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27화
붉은 홍채.
그곳에서부터 아주 진하게 풍겨오는 죽음의 향기.
알프레드 아들러는 눈앞의 ‘주교’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한눈에 눈치챘다.
가만히 서 있는 그 풍채에서부터 이미 느낄 수 있는 압도적인 연륜, 허나 참으로 경이롭게도 주교의 얼굴에는 주름이 없었다.
“뱀파이어······.”
“옳다. 메시아의 종복이여.”
“피, 피, 거릴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휴거교에서 숭배한다는 게 결국 박쥐 새끼였단 말이야?”
알프레드의 얼굴에는 적잖은 긴장이 스쳤지만, 그는 애써 더 도발적으로 말을 이었다.
“불사왕께서도 이 사실을 알고 계시는 건가? 숭고한 우리 언데드 연맹이 몬스터 따위랑 손을 잡았다니 역겹잖아!”
대외적으로는 미치광이, 쾌락 살인마라 불리는 특급 테러리스트 알프레드 아들러도 존재 자체로 핍박의 대상이 되는 ‘흑마도’들을 위해 움직인다는 신념을 가진 자였다.
헌데, 주요 협력관계로 여기고 있던 거대 집단 ‘휴거교’의 수장이 게이트 너머의 괴물이라니···.
이는 친족들을 모두 몬스터에게 잃고 불사왕에게 거둬진 알프레드로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인상을 잔뜩 찌푸린 알프레드.
그는 자신에게서 항시 나오는 시체 썩은 내보다 주교에게서 진하게 풍겨오는 피비린내가 더 역하다는 듯 과장된 액션을 취했다.
허나, 주교가 느긋하게 감았던 눈을 뜨는 바로 그 순간,
「예의와 질서와 경면과 정결을 알라.」
알프레드의 세상이 점멸했다.
눈앞에 보이는 비명과 귓가를 가득 채우는 죽음의 형상.
이해가 뒤엉키고, 인지가 뒤집히고, 숨이 꼬이고 천지가 흔들린다.
보이는 것은 피,
들리는 것은 피,
만져지는 피는 끈적했고,
머리를 깨뜨릴 것만 같은 중압감에 머리가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이내, 눈을 뜨자.
알프레드는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어느새 손을 쓴 것인지 알프레드가 인지하지도 못하는 사이 정결하게 두 무릎을 꿇고, 양손을 모아 기도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그의 몸.
“허어억! 허억! 뭐, 뭐야. 뭐냐고! 지금 무슨 짓을 한거야!”
갑작스러운 충격에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알프레드는 미치광이처럼 소리를 질렀으나, 다가온 손이 그의 머리를 부여잡자···. 본능적인 공포가 격렬하게 요동쳤다.
이윽고 느껴지는 인간, 그 이상의 존재가 가지는 힘.
그제야 알프레드는 현재 자신의 상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은 제압을 당한 것이었다.
눈앞의 ‘뱀파이어’가 가볍게 눈을 감았다가 뜬 그 찰나의 한순간에···.
대외적으로는 특급 테러리스트라 불리우며, 내로라하는 헌터들을 직접 처리한, ‘죽음 수확자’ 알프레드 아들러가 말이다.
“자그마한 오해가 있다. 종복···.”
말을 한다기보다는 숭고한 기도를 올리는 것만 같은 억양.
들려오는 목소리에 알프레드가 살짝 고개를 드니, 진홍빛 눈동자의 ‘주교’는 이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모습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나는, 메시아가 ‘우리’의 존재를 충분히 인지했음에도 협조를 받아들였다는 것이며···.”
“부, 불사 왕께서, 뱀파이어를 용인했다고···?”
놀라는 알프레드 허나, 그런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았다는 것처럼 주교는 그저 말을 이어갔다.
“둘은, 우리는 한낱 ‘종복’에게 발언권과 선택권을 준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주윽.
알프레드의 머리를 잡고 있던 손이 움직이고, 그의 이마에 생겨난 수평의 붉은 선,
주교의 손톱이 스친 것만으로 닿은 피부가 갈라져 내린 것이었다.
그것도 마탄을 맞아도 깡으로 버틴다는 ‘30레벨’을 코앞에 둔 알프레드의 피부가.
「종의 생존은 언제나 근면과 성실에 있음에···. 하등한 종이여, 메시아의 거둠으로 자격을 얻은 종이여. 근면하라.」
이윽고 또다시 그어지는 수직의 선.
알프레드의 이마에는 아주 분명하게 붉은색 역 십자가가 그려졌다.
그러자 일순간 알프레드의 눈에서는 빛이 사라졌고···.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알프레드는 자신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어떠한 울림을 느꼈다.
「근면하라, 근면하라, 근면하라···.」
도발적인 언행과 제멋대로이던 행동이 모두 사그라들고, 지금까지의 그와는 전혀 다른 침착한 얼굴이 입을 열었다.
“뭘 하면 됩니까.”
이를 지켜보던 ‘뱀파이어’는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허공에 손을 움직였다.
그러자 포도나무의 뿌리로부터 치솟아 오르는 붉은 광택의 피.
그 피는 거울의 형상을 취했고, 알프레드는 홀린 듯 그것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초석은 자리를 잡지 못했다.”
피 거울 너머로 보이는 장소는 ‘서울역’과 ‘강원도 원주시’의 풍경. 이어서 차례로 지나가는 ‘인천 부평구’, ‘세종특별시’, ‘울산광역시’의 모습이었다.
“다섯 기둥 중 계시를 따른 기둥은 하나도 없음에···.”
모두 이곳저곳 건물이 무너져내리고 무언가 불탄 흔적 따위가 즐비한 모습들이었지만,
그 다섯 도시의 공통점은 이틀 전, 휴거교도의 테러를 받고도 함락되지 않은 도시라는 것이었다.
“주의 눈을 벗어나, 계시를 비트는 자가 있음을 확정했다.”
그간 ‘휴거교’의 물밑작업은 참으로 다양했다.
각 군부대에 ‘오르골’을 심어두기 위해 블랙 홉 고블린을 보내거나,
도심 한복판에 많은 피를 흐르게 해, 제사의 밑 작업을 해두거나,
‘거대 게이트’로 시선을 돌리고는 각 여단과 군단의 무기고를 털어 전투를 준비했다.
기형 게이트에 뿌리를 내려, 질 좋은 헌터 제물을 확보해두려 했던 것 역시 다름 아닌 이번, 다섯 도시의 함락을 위함이었거늘.
참으로 기이하게도 지난 4달간.
갑작스럽게 휴거교가 행하는 물밑작업이 대부분 차례로 박살 나기 시작한 것이다.
덕분에 제물은 부족해졌고, 권능을 하사받는 목사와 장로의 수가 턱없이 부족해지고 말았다.
“모든 것은 오롯이, ‘계시를 비트는 자’로 비롯된 결과일지니······. 휴거교는 지금부터, 놈의 목을 반으로 갈라 주께 승리의 선언을 드리는 그날까지 멈추지 않으리라.”
“아멘.”
뱀파이어의 존재에 질색하던 알프레드가 열렬한 순교자처럼 고개를 숙이며 그리 답하고, 그를 비롯한 휴거교 신도들의 행동방침은 정해졌다.
그들의 목표는 오직, 이건우.
아직까지 그 정체가 밝혀지진 않았지만, 군 수뇌부에 조차 스파이가 있는 휴거교이니 들키는 것은 시간문제에 지나지 않았다.
국가 전복 사태를 일으키는 수도 있던 거대한 집단이 단 한 명의 헌터에게 송곳니를 드러낸 것이다.
“찾아라.”
주교의 선언에 맞춰 몸을 일으키는 알프레드.
이윽고 그가 철제 대문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 대체 어디에 숨어 있었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수의 ‘휴거교도’들이 어둠을 비집고 나타나 그를 따랐다.
***
인천의 ‘황해’
강원의 ‘만검’
세종에는 협회 전투요원들과 이초희.
마지막으로 울산에는 최중철 소장과 경북에 주둔한 헌터군들까지.
이틀 전, ‘서울역’ 테러 사태를 완벽하게 막아낸 나는, 연이어 들려오는 휴거교도의 출현과 제압 소식을 들으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다들, 내가 휴거교의 대대적 테러를 예견했을 때만 해도 끝내 긴가민가한 표정이었는데,
참 다행히도, 하남의 기형 게이트를 처리하고 성과를 올린 내 말을 그래도 믿고 따라준 모양이었다.
이로써 국가 전복을 위해 움직이던 휴거교의 초석이 무너졌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정도의 ‘계시’가 대놓고 무너져 내렸으니 이미 내 존재를 의식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아마 놈들은 지금껏 어그러진 계획들을 역순으로 검토하며, 자연스레 알렉시스 베로프라는 A급 테러리스트를 잡아낸 나에 대해 알게 될 것이다.
이윽고, 나를 죽이기 위해 상상을 초월하는 더러운 짓거리까지 서슴없이 행하겠지.
놈들에게 ‘계시’란, 그만큼 절대적이며 완전해야 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놈들의 척결 리스트에 내 이름 한 줄이 추가되었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없었다.
나는 놈들이 진정한 목적이 대한민국의 ‘함락’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본래라면, 나는 여단장과 교섭해 일부러 나의 존재를 감추어달라고 요청할 계획이었다.
아직은 놈들에게 나란 존재를 알리기보단 알려지지 않았을 때가 더 장점이 많으므로.
하지만, 이젠 상황이 좀 많이 변했다.
내 눈앞에 놓인 이 기물.
호접지몽의 펜던트와 아름다운 노을빛을 머금은 성혈석(聖血石).
본디 휴거교의 보옥인 월혈석에 시가 5억 이상의 성수를 때려 박아 정화한 초고순도의 보석이었다.
어떻게 번 돈인데, 일순간에 다 소비해버리는 게 참으로 바보 같아 보일 순 있지만, ‘불사왕’이 본색을 드러내고 국제 무역이 끊어지는 건 그리 먼 훗날의 이야기가 아니다.
어차피 앞으로 몇 년만 있으면 이런 행동 자체가 불가능해진다는 소리다.
‘게다가 이 보석에는···.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다.’
‘휴거교’의 기물을 이 같은 정화작업 없이 무턱대고 사용했다간 ‘진조’의 명을 거역할 수 없는 강력한 저주를 받게 된다.
그렇기에 몇 날 며칠을 들여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성수로 1차, 나의 전류로 2차 정화작업을 진행했고,
드디어 모든 작업이 끝났다.
‘참···. 길었다.’
하남의 기형 게이트를 박살 낸 것이 벌써 한 달도 더 된 일인데, 이제야 이걸 사용하게 되다니.
뭐 이토록 복잡한 전제 조건들이 붙어 있으니 전생에도 시간이 그렇게나 흐른 뒤에야 진짜 사용법이 밝혀진 것이겠지만 말이다.
깨끗한 노을의 광택을 띠는 성혈석.
나는 그것을 한입에 집어삼켰다.
주먹보다 조금 더 큰 크기의 보석이었음에도 액체처럼 목을 타고 넘어가는 성혈석.
이내 어떤 메시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알림>
ㅡㅡㅡㅡㅡㅡㅡㅡ
*각성자, 이건우는 세계 최초로 ‘오브’를 올바른 방식으로 사용했습니다.
*비밀을 찾아낸 각성자에게 소량의 경험치를 지급합니다.
*각성자, 이건우의 육체가 ‘오브-성혈’을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적응까지 남은 시간: 36시간 22분
ㅡㅡㅡㅡㅡㅡㅡㅡ
“그렇지!”
다행히 메시지에는 저주와 관련된 말이 한마디도 없었다.
이 말인즉, 그간의 노력이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휴우우.”
이틀도 안 돼서 완전히 체화될 ‘오브’.
절대 방어의 능력을 갖춘 ‘호접지몽의 펜던트’.
지난번부터 요긴하게 사용 중인 빌런, 알렉시스 베로프의 마검 ‘이터널 패인’까지.
나의 레벨은 아직도 한 자릿수에 불과한 ‘9’였지만, 이 모든 전설급 무장들은 제대로 활용한다면 그 두 배, 아니 세 배의 힘을 휘두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시의적절한 시기에 사용한다면, 나의 레벨이 ‘9’에 불과하단 사실을 알고 무작정 들이닥칠 놈들을, 도리어 내가 말살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풀썩, 호텔 침대에 몸을 뉘었다.
나는 명목상 휴가를 나온 것으로 되어있던 터라 이렇게 혼자만의 휴식 시간을 마음껏 가질 수 있던 것이다.
-지이이이잉!
언제 잠들었던 것인지.
나는 계속해서 들려오는 소음에 어렵사리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핸드폰에 표기된 문구, ‘소대장 남궁연.’
그녀는 서울역 테러를 막아낸 후, 곧바로 병원으로 후송되어 치료를 받게 되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하루 만에 나에게 연락을 해왔었다.
처음에는 다소 창피하다는 듯한 목소리로 내 휴가 일정에 관해 묻던 남궁연이었지만···.
-아무래도 남은 닷새 동안도 휴거교와 관련된 조사에 협조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리 말하니 그녀는 무언가 아주 복잡한 감정이 느껴지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갑작스레 자신도 협력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나야 당연히 더 휴식을 취하길 권했지만, 약 1년 만에 나온 휴가를 기꺼이 포기할 만큼 남궁연의 의지는 강했다.
역시, 그녀는 박진웅 상병과 같은 ‘참군인’인 것 같았다.
그리하여 당도한 금일.
나는 몸을 일으켜 호텔의 샤워실로 향했고, 뜨거운 물로 몸을 적시고 나와 서둘러 협회에서 준비해준 정장을 입었다.
그리고 차분히 거울을 보니, 4달 전만 해도 비만의 체형이었던 몸이 완전히 갸름해진 것을 확실히 실감할 수 있었다.
내가 평소에 입고 다니는 강화 전투복이 이제는 다소 헐렁해졌을 정도로 나는 변했다.
새삼 4달 만에 여기까지 해냈다는 게 참으로 신기하기도 했다.
“통신보안?”
-건우야! 왜 이렇게 전화를 늦게 받아. 난 진짜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았잖아!
이윽고 전화를 받자 걱정을 해주는 건지, 화를 내는 건지 알 수 없는 남궁연의 목소리가 귀청을 떨어뜨릴 기세로 터져 나왔다.
“아 그렇지 않아도 방금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래? 얼른 나와. 나도 방금 네 호텔 방 앞에 도착했거든.
“예. 알겠습니다.”
새 구두가 뻑뻑해 다소 시간을 잡아먹었지만, 나는 그래도 늦잠을 잔 것 치고는 순식간에 모든 준비를 마쳤다.
-벌컥.
곧바로 문을 열자. 정말로 남궁연 소위는 문 앞에 서 있었고 그녀는 당장이라도 나를 끌고 나갈 기세로 내게 성큼성큼 다가왔지만,
“얼른 가자 건우야 지금 협회분들이···. 어어?”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는 나를 멍하니 바라본다.
뭔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천천히 위, 아래 고개를 움직이며 나를 맹한 눈으로 바라보는 남궁연.
“왜 그러십니까?”
“어, 어? 아니야. 아무것도 그보다 어, 얼른 가자! 밑에서 협회분들이 기다리셔!”
갑자기 왜 그러는 것인지 의아해진 내가 묻자, 그녀는 5초나 그렇게 굳어 있었으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휙 돌려서 걸음을 서둘렀다.
그렇게 움직이는 남궁연의 귀는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지만, 굳이 언급하기에는 시간이 급하니 그냥 못 본 것으로 하기로 했다.
“예. 서두르죠.”
***
심각한 국가 전복 사태로 의심되는 대대적인 테러가 자행된 지 벌써 이틀, 협회는 이러한 테러 행위에 대해 엄중히 대응할 것을 선언하며 기자 회견을 열었다.
-...때문에 아직 자세한 진상은 조사 중이나, 확실한 것은 10여년 전 종교와의 전쟁으로 자취를 감췄던 ‘휴거교’가 다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침착하고 엄중한 어조로 능숙하게 기자회견에 임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협회의 부협회장 이초희.
늘 대리인을 통해 입장을 발표하던 협회가 중요 인물을 단상에 세운 것이다.
지금껏 협회에서 협회장 혹은 부협회장이 직접 기자회견장에 나타날 때면 항상 엄청난 소식을 발표하는 순간뿐이었고···.
기자들은 이초희의 모습을 보자마자 바짝 긴장한 상태로 그녀의 말을 받아 적고 있었다.
사안의 엄중함 때문인지, 부협회장의 등장 때문인지 기자회견장의 분위기는 상당히 살벌했다.
‘휴거교’의 재림.
충격적인 헤드라인이 터져 나왔음에도 눈만 크게 뜨거나 입만 떡 벌리고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는 등. 기자들은 아무런 소리도 내질 않았다.
누군가 작은 소음이라도 내서 이초희의 발표를 한 토시라도 듣지 못하게 되면, 그 누군가를 찾아내 직접 패주겠다는 의지가 엿보일 정도로.
-휴거교도는 극악무도한 사이비 집단이며 명명백백한 이 사회의 암 덩어리입니다. 때문에, 저희 헌터 협회와 군은 하루빨리 이 단체를 국내에서 척결하기 위해 ‘신성 바티칸’에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이윽고, 휴거교 재림에 이은 거대한 헤드라인이 발표된다.
‘한국, 바티칸에 협조 요청!’
그저 글씨로 적은 것만으로도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주변국이 들썩일 만큼의 빅 뉴스였다.
그러자 손을 눈보다 빠르게 움직이며 미친 듯이 메모를 이어가는 기자들.
허나, 그 사이사이, 기이하리 만치 손이 느린 이상한 이들이 있었다.
평소 착용하지도 않는 안경을 끼고 펜과 수첩을 높게 들어 은근히 얼굴을 숨기면서 주변을 주의 깊게 살피는 그 여기자는, 기자가 아닌 남궁연 소위였다.
마찬가지로 남궁연 소위와 정 반대편, 기자회견장 구석에서 냉철한 눈으로 기자들을 바라보는 남자, 이건우까지.
두 사람 외에도 이 기자회견장에는 기자처럼 변장한 협회의 요원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건우의 전생,
‘휴거교’라는 집단은 무시무시한 저주와 결계 그리고 막대한 무력을 휘두르는 집단이었지만, 그들의 진짜 무서운 점은 바로 언론의 힘이었다.
1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에 걸쳐 ‘휴거교’에서 가장 먼저 파고든 집단은 다름 아닌 신문사와 방송사.
그들은 ‘휴거교’에 대한 소식이 나올 때면 언제나 다른 계열의 이슈를 터트려 이를 무마했으며,
-휴거교 과연 절대적인 악인가.
이러한 기괴한 주제의 칼럼을 주기적으로 업로드, 일반 시민들이 협회를 의심하고 사설 용병대를 불신하도록 유도해왔다.
모든 건, 국내의 모든 방위권을 ‘군’이 장악하기 위해서 말이다.
군 수뇌부에 숨어든 휴거교의 스파이.
휴거교에 이로운 여론을 조성하는 언론.
마지막으로 군과의 전투에서만, 의도적으로 패배해 매번 물러나는 휴거교까지···.
건우의 전생에서, 이 같은 여론 조작은 한국 사회를 아주 제대로 좀먹었고.
결과, 겉으로는 적이나 뒤에서는 막대한 부와 인신 공양을 위한 제물을 제멋대로 주고받는, 아주 끔찍한 사회가 완성되었었다.
하지만 그 지옥을 두 눈으로 보고 돌아온 건우는 안다.
그 같은 지옥도가 벌어지는 걸 막기 위해서는 서둘러서는 안 된다는 점을 말이다.
이어, 신성 바티칸과의 협약을 주제로 한 기자들과의 질의응답 시간이 끝나고 드디어 건우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간이 찾아왔다.
-그럼, 마지막 발표입니다.
큼지막한 소식을 두 가지나 공표했으니 기자들은 대부분 이대로 이번 기자회견이 마무리 되리라 예상한 눈치였는데,
돌연 부협회장 이초희가 아직 무언가 남았음을 선언한 것이다.
금세 기자회견장은 다시 막중한 중압감에 휩싸였다.
-지금까지 저희에게 중요한 정보를 전해주었다는 그 ‘신뢰할 수 있는 정보원’의 정체를 공개하겠습니다.
“어?”
“그, 그래도 되는 건가?”
“아니, 정보원이면···.”
이번만큼은 끝내 참지 못하고, 이런저런 웅성거림을 쏟아내기 시작한 기자들.
이건 이 자리에 모인 모든 기자가 질문해봤자 어차피 공개할 수 없다는 대답을 듣게 될 게 뻔해 애초에 묻지도 않았던 정보였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적의 정보를 가지고 오던 정보원의 정체를 공개하겠다니···.
그건 정작 그 정보원의 가치를 스스로 없애는 일일뿐더러, 자칫 잘못했다간 그 정보원이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미친 짓이었다.
“도대체···.”
“...부협회장은 왜?”
숱한 의문이 충분히 웅성거림이 퍼져 나갈 그 무렵, 이 같은 불안과 의아함을 직면한 이초희 본인마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기자회견장의 구석을 바라보았고···.
그 시선 끝에 서 있던 이건우는 이초희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일급 기밀 정보를 조달해 협회를 비롯한 국가의 안녕에까지 이바지한 정보원. 이건우 상병입니다.
“...내가 잘못 들었나?”
“상병...?”
“뭐야, 그럼 헌터군이라는 거야?”
“각성한 지 2년도 안 된 햇병아리가 일급 기밀 정보의 정보원···?”
“이런 머저리 같은 놈, 당연히 불법 각성 미신고자였겠지!”
앞선 두 발표보다 더 충격적인 이초희의 선언에 이젠 대놓고 큰 소리를 내며 놀라움을 표하는 기자들.
건우는 그런 그들의 반응을 무미건조하게 바라보며 유유히 단상을 향해 걸어 나갔고, 아주 자연스럽게 이초희의 옆에 나란히 섰다.
그제야 단상으로 다시 쏠리는 이목.
‘정보원’이랍시고 나타난 남자는 베테랑 기자들의 눈에 너무나도 어려 보였기에, 기자들은 표정으로 수많은 물음표를 띄웠다.
그러나 이어지는 충격 선언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안녕하십니까. 대한민국의 7번째 S급 헌터로 판명된 상병 이건우라고 합니다.
기자들의 얼굴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목격했다는 듯 단번에 일그러졌다.
똬리를 트기 시작한, 오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