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16화 (16/175)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16화

“인류의 절멸······. 그 말은 즉, 우리 인류가 현재 절멸의 길을 걷고 있다. 그 말인가?”

약 2분간 입을 꾹 다물고 생각을 거듭하던 최중철 소장의 한마디.

다행히도 불신이나 의심 따위가 섞이지 않은 순수한 의문의 목소리였다.

나는 담담한 얼굴 그대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예.”

그러자 아주 흥미롭다는 듯 나를 이리저리 훑어보는 최중철. 그는 다시금 천천히 생각의 시간을 가진 뒤 입을 열었다.

“자네는 분명 그걸 막겠다 했지. 계획이 있나?”

“예.”

이번에도 즉답. 일말의 고민도 없이 척척 나오는 내 당돌함에는 최중철 소장도 적잖게 놀랐는지 잠시 눈을 동그랗게 뜨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넌,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게냐.”

어디까지,

상당히 주관적으로 해석될 말만 골라 던져대는 것을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아직 최중철 소장은 나를 신뢰하지 않는 듯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내가 쥔 카드를 보여줘야 하겠지.

“제라르 베르트랑은 말했습니다. 알프레드가 저희 군을 유인했다고요.”

“...!”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놀랐는지 흠칫 몸이 굳는 최중철 소장.

“아, 알프레드라면···!”

“시체 수집가 알프레드 아들러?!”

“놈은 ‘특급’ 수배범일 텐데 어떻게 국내에!”

“대체, 이번 사태를 얼마나 예전부터 준비했던 거냐··· 테러리스트 놈들은···!”

다른 7여단의 중요인사들은 아예 분한 감정을 드러내며 그런 말을 중얼거릴 지경이었다.

한창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차가웠던 여단장실을 달구기 시작한 지금, 나는 기다리던 말을 입에 담았다.

“여단장님께서는 제가 어디까지 알고 있느냐 물으셨습니다.”

“...”

갑자기 입을 연 나를 무언으로 바라보는 최중철.

나는 말했다. 현재 내게 부족한 점을 채워줄 최고의 카드를.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솔직히, 아무것도 없습니다만, 제게 ‘본디오 빌라도’를 빌려주신다면 제 손으로 알프레드 아들러의 목을 가지고 오겠습니다···. 이것만은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병과 소장 사이에 주고받은 말이라고는 결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시건방진 언행.

허나, 나의 폭탄 발언과 함께 터져 나오는 목소리들은 내 언행같이 ‘사소한’ 것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본디오 빌라도?!”

“이노오오옴! 네가 어떻게 여단의 최고 기밀 사항을 알고 있는 게냐!”

그 이름도 유명한 혈검, 본디오 빌라도.

그 유례는 예수를 십자가형에 처한 것으로 유명한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에게서 온 것이지만,

이 게임 같은 세상에서 ‘본디오 빌라도’는 ‘신살검(神殺劍)’이라고도 불리는 신화급의 무기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더욱이, 본래라면 지난 테러리스트 영내 침투사태에서 제라르 베르트랑이 가지고 도주,

먼 훗날 ‘휴거교’ 장로의 검이 되어 무고한 이들의 목숨을 수만 아니, 수십만이나 빼앗았던 최흉의 검이 바로 본디오 빌라도였다.

“답해라! 어서!”

“어째서 네가 여단의 최고 기밀을···!”

치명적인 사실을 지적하자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이고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오는 작전 참모.

그의 뱀 같은 눈빛은 당장이라도 내 몸을 양단할 것처럼 날카로웠지만,

“그만.”

최중철의 한마디에 그는 더 이상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그와 몇 걸음 떨어져 있음에도 느껴지는 묵직한 마나의 중압감.

순수한 마나의 중량만으로 최중철은 그를 멈춰 세운 것이다.

“내가 자네의 정체를 물어봐도 되겠는가.”

조금 전보다는 다소 정중해진 말투였지만, 그만큼 최중철에게서는 이전보다 나를 경계하는 낌새가 보였다.

“7여단 1대대 1중대 1소대 소속의 이병, 이건우입니다.”

당찬 나의 대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잠시 고민하던 눈치의 최중철은 이내 작은 중얼거림을 흘렸다.

“그런가.”

나를 신뢰하지도, 그렇다고 경계할 수도 없는 상황. 아무리 백전노장인 최중철이라도 나라는 기상천외한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쉽게 정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럼 이쯤에서, 다시금 이들을 살살 달래줄 필요가 있겠지.

이를 확신한 나는 당혹감으로 물든 이들 앞에 손가락 하나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앞으로 엿새 뒤, 경기도 하남에 기형 게이트 하나가 열릴 것입니다.”

본래라면 수백 명이 넘는 각성자를 집어삼켰을 그 게이트를.

“제가 그것을 막아낸다면 저의 가치를 인정해주시겠습니까.”

나는 막아볼 심산이었다.

한차례의 술렁거림이 가라앉고, 조용해진 여단장실 내부.

나의 뜬금없는 두 번째 폭탄발언에 이들은 다 함께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었다.

다만, 그 사이에서 홀로 다시금 이성을 되되찾은 남자. 최중철 소장은 말했다.

“그래···. 자네는 분명, 증명하겠다고 했었다지?”

그의 시선은 잠시 우리 1대대의 대대장인 김용운 중령에게로 향했다.

이내 다시금 나를 돌아보는 최중철. 그는 그렇게 가만히 나를 바라보다가 이윽고 결심이 섰는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증명해 보거라. 네가 신살검의 주인으로 걸맞은 존재인지. 그 판단은 2대대장에게 맡길 테니.”

마치 뛰어난 용병을 고용하는 듯한 태도의 최중철.

이것만으로도 첫 만남에 나의 존재를 각인시킨다는 당초의 계획은 제대로 성공한 듯했다.

더욱이,

최중철 소장이 어처구니없는 요구를 대놓고 거절하지 않았다는 것 자체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본디오 빌라도’는 신화급의 무기.

당장 얻을 수 있을 거란 기대는 애초부터 없었는데, 시험을 받을 기회가 주어지다니.

이건 단순히 여단 무기고 강탈을 막아낸 보상, 그 이상의 특혜가 아닐 수 없었다.

어쩌면, 내가 홀로 계산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신살검을 손에 쥐어볼 기회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남은 기한은 열흘.

솔직히 촉박한 시간이었지만,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니 활로가 보이기 시작했다.

“한 가지만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허나, 자리가 마무리되어가는 듯한 분위기 속에서도 나는 당돌하게 손을 들고는 그리 말했다.

솔직히 A급 테러리스트를 잡고 빈손으로 돌아갈 순 없지 않은가.

나의 입은 호를 그렸다.

***

7여단 내부에서, 가장 큰 판을 굴리는 것으로 유명한 겜블러 박태진은 최근, 하루하루를 소름 끼치는 기분으로 보내야 했다.

그가 앉아 있는 곳은 여단 본부의 PX. 그 테이블 중에서도 가장 구석인 자리였다.

CCTV에도 잡히지 않고, 무언가를 거래해도 티가 나지 않는 명당.

이곳이 바로 박태진이 자신의 ‘고객’들과 자연스럽게 접선하는 장소였다.

“여. 오랜만이다?”

“아, 오셨습니까. 남준서 병장님.”

박태진과 같은 1대대의 명실상부한 에이스. 스펠캐스터 남준서였다.

“이번 판은 좀 크다던데, 너 감당할 수 있겠냐?”

“아, 걱정하지 마십쇼. 좋은 자금책이 생겨서···. 자세한 건 기밀입니다. 하하하.”

“하, 새끼. 우리가 남이냐? 같은 대대에 같은 중대잖아. 뭐 힌트라도 좀 줘봐.”

도박판에서 무슨 힌트를 달라는 건지.

박태진은 솔직히 어이가 없었지만, 사소한 점이라도 걸고넘어져서 엮이려 드는 곳이 바로 군대라는 사회다.

심지어 남준서는 자신의 중대장인 박동협 대위가 특히 아끼는 병사로, 밉보여서 좋을 일이 없는 ‘고객’이었기에 박태진은 적당히 눈치를 살폈다.

“아, 그게 하나 있기는 합니다.”

“...뭔데. 빨리 말해봐.”

“그···. 저도 건너 건너로 들은 정보인데 말입니다. 이번 하남 게이트 사태를 해결하는 병력으로 저희 여단이 참전할 것 같습니다.”

겜블러 박태진이 벌이는 판은 간단했다.

‘거대 게이트’ 사태로 정확히 6일이 지난 현재.

하남시 인근에 게이트 독점권을 갖는 4개의 용병대 중 어디서 이번 게이트를 클리어할 것인가.

용병대는 당연하지만, 돈으로 움직이는 집단이기에 평균적으로 군의 병력보다 질이 좋다.

그런데 갑자기 유력한 클리어 후보로 군을 지목한다니···.

“야. 너 미쳤냐? 나랑 연 끊고 싶어? 아니 멀쩡한 용병대를 놔두고, 군부대를 추천해? 너 언제부터 그렇게 애국심이 넘쳤어. 하 얼탱이가 없네. 진짜.”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믿을 만한 정보라······.”

“씨발. 믿을 만하긴 개뿔. 난 ‘까마귀’에 8천. 만에 하나라도 우리 부대가 다른 용병대 다 뚫고 클리어하기라도 하면, 그냥 8천 더 줄 테니까. 그 미친 정보원한테 전해라 알겠냐.”

“예······.”

남준서는 그 길로 볼일을 다 봤다는 듯 여단 PX를 나갔다.

이번이 열한 번째 고객.

박태진은 만일의 사태를 위해 우선은 ‘믿을 수 있는 정보’를 따라 군부대를 추천했지만, 모든 고객의 반응은 남준서와 같았다.

허나, 결코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소름 돋는 사실은 지금도 박태진을 괴롭힌다.

-6일 뒤, 하남에 기형 게이트가 하나 열릴 거야.

-독점권을 가진 4개의 용병대는 전부 선봉대를 잃고, 끝내 우리 부대에도 참전권이 주어지지.

-거기서, 내 이름으로 2억을 군부대에 걸어놔.

거대 게이트 사태가 있던 바로 다음날.

의무대에 실려 갔다던 ‘이병 이건우’가 자신을 찾아와 했던 말들이다.

처음에는 무슨 개소리인가 싶었는데, 오늘 아침 실제로 하남시에 게이트가 열렸다.

심지어 통상적인 게이트와 달리 녹색의 빛을 띠는 기형 게이트로.

거기서 소름이 쫙 돋았던 박태진이지만, 이어지는 소식에는 더 놀랐다.

3대대 쪽 간부에게 듣기로 실제로 첫 번째 공략대로 선출된 용병대는 전멸.

그리고 2대대의 병장을 통해 정오가 지나 두 번째 용병대 역시 전멸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미친···. 지, 진짠가.”

이건우는 정말로, 미래를 예견하는 능력이라도 가졌다는 말인가.

박태진은 지금껏 관계를 이어온 도박판의 정으로 고객들에게 이건우의 말을 전했으나,

모든 고객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이, 이대로라면···.’

정말로 이건우의 말대로 군부대의 공략대가 그 게이트를 클리어한다면···.

이건우에게 돌아갈 돈은 최소 10억 이상.

박태진은 계속해서 돋아나는 오한에 괜히 자신의 팔을 더 열심히 쓸어댔다.

***

이윤의 극대화.

나는 이번 하남시 기형 게이트 사태를 통해 한 차원 더 높은 성장을 이룩할 작정이었다.

그를 위한 준비물로 필요한 것은 적지 않은 돈과 이번 게이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놈들’의 보옥.

그것만 있으면, 이전보다 더 고성능의 영약을 제조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대장장이 공방을 찾아갈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여단장과의 빅 딜이 있고 정확히 엿새 후. 예정대로 하남의 기형 게이트는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로부터 이틀 뒤.

모든 독점권을 가진 용병대의 전멸 소식이 들려왔고 다시 하루가 지나자,

“모두 주목!”

중대장 박동협 대위는 모든 일과를 멈추고 중대 전체를 소집했다.

“여단장님의 명으로 이번 하남시 기형 게이트 사태에 투입되는 부대는 우리 대대와 2대대. 이렇게 두 대대가 선택되었다.”

“...설마”

“또···?”

중대장의 말 직후, 부대원들 사이에서 연신 터져 나오는 불안감의 목소리.

주로 전투 경력이 많고 능수능란한 상병장들의 목소리였다.

본래라면 이처럼 중요한 자리에서 저러한 말을 내뱉었다간 중대장이 즉각 호통을 내질렀을 테지만, 이번만큼은 그도 적당히 넘어가는 듯했다.

왜냐하면, 우리 부대의 상병장들은 고작 열흘 전, ‘거대 게이트’ 사태에 투입되었었기에 그 고충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설마, 또 저희 상병장만 투입되는 겁니까?”

역시나 당당하게 중대장에게 질문을 건넨 이는 중대장의 아끼는 병사, 남준서 병장이었다.

허나, 중대장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독점권을 잃은 용병대의 정보로는 이번 기형 게이트의 유형은 레벨 제한형이라더군. 이번 거대 게이트로 상당한 레벨업을 경험한 너희 상병장은 가고 싶어도 못 들어갈 거다.”

그 말에 상병장들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허나, 그와 반대로 안색이 새파랗게 질리는 1중대의 일이병들.

조금 의외였던 것은 내 맞선임인 김장훈 일병이 다소 태연한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점이었다.

“지금부터 내가 호명하는 인원은 곧바로 군장을 싸고 집합한다. 일병 김동건, 일병 김장훈, 일병 곽지훈···.”

딸꾹,

가장 먼저 자신의 이름이 호명된 A급 헌터 김동건은 우습게도 너무 놀랐는지 딸꾹질을 했다.

이전 시가지 머맨 강습 사태 때도 그렇고, 놈은 태생적인 마력량이 많은 것을 제외하고는 시종일관 볼품없는 태도를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이병 이건우까지. 이상, 레벨 5 이하의 인원 10인은 모두 군장을 싸고 집합하도록. 알았나?”

““예···.””

일전 상병장들의 당찬 대답과는 정반대로 사색이 된 인원들은 하나같이 목소리에 매가리가 없었다.

허나, 그런 그들을 막아서는 이가 있었다.

“중대장님. 죄송하지만 이번 임무에 자원해도 되겠습니까?”

곧게 들어 올린 손.

중대 인원들의 이목이 쏠린 그곳에는 다름 아닌 우리 4소대의 에이스. 홍진웅 상병이 있었다.

홍진웅은 이번 ‘거대 게이트’에서 큰 활약을 하며, 최근 레벨업을 경험했음에도 아직 6을 달성하지 못한 입장의 병사였다.

지나친 엘리트 주의로 병사를 차별하던 중대장이 만든 대표적인 참사.

“진웅이······. 넌 지난 거대 게이트 때도 활약했잖아. 피로도 다 안 풀렸을 텐데?”

중대장의 반응은 영 좋지 않았다.

평소 엘리트 주의에 찌들어 사는 박동협 대위에게 C급이라는 등급을 초월해 매번 적적한 공을 세우는 홍진웅은 눈엣가시였기 때문이다.

“괜찮습니다. 저희 4소대 인원들이 전원 가는데, 분대장인 제가 빠질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부탁드립니다.”

홍진웅의 적극적인 주장에도 박동협 대위는 영 좋지 않은 표정이었다.

허나, 무슨 일이 생기건 인명피해가 늘어 경력에 스크래치가 생기는 것보다는 낫다고 여겼는지 이내 중대장은 꼬리를 내렸다.

“그래 알았다. 총 11인은 어서 군장을 싸고 집합한다! 실시!”

““...예!””

전생에도 홍진웅 상병은 이 게이트 사태에 투입되었었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이 기형 게이트 사태에 처음 투입된 인원은 우리 1대대와 2대대가 아닌 3, 4대대의 인원들이었다는 점이다.

레벨 제한형의 기형 게이트.

무려 4개의 용병대를 집어삼켰음에도, 이 시대의 지휘관들은 아직 이를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지금의 인원편성 역시, 던전의 공략을 위한 것이 아닌 의무적인 병력 차출이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아, 이건우. 너는 가지 말고 잠깐 중대장실로 따라와라.”

그때, 전생과는 달라도 한참 다른 중대장의 발언이 들려왔다.

나를 중대장실에?

대체 왜일까.

나는 곧바로 의문을 표했지만, 중대장은 날 거들떠보지도 않고 중대장실로 들어가 버렸다

“가봐. 건우야. 내가 짐 싸둘 테니까.”

“아, 감사합니다. 김 일병님.”

다행히도 나는 분대원들의 배려를 받아 아무런 부담 없이 중대장실로 향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시기의 나는, 다른 건 없어도 인복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 이번에는 내가 이들을 이끌어줘야겠지. 아주 폭발적인 레벨업을 할 수 있도록 말이다.

-딸깍.

이윽고 중대장실로 들어가자 나를 기다리고 있던 박동협 대위는 그 즉시 문을 잠그고는 문고리 옆에 어떤 버튼을 눌렀다.

지이이잉.

즉시, 중대장실을 감싸는 마공학 에너지 필드.

이 마공학 기기는 지휘관의 생존성을 올리기 위해 설치된 것이지만, 이 평화에 찌든 시대에는 전혀 다른 의도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건우.”

방음이 확실해지자 곧바로 나를 쏘아보며 목소리를 내리까는 중대장.

다른 건 몰라도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것만은 잘 알 수 있었다.

“이병 이건우.”

“야.”

“이병 이건우.”

“그래. 이병, 너 이병에다 D급이잖냐. 요새 대체 왜 그래?”

아,

나는 슬슬 이쯤에서 중대장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지 눈치챌 수 있었다.

이놈은 지독한 엘리트 주의자니까, 홍 상병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이놈에게는 눈엣가시가 된 것이다.

“조심하겠습니다.”

“그래. 몸조심해야지 건우야. 네가 어디 다쳐서 올까 봐. 이 중대장은 무지 불안하거든? 그러니까 게이트에 들어가도 전처럼 나대지 말고 구석에 처박혀 있어야 한다. 알겠나?”

나대지 말라거나, 처박혀 있으라거나. 방음이 확실해지니 순식간에 싸구려 어휘가 튀어나오는 중대장.

“예. 알겠습니다.”

나는 기계적으로 답할 뿐이었지만, 박동협 대위는 그간 나의 행보에 불만이 많았는지 5분이 넘게 이런저런 말을 쏟아냈다.

“...난 내 중대가 너 때문에 족보 꼬이는 꼴은 못 본다. 알겠으면 눈치껏, 눈치껏 하자 건우야. 알겠지? 게이트 들어가서도! 그냥 1소대 동건이 말만 잘 들어. 알겠어?”

“예. 알겠습니다.”

설마 출전 명령을 내린 직후에 따로 불러 ‘활약하지 않기’를 권고하다니.

이 시대의 지휘관들은 어쩌다 이 모양 이 꼴이 난 걸까.

아무튼, 나는 이번 일로 이 1중대장 역시 앞으로의 군에는 필요 없는 종양 같은 존재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

-다다다다다다다.

커다란 엔진소리를 내는 두돈반이 묵직하게 바퀴를 움직이고, 그곳에 탑승해 있던 부대는 움직였다.

분명 기형 게이트를 공략하기 위한 공략대일텐데, 우리 4소대 1분대 인원들을 제외한 모두가 도축장에 끌려가는 것마냥 안색이 시퍼렇게 물들어 있었다.

레벨이 낮다는 건, 그만큼 전투 경험이 적다는 방증이니까.

갑작스럽게 기형 게이트 같은 곳에 차출된 것이 두렵긴 할 것이다.

허나, 이런 식이라면 될 것도 안된다.

심지어 ‘휴거교’ 놈들만 제대로 제거하면 이번 게이트는 완전히 보너스 스테이지나 다름이 없는데 말이다.

조금 분위기를 바꿀 필요성이 엿보였다.

“홍진웅 상병님.”

“음, 응?”

“혹시 지금 ‘메모라이즈’ 해두신 스킬이 뭐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홍진웅의 유능함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그의 스킬.

타인의 스킬을 복사해 저장해두고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는 ‘메모라이즈’는 어떤 상황에서도 유연한 대처를 가능케 하는 사실상 만능의 가까운 스킬이었다.

유일한 단점이 있다면, 그 ‘메모라이즈’ 스킬의 보유자 홍진웅이 C급의 마나량을 가졌다는 것 정도.

허나, 그는 하루 고작 두 번밖에는 사용할 수 없는 그 ‘메모라이즈’를 기가 막히게 활용해 공을 세우는 남자였다.

“지금은 현철이의 은신과 사혁이의 발화인데······. 왜?”

정보 탐색에 좋은 은신과 캐스팅 시간이 짧은 임기응변에 좋은 발화.

확실히 홍진웅답게 이번 기형 게이트가 어떤 환경, 몬스터로 구성되어 있건 곧바로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한 초이스였다.

다만, 오직 나만은 기형 게이트 내부가 어떻게 생겼고, 그곳에 존재하는 적이 무엇인지를 알기에, 더 나은 효과적인 선택지를 안다는 것.

“홍 상병님, 혹시 어째서인지 묻지 않고 제가 말씀드리는 인원의 스킬을 두 번 저장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두 번? 두 명이 아니라, 한 스킬을 두 번 저장하라고?”

“예. 그렇습니다.”

마나 소비가 비약적으로 큰 ‘메모라이즈’의 특성상, 같은 스킬을 두 번 저장한다는 건 유일한 장점인 유연함을 스스로 버리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평소라면 이병의 무지함을 듣고 한 귀로 흘려넘겨줬을 홍진웅이지만, 그 말을 하는 사람이 다름 아닌 ‘나’라는 부분에서 그는 깊은 고민에 빠진 듯했다.

“왜···. 인지는 묻지 않기로 했으니, 그래 우선 들어나 보자. 건우 넌 내가 누구의 스킬을 ‘메모라이즈’ 하길 원하는 거니.”

꽤나 진지한 어조로 묻는 홍진웅 상병.

나는 굳이 말로 대답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시선을 옮겼다.

이윽고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른 인원들 역시 나를 따라 고개를 돌렸고, 한 사람에게 시선이 쏠렸다.

“...뭐, 뭔데. 나?”

그 대상은 1소대의 A급 헌터 중에서 유일하게 이번 작전에 투입된 김동건 일병이었다.

김동건 일병뿐만이 아니라, 이번 공략대를 주로 구성하는 3소대, 4소대의 일병들도 의아한 표정으로 이번에는 나를 돌아보았다.

“김동건 일병이면···.”

“그거 아닌가?”

어딘가 꺼림칙한 분위기.

허나, 나는 확신을 가진 눈으로 주변을 쓱 훑어본 뒤 말했다.

“네. 김동건 일병님의 스킬이 필요합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최근 석 달간 끝없이 큼직큼직한 활약을 이어가던 내가 그리 말하니 가볍게 부정적인 시선을 던지던 이들이 입을 꾹 닫았다.

그리고 그런 나에 이어서, 이번 공략대의 희망이나 다름없는 홍진웅 상병이 선뜻 입을 여는 것이다.

“그래. 네가 하는 말이니까. 뭔가 의미가 있겠지.”

최근 홍진웅 상병이 연이어 활약하는 나를 조건 없이 신뢰해주는 눈치였기에 택해본 방식이었는데, 참 다행이었다.

“자 동건아, 잠깐 따끔할 거다.”

“예에? 호, 홍진웅 상병님···?!”

허나, 당사자 둘을 제외한 모든 인원은 그저 이 상황이 이해가 안 단가는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왜냐하면, 김동건 일병의 스킬은 일명 ‘윈드’로,

나뭇잎을 거칠게 흔들리게 할 만큼의 바람을 장기간 불어오게 만들 뿐인, 그저 그런 스킬이었으니까.

다만, 그 별것 없어 보이는 스킬은 이번 게이트에 한해 우리 모두를 살릴 활로가 되어줄 것이다.

“자. 홍 상병님이 메모라이즈를 진행하시는 동안, 제가 공략대원 선임분들께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이전까지만 해도 얼굴을 시퍼렇게 물들이고 있던 이들이었다.

허나, 내가 말문을 트고 무언가를 하고, 공략에 대해 논하기 시작하니 분위기가 점차 변화했다.

“그래. 알겠어.”

거기에 내 맞선임인 김장훈 일병이 꾸준히 맞장구를 쳐주니,

다른 이들도 서서히 무사 귀환의 가능성을 엿보고는 점점 의욕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우리 공략대는 경기도 하남시에 모습을 드러낸 문제의 게이트 앞에 도착했다.

도망을 쳐야 하는 건 어느 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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