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30화
만에 하나,
정말 만 번 중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희박한 확률이라도 나는 ‘성전사들과 흑마도’들의 입국 현장에 ‘휴거교’의 테러가 있진 않을까를 걱정했었다.
휴거교 최대의 무기인 ‘저주’.
그 저주를 분석하고, 이해하고, 분해하는 ‘흑마도’와 그저 신성력을 몸에 칭칭 감는 것으로 모든 ‘디버프’를 무시하는 ‘성전사’는 그 존재 자체가 휴거교에게는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는 존재들이니 말이다.
하지만, 참 다행히도 인천공항에 테러범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 말인즉슨, 그들은 이번에도 전생처럼 한결같은 방식으로 꼬리를 잘라, 타국의 원군을 돌려보내고 그 후에야 본격적인 활동을 재개할 작정이라는 소리였다.
‘역시, 다행이군.’
종교라는 형태를 취하고 있어서 그런지, 참으로 일관적이다.
그리고 그러한 지독한 일관성은 되레 나의 마음에 평안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이제 남은 일은 계획을 실행하기만 하면 된다는 소리였으니까.
“흑색 마탑의 마법사들은 신라호텔, 성전사들은 성남에 있는 성요한 성당에 잘 도착했데, 별일 없었데.”
그때, 조수석에 앉아있던 이초희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며 그리 말했다.
“예. 다행입니다.”
“그나저나, 널 돕겠다고 온 사람들을 반대로 네가 걱정해주고 있다니. 메스컴에서 알면 또 기삿거리가 나왔다고 좋아하겠는데? 마음 따듯한 S급 헌터라는 식으로”
“계획에 변수가 생기지는 않는지 재차 확인했을 뿐입니다.”
“그래? 그래도 원래 언론이라는 놈들은 지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거든. 너도 이제부턴 조심해야 할 거야. 하루아침에 인간말종이 될 수도 있어.”
어깨를 으쓱하며 주의를 주는 이초희.
하지만, 그녀의 근심 걱정과 달리 나는 퍽 언론의 무서움을 잘 아는 인간이었다.
전생에 한국 사회가 ‘그 지경’이 된 후로, ‘대항군의 창’이라 불리던 내가 오히려 최악의 테러리스트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적도 많았으니까.
“그래, 그래서 이제 휴가 복귀해야 하는 이건우씨. 슬슬 완성된 계획이라는 걸 들려주겠니? 네가 말했던 데로, 성전사들의 얼굴이랑 흑마도들의 얼굴을 봤으니까. 이젠 뭐가 정해졌을 거 아니니.”
내 눈을 똑바로 응시하는 이초희.
그녀의 시선에는 가벼운 흥미와 은근한 기대감이 대놓고 느껴졌다.
내가 또 어떤 신기한 발상을 했는가, 그게 궁금한 눈치였다.
“우선 저번 기형 게이트에서 생포했던 그 ‘전도사’를 이용할 겁니다.”
“오 그 전도사가 여기서 나오신다.”
경기도 하남에 발생했던 ‘레벨 제한 게이트’. 그곳에서 생포했던 휴거교의 ‘전도사’
이미 한 달 넘게 내버려 두었던 명칭이 튀어나오자 이초희의 눈에는 이채가 감돌았다.
‘전도사’는 현재 협회의 특수 교도소에 갇혀있지만, 협회로 이송되기 전 당연히 7여단의 히든카드나 다름이 없는 작전참모의 ‘거짓 간파’를 이용한 심문을 진행했다.
허나, ‘거짓 간파’를 사용했음에도 군에서는 그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파악할 수가 없었는데···.
그 이유는 간단했다.
마치 콘센트가 뽑힌 청소기처럼, 기형 게이트를 빠져나오는 그 순간부터 ‘전도사’의 정신이 무너져내렸기 때문이었다.
기억도 온전치 못하고, 논리적인 사고가 멈춰버렸다.
사실상 생포에는 성공했지만, 군에 압송된 그것은 이미 ‘휴거교’의 관계자가 아닌 그냥 껍데기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 ‘전도사’를 협회 특수 교도소로 보내 살려둬야 한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했었다.
왜냐하면, 그 껍데기만 남은 ‘전도사’는 처음부터 군을 알맞은 타이밍에 나의 의지대로 움직일 명분을 만들기 위해 생포했던 것이었으니 말이다.
“아예 예상을 못 했던 건 아닌데···. 직접 들으니 조금 놀랍긴 하네. 그러니까 너는 이미 두 달 전부터 이런 상황을 예견하고 있었다, 그런 거니?”
“제가 부협회장님과 같은 차에 탑승해 있을 줄은 몰랐지만 말입니다.”
“허, 참. 너 혹시 미래시라도 쓰니?”
“비슷한 건 할 줄 압니다.”
“진짜?”
“농담입니다.”
내 말에 눈을 크게 떴다가 다시 작아지길 반복하는 이초희.
이렇게까지 솔직한 반응을 보여주니 그간의 계획을 차근차근 이야기하는 나로서도 그녀와의 대화가 즐겁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나는 차근차근 앞으로 일어날 일들과 계획에 대해 언급했다.
솔직히 내 계획이라는 것은, 확실한 근거를 바탕으로 한 논리적 추리의 결과물이라기보다 사실상 미래 예지에 가까웠지만, 이초희는 퍽 진지하게 내 이야기를 끝까지 경청해주었다.
“...그래, 솔직히 지금도 믿기지는 않지만, 그 숨어있던 ‘언론사’들까지 전부 잡아낸 너니까······.”
한숨을 픽 내쉬며, 그녀가 언급하는 것은 ‘언론사’.
나는 지난번 기자회견장에서 다양한 기자들의 반응을 살펴보았었다.
거기에 나 이외에도 남궁연 소위와 협회의 요원들이 모아준 ‘이상행동에 대한 정보’를 토대로 휴거교와 손을 잡고 있을지 모를 언론사를 특정해냈고···.
‘사물의 기억을 읽는’ 헌터 협회 정보국장의 스킬을 이용하자, 실제로 그들이 휴거교와 연관되어 있음을 밝혀냈다.
그 일이 있는 후, 이초희는 내가 무슨 말을 하건 우선 진지한 태도로 들어주게 되었다.
-끼이이익.
약 1시간에 가까운 계획의 공유.
다양한 변수가 발생할 수 있는 장기적 플랜이었기에 나와 부협회장은 퍽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렇게 이야기가 마무리되어갈 때쯤, 도착한 휴가자 복귀 버스가 오는 장소.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어째···. 나만 바빠질 것 같은데, 내 착각이니?”
나는 협회 차량에서 내리며 부협회장에게 인사를 건넸고 그녀는 내 계획에 가장 중요한 부분을 짚으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부대로 복귀한 후로는 자유롭게 활동할 수 없는 군인이고, 그녀는 다수의 인력을 마음껏 부릴 수 있는 부협회장인 것을.
나는 협회의 전용 차량에서 내리며 조수석에 앉아있던 이초희를 바라보았다. 미소와 함께 말했다.
“기분 탓일 겁니다.”
“하아···. 꼭 기억해두렴. 건우야. 부협회장이 이렇게까지 해주는 건···. 모두 널 협회에 넣기 위해서라는 거, 알겠니?”
“예. 꼭 기억해두겠습니다.”
기억은 해둘 것이다.
뭐, 그렇다고 내 결정이 번복되는 일은 없을 테지만 말이다.
그렇게 이초희가 탑승한 협회의 차량은 자리를 떠났고, 내가 몸을 돌리자 이 일대의 모든 이목이 내게 쏠려있는 것이 느껴졌다.
“방금···. 맞지?”
“맞아, 부협회장이었어.”
“배, 백귀야행이, 그러면 정말로···.”
나와 같은 군복차림의 7여단 병사들부터, 길을 지나가던 행인과 남궁연 소위 같은 간부들까지 나를 알아보고 소곤거렸다.
언론에서는 휴거교의 재림이라는 희대의 사건에, 국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거짓말이라느니 협회 측정 기기의 오류라느니 아직도 말이 많았으나···.
결국, 내가 S급 헌터가 될 자질이 있다는 소식은 발표되었고, 저들은 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곤란한 눈치였다.
그래서 나는 그나마 나와 면식이 있는 남궁연 소위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그 후로 휴가는 잘 보내셨습니까. 소대장님.”
“엇?! 어, 어어 그, 그럼 당연하지 건우야. 거, 건우는 그날부터 협회 사옥에 있다가 온 거지···?”
“예, 그렇습니다.”
다행히 지난 기자회견 때까지 나와 함께 있던 남궁연은 다소 어색한 반응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자연스레 나를 자신의 소대원으로 대해주었다.
그래, 나는 이 같은 ‘일상적인’ 모습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S급을 달성할 자질을 가진 헌터라 할지라도, 현재의 이건우는 그저 조금 뛰어난 C급의 헌터 병사일 뿐이다.’
이 같은 인식이 널리 퍼져, 자연스럽게 휴거교의 귀에도 들어갈 수 있도록 말이다.
조바심이 날 것이다.
지난 반년 만에 무려 여덟 번의 레벨업을 달성해낸 내가 또 얼마나 빨리 성장할지 알 수가 없으니까.
그렇기에 놈들은 초조해질 것이다.
당장은 ‘성전사와 흑마도’가 국내에 주둔해 있기에 대대적으로 움직일 수도 없는 실정인데···.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계속해서 게이트 진압 작전에 투입되어 경험치를 쌓아갈 테니까.
그러면 자연스레 놈들은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된다.
‘나’라는 변수를 그냥 내버려 두고서라도, 하루빨리 ‘성전사와 흑마도’들을 피해 숨거나···.
아예, 장기적으로 장해물이 될 ‘성전사와 흑마도’들을···.
제거하거나.
***
휴가 복귀 후 1일 차,
수도방위사령부와 협회 그리고 성전사들이 공동 수사망을 구축했음을 선포한다.
휴가 복귀 후 2일 차,
상병 이건우와 함께 행동하기 위해 신라 호텔에 주둔해 있던 ‘흑색 마탑’은 공식적으로 7여단과 협동할 것을 선언했다.
휴가 복귀 후 3일 차,
부협회장 이초희의 활약으로 그간 두 달 넘게 입을 다물고 있던 휴거교 ‘전도사’의 자백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윽고 4일차 아침,
동이 트는 것과 동시에 서울시 상암동, 여의도, 강북구에 각각 자리를 잡고 있던 ‘언론사’들을 성전사와 협회 그리고 수도방위사령부에서 급습.
단순 창고로 사용 중이라던 지하에서 ‘블랙 홉 고블린’, ‘머맨’, ‘케이브 엔트’의 몬스터 사역장이 발견했다.
참으로 어디선가 많아 보았던 것 같은 몬스터들이었다.
하루에도 수백, 수천 명이 아무렇지 않게 지나다니던 서울시 한복판에 ‘게이트’도 없이 몬스터가 숨어있음이 만천하에 공개된 것이다.
이에 한국 사회는 큰 충격에 휩싸였고, 다양한 기사글이 쏟아져나왔다.
대개 게이트와 헌터가 엮인 일에는 쉽게 목소리를 높이지 않던 정치인들까지 나서서 한국 사회가 지독한 ‘안전 불감증’에 빠져있었음을 부르짖었다.
그렇게 5일 차,
내가 사전에 자료를 넘겨두었던 협회가 탐색, 성전사가 검증, 수도방위사령부의 병력이 쏜살처럼 움직여 관계자들을 검거했다는 소식이 연이어 들렸다.
그렇게 총 이틀 만에 휴거교의 관계자라는 것이 밝혀진 언론사의 수는 무려 여섯 곳.
나는 부대에 가만히 앉아 ‘흑색 마탑’의 사람들과 차를 마시고 있을 뿐이었지만, 내 계획은 알아서 바퀴를 달고 굴러가기 시작한 것이다.
자동사냥이라는 것이 현실에 있다면 바로 이런 걸 말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6일 차, 7일 차가 밝고···.
성전사들을 필두로 한 수도권 정화 작업이 연전연승의 결과를 이룩하던 그때, 사건은 드디어 터지고 말았다.
성전사들이 주요 거점으로 삼고 있던 성요한 성당에 갑작스레 ‘거대 게이트’가 출현이 확인되었다는 것이다.
전생, 이 시점에는 ‘거대 게이트’가 열린 적이 없었다.
더욱이 지금은 관계자라면 다들 알지 않는가.
‘휴거교’의 특수한 주술은 게이트를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결국, 휴거교는 칼을 빼 든 것이다.
그것도 자신들에게 있어 최악의 상성을 가진 ‘성전사’라는 집단을 향하여···!
수도방위사령부의 지원요청은 바로 그날 밤 하달되었다.
***
내가 소속되어 있는 7여단 1대대의 병력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거대 게이트를 눈앞에 둔 ‘지휘소 텐트’에는 네 개나 되는 집단의 대표자들이 모여있었다.
나는 병사인 신분임에도 사건의 주요 관계자인지라 지휘소에 들어올 수 있었는데···.
그 내부 상황은 참으로 가관이었다.
“내부에 진입하는 건 말이 안 됩니다. 지금 나타난 건 거대 게이트입니다. 거대 게이트라고요! 우리는 게이트에서 쏟아져 나올 몬스터 웨이브를 막는 데 집중해야 한단 말입니다!”
지극히 정상적인 정론을 제시하며 아무것도 결정된 사안이 없음에도, 이미 독단으로 많은 병력을 투입해 바리케이드를 설치 중인 ‘수도방위사령부’의 장교.
“지금 무고한 사제들과 숭고한 성전사들을 버리자는 말이오? 성전사들의 앞에서는 그러한 말실수는 삼가는 게 좋을 거요!”
그리고 그 장교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성전사’들의 리더, 전사장.
그는 이미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는 것을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만큼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는 중이었다.
“둘 다, 진정 좀 하시죠? 우선 말이 통해야 대응책을 마련할 것 아닙니까. 한시가 급하다면서.”
그리고 장교와 전사장의 사이에서, 둘을 중재하는 이가 바로 협회의 이초희였다.
마지막으로 흑색 마탑의 조교수 다비드 호베흐는 한발 뒤로 물러나 조용히 입을 닫고 있는 모양새였다.
“냉정할 필요가 있소.”
지휘소에 들어옴과 동시에 입을 뗀 사람은 7여단의 여단장 최중철 소장이었다.
그제야 이쪽으로 모이는 시선들.
어찌나 격하게 다투고 있던 것인지 네 개 집단을 대표하는 이들 모두가 정말로 우리 일행을 눈치채지 못했던 눈치였다.
“충성!”
“오셨군요. 소장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최중철 소장을 보자 각자 의자에서 일어나 인사를 건네오는 이들, 부협회장 이초희도 그렇지만, 7여단의 여단장, ‘흑표’가 직접 움직인다는 건 그만큼 큰 의미를 가진다.
허나, 유일하게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가만히 앉아만 있는 이는, 다름 아닌 전사장이었다.
이를 본 여단장 최중철은 일부러 전사장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성전사들은 뭉쳐 있을수록 강하다고 알고 있소. 이곳에 열둘의 성전사가 있으니, 남은 아홉의 성전사는 내부에 함께 있다는 의미 아니겠소.”
다시 말해 성전사들이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당할 리가 없다고 최중철은 그리 말하는 것이었다.
“또한, 국내에서는 이미 휴거교가 게이트는 물론, 거대 게이트마저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파악한 바 있소. 시기적인 특성을 고려해봤을 때, 이 거대 게이트는 휴거교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지.”
전사장은 그제야 천천히 고개를 돌려 최중철 소장을 쳐다보았다.
“...만일 이 사태가 정말 이단자들로 인해 일어난 사태라면! 자연 현상으로 나타난 게이트 보다 더욱 위험한 것 아니겠소?”
최중철에게 따지듯이 묻는 전사장이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은근히 ‘그렇지 않다’라는 대답을 듣고 싶다는 의중이 엿보였다.
허나, 최중철 소장의 말은 냉정했다.
“그렇소···. 그것도 보통의 게이트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위험할 것이오.”
“...뭣? 지,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요?!”
전사장은 최중철의 말을 듣자마자 곧바로 고함을 내질렀다. 그럼에도 최중철 소장의 표정에는 일절 변화가 없었다.
“정확히는···. 성전사인 그대들에게만 보통보다 위험할 거라는 의미요.”
“우, 우리에게만 위험할 거라니···?”
당연하지만, 성전사들은 여단장의 말을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이번 최중철 소장의 지적은 정확했다.
휴거교는 미련할 정도로 더럽고 추한 집단이지만, 무의미한 행동만큼은 하지 않는 집단이다.
그런 그들이 흑마도도, 협회도, 수도방위사령부도 아니고 굳이 ‘성전사’를 최우선으로 공격했다는 건···.
“그게 무엇이 되었건 휴거교도에게, 그대들 성전사의 힘을 억제할 수단이 마련되어 있다고 봐야 하는 게요.”
정확히 나와 같은 추론을 거쳐 동일한 결론을 입으로 말해주는 최중철 소장.
나는 미래를 알고 있기에 너무나 쉽게 가능한 추론이었지만, 최중철 소장은 현재 눈에 보이는 것들만으로 이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역시 최중철···. 어마어마한 통찰력이다···!’
나조차 순수하게 감탄이 나올 수준이었다.
역시, 그는 폼으로 두 용병대장과 부협회장씩이나 되는 이들에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듣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이 상태에서 성전사인 그대들을 저 게이트에 투입하는 건, 놈들이 깔아놓은 함정에 스스로 들어가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오.”
최중철의 중압감 있는 말들이 이어지자, 전사장은 또다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했다.
하지만 더는 반론을 늘어놓거나 무작정 호통을 내지르지 못했다.
“우선 한시라도 빨리 적합한 인원들을 투입할 수 있도록 회의를 진행하지.”
이초희에게는 없는 카리스마로 지휘소 텐트 내부의 모든 인원을 압도해버린 최중철.
이에 이초희는 진심으로 감탄했다는 듯 다른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을 각도로 최중철에게 엄지를 척 치켜들었고, 최중철은 아주 잠깐 입꼬리를 올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드디어 제대로 된 회의는 진행되었다.
허나, 미치지 않고서야 사전 정보가 아예 없는 거대 게이트에 스스로 들어가겠다 말할 인원은 없기에 회의는 서서히 늘어지기 시작했다.
차라리 이곳으로 총출동한 7여단의 1대대와 2대대의 전 병력을 데리고 가자는 최중철 소장의 의견과,
그럴 바에 본인을 포함해서 각 전투 분야의 최고 권위자들을 모으고 그들을 보좌해줄 병사를 딱 50명 정도만 추려 데려가자는 백귀야행 이초희의 의견.
이렇게 두 의견이 그나마 가능성이 있어 보였으나···.
만에 하나라도 일이 틀어진다면 이건 각 집단을 넘어 대한민국의 치명적 타격이 되기에 누구도 확실한 결정을 내릴 순 없었다.
-쾅!
“에이이! 이러고 있을 시간에 우리 성전사들이 들어갔다면, 내부 시민들을 모두 구해도 열댓 번은 구했겠소!”
누구도 쉽게 들어가겠다 주장하지는 못하지만, 정작 게이트에 들어가선 안 되는 성전사들만은 당장이라도 달려가겠다 말한다.
이같은 아이러니의 상황은 이미 30분이나 지속되고 있다.
이대로 ‘성전사’들이 급발진을 해버린다면 정말로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기에···.
나는 그럴 처지가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각 집단의 우두머리들만 회의를 진행하던 이 지휘소에서 애써 입을 열었다.
“성전사 마르쿠스, 아직 게이트 내부에 있는 성전사들은 무사할 겁니다.”
순간적으로 찾아온 정적, 동시에 지휘소 텐트 내부에 있던 모든 대표자와 간부들의 시선이 내게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단 2초 만에, 전사장은 지금까지 대화 상대의 체급이 체급인지라 참아왔던 격노를 쏟아냈다.
“너희의 사정이 아니라고 함부로 떠들지 마라! 네놈같이 미숙한 것이 끼어들 자리가 아니다!”
그는 지금까지 쌓인 서러움들을 모두 털어내듯, 귀청이 뜯어져 나갈 만큼 큰 목소리로 고함을 내질렀다.
전사장의 뒤에 선 다른 ‘성전사’들 역시 나를 눈빛으로 쏘아 죽이겠다는 것처럼 노려보았고,
수도방위사령부의 모든 장교들 그리고 이번에는 흑색 마탑의 사람들마저 전사장의 말에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허나, 이 자리에서 딱 네 사람만은 내 말이 어떤 의미인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최중철 소장은 말했다.
“아니, 우선 끝까지 들어보지. 이건우 상병. 네 주장에 근거는 뭐지?”
일순간 격노로 채워졌던 지휘소의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한마디. 그의 배려로 나는 마음 편히 말할 기회를 얻었다.
나는 속으로 감사를 표하며 최대한 이성적인 어조로 말문을 열었다.
“우선, 휴거교라는 집단의 생리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나는 지금도 지휘소 밖으로 보이는 거대하고 푸른 일렁거림, 게이트를 흘낏거리며 말했다.
“놈들은 그저 일반적인 게이트 하나를 여는데도, 쉰 명이 넘는 제물을 바쳤었습니다. 또한 게이트를 열기 위해서는 놈들에게 있어서는 꽤 고급 인력으로 통하는 ‘목사급’ 휴거교도가 있어야 하죠.”
그래서?
최중철이 있어 목소리를 높이지는 않았지만, 전사장은 건방지고 무지한 자를 바라보듯 날 노려보며, 그런 질문을 하고 싶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에, 나는 답한다.
이번 게이트는 일반 게이트도 아니고 거대 게이트라고,
당연히 제물의 양은 2배 아니 3배는 넘게 필요할 테고, 놈들의 고급 인력인 ‘목사급’의 휴거교도 역시 목적을 달성한 뒤 생환할 가능성은 매우 낮은 것이다.
최소 150명의 휴거교 신도와 목사 하나.
그걸 모두 바쳐서 얻어간다는 것이 고작 성전사 아홉의 목숨이다?
심지어 그러고도 열두 명이나 되는 성전사가 이 한국 땅에 버젓이 남아 있을 텐데?
“놈들은 수지타산을 확실하게 계산하는 족속입니다. 그러니 놈들이 이렇게까지 큰 사건을 벌인 진짜 목적은···. 이곳에 남아계신 열두명의 성전사들, 바로 여러분을 유인해 단번에 모든 성전사를 한국 땅에서 제거하기 위함일 거라는 겁니다.”
또한, 당장은 어찌 설명할 도리가 없어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나는 이 자리의 그 누구도 모르는 정보를 알고 있다.
그건 바로 프랑스의 ‘흑색 마탑’ 사람들과 함께 국내에 입국한 ‘빌런’의 정체.
그리고 나는 놈이 어떻게 성전사들을 쓰러뜨릴 심산인지 역시 어느 정도는 짐작이 가는 상태였다.
“미친 소리!”
허나, 내가 말을 끝맺자 전사장은 곧바로 이 자리와는 어울리지 않는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네 주장에 근거가 있나? 아무런 근거도 없는 네 추리에 우리 고결한 성전사 아홉의 목숨을 걸라는 게냐! 20대 초반에 C급 헌터에 불과한 너 따위의 추리에?!”
전사장은 탄식을 내뱉듯 그리 외쳤지만, 이미 성전사들을 제외한 모든 집단의 분위기는 변했다.
그들의 편을 들던 수도방위사령부와 흑마도들도 나의 추론에는 고개를 끄덕인 것이었다.
“이건우 상병의 말에는 일리가 있소.”
“이, 일리가 있다니요! 이보시오. 장군! 저자는 S급 헌터가 될 자질을 가졌을 뿐 지금은 그저 초짜 헌터일 뿐이잖소!”
이젠 최중철 소장에게마저 소리를 치는 전사장. 허나, 최중철은 냉철한 대답만을 내놓았다.
“아니, 이건우 상병은 이 자리에서 그 누구보다 휴거교의 섭리를 잘 이해하고 있는 자일세. 이번은 그의 말이 옳다고 보오.”
끝내 최중철이 반대하자, 전사장의 얼굴은 극한의 격노로 물들었다가 이내 갑자기 침착함을 되찾았다.
-턱!
전사장은 중앙 테이블을 주먹으로 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우린···. 우리의 길을 걷겠소. 가자 형제들이여. 형제 자매들이 우릴 기다린다.”
전사장은 정말 돌발적으로 지휘소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를 따르는 성전사들 역시 잠시 주춤하는 듯싶다가도 별다른 말 없이 그를 따랐다.
참, 항상 독선적이고 끝내 자기 생각은 옳으리라 광신하는, 신성 바티칸의 전형적인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나는 광경이었다.
누구도 그 자리에서 그들을 막지 못했다.
정말 돌발적으로 뛰쳐나가 버린 것도 있지만, 솔직히 가족 같은 전우를 지키러 스스로 사지에 발을 들이겠다는데 그걸 어떻게 막겠는가.
“하아···.”
누군가 나를 대신한 것처럼 한숨을 픽 내쉬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극심한 편두통을 앓는 사람처럼 인상을 찌푸린 이초희였다.
“건우의 말이 백 퍼센트 맞아떨어진다고 가정해보면···. 저 고집쟁이들이 떠났으니 우리한테 시간은 더 없어졌네요. 얼른 방침을 정하죠.”
“그래야겠군···.”
착잡하고 허탈해하면서도 또 어떤 점에서는 속이 시원하다는 듯한 얼굴의 최중철과 이초희.
허나, 결국 이 자리에 남은 이들은, 내부에 갇혀있을 ‘성전사’들의 안위보다 분당을 집어삼킨 거대 게이트에서 튀어나올 2차 피해를 막아내는 것을 더 우선 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막혀 있던 회의다.
결국, 누구를 내부에 들여보내야 하는가에 대한 결론은 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약 10분가량 도돌이표처럼 진행되지 않는 광경에,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제게 방법이 있습니다.”
“오?”
“허어···.”
막막하던 찰나에 마침 아이디어를 내는 목소리.
자연스레 다시금 시선은 내게 모였지만, 이것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되는지 나는 주저 없이 말을 이어갈 수 있었다.
작전 중에 그렇게 누워있어도 되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