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28화
‘S급 헌터’.
그저 입에 담는 것만으로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어마어마한 파급의 단어가 ‘정보원’의 이름으로 단상에 오른 이건우의 입에서 튀어나온 것이다.
그러니, 건우가 무언가를 더 이야기하기 전에 기자들이 건우의 입을 막고서라도 질문을 던져대기 시작한 것은 필시,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부협회장님 한 말씀만 부탁드립니다!
-부협회장님이 말씀해주십시오.
-저기 이건우 상병이 한 말은 정말로 협회의 공식 입장이란 말입니까!
이전과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이곳저곳에서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손을 드는 것은 물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까지 사실을 확인하려는 기자가 많았다.
이초희가 다시 마이크를 잡자 순식간에 조용해진 좌중.
이내 그녀는 자신의 입으로 직접 고했다.
-하아, 맞습니다. 그는 현재 C급 헌터의 마력량을 보유한 7여단 소속의 군인, 상병 이건우이지만···. 사실상 그의 잠재력은 A+급을 뛰어넘는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경이적인 사실에 차마 입을 다물지 못하는 기자들.
그중에서 한 용기 있는 기자가 손을 들어 말한다.
-그 말은··· 다시 말해···.
-예. 그는 S급 헌터의 잠재성을 갖춘, 대한민국의 일곱 번째 S급 헌터가 될 사람입니다.
직후,
모든 기자들의 펜이 멈췄다.
너무나도 확고했던 이초희의 대답.
그리고 너무나도 당당한 이건우의 태도를 한눈에 담고 있으니 사고가 멈춰버린 것이다.
허나, 그러한 와중에도 마이크를 받아든 이건우는 말했다.
마치 이 상황을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처럼 너무나 태평하고, 자연스럽게.
-부협회장님의 말씀대로, 저는 한낱 C급. 나약한 헌터 병사에 지나지 않습니다. 경험도 부족하고 경력도 없어 매일매일 불안에 떨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들려오는 목소리는 차분했고, 그 덕분인지 기자들 역시 이어지는 건우의 목소리에 천천히 이성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저는 협회와 군이 판단한 신성 바티칸 외에도 정말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분께 이 자리를 빌려 도움을 요청하고자 이렇게 단상에 올랐습니다.
그러자 침묵에 잠기는 기자들.
그 누구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머릿속에는 공통으로 ‘누구에게?’라는 질문이 떠올랐다는 건 불 보듯 훤한 사실이었다.
이윽고 이를 차분히 지켜보던 이건우는 말한다.
휴거교에 노출된 자신을 참으로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는 집단의 총수를 향해.
-존경하는 프랑스의 총리. 프리드리히 파울라스님. 부디, 인류의 부흥과 저의 안전한 성장을 위해 손을 빌려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프리드리히 파울라스.
휴거교도에게는 메시아라 불리며, 국내에 특급, A급 테러리스트를 침투시킨 장본인이자 ‘불사왕’이라는 이명을 가진 최악의 빌런.
건우는 다름 아닌 그 빌런의 왕을 향해. 공개적으로 협력을 요청한 것이었다.
이이제이(以夷制夷).
당장이라도 들이닥칠 휴거교도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건우가 택한 전략이었다.
신성 바티칸과 언데드의 존재를 용인한 프랑스의 총수가 한 자리에서 언급되었다는 건, 이미 그 사실 자체로 세계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들기 충분했으니까.
이건우는 이제부터 일어날 ‘쇼’를 상상하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
‘프랑스의 총리, 프리드리히 파울라스는 결코 나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을 것이다.’
기자회견장을 나오며 부협회장 이초희 전용 차량에 탑승한 이건우는 그런 생각을 하며 슬며시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그래서, 이젠 무슨 생각인지 말해줄 수 있겠니?”
뒷좌석에 나란히 앉은 둘.
이초희는 매서운 눈초리로 건우를 바라보며 그리 물어왔다.
“우리가 네 정보를 숨기느라 얼마나 고생한 줄은 아니? 대뜸 그걸 외국 기자들도 다 있는 기자회견장에서 밝히겠다니···. 또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지?”
“꿍꿍이라니 듣기 조금 그렇습니다.”
“말 돌리는 건 됐고 말해봐. 무슨 계획인데? 알아야 이쪽에서도 손을 써줄 거 아니니.”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하는 이초희.
건우는 조수석에 앉아 아직도 눈과 입을 떡 벌리고 있는 남궁연 소위를 잠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프랑스 총리는 세계 각지에 퍼져 있는 테러리스트들의 우두머리입니다. 정확히는 불사왕라고 불리는 최악의 빌런이고요.”
“저번에 말했던 그 추측 말이니···. 아니, 너니까 그냥 추측이 아닐 수도 있겠네. 그래서?”
“하지만 프리드리히 파울라스는 겉으로 누구보다 선한 인물이자 박애주의자를 표명하는 사람이죠. 그렇기에 그는 헌터 강국으로 명성도 높은 한국의 새로운 S급 헌터가 죽는 꼴을 두고 볼 수가 없는 겁니다.”
헌터란, 인류의 희망이자 자산.
더 많은 몬스터를 박멸하고 숱한 재앙을 이겨낼 ‘S급의 헌터’는 출신, 나이, 성별, 인종을 불문하고 언제나 인류의 환영을 받는 존재였다.
그런데, 하물며 박애주의자이자, 이 세계의 방향성을 선도하는 리더이자, 매일 같이 인류를 위해 영원히 봉사하겠다며 헛소리를 지껄이는 그 아니던가.
“프랑스 총리가 위기에 처한 제 응답에 대답을 내놓지 않으면 그 자체로 세계인의 의심을 사는 행동이 될 겁니다.”
“그래도 그것만으로는···.”
“예. 확실히 이것만으로 그쪽에서 조력을 해주리라는 확신은 서지 않죠. 그래서 제가 부협회장님께 부탁을 드린 것 아닙니까. 꼭 신성 바티칸에 협조를 요청해달라고.”
잠시 건우의 말이 무슨 말인지 고민하던 이초희.
허나, 그녀의 고민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흐음.”
신성 바티칸은 세계를 대표하는 ‘언데드’혐오 국가였다.
허나, 이와 반대로 프랑스는 세계 최초로 언데드 사역과 흑마법을 인정한 국가.
둘의 사이는 상상 이상으로 나쁘다.
독일 출신의 S급 헌터, 프리드리히 파울라스가 총리직을 맡지 않았더라면 당장이라도 전쟁이 발발했을 정도로.
“국가 규모의 지원요청이니 어차피 바티칸은 부름에 응할 거고···. 라이벌 격인 프랑스는 국제적 시선을 신경 써서라도 네 요청에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을 거다······. 이 말이구나···?”
건우의 말을 정확히 이해한 이초희가 차분히 이를 되새김질하였고···.
그렇지 않아도 놀란 얼굴로 굳어 있던 남궁연 소위는, 아무렇지 않게 부협회장과 대화를 나누는 건우를 보며 한 번, 거기에 부협회장의 말을 듣고 건우의 계획을 이해하자 한 번 더 놀라기 바빴다.
“...너, 보기보다 더 정치에 소질이 있었구나? 안 되겠다. 공동 계약 말고 협회랑 계약 하나 더할 생각 없니? 부협회장 자리는 몰라도 정보국장 자리까지는 약속할게.”
“죄송하지만, 직위나 자리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아니, 그러지 말고! 어휴! 새파랗게 젊은 놈이 말이야. 야욕도 있고 여자도 좀 밝히고 권력욕도 있어야지!”
장난이라는 것을 알기에, 건우는 이초희의 얼토당토않은 제안들을 대놓고 무시했다.
허나, 퍽 진지한 태도로 계속해서 계약에 대해 언급하는 이초희.
전생에도 이 정도로 집착 어린 모습을 본 적은 없었기에 건우는 솔직히 조금 놀라고 말았다.
그 모습에, 어째서인지 초조한 얼굴로 식은땀을 줄줄 흘리던 남궁연 소위가 말을 꺼냈다.
“그, 그런데 건우···. 야? 프랑스 총리가 나쁜 분이라고 생각한다면, 왜 그분의 지원을 받으려고 하는 거···니?”
남궁연의 질문은 꽤나 핵심적인 부분을 논하고 있었다.
“그건, 간단합니다···.”
알기 쉽게 손가락을 두 개 펴는 건우.
“우선, 신성 바티칸의 성전사들이 프랑스 총리가 보낸 흑마도들을 만나면, 어떻게든 눈에 불을 켜고 그들이 악행을 저지르지는 않는가. 이를 살펴보려 할 겁니다.”
건우는 하나의 손가락을 접었고 남궁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건우의 말은 이어졌다.
“그러니, 프리드리히 총리는 이번 파견 인원에 그 어떤 악인도 보낼 수가 없는 겁니다. 새로운 S급 헌터라는 소식에 세계인의 관심이 쏠린 지금은 더더욱 말이죠.”
“아아···. 거, 건우는 그럼 만에 하나라도 정말 프리드리히 총리가 정말 나쁜 사람인 경우까지 상정하고 움직였다는 거구나···?”
다소 핀트가 어긋나긴 했다만, 남궁연은 드디어 건우의 계획을 제대로 이해한 듯 연신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부협회장 이초희는 다소 중립적인 태도를 겉으로 표방하고 있긴 했지만, 사실 남궁연의 반응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보통의 인간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었다.
프랑스의 총리는 그만큼 사람들에게 절대적인 신임을 받는 존재였으니···.
뭐 인식이 어찌 되었건,
현재 건우가 생각해낸 이이제이(以夷制夷) 전술은 빛을 발할 수밖에 없다.
프리드리히 파울라스라는 위인을 보며 자란 그의 선량한 제자들, ‘흑마도’와 압도적인 힘을 다루는 불사왕을 숭배하는 ‘빌런’.
이 둘은 필연적으로 만날 것이고 그 결과, 사실은 양쪽 모두 프리드리히 파울라스의 세력임에도 양 집단은 서로를 무자비하게 공격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불사왕’의 세력 약화는 필시, ‘불사왕’이 본색을 드러내는 시기를 늦추리라.
말 그대로의 이이제이(以夷制夷).
불사왕의 제자로 불사왕의 빌런을 잡는 정말 최상의 전략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전략을 하루 만에 구상하고 이틀 만에 실행한 이건우라는 헌터를 협회의 부협회장인 이초희는 정말 다시 보게 되었다.
‘그냥, 조금 난 놈인 줄 알았는데···.’
이건 S급 헌터라는 직함의 파급력과 국제정세에 대한 디테일한 이해가 뒷받침되지 않았더라면 그 발상 자체가 불가능한 계획이었다.
치밀하고 지능적인 계획력, 거기에 놀라운 판단력과 행동력은 이제 마흔을 코앞에 둔 이초희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이거 진짜 물건이었잖아···?’
지금껏 숱한 인재들을 자신의 눈으로 지켜봐 왔던 이초희이기에 더 잘 알 수 있는 것이 있었다.
눈앞의 이건우라는 C급 헌터는 A+급의 정예요원들을 열 명 데려다 놔도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들 특급 인재라는 것 말이다.
“이건우. 아니 이젠 식구나 마찬가진데, 그냥 건우라고 불러도 되지?”
이초희는 짧은 틈에 마음을 정했고 부담스러우리만큼 이건우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친근한 듯 굴었다.
“...예? 아, 마음대로 불러주시길 바랍니다.”
떨떠름한 표정의 이건우 허나, 이초희에게 물러날 마음 따위는 없어 보였다.
“그래? 그럼 우리 건우!”
“우, 우리···?!”
“그래, 우리 건우. 어디 이 이모한테 이상형이 어떻게 되는지 좀 말해볼까?”
이건우는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는 듯 미간 깊이 주름을 잡고 이초희를 바라보았다.
허나, 그의 반응 따위 조금도 개의치 않는 듯 이초희는 말을 이었다.
“얼른 말해봐. 성격 좋고, 배경 좋고, 일도 잘하는 비서 하나 붙여줄게. 우리 협회에 그런 애들 많다?”
“군인은 그런 사람을 둘 수 없습니다.”
“뭔 상관이야. 내가 부협회장인데”
“아···. 하하.”
더는 말이 안 통할 것 같다고 생각한 건우는 끈질기게 질척대는 이초희에게 어색한 웃음으로 대응했다.
조수석의 남궁연은 대놓고 자신의 소대원을 꾀어가려는 부협회장과 이건우를 번갈아 보며 초조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이초희는 진심으로 그 방식이 먹히리라 생각했는지 두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이 사람 이런 성격이었어···?’
겉으로는 웃으면서도 속으로는 질색하던 건우. 그가 잠시 그런 생각을 하던 사이 시간은 흘러, 협회와 메스컴이 약조한 시간이 되었다.
-띵!
짧은 알림음을 시작으로, 기사글들은 그야말로 폭풍우처럼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속보】 휴거교 재등장! 바티칸에 협조를 요청하는 협회와 새로운 S급 헌터?
【속보】 대한민국 7번째 S급 헌터는 휴거교의 관계자? 충격적인 부협회장의 발언.
【속보】 신성 바티칸과 프랑스 정부에 동시에 조력을 요청한 협회와 S급 헌터.
【속보】 충격! 대 게이트전담부대 7여단 소속의 병사, S급 헌터의 자질을 가진 것으로 밝혀져···.
프랑스 정부와 바티칸에 관한 기사.
S급 헌터와 협회에 관한 기사.
일반 병사가 S급 헌터로 판명되었다는 사실에 의구심을 가지는 기사까지.
워낙 논란이 될 여지가 많은 정보가 일제히 공개된 기자회견이었기에, 기사글은 한 언론사당 하나가 아닌 둘, 셋은 작성되었다.
그 결과 일순간에 터져 나온 기사글의 수는 잠깐 사이에 벌써 일백을 돌파하고 있었다.
이 같은 기사글은 비단 한국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기에 그 파급력은 드넓은 세상을 향해 쭉쭉 퍼져나갔고···.
그렇게, ‘휴거교’라는 거대 집단이 오롯이 한 명의 헌터 병사를 향해 특급 척결 명령을 내린 바로 그 당일,
이건우라는 이름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불길처럼, 세계 각국으로 번져나갔다.
***
유명세란, 일종의 방패다.
그것도 ‘인류의 공적’으로 이미 10여 년 전부터 낙인이 찍혀있던 ‘휴거교’의 경우에는 특히 그 힘이 두드러지게 되는데,
앞으로 나의 행적은 좋든, 나쁘든 누군가의 이목을 끌게 될 것이며 바로 그 쏠리는 ‘시선’이 휴거교의 대범한 행동을 억제하는 족쇄가 되어주는 것이다.
그 대표적 예시가 바로 지금이다.
이초희는 이번 기자회견을 통해 화제의 인물이 된 나를 보호하겠다며 협회의 사옥에서 휴가를 보내길 권한 것이다.
물론 다른 의도도 다소 엿보이긴 한다만, 요원들이 상주하며 훈련장과 같은 고급 시설이 보장된 협회의 사옥은 생활은 내게도 좋은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
“어때, 협회 사옥도 꽤 지낼만하지? 자, 여기 사인하면 이 사옥을 그냥 너한테 줄 수도 있어. 게다가 지금 계약하면 무려 강남의 아파트 한 채가 서비스! 어떠니, 슬슬 좀 구미가 당기지 않니?”
여기, 일정 시간마다 나타나서 어떻게든 나를 회유하려 드는 이초희만 없다면 말이다.
“부협회장님.”
“어.”
“백귀야행에 악귀나찰이라고까지 불리시는 분이, 여기서 이러고 계셔도 되는 겁니까.”
부협회장이라는 자리는 폼이 아니다.
나야 공식적으로는 휴가를 나온 군인이라는 신분이라 괜찮지만, 이초희는 아니다.
국외에 있는 ‘거대 길드’들과의 정치적, 경제적 계약 조율은 물론,
국내에서도 어떻게든 자신의 배를 불리려 드는 정치인들과 적절히 타협, 때때로 회유를 하며 민생을 안정시키고 삶의 질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책임이 그녀에게는 있는 것이다.
허나, 나의 잔소리에 가까운 말에도 이초희는 미소와 함께 답했다.
“응. 돼.”
“...어째서입니까.”
“그야, 나는 국제 무역을 몇 건 체결하는 것보다 너를 협회에 들이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거든.”
“...”
이초희는 나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확신을 가진 어조로 그리 말했다.
아무래도 나는 이번 기자회견을 통해 이초희에게 상당한 고평가를 받게 된 듯했다.
뭐, 그녀는 명실상부 이 국가의 중역이자 랭커, 때때로는 협회장보다 더 발언권이 강한 사람 아니던가.
가까워져서 나쁠 일은 하나도 없었다.
“고평가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처음에 약속해주셨듯 훈련 시간만큼은 혼자만의 시간을 보장받도록 하겠습니다.”
“또 혼자 훈련? 하루 만에 대체 몇 번을 가는 거니···. 아니면 저기 미희나 예나랑 같이 대련이라도 해보는 건 어떠니, 저 애들 정도면 꽤 수준 높은 훈련이 가능할 텐데?”
일부러 미인의 요원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계속 합동 훈련을 제안하는 이초희.
정말로 이런 방식이 통할 거라 생각하는 건지···.
나는 상당한 고평가를 받음과 동시에, 또 어떤 부분에서는 저평가를 받은 것 같아 묘한 기분이 들었다.
“배려는 감사하지만, 훈련은 혼자 하는 주의입니다.”
“어휴. 알았다. 내부 CCTV도 다 꺼둘 테니까 네 마음대로 하렴.”
“배려 감사합니다.”
드디어 포기했다는 듯 이초희는 한숨과 함께 불러났다.
그녀는 내가 자신을 멀리하기 위해서 자주 훈련장을 이용한다 여겼는지, 영 섭섭해하는 얼굴이었다.
분명 40대라 들었는데, 겉으로 보이는 외향도 그렇고 하는 행동도 그렇고 참 젊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그 유치한 행동들은 정말, 어린 애라 해도 믿을 수준이었다.
허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결코 그녀를 멀리하기 위해 훈련장을 자주 드나드는 것이 아니었다.
이제 코앞까지 다가온 거대한 변화.
<알림>
ㅡㅡㅡㅡㅡㅡㅡㅡ
*각성자, 이건우의 육체가 ‘오브-성혈’을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적응까지 남은 시간: 0시간 2분
ㅡㅡㅡㅡㅡㅡㅡㅡ
모든 건, ‘오브’와 육체의 융화가 끝나는 그 순간부터 이 ‘오브’의 힘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한 폐관수련을 시작하기 위함이었다.
남은 휴가 기한은 고작 사흘.
전생에는 보름이 넘게 걸렸던 그 작업을 나는 두 배 이상으로 압축해내고자 했다.
<알림>
ㅡㅡㅡㅡㅡㅡㅡㅡ
*‘오브-성혈’의 흡수가 완료되었습니다.
*각성자, 이건우의 육체에 새로운 신체기관이 생겨납니다.
*‘오브’의 권능이 단전으로 스며듭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
잠깐의 기다림 후, 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
그와 동시에 나의 아랫배에는 새빨갛게 달궈진 쇠구슬이라도 들어간 것처럼 엄청난 열기가 느껴졌다.
“끄으으···!”
역시, 전생에도 휴거교의 목사급 존재조차 완벽하게는 다룰 수가 없었던 물건이 바로 이 ‘오브’다.
아직도 Lv. 9에 불과한 내 몸에 어마어마한 반발작용을 일으킬 줄 알았다.
허나,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당장 시야를 멀게 만들 것 같은 이 격렬한 격통도, 하반신을 송두리째 구워버릴 것만 같은 끔찍한 이 열기도···.
모두 어차피 견뎌내야 할 역경일 뿐이다.
당장 중요한 것은 입증하는 것이다.
나의 몸속에 똬리를 트기 시작한, ‘오브’에게 내가 어디까지 견뎌낼 수 있는 존재인지를 말이다.
-스윽.
고통에 눈이 뒤집히기까지 반보 직전인 상태로, 나는 팔과 다리를 움직이며 자세를 취했다.
‘오브’가 내게 그 어떤 육체적 부하를 가해도, 움직인다.
허공에서 움켜쥐는 것은 마검.
이젠 잡는 질감마저 익숙해진 이터널 패인이었다.
시퍼런 번갯불과 새빨간 스파크가 동시에 허공에 비산하고, 나는 정신을 집중해 아랫배에 열기를 움직였다.
횡으로 긋는 검로는 단정했고, 종으로 찢는 검격은 간결했다.
단순히 나 자신의 마력을 넘어, 아직은 이질적인 그 열기를 그대로 검에 발산하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치지지직!
꽉 쥔 손에서는 피가 흐르고, 악문 입에서도 피가 흐른다.
이내 격통과 끈적한 피로 점철되어 졌던 그 끈적한 무언가는 전신을 축축하게 적실 만큼 터져 나왔고,
화끈한 ‘오브’의 열기가 나의 핏줄을 타고 흐르기 시작하는 것을 느껴지기 시작했다.
예측 가능한 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