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24화 (24/175)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24화.

무려 넷이나 되는 거대 집단으로부터 건우가 후원을 약속받은 지 일주일.

그가 소속되어 있던 1중대의 모든 인원은 바짝 긴장한 얼굴로 행정반 앞에 모여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끼이익!

이윽고 중대장실에서 걸어 나오는 중대장과 행정보급관, 두 간부의 손에는 각각 한 장씩 두 개의 종이가 들려 있었다.

-꿀꺽.

이 자리에 모인 인원들이 어찌나 긴장했는지 이곳저곳에서 마른 침을 삼키는 소리가 연신 들려올 지경이었다.

이윽고 행보관은 병사들의 앞에서 섰고, 그는 은근히 즐거운 눈치로 병사들을 쓱 훑어보다 말했다.

“병장들부터 할까 이병들부터 할까.”

““아아아!””

“행보관님 저희 이러다 심장병으로 먼저 죽겠습니다.”

“떨리냐?”

“엄청 떨립니다.”

“이번에는 진짜 이병들부터 병장 라인까지 전부 고생했지 말입니다.”

“안다, 알아. 어휴 이 새끼들. 고맙다. 이놈들아 너희 덕분에 중대장님하고 나 보너스까지 탔다. 뭔 소린지 알아들어?”

“그, 그럼 진짜···!”

병사들은 무언가를 기대 해도 좋을 거라는 행보관의 말에 감격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이를 옆에서 지켜보던 4소대의 소대장, 남궁연의 눈에도 이번 1중대원들은 정말 운이 좋았다.

정말 갑작스레 대다수의 인원이 유행처럼 운동을 시작했고, 때마침 여단장 지침으로 다음 달에 내정되어 있던 진급 시험과 등급 재측정을 앞당겨 진행하게 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한 ‘이병’이 계속해서 공을 올리는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았단 이들이다.

다른 중대, 하물며 타 대대조차 측정 내내 1중대의 사기를 따라오진 못했다.

누가 봐도 달랐으며 실제로 성과 역시 뚜렷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이러한 긍정적인 변화의 근원에는 한 병사, 한 D급 헌터가 있음을 부정할 수 있는 이는 없을 것이다.

이병 이건우.

모의 전투에서도 체력 측정에서도 가히 압도적인 행적을 보여주었던 그에 대해, 모든 1중대원들은 본인의 승급 다음으로 많은 관심을 보내고 있었다.

“그럼 발표하겠다. 그냥 원래 순서대로 병장부터 할 테니 잘 들어. 병장 곽철진 A.”

“와자자아아아!”

“병장 이대욱 B+”

“됐어어어어!”

행보관의 한마디, 한마디에 주먹을 꽉 움켜쥐며 함성을 내지르는 병장들.

그들에게 있어 협회와 군이 공동으로 주관하는 등급 측정은 이제, 코앞으로 다가온 전역 후 어떤 인생을 보낼지를 뒤바꾸는 절대적인 지표나 다름이 없기에.

축하하면 축하를 했지 그 격렬한 반응에 주의를 주는 간부는 없었다.

이어지는 발표에도 함성은 이어진다.

병장들은 이번 측정이 가히 마지막 기회였으니까.

누구보다 온 힘을 다해 테스트에 임했던 것이다.

하지만, 다소 의외인 것은 이번 병장 라인 중에서도 큰 폭으로 등급이 재조정된 인원들은 본래 B- 혹은 C+와 같이 어디다 내놓아도 어중간한 그런 인원들이었다는 것이다.

본래라면 매일매일을 그저 대충, 기력 없이 축 늘어져 보냈을 그들이 변했다.

마찬가지로 상병의 발표가 이어지자 미친 듯이 날뛰는 병사들은 더욱 늘어났다.

“으아싸! 김 병장님? 저 B-급으로 승격됐습니다! 내가 B급이라니!”

“내, 내가 잘못 들었냐? 홍 상병님! 홍진웅 상병님 B+로 승격되셨답니다!”

“지, 진웅이 원래 C-급 아니었어?”

“한 번에 다섯 계단을 오른다고?!”

“이건 여단급으로 뒤져봐도 아예 없던 일 아닙니까?!”

가장 눈에 띈 변화를 보여준 홍진웅 상병부터,

“거, 건우야! 나도 C-로 올랐어! 드디어 지긋지긋한 D급에서 탈출했다고!”

그 과묵한 김장훈 일병이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뛸 정도의 소식들이 마치 폭죽처럼 펑펑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오는 것이다.

“다음 이병···.”

이윽고, 마지막.

이병들의 차례가 되자, 1중대의 장병들은 거짓말처럼 입을 싹 닫고 조용해졌다.

천천히 입을 움직이며 행보관이 호명한 병사의 이름은 다름 아닌 이병 이건우.

이 모든 변화를 촉진 시키고 다른 인원들을 고무시킨 장본인의 차례가 드디어 온 것이다.

“이병 이건우는 우선, 여단장님이 직접 주신 7박 8일의 포상 휴가를 받았다. 거기에 타인의 모범이 되고 남들은 감히 해낼 수 없는 대업들을 꾸준히 세운 바, 그 공로를 인정받아 두 계급 특진을 임명하니···.”

잠시 말을 멈칫거리는 행보관.

아무래도 여단으로부터 내려온 공문을 스스로 읽고도 자신의 눈을 의심하는 눈치였다.

이내 행보관이 뒤늦게 입을 열었을 때, 형언할 수 없을 만큼의 어마어마한 소름이 전 중대원을 훑고 지나간다.

“금일 이 시간 부로 이건우는 A+급의 상병이 되었다.”

단 1초, 침묵으로 물들어 있던 병사들의 입은 정말 동시다발적으로 열렸다.

“...헐!”

“미, 미친 이거 진짜냐!”

“이건우 너···.”

“대박, 이건 대박!”

“전쟁도 없는 시대에 두 계급 특진이라고?!”

“아니 그 전에! 말이 되냐고! 건우는 D급이었잖아!”

“이, 이건 얼른 다른 대대에도 알려야 해!”

“대체 몇 계단이 오른 거야!”

“아, 아홉···! 아홉 계단이나 올랐잖아!”

“전쟁 없는 이 시대엔 진짜 최초 아냐?!”

“최초야. 진짜 최초야!”

대체 어째서인지 아홉 계단 등급 상승에 두 계급 특진을 받은 이건우 본인보다 같은 중대원들이 더 놀랐다는 듯 눈을 부릅뜬다.

허나, 그도 그럴 것이 너무 놀라 당혹감에 눈을 부릅뜬 중대원들의 말에는 틀린 점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일과 없다. 대대장님 명령이다. 여단에서 전체 1등을 달성한 우리 1중대는 오늘 온종일 먹고 노는 거다. 알았나!”

““와아아아아!””

““예!””

그야말로 축제가 열린 것 같은 풍경이었다.

***

S급이 아닌 A+등급.

그것은 여단장의 아이디어였다.

아직 온전한 S급이 되지 못한 내가 괜히 여러 정치적, 경제적 문제에 얽혀 불필요한 장애물을 만들게 될지 모르니 아직은 세상에 ‘이건우’라는 존재를 제대로 공표하지 말자는 이야기였다.

만일 나를 한 번의 선전도구로 쓰고 버릴 심산이었다면 나올 수 없는 발상과 배려.

이는 내가 이젠 그들의 바운더리에 어느 정도 발을 담그게 된 증명이었기에 나는 아무런 반발 없이 그 의견을 적극 수용하기로 했다.

그나저나,

여단장이 아이디어를 내고,

부협회장이 언론 통제를 논하며,

두 정상급 용병대에서 내가 정체를 숨기고도 지금과 같은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게 국보급 아이템을 선뜻 약속하는 그 풍경은···.

다시 떠올려봐도 진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이 나라의 올스타전이라 불리우는 사람들이 한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나를 위해 궁리하는 모습이라니···.

“건우! 축제의 주인공이 여기서 혼자 뭐해~”

그때, 내가 홀로 들어와 있던 생활관 문을 노크도 없이 열고 들어온 소대장 남궁연이 그녀답지 않게 콧소리를 내며 말을 건네왔다.

평상시에도 병사들과 거리감을 두지 않는 간부로 유명한 그녀지만, 지금 상태는 뭔가 이상했다.

“소대장님···. 혹시 술 드셨습니까?”

“어엉? 아냐! 술 안마셨어~!”

아무리 오늘이 축제의 날이라 할지라도, 공식적으로는 술을 반입할 수는 없었을 테니 마셨다 해도 한잔 정도일 텐데···.

덜컥.

그런 생각을 하던 중 갑자기 내 옆자리 의자에 앉는 소대장, 역시나 미약하지만, 알코올의 향이 코끝을 스쳤다.

“그나저나 건우! 이번 포상 휴가 이틀 뒤에 나간다면서! 나도 그날 나간다?”

“알고 있습니다.”

“어어? 알고 이써써? 그럼 혹시, 누나랑 같이 나가려고 건우가 일부러 날짜를 맞춘 건가아~?”

장난스러운 어조로 그리 말하면서도 왜인지 손가락을 배배 꼬는 남궁연.

“뭐, 비슷합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태연한 태도로 답했다.

이번 남궁연의 휴가 기간은 휴거교도들의 ‘그 날’과 겹치기에, 대대장에게 부탁해 일정을 조율했던 것이다.

“머어?! 진짜야? 그러면 건우야. 밖에서 나, 나랑 술 한잔할래?”

지금도 몇 잔 마시지도 않았을 텐데 이 상태인 것을 보면, 밖에서 작정하고 마셨다간 아예 땅바닥을 굴러다니게 될 것 같았지만,

어차피 그녀의 이번 휴가에는 참 슬프게도 술을 마시고 놀 시간이 1분도 없을 예정이었다.

“아니요. 저는 일이 조금 있어서요.”

“으응? 나, 나하고 일부러 맞춘 거 아니었어···? 그럼 나 친구들하고 마신다? 치, 친구 중에 남자애들도 많다?”

“예. 즐겁게 다녀오시길 바랍니다.”

왜 그렇게까지 자신의 인맥이 넓은지를 강조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그녀는 술자리는커녕, 그 근처에도 가지 못할 것이다.

“아니, 아니이! 건우! 내가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잖아아아~”

그러나 남궁연은 나의 태평한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내 어깨를 양손으로 붙잡고 마구 흔들며 앙탈을 부렸다.

왠지 모를 행동에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도리어 부끄럽다는 듯 남궁연은 새빨갛게 얼굴을 물들이며 더 성을 냈다.

그런 어린아이 같은 남궁연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새삼 눈앞의 그녀가 아직은 20대 중반에 불과한 미성숙한 사람이라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남궁연이라도 그녀가 가진 스킬, ‘섬광’은 이번 ‘테러’에서 아주 중요한 문제를 해결해줄 열쇠가 된다.

“많이 취하셨습니다. 대체 얼마나 드신 겁니까?”

“몰라! 몰라! 말 안 해.”

“음···. 제대로 기억하실진 모르겠지만, 혹시 갑자기 협회 차량이 소대장님을 찾아가면 그냥 바로 탑승해주시길 바랍니다.”

“응? 협회에?”

혹시라도 전생과 다른 휴가 일정을 보내다 현장에 늦을 것을 염려한 나는 그리 말했고, 남궁연은 ‘협회’라는 단어에 관심을 가진 듯 큰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며, 내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져대기 시작했다.

뭐···. 이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걱정이 되긴 했지만, 사실 큰 문제는 없으리라.

전생에도 그녀는 늦지 않게 현장에 도착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테러가 일어나는 그 날, 내가 고대하던 ‘히든피스’를 가진 놈도 드디어 모습을 드러낼 테니···.

나는 놈의 물건을 꼭 손에 넣을 것이다.

***

“모님···. 사모님···!”

흐릿한 시야와 어지러운 머리, 그 와중에도 귀를 따갑게 때리는 친숙한 목소리까지.

분노의 연금술사 아니, 현재는 그냥 솜씨 좋은 연금술사로 불리는 황미경은 깊게 잠들어 있던 의식을 갑자기 각성시키며 고개를 훅 들어 올렸다.

“까, 깜짝이야!”

미경의 머리카락에 무언가 스치는 느낌이 나는 것과 거의 동시에 터져 나온 비명.

아무래도 머리가 부닥칠 뻔했던 것을 상대방이 헌터 특유의 순발력으로 피한 모양이었다.

“어, 있었니?”

그제야 눈을 제대로 뜨고 눈앞에 있는 중무장의 남자를 바라보는 연금술사.

중무장 한 남자는 황미경의 태연한 반응에 멋쩍게 한숨을 픽 내쉬며 한탄에 가까운 잔소리를 내뱉었다.

“잠은 침대에서 주무시라니까요. 계속 이러시면 사모님과 전속 계약한 저희 ‘반월’의 체면이 안 살잖아요.”

그는 다름 아닌 연금술사 황미경과 전속 계약을 맺은 중견 용병대, ‘반월’의 용병대장이었다.

그는 젊은 나이에 혼자서 용병대를 차리고도 스무 명이 넘는 대원들을 통솔하는 꽤나 유능한 사람이었다.

“아이고, 일 때문에 바빠서 그렇지. 내가 또 일하면서, 내가 뭐 하는 건지 모르는 건 절대 못 참는 거 알잖니.”

“그야 뭐 알지만요···. 그래도 저희를 고용하신 날부터 오늘까지 제조실에만 계신 것도 좀···.”

“괜찮아, 괜찮아~ 이번 의뢰 보수가 좀 많아야지.”

“의뢰자가 현직 헌터군 병사라고 하셨었죠? 그런데, 몇억을 턱하고 내놓는다니···.”

“쓰읍! 우리 이 사장님한테 뭐라고 할 생각은 하지도 말고! 이건 우리 반월 단장이라 해주는 말인데······. 사장님은 보통 병사랑은 차원이 다르다니까?”

“...그런가요.”

영 미덥지 못하다는 얼굴의 반월단장.

그러나 그는 연금술사 황미경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자기주관이 확고한 사람인지 잘 알기에 뭐라고 더 덧붙이지는 않았다.

실제로, 그 이건우라는 군인의 경고대로, 이번 의뢰 물품에서부터 뜬금없이 블랙 고블린이 튀어나는 모습을 직접 봤기에 뭐라고 할 말이 없기도 했고 말이다.

“...그래서 그 물품은 잘 제조가 되고 있나요? 5억이 넘는 성수를 때려 박았으니 뭐라도 돼야 했을 텐데요···.”

저주를 해주 하는 데 쓰이는 바티칸 제국의 주요 수출품, 성수.

과하다 싶을 정도로 비싸며 그 양도 적어 ‘저주’를 다루는 ‘휴거교’가 자취를 감춘 뒤로는 잘 쓰이지도 않던 아이템이었다.

그런 것에 5억 아니, 6억 이상의 돈을 때려 붓다니, 심지어 사람에게도 아니고 이상한 광택의 돌덩어리에···.

반월단장은 이번 의뢰자가 정말로 돈이 썩어 넘치는 대부호의 자식이거나, 아니면 그냥 머리가 비상한 미친놈이라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러나 고용주, 연금술사 황미경의 이어지는 대답은 놀라웠다.

“아, 그래! 말 잘했어. 그래. 나도 어젯밤에 보고 진짜 놀랐지 뭐니?”

“뭐 색이라도 조금 변했나요?”

“조금 수준이 아니야. 이거 볼래?”

“예?”

놀라는 반월단장과 후줄근한 차림에 잔뜩 떡 진 머리는 신경도 안 쓰는지 신난 얼굴로 일어나 황미경은 제조장의 기다란 테이블 위, 덮여있던 헝겊을 치웠다.

“짠!”

“...!?”

메시지를 통해 보아도 월혈석(月血石)이라는 고유의 이름을 가지고 있던 새빨간 타원형의 크리스탈 아이템.

그 용도를 알 수 없음은 물론이고,

이번 의뢰품은 형언할 수 없는 꺼림칙한 기운에 휩싸여 있어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해괴망측한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지금 반월단장의 눈앞에 놓인 물건은 대체 뭐란 말인가.

총명하게 빛나는 광택과 깨끗한 표면,

거무죽죽한 피처럼 물들어 있던 색이 이제는 완전히 맑아져 아름다운 노을빛을 띠고 있었다.

“...”

“놀랐지? 근데 그게 끝이 아니란다. 한번 마나를 집중해서 봐보렴.”

놀란 반월단장은 자연스레 연금술사의 말을 따랐고, 이내 그는 두 눈을 크게 뜰 만큼 놀라고 말았다.

성혈석(聖血石).

분명하게 떠오른 아이템 메시지.

그러나 뭔가 이상했다.

“아이템의 이름이···. 바뀐 건가요? 다른 아이템을 가져다 놓으신 것도 아니고 정말 한 아이템에 두 가지 이름이···?”

주인과 함께 성장하는 무기나 에고 소드에 대한 소문은 들어봤어도, ‘메시지’가 표기해주는 이름이 완전히 변하는 건, 난생처음 보는 현상이었다.

“아이고 의심도 많아라, 네가 그랬잖니. 난 이 제조실에서 나간 적이 없다고.”

“그건, 하···. 그렇네요.”

연금술사 황미경의 말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실제로 그는 의뢰품을 받고 성수 공급처와 계약을 맺은 후로는 제조실에서 나온 적이 없었으니까.

“이게 대체···.”

놀라는 반월단장. 그러나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에 대해 의문을 표하기도 전에 갑작스러운 일이 일어났다.

-두두두두두두두두!

엄청난 풍압을 내뿜으며, 굉음을 내는 무언가가 빠르게 이 건물을 향해 다가온 것이다.

“다, 단장! 이 공방을 향해 헬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헤, 헬기라고?”

이 ‘장인들의 거리’에 헬기라니.

장군급 인사나 협회장이 납시는 것이 아니고서야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설마, 지나가는 길이겠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발 빠르게 이 공방을 나서는 반월단장.

내려가자 반월대원 모두가 단장과 같은, 도저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상공에 뜬 헬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내 그 의문의 상황의 끝을 고하듯 나타난 것은 기다란 마나 로프를 타고 내려온 한 군복의 남자였다.

“반월의 분들이시군요. 반갑습니다. 이건우입니다.”

건장한 체격에 잘생긴 외모, 거기에 듣던 바와는 달리 상병 계급장을 달고 나타난 그는 이 기상천외한 상황 속에서 유일하게 평온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 예···.”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대화를 나눠보는 거로 하죠. 지금은 제가 좀 바빠서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

그리 말하며 건우는 반월단장을 지나쳐 공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미 그 상황에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 된 반월단장이었지만, 이어지는 상황에는 입이 떡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데 연금술 명인이 있다고?”

“부협회장님 원래 은둔 고수와 기연 같은 것들은 이렇게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있기 마련이지요.”

“흠···.”

대체 어느새 저 상공으로부터 내려온 것인지.

인기척도 없이 나타난 세 명의 랭커.

이초희, 조성우, 정진권이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한번 만나기 위해 1년은 족히 기다려야 할 살아있는 전설들.

그들이 도대체 어째서 수상쩍은 돈을 턱턱 내놓는 이건우란 자와 함께 나타났다는 말인가.

그렇게 반월단장이 자신의 상식을 벗어난 풍경에 놀라 당황해하는 사이,

어느새 자신의 볼일을 마친 이건우는 연금술사 황미경과 함께 공방에서 나와 서로 감사의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예상했던 그대로네요.”

“아이고, 사장님. 앞으로도 연금술이 필요한 때가 오면 꼭 저를 불러주세요. 아셨죠?”

“물론이죠.”

그러다 반월단장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은 바쁘다며 자리를 옮기는 이건우.

그는 마치 자신이 세 랭커들과 동등한 위치의 인간이라도 된다는 듯이 아주 자연스럽게 그들과 대화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그저 어안이 벙벙한 태도로 바라보던 반월단장.

그의 귓가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다섯 지역의 이름이 스쳤다.

“...그러니까 강원, 인천, 세종, 울산, 서울, 이렇게 다섯 곳이라는 거지?”

앙칼진 부협회장 이초희의 목소리.

그리 잠깐의 대화를 나누던 그들은 아무런 전조도 없이 은은한 잿빛 안개에 휩싸이더니 저 하늘의 헬기를 향해 솟아올랐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

이내 헬기는 이 ‘장인들의 거리’에 나타날 때와 마찬가지로 굉음을 내지르며 하늘 저편으로 날아간다.

말 그대로 바람과 같이 나타나, 바람과 같이 사라진···.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하지 못할 광경에 반월단장은 그저 넋이 나간 사람처럼 헬기가 날아간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툭, 툭.

그때, 반월단장의 팔을 건드리는 연금술사 황민경.

“거봐, 이 사장님은 그냥 병사가 절대 아니라니까?”

그녀는 어째서인지 자신이 더 자랑스럽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

그 시작에 이렇다 할 특별한 점은 없었다.

사람들은 출퇴근을 위해 이른 아침부터 발걸음을 서두르고,

전철을 기다리는 사람은 인산인해를 이루지만,

본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관심이 없어 별다른 특이점을 찾지 못한다.

그러나 그 사소하고 작은 마찰음은 그러한 인간과 인간의 물결 속에서 싹을 튼다.

-툭.

“아! 갑자기 멈추면 어떻게 해요. 아저씨!”

흐르듯 움직이던 사람들 사이.

아무런 전조도 없이 자리에 멈춰 서는 사람.

아니, 눈이 돌아간 그것.

그것은 자신의 몸이 앞을 보고 있었음에도 목만을 180도로 꺾어 자신에게 불만을 표하던 사람을 정확히 응시했다.

“...아? 아아아악! 저, 저게 뭐야!”

놀라 비명을 지르는 사람, 그 사람을 중심으로 혼란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꺄아아아악!”

“괴, 괴물이야!”

“저게 뭐냐고오!!”

그러나 그것은 비틀린 목으로 평온하게 노래하니,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이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그건 종말을 소망하는 이의 덧없는 찬양가였다.

첫 번째로 정체를 드러낸 그것이 노래를 마치니, 이번에는 저 멀리에서부터 또 다른 목소리가 찬양을 이어갔다.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그것은 노래와 같은 리듬이 없으나, 부르는 이는 비틀린 목과 뒤틀린 입으로 흥에 겨워 미치겠다는 듯 목소릴 높였다.

이윽고 두 번째 찬양 소리가 하늘을 찌를 때, 혼란에 휩싸인 수많은 민간인은 서울역을 나가기 위해 힘껏 달렸지만,

이내, 열 아니 스물 아니···. 마흔이 넘는 민간인은 돌연 사방에서 목을 비틀고 입을 찢어질 듯이 벌렸다.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 지어다 하니.」

들려오는 찬양과 밀려드는 혼돈.

민간인들은 이미 그 주술적 힘에 양손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바닥에 엎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그 혼돈과 혼란의 광경에 한껏 미소를 지으며 백발의 노인이 서울역 중앙에 섰고, 노래한다.

「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

「경배하라.」

「경배하라.」

「경배하라!」

수많은 목소리가 얽히고설켜 기괴함이란 단어를 그대로 표현한 듯한 끔찍한 소음을 일으키는 바로 그 순간.

-푹!

-푹!

-푹!

백발의 남자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손에 들고 있던 의식용 단검으로 자신의 목을 찔렀다.

허나, 이상했다.

자신의 목을 찌른 이들의 피는 목에서부터 땅으로,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다.

-똑!

끈적한 물방울 소리를 만들어가며 아주 선명하게 하늘을 부유하는 핏줄기들.

이윽고 서울역의 넓은 천장을 가득 채울 만큼, 거대한 피의 원이 형성되는 그 순간.

「회개하라. 어리고 여린, 나의 양들이여.」

일반상식을 간단하게 뒤집어버릴 메시지가 하늘에 수 놓였다.

<알림>

ㅡㅡㅡㅡㅡㅡㅡㅡ

*목사, ‘황준필’의 기도와 제물은 하늘 저편에 닿습니다.

*태초의 흡혈귀는 신도의 부름에 응합니다.

*제 14구역의 ‘경계-서울역’, 게이트가 생성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

선명한 메시지, 얼굴이 경악으로 물드는 민간인들 속에서 새빨간 로브와 기괴한 가면을 뒤집어쓴 이들이 하나, 둘 고개를 들었다.

민간인을 빙자하고 있던 휴거교도들이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피를”

““정결한 피를!””

「피로 씻어내야 한다. 원죄와 죄악과 거짓을 어린 양의 피로!」

정중앙에 선 목사가 고하고, 칼을 빼 든 일백에 달하는 신도가 응한다.

높게 드는 의식용 단검.

이내 그 날붙이가 민간인의 목으로 날아드는 바로 그 순간,

-피이이이이이이이익!

거센 독수리의 울부짖음은 주변인들의 청각을 마비시킬 기세로 터져 나왔다.

새파란 스파크가 서울역의 곳곳을 메우고 일백의 단검은 마치 시간이 정지하기라도 한 것처럼 허공에 굳어버렸다.

그러나 휴거교도가 힘을 뺀 것은 결코 아니었다.

지금도 악착같이 힘을 주어 밀고 있는지 부들부들 허공에서 떨려오는 의식용 단검들.

이상함을 눈치챈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향하는 곳은 오직 한 점이었다.

강한 힘에 이끌리듯 신도들의 손을 떠난 의식용 단검이 일제히 모여드는 그곳.

그곳에 선 사람은 군복을 입고 있었다.

강한 전기가 요동치는 시퍼런 홍채로 세상을 관망하며, 파지직거리는 스파크를 온몸에 휘감은, 그는 다름 아닌 이건우였다.

일백에 달하는 신도들의 시선을 일제히 받으며,

역안의 목사마저 당당히 마주 보던 그 상황에 이건우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입을 열었다.

“반전의 목사, 황준필.”

베일에 가려진 휴거교도 임에도, 또렷한 목소리와 확신 어린 어조로 목사의 이름을 정확히 부르는 이건우.

당황한 황준필의 낯빛에 거칠게 균열이 생겼다.

“넌···. 뭐냐.”

하지만 목사의 질문 따위는 알 바가 아니라는 듯 무덤덤한 얼굴로, 건우는 말을 이었다.

“500여 명이 넘는 무고한 시민을 납치, 감금, 고문 끝에 무참히 살해한 혐의로 널 즉결심판에 처하겠다.”

-치지직!

강한 자기력에 둘러싸여 건우의 머리 위를 돌던 일백의 의식용 단검들은 냉랭한 건우의 말과 함께 미친 듯이 스파크를 튀겨대기 시작하고,

오롯이 목사 황준필을 바라보던 건우의 눈동자에서는 푸른빛이 번뜩였다.

전설급 아티펙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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