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 44화.
누군가 ‘황금 게이트’가 열린 동안 어째서 그 출입구에 대한 방책설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느냐 질문한다면,
그 질문을 들은 헌터는 분명, ‘누가 감히’라는 말을 했을 것이다.
아무리 시대가 흐른 현재, 일선에서 물러난 양반들이라 할지라도···.
그 용병대장들은 모두 한 시대를 호령했고 아직도 현역의 헌터들에게는 밀리지 않는 내공을 가진 ‘고수’이다.
그러니 걱정할 것 없다.
‘휴거교’는 오늘도 ‘군, 흑색 마탑, 협회’의 삼중주에 끔찍한 압박을 받고 있고,
집단을 이룬 특수 범죄자들 역시 안전에 특히 민감해진 최근에는 숨소리도 내지 않고 숨어있기 바쁘다.
모두가 그리 생각했다.
어찌 ‘감히’ 용병대장들이 모여있는 그곳에 누군가 수작질을 벌이려 한단 말인가.
허나,
그러한 방심과 상식과 교만은 정작 바리케이드 내부에 있던 용병대장들에게까지 퍼져 있었고, 그 결과가 바로···.
-쿵! 콰과광!
폭발이었다.
“캬하핫! 다 죽여! 다 죽여어어어!”
전신 이곳저곳에 사슬을 메달과 있는 여자는 두 눈을 부릅뜨며 새카만 먹구름으로 내달렸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열 아니, 스물은 족히 넘어 보이는 대규모 인원이 모두 자신의 무장을 빼 들었다.
이윽고 알프레드 아들러의 턱짓 한 번에 미친 듯이 발을 구르는 범죄 집단 고독(蠱毒).
“으아아악!”
고루한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 직후의 일이었다.
검녹색의 안개가 고독의 단원들에게서 피어오른다.
그건 고독의 트레이트마크인 살육의 가스가 분명했다.
-챙!
번갯불이 튀기며 철과 철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나 그것의 배 이상으로 생살을 가르는 섬뜩한 파열음은 계속해서 퍼져 나왔다.
“템페스트···!”
그때, 그 아비규환의 틈에서 들려온 굵직한 목소리.
그 소리와 함께 불어닥친 바람은 일순간에 거대한 소용돌이를 만들어 시야를 가리고 감각을 마비시키는 먹구름과 맹독가스를 걷어냈다.
이윽고 보이는 처참한 광경.
약 스무 명 이상의 용병대장들이 자리하고 있던 바리케이트 내부에서, 멀쩡히 제 두 다리로 서 있는 사람은 고작 일곱에 불과했다.
그 중, 아크메이지.
‘덤프티’의 용병대장은 빠르게 자신의 고목나무 스태프를 휘두르며 고난이도로 악명이 높은 ‘연속 영창’을 행했다.
“...사이클론!”
불어닥치는 거센 태풍.
두 번의 영창으로 인해 생겨난 막대한 기류가 뒤엉키며 압도적인 마력 밀도를 가진 번개 폭풍이 되었고, 정면을 휩쓸었다.
-휘이이이이잉!
이에 휘말려 날아가는 고독(蠱毒)의 빌런들.
허나, 그들을 저 머나먼 산까지 날려버리고 나서도 아직 상대해야 할 빌런은 차고 넘쳤다.
“모두! 일어나! 저런 하룻강아지들에게 당할 셈인가? 그러고도 자네들이 용병대장을 칭할 자격이 있어···?!”
덤프티 용병대장의 거센 고함에 정신을 차리고 하나, 둘 고개를 드는 용병대장들.
“썩어도 준치라는 건가···.”
“아직 구닥다리 늙은이는 아니라는 건가 봐? 앙?!”
아크메이지, 소드마스터, 글레디에이터.
듣는 것만으로도 오금을 저리게 만들 정도의 이들이 다시 일어서는 것이다.
당연히 이 정도의 급습은 짧은 촌극으로 끝나고, 이 극악무도하고 주제를 모르는 범죄자집단은 참교육을 당하게 되리라.
이 모습을 나가떨어진 수풀 뒤에서 지켜보던 남궁연은 그런 ‘상식적인’ 추측을 곧장 떠올렸지만,
기이하게도 고독(蠱毒)의 빌런들은 피식피식, 결의를 다지는 용병대장들을 비웃을 뿐이었다.
‘...뭐지?’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남궁연의 뇌리를 관통하는 바로 그 순간···. 그녀에게 가까운 곳에서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언하시니 이단의 권능은 없음이라 이단의 내일은 없음이라」
그러한 기도문이 들려온 곳은 다름 아닌 외향이 격변한 특급 테러리스트, 알프레드 아들러의 입.
“뭐, 라고···?!”
갑작스럽게 퍼져나오는 휴거교의 강대한 저주에 당장이라도 격돌을 벌일 것처럼 준비하던 용병대장들은 갑작스럽게 눈을 부릅떴다.
“마, 마나가···.”
“...모이질 않아?!”
“지금이다!”
“모두 덮쳐!”
“어이, 어이! 백발 늙은이들! 방금까지 자신만만하던 그 얼굴들은 다 어디로 갔냐고!”
당혹감에 물드는 것과 동시에 또다시 해일처럼 밀어닥치는 고독(蠱毒).
-챙!
갑작스러운 폭발에 한쪽 팔을 쓰지 못하게 된 소드마스터.
밀려드는 현기증에 중심을 잃는 글레디에이터.
이윽고 자신의 마나 조차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게 된 메이지들은 수세에 몰렸다.
“햐아아!”
“역시 고레벨 헌터의 피 냄새는 좋다니까!”
“캬하핫?! 죽어! 죽어! 버러지들아!”
내공이 많지 않은 이들은, 진작 쓰러졌다.
그러니 아직 자신의 두 발로 서 있는 이들은 모두 수십 년간 몬스터와 싸워 이긴 헌터들.
그러나, 그런 그들조차 돌연 쏟아져나온 날붙이들의 폭풍에서는 도저히 무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바로 그때, 높게 들어 올린 손에서 한 줄기의 빛이 하늘로 향한다.
-피이이이이!
이건우가 자기력을 다룰 때처럼 거센 소음은 아니었지만, 날카롭게 그리고 얇게 터져 나온 그 소음은 아주 분명하게 하늘에 수 놓였다.
“섬광···!”
무방비,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수단이 그 어디에도 없음에도 남궁연은 두려움을 딛고 일어나 자신의 스킬, ‘저주를 해제하는 섬광’을 발현했다.
-파아아아아!
금세 새하얀 빛은 하늘에서 이 ‘황금 게이트’ 일대 전체를 비추었고, 그제야 용병대장들은 반격다운 반격을 다시금 시도한다.
-팍!
-툭, 탁!
-챙! 스르릉!
일순간에 다시금 아수라장으로 돌변하는 바리케이드.
바람의 칼날과 독 묻은 비수가 교차하고, 빛나는 직검과 쇠사슬에 얽힌 날붙이가 묵직한 충돌음을 일으켰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그곳이 아니었다.
-텁.
척봐도 족히 500m는 떨어져 있었으나, 고개를 돌리는 그 잠깐의 사이 알프래드 아들러는 남궁연의 옆으로 다가와 그녀의 목을 잡았다.
“꺄악?!”
당장이라도 목뼈가 뒤틀려 버릴 것만 같은 압박감.
그녀의 레벨이 두 자릿수대로 상승하지 않았다면 정말 일순간에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큭···. 으윽···?!”
「신성력의 발현을 멈추어라, 그러면 목숨만은 거두지 않을 테니···.」
알프래드의 붉은 홍채는 마치 남궁연이 아닌 그녀의 영혼을 탐닉하는 뱀의 눈처럼 가늘고 깊게 뜨여져 있었다.
직감적으로 느껴지는 진득한 저주의 향.
아마 남궁연이 섬광을 발현하는 중이 아니었다면 저 뱀의 눈이, 그녀의 정신을 파괴했을 거란 것을 직감했다.
목이 잡혀 들어 올려진 남궁연.
숨이 막힌다.
목이 터져버릴 것만 같은 격통이 밀려들어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 같이 동공이 요동쳤다.
그럼에도 남궁연이 끝내 기절하지 않은 이유는···.
그녀가 멈추면, 이곳의 모두가 죽기 때문이었다.
「멈추어라.」
“끄윽···!”
「멈추어라!」
계속해서 머릿속을 파고드는 고양감.
마치 마약을 뇌내에 직접 들이부은 것처럼 남궁연의 시야는 단번에 흐려지고, 그녀의 입에서는 침이 주르륵 흘렀다.
다만, 그럼에도 그녀의 마력은 계속해서 저 하늘의 빛으로 화했다.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게냐!」
그제야 일그러지는 특급 테러리스트의 얼굴.
허나, 그가 내지른 고함은 되레 흐려져 가던 남궁연의 정신을 바짝 일깨워주었다.
직후 그녀는 피식 웃으며 흡사 사이코패스처럼 초연하게 입을 열었다.
“너희, 신성력을 모아서 뭔가 하려고 한다면서···. 나 못 죽이잖아. 내가 모를 것 같아?!”
도리어 당당한 남궁연의 고함.
이를 들은 알프래드 아들러는 눈썹을 일그러뜨리며 말을 씹어뱉었다.
“효율은 떨어지나, 제물에게 팔다리는 필요가 없지······. 네년의 그 고매한 정신이 과연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가. 시험하겠다.”
그리 말하며 날카롭게 모은 손.
알프레드의 손은 마치 강철의 송곳처럼 변해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날아 그녀의 왼쪽 어깨를 파고들었다.
“꺄?! 꺄아아아아악!”
미칠듯한 격통에 비명을 참을 수는 없었다.
허나, 그 지경이 되어서까지 멈추지 않는 스킬의 발현.
남궁연은 눈이 뒤집힐 듯한 고통을 감내하면서까지 오롯이 정신력으로 그것을 견뎌내었다.
“호오?”
그러자 되레 변태적인 미소를 짓는 알프레드 아들러.
“재미있구나. 그럼, 오른쪽 어깨를 으깨어도 정신력으로 버티겠느냐?”
-휙,
마치 인형에 못을 박아넣는 것처럼 간단하게, 송곳처럼 모은 손을 뽑아 다시금 동작을 취하는 알프레드.
만신창이가 된 남궁연은 전신을 벌벌 떨었지만, 그러면서도 자신이 해야 할을 멈추진 않았다.
이윽고 날아드는 거대한 송곳.
남궁연은 제 죽음을 각오했지만, 그녀를 향해 날아드는 빛줄기는 알프레드의 손만이 아니었다.
-서걱!
연속해서 들려오는 거센 참격음.
갑작스러운 부유감에 남궁연은 엄청난 현기증을 느꼈지만, 부드러운 손길이 다가와 그런 그녀를 받아주었다.
번뜩인 섬광은 분명, 날카로운 검광.
남궁연은 본능적으로 그 움직임의 주인공이 자신이 그토록 기다리고 있던 ‘그’라는 것을 느꼈다.
“거···. 건우야?”
이윽고 눈을 뜨자, 쓰러지는 그녀를 받아 안아준 이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쳇, 미안하네. 소위. 네가 기다리던 백마탄 왕자님이 아니라서.”
보인 얼굴은 분명한 20대 후반에 대령직을 달고 있는, 살아 숨 쉬는 전쟁영웅의 얼굴이었다.
“이, 이서영 대령님···.”
“대신 왕자보다 나은 공주 역할은 제대로 해줄 테니까. 기절하지 말고 기다려. 알겠나 소위?”
“...예.”
그리 말하며 남궁연을 땅에 눕혀주는 이서영.
이내 그녀가 냉랭한 표정으로 뒤를 돌자, 그곳에는 두 손이 잘려나간 알프레드 아들러가 서 있었다.
“철혈검희···.”
“언제 테러리스트에서 휴거교도로 이직한 거냐. 특급 범죄자, 알프레드.”
“교단의 장해물이 알아서 사지(死地)로 걸어오니, 이 모든 건 주님의 뜻이겠지.”
“생쥐의 오줌만큼은 도움 되는 말씀 감사하고···. 그 사지가 네 사지인지, 내 사지인지, 한번 확인해 봐야겠지?”
-스릉.
이서영은 자신의 상체만 한 장검이자 희대의 명검인, 백룡도를 빼 들고 알프레드를 향해 겨눴다.
“오라, 미천한 자여. 너의 피로 축배를 들지니.”
“지랄, 한심한 놈아 그럼 난 네놈의 시체를 조금도 남김없이 불태워주마.”
고요한 적막이 잠시 흐르고,
검과 죽음을 능멸하는 자가 자아내는 노래는 시작되었다.
***
붉디붉은 세계를 나는 걸었다.
찰박찰박, 발을 내디딜 때마다 발목까지 잠기는 거대한 피 웅덩이의 감각은 내 걸음을 붙잡으려 했지만···.
그것은 내가 흘린 그리고 내 동료들이 흘린 피로 이루어진 호수였기에 나는 멈추지 않았다.
새빨간 세계에서도 유독 더 붉은, 가장 처절하고 절망적인 것들이 한 대 모인 웅덩이.
나는 직감적으로 그것이 이 아귀도(餓鬼道)가 구연해낸, 공포의 근원일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찰박찰박,
앞으로 나아갈수록 나의 무릎, 허리, 가슴이 차례로 피 웅덩이에 잠겨갔다.
허나, 이곳은 어디까지나 심상세계, 즉 꿈과 그다지 다르지 않기에, 나는 계속해서 나아갔고 결과 수많은 동료의 원념과 원한의 끝을 볼 수 있었다.
호수의 가장 깊은 곳, 그곳에는 홀로 몸을 웅크리고 앉아 연신 눈물을 흘리며 훌쩍거리는 사람이 있었다.
붉은색,
그건 분명 붉은색이 사람의 태를 갖추고 있을 뿐인 무언가였지만,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그 누구보다도 정확하기 인지할 수가 있었다.
왜냐하면···. 그건 나였기 때문에.
“역시, 공포의 가장 깊은 심연은···. 모든 걸 포기한 나였나.”
나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그것은, 피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나도 인간이야. 나도 사람이라고! 어떻게 나한테 수천, 수만의 목숨을 맡겨? 나 같은 놈에게 인류 존속의 희망을 맡기겠다고?!”
부담감, 그리고 강한 자기 부정.
“날 비웃었잖아. 돼지 배터리라며···. 홍진웅 대위도 그래! 날 버렸어. 포기했다고, 그래놓고 뭐? 나라서 믿어? 나한테 모든 게 달려있어? 제발 미친 소리 좀 그만해!”
그리고 무력했던 나를 향하던 그 수많은 조소와 조롱에 대한 원한.
그것은 포기한 나, 나약한 자신, 스스로에게만은 한없이 너그러워지는···. 나태한 ‘나’였다.
“다 죽일 거야. 아니···. 그것도 싫어. 너도 싫잖아. 그냥 죽자. 여기서 죽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이 ‘심연’ 속에서 나랑 같이 죽자.”
그것은 유혹했다.
이제 고통받지 않아도 된다고,
이제 매일 치가 떨리는 격통을 견디려고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된다고,
내게 안식이 눈앞에 있다고 그리 말한 것이다.
그런 놈의 말을 곱씹다 보니, 나는 나도 모르게 비틀린 조소를 짓고 말았다.
“훗.”
“...뭐야, 지금 날 비웃는 거야? 나는 너야. 네가 내심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거잖아! 그런데 네가 나를 비웃어? 나를···. 조롱해?!”
격한 감정을 피의 형태로 내뿜으며 고함을 지르는 그것.
그러나 나는 눈썹 하나 까딱 않고 그대로 서서 조곤조곤 입을 열었다.
“...그래도, 나는 나아가겠다.”
“차라리 다 죽이고 싶잖아. 차라리 불사왕이랑 손잡고 모두를 쓸어버리고 싶잖아!”
“아니, 그렇지 않다.”
“왜?! 대체 왜!”
“난···. 나 자신을 버린 지, 이미 한참이 지났다. 내 욕망, 분노, 나의 사사로운 감정 따위······. 동료들이 믿고 맡긴 희망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아니, 정확히 그것에게 얼굴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것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왠지 모르게 알 수 있었다.
“내가, 나를···. 버린다고?”
“차라리 이곳까지 오는 길에 보았던 수백의 동료들이 더 떨쳐내기 힘든 고통이었다. 너는 잘못된 선택을 한 거지······. 현자의 신 미미르여.”
“뭣···?!”
그것은 이번에야말로 정말, 큰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는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 아닌···. 정말로 표정이 생겨 보이는 얼굴이었다.
세계의 네 번째로 그 모습을 드러냈던 ‘황금 게이트’.
지금껏 ‘황금 게이트’는 모두 북유럽 신화에 기반을 둔 권능, 혹은 아이템 헌터에게 선사했다.
먼 훗날 밝혀지는 사실이지만, 이 ‘황금 게이트’의 정체는 사실 북유럽의 신들이 거주하는 세계인, 아스가르드의 파편이었다.
그리고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네 번째 ‘황금 게이트’를 관장하는 자는 다름 아닌, 기억하는 자, 되돌이켜 생각하는 자를 대표하는 신, 미미르였다.
전생에는 신이 실존한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었기에, 어디까지나 시스템의 힘으로 구현된 세계라 추측했었는데···.
수신과 그 존재를 만나고 온 지금의 나는 달랐다.
나를 테스트하는 자.
이윽고 게이트에 발을 디딘 모두를 시험하는 자는 바로, 형체를 잃고 의지만이 남은 신, 미미르가 분명했다.
“너는 곱지 않게 미친놈이로구나. 각성자여.”
“그러는 너도, 정상은 아니잖아. 미미르.”
“하, 하하하. 하하하하.”
기계적인 웃음소리를 내는 미미르.
그리고 마침내 들려오는 시스템 메시지의 소리.
-띵!
<알림>
ㅡㅡㅡㅡㅡㅡㅡㅡ
*각성자, 이건우는 마지막 스테이지 ‘아귀도(餓鬼道)’를 클리어합니다.
*각성자, 이건우에게는 아스가르드의 기물 하나를 택할 권리가 주어집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
“축하한다. 그리고···. 원하는 바를 말하라.”
당황하고 웃던 표정이 어디로 간 것인지.
어느새 무표정한 로봇과도 같은 얼굴을 하고 있던 미미르는 내게 그리 말했다.
“...난.”
그리고 나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이 순간에 꼭 하고자 했던 말을 아주 천천히 곱씹어 뱉었다.
“천둥의 신의 무장. 묠니르를 원한다.”
날 바라보던 미미르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
하늘로부터 대지까지.
사선으로 그어진 날카로운 참격의 끝에는 개나리 꽃잎이 아름답게 흩날렸다.
-스릉!
그 오러가 어찌나 짙은 빛을 발하는지, 이서영의 노란 오러로 물든 ‘백룡도’가 황색의 빛을 발할 지경이었다.
숨 가쁜 공방을 나눈 뒤, 잠시 멀어져 숨을 고르는 사이, 무언가 이상한 것을 느낀 이서영은 알프레드를 쏘아보며 입을 열었다.
“왜 도망만 치는 거냐. 내 피로 축배를 드는 거 아니었어?”
“시간은 나의 편일지니.”
“지랄, 네 눈은 장식이냐?”
그렇게 말하며 이서영이 살짝 고개를 흘낏거린 그곳은 수많은 용병대장이 위기에 처했던 바리케이드의 안쪽.
남궁연 소위의 힘으로 짙은 저주를 걷어낸 현재,
잠시 수세에 몰리긴 했다만, 노련한 백전노장들은 다시금 마나를 끌어모았고 전신에 독이 퍼져나가는 와중에도 치열하게 싸워, 마지막 고독(蠱毒)의 빌런을 잡아 족치고 있었다.
“저걸 보고도 시간이 네 편이야? 생쥐의 똥구멍만큼이라도 설득력이란 걸 좀 가져봐.”
“아니, 시간은 나의 편이다.”
“하아아···. 대화를 시도한 내가 잘못이지.”
-스릉!
이초희는 상황이 거의 마무리 되어가는 현재, 보다 박차를 가하며 몸을 날렸다.
-챙!
휴거교도의 상징물인, 오르골의 파편을 들고 그런 이서영에게 맞서는 알프레드.
하지만 그런 조악한 물건으로는 이서영의 검을 막을 수 없었고, 이미 열댓 번은 더 떨어졌던 알프레드의 손목은 또다시 절단되어 땅을 굴렀다.
“이, 이쪽이야!”
이윽고 그녀의 등 뒤에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
그건 방금까지 바리케이드 내부에서 전투를 펼치던 그 용병대장들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저, 저 자식은···!”
“특급 테러리스트 알프레드 아들러?”
“그리고 그 앞에 있는 저 작은 아이는···. 아니. 철혈검희잖나!”
경악하는 소리를 내면서도 착실하게 다가와 누워있는 남궁연을 감싸고 방진을 갖추는 용병대장들.
역시, 경력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는 걸 증명하듯.
그들은 상황을 확인하는 것과 동시에 지켜야 할 대장, 조력해야 할 검사 그리고 마주해야 할 적을 정확하게 구분해냈다.
“모두 전투에 대비한다. 우리 검투사들의 검 끝은 언제나 적의 머리를 향할지니···!”
“우리 덤프티의 포격 또한 적을 불태울 거다.”
“와라! 특급 테러리스트 녀석!”
일순간에 짜여진 완벽한 방진.
더욱이 1대1 전투에 있어서 국내 탑 반열에 드는 이서영이 전위로 있다.
“어딜 봐도 네 패배 아니냐? 알프레드.”
“후, 후후후후. 흐흐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
그때, 미친놈처럼 허리를 기역 자로 꺾으며 폭소를 터트리는 건, 다름 아닌 수세에 몰렸다 생각되던 장본인 알프레드 아들러였다.
그 공간의 모든 이들은 그가 미쳐버린 것인지 의문을 표했지만,
바로 그 순간. 알프레드는 돌연 하늘 높이 손을 치켜들고는 갑작스레 주먹을 쥐며 딱 한 단어를 내뱉었다.
“시체 폭발!”
-쿠웅! 콰과광!
압도적인 폭발은 돌연,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윽?!”
“으으윽!”
그 폭풍만으로 용병대장들의 방진을 뒤흔들 정도로 거대한 폭발.
그것을 아주 당연하게 일으킨 알프레드는 활짝 입을 벌리고 웃으며 섬뜩한 목소리로 말했다.
“잊었나···? 난 사제가 아니다. 나는···. 네크로맨서다!”
-스욱!
-쿠억!
-캬아아악!
피를 토하며, 피도 뭣도 아닌 무언가를 한껏 게워내며 뒤틀리고 갈라진 몸을 일으켜 세우는 고독(蠱毒)의 단원들.
“뭐···. 뭣이?!”
이에 놀라 곧장 마력을 캐스팅하는 용병대장을 향해 알프레드가 일으킨 ‘좀비’들은 미친 듯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쿠아아아악!
고통과 분노로 점철된 절규가 울려 퍼지고, 이서영과 검격을 주고받던 알프레드가 먼 거리에서 주먹을 꽉 쥐자···!
-쿠웅! 콰과광!
또 한 번, 그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으아아아악!”
아무리 용병대장들이라 할지라도, 단기간에 맞춘 방진, 전신에 퍼져 있는 독 심지어 이미 마력 탈진이 일어날 만큼 지쳐 있는 상황에서 그것을 막는 일은 불가능했고···.
남궁연 소위를 중심으로 한 무리 전체가 사방으로 나가떨어졌다.
“읏···!”
남궁연이 기절해 ‘섬광’이 끊어지자, 철혈검희 이서영은 갑작스럽게 균형감각이 뒤집히는 생소한 경험을 맛보게 되었다.
“하···. 하하······. 하하하하핫! 사지라고 했을 텐데, 이곳은 네년의 사지가 될 거라고! 내가 분명히 말했을 텐데!”
-챙!
균형이 완전히 무너진 상태에서도, 뱀의 송곳니같이 생긴 알프레드의 검을 받아친 것은 순전히 이서영의 압도적인 반사신경 덕분이었다.
다만,
“으윽···!?”
연속적으로 쇄도하는 검격에 결국, 넘어지는 이서영.
심지어 새로운 ‘저주의 기도’는 실시간으로 허공에 수 놓이며 이서영의 시각, 청각, 촉각, 공감각을 뒤틀기 시작했다.
“철혈검희···. 우리 주께서 네년의 피를 원하신다.”
기도하듯 송곳니 검을 양손으로 맞잡고 높이 들어 올리는 알프레드.
“그분의 제물이 되는 것을 영광으로 알라···!”
그는 종언을 고하듯 그런 말을 내뱉었고, 맞잡은 두 손은 정확하게 이서영의 목을 향해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둥!
아니, 바로 그 순간이었다.
갑작스럽게 휘청이는 저 하늘의 ‘황금 게이트’.
‘계시’에 없던 일에 당황하며 알프레드가 눈을 흘낏거리는 바로 그 찰나의 순간···.
다채로운 휘광의 무지개가 이서영과 알프레드의 사이에 드리워졌다.
찬란한 무지개를 타고, 천공을 가르며 질주하는 압도적 뇌광!
-치이이이이이이익!
거대한 천둥은 그 전격의 어마어마한 존재감을 다시금 토해내었다.
-쿠우우우우우웅!
이윽고, 이서영과 알프레드의 사이, 당당히 선 남자의 손에서 한 망치가 빛을 발했다.
엄청난 양의 전격이 남자의 몸과 하늘에서 오직 망치를 향해 모인다.
그것은 ‘마나’나 ‘전류’라고는 결코 부를 수 없는···. 그야말로 하늘에서 내리는 황금빛의 번개, 그 자체였다.
“특급 테러리스트 알프레드 아들러. 이곳에서 죽을 자는···. 바로 네놈이다!”
이건우의 두 눈동자가 금빛으로 번뜩였다.
죽음의 왕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