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38화 (38/175)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38화

【속보】 지옥에서 돌아온 S급 헌터, 이건우 장장 20년 만에 레벨업의 기록을 갈아치우다!

【속보】 자칫, 다신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고 보도되었던 S급 헌터 이건우, 기적을 거머쥐고 일어서다!

【속보】 헌터사를 다시 쓰는 희대의 헌터, 이건우의 집중조명!

고작 반나절,

이초희의 전화 한 통으로 시작된 나의 충격적인 레벨업 소식은 딱 반나절 만에 수많은 기사글을 쏟아내었고, 이는 다시금 번역되어 세계에 퍼져갔다.

헌터의 시체로 산을 쌓고, 몬스터의 시체로 바다를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전해지는 ‘전란의 시대’도 아니고, 이 ‘평화의 시대’에 이 같은 일은 그야말로 사상 초유의 사태였기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직접 원군을 보냈던 신성 바티칸에서는 일선에서 물러났던 ‘성녀’ 어르신께서 직접 기자 회견장에 나타나 감사를 표했고,

프랑스 총리인 ‘불사왕’ 역시, 나의 압도적인 성장에 크게 감동했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 외에도 명실상부한 헌터 강국 미국,

부패한 중앙 집권세력, ‘무림맹’을 밀어내고 ‘마천신교’를 일으켜 세우던 중국,

언제나 중립적 태도를 고수하며 그 어떤 외부적 자극에도 묵묵부답을 일관하던 스위스,

사상 최강 S급 헌터의 비호 아래 전례 없는 평화를 맞이했던 독일까지,

이번만큼은 일제히 큰 관심을 표해왔다.

직접 만나고 싶다는 이들부터,

한국 정부를 무시하고 직접 계약을 맺고 싶다는 나라,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부를 약속하며 내게 손을 내민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자까지.

허나, 당연하지만 나는 몸 상태를 핑계로 그 모든 접촉과 제의를 거절했고,

그렇게 시간이 하루, 이틀 더 흐르자 ‘도대체 어떻게 살아있는지’가 의문이라던 내 몸은 서서히 상태가 호전되기 시작했다.

이토록 빠르게 상태가 좋아진 대에는 물론 6연속 레벨업이라는 경이가 한몫했겠지만, ‘신의’ 곽재신의 집중 캐어 역시 큰 역할을 해주었다.

이윽고, 간신히 두 발로 설 수 있을 정도로 몸을 회복한 나는 그날 밤. 어떤 이들을 내 병실에 초대했다.

-드르륵.

고요한 병실의 문이 열리고, 절그럭절그럭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중세 유럽풍 갑옷의 착용자들.

그들은 절도 있는 자세와 자로 잰듯한 정확한 각을 유지하며 내 앞에 두 줄로 도열하고 그제야 자신들의 투구를 벗어 손에 들었다.

맨 앞에 선 남자는 당연히, 이들을 이끄는 전사장 마르쿠스.

그리고 맨 뒷자리에서도 얼굴을 빼꼼 내밀어 나를 바라보는 이는 금발의 성전사, 메리였다.

“생명의 은인을 위해, 기도를!”

““기도를!””

이곳은 병원이라 솔직히 조금 조용히 해줬으면 한다만···.

마르쿠스는 꼭 필요한 의식이라며 우렁찬 목소리로 성전사들의 의식적인 일들 차례로 진행했다.

한 사람씩, 차례로 내게 다가와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하는 그 모습은, 참으로 경건해 보이기는 했다만···.

무신론자인 나로서는 참, 일을 번잡하게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이윽고 마르쿠스를 시작으로 계속 이어지던 성전사들의 의식이 끝이 보이는지, 맨 뒤에 있던 메리가 내 앞에 섰다.

“성전사 메리입니다···. 은인께는 정말, 보답할 길이 없는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역시 메리라 그런지 다른 사람들보다 짧게 감사 인사를 끝내려나 했는데, 그녀는 내 앞에 선 그대로 자신의 긴 금발을 배배 꼬며 뭔가를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저기···.”

얼른 끝내줬으면 하는 내가 말문을 열려 하자, 메리는 얼굴을 상기시키며 고개를 푹 숙이고는 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지, 지난번에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그런 무례를 범한 저를, 그 지옥에서 꺼내주셔서···. 목숨을 걸고 지켜주셔서···. 정말,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리 말하며 끝내 눈도 마주치지 않고 뒷자리로 호다닥 도망치듯 걸음을 옮기는 메리.

그녀는 덩치 큰 다른 선임 성전사의 등 뒤에서 고개만 빼꼼 내밀어 내 눈치를 살피듯 이쪽을 쳐다보았다.

지난번의 무례라···.

혹시 공항에서 ‘네크로필리아’라며 나를 매도했던 것을 아직도 신경 쓰는 것일까.

뭐, 그게 어찌 되었건 간에 드디어 마르쿠스가 말했던 번거로운 의식이 끝이 났다는 사실에 나는 마음이 놓였다.

“크흠, 그럼 혹시, 이제 제 용건에 대해서 말을 해도 되겠습니까.”

“아! 얼마든지. 자네에겐 귀찮은 일이었을 텐데 끝까지 어울려줘서 고마웠네. 그래 이제 말해보게, 성전사들만 따로 불러서 하고 싶다던 이야기가 대체 뭔가?”

“풀어서 말하자니 이야기가 조금 길어지겠지만, 우선 핵심만 요약하자면 이겁니다.”

검지를 치켜드는 나.

그곳에 성전사들의 이목이 쏠렸다.

“계시를 받았습니다.”

의문으로 물들어 있던 성전사들의 얼굴에는 삽시간에 경악이 들어찼다.

당연하지만, 계시를 받는 것은 기본적으로 ‘성녀’의, 그리고 때때로는 ‘교황’이 행할 수 있는 권능이자 기적이다.

그런 기적을 뜬금없이 한국의 누군지 모를 헌터인 내가 받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당연히 신성 바티칸의 성전사라면 응당, 분노하거나 진위여부를 철두철미하게 조사하려 들겠지.

허나, 내 눈앞에 있는 이 스무 명의 반응은 퍽 달랐다.

“그렇군···. 그래. 주께서는 자네에게 어떤 길을 보여주셨나?”

우선 전사장 마르쿠스부터, 내 말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열아홉의 성전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젠 나를 전적으로 신뢰해주는 거겠지.

만약 이번 ‘거대 게이트’ 사건이 있기 전, 이런 말을 했다면 망치를 들고 덤벼들었을 수도 있을 정도의 충격적인 발언이었는데도 말이다.

“바로 믿어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이에 나 역시 자그마한 미소를 지으며 감사를 표했고 천천히 지난 시간 동안 고민과 고심을 거듭해, 나오게 된 결론을 입에 담았다.

“그 계시의 내용은 두 번째 성녀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두, 두 번째···.”

“...성녀님이라고?!”

물론 내가 그 존재에게 받은 메시지에 이런 내용은 존재하지 않았다.

허나, 앞으로 휴거교에서 일으킬 ‘천사의 강림’과 ‘피의 타락’을 막거나, 하다못해 ‘혈천사’를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바티칸의 도움이 절실해진다.

누가 뭐래도 ‘불사왕’과 ‘휴거교’의 천적은 신성 바티칸의 성전사들이니까.

나는 그럴 바에 차라리, 훗날 성녀가 될 그 소녀의 소재지를 이들에게 알리는 것으로 바티칸의 붕괴를 막자고 정한 것이다.

“예. 긴 잠에서 깨어난 제 앞에는 아주 아름답게 조각된 신비로운 메시지가 있었고, 성경의 한 구절처럼 보이는 그것을 보며···. 저는 그게 계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그냥은 믿을 수 없을 것이다.

허나, 믿지 않을 수도 없다.

왜나하면, ‘성녀의 후계자’를 찾고 있다는 것 자체가 현재 신성 바티칸에서 대외적으로 알리지 않은 기밀 사항인데, 침대에 누워있기만 했던 내가 그걸 어찌 알았겠는가.

뭐하러 뜬금없이 두 번재 성녀라는 말을 하겠느냐는 말이다.

아마 꿈속의 그 존재는 내가 이 ‘계시’를 통해 무너지는 바티칸의 미래를 바꾸길 바라는 듯했다. 내가 직접 말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내게 중요한 것은 바티칸이 아니었다.

“그···. 그게 어디인가?”

잠시 갈등과 의심과 고민을 거듭하던 전사장은 끝내, 나를 믿기로 한 모양이었다.

어차피 그 ‘계시’를 이용하기로 한 것, 제대로 활용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다소 떨떠름하긴 했다만, 그간 아무리 하려고 해도 직접 말로 할 수는 없던 이야기를 천천히 꺼냈다.

“그렇지 않아도 이렇게, 종이에 적어두었습니다. 다만···. 이 계시를 그냥 드리는 대신, 한가지 이상한 조건을 걸어도 되겠습니까···?”

“이상한 조건···?”

“하아, 예. 제가 지금 생각해도 정말 이상한 조건이긴 합니다만···.”

지난 ‘거대 게이트’ 내부에서, 감금되어 있던 막내 성전사 메리를 업어 은거지로 데리고 오던 중, 우연히 어떤 특별한 메시지를 보게 되었다.

<신성한 피에 청명옥(靑明玉)이 반응합니다.>

엑스트라 퀘스트 - <수신의 길>

*진행도가 상승합니다.

*진행도 (042/500)

내가 업고 있던 메리의 옷에 흥건히 묻어 있던 그녀의 피가, 정말 우연히 내 전투복 안주머니에 들어있던 청명옥에 닿은 것이다.

그 순간, 그간 잊고 있었다고 봐도 무방한 엑스트라 퀘스트, ‘수신의 길’의 진행도가 상승했다.

그간 깨작깨작 남궁연의 피를 먹여 키우던 것과는 달리 퍽, 상당한 양이 말이다.

결과, 현재 내 눈앞에 나타나 있는 진행도는 어마어마했다.

*진행도 (081/500)

남궁연의 수혈팩을 통째로 먹여도 ‘50’이 상승하지 않던 진행도가 단번에 ‘80’을 넘겼다.

이 덕분에 나는 한가지의 가설을 떠올리게 되었다.

똑같이 ‘신성’을 가진 두 사람이라도, 그 신성을 갈고 닦은 사람의 피가 이 퀘스트에 더 좋은 효율을 보이는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물론, 가설일 뿐이기에 이런 조건을 걸면서까지 강행할 마음은 없었다···.

다만, 꿈에서 보았던 그 물빛 머리카락의 소녀, ‘수신’이 실존한다는 걸 나는 직접 보았고, 소녀는 내 목숨을 직접 구해주었다.

그러니 이젠, 민망이고 뭐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괜찮습니다. 갑자기 교황님을 배반하라거나, 신성을 모독하라는 기이한 요구가 아니라면 저희 성전사들은 그대를 따를 것입니다!”

가만히 내 반응을 살피던 전사장 마르쿠스 뒤에서 머리를 짧게 자른 또 다른 여 성전사가 목소리를 냈다.

그 덕분일까. 지금껏 가만히 있던 성전사들이 자신의 흉갑 플레이트를 툭툭, 치며 그녀의 말에 동조한다는 의미를 내보였다.

“후우. 그래, 내 생각도 이들과 다르지 않으니 말해보게 대체 무슨 조건이기에 그러는가.”

“하아···. 혹시, 헌혈을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곳에 계신 스무 분 전원 말입니다.”

당연하지만, 눈앞에 있던 성전사들의 반응은 참 묘했다.

이곳은 국내에서도 가히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병원 그런 곳에서 현혈을 해달라니,

심지어 혈액형이 맞거나, 마나 속성이 닮은 대상도 아니고 무작정 이곳의 스무 명 전원에게 그런 부탁을 한 것이다.

‘대체 왜?’

그런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제는 바로 지금부터인데···.

바로 이번 ‘거대 게이트’에서도 이쪽과 적대적이었던 ‘휴거교’가 바로 피를 숭배하는 집단 아니던가.

정말 이상한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

그것도 앞으로, ‘혈천사’를 쓰러뜨리기 위해 꼭 필요한 이 성전사들에게 말이다.

“호, 혹시 우리의 은인님은···. 연금술에 조예가 있으신 거 아닙니까? 그 왜, 성녀님의 성혈이 그 자체로 하이 포션으로 쓰였다는 일화도 있고 말입니다.”

어색한 침묵으로 가득했던 병실에, 조금 전에도 가장 먼저 목소리를 높여주었던 그 여 성전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조금씩 고개를 끄덕이는 성전사들.

그런 거라면, 기분은 썩 나쁘더라도 매몰차게 거절할 정도는 아니라는 분위기였다.

“흠. 알겠다. 본래라면 그 기묘한 조건에 대해 상세한 정보를 요구했겠지만···. 자네는 무려 ‘계시’를 받은 자 아닌가. 자네같이 신실한 자가 이단 행위를 할 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네.”

끝내 고개를 끄덕이며 스무 명 전원의 헌혈을 약조해주는 전사장 마르쿠스.

허나, 다시 말하지만 나는 신실한자가 아니다.

심지어 지금 하려는 행위도, 성전사들의 피를 이용해 다른 신적 존재를 회복시키려는 거니, 명백한 이단 행위이기도 했고···.

나는 조건 없는 신뢰를 보여주는 마르쿠스가 내민 손을 다소 떨떠름한 마음으로 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잠시, 이젠 형식적인 것들을 내려놓고 성전사들과의 대화를 이어가던 중, 나는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르는 의문을 자연스럽게 마르쿠스에게 물었다.

“그런데 전사장님···?”

“뭐 또 궁금한 것이라도 있는가?”

“예. 이번 계시를 겪으며 떠올리게 된 의문인데 말이죠. 신적인 존재는 어째서 저희 같은 헌터들을 강제로 레벨업 시켜서 게이트 같은 재앙을 몰아내려 하지 않는 걸까요.”

사실상 내 죽음을 막을 정도의 힘이다.

실제로 신성 바티칸의 사람들에게는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권능을 부여하기도 하고 말이다.

그럼, 차라리 모든 헌터들의 레벨을 강제로 끌어올려 다신 재앙이 이 땅을 넘보지 못하도록 깡그리 몰아내면 그만 아니겠는가.

허나, 전사장 마르쿠스는 내가 퍽 재미있는 말을 한다는 듯 잠시 웃더니 나긋나긋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주께서 우리에게 권능을 내려주시는 과정은, 겉으로는 단순해 보일지 몰라도 절대 단순하지가 않다네.”

성전사의 신성력, 그 알고리즘에 관한 이야기라니···. 이건 전생에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이야기였기에 나는 귀를 곤두세웠다.

“주께서는 우리의 믿음, 선행, 강한 의지를 가져가심으로써 비로소 우리에게 빛을 내려주실 ‘대가’를 충족하신다네···.”

마르쿠스의 긴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신적인 존재라 할지라도, 이 땅에 기적을 내리기에는 큰 리스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 리스크를 줄이는 역할을 하는 것이 신자의 ‘믿음’ 혹은 ‘제물’이라는 것이다.

“...그럼, 혹시 그런 것이 없이 기적을 일으키면···?”

“우리는 그걸 신위를 태워 기적을 행하셨다고 표현하지. 자세한 이야기는 ‘성녀’님만이 아시겠지만, 그런 일을 행하면 몇 달, 몇 년은 가볍게 넘기는 긴 잠에 빠지게 되신다고 알고 있네.”

신위를 불태운다는 표현, 무리한 기적을 행하면 잠에 빠져든다는 말.

나는 그제야 내 어깨에 기대어 계속 잠을 자고 있던 그 물빛 머리카락의 소녀, 수신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 신적인 존재는 필시, 나를 위해 기적을 행하다 긴 잠에 빠져든 것이 분명했다.

‘그 존재’는 수신을 벗이라 불렀다.

이는 즉, 내가 그 존재와 대화를 했듯, 언젠가 나도 이 엑스트라 퀘스트를 달성해나가다 보면 그 수신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날이 온다는 것은 아닐까.

성전사들의 생명의 은인이 나였던 것처럼,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날이 오면 나도 내 목숨을 구해준 그 작은 신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건네고 싶다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

-끼익,

흰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온수로 샤워를 마친 막내 성전사, 메리는 눈에 띄게 흰 피부를 잘 닦고, 성요한 성당에서 내어준 자신의 개인실로 향했다.

전사장 마르쿠스가 이건우에게서 두 번째 성녀에 대한 힌트를 접한 후, 긴 고민에 빠져든 것은 금일로 엿새째에 이르렀다.

휴거교라는 사이비 집단의 맹공을 받고, 잠시 전열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며 돌연 한국에서의 ‘정화’ 작업을 멈추었던 성전사들.

허나, 비교적 피해를 받지 않은 ‘흑색 마탑’이 계속해서 활약을 이어가고 있음에도 이렇게 계속 멈춰서 있는 것은 메리가 아는 성전사의 모습이 아니었다.

‘하지만···.’

두 번째 성녀님에 대한 ‘계시’는 전사장인 마르쿠스에게도 홀로 짊어지기에는 너무도 큰 사안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성전사들에게 핵폭탄과도 같은 문제를 던져준 이건우는 홀연히 부대로 복귀해버렸다.

그는 대한민국의 7번째 S급 헌터이자, 무려 데스나이트 슬레이어라 불리기에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다.

엿새가 지났으나, 지금도 세상은 이건우의 6연속 레벨업이라는 신비에 대해 주목하고 있으며, 이건우라는 개인을 향하는 러브콜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그 정도라면 그냥, 자기가 원하는 삶을 원하는 데로 살 수 있을 텐데도···.’

이건우는 마땅히 끝맺어야 할 의무라며 군으로 돌아갔다.

‘이상한 사람···.’

메리는 홀로 그런 생각을 하며 고요한 기도의 시간을 가졌다.

성기사가 활동을 중단했던 지난 엿새.

메리는 20인의 성전사가 다 함께 성요한 성당으로 돌아오기 직전인, 바로 엊그제까지 매일 같이 이건우의 병문안을 갔다.

지금도 떠올리는 것만으로 얼굴이 화끈거리는 민망한 기억···.

17년생의 처음으로 자신은 생생한 죽음의 공포에 눈물을 흘렸고, 넓은 등을 가진 그 남자는 메리가 얼굴을 파묻고 엉엉 소리 내 울었음에도 뭐라 한마디의 훈계도 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한 모습은 충분히 성전사로서의 자격을 의심받아 마땅한 모습이었는데도 말이다···.

오히려 그는 메리를 걱정해주었다.

-밥은 먹었니?

-그 후로 몸 상태는 괜찮니?

-한국의 겨울은 추우니까, 잘 때도 따듯하게 옷 잘 챙겨입고.

이건우는 언제나 다정다감한 목소리로 메리를 챙겨주었다.

이는 엄격한 규율과 엄중한 잣대로 서로를 대하는 성전사들에게서는 결코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메리는 그 따스함이 좋았다.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은 가슴께가 평온해지고 미소가 절로 나오는 시간들이었다.

다만, 하루가 멀다 하고 날마다 거칠어지는 심장 소리는 메리에게 있어 아주 낯선 현상이었다.

‘부정맥인가···?’

이내, 메리는 기도를 마치고 일어나 푹신한 매트리스에 몸을 맡겼다.

부대로 복귀해 멀어진 이건우.

누구보다 숭고함에도, 항상 자신을 무신론자라 말하던 그와 그 재미난 만담을 나누지 못하게 된 것은 참으로 아쉬운 일이었다.

다만 메리는 누가 뭐래도 한 명의 어엿한 성전사.

이런 일로 감정이 요동쳐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내려가는 입꼬리를 바로잡고, 슬슬 잠을 청하려 하던 바로 그때 누군가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똑똑

“메리 자매님···. 성전사 마르쿠스님께서 찾으십니다.”

그렇지 않아도 잠이 오지 않았던 메리이기에, 그녀는 바로 몸을 일으켜 평소 성전사들이 모이는 회의실로 향했다.

드디어 무슨 결론이 난 것일까.

회의실에는 메리와 전사장 마르쿠스 외에도 여타 열여덟 명의 성전사가 모두 모여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전사장?”

짧은 의문을 표하며 정중한 인사를 건네는 메리.

허나, 그런 그녀를 향해 입을 연 마르쿠스의 발언은 메리가 예상했던 종류의 것과는 이다지도 달랐다.

“메리···.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너는 잠시 한국군에 입대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입대?

메리는 갑자기 들려온 완전히 엉뚱한 소리에··· 혀를 씹고 말았다.

“..녜?”

스파이 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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