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40화
D-5.
‘황금 게이트’의 출현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닷새.
건우를 비롯한 4소대 1분대의 장병들은 갑작스러운 협회의 지원요청에 따라 ‘휴거교’와 연관된 은거지 탐색을 위해 부대 밖으로 차출되었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부산에 주둔한 4군단의 헌터부대···. 라고 알려진다.
어디로 향하건 여러모로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건우의 행보.
많은 이들은 어째서 그가 7여단이 아닌 4군단과 작전을 수행하게 되었는지 의문을 표했다.
-7여단과의 불화
-일방적인 성전사들의 선언에 이건우가 불만을 품은 것이다.
이같이 다양한 추측성 기사가 난무했지만, 공식적인 입장표명은 없었다.
다음날, D-4.
이건우의 부산행보다 더 심각하고 충격적인 소식이 알려진다.
평택 일대를 수호하는 국내 9위 용병대, ‘검투사’의 탐지팀으로부터 협회로 어떤 팩스 하나가 도착한 것이다.
게이트 출현 징후 감지.
그런데 그 게이트의 특징이라는 것이 다소 기이했다.
아이템이나 마광석 따위의 존재 여부를 나타내는 순수 마력 수치는 하늘을 모르고 치솟는데, 몬스터를 의미하는 복합 마력 수치는 매우 낮았던 것이다.
헌터 사회가 정립된 후, 이 같은 현상이 관측된 사례는 전 세계에 딱 3번뿐이었다.
72년 전, 함부르크의 알스터 호수에 자리를 잡은 ‘켄타우르스’와의 전투 후.
46년 전, ‘해룡’과의 전면전 끝에 바다가 갈라졌던 로스엔젤레스의 앞바다.
21년 전, 블라디보스토크 항구 방어전에서 승리한 러시아 헌터들의 앞에.
‘황금 게이트’는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지 않아도 헌터 이건우의 존재로 인해 세간의 이목을 사로잡고 있던 한국이다.
국내에 들어와 있던 외신 기자들로 인해 이 사실은 삽시간에 전세계로 퍼졌고, 그 반응은 아주 격렬했다.
D-3.
황금 게이트 공략대 합류 신청은 장마철 내리는 빗방울의 숫자만큼 많았다.
국내에 존재하는 수백의 용병대는 물론이요.
협회 요원 출신으로 유명한 용병대, 부산의 자랑인 4군단과 함께 바다 괴수들을 막아내기로 유명한 용병대까지.
다양한 이력, 경력, 정치적 연결점, 막강한 경제력을 가진 이들이 황금 게이트에 합류 의사를 밝힌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 빨리 황금 게이트의 존재가 알려짐으로 인해 이름만 들어도 전 세계인이 알 법한, ‘거대 길드’들 역시 자신들의 길드원들을 보내겠다고 선언한 것이었다.
일이 너무 커졌다.
공략 우선권은 분명 ‘검투사’에게 있지만, 이젠 자칫 잘못했다간 국제 문제로 일이 번질 수도 있는 사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D-2.
고심 끝에 ‘검투사’는 자신들이 첫 공략대에 무조건 합류한다는 조건으로 이 사안에 대한 처리를 ‘군과 협회’에 위탁한다.
협회의 부협회장 이초희는 반나절의 고심 끝에 본래부터 국내에 주둔해 있던 집단으로 입장 조건을 제한했고,
공략대의 입장 순서와 규모에 따라, 각기 다른 가격을 매겨 ‘경매’를 진행하겠다 발표한다.
당연히, 수많은 정치인과 사회운동가들은 울화통을 터트렸고 언론사와 방송사는 돈에 미친 부협회장이라며 그녀를 힐난할 기사를 준비했지만···.
-잘 들어. 난 협회의 이름으로 이 게이트를 독점하고 내가 보상을 꿀꺽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그나마 납득 가능한 제안을 내놓은 거야. 불만 있는 새끼들은 다 내 앞으로 튀어와.
이초희는 콧방귀를 뀌며 이처럼 대응했다.
-나, 백귀야행을 꺾는 놈이 있으면 그놈한테 처리방식을 선택할 권리와 부회장직까지 더 넘겨줄 테니까. 알았어?!
다른 누구도 아니고 국내 최고의 S급 헌터라 불리우는 백귀야행의 이초희다.
다소 억척스러운 면이 없잖아 있긴 했지만, 이로써 복잡한 문제들은 대부분 사라졌다.
“하아아··· 내가 기자회견장에서 소리를 지르다니···. 도도하고 이성적인 내가···.”
“고생하셨습니다. 부협회장님.”
어째서인지 팔로 눈을 가리고 피곤한 듯 축 늘어진 이초희에게 나는 일상적인 어조로 말을 걸었다.
이초희는 내 목소리를 듣더니 고개를 살짝 돌려 나를 원망스럽다는 듯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이보세요. 부산의 4군단으로 떠나서 속 편할 이건우 상병. 정말로 이렇게 하면, 네 그 계획이라는 게 잘 풀리게 되는 거니?”
“예. 다 부협회장님 덕분에요.”
“황금 게이트 내부에 있을, 뭔지 모를 보상은 네가 꿀꺽 할거고?”
“지금까지 숨 가쁘게 노력해온 저에게 상을 준다고 생각해주실 순 없으십니까.”
퍽 진지한 어조로 고개 숙여 부탁을 드리는 나.
사실, 나를 위해 움직여준 횟수와 규모만 따지고 보면 오히려 내가 이초희에게 감사를 표해야 할 처지였기에 나는 이렇게 정중하게 움직인 것이다.
“...그렇게 나오면 내가 할 말이 없잖니. 게다가 황금 게이트의 보상은 지금껏 저 레벨의 헌터가 얻었을 때 효과가 더 크다고도 하고···. 아으으으. 그래. 너 해. 상이야.”
다행히 이초희는 그 본성부터가 확실한 선인이었기에 내게 무리한 요구 따위는 일절 없이 그냥 부탁을 들어주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는 말이 아니라 협회와의 단독 계약으로···. 쿠우울.”
최근, ‘흑색 마탑’의 다비드 호베흐와 함께 나흘째 철야로 휴거교의 잔존세력을 잡아 들이고 있다더니···.
그녀는 결국 졸음을 참지 못하고 그대로 의자에서 잠들었다.
곁으로는 아무리 태연하고 능구렁이처럼 굴어도 그녀는 명실상부 국내 최고의 노력가였다.
“역시···.”
이초희는 결코, 잃어선 안 될 인재다.
하지만, 향후 1년 후에 찾아올 그 ‘재앙’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이초희 말고 누가 있겠는가.
그녀의 죽음을 막지 못하면···. 이 나라는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인류 절멸의 미래를 향해 가속할 것이 분명했다.
“...당신이 죽게 놔둘 순 없다. 뭔가, 방법을 찾아야겠지.”
결의를 다진다.
전생에는 퍽, 그다지 친해지기도 전에 사라진 이 한국의 인재를 이번에는 내 손으로 지키기 위해서.
-딸깍.
나는 주먹을 굳게 쥐고 이초희 전용의 휴게실에서 나왔다.
-우당탕!
내가 나오는 것과 동시에 뭔가 넘어지는 소음이 들렸지만, 애써 신경 쓰진 않았다.
이초희가 저 정도로 다칠 리는 없으니까.
나는 여단장에게서 받은 아이템, ‘팬텀의 뼈가면’을 뒤집어쓰고 다시 유유히 협회 본부를 빠져나갔다.
***
이윽고 밝아오는 D-1.
웬만한 체급이 되지 않고서는 명함조차 내밀 틈 없는, 1차 공략대 명단 경매가 시작되었다.
많은 용병대는 자신들의 ‘에이스’ 대원을 1차 공략대에 포함 시키고자 대출은 물론이요 사채까지 당겨쓴 곳도 있을 정도였다.
-자, 일곱 번째 자리, 615억 나왔습니다.
간신히 용병대원의 자리를 따냈다는 생각에 감격한 표정을 짓는 한 용병대장.
-더 없습니까? 다섯 세겠습니다. 하나, 둘.
하지만, 경매 진행자가 이렇게 최후의 카운트 다운을 시작하자 기다렸다는 듯 푯말을 들어 올리는 성격 나쁜 사람이 하나 있었다.
“640.”
-다, 단번에 640억이 나왔습니다!
수많은 중소 용병대장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인다.
경매장 중간에 정장 차림으로 앉아 기이한 형태의 ‘뼈가면’을 쓰고 있는 한 사람···.
연대를 이룬 중소 용병대의 용병대장들은 그 악취미적인 사람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저 사람은 대체···.”
“대체 뭐 하는 놈이길래 벌써 세 자리나 가져가 놓고 더 욕심을 내냐는 말입니다!”
“다른 게이트도 아니고 황금 게이트의 공략대인데, 상도덕이 없어도 너무 없지 않소···.”
악의가 대놓고 느껴질 정도로, 계속해서 판돈을 올리는 대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뼈가면’의 사람.
“다음 휴식 시간이 오면···. 내가 저 노친네에게 한마디 하리다.”
“노, 노친네?”
“저 사람이 왜 노친네입니까. 젊은 여자 아닙니까?”
“예?”
연대를 이룬 용병대장 중 한 명이 돌연 그런 선언을 하자 주위에 있던 다른 용병대장들의 표정이 변했다.
그때, 연대를 이룬 용병대장 중 가장 침착하던 한 남자가 입을 열었다.
“형님들, 다들 진정하세요. 아직 모르겠습니까? 저 사람이 쓴 가면···. 저건 인식 왜곡의 마법 진이 수십 개는 족히 그려진 최상급 아티펙트가 분명합니다.”
“이, 인식 왜곡···?”
“고작 경매에 참여하면서···. 인식 왜곡?”
“설마···?”
“그렇습니다···. 경매에 저 정도 아티팩트를 태연하게 착용하고 나타난 점에서 이미, 공개적으로 얼굴을 드러내기 곤란한 랭커 혹은···.”
“범죄자··· 설마 휴거···.”
“자, 잠깐! 함부로라도 그 이름을 입에 담지 마시게!”
“그, 그래. 놈들과는 차라리 역이지 않은 게 상책이잖나···.”
어두운 조명 아래.
모여든 용병대장들은 그리 잡담을 나누다 다음 경매품이 나오자 조용히 흩어졌다.
-다음은 잠시 브래이크 타임을 가지고자, 특별한 물품을 준비했는데요? 바로, 휴거교와의 항쟁의 선두에 선 새로운 S급 헌터! 이건우 상병님이 애용하는 연금술 공방에서 제조한 ‘하이 포션’입니다!
군과 협회라는 강대한 중앙집권 세력이 있는 한국에서는 잘 없는 일이지만,
거대 길드를 중심으로 국가 경제가 굴러가는 외국의 경우 공략대 자리를 둔 ‘경매’는 곧잘 있는 일이다.
거기서 게이트 내부에서 꼭 필요한 포션이나 매직 스크롤 따위를 중간중간 끼워 넣는 것은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허나, 숱한 용병대장들의 반응은 차가웠는데···.
“누가 듣도 보도 못한 공방의 포션을 쓰겠나···.”
“아무리 그 이건우가 애용하는 공방이라도···. 현재로선 아직 C급에, 경험도 많지 않은 헌터의 안목을 누가 믿겠냔 말이죠. 허허허.”
“그렇지요. 그렇지요.”
조용히 서로에게만 들릴 만큼 목소리를 내며 회의적인 의견을 교환하는 용병대장들.
허나, 바로 그때 푯말을 들어 올리는 사람이 있었다.
“100.”
-예? 하지만 이 상품의 경매가는 3억에서부터 시작될 예정입니다만···.
“100.”
진행자조차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지만, ‘뼈가면’을 뒤집어쓴 그 사람은 아니··· ‘건우’는 요지부동이었다.
진행자는 그런 건우의 모습에 잠시 넋을 놨다가 뒤늦게 활짝 웃으며 선언한다.
-그, 그럼 100억! 이건우 헌터의 공방에서 제조된 ‘하이 포션’은 다섯을 세고, 100억에 낙찰되겠습니다!
다섯, 넷···. 하나!
건우는 천천히 진행되는 카운트를 음악처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건우를 미친놈 보듯 바라보았지만, 애초에 저 물건은 ‘분노의 연금술사’가 제조한 포션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건우가 어째서 어렵게 협회의 협조를 구해 경매에 이런 물건을 넣어두었는가.
그 이유는 단순했다.
-뽕!
중개인으로부터 ‘하이 포션’을 받아든 바로 그 직후 모든 이들이 보는 앞에서 뚜껑을 딴 건우는···.
-주르르륵
주저 없이 그것을 땅에 버리기 시작했다.
“뭐···. 뭣?!”
많은 이들이 경악과 함께 벌어진 입을 손으로 틀어막고 이곳저곳에서 웅성거림이 들려온다.
“헉···!”
“100억짜리를!”
“100억 따위는 돈도 아니라는 건가!?”
“저 인간 대체 정체가 뭐야!”
“저, 저런 시건방진···!”
다양한 감정과 수많은 생각이 교차한다.
-뽕!
그런 반응을 확실히 인지하던 건우는 피식 미소를 지으며 다음 ‘하이 포션’또한 똑같이 바닥에 버렸다.
건우가 이처럼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벌인 데에는 물론 이유가 있었다.
‘이걸로···. 어쭙잖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경매에 참여한 사람들은 알아서 떨어져 나가게 될 거다.’
이번 게이트에는 그 ‘빌런’들이 나타난다.
그렇게 전재산을 탕진해 공략대의 한 자리를 얻어봤자, 그렇게 참가한 용병대의 ‘에이스’는 죽임을 당하고 그가 착용하고 있던 모든 아이템은 빌런들의 손에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일이 일어날 바에는 차라리···.’
사전에 ‘판돈’ 무식하게 끌어올려, 애초에 두 자리, 세 자리를 가질 정도의 재력이 안 되는 용병대를 걸러내는 편이 낫다.
‘불필요한 희생은 줄인다. 그리고 이렇게 판돈을 미친 듯이 올리는 건···. 두 번째 목표와도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노골적인 ‘판돈 올리기’.
이는, 이곳 어딘가에 있을 ‘휴거교’의 협력자, ‘불사왕’의 후원을 받는 국내의 빌런들에게도 치명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휴거교’와 ‘불사왕’이 오랜 시간에 걸쳐, 전 세계 방방곡곡을 휩쓸고 다니며 모아놓은 막대한 부.
‘어차피 놈들에게 액수는 얼마가 되었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무슨 짓을 하더라도, 빌런들의 침투를 막을 수 없다?
건우는 바로 이 부분에서 머리를 썼다.
어차피 놈들의 참전을 막을 수 없다면, 그 절대적인 측면을 역이용하면 되는 것 아닌가.
‘이준학 준장이 항상 말했지···.’
기회가 왔을 때 최대한 많이 뜯어두라고.
“700”
또다시 건우가 들어 올린 푯말.
주위에서는 식식거리는 소리도 끄으으 하며 탄식을 터트리는 이도 있었지만, 건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들의 반응이 격하면 격해질수록 건우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어차피 건우가 내는 돈은 모두 협회에게서 나와 협회로 돌아간다.
사실상 건우가 제시할 수 있는 자본은 무한, ‘휴거교’와 ‘불사왕’의 후원을 받는 ‘그들’은 자본이 무한에 이르는 건우와 피 말리는 경매를 진행중인 것이다.
‘핫.’
웃기지도 않는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지만, 건우가 착실하게 준비한 설계는 수십 번의 전투에서 승리했을 때보다 더 거대한 성과를 거두는 것이다.
-710억 낙찰!
-820억 낙찰!
-1020억 낙찰입니다!
가면 갈수록 건우로 인해 올라가기만 하는 ‘황금 게이트’ 공략대의 가격···.
이윽고 서른두 번째를 넘어서는 자리 경매.
건우는 슬슬 시간이 되었음을 느꼈다.
-다음은 서른세 번째 자리 경매를 시작···.
피곤한 기색 없이 열띤 경매를 이어가던 진행자.
그런데, 갑작스럽게 스태프가 나타나 그런 그녀에게 어떠한 쪽지를 건네주고 사라졌다.
-아, 방금 들어온 협회발 속보입니다. 아무래도 이번 황금 게이트의 보상은 ‘흑마법’에 관련된 무언가일 가능성이 크다는 소식입니다!
경악한 표정을 짓다가도 금세 이성을 되찾아 서른세 번째 공략대 자리 경매를 재개하는 진행자.
그러나 스치듯 들려온 그 소식에 이성을 되찾을 수 있는 건 ‘진행자’가 공략에 참여하는 당사자가 아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리라.
“흐, 흑마법?!”
“그럼 역시 저 사람은···.”
“자, 잠깐··· 흑마법과 연관된 보상을 저 휴거, 아! 아니, 저 인간이 가져가게 되면······.”
“크, 큰일이야 어, 어이. 도, 돈을 모으자고!”
“어떻게든 막아야 해!”
정확히 마흔 명의 공략대 자리를 판매하는 이 자리에서 명백한 후반부라고 표현할 수 있는 서른세 번째 자리의 경매.
건우는 예정대로 날아온 ‘가짜 정보’에 흥분한 주변인들을 보며 피식 미소를 짓는다.
건우를 ‘휴거교’의 앞잡이라 오해한 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돈을 모아서라도, 건우가 더는 자리를 낙찰해가지 못하도록 막으려 들었다.
하지만 그건 도리어···. 건우에게만 좋은 일이었다.
“1300억! 이 이상은 없겠지! 없을 거다!”
-처, 천 삼백억이 나왔습니다!
악을 쓰며 푯말을 들어 올린 중소 용병대 연대장.
말 그대로 영혼까지 끌어모아 내놓은 재산이었겠지만···. 건우는 입가에 걸린 비릿한 미소를 숨기며 주저 없이 푯말을 들었다.
“1500”
-처, 천···. 오, 오백억···!
“마···. 말도 안 돼”
“저, 저 인간은 벌써 4천억 원은 들이부었을 텐데 아직도 더 남았다는 건가?!”
그 결과, 경매가는 진행자가 눈을 부릅뜰 만큼 빠르게 수식으로 상승한다.
고작 공략대 한 자리가 뭐 어쨌다고 이 지경까지 사단이 나냐 묻기에는 ‘황금 게이트’의 보상은 언제나 인류 역사의 한 획을 긋는 말도 안 되는 헌터를 탄생시켜왔다.
‘황금 게이트’ 보상의 가치를 증명하는 일은 간단하다.
72년 전, 독일 함부르크 알스터 호수에서 ‘황금 게이트’의 보상을 거머쥔 한 청년, 그는 ‘보상’을 얻기 직전까지만 해도 D급의 짐꾼이라는 비루한 직종의 종사자였지만···.
‘보상’은 그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왜냐하면, 72년 전 청년이었던 그 남자의 이름이 바로···. ‘프리드리히 파울라스’였으니 말이다.
‘그’라는 사례가 있다.
그래서 더더욱 사람들은 열광한다.
정말로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평생을 바쳐 모은 돈을 이곳에 탕진할 각오를 다지며 돈을 모으고, 또 모아 ‘휴거교’로 오해받는 건우에게서 공략대 자리를 지키려고 달려들었다.
그래도 건우가 퍽 놀란 것은,
어디까지나 각자의 이익을 위해서만 돈을 사용할 줄 알았던 수십의 용병대장이 ‘휴거교’로 보이는 건우에게 대항하기 위해 즉석에서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건우의 시야가 닿지 않는 곳에서도 이처럼, ‘휴거교’에 대항하고자 힘을 쓰는 이들은 많았던 건가.
건우는 예상치 못한 연합과 연대에 도리어 가슴이 퍽 따스해지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건우는 묵묵히 푯말을 들어 올릴 뿐이었다.
“2000”
-이, 이천억! 더, 없으십니까?
모든 건 짜여진 판이었다.
건우를 ‘휴거교’로 오해해 돈을 끌어모은 용병대장 연대에게는 참으로 고맙고도 미안하지만, 이 경매의 엔딩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왜냐하면, 황금 게이트의 보상이 ‘흑마법’과 연관되어 있다는 정보는···.
이 경매장보다도 한발 빠르게 다른 이들에게 들어갔으니 말이다.
-드르륵!
경매 진행자가 나무망치를 집어 들고 낙찰을 고하려는 바로 그 순간, 이 경매장의 뒷문을 박차고 가쁜 숨을 내쉬며 들어온 자가 있었다.
그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이미 건우는 미소를 지었고···. 갑작스럽게 난입한 남자는 협회 부회장의 지장이 찍힌 경매 ‘참가 허가서’를 높이 들며 큰소리로 외쳤다.
“지금 경매에 나온 자리부터 마지막 자리까지 전부! 우리 ‘흑색 마탑’이 2천 5백억에 매수하겠습니다!”
갑작스러운 불청객의 난입.
“저, 저 자는···!”
“다, 다비드! 흑색 마탑의 다비드 호베흐야!”
“휴거교 척결에 그 누구보다 앞장서는 그 흑색 마탑의 조교수라고!”
그러나 사람들은 인상을 찌푸리기는커녕 그의 등장에 환호를 질렀다.
악의적인 ‘판돈 올리기’
시의적절한 ‘가짜 정보’
그리고 최근, ‘흑색 마탑’과 가장 밀접하게 작업을 진행하던 사람은···. 다름 아닌 부협회장 이초희.
모든 것이 이미 정해진 대로 흐른다.
2천 5백억.
듣는 것만으론 감도 잡히질 않는 천문학적인 금액에 판매된 자리는 무려 여덟 자리···!
보상이 ‘흑마법’과 연관된 무언가라면, 다비드 호베흐의 성격에 뛰어오지 않을 수가 없었으리라.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 흑마법으로 세상의 진리를 접하려 탐구를 이어가는 학자이니까.
그가 자신 있게 제시한 ‘2조’라는 미친 돈이 모두 어디에서 나오겠는가.
그건 모두 ‘불사왕’의 주머니에서 나올 것이다.
-그, 그럼···. 최종적으로 43번 참가자분의 동의가 있으면 번외 참가자 흑색 마탑의 조교수님의 전 좌석 매수를 승인하겠습니다. 43번 참가자분은 동의하십니까?
경매 진행자의 침착한 질문과 함께 또다시 경매장의 모든 시선인 오롯이 건우에게로 쏠렸다.
허나, 건우가 동의하지 않을 이유가 대체 어디에 있겠는가.
그는 잠시 생각을 하는 시늉을 하더니, 어깨를 으쓱하며 자신 번호가 적힌 푯말을 내렸다.
“해, 해냈다고···!”
“여, 여덟 자리나 지켜냈다고!”
“다비드···. 저 자는 대체···!”
“언데드는 질색이지만···. 역시 인격자 프리드리히 파울라스의 제자인거야!”
건우의 항복 선언에 아주 축제라도 시작된 듯 기뻐 날뛰는 이들.
건우는 그런 그들을 천천히 훑어보며 홀로,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첫 번째 기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