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20화 (20/175)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20화

“들었어?”

“당연하지! 공략대원 전원 레벨업 말하는 거지?”

“그거 거짓말 아니었어?”

“아니야. 진짜래.”

“2중대에 윤 상병은 이번 게이트에서 레벨업을 두 번이나 했대! 대대장이 마공학 관측기로 확인하는 거 나도 옆에서 봤어.”

“진짜아?”

“진짜 더블 레벨업이라고? 그 반푼이가?”

여단 본부쪽에 있는 큰 PX.

이곳은 병사들이 쉬고 갈 수 있는 테이블이 퍽 많이도 준비되어 있기에, 오랫동안 수다를 떨고자 하는 인원이 곧잘 찾는 장소였다.

지금도 주위의 눈치를 보지 않고 신나게 떠들어대는 인원은 2대대 소속의 여군들이었다.

허나, 그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비단 그들만이 아니었다.

“휴거교가 얽혀 있었데.”

“야, 어떤 용병대는 휴거교랑 직접 거래까지 했다는데?”

“미친 거 아니냐?”

“솔직히 마약밀매, 장기밀매에다가 국보급 장비까지 외국으로 팔아넘겼던 놈들인데, 그거랑 거래를 해?”

“말도 마, 한 용병대는 아예 용병대장이 알고 보니 휴거교에 목사 출신이었데.”

“뭐?! 와. 그럼 처음부터 그러려고 용병대를 만든 거네?”

기다란 테이블에 둘러앉은 1대대와 3대대의 병사들도 마치 술자리에서 비리를 저지른 정치인에 대해 분개하듯 용병대를 씹고 뜯기 시작했다.

병사라면 누구나 관심을 기울일 레벨업부터, 휴거교, 용병대의 이야기까지. 열띤 토론을 하듯 여러 가지 주제를 하나, 하나씩 살펴보던 이들의 관심은 이내 한 인물에게 모였다.

“근데, 이번에 윤 상병이랑 똑같이 2레벨이 올랐다는 그 병사.”

“아아, 이건우 이병?”

“이름이 이건우였구나···. 잠깐만! 이건우면 얼마 전에 그 사람 아냐? 트리플 레벨업!”

“야. 그거뿐이냐? 건우 오빠는 혼자서 A급 테러리스트까지 제압했다고.”

“와. 그게 다 한 사람이 한 거였다고?”

“근데 이게? 네가 그 사람을 언제 봤다고 오빠야. 나이도 너보다 어리던데.”

“뭔 상관? 잘생기면 다 오빠지.”

“저기 1대대 아저씨들한테 물어볼까?”

시작은 그렇게 관심을 표하는 2대대 인원들의 설레발이었지만, 이내 1대대, 3대대의 병사들 역시 자신이 알고 있던 이건우에 관한 목격감, 정보 따위를 줄줄 늘어놓기 시작하면서,

PX의 휴식터는 아예 이건우라는 인물을 탐구하는 장소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들이 그토록 관심을 표하고, 한번 만나보고 싶다며 말하는 바로 그 시간,

정작 이건우는···.

“안녕하십니까. 남준서 병장님.”

1대대의 에이스이자 같은 1중대의 기둥이라고까지 불리는 남자, 남준서 병장을 찾아가 삥을 뜯고 있었다.

“8천을 한 번 더 주시겠다고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건우는 웃고 있었고,

남준서는 떫은 감이라도 크게 베어 문 표정으로 그런 이건우를 마주 본다.

“얼른 돈 주시겠습니까?”

“하···. 우리 부대가 언제부터 이렇게 선진 병영이 된 건지 모르겠네. 이병 새끼가 시건방지게 판에 끼고.”

그들이 있는 장소는 인적이 드문 종교 건물 뒤편의 흡연장.

본래라면 남준서가 겜블러 박태진과 몰래 만나기 위해 마련한 장소였지만,

기이하게도 약속장소에 나타난 인원은 박태진이 아닌 최근 괴상한 소문으로 무장한 이건우 이병이었다.

심지어 나타나자마자 한다는 말이 더 어이가 없었는데,

겜블러 박태진이 말하던 ‘신뢰할 수 있는 정보원의 정체’가 바로 자신이며, 받아야 할 돈을 받기 위해 왔다는 것이다.

“이병 새끼는 판에 끼면 안 된다는 조항은 없었습니다.”

“햐. 말하는 뽄새 봐라. 야.”

“예.”

“예? 4소대 병신들은 후임 관리도 제대로 못 하냐? 홍진웅 그 새끼 아직도 정신 못 차렸나 보네.”

쓰으읍.

남준서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 그대로 한껏 담배를 빨아 그대로 눈앞에 있는 건우의 얼굴에 훅 내뱉었다.

“야. 이병아.”

“왜 그러십니까 남 병장님.”

“겨우 일이병들하고 작전 나가서, 대장 노릇 좀 하더니 내가 우습냐? 쥐도 새도 모르게 뒤지고 싶지 않으면 얌전히 살아. 마지막 기회다.”

“하아···.”

“그래. 그렇게 주제에 맞게 평생 한숨이나 픽픽 쉬면서, 입 꾹 닫고 얌전히 살라고.”

-툭.

그렇게 말하며 이건우의 어깨를 꽉 쥐었다 펴는 남준서, 그는 별것 아니라는 듯 카드 한 장을 땅에 버리더니 그 위에 손에 들고 있던 담배꽁초를 떨어뜨리고는 말을 이었다.

“이거나 주워가라. 척 봐도 못 배운 놈 같아서 2천 정도 더 두둑이 넣어뒀다.”

남준서는 그러고서, 자신이 버린 카드와 담배꽁초를 굳이 군화로 꾹 밟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히 걸음을 옮겨 사라졌다.

“하. 이건 상상 이상이네···.”

그렇게 홀로 남은 이건우는 그런 말을 작게 중얼거리더니 건빵 주머니에 들어있던 수첩을 꺼내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

---

「남준서」

태생적으로 A급을 초과할 정도의 마력, 거기에 시너지가 좋은 ‘스펠 캐스터’라는 직업으로 군 내부에서 호화로운 대접을 받으며 군생활을 마친다.

전역 후에는 명실상부한 국내 1위의 용병대, ‘황해’에 스카우트 되었으나, 돌연 자취를 감춘다. 그리고 6년 뒤, 놈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땐 이미 악명높은 빌런, ‘흑마(黑馬)’가 된 뒤였다.

---

“음.”

이 수첩은, 지난번 제라르 베르트랑과의 교전 이후.

약 1주일간 침대에 누워만 있던 그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 작성해본 자료였다.

자료의 작성 기준은 다름 아닌 ‘빌런 타락’.

전생의 기억을 바탕으로, 현생을 살아가는 지금 내 주변 인물들의 미래를 떠올려 기재한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일주일간 틈틈이 작성을 해두었음에도 당장 쓸만한 자료는 많지 않았다.

정작 전생에는 내가 이병이던 이 시절, 상병장들과 똑바로 얽혀본 적이 없기도 했고 그들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빌런이 된 건지는 ‘대항군’ 역시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나마 기억에 남은 인물들은,

1대대의 안준서, 2대대의 왕한별 그리고 여단 본부 소속의 그 인간까지 이렇게 셋 정도일 것이다.

이 셋은 내가 뇌제라 불리기 시작한 후에도, 악명높은 빌런으로 활동하던 자들이었으니까.

“흐음.”

지난 시간, 나는 고민했다.

인간은 평생 몇 번이고 우를 범하는 동물이다.

허나, 동시에 몇 번이고 죄를 뉘우치고 반성을 할 줄 아는 생물이기도 하다.

이미 휴거교에 협력했거나, 빌런이 되어버린 인물이라면 나의 기준에서 즉결 처형의 대상이 되지만,

아직은 빌런으로 타락하지도 않은 인간을 무조건적으로 살해하는 것 또한 나의 신념에 어긋나는 행동이었다.

흰색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흑색으로 물들지도 않은 어중간한 회색 인간.

이 회색 인간에 대한 취급을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한동안 이에 대한 고민을 이어나갔고···.

드디어 적당한 해답 하나를 내놓았다.

“그래···.”

나는 그렇게 한동안 미간에 주름을 잡고 고민을 거듭하다, 끝내 「남준서」라 적힌 메모지 밑에 글귀를 추가했다.

그 글귀는 다음과 같았다.

「교육 강도 – 최상.」

“일단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거겠지.”

그렇지 않아도 다음주는 진급 시험과 등급 재평가 시험이 동시에 있는 이례적인 한 주이다.

전생에는 없던, 이 같은 일정 변경에 생긴 이유야 충분히 예상이 간다만···.

중요한 건, 등급 재평가 시험 중에는 스킬의 제약을 두지 않는 ‘모의전투’가 있다는 점이었다.

내가 아는 그 남준서라면, 백이면 백 자신의 심기를 건든 ‘나’를 결코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

마침 좋은 기회가 생겼다고 웃으며 분명 무작위로 작성되어야 할 대진표를 건들고 결과, 나와 놈은 이번 모의전투장 위에서 만나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럭저럭 타이밍이 좋았다.’

전생에는 없던 이번 시험마저도, 나는 이용한다.

‘상대는 A급, 병사라는 신분에도 불구하고 이미 레벨 12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운 군인.’

허나, 그건 어디까지나 이 시대의 기준으로 바라본 척도였을 뿐.

나에게 남준서는 그저, 레벨업의 성과를 테스트해볼 살아있는 샌드백에 지나지 않았다.

다시 말하지만, 군 내부에서는 레벨업의 성과를 제대로 실감해볼 기회가 많지 않으니까.

이건 좋은 기회였다.

“흡.”

가볍게 기합을 내뱉으며 눈에 힘을 주자.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는, 이번 기형 게이트에서의 성과를 통해 또 한 번 2레벨업이라는 기록을 세운 나의 스팩을 아주 선명히 보여주었다.

[생체전기량]: 4300Wh ▶ 6600Wh

[제어력]: 153Wh ▶ 197Wh

시간을 거슬러온 직후의 나였다면, 듣고도 믿지 못했을 압도적인 성장.

설마, 고작 6레벨에 나 자신의 제어력이 200Wh에 근접해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또한, 이렇게나 가파른 성장을 이룩해 냈음에도 나의 스팩을 끌어올릴 재료는 아직도 더 남아 있다.

내가 ‘세번째 히든피스’라 여기고 있던 이번 기형 게이트 내부에서 찾아낸 귀물.

월혈석(月血石).

지금까지 손에 넣었던 것들은 오르골 중심에 박혀 있던 작은 파편들뿐이었지만, 이번에는 아예, 타원형의 둥그런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 진짜배기 월혈석(月血石)이었다.

지난번에 엄지손가락 크기의 월혈석 파편 다섯 개만으로 상승했던 생체전기량은 무려 1800Wh.

그때의 경험을 떠올려보면, 이 온전한 월혈석 역시 영약으로 만드는 재료로 사용해도 좋을 듯했다.

‘하지만, 단순 영약 제조의 재료로 사용하고 버리기에, 진짜 월혈석은 너무 아깝다.’

왜냐하면, 온전한 형태의 월혈석(月血石)에는 이 보옥만의 아주 특별한 사용법이 따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전생에도, 진조의 피를 직접 하사받았던 휴거교의 사도들만이 다룰 수 있던, 그 힘.’

이 시대에는 정작, 그 진조를 숭배하는 ‘휴거교’조차 아직 모르고 있을 그 숨겨진 방식으로, 나는 나의 ‘숙적’이나 다름없는 재앙의 힘을 내 것으로 만들 심산이었다.

이윽고,

주말임에도 생활관에 가만히 앉아있던 내 귓가에 스치는 행정반의 방송음.

-치익, 이병 이건우, 이병 이건우. 면회입니다.

드디어, 도착한 모양이었다.

나는 기다리고 있던 만큼 빠르게 컬러 태극기를 어깨에 붙이고는 면회장으로 향했다.

몇 분 지나지도 않아서 보이는 면회장.

이내 내가 절차를 마치고 그 안으로 들어가자 이미 구석진 테이블을 잡고 앉아있는 한 사람이 보였다.

그녀는 전생에는 ‘분노의 연금술사’라 불렸고, 현생에는 지난번 영약 제조를 직접 해주었던 유능한 연금술사인 이모님이셨다.

“안녕하세요. 이모님?”

“아이고 사장님! 어떻게 벌써 나오셨데요. 할 수만 있으면 제가 안으로 들어가서 모셔왔을 텐데.”

“그렇게까진···. 괜찮습니다. 정말로요.”

“그건 좀 아쉽네요. 명색이 우리 사장님인데.”

“하. 하.”

다시 봐도, 복수와 광기로 얼룩져있던 그 이모님이 맞나 싶다.

그렇게 어색한 미소만 연신 흘리던 나는, 정겹게 내 근황에 관해 물어보시고 또 진심으로 걱정해주시는 이모님과 짤막한 만담을 이어나갔고,

이내 본론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꺼낸 건 의외로 이모님 쪽이었다.

“그래요. 이번에도 ‘그것’에 대한 제조 의뢰일까요?”

말을 살살 돌려 아무것도 아닌양 가볍게 영약 제조에 대해 언급하는 이모님.

앞선 만담 역시 ‘영약’이라는 특별한 물건을 자연스럽게 언급하기 취한 이모님만의 처세술인 듯했다.

역시 보기보다 치밀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렇기에, 이번 일도 믿고 맡길 수 있는 것이고.

“아니요. 이번에는 다른 부탁을 드릴까 합니다.”

“다른···. 그냥 일반적인 제조가 필요한 건가요?”

“아니요. 그것도 아닙니다. 우선, 이것부터 받으시겠어요?”

그리 말하며 내가 면회장 테이블에 올려둔 것은, 다름 아닌 2개의 종이통장.

하나는 이번 ‘기형 게이트’ 도박으로 따낸 대부분의 돈이 모여있는 통장이었고,

둘째는 남준서가 더럽게 밟고 지나가며 땅에 던졌던 그 돈을 내 종이통장에 옮긴 것이었다.

“헉!”

이모님은 처음으로 보여드린 파란 통장을 열어보시더니 단번에 숨을 멈췄다.

“...구, 구억은 너무 많은 것 같은데요. 사, 사장님?”

“아, 파란 통장은 의뢰금이 아닙니다. 그건 제가 원하는 물건을 만드는 과정에 필요한 자금일 뿐이죠.”

“구, 구억이···. 과, 과정에 들어갈 돈이라면······.”

설마, 이번에야말로 마약 제조를 의뢰하려는 건가···!

말은 하지 않으셨지만, 이모님의 얼굴은 딱 그런 생각을 하는 표정이셨다.

“아니요. 마약류는 절대 아니고요···. 바로 이것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 말을 하며 내가 품에 넣어두었던 월혈석을 꺼내 보이자, 이모님은 순식간에 두 눈을 크게 뜨며 입을 다물지 못하셨다.

아마 한눈에 월혈석의 가치를 알아본 거겠지.

“왜인지 묻지 마시고, 꼭 기억해주세요. 그 파란 통장에 든 돈으로 믿을 수 있는 용병대와 전속 계약을 하시고, 남은 돈은 전부 성수 구매에 사용해주세요.”

“...성수라면, 저주 해주에 사용되는 그···.”

“네. 그 성수입니다.”

지난번에는 곧바로 내 의도를 알아차리시고 연신 감탄하시던 모습과 달리, 이번에는 ‘제조’ 과정에 대한 설명을 해드리는 중에도 이모님은 의아한 표정, 놀라는 얼굴만 반복할 뿐이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자, 잠깐만요. 사장님! 그럼 이 노란 통장은 뭔가요?”

숨 가쁘게 내가 이야기한 제조 방법을 노트에 옮겨적던 이모님은, 급하게 자리를 뜨려는 내게 그리 물어보셨고,

나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질문에 대답해드렸다.

“그쪽이 이번 의뢰금입니다.”

내 말에 떨리는 손으로 그 노란 종이통장을 열어보시는 이모님.

이내 그 안에 적힌 금액을 확인하시자, 두 눈을 동그랗게 뜨시고는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셨다.

“아, 아무리 그래도 사장님. 이렇게 많은 돈은···!”

왜냐하면, 두 번째 통장에도 2억이라는 거금이 들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잘 써주시리라 믿습니다.”

허나, 그럼에도 내 주머니 사정에는 큰 타격이 없었다.

이번에 박태진의 ‘도박판’에서 따낸 돈이 원체 많았어야지.

그리고 이번 ‘등급 재평가’와 ‘진급 시험’도 마찬가지였다.

이토록 안전하면서도 승패가 확실한 행사는 잘 없지 않은가.

아마 이번에도 박태진의 ‘도박판’은 또 불타오를 것이고, 나는 다시 한번 그 돈을 깡그리 긁어모을 예정이었다.

돈만 밝히는 도박꾼, 불량 군인들의 자본을 뜯어 나 자신의 성장에 아낌없이 사용한다.

처음 박태진을 제압했을 때부터 어렴풋이 짜두었던 계획은 이제야 톱니가 맞물려 제대로 굴러가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면회장을 나섰고, 생활관으로 다시 돌아가는 길. 서서히 다가오는 ‘네번째 히든피스’를 얻기 위한 계획을 점검했다.

‘이제 곧. 놈들은 움직일 거다.’

곧,

놈들은 자신들의 신을 부르짖으며 대대적인 테러를 일으키기 시작할 것이다.

전국에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그 테러가 시작되면 여단장 최중철을 비롯한 군 수뇌부는 분명, 나를 찾을 것이다.

몇 년씩이나 진전이 없던 ‘휴거교’에 대한 수사를 단번에 진전시키고, 심지어 살아있는 ‘전도사’를 완전히 제압해 게이트 밖으로 끄집어냈다.

거기에 그들과 연루된 용병대를 특정, 인질이 된 선발대까지 모두 구해내 생환시킨 사람도 바로 나였으니까.

군 수뇌부는 어떤 일이 있어도, 무슨 조건을 붙여서라도 내게 협조를 요청할 것이 분명했다.

난 ‘휴거교’의 멸망을 간절히 기원하는 사람이니 어차피 그들의 요청이 없어도 현장으로 달려갈 심산이었지만,

정작 내게 협조를 요청해야 할 처지인 여단의 수뇌부는 골치가 아플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난 그들에게 내 요구조건을 당당히 드러냈었으니 말이다.

신화급 혈검, ‘본디오 빌라도’

일반적으로 일반 병사의 계급으로 신화급 무장에 손을 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니 여단장 최중철은 필시 선택해야 할 것이다.

나의 발을 군에 묶고, 작정하고 후원해 그 누가 보아도 신화급 무장에 걸맞은 훌륭한 군인으로 아예 양성해준 뒤 ‘본디오 빌라도’를 주거나.

혹은 ‘본디오 빌라도’를 주지 않고 매번 그에 준하는 조건을 내세워 용병처럼 나를 기용해야 할 테니 말이다.

허나, 그가 어떤 선택을 내리든, 나는 상관이 없다.

어느 쪽이든, 내게는 모두 이득이 될 테니까. 그것도 당장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의 어마어마한 이득이.

***

며칠 후, 1박 2일이라는 빡빡한 일정으로 짜인 진급 시험 겸, 등급 재평가의 날이 밝았다.

다소 의외였던 것은 여단장이 큰마음을 먹고 일을 키운 것인지.

이번 시험 겸 재평가는 이례적으로 각 대대에서 따로 진행하는 것이 아닌, 3개의 대대가 여단 본부에 모여 진행하는 듯했다.

심지어는 장교 중에서도 상당한 급이 되어야 오를 수 있는 여단의 조회대에는 전혀 의외의 인물들의 그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야···. 저거 설마.”

“허. 이, 이거 실화냐···?”

“저분들을 직접 보게 될 줄이야···.”

“오, 오늘 우리 다 죽는 거 아냐?”

“이 정도면 죽어도 여한이 없지···.”

여단장 최중철을 비롯한 각 대대의 대대장들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건만, 일반적인 예측범주를 아득히 넘어선 ‘인물’들의 등장에 병사들은 혼날 것을 알면서도 입을 쉬지 않았다.

허나,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것은 또 아닌 것이···.

이번만큼은 내 눈에도 그 라인업이 장난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헌터 협회의 부회장. ‘백귀야행, 이초희’부터,

명실상부한 국내의 1위 용병대, ‘황해’의 용병대장. ‘검은 산군, 조성우’

그 ‘황해’와 1위의 좌를 다투는 ‘만검’의 용병대장. ‘천검일로, 정진권’까지.

그야말로 대한민국이 헌터 강국이라는 평가를 받는데, 막대한 비중을 차지한 S급 헌터들.

그 존재만으로 국력.

말 한마디로 산 하나를 옮기는 걸 넘어, 없던 산도 만들어낼 정도의, 살아 숨 쉬는 전설들이 갑작스레 병사들의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아까부터 어느 부대가 그런다고 할 것 없이 연병장의 모든 인원은 쉴 새 없이 놀라고 중얼거리기를 반복하고 있지만,

이 같은 상황을 통제해야 할 간부들마저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그저 놀라고 자빠졌다.

아마도 대대장급 이하로는 이들의 방문을 전파받지 못한 모양이었다.

최중철 소장은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풍경을 꽤 선호하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저런 귀빈들을 모셔놓고 군인들의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는 이 상황은 뭔가 좀 이상했다.

아니, 애초에 S급 헌터가 셋 그리고 협회와 용병대에서는 저마다의 수석 스카우터들까지 동원해 나타난 이 상황 자체가 말이 안 되는 풍경이긴 했다만···.

그래도 최중철 소장이 이렇게까지, 그답지 않은 행동을 한다는 건 어떠한, 노림수가 있다는 것이 분명했다.

설마,

문득 번뜩이는 생각이 든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단상 위의 최중철 소장을 바라봤다.

그러자 내 가설을 방증이라도 하듯, 정확히 나를 응시하고 있는 최중철 소장 보였다.

즉, 그건가.

이해관계로 얼기설기 엮인 저들이니 이토록 경이로운 광경을 만들게 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다만,

그 이유 중 하나가, 정말로 나라는 한 병사의 반응을 보기 위해서라면···.

아무래도 최중철은 예상보다 훨씬 더 나를 경계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역시, ‘본디오 빌라도’를 손에 넣는 건, 좀 더 나중의 이야기가 되려나.

아쉬운 마음에 한숨을 픽 내쉬고 있자.

돌연, 갑작스러운 일이 일어났다.

-휙!

단상에 서 있던 사람 중, 한 S급 랭커가 뛰어 내려와 아주 곧은 일직선으로 달려 일순간에 내 앞에 멈춰 선 것이다.

척 봐도 뭔가 꿍꿍이를 가지고 있을 것처럼 생긴 실눈에, 언제나 입가에 호를 그리고 있는 남자.

그는 현시점으로부터 정확히 1년 전, 해저괴수들의 침략으로부터 서해를 지켜낸 ‘황해’의 용병대장 조성우였다.

놈은 원래부터 제멋대로에 돌발행동을 일삼는 남자였지만,

“안녕?”

설마 이런 자리에서 나를 직접 찾아와 말을 걸 줄 정말 상상도 못 했다.

“네가 그 유명한 루키, 이건우구나?”

직후,

단상으로 쏠려있던 여단급의 대규모 시선은 오롯이 조성우와 그런 그를 마주 보고 있는 나에게로 집중되었다.

이건우는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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