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37화
의사들은 금방 도착했다.
흰 가운을 입은 사람만 열댓 명이 넘었고, 그 가운데 선 사람은 다름 아닌···. 이 시대 최고의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 닥터 곽재신이었다.
“자네, 정신이 좀 드나?”
그는 주저 없이 내게 다가와 라이트를 켜고 내 눈에 비추었다.
이미 일어나 앉아있는데, 의식이 제대로 있는지를 어째서 확인하는 걸까.
뭐, 아무튼 나는 산소마스크를 툭 치는 것으로 의사를 표현했고 닥터 곽재신은 손수 내 산소마스크를 벗겨주었다.
“몸은 움직일 수 있겠어? 숨은, 쉬는 데 문제는 없나. 배는 고픈가? 자 여길 좀 보게, 내 손가락이 몇 개로 보이지?”
단번에 너무 많은 것들을 질문하는 곽재신.
신의라 불리는 그가, 이 정도로 당황하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그만큼 내가 살아난 것이 신기한 걸까.
솔직히 꿈에서 들은 이야기가 정확하다면, 일흔두 조각으로 육체가 갈라질 상태였다던데, 그런 인간이 3일 만에 깨어났으니···. 나라도 신기하게 바라보기는 했을 것 같다.
“크흠, 예. 잘 보입니다. 손가락 세 개요.”
“버, 벌써 말도 할 수 있나? 이건 정말 신비로운 일이로군···. 바티칸 놈들의 추잡한 신성력에 이 정도의 힘이 있던가···.”
“학술 자료에는 한 번도 등재된 적이 없던 내용입니다. 원장님.”
“마나 관련 논문 쪽도 뒤져보겠습니다.”
“신성력도 마나도 아니었던, 그 신비로운 에너지의 정체를 밝힐 수만 있다면···.”
내 반응 하나하나에 입과 눈을 떡 벌리며 자기들끼리 논의를 시작해버리는 의사들.
어째, 환자라기보다는 살아있는 학술자료가 된 느낌이라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던 신성력도 아니고 마나도 아니라는 그 에너지는 왜인지, 꿈에서 보았던 물빛 머리칼을 가진 소녀를 떠올리게 하는 말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안정을 취하라며 의사들이 물러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침은 금세 밝아왔다.
“거, 건우야!!”
가능한 최대한의 속도로 달려온 것인지.
이 겨울에 땀까지 흘려가며 내 병실에 처음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내가 속한 소대의 소대장, 남궁연 소위였다.
“아, 소대장님 안녕하···.”
와락-!
들어오자마자, 내 인사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대로 달려와 내 머리를 끌어안는 남궁연···.
너무도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 모르던 그때.
“으, 으윽!”
그녀가 날 껴안는 힘이 강해지자 머리 전체가 깨질 듯이 아파와 나는 짧은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아! 미, 미안해! 어, 어떻게 하지 건우야···. 정말 미안해. 미안해! 의사 선생님을 부, 불러올게!”
그러자 눈에 띄게 당황해서는 금세 눈동자에 눈물이 고인 얼굴로 울먹거리는 남궁연.
나는 병실 밖으로 뛰어나가려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말했다.
“괜찮습니다. 신체적 접촉은 좀 힘들지만, 그냥 대화라면 나눌 수 있습니다.”
“아···. 으, 응. 미안해···. 정말 미안해···.”
다소 격하고 과한 반응을 보이던 그녀는 내 말에 멈춰서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더니, 갑작스레 사과를 이어가다 결국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흐윽··· 흑···.”
갑자기 껴안은 것도 놀랐지만, 이렇게 울 줄 더 몰랐던 나는 그저 멍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고 때마침 누군가 내 병실 문을 열었다.
-드르륵.
허나, 반갑게 인사를 건네기 위해 손을 들었다가 그대로 남궁연을 발견하고 굳어버리는 남자.
“오, 오우···. 이, 이거 내가 들어가도···. 되는 상황인 건가?”
“들어오세요. 전사장 마르쿠스.”
제발,
나도 영문도 모르고 눈물을 울음을 터트려버린 남궁연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단 말이다···.
***
한바탕 눈물을 흘린 남궁연이 진정할 때쯤.
나는 전사장 마르쿠스에게 그녀가 이토록 격한 반응을 보이게 된 이유에 대해 듣게 되었다.
아무래도 ‘데스나이트’ 케일른과의 전투가 한창이던 그 와중에도, 나를 구조하기 위해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인 사람은 다름 아닌 남궁연이었던 모양이었다.
다만, 가장 먼저 다가온 만큼, 그녀는 완전히 심장이 멈춰버린 상태의 나를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이기도 했단다.
그녀는 데스나이트와 성전사 그리고 두 대대장과 흑마도들까지 합류한 전투가 한창인 그 와중에도···.
오직 나를 살리겠다는 일념 하나로 전장에 뛰어들어, 치유의 기적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였던 나를 서둘러 게이트 밖으로 이송해주었다고 한다.
“연인을 살리기 위해 전장에 뛰어든 군인, 진실한 사랑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을 거다.”
“사, 사, 사랑이라니 그, 그런 게··· 아, 아닌···데에에.”
감동했다는 듯, 큰 십자가가 바느질된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는 시늉을 하는 마르쿠스.
이에 남궁연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나에게서 고개를 휙 돌리며 무언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크흠,
또다시 어색해져 가던 공기에 나는 헛기침을 하며 분위기를 환기했고, 그 후의 일을 물었다.
먼저, 데스나이트 ‘케일른’이 죽으면서 다행히 거대 게이트 안팎으로 클리어 메시지가 출력되었다고 한다.
외부로 나온 뒤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내가 예견했던 대로 ‘거대 게이트’는 내부만이 아니라 외부로도 수천의 몬스터들을 쏟아내고 있었다고 한다.
그 범주와 넓이가 너무나 큰 탓에, 만일 여단급 병력이 내부로 들어갔거나, 이초희나 최중철 같은 최상급 전투원이 없었더라면 결국 민간인들의 피해가 발생할 상황이었다고 마르쿠스는 말했다.
“다만···. 참으로 이상한 점이 한가지 있었다.”
“...이상한 점이요?”
“그래, 보스 몬스터는 사냥했을지라도, 우리 스무명의 성전사들은 계속해서 게이트에 있을 것으로 추측되던 이단자들을 찾아 내부를 헤맸다.”
허나,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없었고 무엇보다···.
“정말 돌연히, 우리 성전사들을 죽이지 않고 굳이 고문하며 뽑아냈다는 그 ‘신성력’이 게이트 내부에서 사라졌다네. 그것도 서서히 흩어지는 감각이 아니라, 일순간에 모든 구역에서···. 사라졌지.”
돌연, 성전사들의 신성력을 끌어모아 가둬두었던 ‘산양의 사체’가 사라졌다.
그리고 동시에 게이트 내부, 지하 어딘가에서 느껴지던 소름 끼치는 저주들 역시 함께 사라졌다.
“나의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아무래도 그 이단자 중에는 ‘광역 텔레포트’ 스킬을 가진 존재가 있는 것 같네.”
전사장 마르쿠스의 추측은 옳았다.
휴거교에는 실제로 제사 도구인 오르골을 통해 사물과 생물을 이동시킬 수 있는 ‘주교’가 있다.
‘목사’나 ‘장로’급을 넘어, 실제 흡혈귀의 권능을 가진 존재, ‘주교’가 말이다.
휴거교가 때 묻지 않은 신성력을 모은다.
이는 전생에도 한 번, 일어났던 사건이었기에 나도 이런 일이 언젠가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고 있긴 했다.
다만, 전생에는 지금으로부터 몇 년이나 더 시간이 흐른 시점에 일어난 일이었기에, 솔직히 벌써 그 미친 짓을 시도할 줄은 몰랐다.
‘천사의 강림’과 ‘피의 타락’.
그 검은 날개를 가진 ‘휴거교의 혈천사’는 지금의 내게도···. 떠올리는 것만으로 소름이 끼치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휴거교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는 잘 알았다. 다만 그 검은 날개의 혈천사는···. 전생에 이미 공략해본 적이 있지···. 그게 필요하겠군.’
앞으로의 행동방침이 정해졌다.
비록 휴거교가 행하려는 짓은 정말 무서운 일이지만, 중요한 것은 전생의 겪은 ‘희생의 전투’를 통해 나는 그것을 효과적으로 막을 방법을 알고 있다는 점이다.
문제는 없다.
내가 지금보다 더 기민하게 움직이면 그만일 뿐.
“아, 그러고 보니 자네···. 보상은 습득했는가?”
한참 생각에 빠져 있던 내게, 전사장 마르쿠스는 어두워진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듯 그런 말을 꺼냈다.
그러고 보니, 갑자기 이런저런 일이 연속으로 터지느라 잊고 있었다.
그 질과 양이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를 어마어마한 보상 메시지를 말이다.
“클리어 메시지와 함께 보스 공략 기여도가 공개되었었다네. 자네는 물론이고 여기 소위 역시 정신이 없어서 보지 못했겠지만, 그 결과에는 정말···. 믿을 수 없는 수치가 적혀 있었지.”
“기여도···. 대체, 어느 정도길래 그러십니까.”
“하하핫. 듣고 놀라지나 말게. 2등인 이서영 대령은 9%, 3등인 내가 5%에 불과했다네. 나머지 인원들을 전부 합쳐도, 자네를 넘길 수는 없었지.”
“그 말은···.”
“자네의 보스 공략 기여도는 1등으로, 무려······. 78%였다네.”
78%,
단순히 보는 것만으로도 제정신이 나갔다고 볼 수 있는 수치.
그런데 그걸 나는 레벨 9의 상태로 40레벨 이상의 보스와 겨루며 이루어낸 것이다.
시스템이 상정한 한계를 초월하면 더 많은 보상을 주는 특성상···.
이번 보상은 정말로 많이 기대할 만할 듯했다.
그래···.
무려 한번 죽었다가 살아나면서까지 달성해낸 기여도 아니던가.
<적정 보상 집계가 완료되었습니다.>
나는 드디어, 다시금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를 향해 손가락을 움직였다.
과연, 어떤 보상이 있을까.
말 그대로 군침을 삼킨 나는 그대로 메시지를 터치했고···.
-띵!
경쾌한 소리와 함께 눈앞에 출력되는 메시지는···!
무려 나의 시야를 모두 가리고도 더 남을 만큼의 길이를 자랑하고 있었으며,
“헐···.”
너무도 경이로운 보상에 나는 입이 다물 수가 없었다.
<보상>
ㅡㅡㅡㅡㅡㅡㅡㅡ
*각성자, ‘이건우’는 시스템의 알고리즘을 완전히 벗어난 성과를 이루어냈습니다.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증명에 감사를 드리는바, 「추가 스킬 선택권」이 수여됩니다.
*각성자, 이건우(Lv. 9)와 보스 몬스터 ‘데스나이트 케일른(Lv. 43)’의 레벨 격차가 너무 심해 경험치 보상이 대폭 증가합니다.
*있을 수 없는 성과, 계산식을 초월한 결과, 세계를 경악게 할 업적에 모든 보상 경험치가 두 배로 증가합니다.
*말도 안 되는 업적에 시스템은 49시간의 회의 결과, 각성자, ‘이건우’에게 ‘「스킬 단계 상승권」x2’를 지급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
그걸 보고 가장 처음으로 들었던 생각은, 아, ‘케일른의 현재 레벨은 43이었나’ 하는 것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세계에서 레벨은 상승하면 상승할수록 그다음 레벨업까지 요구하는 경험치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특히, 헌터들의 성장이 정체되는 구간은 앞자리 수가 바뀌는 레벨로, 10레벨, 20레벨 단위로 다음 레벨에 도달하기 위한 요구 경험치는 정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그 때문에 헌터 병사시절 11레벨도 아니고 12레벨을 달성한 남준서 병장이 괴물이라 불렸던 것이다.
그런데,
내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는 이상해도 너무 이상했다.
현재의 내 레벨은 9.
당연히 드디어 두 자릿수에 도달하게 되리란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후에는 솔직히 3레벨? 아니 넉넉잡아도 4레벨쯤 더 상승하게 되려나 생각했는데···.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레벨이 상승합니다.>
<레벨이 상승합니다.>
<레벨이 상승합니다.>
<레벨이 상승합니다.>
<레벨이 상승합니다.>
<레벨이 상승합니다.>
내 시야를 아예 가득 채워 바로 앞에 있던 전사장 마르쿠스와 남궁연 소위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치솟아 오르는 메시지.
그건, 내가 충분히 가능하리라 예견했던 4레벨업도, 넉넉잡아 예상했던 5레벨업도 아니었다.
무려 여섯 번의 레벨업···.
지금껏 여러 히든 피스를 깡그리 모아 거머쥔 레벨업이 ‘한 자릿수에서’의 ‘8레벨’ 업이었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이게 얼마나 정신이 나간 보상인지는 사고를 거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엇···!”
“자, 자네?!”
잠시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멍한 얼굴을 하고 있다 보니, 눈앞의 두 사람이 당황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짧은 의문과 함께 슬쩍 고개를 돌리니, 내가 누워있는 침대 주위를 가득 채우고도 넘쳐 이 병실 곳곳을 자유전자처럼 떠돌아다니는 고순도의 마력 광채들.
이내 그것들은 사방으로 흩어지고 병실 벽에 튕겨 날아다니길 반복하다, 무언가에 이끌리는 것처럼 내 몸으로 빨려 들어왔다.
나는 정신이 아득해지다 못해, 잠깐이지만 그 꿈속에서 느꼈던 평안한 감각을 맛볼 수 있었다.
흡사 천국을 방문한 감각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러한 형언할 수 없는 감각이 내 전신을 휘감았고 눈앞의 두 사람은 경악하는 얼굴로 그런 나를 가만히 쳐다만 보고 있었다.
그렇게,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또다시 눈앞에 나타나는 메시지의 헤일을 마주하게 되었다.
<압도적인 격의 상승으로 각성자, 이건우의 패시브 스킬 단계가 모두 격상됩니다!>
[패시브 스킬]-‘전기 내성’ 「중」 ▶ 「최상」
[패시브 스킬]-‘발화 내성’ 「하」 ▶ 「중」
[패시브 스킬]-‘마나 효율 향상’ 「하」 ▶ 「중」
지난 전투에서 가히 내 목숨을 구해주었다고 여겨도 좋을 법한 패시브 스킬의 단계가 모두 격상했으며···.
내 능력의 모든 근간이자 근원인 생체전기량과 제어력 역시, 전생에는 ‘열흘 동안 이어진’ 빌런 연합과의 전쟁을 끝냈을 때와 비견되는 미친 상승량을 보여주었다.
[생체전기량]: 10200Wh ▶ 17800Wh
[제어력]: 305Wh ▶ 455Wh
이제 막, 1만 와트시를 넘겼던 ‘생체전기량’은 곧바로 2만 와트시를 바라보는 지경에 이르렀고,
‘제어력’은 단번에 근 반년간 아득바득 상승시킨 모든 양의 절반분이 하루아침에 상승했다.
허나, 그럼에도 아직 더 놀라운 사실은···. 이번 사건을 통해 얻을 보상이 아직도 남았다는 사실이었다.
「추가 스킬 선택권」
「스킬 단계 상승권」 x2
“헐······.”
이번에는 정말 헉, 소리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 비록 생이 그리 길지는 않다만···. 레벨업 이팩트가 5분 넘게 반짝이는 모습은 정말 생전 처음 보는군. 대, 대체 얼마나 많은 레벨이 오른 겐가. 마, 말 좀 해주게.”
“거, 거, 거거. 건우야···? 괘, 괜찮아?”
눈앞의 두 사람은 이제 아예 눈알이 튀어나올 법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고···.
나는 우선, 눈앞에 있는 이들을 더 내버려 둘 수는 없었기에, 쿵쿵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고 입을 열었다.
“저······. 15레벨이 되었습니다.”
정적.
두 사람은 무슨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가만히 굳어 버렸는데···. 마치 눈을 뜬 그대로 기절한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 자릿수에서의 6레벨업도 아니고 10레벨대에서의 5연속 레벨업이다···.
이 정도로 상식을 초월한 미친 레벨의 상승은···. 전생에도 정말, 대전쟁이 일어난 그 혼돈의 시기가 아니면 불가능했을 정도로 정신이 나간 사건이었단 말이다.
두 사람은 그대로 돌처럼 굳어 버렸고, 몇분 뒤 내 병실을 방문한 부협회장 이초희와 여단장 최중철에 의해, 이 사실은 전국 방방곡곡으로 대서특필 되었다.
부정맥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