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17화 (17/175)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17화

기형 게이트.

게이트는 기본적으로 푸르슴한 빛이 일렁거리는 형태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허나 기형 게이트는 색도, 형태도 각양각색이며 무엇보다 헌터들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하는 특수 조건 따위가 붙어 나타난다.

그렇기에 일반적으로 기형 게이트는 아주 위험한 대상으로 여겨지지만, 레벨 제한 게이트만은 예외였다.

‘인류 역사상, 레벨 제한이 있는 게이트에서는 언제나 제한보다 더 낮은 등급의 몬스터만 출현해왔다.’

그렇기에 군의 지휘관들은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앞선 용병대들의 공략대가 전멸했던 일 역시 5레벨의 이하의 ‘사회의 쓰레기’들이 서로 싸우다 자멸했을 것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추측만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 시대의 통수권자들은 1세대 헌터들이 정립한 ‘메시지’의 규칙을 너무 맹신한다.

그리고 그 맹신과 방심의 틈을 파고들어 사회를 좀먹는 건······.

언제나 ‘휴거교’와 ‘빌런’들이었다.

턱, 턱.

일반 군인들이 세워둔 차단소를 통과하고 드디어 게이트 코앞에 입성한 우리 1대대 1중대의 11인.

이동 중, 앞으로의 던전 공략을 몇 번이고 검토한 덕인지 우리는 도착과 함께 지휘관 없이도 야전교범에 맞는 진열을 갖출 정도의 사기를 되찾은 상태였다.

허나, 이러한 우리 공략대와 비견해 오와 열도 똑바로 맞추지 못하는 여타 다른 중대의 인원들.

그들의 얼굴은 마치 반 시간 전 1중대의 공략대처럼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레벨 제한 게이트’는 그 난이도가 하찮게 여겨질뿐더러 ‘전투 병과’ 간부는 한 명도 함께할 수 없기에, 애초에 부대 출발 때부터 함께하지 않는 것이 관례이다.

게이트 입장 직전까지 지휘관이 함께하다 갑자기 공석이 되는 것보단, 애초에 떨어져 있는 것이 병사의 정신적 안정에 더 도움이 되었다는 일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달달달달달

이윽고 굵직한 엔진소리를 내며 두 번째 군부대 병력이 게이트 앞에 집결했다.

바로 이번 기형 게이트에 1대대와 함께 차출된 2대대의 병력이었다.

“하아···.”

“...어쩌다.”

허나, 두돈반에서 내리는 것과 동시에 쉼 없이 들려오는 한숨 소리.

아무리 지휘관이 없어도 그렇지, 저런 한심한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총 80인이 넘는 군인들이 게이트 앞에 모였으나,

그 상태를 고려해보면 결코 든든한 병력이라 여기기는 힘들어 보였다.

개인적으로,

내가 굳이 이 하남시 기형 게이트를 여단장의 앞에서 언급했으니 뭔가 특별한 조치를 취해주리란 기대도 없진 않았는데···.

최중철이 아무리 대단한 군인이라도, 그간의 고정관념을 단번에 뒤집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혹은···. 애써 내가 속한 부대를 선봉 부대로 선정해 무대를 마련해줬으니, 나머지는 알아서 해보라는 의미일지도 모르지.’

그는 내가 스스로의 가치를 알아서 증명하기를 원하는 듯했으니까.

“홍 상병님!”

그때, 2대대 방향에서 내게도 퍽 친숙하게 느껴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적지 않은 인파를 비집고 나와 굳이 1대대 1중대가 있는 이곳으로 다가온 이는 다름 아닌, 나와도 면식이 있는 윤지아 상병이었다.

A급에 전투 능력도 출중한 그녀가 이 레벨 제한 게이트에···?

다소 의외였지만, 곧바로 그녀의 전투 능력은 확실히 이번 공략에 큰 도움이 되리라는 계산이 되었다.

“윤 상병님도 오셨습니까.”

“그리고 홍 상병님도 그러시고요.”

두 사람의 대화를 얼핏 들어보니, 둘은 지난 거대 게이트 사태 때부터 같은 임무를 수행하며 친분을 쌓은 듯했다.

허나, 홍진웅과 잠깐의 대화를 마친 윤지아 상병은 금세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한다.

이내 수많은 군인 사이에서 나와 눈이 마주치자, 마치 꽃이 만개하듯이 활짝 핀 미소를 지으며 그녀는 내게로 다가왔다.

“건우씨!”

“안녕하십니까 윤지아 상병님.”

“이렇게 다시 뵙네요! 지난번에 A급 테러리스트를 제압했다는 소식 들었어요. 벌써 움직이셔도 되는 거예요?”

이번에도 숨김없이 직접적으로 뿜어내는 걱정 어린 말들과 관심들.

나는 적당히 맞장구를 치는 한편, 그녀가 A급 병사인 윤지아 상병이 어째서 이곳에 있는지를 물었고 윤지아는 조금 멋쩍다는 얼굴이었지만, 그래도 조곤조곤 설명해주었다.

그녀는 A급의 능력자지만, 능력의 사용에 따른 반작용이 심해 고등급 인원들에게만 주어지는 레벨업 기회를 똑바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반작용이라면···.”

“아, 그게요. 제 스킬의 폭발력이, 제가 견딜 수 있는 것보다 더 위력적이라서···.”

즉, 그녀 역시 전기 저항이 ‘최하’였던 이전의 나처럼, 스킬을 사용할 때마다 어마어마한 고통이 동반되는 듯했다.

이따금 존재하는 케이스였다.

신체의 내구성을 넘어서는 스킬의 위력으로 인해, 싸울 때마다 스스로도 상처를 입는 각성자.

본래 이런 사항에 대해서는 애써 무관심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예의이긴 했지만,

“...그럼 전력으로 전투에 임할 수 있는 시간은 몇 분 정도 되시나요.”

나는 보다 적극적인 태도로 그녀에게 이런 질문을 건넸다.

허나, 어쩔 수 없다. 난 이미 그녀의 존재를 확신한 시점에 이번 게이트 돌파의 핵심 인물로 윤지아를 내 계획에 포함시켰으니까.

“아···. 그게 4분, 정도요···? 그래서, 반푼이 A급이라는 말도 좀 들어요. 헤헤.”

4분.

화를 낼법도 하건만, 윤지아는 나의 질문에 허허실실 웃으며 답했고 그 말을 들은 나는 잠시 심각한 얼굴로 다시금 시뮬레이션을 거듭했다.

“건우씨?”

이윽고 결론이 도출되었다.

내 제멋대로인 모습에 윤지아 상병이 의문을 표할 때쯤, 나는 확고한 의지가 담긴 눈빛으로 윤지아를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윤지아 상병님. 혹시 이번 게이트 작전에 저희 1중대와 함께 움직이실 의향이 있으십니까?”

“...네?”

윤지아 상병은 의아하다는 반응이었지만, 나는 이미 확신했다.

1중대 병력에 그녀가 속한 중대가 합류한다면, 그 어떤 변수가 출현할지라도 부상자 한 명 없이 이 게이트를 돌파할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

게이트 내부는 생각보다 거친 정글의 형태였다.

푹푹 찌는 무더위와 끈적끈적한 습기.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어째서인지 가슴께가 답답해지는 느낌이었다.

2대대 3중대 출신의 김유정 일병은 이성적인 판단력을 잃지 않기 위해 우선은 주변을 살폈다.

“우선, 경험 많은 용병분들과 1대대 분들에게도 협조를 요청하는 바입니다!”

군인 가정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군사교육을 받으며 자라온 김유정은 어릴 적부터 배워온 야전 교본에 걸맞은 방식으로 행동방침을 정했다.

게이트에 대한 사전 정보가 아주 조금도 없는 현재. 조금이라도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 백 명이 넘는 인원이 하나도 빠짐없이 뭉쳐야 한단 것이 김유정의 판단이었다.

허나, 그러한 엘리트 김유정의 심기를 거스르는 목소리는 곧장 들려왔다.

“미안하지만, 저희는 따로 행동하겠습니다.”

“흠! 두돈반에서 말씀드렸던 플랜 A로 우선 움직이겠습니다!”

1대대였다.

다양한 활약으로 유명한 홍진웅 상병과 최근 연이어 터져 나오는 괴상한 소문의 주인공인 이건우 이병.

“이봐요. 아저씨들!”

김유정은 일말의 주저 없이 그 둘을 보며 윽박질렀다.

어차피 이곳에 있는 인원들은 모두 레벨 5이하의 햇병아리들.

전문 교육을 10년 넘게 받은 자신보다 더 뛰어난 판단을 내리진 못할 거라는 생각에 김유정의 목소리에는 힘이 들어갔다.

“무슨 일이십니까.”

허나, 그나마 말이 통할 거라고 생각했던 홍진웅 상병 대신, 그녀의 부름에 대답한 것은 이건우 이병이었다.

“제 말을 못 들으신 건가요. 협조를 요청한다고 했습니다만?”

“들었습니다. 다만, 저희는 그 요청에 응하지 않을 뿐입니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얼굴의 남자였다.

“이병 주제에 일병의 말에 따르지 않겠다는 겁니까?”

이병 주제에라니, 이건우는 듣자마자 폭소가 나올 뻔한 것을 간신히 참고 답했다.

“그 논리라면, 김 일병님은 저희를 막을 권한이 없습니다. 저희 분대장님은 홍 상병님이니까요.”

“그렇지만, 생존율을 올리려면···!”

“정글 던전은 공간이 협소하고 지형이 복잡하여 지금처럼 백 명이 넘는 인원이 함께 다니다간 서로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더 큽니다.”

잠깐의 틈도 없이 물 흐르듯 쏟아져 나온 완벽한 반박에 김유정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실제로 아무런 미련도 없이 인파에서 떨어져 멀어지는 그들.

허나, 특이하게도 이건우 이병만은 잠시 뒤를 돌아보고 정확히 김유정을 보며 작게 그런 말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남은 함부로 믿는 게 아닙니다.”

허나, 다혈질인 그녀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건우씨의 말이 맞아 유정아. 우선 두 중대 단위로 흩어져서 정보부터 수집하고 그다음에 어떻게 전술을 구사할지 고민······.”

“시끄러워! 선임 행세할 생각 마! 반푼이 A급 주제에!”

다정하게 말을 걸어온 윤지아 상병에게 거친 막말을 되돌려주는 김유정.

방금까진 자신이 계급으로 권위를 부리려 했으면서 정작 자신은 상병인 윤지아를 제대로 대접하려 하지 않았다.

“너, 게이트 밖에서 저놈들이랑 짜는 거 내가 못 들었을 것 같아? 또 그 반반한 얼굴로 대충 남자나 꼬셔서 뒤에 숨으려는 거잖아, 아냐?”

“아, 아니야. 유정아. 난 오히려 저분들이 함께하자는 걸 거절하고···.”

“개소리 말고 너희 중대도 얼른 꺼져!”

안절부절못하는 윤지아와는 달리 김유정은 대놓고 화풀이라도 하는 기세로 그녀를 쏘아붙였다.

“윤 상병님. 그냥 가시죠.”

“저희가 봐도 홍진웅 상병님쪽으로 가는 게 훨씬 나을 것 같습니다.”

결국, 윤지아가 속한 중대원들이 먼저 나서서 그녀를 데리고 1대대 1중대 인원들이 향한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병장님들 없다고 지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요. 그렇지 않습니까 김유정 일병님?”

“저런 반푼이는 무시하고 남은 1대대, 2대대끼리 잘 해보죠.”

많은 이들의 앞에서 대차게 거절을 당한 김유정이었지만, 그녀에게는 자신의 의견에 무조건적인 동의를 표해주는 부대원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화가 다 풀리지 않아 표정이 안 좋았던 김유정이었으나,

이번에는 대부분 잘생긴 3, 40대 남자들로 이루어진 용병단원들이 나서서 그녀를 독려해주었다.

“그래. 남은 사람들끼리라도 잘 해보자고. 어여쁜 군인씨.”

“아이고, 저것들은 정말 정이 없구먼. 게이트에서는 뭉쳐야 산다는 것 모르는 건가?”

“몰상식한 군인들도 다 있네. 나 때는 말이야? 저런 애들은 3일간 물도 못 마시게 했어.”

나이가 많은 용병단원도 결국은 과거, 병장 만기 전역을 했던 이들이었다.

하물며, 비록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 역할로 밥벌이를 하고 있을지라도 던전 공략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들.

그런 이들이 일제히 자신의 의견에 찬동하자, 김유정은 그제야 표정을 풀고는 남은 인원들을 살펴보았다.

“우선, 저희와 합류할 의사가 있는 인원들로 나뉘어보겠습니다!”

다시 자신감을 되찾은 엘리트 군인 집안 출신의 김유정은, 다시금 리더처럼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그녀의 의견에 찬성한 인원은 1대대의 2개 중대, 2대대의 3개 중대. 그리고 대다수의 용병대원이었다.

푹푹 찌는 무더위도, 끔찍한 벌레들의 울음소리도 70명이 넘는 즉석 공략대와 함께하니 무섭고 힘들지 않았다.

다른 인원들은 흩어졌고, 김유정은 우선 게이트 출구에 바리케이드를 세워 안전구역을 만들었다.

이후, 던전 공략을 진행하는데, 신비하게도 이 정글형 던전에서 출몰하는 몬스터는 ‘야수’가 아닌 ‘좀비’들이었다.

“탄환을 쏟아부어!”

“어이 군바리들! 나 때는 그렇게 어벙하면 잠도 못 잤어!”

잘생기고 세련된 외모에 반해 입이 거친 용병대원들.

허나, 원래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그리되는 거겠지, 하며 김유정은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그렇게 숱한 경험으로 무장한 용병대원들에게 진두지휘를 부탁하니 그래도 공략 자체는 차질 없이 진행되는 듯했다.

“병신들. 역시 뭘 모를 땐 경험 많은 사람들하고 함께하는 게 정답이라니까.”

당일 밤, 김유정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건방진 말투의 이건우와 언제나 한심한 윤지아의 얼굴이었다.

그렇게 둘째,

다시 셋째 날이 밝아왔고 김유정는 서서히 용병대원들에게서 묘한 기색을 느끼게 되었다.

“탄이 다 떨어졌습니다!”

“뭐? 여유분 똑바로 안 챙기고 뭐 했어!”

지휘권을 쥔 용병들이 무식한 사격명령을 잇달아 내리니 일어난 참사이건만,

용병들은 뭐가 그리 잘났다고 되레 군인들을 탓했다.

활약한 일이라고는 쥐뿔도 없으면서,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군인들을 자신의 아랫것처럼 치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 그렇지···. 저 나이에 6레벨도 안 되는 낙오자들 답네.’

김유정은 우선 반나절만 그냥 넘기고 밤이 되면 군인들만을 소집해 이젠 도움이 되질 않는 그들을 바리케이드에서 쫓아낼 계획을 세웠다.

정보는 충분히 얻었고, 쓸데없이 식량이나 갈취하는 용병들을 보며 인내심이 한계에 달한 것이다.

허나, 그날 밤.

먼저 움직인 쪽은 김유정을 비롯한 군인들이 아니었다.

“꺄아아아악!”

“지, 지금 뭐 하는 거예요!”

김유정이 있는 텐트 옆 동에서부터 터져 나온 비명.

이에 놀라 김유정이 잠에서 깨어나니,

정말 소름 돋게도 처음부터 김유정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찬동해주던 그 잘생긴 용병들이 김유정과 두 동기가 잠을 자는 텐트에 이미 들어와 있었다.

“어휴. 신호 울리면 시작하라니까!”

갑작스러운 상황 허나, 김유정과 눈이 마주쳤음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침착한 용병들의 모습.

마치, 이런 짓을 이미 많이 해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게 무슨···!”

곧바로 언성부터 높이려던 김유정.

허나, 날아오는 것은 일말의 주저도 없는 둔기였다.

-퍽!

순간 점멸하는 세상,

이내 김유정이 눈을 뜨자, 그녀는 이미 바닥에 쓰러진 상태였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사태를 뒤늦게 파악하려 눈을 굴렸지만, 이미 그녀의 손과 발은 무언가로 묶여 있었다.

“하, 이 새끼들 탄 언제 떨어지는지. 기다리다 죽는 줄 알았지 뭡니까.”

“어린 애들도 많으니까. 값 좀 쳐주십시오. 선생님들.”

도대체 누구랑 대화하는 건지.

김유정은 자신을 습격한 이들이 연신 굽신거리는 뒷모습을 훔쳐보며 사태를 파악하려 안간힘을 썼다.

그때, 기괴한 목소리가 김유정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다른 제물들은···.

옛 칠판을 손톱으로 긁어내는 듯한 소름 끼치는 목소리.

“아, 그렇지 않아도 저희 범고래 용병들이 찾으러 갔습니다. 저희가 알아서 잘 낚아서 데리고 오겠습니다!”

-그래.

대체 무슨 대화를 하는 것인지.

김유정은 그들의 대화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이곳은 게이트이고, 이곳에 있는 인원들은 몬스터를 잡는 용병과 군인.

헌데 왜 용병이 군인을 묶어놓고 돈을 받고 자빠졌단 말인가.

이내, 머릿속을 스치는 그 이건우 이병의 마지막 말.

-남은 함부로 믿는 게 아닙니다.

그는 이런 상황을 예견이라도 했던 걸까.

다른 누구도 아니고, 80인이 넘는 이 대규모 군인들을 상대로 ‘인신매매’라니.

이건 단순히 도를 넘는 것을 뛰어넘었다.

말 그대로 국가에 대한 도전.

김유정은 정말 저 용병들이 제정신인가에 대해 진심으로 고민하던 중이었는데,

이어서 들려오는 소리에는 더 소름이 끼쳤다.

“형님. 근데 저분들한테 보내기 전에, 조금만 가지도 놀아도 됩니까?”

“오랜만에 보는 여군인데···. 어차피 숨만 제대로 붙어 있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쳇, 짐승 새끼들. 그래. 어차피 날이 밝아야 따로 떨어진 놈들을 찾던가, 말던가 할 테니···. 좆대로 해라.”

-휘이~

“감사합니다. 형님.”

뭐가 그리 감사하단 건지.

용병대의 리더로 보이는 남자에게 연신 고개를 꾸벅이는 용병들.

이윽고 놈들은 그대로 다름 아닌 김유정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영계는 오랜만인데.”

“제일 시건방지던 그년은 내가 제일 먼저야!”

“뭔 개소리야! 내가 먼저 점찍었다고”

“미친 새끼들.”

이젠 혐오스럽기 짝이 없게 느껴지는 그 사회 낙오자이자 중범죄자나 다름없는 이들의 목소리.

“자아. 그럼 어디 맛이나 한번······.”

그 목소리가 김유정의 코앞까지 다가온 바로 그 순간이었다.

-탕!

놀라울 정도로, 아무런 전조도 없이 터져 나온 화약의 폭발음.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남은 함부로 믿는 게 아니라고.”

-털썩.

격발음 직후, 들려오는 차디찬 음색.

두려움에 벌벌 떨던 김유정이 어렵사리 눈을 뜨자.

그녀의 눈앞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이, 이···. 이건우.”

지금도 얼음장처럼 냉랭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

“뭐. 뭐야!”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말 그대로 번개처럼 나타난 그의 등장에 더러운 짓거리를 하려던 이들은 뒤늦게 반응했으나.

이건우는 일말의 주저 없이 총을 견착했던 몸을 그대로 틀어 격발한다.

-탕!

“이런 미친 새끼가!”

-타당!

아무리 방심을 했다 해도, 차례로 쓰러진 세 남자는 이미 경력만 10년 차가 넘는 베테랑들이었다.

허나, 자비 없이 당겨진 방아쇠는 정확히 한발에 한 명씩 그들의 머리를 꿰뚫었고, 셋은 삽시간에 싸늘한 시체가 되었다.

“넌 뭐야!”

“뭐야 이 새끼는!”

“저 새끼 그저께 제일 먼저 여길 떴던 놈이잖아?”

그러자, 당연하지만 격렬한 총소리를 듣고 나타난 수많은 용병대.

그들은 하나같이 국가의 이름을 등에 이고 있는 군인 습격에 가담한 중범죄자들이었다.

“무고한 이들을 사살할 순 없으니, 우선 정보를 모았다.”

“뭐라는 거야?”

“허나, 동료의 시체를 수거하러 온 까마귀를 제외한 모든 용병대가 ‘휴거교’에 가담하고 있는 줄은 몰랐지.”

“저 새끼 혼자 뭘 중얼거리는 거야!”

“씨발, 그냥 죽여!”

더는 참지 못하고 폭발하는 용병들.

강철 도끼와 투창 이어서 마력이 휘감긴 화살들까지 무차별적으로 이건우라는 단 하나의 표적을 향해 날아들었지만,

-파지직!

그것들은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듯.

허공에 멈춰섰다.

이윽고, 그 신비로운 광경을 만들어낸 이건우는 새카맣던 눈동자에서 푸른 섬광을 번뜩이며 입을 열었다.

“범고래, 퍼플피플, 레드윙, 제너즈, 바티온스···.”

하나씩 읊는 것은 다름 아닌, 이 자리에 6레벨 이하의 용역들을 보낸 용병대의 이름들이었고,

이건우는 마치 숭고한 맹세를 하듯 말을 이었다.

“이하 다섯 용병대는 이 시간부로, 전원 사형에 처한다.”

시퍼런 눈동자가 그들을 응시했다.

허나, 많은 이들이 겁에 질려 온몸이 마비되는 감각을 맛보는 그 상황에도,

“이런 개같은!”

누군가는 ‘그들’에게서 받은 비상사태 버튼을 눌렀다.

-스으으으으!

그러자 들려오는 스산한 소리 이윽고 버튼을 누른 장본인이 되레 놀라 눈을 크게 뜨자.

게이트 내부에 있는 정글 곳곳에서 검붉은 안개 따위가 피어오르고 있음을 목도했다.

“...휴거교는 위험한 상황에 부닥쳤을 때, 도주를 위해 언제나 독한 수면 가스 함정을 설치해두지.”

협력자인 자신들도 까맣게 몰랐던 사실을, 마치 지긋지긋하다는 듯 천천히 읊어주는 군인 이건우.

그러나 그의 해설을 듣고 나자 용병들은 거꾸로 기고만장해졌다.

“하! 그렇다면 우리는 그분들께서 안전을 보장해주시겠지만, 너희는 가스에 취해 잠들면 그대로 죽은 목숨이겠군!”

“어이! 얼른 똥꼬에 불붙은 망아지마냥 꽁무니나 빼시지그래!”

게이트에 들어오면서, 화학전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군부대는 그 어디에도 없다.

그렇기에 용병들의 얼굴에는 다시금 여유가 돌아왔고, 다시금 쉼 없이 헛소리를 씨부렁거리기 시작했으나···.

그 화학전을 준비한 부대가 딱 한 곳 존재했다.

건우는 거칠게 틀어쥔 주먹을 머리 옆으로 들어 올렸다.

그러자,

“위, 윈드!”

딱 나뭇잎이 흩날릴 정도의 바람을 장기간 불어오게 하는 스킬의 보유자.

김동건 일병이 수풀을 뛰쳐나와 스킬을 사용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윈드!”

메모라이즈 해두었던 마력을 개방하는 홍진웅 상병도 그러했고,

“바람이여!”

윤지아 상병과 함께 공략대에 합류한 2대대 병사 중에도 강풍을 일으키는 스킬의 소유자가 있었다.

그렇기에 지독한 수면 가스라 판명된 그 검붉은 안개는 정확히 이건우와 함께 움직이던 스무 명가량의 공략대에게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자. 묻지.”

이윽고, 건우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철컥.

냉랭하게만 들려오는 장전음과 함께 말이다.

“도망을 쳐야 하는 건···. 어느 쪽일까.”

용병들은 그제야 자신들의 죽음을 직감한 눈치였다.

세계 최강의 Lv.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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