격음.
인체의 오감이 모두 뒤틀려 있던 이서영에게마저 그 압도적인 공압은 제대로 느껴질 지경이었다.
한순간에 이 일대를 뒤흔들던 두 오러의 균형은 무너졌고, 남겨진 건우의 황금빛 전격은 마치 살아있는 불꽃처럼 넘실거리다 나가떨어진 용병대장을 향해 다가가던 고독(蠱毒)의 좀비에게 내리꽂혔다.
이서영의 눈에도 그건 누군가의 의도대로 움직인 것이 분명하다 느껴질 만큼 정밀한 공습이었다.
대체 눈앞의 남자는 누구인가.
이번 ‘황금 게이트’ 작전에 관해 이야기하던 엊그제만 해도 이건우는 이렇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서영은 경고의 목소리를 냈다.
“방심할 때가 아니야! 놈은···!”
지금까지 교전을 거듭하며 이서영이 눈치챈 놀라운 사실을 말해주려던 찰나, 사방으로 터져나갔던 핏방울들이 소용돌이치며 알프레드의 형체를 갖추는 모습이 보였다.
그것도 이건우의 바로 등 뒤, 사각지대에서 말이다.
위험···!
급하게 입 모양을 바꾸며 소리를 이서영은 소리치려 했지만, 너무 늦었다.
이미 흉흉한 핏빛의 송곳은 이미 이건우의 목덜미를 향해 내질러진 것이다.
푹,
분명 그러한 끔찍한 소음이 들려올 것이 너무나도 자명한 현재.
기이하게도 이서영의 귓가를 강하게 때리며 터져 나온 것은 묵직한 쇳소리였다.
-터엉!
뒤도 돌아보지 않은 이건우가 크게 회전하며 휘두른 망치.
은빛 망치는 ‘핏방울’로 그 형태를 바꿔 숨어있던 알프레드의 머리를 다시금 깨부쉈다.
“혈인화(血人化)인가.”
작고 짧은 읊조림.
그러나 그 무미건조한 목소리를 낸 건우는 돌연 폭발적인 속도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허공,
후방,
전방에서 다시 하단으로.
-텅! 터엉! 퍼억!
섬뜩하리만큼 묵직한 소음은 소용돌이치는 핏방울로부터 계속해서 터져 나왔다.
바로 이 광경에서 엎어져 있던 이서영은 아주 솔직한 심정으로 감탄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오러를 기감으로 느끼는 이서영에게는 보인다.
이건우의 망치질은 놀랍게도, 핏방울로 자신의 형태를 바꿔 도주하려는 알프레드를 앞서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도 없고,
향이나 소리는 더더욱 없다.
무언가 있다고 특정하기 위해서는 이서영정도 되는 실전파 무인조차 퍽 정신을 집중해야 하는 상대이거늘···.
-퍼억!
이건우의 망치질은 빗나가지 않았다.
-터엉!
그 망치질 한 번에 형태를 잃고 으스러지는 알프레드.
망치가 내리친 자리가 으깨지며, 대지에 거대한 균열이 마저 생겨난다.
아크메이지가 ‘지진’이라도 일으킨 것처럼 광범위하게 뒤흔들리는 대지는 그 자체로 망치의 묵직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쿠웅!
끝내 지면으로부터 분쇄되고 터져나가던 놈은 허공에 얼굴만 둥둥 떠오른 형상으로 나타나 상공에서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아악! 죽여버리겠다. 다 죽여버리겠어!”
허나, 얼핏 봐도 아파트 7층 높이는 넘어보이는 그 상공을 향해 이건우는 날아오른다.
-훙!
도약하는 소리만으로도 정말 묵직한 소음을 만들어내는 이건우는 상공에 맺힌 놈의 머리와 발악마저도 그대로 으깨버렸다.
“해볼 테면 해봐라. 마령.”
-터엉!
마지막으로 울려 퍼지는 묵직한 울림.
이내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꿈틀거리던 핏방울들조차 그 힘을 잃은 듯 바닥으로 쏟아져내렸다.
붉은 비가 내린다···.
이서영을 가볍게 상회하는 인지능력.
그녀로서는 흉내 내려고 해도 흉내 낼 수 없는 압도적인 힘.
이건우의 그 모습은 더 이상, 인간이라 칭하기 힘들 만큼 초월적인 아우라를 선보이고 있었다.
이윽고 툭, 하고 대지로 내려와 엎어져 있던 이서영을 바라보는 이건우의 금안, 그것은 정말로 형언할 수 없는 깊이의 묘리를 깨달은 무인의 눈이 분명했다.
“...아.”
세상을 무감각하게 바라보던 이건우의 입이 열리고, 그는 말한다.
“죽겠다···.”
“앵?”
무슨 말을 하려나 했더니, 갑작스레 앓는 소리를 내는 이건우.
그러나 직후, 그의 앓는 소리를 증명하듯, 그 번뜩이는 금안이 흐려지더니 본래 이건우의 눈빛이 돌아왔다.
“2대대장님. 저어···.”
그 어처구니없는 모습에 이서영이 입을 떡하고 벌리니, 이건우는 가쁜 숨을 몰아쉬듯 몇 번인가 더 깊은 호흡을 거듭하더니 다시금 어렵게 입을 열었다.
“후우우···. 곧, 저 게이트 내부에서 사람들이 나올 겁니다. 그중 뼈가면을 쓴 자들을······. 읏?!”
“어, 어어?”
그런데 뜬금없이 말도 끝맺지 못하고 앞으로 쓰러지는 이건우.
서서히 신체감각을 되찾아 가던 이서영은 그 경이로운 반사신경으로 벌떡 일어서 그의 몸을 받았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정신을 잃은 이건우를 보며 이서영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하아.”
짧은 한숨과 함께 주변을 쭉 훑어보던 이서영.
황금 게이트 앞은 정말, 아수라장이었다.
“지원부터 부를까······.”
***
[액티브 스킬] - 토르의 투지.
간단한 설명 한 줄, 위험부담에 대한 경고 메시지 하나 없이 툭 하고 내던져진 그것은···.
신화급 무장인 ‘묠니르’에 부착된 고유 스킬이었다.
‘또···. 죽을 뻔한 건가.’
현자의 신 미미르에게 묠니르를 건네받고 외부의 위협을 감지한 나는 주저 없이 이 ‘고유스킬’이라는 놈을 발동시켰는데······.
설마 그 효과가 정말로 천둥의 신인 ‘토르’의 전투능력을 그대로 얻게 되는 것일 줄은 몰랐다.
다만, ‘토르의 투지’라는 그 금빛의 오러를 온전히 운용하기에 내 몸은 너무나 연약했고 결과, 막대한 디버프를 받게 되었다.
<알림>
ㅡㅡㅡㅡㅡㅡㅡㅡ
*각성자, 이건우는 감당할 수 없는 ‘신위’를 사용했습니다.
*상태 이상, ‘과열’이 부여됩니다.
*‘과열’이 존재하는 동안 각성자, 이건우는 생체전기를 회복할 수 없습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
<‘과열’ 해제까지 남은 시간: 88시간 25분>
마치 맨 처음, 나 자신을 훈련하는 방법이었던 상태 이상, ‘오버클럭’때와 같이···.
일정 시간 동안 내 생체전기를 충전할 수 없는 디버프 상태에 빠진 것이다.
그 시간은 무려, 88시간.
내가 기절했다가 눈을 뜨기까지 대략 하룻밤이 걸렸다고 들었으니, 이 디버프는 대강 추측해봐도 최소 100시간짜리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100시간이라니···.”
눈으로 보고도, 입으로 중얼거리고도 실감이 나질 않아 날짜로 세어보니 4일 하고도 6시간이나 더 기다려야 하는 시간임을 알 수 있었다.
‘상성이 좋은 신화급 무장이라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묠니르도 나도 모두 전격을 다룬다.
확실히 같은 신화급 무장인 ‘본디오 빌라도’보다 신체에 위험은 확연히 줄었지만, 묠니르는 묠니르 나름의 ‘안전한 디메리트’를 선사해준 듯했다.
‘결국···. 중요한 건 착실한 레벨업인가.’
모든 것의 기본이 되는 내 몸이 받혀주질 않으니 무엇을 해도 결국 이렇게 펑크가 나는 것이다.
앞으로 ‘토르의 투지’라는 이 스킬은 최후의 카드로 여기는 게 내 신상에 좋을 듯했다.
고민은 길고, 충격은 컸지만, 결론은 퍽 담백했다.
‘레벨업을 하자.’
그리고 부담 없이 ‘혈검’과 ‘묠니르’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미래를 바꾸는 일 역시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다.
“그래···.”
그렇게 고민을 마치고 결의를 다지며 침대에 몸을 뉜 지 약 반 시간, 두 사람이 나를 찾아왔다.
“요새는 항상 병원에서 보는 것 같다. 이건우 상병.”
한 사람은 다름 아닌 이번 일의 마무리를 도맡아준 철혈검희 이서영.
닥터, 곽재신에게 듣기로 ‘뼈가면’을 뒤집어쓴 ‘개벽의 장로와 노을의 전도사’를 제압한 건 양쪽 모두 이서영이었다고 했다.
물론, 게이트 외부로 나오자마자 모든 용병대에게 집중포화를 받기도 했지만 말이다. 하하.
역시 휴거교에 대한 인식으로 휴거교의 스파이를 잡아내는 나의 계획은 퍽 성공적이었던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대대장님. 덕분에 일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하! 나는 이제 누가 대대장이고 누가 병사인지 모르겠다. 이 얼토당토않은 놈아.”
“칭찬 감사합니다.”
“칭찬이 아니라고오오오!”
내 장난에 발끈해 까치발까지 들고 다가와 양손으로 내 뺨을 꼬집는 이서영.
“아아아아, 아흡니다 대대장니임”
“대, 대대대장님! 거, 건우는 환자라구요!”
그리고 그 돌발 행동에 놀라 어찌할 줄을 모르는 또다른 사람은 바로 남궁연.
그녀 역시 환자복을 입었음에도 또다시 쓰러진 내가 걱정되었는지 이렇게 찾아와주었다.
그렇게 한바탕 소란이 있고 잠시 후, 자리에 앉은 우리 세 사람은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근데, 너 왜 그걸 살려 보낸 거야?”
“그거, 라는 건 알프레드 아들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인정하긴 싫지만, 당시의 너는 나보다 더 강했어. 그걸 압도할 정도로 강했지. 마음만 먹으면 완전히 죽일 수 있던 것, 아냐?”
이서영쯤 되는 인물이니 당연히 눈치챘을 줄 알고 있었다.
황금 게이트 밖, 바리케이드에서 있던 전투.
나는 놈을 압도했지만, 놈을 죽일 수는 없었다.
놈은 끝내 피안개가 되어, 어디론가 사라졌으니까.
“놈은···. 이길 순 있어도, 죽일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무슨 말이지?”
“알프레드 아들러의 정체는 이미 인간이 아닌 언데드라는 거죠. 그것도 그 육신의 형태가 중요한 것이 아닌···. 마령(魔靈)입니다.”
놈은 지난번 데스나이트 케일른과 같이, ‘불사왕’에게 새 삶을 받은 언데드였다.
그 형태는 귀신.
말 그대로 추한 의지를 가진 원혼 덩어리.
그렇기에 나는 처음 여단장 최중철을 대면한 날, 이런 말을 했었다.
-제게 ‘본디오 빌라도’를 빌려주신다면 제 손으로 알프레드 아들러의 목을 가지고 오겠습니다···.
‘본디오 빌라도’는 육신뿐만이 아니라 그 혼마저 찢어발겨 버리는 혈검이기에, 오직 ‘본디오 빌라도’를 쥔 자만이 마령 알프레드를 진정한 의미로 죽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마쳤고, 이서영은 골똘히 생각하는 얼굴이 되었다.
“불사왕······. 이라면 건우가 계속 말하던, 그 프랑스 총리의 ‘빌런명’인 거지?”
그리고 내 말을 묵묵히 듣고만 있던 남궁연은 그런 말을 꺼냈다.
“맞습니다. 놈은 숱한 매스컴에서 노래하는 그런 선인이 아닙니다. 놈은 의지를 가진 헌터를 데스나이트, 리치, 마령과 같은 권속으로 만들어 수족처럼 부리는······. 빌런들의 왕입니다.”
처음 내 말을 들었을 땐, 당연히 하나의 가정이겠거니 하며 부드럽게 넘기던 남궁연이 이렇게 심각한 얼굴을 하게 되다니···.
그간 내가 행해온 일들과 이뤄온 업적들.
그건 그 자체로 이젠 하나의 설득력으로 작용하게 된 것 같았다.
그런데 나의 확고한 주장을 들은 남궁연은 돌연 얼굴을 새파랗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그, 그런데 건우야···.”
“예. 소대장님.”
“그 프랑스에서 중역들이 한국에 바, 방문하겠다고 발표한 것 알고 있니···?”
안색이 어두워진 남궁연은 많은 걱정을 담아 그리 물었지만, 나는 ‘그렇습니까’라고 말할 뿐이었다.
왜냐하면, 슬슬 때가 됐거든.
‘황금 게이트’라는 세계적인 시선이 집약되는 빅 이벤트가 있고 난 뒤, 한국에는 다양한 국가의 중역들이 방문하는 ‘정상회담’이 열리게 된다.
그러나 전생에 이 아스가르드의 산물을 들고 도망간 자는 다름 아닌 ‘휴거교도’.
그렇지 않아도 전생의 대한민국은 ‘휴거교 재림’ 때 5대 도심을 빼앗기며 국제적인 조롱을 받던 상황이었는데···.
황금 게이트로 인한 ‘정상회담’이 열리자 세계 중역들은 모두 입을 모아 한국의 권위를 깎아내리기 시작했다.
‘휴거교’에서 약탈해간 그 ‘보상’을 자신들이 정당하게 가져가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경우가 아주 다르지.’
우린 5대 도심을 점거당하지 않았고, 이번 ‘황금 게이트’의 보상 역시, 여기 내 손에 있지 않은가.
‘이번 정상회담은······. 전생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진행될 거다.’
아니, 내가 그렇게 만들 것이다.
계획은 이미 준비되어 있다.
그런데 남궁연은 대체 무엇 때문에 이리도 심각한 표정을 짓는 걸까.
“소대장님, 걱정할 것 없습니다. 어차피 정상회담은 오는 주말에 열릴 것이고···. 저는 그 회담에 부협회장과 함께 참석할 준비가 되어있으니까요.”
나는 최소한 그녀의 근심을 덜어주기 위해 최대한 믿음직한 목소리로 그리 말했지만, 남궁연은 계속 무언가를 고민하는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옆에 있던 이서영이 입을 열었다.
“아휴, 답답하긴. 소위는 지금 네 몸 상태를 걱정해서 말을 아끼나 본데···. 어차피 네가 당사자니까 말해줄게. 프랑스 총리, 프리드리히 파울라스는 오늘 밤 비행기로 국내에 올 거야.”
“대···. 대대장님!?”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남궁연이 목소리를 높이자. 이서영은 잠시 멈칫했지만, 결국 개의치 않고 다시금 말을 이었다.
“전 세계인이 지켜보는 앞에서 놈은 말했지. 오직 너를 직접 만나보고 싶어서 일찍 출발하는 거라고.”
프랑스 총리.
프리드리히 파울라스.
그리고 불사왕.
세 개의 이름을 가진 그 인류의 악몽이, 오직 나를 만나기 위해 이곳으로 온다고···?
전생에 불사왕이 직접 몸을 움직였던 날은, 놈이 본격적으로 본색을 드러낼 준비를 마쳤던 바로 그 날이었으니까···.
‘설마, 놈이 벌써 준비를 끝마쳤단 말인가······.’
내 머릿속에는 곧바로 그런 불안이 떠올랐다.
하지만 나는 지금껏 놈과 휴거교의 계획을 착실하게 막아왔는데, 도리어 준비가 빨리 끝났다고···?
앞뒤가 맞질 않는다.
그렇게 내가 당혹감을 숨기기 위해 무표정으로 가만히 있으니, 이서영은 무덤덤하게 내게 질문을 건네왔다.
“그래. 해야 할 말은 다 했으니 말해봐. 어떻게 할래. 이번에도 뭔가 뾰족한 수가 있겠지?”
그녀는 당연히 내게 뭔가 있을 거라 예상하는 눈치였다.
나라면 가능할 거라는 무조건적 믿음이 엿보인다.
그러나 나는 그런 그녀에게 당장 되돌려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이건 정말 예상 밖의 사태였으니까 말이다.
죽음의 왕이 오고 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자, 서서히 표정이 어두워지던 이서영.
그런 그녀가 한 박자 늦게 깊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려던 바로 그때···!
나는 무언가 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감을 느꼈다.
‘설마···. 그건가···!?’
전생과 달라진 비틀림, 이는 필시 현생에 내가 바꿔놓은 일로 인해 일어난 것이리라.
불사왕을 직접 움직이게 할 만큼의 주요사항, 전제를 그리 깔면 결론은 의외로 쉽게 나온다.
‘성녀······.’
그 역시 찾고 있던 것이다.
현 성녀의 후계자를···.
마포대교는 무너졌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