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39화
두 번째 성녀.
마르쿠스 베르마코프 코르넬리우스는 성녀에 대한 정보를 전달한 지 정확히 일주일 만에 결론을 내린 듯했다.
수도방위사령부와 협회, 이 두 집단과 함께 공동 수사망을 구축했던 성전사였지만, 이번 거대 게이트 사태를 계기로 ‘정화’ 작업을 일시 중단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성전사는 세계 그 어디에서도, 한번 시작된 ‘정화’를 중단하겠다 발표한 적이 없었기에 그 짧은 기자회견은 상당한 파급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성전사마저 한발 물러나게 만든 휴거교.
-휴거교는 이 한국 사회를, 나아가 세계를 위협할 존재가 되는가.
사실은 ‘두번째 성녀’에 대한 사안이 워낙 급박하니 다른 활동을 중단하게 된 것이겠지만, 마르쿠스의 발언은 또다시 많은 매스컴에서 휴거교를 주목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미국의 하이랭커 제이스 마땅한 조건을 제시한다면 도와주지 못할 것도 없다고···.
-사우디 아라비아의 왕자, 이건우를 넘긴다면 A급 사병 10만을 약조하겠다.
참으로 다양한 곳에서,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들이밀며 휴거교 척결에 협조할 의사가 있음을 밝혀왔다.
프리드리히 파울라스도 이번 소식을 이용해 또다시 공식 석상에 나타나 ‘흑색 마탑’의 공적에 찬사를 보냈으며,
바로 옆 나라인 일본도 정 필요하다면 도와주지 못할 것은 없다는···. 참 어처구니가 없는 의사를 표했다.
“참···. 별의별 이상한 놈들이 다 꼬이네.”
“성전사들이 일선에서 물러난다는 건, 역사적으로 전례가 없는 일이니 어쩔 수 없는 게지.”
“당신은 그래도 괜찮습니까? 전사장 마르쿠스.”
그리고 그 세간의 주목을 받는 새로운 S급 헌터 이건우와 충격 발언을 한 장본인 전사장은 현재 같은 장소에 있었다.
바로, 7여단의 총수인 최중철 소장이 업무를 보는 여단장실에···.
“난······. 전혀 괜찮지 않군. 이런 불명예스러운 발표를 하게 될 줄이야. 하지만 중요한 것은 교황님과 두 번째 성녀님이지. 내 의사가 아니라네.”
후우,
마르쿠스는 잠시 한숨을 내쉰 뒤 고개를 옆으로 돌려 여단장 최중철을 바라보았다.
“또한 적극적인 협조에 감사드리오. 장군.”
“아무런 대가를 받지 않고 협력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신경 쓸 필요는 없소. 전사장”
네모난 테이블에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는 세 사람은 여단장, 전사장 그리고 나였다.
두 사람은 이미 뭔가 긴 대화를 나눈 뒤인듯했지만, 나는 이 자리에 불려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방금 내가 들은 이야기를 정리하듯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바티칸의 성유물을 대여하는 조건으로 7여단이 성전사들을 보호해주기로 했다···. 라는 것이 표면적인 입장인 겁니까?”
“그렇네.”
“하지만 정작 성전사들은 7여단에 머무는 척을 하며 초장거리 공간이동을 통해 바티칸에 다녀오시겠다···?”
“역시 자네는 머리가 비상해서 그런지 단번에 이해했군.”
즉, 7여단이 성전사들의 공백을 숨기고 그동안 성전사들은 ‘두번째 성녀’를 확보할 계획인 듯했다.
뭐, 확실히 바티칸의 입장에서 ‘두 번째 성녀’란 그렇게 해서라도 꼭 보호하고 싶은 대상일테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더욱이 성전사들이 국외로 나갔다는 사실을 숨기는 것만으로도 휴거교에 대한 억제력은 어느 정도 유지가 될 테니까 말이다.
이는 한국과 바티칸, 양쪽 모두 이득이 되는 거래임이 분명했다.
휴거교는 그렇지 않아도 이번 ‘거대 게이트’를 통해 막대한 전력을 잃었다.
마르쿠스의 기자회견으로 또다시 세간의 주목을 모은 현재, 다시 거대 게이트 같은 사단을 벌였다간 이번에는 정말로 미국과 일본 그리고 사우디의 사병이 한국에 방문할지도 모른다.
놈들이 아무리 예측불허의 미치광이 광신도 집단이라 할지라도, 이 정도의 관심이 쏠린 동안 또다시 큰 사건을 벌이지는 않으리라.
그래. 현재 상황은 잘 알겠다.
“그런데···. 저는 왜 이곳으로 불러온 겁니까.”
이미 둘이서 이야기도 다 끝내 놓고 한창 훈련으로 바쁘던 나를 왜 부른 것인가.
가장 최초에 던졌어야 할 질문을 이제야 입에 담자 마르쿠스는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이상한 일은 아니니 그리 경계하지 않아도 된다네.”
그런 말로 밑밥을 까는 시점에 이미 마르쿠스 이상한 부탁을 할 심산이라는 건 예측할 수 있었다.
“사실 이번 바티칸 복귀 계획에서 메리는 제외되었다네.”
메리, 그녀는 열일곱이란 나이에 이미 눈앞의 마르쿠스와 동급의 신성력을 다루는···. 어떤 의미에서는 또 다른 성녀 후계자라 불러도 좋을 성전사였다.
“그 아이는 특별하거든.”
이어지는 이야기는 나도 익히 아는 바였다.
신성력을 가진 자는 같은 신성력을 가진 자의 위치를 감지할 수 있다.
그리고 이건, 그 ‘신성력’의 규모에 따라 지구 반대편에 있는 신성력도 감지할 수 있을 만큼 정밀한 GPS시스템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데···.
“메리를 자네 곁에 붙여 둔다면 우린 자네가 위기의 순간에 처했을 때, 언제라도 초장거리 공간이동을 통해 나타날 수 있게 되는 거라네.”
“아, 하하.”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메리를 GPS로 이용할 심산이라 말하는 마르쿠스.
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지 알 수 없어 그냥 멍하니 허탈한 웃음소리를 낼 뿐이었다.
잠깐, 이거 생각해보니 결과만 놓고 보면···.
7여단은 이번 일로 성유물을 받고, 바티칸은 두 번째 성녀를 확보할 수 있지만, 정작 나한테는 홀로 남는 메리를 돌봐달라는 말 아닌가······?
“음?”
이거 뭔가 호구 잡힌 기분인데?
“그럼, 저와 성전사들은 공간이동의 준비로 바빠서 이만 일어나 보겠소.”
“잘 들어가시게. 전사장.”
그런데 내가 이러한 점을 따지고 들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는 전사장 마르쿠스.
최중철 소장은 빙긋 웃으며 그에게 인사를 건네주었고 마르쿠스는 고요하게 자리를 떠났다.
“아무튼, 그렇게 되어서 말이네. 이건우 상병에게 막내 성전사를 부탁해도 되겠는가?”
이건 질문이 아니라 이미 내가 맡으리라 확신을 지은 뒤 날리는 확인 사살 아닌가.
일반적인 병사라면 바로 여기서 좋든 싫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겠지만···. 나는 조금 다른 대답을 꺼냈다.
“여단장님.”
“왜 그러지?”
“대신 저도 한 가지만, 꼭 필요한 것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내 대답이 예상 밖이었는지, 최중철 소장은 눈을 빛내며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겐가?”
그의 질문대로 ‘무슨 일’은 곧 일어날 예정이었다.
‘거대 게이트’라는 전생에 없던 대사건으로 잠시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지만,
‘오브-성혈’를 활성화하던 그 시점부터 착실히 준비를 이어가던 다섯 번째 ‘히든 피스’의 등장이, 이제 머지않았으니까 말이다.
“예. 굳이 따지자면 좋은 일이지만, 이쪽에서 손을 쓰지 않으면 최악의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는···. 그런 사건이 일어날 겁니다.”
“지난번에도 생각했다만···. 자넨 정말 모르는 것이 없군?”
“모르는 게 없는 게 아닙니다. 알고 있는 걸 아는 것뿐입니다.”
“하···. 자네랑 대화를 하다 보면 내가 뒷방 늙은이가 되는 것 같다는 거 알고 있나?”
“주의하겠습니다.”
하하···.
여단장은 내 태연한 대답에 그런 머쩍은 웃음소리를 내더니 잠시 눈앞의 서류 뭉치를 정리하다가 입을 열었다.
“자네가 뭘 요구하든, 장교로 임관하겠다는 약속만 있다면 뭐든 들어주겠다만···. 그래. 이번 일에는 또 어떤 물건이 필요한지 우선 말이나 해보겠나?”
어째 최중철 소장님답지 않게 꽤나 질척질척한 말투였지만, 나는 우선 기회를 얻었으니 눈치 보지 않고 말하기로 했다.
“여단 무기고 지하 3층, 본디오 빌라도와 같이, 위험 무구 보관실에 있는 ‘팬텀의 뼈가면’을 대여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상식을 논하듯 당연하게 꺼낸 이야기.
하지만 이를 듣는 여단장의 표정은 단단하게 굳어갔다.
“이건우 상병···.”
“예. 여단장님.”
“자네에게 이제 와서 이런 것을 따지고 드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은 알지만 한 번만 묻지.”
“예.”
“7여단 무기고 내부의 특급 기밀들을 아니···. 애초에 여단 무기고에 지하 3층이 존재한다는 걸 대체 자네가 어떻게 아는 겐가.”
여단장 최중철은 예전처럼 내 정체에 의문을 품거나, 수상쩍은 존재를 파고들고자 하는 눈을 하고 있진 않았다.
‘본디오 빌러도’에 이어 ‘팬텀의 뼈가면’까지, 특급 기밀로 붙여진 무구들을···.
오늘 저녁 메뉴를 고민하는 사람처럼 태연하게 언급하는 날 보니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온다는 그런 반응이었다.
이에 나는 가볍게 웃는 것으로 대답을 피했다.
그리고 그런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 헛웃음을 터트리는 여단장.
이로써 꽤나 돌발적으로 시작된 거래는 무사히 성사된 듯했다.
다소 장난스러운 분위기가 있긴 했지만, 실제로 지금 여단장에게 부탁한 ‘팬텀의 뼈가면’은 이번 ‘히든 피스’ 공략에 정말 중요한 열쇠가 되어줄 예정이었다.
***
헌터군은 신병이 잘 오지 않는다.
군번이 꼬일 경우 최악의 경우, 상병 4호봉이 되어서야 후임을 받게 되는 사례가 있을 정도로 말이다.
일반 군에서도 새롭게 전입오는 신병들은 관심의 대상이라는데, 헌터군에서는 그게 심하면 심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시···. 신병 왔다. 다, 다들 짐 잘 풀어드리고 아, 아니지. 짐 잘 풀어주고 밥 맥여라잉?”
이 혼란스러운 와중에 갑자기 부대에 찾아온 새로운 병사.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병사를 대하는 행정보급관의 태도였다.
평소와 달리 머리를 단정히 하고 모든 행동에 절도가 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옆집 바보 형 같은 이미지의 그 1중대 행정보급관이 말이다.
기이한 건 행보관만이 아니었다.
홍진웅 상병···. 당장이라도 진급식을 치르면 병장을 달게 될 그가 분대장으로 있는 우리 분대에 새로이 등장한 신병은 다소 이상했다.
눈에 띄게 흰 피부에 군복을 입고 있지만, 한눈에도 돋보이는 굴곡진 몸매 그리고 무엇보다 금발의 긴 머리카락이 돋보이는 외향의 그녀는···.
다름 아닌 성전사 원정대의 막내, 메리가 분명했다.
“에···.”
“서, 성전사님?”
“여기서 뭐, 뭐하시는···.”
“추, 충성! 저, 메메, 메럴라인 맥고윈은 금일 부로 7여단 1대대 1중대 4소대에 저, 전입을 명 받았습니다!”
얼굴을 홍당무처럼 시뻘겋게 물들이고 어색한 자세로 경례하는 메리도,
그녀와 구면인 병사가 과반수인 우리 분대원들도 대체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혼란에 휩싸인 얼굴이었다.
“우선 짐을 정리해주죠. 메리? 일단 저기 침상에 앉아있을래?”
“녜?! 아, 네!”
유일하게 그녀가 올 것을 사전에 들었던 나만이 비교적 침착했으나···.
아니, 침착하긴 개뿔.
당연히 남궁연 소위와 함께 지낼 장교의 형식으로 보낼 줄 알았는데, 이런 무식한 방식으로 메리를 보낼 거라고는 솔직히 상상도 못 했다.
“그, 그래 얘들아. 일단은 일반 신병을 대하듯이 아, 알겠지?”
“예. 홍진웅 상병님”
“에에, 옙”
우선, 서로 눈치를 보며 뭔지 모를 침묵에 휩싸인 상태로 우린 일반 신병을 대하듯 그녀의 짐을 정리해주었고, 침상과 관물대까지 즉시 사용할 수 있도록 정돈해주었다.
그렇게 해야 할 일을 마치고 침묵 그대로 각자의 침상에 걸터앉아 입도 떼지 못하는 상황, 이건 내가 S급 헌터라는 것을 발표한 뒤에 휴가 복귀했을 때보다 심각했다.
크흠,
때문에 일이 이렇게 되리라는 걸 알고 있던 내가 솔선수범 입을 열었다.
“메리, 혹시 전사장에게서 받은 명령이 어떻게 되니?”
“아, 네! 그으··· 건우님의 옆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말라는, 그런 명령이셨습니다······.”
말을 하면 할수록 목소리가 기어들어 가는 메리. 얼굴까지 시뻘겋게 물들어서는 무슨 열감기를 앓는 사람 같았다.
뭐, 전생의 나라도 이런 낯선 환경에 뜬금없이 떨어뜨려 놓고 갑자기 적응하라고 하면 지금의 그녀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낯선 옷, 사람, 환경 뭣하나 익숙한 것 없이 덩그러니 떨어져나왔으니 얼마나 놀랐겠는가.
심지어 그녀는 이제 열일곱이다.
“음···. 우선 우리 분대에 온 걸 환영해 메리. 저기 잘생긴 병장, 아직은 상병인 사람이 분대장 홍진웅 상병님. 여기는 내 맞선임인 김장훈 일병님이야. 그리고 저기···.”
너무 놀라 바짝 긴장한 얼굴인 분대원들이 안 된다면, 최소한 나라도 그녀를 챙겨줘야겠지.
나는 한 명, 한 명 메리에게 분대원들을 소개해주는 한편, 우리 분대원들에게도 메리가 이곳에 오게 된 경위를 대략적으로 설명해주었다.
그제야 어떤 상황인지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분대원들.
그들이 서서히 평소와 같은 텐션으로 돌아오는 것은 호재였지만, 어째 행동거지 하나, 하나에 힘이 들어가고 절도를 가지게 된 것이 퍽 우스웠다.
아무래도 남자만 있던 이 환경에, 흡사 인형과도 같은 외향의 메리가 나타났으니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의식하게 되는 듯했다.
“하아아···.”
아무래도 무식한 마르쿠스의 판단으로 고생하는 건, 메리 본인과 우리 분대의 역할이 된 듯했다.
그렇게 내가 연신 한숨만 내쉬던 바로 그때, 이 어색한 분위기를 어떻게 해보려는 듯 눈치빠른 홍진웅 상병이 일 이야기를 꺼냈다.
“아, 그렇지 건우야. 어제 여단장님을 뵙고 온 뒤에, 우리에게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었지? 어차피 우리 분대의 식사 순번은 꽤 나중이니까, 지금 말해보는 건 어때?”
그렇지 않아도 묘한 어색함 때문에 진절머리가 나려던 참이었다. 나는 속으로 홍진웅 상병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우며 그 흐름을 이어받아 말했다.
“그랬죠···. 좋습니다. 꽤 갑작스러운 이야기가 될 순 있지만, 잘 생각해서 대답을 들려주시겠습니까.”
그렇게 이목이 오로지 내게 쏠린 순간, 나는 버릇 적으로 검지를 쭉 펴들고는 말했다.
“앞으로 엿새 뒤, 황금 게이트가 열릴 겁니다.”
“황···. 뭐라고?”
“화, 황금 게이트? 정말이야?!”
“황금 게이트라면···. 미국이랑 러시아, 독일에 열렸던 적이 있는 그거···?”
내가 생각해도 다소 뜬금없는 발언이었음에도 분대원들은 기겁하는 표정으로 입을 떡하고 벌렸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 입에서 나온 말이니 허무맹랑한 낭설이라 여기진 않는 듯했다.
“예. 그 황금 게이트가 맞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생활관에 있는 우리 분대와 함께 그 게이트를 공략하고자 작전을 구상하고 있죠.”
“...우, 우리?”
“협회 요원이나, 대대장님 급이 아니고 우리랑?”
“예. 그렇습니다.”
황금 게이트란, 그 형태가 무엇이 되었건 보상을 습득하는 자의 운명을 뒤바꿀 만한 무시무시한 보상이 준비된 게이트를 말한다.
지난번 ‘녹색’의 빛을 반짝이던 기형 게이트가 인류에게 있어 크나큰 재앙의 이벤트였다면, 황금 게이트는 바로 그 반대였다.
시스템적으로 존재하는 거의 유일무이하게 인류에게 긍정적인 결과를 안겨주는 이벤트.
이른바, 황금 고블린과 같은 게이트였다.
역사적으로도 딱 3번. 한 세기 동안 미국, 러시아, 독일에만 열린 바가 있던 바로 그 황금 게이트는 엿새 뒤, 평택에서 그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었다.
“근데 평택이면 우리 여단의 관할이 아닌 데다가···. 엄청나게 많은 용병대나 고레벨 헌터들이 몰리지 않을까?”
다만, 내 맞선임이자 이젠 퍽 믿음직하게 성장한 김장훈 일병은 처음부터 내 제안에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쳤다.
“장훈이 말이 맞아···. 애초에 황금 게이트가 관측되면, 날고 기는 헌터들도 모두 모이겠지. 어쩌면 인근에 있는 일본, 중국에서도 정당한 공략권을 주장하며 들고 일어설지도 모르지.”
거기에 이어지는 홍진웅 상병의 쐐기.
내 갑작스러운 제안에 놀라움을 표하기 바쁘던 다른 분대원들도 두 사람의 침착한 의견 표명을 들으니 점차 담담한 표정을 되찾아갔다.
“그래. 건우의 제안은 솔직히 고맙지만···. 우리 분대원들만으로는 뭔가를 해보기도 전에 다른 공략대에게 뒤처질 뿐이겠지.”
남은 분대원들 역시 마지막 김장훈 일병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그렇게 결국 이번 황금 게이트 작전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표방한 이는 없었다.
또한, 이 같은 상황을 아주 낯설게 느끼고 있을 메리마저 분대원들에 말에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지극히 상식적인 판단과 거절. 허나, 나 역시 이 정도의 거부의사가 나올 것은 충분히 예측하던 바였다.
“그렇습니까···.”
나는 최대한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리듯이 말을 이었다.
“이번 작전에 참여하는 병사는, 참여 자체로 여단장님께 포상 휴가를 받을 수 있도록 이야기를 마쳐두었었는데···. 선임님들의 의사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겠지요.”
그냥 흘리듯이 내뱉은 말. 하지만 지난 반년간 연속해서 큰 사건을 겪느라, 휴가가 남아돌아도 똑바로 사용할 수 없는 환경에 처해 있던 이들의 반응은 격했다.
“잠깐!”
“잠깐만, 건우야. 바, 방금 뭐라고?”
“휴가가 뭐 어떻다고?!”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푹 숙였던 내가 얼굴을 들자, 눈에 이채가 감도는 분대원들의 얼굴이 바로 보였다.
“황금 게이트가 열리는 것은 이제 고작 엿새 남은 일입니다. 알맞은 시간에 공략대에 참가하기 위해선 급히 휴가를 나가는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나는 그렇게 분대원들과 함께하지 못하게 된 것이 아주 안타깝고 아쉽다는 듯 말을 이었고···.
그러자 내 말을 듣고 있던 분대원들은 돌연 말했다.
“세상에 저희가 황금 게이트에 들어가게 된다니. 정말 기대되지 않습니까?”
“그래 건우야. 작전이 어떻게 된다고?”
“다들 진정하고 우선, 당장 우리에게 가능한 전술과 전략을 검토해보자.”
가장 확고하게 나의 제안을 거절했던 김장훈 일병부터,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다소 심각한 얼굴로 매우 진지하게 가능한 전략과 예상 시나리오를 브리핑하는 홍진웅 상병까지···.
“풉···.”
이 정도로 욕망에 솔직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하긴, 나라도 반년 동안 휴가 한번 못 나가면 눈이 돌아갈 것 같긴 하다.
“자. 그럼 다들 동의해주신 걸로 알고···. 디테일한 작전을 브리핑해드리겠습니다.”
톳 씨 하나 빼놓지 않고 예측대로 움직여준 분대원들을 향해 나는 퍽 기형적인 이번 게이트의 공략 방법을 길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오직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메리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어차피 그녀에게는 나와 붙어있으란 전사장의 명령이 있었으니, 동의하든 하지 않았든 나와 함께하리라는 건 기정사실이나 다름이 없었다.
아무튼, 나는 그렇게 이번 ‘황금 게이트’ 공략법에 대한 장대한 계획을 이야기했고···.
그 이야기를 모두 들은 분대원들의 표정은 오묘했다.
그때, 지금껏 가만히 있던 메리가 가장 먼저 손을 들고 입을 열었다.
“음···. 건우 님 아니, 이건우 상병님···? 그 말대로라면 지금 이 공략대는 ‘군’이 아니라 ‘휴거교’의 신도를 흉내를 내면서 공략대 임한다는 말로 들리는데······. 제, 제가 뭔가 오해를 한 거겠죠?”
당연히 자신이 잘못 이해한 것이리라 생각하는 메리.
그렇기에 그녀는 퍽 차분한 태도와 다소 난해한 어조가 뒤엉킨 기이한 얼굴로 그런 말을 했지만, 나는 그녀에게 빙긋 웃으며 답했다.
“아니, 네가 이해한 게 맞아 메리.”
설마 했던 나의 확신에, 얼굴로 수십 개의 물음표를 띄우는 분대원들과 메리.
“에···. 저 성전사라고요···? 저한테 이단자들의 흉내를 내라고······. 진심으로 말씀하시는 건가요?”
“응. 정확해.”
“아, 아니! 부정해달라고요! 저 성전사라니까요?”
“와, 그러면 신성력을 다루는 휴거교 신도 역할을 하면 되겠네. 새롭고 좋네.”
“아니, 아···. 하아. 서, 성녀님이 뵙고 싶어요···.”
다소 장난스러운 어조로 가볍게 전달된 나의 공략법.
그러나 이 어쭙잖아 보이는 ‘휴거교’ 흉내는 이번 ‘황금 게이트’에서 가장 큰 위험이 될 예정인 어떤 존재를 완벽하게 제압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나는 이번 기회에 용병대에 숨어든 스파이를 잡을 생각이거든.”
무려 10년이 넘도록 그 본색을 숨기고 용병대에 잠입해 있던 휴거교의 스파이들.
나는 그중에서도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연놈들을 이번 기회에 확실히 제거할 심산이었다.
불사왕의 주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