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26화 (26/175)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26화

세계 최대 규모의 ‘물재생센터’를 두고 있는 서울의 하수도는 그 크기가 넓고 방대하다.

구조도를 가지지 않은 인간이 아무 생각 없이 발을 들였다간 2시간, 아니, 3시간은 족히 걸릴 법한 흡사 미궁과도 같은 위용.

‘질병의 형태’를 취하고, 마흔다섯 쌍에 달하는 쥐의 눈으로 길을 찾지 아니했다면, 황준필 본인마저 길을 잃었을지도 모르는 그런 장소가 바로 이 하수도였던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저 자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가.

시퍼런 안광을 빛내며, 그저 무감정한 표정을 짓고서 아주 당연하다는 듯 목사 황준필을 추적해낸 것이다.

이건우라는 자가.

애시당초 이건우는 처음부터 황준필이 언제라도 쥐의 형상을 취하고 도망을 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눈치였다.

그러니 저 자가 목사를 추적해 오는 건 어쩌면 필연.

황준필에게 남은 선택지는 1분 1초라도 빠르게 저 ‘약자’의 숨을 끊어버리고 이 자리를 떠야만 한다는 것 하나뿐이었다.

발이 빠른 김용운이 따라붙기 전에,

그리고 전면전으로는 일말의 승산이 없는 철혈검희가 이곳에 당도하기 전에 말이다.

“네놈이 어찌 휴거교의 기물인 호접지몽에 대해 아는지는 모르겠다만은···. 단독으로 이 몸을 추적한 너의 그 아둔한 판단을 땅을 치며 후회할지어다.”

목사 황준필은 전신에 마나를 크게 끌어올리며 일전의 육신이 가지고 있던 것과 똑같은 생김새의 새카만 완드를 꺼내 들었다.

그러나 이를 마주 보는 건우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말했다.

“글쎄···. 쥐새끼 하나 잡는데 여럿이 몰려다닐 필요가 있나?”

“이, 이 무엄한 것!”

거센 호통을 내지르는 것과 동시에 목사가 크게 휘두른 팔에서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검은 쥐.

-취이이이익!

그것들은 출현과 동시에 역한 체취를 풍기며 하수도의 사방을 내달렸다.

「검은 죽음을 부르는 시궁창의 온갖 불결한 것들이여.」

마치 목사의 그림자가 늘어나는 것만 같은 풍경과 동시에 이어지는 ‘기도’에 검은 쥐들의 움직임은 더더욱 빨라져만 갔다.

이를 냉철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이건우는 뒤로 크게 도약하며 뇌격을 ‘방출’했다. 제어를 받지 않은 전격은 무질서하게 뻗어 나가면서도 목사의 머리를 정확히 노렸지만,

-취이이이익!

고압 전류에 노출되어 쓰러지는 건 수 마리의 검은 쥐뿐이었다.

자신만만하던 이건우의 후퇴.

이를 묘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목사는 순식간에 현 상황에 관한 판단을 끝냈다.

무슨 꾀가 더 남았을지는 모르겠다만, 역시 이건우의 최종 목적은 어디까지나 시간 끌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언제 도주할지 모를 상대를 눈앞에 두고 후퇴라니.

정면대결에 승산이 없음을 놈도 잘 아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저 오만한 태도는 허장성세.

무언가 수가 더 있으리라는 의심을 불러일으켜 목사 황준필로 하여금 시간을 낭비하게 만들려는 수작임이 분명했다.

“흐, 흐흐흐흐. 그래. 넌 분명 범상치 않은 놈이 맞구나. 계시를 엿보았으며, 나를 여기까지 추적하고, 자신의 주제 파악까지 제대로 하는 것을 보니 말이다···.”

“글쎄”

“하! 그래, 그렇겠지. 어떻게든 손속에 꾀가 남아 있다는 티를 내질 않으면, 당장에 나가떨어질 약자이니까!”

목사 황준필에게 두려운 존재는 어디까지나 김용운 중령과 철혈검희지, 눈앞의 꼬맹이 녀석이 아니었다.

황준필은 그리 외치며 돌연, 큰 보폭으로 이건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취이이이익!

-찍! 찌직!

양팔에서 검은 쥐와 회색 쥐의 세례가 쏟아져 나왔다.

빠르고 유동적인 질병이 이건우라는 단 한 명의 군인을 향해 쇄도하는 순간이었다.

그때, 이건우는 피식 미소를 짓는다.

“지금입니다!”

미소와 동시에 그가 외친 한마디.

‘...은신한 군인이 더 있던 건가!’

머리를 관통하는 생존 본능.

황준필은 자신이 마나를 감지해내지도 못할 만큼의 강자가 등 뒤에 있을지 모른다는 공포에 서둘러 인간의 형상을 버리고 쥐의 형상을 취했다.

-취이익!

-취이이익!

갑작스러운 탈피에 쥐들은 엉망진창, 아비규환에 휩싸이면서도 마흔다섯 조각으로 쪼개어진 황준필은 보았다.

자신이 서 있던 그 바로 뒤에는,

아무도 없음을.

‘...?!’

정신을 다시 정면으로 집중하자, 보이는 것은 쥐들의 수많은 눈을 가득 채울 만큼의 시퍼런 뇌광.

-파지지지지직!

소름 끼치는 전격의 파열음이 쪼개어진 황준필을 뒤흔들었다.

“말했을 텐데···. 쥐새끼 하나 잡는데 사람이 여럿 몰려다닐 필요는 없다고.”

짧은 읊조림과 함께 이건우는 지금껏 몇 번이고 방출했던 전기와 감히 비견하기도 힘들 정도의 강한 전격을 수차례 더 내뿜어 연속적인 공세를 가했다.

-취이이이이익!

그것이 전격의 파열음인지 쥐의 비명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는 아비규환이 펼쳐졌다.

하지만 몇 번이고 전격에 몸을 떨어가면서도 건우에 비해 레벨이 한참 높은 목사 황준필은 이성을 되찾았고, 삽시간에 자신의 분신체들을 불러모아 다시금 인간의 형상을 취했다.

전격의 파도 속에서 정신을 차리고 일어난 일곱 명의 목사.

아이, 노인, 여자, 남자.

각자 모습은 모두 달랐지만, 그들은 모두 역안을 가진 목사 황준필이었다.

“감히!!”

고개를 드는 것과 동시에 빼든 새카만 완드.

그 끝에서부터 쏟아져 나오는 건, 새빨간 광택의 피 가시였다.

「간악한 자의 눈을 멀게 하시고」

「간악한 자의 눈을 멀게 하시고」

「간악한 자의 눈을 멀게 하시고」

동시에 고장 난 오르골처럼 한 구절의 기도문을 반복해서 읊는 분신체.

그것들의 눈에서는 거무죽죽한 피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강한 저주의 영향인지 건우의 눈에서도 피가 쏟아지며 시야가 완전히 차단되고 말았다.

갑작스러운 저주와 아주 잠깐의 틈도 없이 쇄도하는 거대한 피의 가시까지.

그야말로 휴거교의 목사급이 아니고서야 펼칠 수 없는 묘기였으며, 필시 적을 사살하기 위한 필살의 전술이 분명했다.

허나 이건우라는 헌터에게 시야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경종을 울리는 ‘위험 감지’.

건우는 가려진 시야 속에서도 주변을 입체적으로 파악했고, 도리어 자신을 향해 날아오던 그 피의 가시를 은빛채찍으로 쳐, 궤도를 비틀어냈다.

“크으으으으으윽!”

비명을 내지른 건 건우가 아니었다.

가슴팍에 피의 가시가 꽂혀 비명을 지르는 황준필의 분신체.

“네까짓게 감히!”

“난, 목사다, 휴거교의 목사란 말이다!”

“죽어라아아아!”

느껴지는 격통에 이성을 잃은 것인지,

혹은 어서 이 상황을 끝내고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마음이 컸던 것인지.

황준필은 모든 분신체에서 검은 역병의 쥐를 쏟아내며 건우를 포위하듯 달려들었다.

물 샐 틈 없이 들어차는 검은 역병.

세상이 암전된 것처럼, 사방에 검은 물결이 휘몰아치고, 단 한 걸음도 물러날 여유가 허락되지 않는다.

하지만 건우는 애초에 뒤를 돌아볼 기미도 없이 그저 어깨에 손을 가져갔다.

이윽고 뿜어져 나오는 건 붉은빛의 안개.

서서히 형태를 갖추는 그것은 새카만 칼날의 흉흉한 기운을 풍기는 마검이 되었다.

“이터널 패인.”

짧은 읊조림과 함께 퍼져나가는 시뻘건 스파크.

이내 허공에서 검을 움켜쥔 건우는 일전 철혈검희 이서영이 그랬던 것과 완전히 똑같은 자세를 취했다.

유검(流劍) 제4형.

선인장의 춤.

수십 번, 사방을 향하는 새카만 도신.

그것에 아주 조금이라도 닿은 쥐들에게는 격통의 저주를 나타내는 새빨간 스파크가 튀고,

건우는 이서영이 그랬던 것처럼, 몇 번이고 검을 고쳐 쥐며 전방위적인 공세를 흘려냈다.

저주에 휘감긴 전류가 수백의 쥐를 찢어발기기 시작한다.

-뇌제···. 꼭 기억하세요. 검사의 호흡은 깊고, 동작은 간결해야 한다는 걸.

먼 훗날, 건우에게 검을 가르쳐 주었던 ‘검제 이서영’의 목소리가 그의 머릿속을 스치자 마검은, 더욱 가속한다.

더 빠르고,

더 간결하게,

방향의 구분을 잊고 그저 휘두르는 것이 아니다.

심장이 뛴다.

박동 한 번에 일로(一路)

두 번째 박동에는 연격(聯擊)

세 번째 박동에는 이미 건우의 호흡을 넘어선 검이 춤을 추었다.

사방에 적을 두고 있음에도,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것은 어떠한 형상.

검제, 이서영이 추던 춤은 언제나 그녀의 심장 박동보다 조금 더 빨랐기에, 건우는 그녀의 흉내를 내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그녀의 검로는 아름다웠고,

세 번의 호흡이 있고 나서야, 건우는 가까스로 머릿속을 채우는 그녀의 형상과 검을 나란히 할 수 있었다.

조금, 아주 조금이라도 그 꽃잎의 나풀거림을 자신의 손으로 표현해내기 위해···.

-푹.

살이 찢기는 섬뜩한 소리가 하수도에 울려 퍼졌다.

일천의 신도를 이끈다는 ‘목사’의 왼쪽 가슴을 새카만 검날이 관통하는 순간이었다.

“허어억, 흐으으으.”

분신체가 당했을 때와는 달리 형언할 수 없는 격통에 몸부림치는, 목사의 동공이 세차게 뒤흔들렸다.

“어떻게···. 이런, 히, 힘을···.”

꺼져가는 홍채의 빛.

시시각각 바스러져 가는 육신과 함께 절규에 가까운 한탄을 토해내는 목사.

그렇게 지천을 뒤덮을 기세로 퍼져 나오던 역병의 근원들은 땅을 굴렀고,

건우는 그저 새파란 눈동자로 그의 최후를 묵묵히 관망할 따름이었다.

***

목사 황준필을 잡았다.

전생에도 놈은 내 담당이었던 터라, 녀석의 습성을 파악하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놈에게 나는 상성이 좋았다.

현재로서는 마흔다섯, 훗날에는 수천 마리의 쥐 떼로 그 형태를 바꾸는 놈과 인접한 모든 것에게 타격을 가하는 전격은 말 그대로 극 상성의 관계였다.

그런데도 놈은 내게서 수십 번이나 도망을 친 전적이 있었다.

그 원인이 바로, 이것.

“드디어 손에 넣었군.”

호접지몽의 펜던트.

20시간에 한 번, 착용자를 죽음에 이르게 할 공격으로부터 지켜주는 전설급 아티팩트.

크기도 작고, 전설급 기물이라면 필시 존재해야 할 고유 마력이 없어 보통의 사람은 보고도 아티팩트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다.

그만큼 은밀하게 지켜지던 ‘휴거교’의 기물로써, 그 능력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착용자가 인지조차 못 한 불시의 일격마저 이 펜던트 앞에서는 아예 없던 일이 되는 것이다.

먼 훗날에는 이 펜던트를 두고, ‘호접지몽’이라는 이름보다 ‘두 번째 목숨’이라고 부르는 이가 더 많았을 정도로 말이다.

“하아아.”

그나저나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처음부터 이 ‘서울역 테러’에 모습을 드러내는 목사가 황준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 같은 작전을 구상한 것이긴 했지만,

만에 하나라도 놈이 위에 있을 철혈검희와 김용운 중령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고 끝까지 침착했다면, 현재 내 스펙으로는 어림도 없는 상대였다.

놈은 교란과 속임수 그리고 장기전에서 빛을 발하는 스킬의 소유자였으니 말이다.

놈을 잡기 위한 조건은 많았다.

나는 놈에게 최대한 얕보여야 했으며,

놈의 판단력을 흐트러뜨릴 현재와 같은 상황을 조성해야 했고,

처음부터 꺼내 들었다면 일을 더 수월하게 풀어갈 수 있었던 ‘이터널 패인’을 끝까지 숨겨야만 했다.

놈은 자신의 목숨이 위험해지면 어떤 짓을 해서라도 탈출을 감행하는 놈이었으니까.

‘그래도 다행이군.’

다행히 앞선 조건들을 어떻게든 충족시키고서, 나는 마흔다섯에 달하는 놈의 본체, 회색 쥐를 모두 박멸하는 데 성공했다.

<알림>

ㅡㅡㅡㅡㅡㅡㅡㅡ

*목사, ‘황준필(Lv. 19)’이 격파되었습니다.

*보스 공략 기여도.

-1위. 각성자, ‘이건우(Lv. 6)’ 72%.

-2위. 각성자, ‘이서영(Lv. 21)’ 13%.

-3위···.

*던전은 클리어되었습니다.

*주의, 본 게이트에는 다수의 보스 몬스터가 발견되었습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

<적정 보상 집계에 더욱 많은 시간이 소요될 예정입니다······.>

이윽고 드디어 서울역 테러의 끝을 알리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휴거교도는 ‘메시지’도 공인하는 몬스터이기에, 게이트를 현현 시킨 목사 혹은 장로 본인이 보스 몬스터 취급을 받게 되는 건, 미래를 기준으로는 상식이었다.

“휴우우.”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으려 했는데. 정말로 목사 황준필이 정말 죽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메시지가 떠오르자, 긴 한숨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상대는 그 끈질김의 대명사 황준필이었으니, 필시 어쩔 수 없는 반응이었으리라.

긴장이 풀리자 피로는 몰려왔지만, 이대로 하수도에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아는 철혈검희 이서영의 성격이라면 분명 지금 현재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니며 나를 찾고 있을 테니까···.

“올라갈까.”

다행히 지금 있는 이곳은 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위치였으니 어려울 건 없었다.

-덜컹!

묵직하게 덮여있던 하수구 뚜껑을 열고 다시 내가 역 내부로 돌아왔을 때, 상황은 이미 다 마무리 지어진 상태였다.

기절한 민간인들을 일렬로 눕히는 작업을 숨 가쁘게 진행 중인 김용운 중령이 저 멀리 보였고,

하수구 바로 앞에는 민간인을 도수운반법으로 들어 나르고 있는 남궁연이 보였다.

“소대장님?”

“엄마야! 어? 거, 건우야! 대체 어디 갔었던 거야!”

“메시지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보스인 목사를 추적해 사살하고 돌아왔습니다.”

“그, 그건 나도 당연히 알지만! 아니, 혼자서 막 그렇게 행동하면 어떻게!”

“놈이 패널티를 감수하고서라도 게이트를 이탈하려는 움직임이 보여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위험하잖아! 만에 하나라도 일이 잘못돼서 네가 위험해지면 어쩌려고 그래!”

아무래도 소대장 남궁연은 나의 안위를 꽤나 걱정해주고 있던 것인지, 나와 눈이 마주친 그 순간부터 눈가가 촉촉해지기 시작했다.

목소리는 엄하게 화를 내고 있었지만, 표정은 당장이라도 울 것만 같다.

그러니 지금은 이성적인 판단이고 효율적인 움직임이고 하는 것보다 우선해야 할 말이 있는 듯했다.

“걱정을 끼쳐 죄송합니다.”

“그래! 다음부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 소대장한테는 꼭 말을 해야 해 알겠지?”

순 말도 안 되는 억지였다.

어찌 실전에서 그런 것들을 하나, 하나 보고하고 있겠는가.

그러나 그만큼 나를 걱정해주었다는 것이니 난 좋은 의미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슬며시 웃으며 남궁연에게 다가가 그녀가 짊어지고 있던 민간인을 훌쩍 들어 올렸다.

“어디로 가면 됩니까?”

갑자기 바짝 붙어 놀란 것인지, 남궁연은 놀란 얼굴이 되었다가 무언가를 설명하려 했지만, 이내 짧은 비명을 지르며 허리춤을 부여잡았다.

“어어···. 아, 저쪽으로 가면, 간의 대피소가 읏!”

“왜 그러십니까.”

바짝 붙어 바라보자, 그제야 그녀의 강화 전투복이 피에 젖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치셨습니까?”

“아아···. 반 토막 나서 날아온 자이언트 엔트의 머리가 그 상태로 날뛰는 바람에···.”

아무리 철혈검희와 김용운 중령의 조합이라도 보스 몬스터 여섯은 완벽히 감당하기 힘들었던 것일까.

다소의 피해는 어쩔 수 없던 모양이다.

그러나 아무리 ‘섬광’ 스킬을 사용하는 중이라 할지라도, 내가 아는 남궁연은 이미 토막 난 자이언트 엔트에게 당할 신체 능력이 아니었다.

필시, 그녀의 상처는 위험지역에서 멀리 떨어지지 못한 민간인을 위해 몸을 던져서 생긴 것이리라.

남궁연이라는 사람은 그런 사람이니까.

“보여 주십쇼.”

“엣?! 뭐, 뭘?”

“상처 부위를 보여주셔야 합니다. 응급처리의 요령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에, 아. 그래도···. 그럼 옷을”

“당연히 전부 벗으셔야 붕대를 감지 않겠습니까.”

장교로서 그리고 ‘대항군’ 시절을 거치며 숱하게 해본 일인지라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는 입술을 달싹거리는 남궁연.

임관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가. 이런 일로 부끄럼 같은 걸 타는 모양이었다.

“죄송하지만 실례하겠습니다.”

“뭣?! 아니, 아니야! 호, 혼자 내가 혼자 할게!”

“안됩니다. 본래 응급처리는 스스로 할 때보다 남이 해줄 때가 더 효율이 좋습니다.”

“이게 효율의 문제니?!”

남궁연은 한사코 거절했지만, 나에게도 물러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지난번 받은 엑스트라 퀘스트 ‘수신의 길’을 이렇게 당당하게 진행할 기회는 많지가 않기 때문이다.

이럴 때라도 착실하게 진행해 둬야지.

그렇지 않고선 언제 퀘스트를 마무리할 수 있을지 감도 잡히질 않는다.

결국 남궁연의 고집을 꺾지 못해, 나는 직접 붕대를 감아주지는 않았다.

대신 나의 역할은 새 붕대를 가져오고 헌 붕대를 수거해가는 것에 그쳤지만, 이것만으로도 목적은 달성되었으니 상관없었다.

그렇게 상의를 탈의한 남궁연을 등지고 서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던 그때,

-빡!

엄청난 충격이 내 머리를 강타했다.

“야!”

이어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그 작은 체구만큼이나 앳된 목소리였지만···.

“언제부터 이병에게 단독 작전의 권한이 주어졌지? 응?!”

이내 정신을 차린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은 인상을 잔뜩 찌푸린 악귀···가 아니라, 철혈검희 이서영이었다.

어쩐지 보이지 않는가 싶더니, 이 넓은 서울역 전체를 종횡무진 하며, 나와 목사를 찾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저 죄송하지만, 이번에 두 계급 특진해서 상병입니다.”

“...그게 지금 중요한가.”

아무래도 농담이 먹힐 분위기가 아닌 듯했다.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대대장들과 함께 움직였다간 전설급 아티팩트를 꿀꺽할 수가 없지 않은가.

“다음부터는 꼭 보고하고 움직여···. 알겠나?”

나를 올려다보면서도 십자핏줄에 단단히 힘이 들어가 있는 이서영.

이만큼 화를 낸다는 것도 다 그녀 나름의 걱정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걸 알기에 나는 순순히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적정 보상의 집계가 완료되었습니다.>

이윽고 떠오른 메시지와 함께, 서울역 내부와 외부를 완전히 차단했던 게이트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여기까지는 나의 예상대로였지만, 단 하나, ‘보상 메시지’ 만큼은 나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난 것이 있었다.

<보상>

ㅡㅡㅡㅡㅡㅡㅡㅡ

*각성자, ‘이건우’는 또 한 번 시스템이 상정한 한계를 초월해냈습니다. 보상 경험치가 대폭 증가합니다.

*주 공략자의 레벨(Lv. 6)이 매우 낮아 보상 경험치가 대폭 증가합니다.

*각성자, ‘이건우’의 경이로운 성과에 <업적>, ‘오버 클럭’의 성능이 다시 한번 강화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

‘어, 업적의 성능이 강화가 된다고?!’

이는 전생에도 들어본 적이 없던, 사상 초유의 사태였다.

“어, 업적이라니!”

“업적이 강화가 된다니, 이미 업적을 가지고 있었다고?”

너무 놀라 입을 떡 벌리고 있던 내 옆에서 나와 똑같이 연달아 놀란 목소리를 내는 소대장과 철혈검희.

<업적>은 그렇지 않아도 쉽게 볼 수 없는 현상인데, 그게 강화가 된다는 메시지를 보았으니 소대장 남궁연과 철혈검희 이서영이 놀라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었다.

또한 나는 속으로 정말 힘차게 쾌재를 내질렀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업적>의 힘으로 신체강화계 헌터와 근력을 나란히 하던 나였다.

그런 상황에 얻게 된 또 한 번의 성장···!

앞으로 이가 만들어낼 파급효과는 분명, 어마어마할 것이다.

<레벨이 상승합니다.>

<레벨이 상승합니다.>

<레벨이 상승합니다.>

이어지는 레벨업 메시지를 보며, 그저 감탄하고 있을 틈은 없었다.

지금껏 나는, 남들이 본다면 눈이 뒤집힐 만큼의 압도적인 성장을 거듭해왔다.

그럼에도 나는 이제 막 각성한 햇병아리의 위치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는데···.

이정도의 성장이라면, 장기적인 미래까지 상정하고 있던 나의 계획을 앞당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전신에 차오르는 압도적인 양의 마력을 감미롭게 받아들이며, 참으로 오래간만에 순수한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

***

누더기를 입은 남자는 걸었다.

하루, 이틀, 다시 나흘, 닷새가 흐르도록, 남자는 발을 움직여 그저 걸었던 것이다.

“오셨습니까.”

이내 도착한 누더기의 사내를 맞이하는 사람은 한 청년이었다. 어리다 못해 그냥 중학생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의 외향을 가진 청년.

“뻑! 야, 포도원장은 어디 있어. 여주부터 시흥을 걸어서 오라? 하, 이 새끼들이 진짜. 너무 쉽게 말하길래 난 옆 동네인 줄 알았다 이 미친 새끼들아!”

행동 하나하나에 기품이 있는 청년과 반대로 경망스럽게 누더기를 펄럭거리며 악을 지르는 남자.

“모두 순례의 일종이니까요.”

“순례? 순례?! 이 새끼가? 오냐. 순례에는 피가 필요하다는 게 네놈들 교리였지? 자 어디, 지금 여기서 피 좀 흘려볼까?!”

웃는 얼굴로 대응하는 청년의 멱살을 잡아채는 남자, 알프레드 아들러.

그러나 특급 테러리스트에게 멱살을 잡히고도 청년의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는 일은 없었다.

-끼이이익!

그때,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음에도 저절로 열리는 거대한 철제 대문.

분명 알프레드의 눈에는 그 철제 대문 사이사이로 보이는 풍경이 산으로 이어지는 비탈길에 지나지 않았는데···.

“하? 이건 또 뭐야.”

열린 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사람보다 두 배, 세 배는 족히 넘을 크기의 포도나무들이 빽빽이 즐비해 있는 거대한 ‘포도원’이었다.

“주교께서 기다리십니다. 메시아의 사절이여.”

멱살을 잡혀 반쯤 들어 올려진 상태로도 공손한 태도로 안을 가리키는 청년.

알프레드는 그런 청년을 보며 질린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고는 거칠게 그를 바닥에 내던지고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인식 저해, 인지 변곡, 환각에 환청 결계까지···?”

참, 지랄도 다채롭게들 떤다.

알프레드는 그런 생각을 굳이 속으로 삼키며 울창한 숲이나 다름없는 포도원을 가로질렀고 드디어, 자신을 이 한국으로 부른 장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왔나.”

창백할 정도로 새하얀 피부와 날카롭게 돋아난 송곳니, 그리고 그 무엇보다 그가 ‘인간’이 아니라는 증거인 적안을 번뜩이는······.

‘휴거교’의 주교를 직접 대면하게 되었다.

7번째 S급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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