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21화 (21/175)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21화

‘담담하군.’

헌터 협회 본부, 정상급 헌터들의 회의장에서나 볼 법한 풍경을 만들어뒀음에도 이렇다 할 변화를 보이지 않는 이건우를 바라보며 최중철은 생각했다.

약 1초 정도,

잠시 눈을 크게 떴다 다시 돌아간 것이 전부였다.

‘마치 이러한 광경이 눈앞에 벌어질 것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이···.’

최중철 소장은 일전, 어렵게 마련한 ‘협회장’과의 통화에서 넌지시 이건우에 대한 정보를 던져보았었다.

-하? 이거 치매가 들었나···. 쯧쯧쯧. 그 정도의 인물이라면 내 기억할 텐데 말일세? 애석하게도 정말 처음 듣는 이름일세.

헌데, 협회장은 최중철의 말을 제대로 듣는 시늉도 하지 않았고, 그런 말로 이건우와의 연관성을 전면 부인해버렸다.

이래서는 군의 ‘등급 재측정’ 현장에 스카우터를 파견해도 좋다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얻어낸 통화의 기회가 아무 소득도 없이 끝날 판이었다.

‘능구렁이 같은 양반···.’

차라리 생각을 해보겠다든지. 어디서 들어봤다든지. 뭐든 쉽게 단정 짓는 일이 없는 ‘협회장’의 성격에 어울리는 반응을 보였다면 어떤 힌트라도 얻었을진대···.

이건우에 관한 질문은 그토록 단칼에 끊어냈다는 점이 오히려 최중철에게는 다르게 느껴졌다.

‘정말 눈꼽 만큼도 연관된 점이 없거나 혹은···. 마치, 아무런 정보도 넘길 수 없다는 의미로 들릴 정도군.’

역시 협회의 어두운 문제들을 깨끗이 치워주는 존재에 대해서는 ‘협회장’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던 것인가.

혹은 정말 아무것도 없는 것인가.

또다시 걸리는 점은 정작 지난번 ‘거짓간파’를 통한 문답에서, 이건우는 자신이 불법적인 일로 사람을 죽인 적이 없다고 답했다는, 검증된 진실이었다.

그렇다면 이건우는 뭘까.

대체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일을 해왔기에 그런 힘을 가졌고 또한 입대 당시에는 어떻게 그걸 또 숨기고 있었느냔 말이다.

‘그러면서도 이건우는 자신이 군대의 적이 아니고 오히려 군의 부흥을 위해 조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 했었다.’

심지어 최종적인 목표가 무엇이냐 물었거늘, 인류의 절멸을 막는 것이라 답하기까지 했었다.

그런 모습들을 보고 있자면, 그 숭고함만으로도 이미 주인 없이 여단 무기고에서 놀고 있는 혈검, ‘본디오 빌라도’를 주어도 될 것만 같지만···.

아직 그를 둘러싼 의문이 무엇 하나 해결되지 않은 이 상황에, 여단장으로서 신화급 무장을 선뜻 내어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최중철은 초강수를 두게 되었다.

자신과 친분이 있는 두 용병대, ‘황해’와 ‘만검’의 용병대장을 직접 불러 그의 반응을 확인해보려 한 것이다.

과연 이건우는, 누구를 경계하고 누구를 경계하지 않을까.

우선은 그 정도만 알아낼 수 있어도 만족할 심산이었는데···.

이건우는 정말이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질 않았다.

“오오오? 소장님이 말씀해주셨던 저 친구, 눈썹 한번 까딱하고 끝인데요?”

“하.”

“우리 셋을 보고도? 그건 오히려 이상한 거 아니니?”

흥미롭다는 듯 미소 짓는 황해의 조성우.

가만히 검집을 잡고 있을 뿐인 만검의 정진권.

다른 이유로 놀라는 협회의 부회장 이초희.

연기력이 뛰어난 건지 아니면 정말로 이들 역시 이건우를 처음 보는 건지. 셋의 반응은 지극히 정상적이었다.

그때 가장 큰 흥미를 보이던 조성우가 먼저 최중철에게 말을 꺼냈다.

“소장님.”

“왜 그러나.”

“그냥 가볍게 인사만 나누고 와도 되겠습니까?”

“지금 말인가?”

“그럼요.”

어차피 막아도 혼자서 뛰어나갈 작자다.

최중철은 속으로만 작은 한숨을 내쉰 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검은 산군’은 한걸음에 조회대를 뛰어 내려갔고 두 걸음째에는 이미 이건우의 눈앞에 도달해 있었다.

이윽고, 세 명의 랭커 그리고 세 개의 대대급 인원들의 이목을 사로잡은 바로 그때, 조성우는 태연하게 손을 내밀며 인사를 건넸다.

“네가 그 유명한 루키, 이건우구나?”

그 정도면 솔직히 최중철이었다 할지라도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을 텐데, 이건우의 대응은 참 놀라웠다.

“이병 이건우.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영광이란 말과는 달리 아직도 그의 얼굴은 담담하기만 했다.

그러고는 아주 잠깐이었지만, 서로를 노려보며 침묵을 가진다.

“너 좀 재미있네?”

허나, 이내 먼저 말문을 연 건 조성우의 쪽이었다.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뭐? 하하하핫! 그래. 칭찬으로 들어. 그보다 친구. 혹시 관심 있으면 여기로 연락해. 알겠지?”

뭔지 모를 기묘한 긴장감이 흐른 뒤, ‘황해’의 조성우는 이건우의 손에 멋대로 자신의 명함을 쥐여주고는 또다시 순식간에 조회대로 돌아왔다.

그렇게 돌아온 조성우를 바라보는 두 랭커와 최중철.

시선을 느낀 조성우는 조금 멋쩍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이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저거 뭔진 몰라도 일단, 난 놈인 건 확실하네요.”

최중철은 드물게 첫 만남부터 타인을 인정하는 조성우의 모습에 놀라 반사적으로 묻고 만다.

“어떤 점이 그렇던가···.”

“아, 그게요. 으음···. 눈빛이요.”

“...눈빛?”

“저거, 보통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그런 눈빛이 아니에요. 최소 10년은 전쟁터에서 굴러먹던 용병, 아니···. 그 이상의 고난을 겪지 않고선 불가능한 눈이었습니다.”

***

다소 잡음은 있었지만, 진급 시험을 위한 체력 검정과 마나 테스트 그리고 모의 전투는 사전에 고지되었던 데로,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다.

아무래도 세 개 대대가 한 자리에 모여든 만큼, 인원 통제나 이동에 차질이 발생할 법도 했지만.

뒤늦게 랭커들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 간부들이 아주 빡빡하게 병사들을 통제했기에 차질없이 일정은 진행되기 시작했다.

1대대의 첫 테스트는 기초 체력 검정이었다.

군인의 3대 기본기인 윗몸 일으키기, 팔 굽혀펴기, 달리기를 기본으로 하되,

이곳은 마나로 보통의 사람들보다 육체가 발달한 이들만 모여있는 헌터군이기에 목표 개수는 올랐고, 제한시간은 오히려 줄었다.

우선 팔굽혀펴기였다.

얼핏 듣기로 일반 군에서는 2분 이내 72개를 완료하면 ‘특급’을 받는다고 하던데,

이곳 헌터군에서는 그 2배인 144개를 1분 이내에 달성해낼 수 있어야 먼 과거와 동일한 특급 전사 취급을 받을 수 있다.

“후우!”

마찬가지로 윗몸 일으키기 역시 시간은 줄고 목표 개수는 늘어났다.

아무리 각성자로서 육체 강도가 상승한 인간이라 할지라도, 평소부터 운동을 해두지 않았다면 도전할 엄두조차 나지 않을 기준인 것이다.

“후! 병장 남준서 윗몸 일으키기 56초! 팔굽혀펴기 51초입니다!”

허나, 대부분 군인은 1분 내로 몇 개를 채우냐를 겨루는 그 자리에서, 당당하게 ‘개수’가 아닌 ‘시간’을 말하는 남준서 병장.

무려 12레벨이나 되는 남준서에게 낮은 레벨의 병사들도 도전할 수 있도록 설계된 체력 검정은 사실상 식은 죽 먹기나 다름이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성적’ 하나에 뿌듯한 얼굴로 주변을 흘낏거리는 남준서.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는 굳이 멀찍이 떨어져 있던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야. 이병.”

“이병 이건우.”

“잘 봤냐?”

“예. 대단하십니다.”

“그래. 너도 할 만큼 해봐라.”

아무래도 주위의 시선이 많아서 그런지 남준서는 대놓고 꼽을 주진 않았다.

대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면서도 이글거리는 눈으로 계속해서 나를 응시하는데···.

아무래도 조금 전 내가 ‘황해’의 용병대장에게 직접 명함을 받은 일을 신경 쓰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남준서는 이미 용병대, ‘황해’에게서 스카웃 제의를 받은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 용병대장은 전혀 다른 인물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심지어 그 대상이 이병이니···.

남준서의 입장이 이상해진 것이다.

잘못하면 이병에게 밀린 병장으로 기억될지도 모르는 상황.

뭐, 그렇다고 곤란해진 놈을 내가 배려해줄 마음은 전혀 없지만.

일전의 통장 건도 그렇지만, 애초에 이 측정은 내게도 중요한 특이점이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다음, 이, 건우.”

내 이름을 확인하고는 잠시 말을 더듬는 간부.

그녀는 타 대대의 간부인 것인지 측정대로 향하는 나를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아니,

그런 반응을 보인 이는 비단 그 간부만이 아니었다.

“저 사람이지?”

“이건우야, 진짜 이건우!”

“어? 그 사람 살찐 사람이었을 텐데?”

“아니잖아! 엄청 잘생겼네!”

“근데 저 사람이 D급이라며?”

아무래도 조금 전 그 ‘명함’ 때문인지 나를 주목하는 이들은 비정상적으로 많았다.

같은 1대대에서도 이렇다 할 일로 엮여본 적이 없던 병사들부터 다른 측정을 진행 중인 2대대의 병사들.

하물며 간부들까지 이런저런 말들을 소곤거리는 것이 다 들릴 정도였다.

“하아.”

무슨 동물원의 원숭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전생의 경험을 토대로 판단해본 결과, 이렇게 귀찮은 상황에 부닥쳤을 때는 서둘러 할 일만 마치고 자리를 뜨는 게 최고다.

이윽고 측정대에 몸을 고정하고 자세를 취하고 있자 간부는 뒤늦게 정신을 차린 듯 손을 들고 말했다.

“시작!”

신호와 동시에 전신에 들어가는 힘.

지난 석 달간의 노력이 <업적>의 서포트를 받아 이뤄낸 성과를 확인할 시간이었다.

“어?”

“뭐?”

“저게 뭐야···?”

“미친, 피지컬 뭐야!”

이렇게 보는 눈이 많은 곳에서는 처음으로 발휘해보는 이 육체 본연의 힘이었다.

연신 터져 나오는 감탄과 경악.

함께 자리에 서서 측정을 시작한 인원들마저 벙찐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것이 보였다.

“이병 이건우 팔굽혀펴기 42초, 윗몸 일으키기 45초입니다.”

이윽고, 측정을 삽시간에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리 고하자, 간부는 넋을 놓은 얼굴로 그런 나를 쳐다볼 뿐이었다.

“헐”

“저 아저씨 신체 강화계였어?”

“아니야!”

“그, 그러면 레벨이 높은 거···.”

“그것도 아니야. 분명, 너랑 같은 6레벨이라고 들었어.”

“그, 그러면 어떻게, 저게 되지?”

지금도 실시간으로 들려오는 웅성거림.

나는 넋을 놓은 간부를 재차 불러 다시금 기록을 말하고, 얼른 자리를 떴다.

-주르륵.

그렇게 걸음을 옮기는 도중, 넋을 놓은 얼굴로 손에 들고 있던 물컵마저 떨어뜨린 남준서와 마주쳤지만, 나는 아무런 내색 없이 그를 지나칠 뿐이었다.

이어지는 테스트 역시 크게 다르진 않았다.

거의 한나절을 걸쳐 진행된 달리기와 마나 측정, 그리고 헌터 병사만을 위해 준비된 검사인 마나 운용 속도 검사에 반사신경 테스트까지.

남준서 병장은 항상 내 앞에서 일반 병사들이 놀랄만한 기록을 세웠고,

나는 간부마저 경악할 신기록을 세우며 남준서의 기록을 깨부수길 반복했다.

점점 더 어두워지는 남준서의 표정.

지금도 보는 눈이 많아서 그렇지, 자칫하면 당장이라도 내게 달려들 만큼 울분에 찬 얼굴이었다.

헌데, 그렇게 점점 안색이 나빠지는 남준서와는 달리. 테스트가 진행될수록 표정이 밝아오는 인원이 한 명 있었다.

“건우야! 나 이번 테스트도 1급 떴다.”

이전 평가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성적에 기쁜 얼굴로 엄지를 척 내미는 그는, 나의 맞선임인 김장훈 일병이었다.

분명 나는 후임이고 그는 선임일 텐데, 제자가 스승을 찾아와 자랑을 늘어놓듯 나를 쫄래쫄래 따라오는 김장훈.

확실히 저번 ‘기형 게이트’에서도 그는 우직하게, 아무 말 없이 해야 할 일을 척척 해내는 뛰어난 면모를 보여주었었다.

“대단하십니다. 김 일병님.”

이에 솔직한 마음으로 나 역시 엄지를 척 내밀며 그를 칭찬해주자. 김장훈은 그게 그리도 좋았는지 헤실헤실 덧없는 미소를 지었다.

마치 주인을 잘 따르는 충견을 보는 것 같았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맞선임인데, 충견은 좀 아니려나···.

아무튼, 그렇게 첫날의 측정을 마친 우린 생활관으로 돌아와 취침했고 드디어 내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모의 전투’의 시간이 다가왔다.

***

모의 전투가 진행될 장소는 여단 본부 건물 지하에 있는 거대한 벙커의 내부였다.

다른 대대 역시 어느 정도의 설비를 갖춘 모의 전투장이 분명히 있음에도,

랭커가 아니고서야 웬만한 흠조차 내지 못하게 설계된 ‘여단 모의전투장’을 굳이 제공한다는 건···.

누가 봐도 S급 랭커들과 각 집단의 수석 스카우터들에게 스스로 어필할 기회를 준 것이 분명했다.

또한, 이를 아주 잘 이해하고 있는 병사들의 표정은 어제와는 사뭇 달랐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바짝 긴장한 얼굴이었다.

“호오. 여러분. 저 친구들 좀 재미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돌연 이를 지휘관실에서 지켜보던 ‘황해’의 조성우가 그런 말을 꺼냈고, 자연스레 다른 랭커 그리고 수석 스카우터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모였다.

“흠.”

“재미 말인가.”

“우리가 지켜본다는데, 저 정도 긴장하는 건 당연한 거 아냐?”

각기 다른 대답을 내놓는 여단장과 부협회장 그리고 ‘만검’의 정진권.

그 대답을 듣자 ‘황해’의 조성우는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손가락을 흔들었다.

“아니죠. 자세히 봐보세요. 이상하잖아요.”

“아니, 대체 뭐가 이상하다는 건데···. 뜬구름 그만 잡고 그냥 말해.”

“하핫. 성격도 급하시긴, 자 보세요.”

조성우는 손가락 두 개를 펼치며 운을 뗐다.

“원래 이런 모의 전투장의 풍경은 둘로 나뉘어요.”

“둘?”

“네. 하나는, 레벨이 높은 인원들은 웃고, 낮은 인원들은 죽상만 짓고 있는 모습이에요. 제일 흔한 모습이기도 하고요.”

뭔가 거창하게 운을 뗀 것치고는 흔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모습에, 협회의 부회장 이초희는 코웃음을 쳤다.

“그거야···. 당연한 거잖니. 평소부터 노력을 해왔다면 레벨이 높을 거고, 그럼 당연히 이런 자리에서 자신감이 있겠지.”

“하. 우리 부회장님 몰라도 너무 모르시네. 노망이 나신 건가.”

“...관짝에 들어가서 두 번 다신 못 나오고 싶니?”

“하하핫! 자. 농담이고요. 두 번째 장면은 앞선 그 풍경이 레벨이 아니라 헌터 등급으로 나뉘는 거예요. A급은 웃고 D급은 울고 있는 그런 식으로요.”

“아니 당연하잖니 그것도···. 어?”

그제야 기이함을 눈치챈 협회의 부회장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모의 전투를 준비하는 1대대의 인원들을 바라보았다.

“눈치채셨나요?”

“왜···. 이번 대대는 한 명도 가만히 앉아있는 인원이 없지?”

“예. 그거에요. A급도 D급도, 병장도 이병도···. 모두 자기 무장을 점검하고 이번 모의 전투에 진지하게 임할 얼굴이잖아요. 어때요. 재미있죠?”

살짝 뜬 실눈으로 주변을 쭉 훑어보며 즐겁다는 듯 미소짓는 조성우.

그런 하이랭커를 바라보며 협회의 부회장은 속으로 한숨을 삼키면서도, 솔직히 이번만큼은 조성우의 말이 옳다고 인정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제 생각에 이건, 어떤 D급 이병의 존재가 다른 이들까지 자극한 게 아닐까 싶은데···. 소장님도 그렇게 생각하실까요?”

조성우가 그리 말하자.

지휘관실에 있던 이들의 이목은 온전히 여단장 최중철에게로 쏠렸고, 그는 이러한 랭커들의 문답을 퍽 즐겁게 구경하고 있던 것인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같은 생각이네.”

“그렇죠? 아, 이제 시작하나 보네요.”

순진무구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는 조성우. 허나 그의 실눈은 이 자리에 모인 그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병사들의 사소한 변화를 짚어낼 만큼 냉철했다.

역시, 어린 나이에도 용병대장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거겠지.

최중철은 그런 생각을 하며 밝은 조명이 들어온 모의 전투장을 바라보았다.

보통의 모의 전투는 일반 시민들이 아는 것과 조금 양상이 다르다.

고등급의 인원과 무기력한 인원이 무작위로 선발되어도,

무기력한 병사와 무기력한 병사가 매칭되어도,

상상 이상으로 허무하고 허탈한 전투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나마 볼만한 것은 이러한 자리를 손꼽아 기다려왔던 두 사람이 전투장에서 만나는 일뿐인데, 그마저도 무작위로 정해지는 매칭 시스템 덕분에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었다.

헌데,

-챙!

첫 번째 순번을 받게 된 D급 인원과 B급 인원의 전투에서 이미,

“하아아아아아악!”

치열한 전투는 펼쳐지고 있었다.

현재 링 위에 선 D급은 다름 아닌 건우의 맞선임인 김장훈.

그는 롱소드를 다루는 B급의 상병을 상대하면서도 투지를 잃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5L도 안 되는 물을 창조하는, 고작 그것뿐인 스킬을 역동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필연적으로 보호구로도 감쌀 수 없는 눈과 귀를 목표로 합을 주고받을 때마다 흩뿌려지는 물방울들.

자신의 한계를 냉정히 점검하고 오랜 시간 이를 교전에 활용하기 위한 탐구를 성실히 했음을 보여주는 광경이었다.

“비겁한 새끼가아아!”

교전 중 계속해서 눈과 귀로 튀기는 물에 흥분한 B급 상병이 마력을 끌어올렸다.

이내, 마력으로 휘감긴 바람을 전 방향으로 내뿜으며 그의 롱소드에는 막대한 힘이 실린다.

허나 그 순간, 그가 크게 발을 내딛으려는 발치에는 이미 물웅덩이 하나가 생겨나 있었다.

-삑!!

전투화가 미끄러지며 주차장에서나 날법한 소음이 전투장을 뒤덮는다.

그리고 균형이 무너진 그 짧은 틈을 놓치지 않는 D급 일병 김장훈.

상병의 목덜미에는 일반 군인들도 사용하는 그냥 일반 단검이 붙어있었다.

승패가 난 것이다.

“와아.”

“겨우 물을 조금 만드는 능력을 저렇게?”

“D급 같지가 않군.”

그제야 목소리를 내는 랭커들. 허나, 솔직히 이번만큼은 최중철 소장 또한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기 전투장 위에 서서 승리 선언을 듣는 김장훈이라는 군인은, 최중철에게 있어 처음 보는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존재감이 없는 인원이었으니까.

“이거, 오늘은 지루할 일이 없겠는데요?”

조성우의 그 말대로 이번 1대대의 모의 전투는, 앞선 2대대의 모의 전투와 완전히 딴판이었다.

D급이 B급을 이기고, A급이 C급의 인원과 피 튀기는 혈전을 벌인다.

기존의 상식을 뒤집는 일들은 그렇게, 계속해서 일어났고···.

드디어, 이러한 의외의 사태를 만들어낸 원초적인 원인, 이건우가 간부의 호명을 받아 전투장에 올라왔다.

그리고 그의 상대는 역시나 일전 건우의 예측대로였다.

1대대의 대표적 에이스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으며, 이미 ‘황해’의 수석 스카우터에게서 스카웃 제의도 받은 남준서.

“와···. 아무리 개인 무장을 자유롭게 써도 좋다지만, 저건 좀 아니지 않니?”

협회의 부회장 이초희의 말대로, 남준서의 무장은 다소 과하다 싶을 정도로 화려했다.

그 구하기 힘들다는 레어급 풀 플레이트는 물론 남준서는 자신의 최고 무장인 전설등급의 방패까지 들고 나타났다.

그에 반해 이건우는 흔한 강화 전투복과 손에 쥐고 있는 것은 은색 광채를 보여주는 짧은 채찍 하나뿐.

이런 식이라면, 남준서가 건우를 이겨도 돈이 이긴건지. 남준서가 이긴건지. 구분이 안 될 지경이었다.

“사자는 토끼를 사냥할 때도 전력을 다한다고 하죠. 거기에 이번 전투는 무작위로 매칭이 된 것이니. 저 무장은 남준서 병장의 준비성과 매사에 진지한 삶의 태도를 봐주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가만히 있기가 뭐했는지 퍽 길게 남준서에 대한 좋은 말을 늘어놓는 그 사람은 남준서를 스카웃한 장본인, ‘황해’의 수석 스카우터였다.

“하. 그러셔?”

부회장은 이초희는 퉁명스럽게 그리 답했지만, 그 후로도 ‘황해’의 수석 스카우터의 참견은 멈추질 않았다.

이건우는 손에 쥔 은빛채찍을 시퍼런 스파크가 튀길 만큼 고속으로 휘두른다.

허나, 레어급 풀 플레이트로 무장한 남준서에게 유효한 타격을 먹일 순 없었고,

도리어 큰 규모의 화염마법을 잇따라 캐스팅하는 남준서의 속공에 이건우는 아슬아슬하게 그것을 피하며 유효하지 않은 채찍질을 이어갈 뿐이었다.

누가 보기에도 남준서의 일방적인 포격이 이어지고 이건우는 이를 가까스로 회피하는 모습이었다.

“저게 남준서 병장의 특기입니다. 묵직한 방어구로 성벽처럼 서서, 연속 캐스팅으로 쉴 틈 없이 상대를 압박하는 겁니다. 어떻습니까. 실로 공수가 완벽한 모습 아니겠습니까.”

이때다 싶을 때마다 전투에 굳이 해설을 덧붙이는 수석 스카우터.

“아무리 이건우라는 인원이 뛰어날지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군계일학에 불과할 뿐. 진짜 프로들 사이에서는 평범한 이병이 지나지 않는 거겠지요.”

어떻게 보아도, 남준서의 평가를 올리기 위해 노골적인 어휘를 사용한다는 것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지경이었다.

“수석 스카우터님.”

“네. 용병대장님”

그 무례한 언행에도 지금껏 가만히 침묵을 지키고 있던 조성우가 입을 열었다.

다른 이들은 그냥 조용히 하라고 점잖게 권하거나, 조성우답게 괴상한 말로 그의 입을 다물게 하리라 예측하는 바로 그때,

밝게 미소짓는 조성우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의외의 것이었다.

“당신은 해곱니다.”

“예···. 예!?”

정말 돌발적인 발언에 까무러치는 스카우터.

허나 조성우는 자신이 내뱉은 말을 철회할 생각이 아예 없는지 너무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있는 그를 보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당신의 옹이구멍에, 지금 저 전투가 병장이 이병을 압도하는 것으로 보인다면···. 당신은 우리 ‘황해’의 수석 스카우터를 칭할 자격이 없어요. 모르겠어요?”

“아, 아니···. 대, 대장님. 어딜 어떻게 보더라도······.”

충격이 어지간히 컸는지 쉼 없이 말을 더듬는 수석 스카우터. 그러자 그 모습이 이다지도 답답했는지 당사자인 조성우보다 먼저 협회의 부회장이 입을 열었다.

“하. 답답해서 못 들어주겠네. 옹이구멍아. 똑바로 봐.”

“...예?”

“얼굴을 보라고 얼굴을. 넌 남준서의 저 얼굴이 상황을 주도하고 있는 인간의 표정으로 보이니? 진심으로?”

스카우터는 그제야 부회장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고 부랴부랴 남준서의 얼굴을 봤는데···.

흥건한 식은땀.

대규모 마법을 연속으로 캐스팅하느라 체내에 마나가 퍽 많이도 줄었는지 서서히 혈색이 변할 징조마저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석 스카우터을 놀라게 한 것은···.

공포로 얼룩져 당장이라도 기권을 선언할 것만 같은 남준서의 표정이었다.

그리고 이와는 반대로 숨 가쁘게, 모의 전투장 전체를 종횡무진 하던 이건우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있었다.

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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