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15화
<알림>
ㅡㅡㅡㅡㅡㅡㅡㅡ
*‘거대 게이트’는 힘을 잃었습니다.
*위협은 저지되었습니다.
*빌런 공략 기여도.
-1위. 각성자, ‘이서영(Lv. 21)’ 7.5%.
-2위. 각성자······.
ㅡㅡㅡㅡㅡㅡㅡㅡ
7일 차 새벽.
마치 버튼을 눌러 시체를 소각하는 것처럼 기계적으로 ‘좀비’를 사냥하던 인원들의 눈앞에 아무런 전조도 없이 그런 메시지가 나타났다.
“....뭐?”
“이, 이제 끝···. 이라는 건가.”
“정말··· 끝이겠지···?
이들의 퍼석거리는 중얼거림은 마른 모래를 움켜쥐는 것처럼 덧없이 울려 퍼졌고,
-턱!
두 눈이 퀭한 지경이 되도록 밥도, 잠도, 휴식도 제대로 취하지 못했던 일부 인원들은 그 메시지를 목도함과 동시에 쓰러지는 이들도 있었다.
서울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위협은 그렇게 덧없이 끝난 것이다.
이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휘소에서 바라보던 1대대의 대대장. 허나, 김용운의 입에서는 그답지 않은 말이 툭 하고 튀어나왔다.
“제기랄! 이런 개 같은 일이!”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리기 바쁜 그 순간, 김용운은 홀로 절망적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대, 대대장님?”
“대대장님 무, 무슨 일이십니까?”
갑작스러운 그의 고함에 놀란 장교들은 그리 되물었지만, 김용운은 이마를 짚고 극심한 편두통이라도 느끼는 사람처럼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대체······.”
상반되는 반응에 지휘소 텐트 내부에 있던 이목이 모두 대대장 김용운 중령에게 쏠렸고, 그제야. 그의 손에 들린 ‘마공학 통신 장비’가 눈에 들어왔다.
이는 도청의 위험이 전혀 없으나, 레벨이 낮은 각성자는 차마 손도 댈 수 없을 만큼의 마력을 소비하는 지휘관들 간의 소통을 위한 장비였다.
즉, 김용운 중령이 방금까지 ‘통신 장비’를 이용하던 대상은 다름 아닌 여단장, 제 7여단의 총수인 최중철 소장이라는 말이 된다.
“대, 대대장님. 설마 부대에 무슨 일이···?”
감이 좋은 상사 한 명이 김용운의 눈치를 보며 그리 물었고, 홀로 절망적인 표정을 짓고 있던 김용운 중령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아니, 우리 부대에는 아무 일도 없다.”
“그렇다면······.”
“다만, 우리 여단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뿐. 이번 ‘거대 게이트’를 위해 주력 인력을 파견했던 대부분의 여단과 군단에 테러리스트 침투 사태가 일어났다.”
“예?!”
“아, 아니 이번 거대 게이트에 지원 병력을 보낸 대대만 열 곳이 넘는데, 그곳 모두에 말입니까!”
경악을 금치 못하는 간부들.
대한민국 최고의 무력집단인 ‘군대’는 현재, 감히 테러리스트조차 쉽사리 넘보지 않는 거대 집단이었기에 부대가 공격당한다는 것은 그 발상부터가 많은 이들을 놀라게 만들기 충분했다.
허나, 더 가장 중요한 말은 아직 하지도 않았다.
“아니, 대대가 아니다. 부대에 침투해 우리 군의 인력을 척살한 테러리스트들은···. 각 여단과 군단의 무기고를 털어갔다고 한다.”
“여, 여단···!”
“군단 본부를 건드렸다는 말입니까!”
입이 떡 벌어지는 간부들.
허공에 떠오른 게이트 메시지를 보고 잠시나마 안정을 되찾았던 인원들마저 다시금 패닉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이를 실시간으로 지켜보던 김용운 중령은 지휘소가 아비규환이 되기 전에 얼른 윽박질렀다.
“놀랄 시간 없다! 당장 부대로 복귀하라는 여단장님의 명령이다! 움직여!”
밤낮의 구분 없이 무려 일주일간 전투를 거듭했던 부대원들.
솔직히 대대장으로서도 참 안타까울 따름이었으나, 어영부영하다가 또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니 어쩔 수 없었다.
-딸깍!
모든 간부가 지휘소 텐트를 나가 부대원들을 통솔하는 모습을 확인한 김용운 중령은 조용히 휴대용 금고를 열고 그 안에 있던 물체를 다시금 눈으로 확인했다.
이젠 지긋지긋하다 못해 친숙해진 형태.
-...있었습니다.
어젯밤. 홀로 거대 게이트의 중심부까지 수천의 좀비를 헤집고 들어갔던 ‘철혈검희’가 김용운에게 직접 전해준 물건.
그 오르골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냔 말이다···!”
도대체 어째서, 이 거대 게이트는 여타 다른 거대 게이트들과 달리 ‘좀비’라는 단일 개체밖에 없었던 걸까.
어째서, 이상 현상이 일어나는 곳에는 항상 이 오르골이 존재하는 걸까.
이 오르골의 정확한 용도나 사용법 따위는 알 수 없지만,
‘휴거교’를 추적할 때마다 이 오르골을 마주하게 되니, 아무리 명시적인 증거 하나 없을지라도 이젠 인정할 수밖에는 없게 되었다.
이 오르골을 ‘사용’하는 존재는 분명 ‘휴거교’라고 말이다.
‘자연현상이나 다름없다 여겨왔던 게이트를······. 휴거교에서 만들어내고 있다···?’
김용운 중령은 자신이 떠올린 섬뜩한 가설에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말이었다.
인류를 무참히 학살하는 게이트를 정작 인류가 활용하고 있다니···.
만일, 그 가정이 만에 하나라도 사실이라 한다면,
갑작스럽게 출몰한 거대 게이트.
주력 병력을 비운 당일에 여단에 침투하려 했던 제라르 베르트랑.
그리고 이 사태에 주력 병력을 파견 보낸 여단, 군단들만을 정확히 골라 찾아온 테러리스트들.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김용운 중령은 아까보다 더 눈을 크게 뜨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군 수뇌부에, 스파이가 있다.’
의심이 아닌 확신.
그건 ‘휴거교’에서 게이트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가정보다도 훨씬 앞뒤가 잘 맞고 훨씬 가능성이 큰 이야기였다.
“...어서!”
“부상자를 우선해서 옮긴다.”
“힘든 건 알지만, 어쩔 수 없다. 움직여!”
지금도 지휘소 텐트 밖에서는 부상병들과 그저 피로만으로 정신을 잃은 병사 그리고 마력 고갈로 넋이 나간 이들이 뒤엉켜 어떻게든 부대로 복귀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허나, 이 비참한 광경마저도 ‘휴거교’와 닿아 있는 스파이에게 놀아난 것뿐이라면······.
-우드득!
김용운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지휘소 내부에 있던 목제 테이블을 쥐어뜯고 말았다.
바로 그때, 친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중령님. 긴히 드릴 말이 있습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오게.”
그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철혈검희 이서영.
작은 체구의 그녀가 텐트 입구를 걷으며 안으로 들어왔지만, 의외의 인물 한 명이 이서영을 따라 텐트에 들어왔다.
“자, 자네는···?!”
“직접 뵙는 건 오랜만이네요. 중령님.”
텐트에 들어온 인원은 다름 아닌 두 대대장과 함께 은밀하게 ‘휴거교’를 추적 중인 협회의 정보원. 조보영이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무례를 사과드리기 전에 우선, 제가 이렇게 직접 찾아오게 된 계기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거침없이 운을 떼는 조보영.
이에 대대장 김용운이 고개를 끄덕이자, 조보영은 더는 놀랄 기운도 남아있지 않았던 김용운의 입을 떡 벌어지게 할만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건우 이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
7일 차 정오.
예정대로라면 금일 서울시를 침공한 거대 게이트가 닫히는 날이다.
어차피 단일 개체 ‘좀비’만이 존재하는 게이트인지라, 군에서 정보를 파악할 능력만 되었다면 사실상 이틀만에 닫을 수 있는 난이도의 게이트였다.
이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던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이 기회에 꼭 빌런을 잡고 싶었고, 어차피 이번 게이트는 시간만 많이 잡아먹을 뿐,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사망자 0명을 기록한 거대 게이트였기 때문이다.
또한, 발언권도 없는 내가 아무리 게이트에 대한 정보를 주어도 수뇌부에 있는 ‘그 빌런’이 이를 받아들였을 리도 없고.
‘그리고 이 모든 현상들이, 휴거교의 큰 그림이라는 걸 알았을 때. 이미 그들을 막을 수 있는 자는 없었다.’
어떻게든 미래를 바꿔야만 했다.
제라르 베르트랑이라는 거물을 이번 기회에 잡은 건 분명 큰 성과라 볼 수 있으리라.
이제부터, 휴거교는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휴거교가 건재함을 널리 알리기 위한 대대적인 테러,
그리고 무슨 목적인지 그런 휴거교를 돕는 ‘불사왕’의 종복들.
게다가 그런 두 집단의 위험을 지속해서 부정하고 사태를 낙관하게 만드는 군 내부에 침투한 그 빌런까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이 세 세력의 합중주는 군이라는 가장 거대한 무력집단을 삽시간에 무력화시키고 만다.
‘이제 곧이다···.’
오늘을 기준으로 이젠 열흘도 남지 않은 이 촉박한 시간, 나는 어떻게든 알맞은 타이밍에 최소한의 병력이라도 움직일 수 있는 ‘발언권’을 얻어내야만 했다.
대체 어떻게 해야 그 태산과도 같은 남자를 움직일 수 있을까.
지난 나흘간의 궁리와 갑작스러운 조보영의 등장으로 얻어낸 힌트.
‘방법은···. 있다.’
병실 침대 위에서 눈을 뜬 그 순간부터 지금껏 이어져 왔던 고민을 마치고, 드디어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다다다다다다!
-어서 옮겨!
-A형! Rh- A형 피가 모자라!
-누구 없어? 간부들 주기적으로 헌혈해두는 거기 가봐!
-예!
피, 헌혈.
파편적으로 들리는 큰 고함소리에 내가 눈을 뜨자 시계는 고작 2시간 지나있을 뿐이었다.
허나, 인기척도 없이 조용했던 여단 의무대에 나뒹구는 환자 이송용 침대의 바퀴 소리와 최근 나를 집중적으로 치료해주었던 여단 군의관의 목소리.
아마, 실전에 투입되었던 인원 중에서 부상자들이 먼저 이곳에 도착한 듯했다.
그때,
-우당탕!
갑작스레 내 병실 바로 앞에서 무언가 엎어지는 소리가 들려와 나도 무심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빨리 와 새끼야!
-아, 예!
이내 물컹한 무언가를 손으로 옮기는 소리만 몇 번인가 들려올 때쯤, 갑작스러운 고함에 병실 문 앞에 있던 이가 급하게 뛰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뭐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내가 조용히 침대에서 일어나 문을 열자. 앞에 무차별적으로 널브러진 헌혈 팩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건···.’
아마 주기적으로 간부들이 헌혈한 피를 모아두는 곳에서 이것들을 들고나오다 이 자리에서 한바탕 굴러버린 것 같았다.
어쩔 수 없다는 마음에, 어서 이 헌혈팩들을 전해주기 위해 하나, 둘 품에 담던 중.
“어?”
나는 무언가를 발견해버리고 말았다.
주기적 헌혈, 간부.
그리고 눈앞에 헌혈팩에 붙은 종이에는 프린팅된 글씨로 선명하게 적힌 ‘남궁연’이라는 이름.
남궁연의 헌혈팩 그리고 나 머릿속을 스치는 한 메시지.
<수신의 길>
*신성한 피로 부정한 피를 씻어내라.
*진행도 (000/500)
나는 일전에 엑스트라 퀘스트를 받았었고, 내게는 ‘신성한 피’가 필요했다.
휙,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피던 나는, 다시 조용히 다른 헌혈팩들을 널브러뜨려 놓고는 ‘남궁연’의 헌혈팩만 숨겨 병실로 돌아왔다.
“음···.”
다른 부상자에게 갈 헌혈팩을 빼돌리는 모양새가 되니 다소 미안한 감이 없진 않았지만, 이건 내 예상이 맞는지 확인할 몇 안 되는 기회다.
입원기간 동안 남궁연이 그렇게 많이 내 말동무가 되어주기 위해 이곳에 찾아와도,
정작 피를 달라는 말은 못 하지 않았던가.
“후우.”
대체 어떤 변화가 생길지.
‘수신의 길’이라는 퀘스트에 대해서 만큼은 아무것도 모르기에 나는 잠시 심호흡을 한 뒤, 피로 적신 헝겊으로 청명옥(靑明玉)을 감쌌다.
직후,
<알림>
ㅡㅡㅡㅡㅡㅡㅡㅡ
*각성자, ‘이건우’는 수수께끼 형태의 퀘스트를 풀어냈습니다.
*각성자, ‘이건우’는 14구역에서 역사상 두 번째로 엑스트라 퀘스트를 풀어낸 자입니다.
*소량의 경험치가 수여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나타난 메시지.
이게 대체 무슨 영문인지. 퀘스트의 비밀을 풀어냈다고 경험치까지 주겠다고 한다.
“아니, 허 참.”
고작 이런 일로 경험치까지 얻는다니.
다른 헌터들이 알면 경악을 금치 못할 사건이었다.
이어서 조심스럽게 퀘스트 창을 여니. 변화한 수치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수신의 길>
*신성한 피로 부정한 피를 씻어내라.
*진행도 (001/500)
“고, 고작?”
겨우 1.
솔직히 경험치가 주어진 것보단, 이쪽에 더 놀랄 지경이었다.
이에 오기가 생긴 나는 다시금 헝겊을 피로 적셔 청명옥에 주었으나,
*진행도 (002/500)
다시금 변화는 수치는 메시지가 표현할 수 있는 가장 미미한 수치인 1이었다.
“하아···.”
최소한, 하루 이틀로 해결할 수 있는 퀘스트는 아닌 듯했다.
-부르르르.
그런데, 갑작스럽게 강한 떨림을 보여주는 피로 물든 헝겊.
이에 놀라 그쪽을 바라보니 떨려오는 것은 헝겊이 아닌 그 속에 있던 청명옥이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혹시 더, 달라는 거야?”
바보 같은 행동인 것은 알지만, 왠지 청명옥이 내게 말을 거는 것 같아 그리 중얼거리니, 놀랍게도 반응이 있었다.
-부르르르!
내 말에 대답하듯 또다시 부르르 떨려온 것이다.
이에 놀란 눈을 뜨고, 다시 헝겊에 피를 적시는 나.
이를 몇 번이고 반복하니.
청명옥은 떨림을 멈추었고 마치 잠자리에 든 사람처럼 아주 조금씩 좌우로 흔들릴 뿐이었다.
*진행도 (007/500)
그 이름부터 심상치 않은 ‘수신의 길’.
대체 이 안에는 뭐가 있기에 이런 반응까지 보일 수 있는 걸까.
그래도 최소한, 재앙 ‘태고의 흡혈귀’와 협력적인 존재가 아닐 거라는 추측은 가능하니 안심이었다.
-드르륵!
그때, 누군가 거칠게 문을 열어젖히며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마침 남궁연의 ‘헌혈팩’을 치운 참이라 다행이었지, 이상한 광경을 보일 뻔했다.
“두 다리 잘 뻗고 있는 걸 보니 내 명령을 잘 수행한 모양이군. 이건우 이병.”
살짝 비아냥거리는 어조와 무신경해 보이는 얼굴. 허나 그 무엇보다 작은 키가 그녀의 정체를 명시적으로 보여주었다.
“오셨습니까. 2대대장님.”
“그래. 내 말은 잘 기억하고 있었겠지. 가자.”
철혈검희 이서영은 인사를 나눔과 동시에 거침없이 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 몸은 아직 찌뿌둥하긴 했지만, 이젠 걷고 뛰는 데 큰 문제가 없는 상태였기에 순순히 그녀를 따랐고,
나는 자신이 조금씩 그려왔던 밑그림이 이젠 커다란 형태를 갖추어감을 느꼈다.
“이건우 이병, 네 정체가 뭔지 나는 그다지 관심 없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는 정신 바짝 차리는 게 네 신상에 좋을 거야.”
상당히 무게 있는 경고였다.
허나, 아무래도 눈앞에 두고 있는 장소가 장소인 만큼 당연한 모습이긴 했다.
-여단장실
이 7여단의 총수.
일인 전차, 흑표라는 별칭으로 칭송받는 전쟁영웅. 최중철 소장의 개인실이었다.
똑똑,
“데려왔습니다.”
짧은 읊조림과 동시에 열리는 문.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태도였다.
여단장실로 들어가자 보이는 열 명의 군인들. 이 7여단 핵심인물들의 이목이 오로지 나에게로 쏠렸다.
그 신상으로 말할 것 같으면 7여단의 작전 참모, 정보장교, 인사장교에 군수참모···.
거기에 그 정상급 인사들의 중앙에 떡하니 앉아 나를 무섭게 노려보는 전쟁영웅.
흰 백발이 드문드문 보이는 지긋한 나이를 먹고도, 전투복을 입었음에도 그 존재감을 과시하는 탄탄한 근육을 가진 그가 바로 흑표(黑豹), 최중철 소장이었다.
“고생했네. 이서영 대령.”
무거운 분위기에 선뜻 입을 연 것은 최중철 다음으로 직급이 높은 작전 참모였다.
“그래. 네가 A급 테러리스트를 단독으로 제압했다는 이건우 이병인가.”
“충성! 예 그렇습니다.”
뱀의 혀처럼 가늘게 뜬 눈으로 나를 노려보는 작전 참모.
그는 마치 확신하는 어조로 내게 말을 걸었다.
“우선 자네가 헌터 협회, 협회장 직속의 히트맨일지 모른다는 보고는 받았다.”
흘낏 시선을 돌리니, 테이블 앞에 앉은 총수들 외에도 뒤에 서 있는 우리 1대대의 대대장이 보였다.
그리고 나를 데리고 온 2대대장 이서영. 이 두 사람이 모두 이곳에 있다는 건 다행히도 조보영이 내 예상대로 움직여 줬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그것은 아직 검증되지 않은 정보로 이를 완전히 신뢰하는 이는 이 자리에 아무도 없다네.”
뭐,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니었다.
이서영의 주장으로 내가 테러리스트와 한편이 아니라는 건 믿어도, 정작 내가 정말 군의 편인지는 모르는 것 아닌가.
당연한 절차.
피아식별.
오직 그걸 위해 이들은 이 자리에 모인 것이다.
허나, 어째서였을까.
지난 7일간 전투를 거듭하느라 쌓인 피로가 채 풀리지도 않았을 텐데, 굳이 직접 몸을 끌고 이곳까지 찾아올 필요가 어디에 있던가.
심지어 이들 중에는 이 7여단 소속이 아닌 장교도 있다.
그런데, 그러한 의문에 내 머리를 스친 직후, 이에 대한 해답은 당장 내 눈앞에 벌어졌다.
“그러니, 딱 세 번. 내 질문에 대답해보게.”
스으으으.
묵직하다 느낄 정도의 큰 마력이 한 점으로 모여드는 것이 느껴진다.
이에 놀라 시선을 옮기니 보이는 것은 오른쪽 눈동자가 새카맣게 물드는 작전 참모의 모습.
들어본 적 있다.
그 정체를 끝까지 숨겼지만, 빌런의 역습 직전 피살된 탓에 끝내 신상이 공개되지 않았던 이 7여단의 히든카드.
‘레어스킬, 거짓 간파.’
그는 예, 아니오로 돌아오는 대답에 한하여 그것이 거짓인지 아닌지를 완벽하게 판별할 수 있는 스킬의 소유자이다.
설마 이런 S급 인력이 7여단에 있었을 줄이야.
“첫째. 자네는 우리 군에 적대하는 세력과 어떠한 연결점이라도 있나.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말이네.”
심사숙고를 거듭한 끝에 나온 첫 질문.
그건 나의 존재가 군에게 위해가 되는지 아닌지 대한 질문이었다.
나는 즉답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작전 참모는 침묵했다.
허나, 그것 자체가 어떠한 신호인지. 우리 1대대의 대대장인 김용운이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둘째. 자네는 지금껏 불법적인 일에 손을 댄 적이 있나. 사소한 것이 아닌 인간의 생사와 엮인 일로 말이다.”
두 번째 질문 역시, 듣는 즉시 그 의도를 읽어낼 수 있었다.
히트맨은 불법적인 일을 도맡아 처리하는 이들의 통칭이니까.
나를 협회장 직속의 히트맨이라 착각하고 있는 이들은 궁금한 것이다.
내가 정말로 히트맨인지 아닌지 말이다.
허나, 나는 답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어지는 침묵.
그제야 장교들 사이에서는 술렁거림이 일었다.
“뭐, 뭐라고···?”
“그렇다면 그 보고는 대체···.”
갈수록 오리무중이 되어가는 나의 정체.
나는 당황하는 그들의 모습을 확인하며 오히려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본래 미지의 존재는 자칫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는 있으나, 최소한 적대적인 존재가 아니란 걸 확인했으니.
이로써 이들은 일개 이병일 뿐인 나의 말 하나, 하나를 귀담아듣게 될 것이다.
“셋째······. 자네는 자네가 알고 있는 정보와 본인의 능력을 적극 활용해 우리 군을 위해 헌신할 각오가 되어있는가.”
마지막 질문은 결국, 내가 자신들에게 이득이 되는 존재인지 아닌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적이 아니더라도, 아군이 아닐지도 모르는 것 아닌가.
참,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단순무식한 질문이다.
허나, 단순한 질문은 퍽 명쾌한 해답을 낳기에 이만큼 군과 어울리는 질문은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답한다.
아주 강한 눈빛으로 확고한 의지를 담아서.
“예. 그렇습니다.”
‘당분간은’이라는 말머리가 빠져있긴 했지만, 어차피 군의 흥망은 휴거교의 득세와 반비례하게 되어있다.
그러니 나는 군을 유도할 것이다.
최소한, 전생과 같이 허무하게 무너져내리지는 않도록 말이다.
이 같은 나의 굳은 의지 자체가 세 번째 질문에 대한 단순 명쾌한 해답이었기에 나는 주저하지 않았고···.
이번에는 내게 직접 질문을 던지던 작전 참모가 더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까지 더듬으며 말했다.
“거, 거짓은···. 없습니다.”
이 여단장실 내부, 모든 인원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하물며 나를 데려온 철혈검희 이서영마저 놀랐는데, 그렇지 않은 이가 있을까.
그런데 딱 한 명, 처음 마주했던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무표정을 일관하는 이가 있었다.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자네 삶의 최종적인 목표는 뭔가.”
목석처럼 곧고 금강석만큼 단단한 억양.
이는 지금껏 단 한 번도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던 흑표 최중철의 첫 마디였다.
최중철 장군답게, 나무보다는 숲을, 하나보다는 전체를 중시하는 상당히 거시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질문.
만일, 여기서 부나 강인함 따위를 논한다면 김중철 장군은 나의 협조자가 되어줄지는 몰라도, 죽는 그 날까지 나를 진심으로 신뢰하진 않을 것이다.
그는 무려 1세대 헌터들과 함께 전장에 선 경험이 있는 ‘명예를 아는 헌터’이니까.
허나, 걱정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 역시, 최초의 전장은 아닐지라도 최후의 전장에서 인류의 창이라 불리던 인간이니까.
“제 목표는······.”
그가 원하는 대답은 다름 아닌, 나의 원초적인 갈망이기에.
나에게 있어 그것은 응당 해야 할 일에 불과했기에,
“인류의 절멸을 막는 것입니다.”
난 무척이나 담담한 어투로 그리 말했고···.
드디어,
모든 것에 무관심해 보였던 여단장 최중철의 눈동자에 반짝임이 깃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문제의 게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