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33화 (33/175)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33화

“쳇.”

혀를 차며 이서영은 긴 검을 차분히 검집에 넣고 그녀가 압도적인 기세와 함께 다시 검을 빼 들자,

눈앞의 목이 날아간 이건우 인형의 몸은 물론, 성당 구석구석 어둠 속에 숨어 있던 다른 인형까지 일순간에 반으로 갈라버렸다.

허공에 나풀거리는 아름다운 개나리 빛 오러.

메리에겐 생전 본적이 없던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검술이었다.

“넋 놓고 있을 시간 없어!”

멈춰선 그녀를 꾸짖는 이서영의 목소리.

그렇게 두 사람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성당을 빠져나가 그 옆 건물로 들어갔다.

그곳에 들어가자 양초 하나를 켜놓고 바닥에 지도를 펼쳐둔 채 대화를 주고받고 있는 두 군인이 보였다.

“남부는 모조리 뒤져봤지만, 전과 같은 지하감옥은 어디에도 없었네.”

“오셨군요!”

세 사람의 등장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인사를 건네오는 사람은, 다름 아닌 S급 헌터가 될 자질을 가졌다는 군인, 이건우 본인과 김용운 중령이었다.

메리는 본능적으로 떠오르는 ‘누군가의 등에 눈물을 흘리며 울음을 터트렸던’ 기억에 주춤했지만, 이건우의 반응은 단도직입적이었다.

“메리,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네···?”

당연히, 당황하는 메리와는 달리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하는 이건우.

건우는 그렇게 앞으로 행해야 할 일을 지체없이 설명해주었다.

***

메리가 정신을 차린 건 정말 큰 낭보였다.

나의 ‘위기 감지’로 휴거교도의 시선을 피하고, 이서영이 보이는 모든 것을 도륙 내는 방식으로 ‘암살’을 거듭하며 전진한 우리 탐색팀은 무려 1시간 만에 구청에서부터 성요한 성당까지의 길을 횡단했다.

그러나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성요한 성당 내부에는 그 어떠한 생존자도 없었다.

다행히 ‘탐색’을 위해 생체전기를 넓게 퍼트리자 나는 본래라면 존재할 수 없는 지하 제단 따위를 찾아냈고, 그 안에서 온갖 주술적 고문을 받으며 ‘신성력’을 빼앗기고 있던 메리를 발견했던 것이다.

그 직후, 우리 탐색팀은 이 같은 대 성전사 전용 감옥이 여럿 존재하리라는 추측을 할 수 있었다.

메리가 제정신을 차리고 신성력을 다루게 되기까지 우리는 이 주변 일대를 샅샅이 탐색했다.

결과, 딱 한 명의 성전사를 더 찾아냈다.

메리의 말에 의하면 그의 이름은 마이블. 직접적 전투보다는 후방 지원에 특화된 성전사라고 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메리. 다른 성전사들을 찾기 위해서는 직접 스스로 몸을 지킬 능력을 갖춘 당신의 힘이 필요합니다.”

나는 지도에 이런저런 표식을 남기며 평소보다 독기가 빠진 눈빛의 메리에게 그렇게 말했다.

당연히 아직 이 상황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메리는 당황했지만, 나는 시간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며 그녀가 서둘러 움직여주길 권했다.

왜냐하면, 성전사들은 서로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건, 서로를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 능력을 제대로 활용할 수만 있다면, 지금까지 주술적인 방해로 찾지 못한 지하감옥을 찾아내, 갇힌 성전사들을 모두 구할 수 있게 된다.

“자, 잠시만요···. 그러니까 당신들은 지금, 이 일대의 주위의 몬스터도, 사교도도 차례차례 제거하지 않고 무작정 여기까지 오셨다는 건가요···?”

그때 믿을 수 없는 사실에 관해 묻는 것처럼 질문을 던져오는 메리.

그녀는 이제야 뭔가를 이해했다는 표정이었고, 나는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목격자를 모조리 제거했으니, 괜찮습니다. 현재도 광범위한 탐색 능력을 갖춘 인형사만 제외하면, 저희의 위치를 정확히 아는 존재는 없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메리는 뭔가 할 말은 많아 보였지만, 어디서부터 따지고 들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머릴 부여잡았다.

난 그녀가 좋지 못한 일을 많이도 겪었다는 것을 짐작하기에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주려고 했지만,

현재 상황에서 가장 숨 가쁘게 움직이던 철혈검희 이서영은 답답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그 말도 안 되고 심하게 무모한 작전 덕분에 네가 미치기 전에 널 구한 거다. 여단급 병력을 이끌고 왔다고 해서, 이런 미친 작전이 가능할 것 같아?”

만일 이서영의 말대로 우리가 7여단 전체 병력을 총동원했다면, 거꾸로 이 거대 게이트 내부에 퍼져 있는 수천의 몬스터와 수백의 휴거교도가 내뿜는 온갖 저주로 인해 헤아릴 수 없는 사상자가 발생했을 것이다.

‘휴거교’는 ‘흑색 마탑’의 마법사들과 비슷하게 미리 결계와 주술을 준비해두었을 때가 말도 안 되게 강해지는 법이니까.

그랬기에 나는 소수 정예로, 그것도 우리가 들어왔다는 것조차 티가 나지 않을 만큼의 소수 공략대를 택한 것이었다.

“알았으면 애처럼 당황하고만 있지 말고 성전사답게 굴어라.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마땅히 수행해.”

매섭게 메리를 노려보며 압박하는 이서영.

허나, 그녀가 이 3시간 동안 이뤄낸 성과와 노력을 생각하면 역정을 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짐짓 억울하다는 듯, 슬프다는 듯 자신을 무서운 눈초리로 노려보는 이서영을 마주 보는 메리였지만, 그녀는 이내 마음을 다잡은 듯 양손을 모아, 기도 자세를 취했다.

이내, 순식간에 메리의 신체에서부터 황색의 빛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역시 어린 나이임에도 전사장 마르쿠스와 호각에 달하는 신성력을 가졌다 일컬어지던 메리다운 모습이었다.

다만 이처럼 대놓고 신성력을 집중시키면, 자연스레 이 일대의 휴거교도, 몬스터, 심지어는 ‘타락의 성물’을 가진 빌런, 인형사에게 위치가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약 1분, 갑작스레 눈을 부릅뜬 메리가 바닥에 고정해둔 지도를 바라보자, 지도의 곳곳에 새하얀 불이 붙더니 정확히 일곱 장소에 작은 십자가의 표식이 생겨났다.

“후우우···. 미약하지만, 신성력이 느껴지는 곳들입니다···. 됐습니까?!”

그간 두 대대장과 내가 아무리 돌아다녀도 찾을 수 없던 비밀의 장소들.

이를 단번에 알아낸 메리는 보란 듯이 이서영을 노려보며 그리 말했고, 이서영은 그 특유의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이에 답했다.

“그래, 애썼다. 성전사.”

그런데 직후, 메리를 바라보며 검을 뽑아드는 이서영.

이에 놀란 메리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으나, 이서영의 기다란 검날이 향하는 곳은 메리가 아닌 그녀 뒤편의 허공이었다.

-스삭!

분명 허공을 베어냈음에도 들려오는 소음은 둔중했다.

털썩,

마치 어둠이 갈라져 형체를 갖춘 것처럼, 줄지어 바닥에 쓰러지는 인형들.

그것들은 이곳에 모여있던 우리를 대놓고 비웃는 것처럼, 나와 김용운 중령, 이서영 대령 그리고 남궁연의 외향을 취하고 있었다.

“후우···. 진짜 베는 맛 더럽네.”

그것들을 일격에 제압한 이서영마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나 그런 모습들을 느긋하게 감상하고 있기에는 이제 시간이 부족한 듯했다.

-크라라라락!

-츄르르르륵!

-키아아악!

각양각색의 외침 소리가 각기 다른 방향에서 울려 퍼졌다.

정확히 이곳을 향해 사방에서 달려오는 몬스터의 병단.

그곳에는 어디선가 많이도 보았던 블랙 고블린 병단에서부터, 휴거교와 맞닥뜨릴 때 가장 흔하게 마주하게 되는 거대 곤충형 몬스터들, 이윽고 지금껏 본적이 없는 거대한 날개의 까마귀, 몬스터 레이븐마저 보였다.

심지어 그중에는 붉은 로브의 인간들도 끼어 있었고, 그들은 최소 ‘전도사’급 이상의 휴거교도가 분명해 보였다.

동원된 수와 종류만 헤아려봐도 휴거교가 얼마나 진지하게 이번 ‘거대 게이트’ 사태를 성공시키려 했는지, 그 의지를 엿보일 수준이었다.

“그래서, 우리 1대대의 작전참모 상병. 이제 작전은 뭐지?”

허나, 이 같은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대대장 김용운은 얼굴에 웃음기를 잃지 않고 내게 그런 질문을 건네왔다.

아무리 이런 상황이 되어도, 김용운은 빠져나갈 자신이 있기 때문일까.

아니, 오롯이 나를 똑바로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그저 자신만의 생존이 확보되었다는 사실에 안주하는 이기적인 머저리들과는 달랐다.

그는 믿는 것이다.

이런 상황조차 파훼해 보이겠다고 했던 나의 터무니 없는 말을 말이다.

나는 김용운 중령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고, 양손에 힘을 최대한 끌어모으며 말했다.

“대대장님, 2대대장님. 그리고 소대장님···. 작전은 C플랜으로 가겠습니다.”

C플랜?

메리는 당장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다른 세 사람의 얼굴에는 그늘이 졌다.

“아니, 건우야. 아무리 그래도 그 계획은···.”

“감당할 수 있겠나.”

“이건우 상병. 나와 역할을 바꿔도 된다네.”

내 결정에 적잖게 놀란 것인지, 세 사람은 근심과 걱정을 표하며 내게 그런 말들을 해주었지만, 나는 생체전기를 끌어모았던 양 손을 쭉 펼치며 답했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팟.

아주 작은 소음과 함께 주변을 사방의 지형을 쭉 훑으며 퍼져나가는 고압 전류.

심장이 요동치고, ‘오브’가 불타오르며 전신의 전기를 뜨겁게 담금질한다.

허나, 평소와 같이 울부짖지 않는 전류.

그저 조용히,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얇고 넓게 펼쳐진 전류는 나를 기준으로 거대한 원 형태의 ‘전격 지대’를 형성했다.

-크라락!

-츄르릌!

이내 정문과 후문 이윽고 창문마저 분쇄하며 수백의 몬스터가 일순간에 밀어닥치는 바로 그 순간,

“헙!”

나의 짧은 기합 소리와 함께 형성된 ‘전격 지대’는 시퍼런 광채로 가득 채워졌다.

요동치는 전류는 모든 것을 태워버릴 것처럼 뒤흔들렸지만, 갑작스러운 공습에 각자 병장기를 뽑아 들었던 동료들은 목도한다.

아찔한 수준으로 정확히 동료들만을 제외하고 이 ‘전격 지대’의 모든 것들을 감전시키고 불태워가는 나의 시퍼런 뇌광을 말이다.

이는 지난번 또다시 이룩해낸 3연속 레벨업과 최근에도 꾸준히 이어온 ‘오버클럭’ 수련의 결과물이었다.

이제 나의 생체전기량은 무려 ‘10200Wh’에 달했다.

또한, 그 압도적인 고압 전류를 나의 마음대로 흐름을 유도할 제어력마저 ‘300Wh’를 넘겼다.

이러한 성장을 통해 새롭게 내 스킬창에 생겨난 이 ‘전격 지대’라는 스킬은···.

지금껏, 그저 순수한 나의 컨트롤만으로 이루어낸 생체전기의 ‘응용’과는 차원이 다른 위력을 자랑했다.

왜냐하면 이 ‘스킬’은 내가 일정수준 성장함에 따라 자연스레 생겨나는 더없이 명확한 액티브 스킬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의 힘을 보여줄 줄은 몰랐다는 듯 눈과 입을 떡하고 벌린 채 나를 바라보는 네 사람.

나는 병단급의 몬스터들이 일순간에 말소시키자, 밖에 있는 휴거교의 ‘전도사’들이 주춤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으나, 시간이 정지한 것만 같은 그 풍경 속, 홀로 움직이던 나는 방금 하던 말을 이어서 입에 담았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저는 저런 오합지졸들에게 지지 않을 만큼, 강해졌으니까요.”

그러니 작전은 사전에 이야기해뒀던 대로 C플랜으로 하겠습니다.

내가 그리 말하며 대화를 끝맺음 짓자 이번에는 두 대대장마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이어서 바닥에 고정해뒀던 지도를 집어 김용운에게 전달해준 나는···.

“그럼, 무운을···.”

-쨍그랑!

그리 말하며 깨진 2층 창문을 향해 몸을 내던졌다.

그리고 몇초 지나지 않아 들려오는 반대편 창문이 부서지는 소음.

그렇게, 나와 나를 제외한 다른 군인들은···. 정반대의 방향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

프랑스 소속의 자율 용병이자, 불사왕 프리드리히 파울라스에게 거둬진 남자, ‘케일른’은 참으로 갑작스럽게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올리며 눈앞의 한 남자에게 말했다.

“이봐, 휴거교의 목사여, 아무래도 내 짐작이 맞아떨어진 것 같은데?”

인형 같은 움직임으로 상체를 들어 올려 일어서는 케일른.

그리고 그런 그를 마주 보고 있던 ‘검은 십자가’가 그려진 휴거교의 신도복을 입고 있던 목사는 천천히 피처럼 붉은 안광을 빛내며 천천히 입을 움직였다.

“둘로 갈라진 양 떼. 허나, 타락의 성물을 지닌 그대의 역할은 변함이 없나니···.”

“아니, 저 번개쥐새끼는 내가 쫓는다. 설마 성전사들을 그렇게 찢어놨는데도 감당 못 하겠다느니, 그런 헛소리는 안 하겠지?”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주교께서 내려주신 계시에 없던 일이었을 뿐···.”

“하! 저 번개쥐새끼는 애초에 계시에 안 걸린다며 그래서 이 몸을 불러서 놈을 제거하려던 것 아니었어? 거봐 내가 말한 데로 번개쥐새끼가 들어왔잖아. 그럼 이제 저것만 처리하면 의뢰는 끝. 맞지?”

자신의 머리를 거칠게 쓸어내리며 지긋지긋하다는 듯 목사를 쏘아붙이는 케일른.

하루라도 빨리 자신에게 내려진 지령인 ‘이건우의 척살’을 끝내고 제멋대로 놀고 싶어 하는 얼굴이었다.

허나, 홍색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는 목사의 표정은 차분할 뿐, 감정이 없었다.

“계시 속. 그대는 모든 성전사의 목을 가르고, 살아있었다. 그저 역할을 다하라. 계시를 벗어나서는 생존을 보장할 수 없다.”

“뭐?! 이봐 늙다리 목사여! 그러니까 너는 지금, 내가 저 핏덩이 하나 감당 못 하고 죽을 거다. 뭐 그딴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얼굴에 핏대를 곤두세우고 화를 내는 케일른, 하지만 목사는 오랜 기도문을 외는 듯한 어조로 숨을 쉬듯 답할 뿐이었다.

“...나는 그저 주교님의 계시를 전할 뿐. 아멘.”

“하?!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오네. 아니 최종 목표가 코앞에 있는데, 그놈의 계시, 계시! 미친 새끼들···. 내가 용병의 방식이 뭔지 보여주마. 이 병신들아.”

“선택과 결과는 오롯이 그대의 몫일 뿐.”

“그래 병신들아! 아오 답답한 새끼들.”

지금까진 계속해서 한발 뒤에서, 전투를 서포트할 뿐이었던 이건우가 정면에 나섰다.

언제나 ‘인형’의 시야에서 벗어나는 바람에 지금까진 확신하지 못했을 뿐, 케일른은 이건우가 게이트 내부에 들어왔고, 심지어 이미 몇 시간 전부터는 휴거교 진영 한복판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허나, 지독하리만큼 움직이지 않는 휴거교의 목사.

그의 의사가 변하질 않으니, 휴거교는 계속해서 4박 5일의 전투를 위한 물밑작업을 준비할 뿐이었다.

아니, 성전사를 몰살시키는 것도, 흑마도들을 제압하는 것도, 결국 이건우라는 최종 목표를 잡기 위한 밑 작업이 아니었던가.

대체 왜 그렇게 순서와 법도에 얽매이는 건지, 자율 용병 출신의 케일른에게는 끝까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때문에 케일른은 결국 휴거교에서 마련해준, 역겨운 피냄새로 가득한 은거지를 빠져 나왔다.

지금도 그의 수많은 ‘인형’을 통해 보이는 여러 가지 풍경.

이건우는 동쪽으로 달려 야산에 도달했고, 다른 군인들은 수많은 몬스터를 그야말로 괴멸시키고 나아가며, 이곳저곳에 숨겨둔 성전사들을 구해내기 시작했다.

“뭐야. 플랜이니 뭐니 떠들더니, 고작 양동작전이었어?”

그것도 케일른에게 있어, 최종 목표씩이나 되시는 분이 미끼 역할을 하고?

조소가 케일른의 입가에서 떠나질 않았다.

결국, 저 어린 핏덩이 하나만 잡으면 다 끝날 일을 어째서 빙빙 돌아가냐는 말이다.

눈을 감은 케일른,

그가 지휘자처럼 허공에서 손을 흔들자, 야산의 나무 위, 흙 아래에 몸을 숨기고 있던 수십의 ‘인형’들이 일제히 이건우를 향해 달려들었고,

-펑!

-퍼퍼벙!

-쿠과과광!

꽤 멀찍이 떨어져 있을 케일른 본인에게까지 열풍이 밀어닥칠 정도로 큰 폭발이 연쇄적으로 터져 나왔다.

고블린, 엔트, 레이븐.

고작 하급의 몬스터를 몇백 마리 쓸어버린 것이 뭐 어땠냐는 말이다.

최대 5km 밖에서도 자신의 인형을 조종할 수 있는 케일른에게는 조금 전 일어난, 한 구역을 쓸어버리는 스킬는 따위 아무 의미도 가지지 못했다.

“이렇게 손쉬운 것을···.”

케일른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또다시 인형의 눈을 통해 방금 폭발이 있었던 지역을 확인했다.

천천히 흩날리는 바람에 흙먼지가 걷혔지만, 놀랍게도 이건우의 시체는 보이질 않았다.

휘유~

휘파람을 불며 미소를 짓는 케일른.

“내가 술래잡기 좋아하는 건 또 어떻게 알고, 흐흐흐! 하하하! 하하하하핫!”

그는 극도의 공포를 품고 도주하는 상대를 천천히 압박하며 죽이는 것을 가장 즐기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이러한 이건우의 작은 반항은 도리어 그의 변태적인 쾌락을 충족시켜줄 뿐이었고,

케일른은 침을 질질 흘릴 만큼 웃어대며 서둘러 수백이 넘는 ‘인형’들의 눈으로 이건우를 추적했다.

“...찾았다. 흐하하핳!”

-쿠과과광!

-퍼엉!

한 번은 꽤 멀리, 두 번은 교묘하게 지형을 이용해 숨고, 다시 도망치길 반복하는 이건우.

하지만, 폭발이 세 번, 네 번 반복되자. 이건우는 끝내 폭염에 휘말려, 몇 걸음 도망가지도 못하는 너덜너덜한 상태가 되고 말았다.

새카맣게 그을린 피부와 넝마가 되어버린 그의 강화전투복.

-털씩.

이윽고, 그는 얼마 안 가 야산 중턱에 엎어지고 말았다.

“이봐, 이봐, 이봐! 어린 S급 나으리, 술래잡기는 벌써 끝난 거냐고! 흐흐, 하하하! 하하하핫!”

그리고 이건우가 엎어진 그곳으로 여유롭게 다가가는 케일른.

그는 더는 못 참겠다는 듯이 자신의 이마를 손으로 짚으며 계속해서 웃음을 터트렸고, 얼굴을 땅에 박고 쓰러진 이건우는 대답이 없었다.

“뭐야. 정말로 끝이야? 정말로? 하아, 오래간만에 튼튼한 놈이라 재미있었는데···. 아쉽네.”

-슥!

케일른은 등에 메고 있던 자신의 무장.

장창을 뽑아 들고는 아쉽다는 듯 말했다.

“원래는 포션을 먹여서라도 강제로 더 놀았겠지만···. 이번에는 일이니까 말이다. 고생했다, 잘 가라 번개쥐.”

정말로 아쉽다는 듯, 한숨을 픽 내쉬는 케일른 이윽고 그가 기다란 장창을 파죽지세로 내리꽂자.

창은···. 정확히 쓰러진 이건우의 왼쪽 가슴을 관통했다.

“이렇게 쉬운 일을···. 쯧쯧. 하여간 종교쟁이 새끼들은 안 된다니까. 하아.”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자신의 창을 회수하려던 그때···!

기이하게도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장창은 무수히 많은 자색의 나비로 변해 사방에 흩어졌다.

그리고 어찌 된 영문인지, 다시 등에 꽂혀 있는 케일른의 창.

“어? 이게 왜···.”

그렇게 케일른의 입에서 얼빵한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바로 그 순간,

“넌···. 끝까지 본체를 드러내지 않는 걸로 정말 유명했지.”

수백 마리의 나비가 날갯짓한다.

은은한 자색 빛이 주변을 에워싸고 완전히 관통되어 바람구멍마저 생겼던 가슴팍의 상처는 덧없는 꿈처럼, 없었던 것이 되었다.

이윽고 몸을 일으킨다.

천천히 등을 돌려 케일른과 마주하는 이건우의 푸른 눈동자.

“네놈을 기다리고 있었다. 인형술사 케일른···.”

번갯불이 튀긴다.

무미건조한 바람이 뺨을 스치고

누가 먼저라 할 것이 내뻗은 두 병장기가 교차할 때,

시퍼런 마력의 폭풍은 그 두 사람을 휘감았다.

세상에 핏빛을 아로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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