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32화
“너무 위험한 것 아닙니까?”
‘대피 진지’로 정해진, 분당구청 내부에서 파란색 로브를 뒤집어쓴 ‘흑색 마탑’의 수석 장학생은 유능한 조교수, 다비드 호베흐를 향해 그런 질문을 던졌다.
“뭐가 말이냐.”
“방금까지, 저기 있던 네 사람 말입니다. 솔직히 거대 게이트를 열 명이 들어온 것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걸 또 나눠서 가겠다니, 새로운 인류의 등불은 자기 목숨이 열 개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 확실히 과감한 판단이었지.”
다비드 호베흐는 아직도 신음소리를 내며 앓아누워있는 성전사들을 잠시 쏘아보다가 그런 말을 했다.
그러자 또 다른 장학생인 여 소환사는 자신의 푸른 로브를 벗어 접으며 입을 열었다.
“얼굴도 잘생겼고, 언데드 차별 주의자가 아니라는 부분도 호감이었는데···. 조교수, 저런 사람은 보통 일찍 죽습니다. 저희가 저 사람을 위해 몇 달이나 더 이 나라에 머무는 게 정말 올바른 판단입니까?”
조금은 항의를 하는 기색으로 여 소환사는 말했고, 그에 동의하듯 처음으로 입을 열었던 장학생도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이를 가만히 듣고만 있던 다비드 호베흐는 갑자기 한숨을 픽 내쉬며 두 사람이 예상치 못한 말을 꺼냈다.
“아니, 헌터 이건우의 판단은 다소 과감했을 뿐 결코, 바보 같은 결정이 아니다.”
갑작스레 조교수가 이건우의 편을 들자, 두 장학생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들어오기 전에, 너희도 듣지 않았느냐. 현재 휴거교의 목적은 헌터 이건우가 아니라 저 성전사들이라는 걸.”
그런데, 성전사들은 다름 아닌 이 분당구청에 모여있다.
“신성을 ‘소멸’ 시킬 정도의 기물을 보유했다는 건, 다시 말해 신성을 ‘추적’할 수단이 있다고 보는 게 옳다. 그렇다면···.”
“이 진지는, 얼마 안 가 노출될 거라는···. 겁니까?”
“그래 그러니 사실, 사지에 뛰어든 그 네 사람보다 현재 더 큰 위기에 직면한 건, 우리일지도 모른다는 거다.”
사실상, 게이트 내부에 위험하지 않은 장소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굳이 이건우가 휴거교와 직접 교전한 경험이 있는 인원 셋을 이곳에 모으고, 그렇지 않은 흑마도 셋에게 이 진지의 방어를 부탁했다는 건···.
휴거교의 변칙적인 이상 행동에 대응책을 강구할 3인과 전투를 맡을 3인을 따로 구분해 두었다고 봐도 무방한 일이었다.
이 말은 즉,
“사실상 이곳에 있다는 사이비 집단의 ‘변수’를 저 셋이 대응한 후, 순수한 힘 대 힘의 전투를 감당할 수 있는 건 이 자리에서 우리 셋뿐이라고 생각해두는 게 좋을 거다.”
다비드의 말이 끝나자. 두 장학생은 맹한 얼굴과 화난 얼굴로 같은 말을 꺼냈다.
“아니, 거대 게이트의 군세를···.”
“...겨우 저희 셋이서 막아내라는 겁니까?”
물론, 이건우의 머릿속에는 신성력을 회복하고 일어난 성전사들 역시 전력으로 취급했을 수도 있다.
허나, 다비드가 계속해서 바라본바, 저들에게는 더 이상의 무언가를 기대하기란 힘들어 보였다.
‘쯧, 중요할 땐 도움도 안 되는 성전사 놈들···.’
다비드는 속으로 혀를 차며 식식거리며 화를 내는 두 장학생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알았으면 움직여, 이건 실습이나 훈련이 아니다. 살고 싶으면···. 그만큼 많은 법진을 준비해둬야겠지.”
촉매와 결계, 마석과 설치형 마법.
다행히도 소환학 조교수 다비드는 수성전에 있어서는 따라올 자가 없는 스페셜리스트였다.
‘검은 소환사’들의 은거지를 지키기 위해 그는 젊은 시절 이다지도 많은 수성전을 겪어 보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프랑스 정부가 언데드 관련 스킬 보유자를 인정해주고 그가 ‘흑색 마탑’에 들어가게 되면서 이젠 아는 사람도 몇 없는 이력이었을 진데···.
그걸 이건우는 마치 알고 있는 것처럼.
다비드에게 이곳의 방어를 부탁했다.
‘설마···. 나도 모르는 프랑스의 정보원이···?’
작은 의심은 피어올랐지만, 다비드는 금새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게 얼마나 오래된 일인데, 그냥 우연이겠지.’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다비드. 아무래도 게이트 내부의 흉흉한 공기 때문에 자신의 신경이 다소 날카로워졌던 것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하.”
겨울의 한기에 다비드의 숨에 흰색을 칠해 넣었다.
“생각보다, 사람을 거칠게 굴리는 S급이 나타났군.”
다비드는 눈두덩이에 가득 찬 다크서클을 괜히 주무르며, 어차피 곧 밀어닥칠 재앙에 대비하기 위해 준비를 서둘렀다.
***
고요한 성당, 하나의 기둥을 둘러싼 아홉 명의 남녀가 무릎을 꿇고 양손을 맞잡고 매우 진중한 어조로 기도문을 읽던 중이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요!”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터져 나온 목소리는 다름 아닌 긴 금발의 어린 성전사, 메리의 것이었다.
“진정하세요. 자매님.”
“메리···! 어서 기도문을 외거라! 아홉 명이 이루어낸 조화가 깨졌다간, 신성한 벽이 무너질 게야!”
함께 기도문을 외던 성전사 중, 두 사람이 경악한 얼굴로 소리쳤다.
허나, 그럼에도 다시 본래 자리에 앉지 않는 메리.
선임 사제들의 말을 무시하고 일어선 메리는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 규모의 결계를 계속 유지하는 건, 길어봤자 이제 20시간도 남지 않았잖아요···.”
그건, 성요한 성당 내부에 있던 모든 이들이 알고는 있었지만, 차마 말로 꺼내지는 못했던 불편한 진실이었다.
거대한 폭발과 함께 성요한 성당 십자가가 날아갔다.
그 직후, 아홉 명의 성전사들은 5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만에 성당 중심에 모여, 거대한 결계를 펼쳤다.
그리고 그것이 이미, 12시간 전의 일.
-크어어어억!
-캬아아아아아악!
심지어 메리라는 한 사람의 공백이 생겨나자, 곧바로 끔찍한 몬스터들의 외침은 삽시간에 결계를 뚫고 들어왔다.
기도문을 공동으로 영창하는 성전사의 기적은 수백, 수천을 뛰어넘는 몬스터로부터 성당을 가히 완벽하게 지켜낼 정도로 대단한 힘을 자랑했으나,
이 같은 ‘절대 방어’의 결계는 본디 장기간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기도문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기도문을 바꿔 성능과 효율성을 조절하기에는, 도리어 외부와 완벽하게 차단이 된 탓에 성당 내부의 성전사들은 밖에 있는 몬스터의 종류조차 파악할 수 없었다.
적당히 힘을 조절하려다 결계가 파괴되기라도 한다면, 이곳에 모인 아홉 성전사는 몰라도, 총 마흔 명이 넘는 비각성자 사제들은 필시 몰살을 당할 것이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 속에서 성전사들이 택한 것은 믿음이었다.
“메리 부제, 믿음을 가지세요. 전사장님과 외부로 향했던 우리의 형제자매들이 온다면···. 우리 스물한 명의 성전사가 모이면···. 악을 깨끗이 정화할 수 있을 겁니다.”
그놈의 믿음, 믿음!
메리는 탄식이 턱밑까지 차오르는 것을 느꼈으나, 자신도 명색이 성전사의 일원이었기에···. 가까스로 그 말을 삼켜냈다.
“하지만, 사제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이대로 신성력을 결계에 모두 쏟아냈는데도 형제님들이 돌아오지 못하면···. 저희는 무력하게 죽을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최소한 싸울 힘이 있을 때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메리의 이러한 주장은 잠도 못 자고, 물도 마시지 못하는 상태로 12시간을 버티고 있던, 이 성전사들의 마음을 흔들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허나,
“뭉칠수록 강해지는 것이 성전사의 섭리. 메리 부제의 말이 아무리 옳다 하더라도, 그러면 최소한 여섯 명과 세 명으로 성전사를 다시금 나눠야 합니다. 이 이상 우리가 흩어지면···. 지금보다 사태가 더 악화될 수 있음을 왜 모르는 겁니까.”
선임 사제의 말은 백번 옳았다.
돌파구를 찾기 위해 변화를 준다는 건, 그만큼의 리스크 역시 짊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으니까.
그렇지만, 메리 역시 이번만큼은 물러설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이젠 20시간조차 남지 않은 단순한 시간 벌이에 신성력을 낭비할 수는 없어요.”
하물며 그녀는 대체 언제부터 일지도 모르는 사이, 머리가 깨져버릴 것만 같은 두통을 느끼고 있었다.
감이 좋은 메리에게 있어, 이 같은 두통은 보통 뭔가 일이 매우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의미할 때가 많았다.
“메리 부제···!”
잔뜩 표정을 일그러뜨리는 선임 사제.
허나, 메리는 그런 선임 사제는 쳐다도 보지 않고 갑자기, 소스라치게 놀라며 주변을 미친 듯이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거대한 크기의 결계를 유지하는데 신경을 기울이느라,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소름 끼치는 기운이 느껴진 것이다.
메리가 성당 중심의 조형물에 묘한 기시감을 가지고 손을 가져간 바로 그 순간···.
그녀는 어떠한 의문에 사로잡혔다.
‘근데, 나는 언제부터 갑주도 입지 않고 이러고 있었던 거지···?’
순간, 섬뜩할 정도로 차가운 소름이 그녀의 등줄기를 쓱 훑고 지나갔고···.
이내 그녀가 눈을 감았다 뜨자. 성요한 성당인 줄로만 알았던 그 일대의 풍경은 격변했다.
닳고 닳아 무너질 것만 같은 폐가,
그 천장을 거의 가득 채울 것처럼 끝없이 매달려 있는 뒤집힌 십자가.
심지어 방금까지 그녀가 자신의 신성력을 들이붓고 있던 ‘성당의 기둥’이 있던 자리에는···.
그 기둥은 온데간데없고 배가 수직으로 갈라져 뼈와 내장을 그대로 들어낸 거대한 숫양의 사체가 떡하니 놓여 있었다.
“욱, 우욱···!”
그 부정한 감각을 피부로 느끼던 메리는 그만 속에 있던 것을 그대로 게워내고 말았다.
사방이, 지독한 악취로 가득한 이 공간은 어디인가.
메리가 아무리 열일곱에 불과한 나이일지라도, 그녀는 악신을 숭배하는 이단과 이미 몇 번이고 전투를 치러본 성전사였다.
허나, 그럼에도 이런 곳은 처음이었다.
밑도 끝도 없이 땅 밑으로 가라앉은 것처럼, 헤아릴 수 없는 양의 저주와 인지 왜곡, 환상, 최면, 주술 따위가 진득하게 얽히고설켜 있다.
지금까지 만나본 악신 숭배자들과도 감히 비교할 수 없는 끔찍한 역겨움.
당장이라도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아니, 차라리 정신줄을 그냥 스스로 놓고 싶을 정도로 그곳의 환경은 신성력을 인지하는 이에게 최악의 컨디션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어딜 어떻게 보아도 이건, 오직 성전사를 가두고 고문하기 위한 장소였다.
거기까지 생각이 도달한 메리는 점점 더 흐릿해져 가는 의식 속에서도 팔다리가 오들오들 떨려올 만큼의 공포가 느껴졌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과 이대로 정신을 잃었다간, 다시 정신을 차리게 되는 것은 대체 얼마나 시간이 흐른 뒤일까.
그 후 자신은 어떻게 되는 건가···.
너무나도 막연하고 막대한 공포, 점차 눈시울에 차오르는 눈물.
메리는 차라리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고만 싶다는 충동에까지 사로잡혔다.
“흐윽···.”
그렇게 어렵사리 숨을 쉬며 점차 무력하게 바닥에 쓰러져가던 바로 그때,
-달그락, 끼이익!
어떠한 소리와 함께 그녀가 갇혀있던 쇠창살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전신을 덜덜 떨면서도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자, 그곳에는 언젠가 본 적이 있는 한 군인···.
이건우가 서 있었다.
‘이곳에 당신이 어떻게···!’
순간적으로 극심한 편두통을 느끼면서도 메리는 이건우의 등장에 경악하며 의문부터 꺼내 들었다.
“쉿.”
허나, 입을 떡하고 벌리려는 메리에게 검지를 입술에 가져가며 조용히 할 것을 권하는 이건우.
심지어 이어지는 그의 말은 이 극한의 상황 속에서 메리가 그 어떤 때보다 듣고 싶던 말이었다.
“안심하세요. 도와주러 왔습니다.”
메리는 그 순간, 자신을 끝없이 괴롭히던 두통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
끈질긴 두통은 사라졌지만, 지독한 어지럼증에 시달리던 메리.
꿈처럼 파편화되어 단편적으로만 떠오르는 기억 속에서, 메리는 군복 차림의 누군가의 등에 얼굴을 묻고 쉼 없이 훌쩍거리며 끝내 울음을 터트렸었다.
그러다 또다시 정신을 잃고, 그녀가 눈을 떴을 때, 메리의 앞에는 순한 인상의 한 여군 한 명이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 깨어났니?”
자신의 무사에 밝은 미소를 보이며 수통을 내미는 여자.
메리는 그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자신을 구해주고, 업어주었던 그 남자와 같은 형식의 복장을 착용하고 있어, 마음이 놓였다.
“여기느···. 읏.”
반사적으로 무언가를 질문하려 했던 메리지만, 목이 너무나도 메말라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질 않았다.
“아, 우선 물부터 마시렴. 자.”
그러자 단번에 메리의 상황을 눈치채고 수통을 건내주는 여군.
메리는 평소라면 손으로 잡지도 않았을 낡고 흙내 나는 수통을 보며 잠시 주춤했다가 이내 손을 내뻗어 물을 단번에 들이켰다.
꿀꺽꿀꺽.
“컥. 쿨럭! 쿨럭!”
“얘도 참, 천천히 마셔.”
사레들리자 등을 두드려주는 여군.
메리는 그 따스한 배려에 다시금 울컥했지만, 이번에는 눈물을 흘리지 않고 버텨냈다.
열일곱에 불과한 나이에도 이미 수십 번 전장에 서며 메리는 스스로를 충분히 성숙한 성전사라 여겨왔건만···.
도저히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는 끔찍한 광경, 오직 성전사를 고문하기 위해 만들어진 그 제단만큼은 끝까지 메리의 정신을 좀먹고 있었다.
떠올리니, 수통을 쥐고 있던 손이 덜덜 떨려왔다.
“괜찮아. 이제 괜찮아.”
그러자 눈앞의 여군은 메리의 손을 포개어 잡고는 안심하라는 듯 계속해서 그런 말을 해주었다.
그렇게 반 시간이 지난 뒤,
드디어 메리는 자신의 몸에 감돌기 시작한 신성력을 느꼈고, 이를 본능적으로 기초 신성 주문 ‘신체 강화’로 발현해 전신에 퍼트렸다.
그제야 메리는 정말로 자신이 제정신을 되찾았다는 것을 자각할 수 있었다.
“여, 여긴 어디인가요···.”
솔직히, 메리는 이번 사태가 모두 마무리되었고 지금 이곳은 게이트 밖의 안전구역이라는 대답을 듣고 싶었다.
성전사로서 그렇게 나약한 마음을 먹는 건 그 자체로 옳지 못한 일이건만, 메리는 신성력이 돌아왔음에도 계속 ‘그 광경’이 떠올라 어쩔 수가 없었다.
허나, 냉혹한 현실은 메리를 그저 열일곱 살의 여자아이로 놔두지 않겠다는 듯 고해졌다.
“여긴, 거대 게이트의 내부, 성요한 성당의 지하실입니다. 만일의 사태에 민간인 사제들이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둔 벙커와 같은 시설이죠.”
여군, 남궁연은 침착하게 메리가 놀라지 않도록 차근차근 설명을 이어갔다.
거대 게이트 내부를 장악한 휴거교의 시야에서 벗어나기 위해 10인의 공략대가 우선 게이트에 들어왔다.
제멋대로 게이트에 진입한 성전사 열한 명 중에서 열 명은 생존이 확인되었고, 그들은 ‘흑색 마탑’의 유능한 흑마도들의 주술로 모습을 숨겨 간신히 생존 중이며,
따로 떨어져 나온 이곳의 4명은 내부 성전사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성요한 성당까지 왔지만, 이 일대를 뒤져봐도 끝내 찾을 수 있었던 것은 메리뿐이었다는 것이다.
“시, 시간은···.”
“현재 시각은 거대 게이트 출현을 기점으로 15시간이 흐른 상황이야.”
15시간 만에 게이트 내부로 들어와 고립되어 있던 인원을 구조했다.
이는 메리의 상식상, 게이트 출현 직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출동해야만 이루어낼 수 있는 경이로운 성과였다.
“어, 어떻게 15시간 만에···.”
게이트 공략은 일반적으로 땅따먹기와 같다.
게이트의 출입구로부터 안전구역을 넓혀가는 방식으로 차츰차츰 나아가는 것이 세계 공통의 상식.
“후우우···. 정말 감사드립니다. 주께서 도와주셨군요. 게이트 입구와 성요한 성당이 가까웠던 모양이니까요.”
메리는 자신에게 없는 정보를 우선 지레짐작으로 채워 넣은 뒤, 성전사에 어울리는 자세로 감사를 표했다.
허나, 남궁연은 곤란하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어, 음···. 뭐 거리가 4km 정도였으니까? 가깝다고 하면 가깝다고 볼 수 있겠네.”
“예···? 4km요?”
그 정도라면 게이트가 없어도 1시간은 걸어야 하는 거리다.
그런데 그걸 게이트 내부에서, 그것도 고작 몇 시간 만에 주파해냈다고?
무슨, 두 여단급 병력이 통째로 게이트 내부에 들어오기라도 했다는 걸까.
하지만 눈앞의 여군은 스스로 10인의 공략대가 먼저 게이트에 진입했다고 말했다.
상식적인 사고로는 따라갈 수 없는 이야기였다.
혹시 아직도 자신의 정신이 이상한 건가 싶기도 했지만, 정작 이제는 신성력의 흐름을 본능적으로 컨트롤 할 수 있을 만큼 상태는 호전된 상태였다.
“그, 그게 무슨···. 어떻게 4명이 몇 시간 만에 4km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에 메리가 그런 질문을 던지려던 찰나,
-쿵!
성요한 성당 지하 벙커문을 거칠게 발로 차는 듯한 소리가 났다.
“예!”
직후, 바짝 긴장한 얼굴로 일어나 문을 여는 남궁연 소위.
그녀가 문을 열자, 그 앞에는 메리의 턱밑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작은 여자아이가 무식하게 큰 거구의 남자를 들쳐멘 상태로 서 있었다.
“소위, 준비해 이제 여길 뜰 거야.”
“예!”
여자아이, 이서영 대령의 한 마디에 남궁연 소위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주위에 널브러져 있던 비상용 아이템을 주워 담고 순식간에 거대한 배낭을 메고 일어섰고, 메리는 영문도 모른 채 두 군인을 따라 움직였다.
“일어났나?”
바쁘게 발을 움직이면서도 키가 작은 아이는 여유롭게 메리에게 다가와 그리 물었다.
“아, 예···.”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이서영이 입은 군복 가슴팍에 계급장을 알아보는 메리. 그녀는 다소 충격을 받은 얼굴로 철혈검희를 바라보며 그리 답했지만···.
이서영은 냉철한 눈으로 그저 담담하게 말했다.
“몸 상태가 돌아왔다면, 너도 도와라.”
“예? 뭘···?”
“뭐긴 이거 안 보여?”
이서영은 들쳐메고 있던 거구의 남자를 여유롭게 흔들어 보였고, 메리는 그제야 이 ‘대령’이 업고 있는 사람이 자신과 함께 바티칸에서 출정한 성전사, 마이블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설마···. 저희 성전사 일행을 찾으려고···.”
“알았으면 얼른 전투나 준비해. 온다!”
뭐가 온다고?
메리가 그런 의문을 품은 그 순간, 철혈검희 이서영은 메고 있던 ‘마이블’을 메리에게 넘기며 허리춤에 있던 장검을 뽑아 들었다.
-스슥!
스산한 울림은 일순간에 터져 나왔고, 숨 가쁘게 뛰어 올라가던 성요한 성당의 입구 쪽에서 무언가 반으로 갈라져 질퍽한 소음을 내며 쓰러졌다.
이내 메리가 다가가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하니, 그건 다름 아닌 새로운 S급 헌터 이건우였다.
“아, 아니 어떻게 이런···!”
반사적으로 경악하며 놀라는 메리.
허나, 삽시간에 앞으로 튀어나갔던 철혈검희 이서영은 그런 메리를 바라보며 호통을 쳤다.
“멍청아! 그건 그냥 인형이야!”
그리 외치며 메리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돌진하는 이서영.
메리는 그 압도적인 기세에 놀라 눈을 질끈 감았지만,
-서걱.
또다시 섬뜩한 고기 자르는 소리와 함께 쓰러지는 건, 어느새 그녀의 바로 뒤까지 다가왔던 또다른 이건우였다.
아니, 이서영의 날카로운 검광에 목이 떨어졌지만, 기괴하게 관절을 비틀며 계속해서 달려드는 이건우의 몸.
저건 인간이 아니었다.
수백 마리의 나비가 날갯짓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