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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29화 (29/175)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29화

당장 과다출혈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법한 피의 양이었다.

그러나 참으로 신비로운 사실은 가면 갈수록 피는, 피가 아닌 구정물에 가까운 색을 띠고 있었다는 것이었고···.

기이하게도 그러한 더러운 피를 흘리면 흘릴수록 나의 몸은 계속해서 가벼워져 갔다는 점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흐른 것인지,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너무나도 명확하게, 아주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사실은 단 한 가지.

점점 내 손에 쥐어진 마검, ‘이터널 패인’이 가벼워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한 번의 호흡이 전신을 훑고 지나가는 것을 느낀다.

이윽고 눈앞을 스치고 지나가는 놀라운 메시지.

<알림>

ㅡㅡㅡㅡㅡㅡㅡㅡ

*적정 레벨 ‘50’의 아이템, ‘오브’는 사용자의 강한 의지에 반응합니다.

*Lv. 9의 각성자, ‘이건우’의 전신에 오브의 힘이 고루 새겨집니다.

*각성자, ‘이건우’는 시스템이 상정한 한계를 아득히 초월한 ‘오브’ 활성도를 달성해냈습니다. 추가 경험치가 주어집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

심장의 박동은 번갯불을 튀겼고,

흐르는 피는 단전과 만나 불꽃 같은 열기를 가졌다.

균일한 호흡에, 절제된 동작.

간결한 검술에 군더더기 없는 검로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이내, 시간 감각을 망각한 채 오롯이 검을 휘두르던 나는 쓰러졌고, 뒤늦게 내 정신을 각성시킨 건 구역질이 올라올 만큼 심한 악취였다.

“읍?! 우에에엑···.”

문득 느껴지는 구역질에 정신이 든 내가 무언가 거무죽죽한 것들을 또다시 게워내자, 드디어 ‘오브’에 어울리는 육체를 만드는 과정, ‘적응의 시간’이 끝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아아, 하아아, 이건 정말···. 심하군.”

전생에도 한 번 겪어본 일이었기에 너무 놀라지는 않으려 했다만, 사방에 튀긴 구정물의 양은 정말 상상을 초월하게 많았다.

각성한 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이 시기, 내 몸에는 마나의 순환을 방해하는 것들이 이렇게나 많았다는 게 참으로 놀라웠다.

냄새가 좀 고약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젠 단전이 뜨겁지 않았다. 오히려 단전을 중심으로 소용돌이치듯 전신을 타고 흐르는 열기가 따스하게 느껴지는 수준이었다.

그렇게 무사히 적정 레벨이 무려 ‘50’으로 측정돼 있던 ‘오브’를 무사히 몸에 받아들이는 데 성공했다.

이어서 조금 정신을 집중하자 곧바로 떠오르는 메시지 하나. 그 속에는 나를 미소짓게 할 만한 문구가 명확히 적혀 있었다.

<각성자, ‘이건우’는 ‘오브-성혈’을 활성화했습니다.>

[활성도]: 12%

고레벨의 아이템, ‘오브’는 그저 사용한다고 그 용도대로 움직여주는 일반적인 아이템과는 다르다.

‘오브’는 그 고유의 힘이 너무나도 강력하기에, 시스템적으로 사용자에게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그 힘이 제한되는 특징을 가진 아이템이었던 것이다.

전생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오브’를 얻게 된 대항군의 동료가 이 ‘적응의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영구히 활성도가 1%에 머무르게 되었던 경우도 더러 있었다.

“무사히 적응한 것만으로도 기적에 가까운 일인데, 12%라니···!”

현재의 내 레벨이 ‘9’라는 걸 생각했을 때, 그 적응도가 1할을 넘긴 건, 그 자체로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나는 최악의 경우, 적응의 완전 실패로 정말 힘겹게 얻은 이 ‘오브’가 자연 소멸해버리는 것도 염두에 두었었기에, 이 정도의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윽고 천천히 훈련장을 정돈하고 나가려던 찰나, 내 예측을 벗어난 메시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오브-성혈’의 안착으로 각성자, 이건우에게는 새로운 스킬이 생성됩니다.>

- 생성된 스킬은 다음과 같습니다.

[패시브 스킬] - ‘열기 내성’ 「하」

[패시브 스킬] - ‘마나 효율 향상’ 「하」

“허···?”

이번만큼은 멍청한 목소리를 내질 않을 수가 없었다.

예정에 없던 패시브 스킬이 두 개나 더 생겨난 것이다.

“하! 이건 대체···!”

그것도 당장 내게 필요했던 스킬들만 골라서 말이다···.

이건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천운이 아닐 수가 없었다.

단순히 ‘오브’의 활성도를 높이기 위해 행했던 노력이 이런 결과로 이어질 줄이야.

일이 이렇게 되었다는 건···.

난 이번 ‘성전사’와 ‘흑마도’의 방문에, 그 어떤 변수에도 유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음을 의미했다.

그리고 충분한 능력을 갖춘 나는, 생각보다 더 미친 짓을 태연하게 행할 수 있게 된다.

“...이거, 생각보다 일이 더 재미있어지겠군.”

피식,

내 입가에서는 자연스레 비릿한 미소가 흘러나왔다.

***

신성 바티칸의 공식 입장 성명은 다소 빨랐다.

선량한 국가의 존폐를 위협하며 간악한 존재를 ‘주’라 칭하는 사교도의 박멸을 위해 바티칸은 신성한 의무를 다하겠다 말하며 한국의 협조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는 지난번 협회의 기자회견이 있고 정확히 43시간 만에 나온 답변이었다.

다만, 정작 협조 요청의 근원인 신생 S급 헌터 ‘이건우’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질이 없었는데,

아무래도 공식 석상에서 대놓고 프랑스 총리를 존경한다 말했던 것의 영향이리라고 협회의 요원들은 추측했다.

이윽고 신성 바티칸에서 발 빠르게 입장을 공표하자 이에 질세라 프랑스에서도 겨우 10시간 만에 공식 성명을 밝혔다.

프리드리히 파울라스의 대변인으로 매스컴에 고개를 내민 ‘흑색 마탑’의 마법사는 바티칸과 정말 정반대로,

휴거교에 대한 적의나 분노보다는 이건우라는 개인을 향한 찬사와 칭찬을 이어나가며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닌, 훗날의 인류에게 꼭 필요한 존재인 S급 헌터의 보호를 위해 인력을 파견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참으로, 착한 사람 흉내를 선호하는 프리드리히 파울라스 다운 답변이었다.

그렇게 흡사 냉전을 진행 중이던 두 진영의 인력 파견이 확실시된 그다음 날.

이 모든 사단의 근원이자 발안자, S급 헌터의 그릇인 이건우는 그제야 개인 훈련실을 나왔다.

자연스레, 그의 안위를 보좌하는 역할을 맡게 된 요원 고예나와 안미희는 그에게 다가가려 했으나,

“잠깐, 저 죄송한데, 우선 전문 청소업체 좀 불러주시겠습니까?”

최대한 먼 거리에서 두 사람의 행동을 저지하고, 그런 뜬금없는 부탁을 해오는 것이다.

두 요원은 잠시 서로를 쳐다보며 의문을 표했지만, 역시나 그의 말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훈련장이 부서진 것이라면 저희가 복구하면 됩니다.”

“그 역시 저희 업무의 일환입니다.”

그래서 두 사람이 상당히 사무적인 태도로 그리 말하자 이건우는 곤란하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런 레벨이 아니라서···.”

무슨, S급 헌터가 훈련을 하고 나온 것도 아니고···.

아무리 그릇이 S급인 헌터라 해도 현재는 끽해봤자 C급에 불과하지 않은가.

뭘 부수고 어지럽히려 해도, 결국 빈손으로 들어간 C급 헌터가 행한 일.

결국, A급의 베테랑 요원 두 사람이 보기에는 애들 장난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벌써부터 자의식 과잉인가요. 훗’

고예나 요원은 속으로 코웃음을 치면서도 겉으로는 무표정을 일관하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모두 저희 손으로 해결될 겁니다.”

“오래 걸리지도 않을 것입니다.”

이에 건우는 잠시 갈등하는 표정을 짓다가도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두 분을 믿고 저는 우선 좀 씻고 오겠습니다.”

피식,

“풋. 귀엽네? 벌써 지가 S급인 줄 아는 거야?”

“웃지 마, 업무중이잖아.”

“언니도 웃고 있잖아.”

고예나와 안미희는 그렇게 이건우가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더는 못 참겠다는 듯 끅끅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도 이틀 넘게 훈련장에서 나오지도 않고 조금 기특하긴 하네?”

“20대 초반이면 한창 혈기 왕성할 나이니까. 그럴 수 있지.”

그리 조소를 입에 머금고 잡담을 나누며 훈련장으로 다가가는 두 요원.

그런데, 가까이 가면 갈수록 뭔가 이상했다.

처음에는 뭔가 불쾌한 냄새에 인상을 찌푸렸을 뿐이었지만, 문 앞에 도달하자 무슨 시체 썩은 내가 풍겨오는 것이다.

농담이 아니라 안에서 살인이라도 났나 싶을 정도로 농후한 피 냄새와 썩은 내, 이내, 잡담으로 입을 놀리던 두 사람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A급의 헌터이자 베테랑 요원인 자신들조차 흠집을 내기 위해서는 전력을 다해야 하는 강화 방벽 이곳저곳에 선명하고 깊은 검흔(劍痕)이 남아있던 것이다.

그것도, 한 귀퉁이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 개인 훈련장 전체에 아주 광범위하게···.

“방벽에··· 검흔?”

“이렇게 많이?!”

차마 입을 떼지 못하는 두 요원.

심지어 바닥 이곳저곳에는 보통 헌터라면 진작 쇼크사했을 만큼의 많은 거무죽죽한 피가 흩뿌려져 있다.

“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두 사람은 그렇게 건우가 몸을 깨끗이 씻고 나올 때까지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고 말았다.

그건 전문 청소업체를 부르지 않고서는 도저히 복구할 수 없을 정도의 흔적이었으니까.

***

이틀하고도 한나절.

내가 훈련장에서 나왔을 땐, 이미 그만큼의 시간이 지나있었다.

너무 여유를 부린 걸까 싶기도 했다만, 무려 1할이나 활성화시킨 ‘오브’의 힘을 마음껏 시험해볼 수 있다는 유혹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씻고, 새로운 옷을 받아 입고, 지난 시간 아무것도 먹지 않았던 터라 협회에서 제공해주는 뷔페에서 먼저 배를 채웠다.

밥을 먹는 내 옆에서 그간 있었던 일을 착실하게 브리핑해주는 협회의 두 요원.

훈련장의 처참한 광경에 퍽 놀랐는지, 두 사람이 나를 볼 때마다 느껴지던 은근한 조소는 사라지고 없었다.

예상대로 ‘바티칸’은 휴거교를, 프랑스의 ‘검은 마탑’은 나를 빌미로 원군을 보내주기로 한 모양이었다.

명분은 다를지라도 결론은 같았다.

두 집단은 결국, ‘휴거교’를 뿌리 뽑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마치고 본국으로 귀국할 입장이라는 거다.

문제는 휴거교라는 집단이, 보통의 집단과는 다르다는 것. 휴거교는 아무리 죽여도 죽지 않는다.

전국에 점조직 형태로 수십의 각기 다른 단체를 운영하며, 수백의 전투 신도를 암암리에 부리는 놈들은···.

분명 적당한 ‘전도사’나 ‘장로’급의 신도를 내세워 원군에게 공적을 쌓아준 뒤, 본국으로 돌아갈 명분을 주고는 쥐도 새도 모르게 숨어버릴 것이다.

게이트 내부에도 제단을 만들 수 있는 놈들이 그 정도도 못 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놈들은 정말로 ‘무슨 짓이든’ 행하는 놈들이니까.

그러한 휴거교의 완벽한 은신, 언론의 여론 조작 그리고 군 내부 스파이의 강한 주장이 합쳐지면,

밀려드는 ‘원군 무용론’에 바티칸과 프랑스의 병력 따위 돌려보내는 것은 식은 죽 먹기 보기 쉬울 것이다.

10여년 전, ‘종교와의 전쟁’ 때도 그랬고, 현시점을 기준으로, 본래라면 5년 뒤 일어날 예정이었던 ‘휴거교 척결 작전’ 때도 그랬다.

재림을 위해 무려 10년을 지하에서 기다린 놈들이, ‘나’라는 큰 변수를 제거하기 위해 한두 달을 못 기다리겠는가.

놈들은 분명 늘 하던 방식 그대로 행동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놈들의 지독한 일관성이 도리어 자충수로 이어지리라.

왜냐하면, 내가 그리되도록 만들 것이니까.

여단장 표창으로 나오게 된 7박 8일짜리 긴 휴가의 마지막 날 정오,

나는 협회의 요원들과 함께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당연히 직접 협조를 요청했던 만큼 함께 발걸음을 옮긴 이초희.

현대적인 여객기에서 내리는 중세 유럽풍 갑주의 기사들은 몇 번을 봐도 묘한 이질감이 느껴지는 모습이었지만···.

무거운 갑주를 굳이 착용해 나타나는 게 ‘성전사’들의 관례이니 별말 하진 않았다.

“안녕하십니까. 부협회장.”

가장 큰 십자가가 그려진 투구를 머리에 쓴 근육 남자가 입국장을 통과해 이초희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초희도 그리 작은 체격의 여성은 아니지만, 그 ‘성전사’와 악수를 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특히나 키가 작은 이서영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성전사’의 체구는 거대했다.

“요청에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초희는 어른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능숙하게 ‘성전사’를 맞이해주었다.

총 스물한 명의 성전사들.

그중에는 나와 전생에 함께 싸웠던 적이 있을 정도로 유능한 인재도 몇몇 보였다.

그리고 참으로 다행히도, ‘성전사’들 사이에 빌런이 끼어있다던지 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긴 ‘흑색 마탑’의 마법사들 사이라면 몰라도, 공동 영창을 특기로 하는 ‘성전사’ 사이에는 외부인이 끼어들 수가 없다.

“흥!”

그때 묘하게 가까이서 들려오는 콧바람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멋대로 투구를 벗고 긴 금발을 쓸어내리고 있는 ‘성전사’ 한 명이 보였다.

“메리! 아직 공식적인 자리다. 제멋대로 구는 건 허가할 수 없어!”

“그치만! 답답하잖아! 비행기 안에서도 못 벗게 하더니 여기서도 그러라니 심하잖아!”

“시끄럽다. 얼른 투구를 착용해!”

“아니이···. 하아.”

그녀의 이름은 메리, 성전사들의 기본은 엄격한 규율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이지만, 그녀는 전생에도 성전사스럽지 않은 성전사로 유명했었다.

옆에 있던 덩치에게 혼난 메리는 그렇게 투구를 쓰고 행렬을 따르나 싶더니, 갑자기 몸을 틀어 성큼성큼 내 앞으로 걸어왔다.

“네크로필리아.”

투구를 쓰고 있어 그녀의 표정은 보이질 않았지만, 목소리만으로도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메리는 고작 열일곱의 나이로 전사장과 비견해볼 법한 막대한 신성력을 다루게 된 자이자, 극심한 언데드 혐오자로 유명한 아이니까.

프리드리히 파울라스에게 존경한다니 뭐니 말을 한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리라.

전생에는 그래도 나름 친했었는데···.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잠깐을 더 기다리고 있으니 ‘성전사’들이 공항을 벗어나는 것과 동시에 푸른 로브를 입고 있는 ‘흑마도’들이 입국장에 나타났다.

“오, 이건우! 당신이!”

외투처럼 걸친 푸른 로브를 제외하면 이번 ‘흑마도’들은 퍽 캐쥬얼하고 개성적인 옷차림으로 나타났다.

그간 흑마도들에게 부여되어 있던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를 탈피하고자 프랑스 정부가 들인 노력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나는 대뜸 다가와 가벼운 허그를 시도하는 남자에게 딱딱하게 대답했다.

“인류의 새로운 등불, 반갑습니다. 검은 마탑의 소환학 조교수. 다비드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다행히 이번 ‘흑마도’ 사이에도 내가 아는 얼굴은 있었다.

다비드 호베흐.

조교수임에도 교수급 이상의 실력을 갖춘 소환사로, 훗날 ‘불사왕’의 정체를 눈치채자마자 그에게 반기를 들었던 투사 중 한 명이었다.

검은 마탑의 사람들은 대체로 조금 전의 ‘성전사’들과는 반대로, 협회의 사람들이 아닌 주로 나와 대화를 나누려고 했다.

다소 유치한 경향이 없지 않지만, 아마 이쪽 역시 협회와 군이 신성 바티칸에 도움을 요청한 사실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는 듯했다.

그렇게 나는 잠깐의 담소를 나누면서도 눈만 움직여 ‘흑마도’들의 얼굴을 하나, 둘 살펴보았다.

이번에도, 내 계획의 변수로 작용할지 모를 존재가 혹시 ‘흑마도’들 사이에 끼어있진 않는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총 스물네 명의 푸른 로브를 입은 학도.

이들 전부를 살펴보았지만, 내가 경계하던 ‘숨어든 빌런’은 보이질 않았다.

아무리 ‘불사왕’이라 해도 역시 바티칸의 성전사들 앞에서는 조심스러워지는 걸까···?

그렇게 내가 은밀한 수사를 마무리 지으려던 찰나, 내 동공을 확장시키는 얼굴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저 녀석은···.’

비록 아직까지는 공개적으로 ‘빌런’다운 활동이라고는 일절 행한 적이 없을 보통의 인간일지 모르지만···.

녀석은 내가 아는 한 가장 비열하고 저급한 방식으로 사람을 배신하고 범죄를 저지르는 최악의 빌런 중 하나였다.

‘그래··· 그런 식으로 나오시겠다는 거로군···.’

녀석의 얼굴을 보자마자 내 입가에는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녀석의 존재가 곧, 놈들이 어떤 식으로 암수를 뻗어올지 그 방식을 말해주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건우?”

다비드 호베흐는 지금껏 무표정하던 내가 갑자기 미소를 짓자 의아한 목소리를 냈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웃으면 안 되는데, 자꾸만 웃음이 났다.

이걸로 재료는 모두 모였다.

‘변수’는 충분히 예측 가능한 레벨이란 것을 확인했으니, 이제 남은 일은 쇼를 시작하는 일뿐이었다.

그동안 내가 착실하게 준비해왔던 아주 재미있는 ‘쇼’를 말이다.

제게 방법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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