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14화 (14/175)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14화

“이건우···. 1중대에 4소대 인원인 이병 이건우를 말하는 거겠지?”

김용운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그리 말했지만, 사실 1대대에 이건우가 한 명뿐이라는 건 누구보다 그가 잘 알고 있었다.

“예.”

안색이 파랗게 물들이고는 아직도 놀란 얼굴로 대답하는 간부.

허나, 김용운은 그 간부의 반응이 격한 만큼 더 큰 확신을 느꼈다.

그는 여단 본부 소속의 군수 담당관으로 이곳 광화문 작전 현장에 있던 간부가 아니었다.

다시 말해 그는, 이건우의 활약을 직접 목격하고 이곳까지 달려온 사람이라는 말이 되는 것이다.

허나, 김용운이 이번만큼은 이를 쉽게 믿기 힘든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A급 테러리스트라니.”

이건우 이병은 분명 비범한 자이지만, A급 테러리스트는 아무리 그래도 도를 넘었다.

A급 테러리스트 앞에서는 지금껏 그의 활약인 자이언트 엔트의 알도 머맨 강습 사태도 장난감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A급을 이건우가 제압해냈다.

이건, 단순 인간 김용운으로서는 그저 감탄할 대사건이었지만,

지휘관으로서는 다른 가능성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군 내부에 신뢰받는 자를 심으려고 일부러 테러를 막는 쇼를 벌이는 테러집단도 간혹 존재한다······. 만일 이건우가 히트맨 출신이 아니라, 테러리스트 출신이었다고 한다면?’

아니,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A급 테러리스트라는 귀한 목숨까지 내던지면서 그런 쇼를 벌일 이유는 없다.

점점 더 미궁으로 빠져드는 이건우 이병의 진실.

거기까지 생각을 이어가던 김용운은 그때, 대대장실에서 이건우가 말했던 진심 어린 다짐을 떠올려냈다.

증명해 보이겠다 말하던 이건우.

김용운은 그런 그의 모습에서 무려 자신이 존경하는 군인, 이준학 준장의 모습을 엿보았었다.

‘그래. 최소한 테러리스트 놈들과 한패일 리는 없다.’

이내 고개를 끄덕이는 김용운은 이렇게 심란해질 거라면, 차라리 자신이 직접 그를 만나고 오겠다고 다짐한 바로 그 직후에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재미있네요. 이건우. 저번에 우리 대대 인원들을 구해줬던 것도, 같은 병사 아니었습니까?”

인기척도, 발걸음 소리도 없이 다가온 한 사람.

김용운 중령은 곧바로 고개를 휙 돌렸지만, 보이는 것은 없었다···.

“하아···. 밑입니다. 밑.”

목소리를 따라 김용운 중령이 고개를 내리자, 인근에 있던 모든 장교, 부사관들을 경악하게 만드는 인물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작은 키에 왜소한 골격.

그러나 그녀가 머리에 쓰고 있는 군모에는 그 계급을 나타내는 무궁화 3개가 아주 분명히 박혀 있었다.

“추, 충성!”

“충성!”

모든 간부가 경악하는 얼굴로 경례했다.

겉으로는 어려 보이는 외향에 후줄근한 행색 때문에 자칫 아이로 오해를 받을지 모르나,

그녀의 별칭을 아는 이들은 모두 눈앞의 대령에게 절대적인 예의를 갖출 수밖에 없었다.

“이거, 철혈검희씩이나 되시는 분이 어쩌다 이런 누추한 곳을 다 오셨는가.”

그녀가 바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실전 파 군인. 철혈검희였기 때문에.

“김용운 중령님···. 제가 검희라고 부르지 말랬죠. 그런 옛날 별명을 왜 아직···.”

“하지만 대령. 자네 나이는 아직 서른도 안 되지 않았나.”

“열세 살에 받은 별명을 15년째 불리고 있는데, 화병이 안 나고 배깁니까?”

중령과 대령, 거구의 남자와 작은 여검사.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의 두 사람은 바짝 긴장한 다른 군인들과 달리 평온한 대화를 이어갔다.

중령은 대령에게 반말하고, 대령은 중령에게 존댓말을 하는 이 기이한 상황.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계급에 알맞은 어휘를 사용하겠다만, 두 사람의 인연은 퍽 오래되었기에 이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 아무튼······. 그 이건우라는 친구는 제가 보러 갈 테니 중령님은 자릴 지키세요.”

“자네는 작전 중에 무슨 소릴 하는 겐가.”

“A급 테러리스트를 이병이 잡았다. 거기서 테러리스트와 이병 사이의 어떠한 연관성을 의심하고 계시던 중 아니셨습니까.”

날카롭게 찌르고 들어오는 철혈검희.

십년지기 전우 사이에 숨길 수 있는 것은 없는 듯했다.

허나, 김용운은 감정적인 이유로 이미 이건우와 테러리스트 사이의 연관성이 없다고 확신한 후였으나,

이성적인 지휘관인 철혈검희에게 감정적 근거는 통하지 않는다.

“자네가 자릴 비우면, 2대대의 통제는 어떻게 하려고 그러나.”

“걱정하지 마십쇼. 어차피 사령부 저 겁쟁이들, 내일모레까진 돌격명령을 내리지도 않을 겁니다.”

1대대의 자랑이 대마력 포병대라면 2대대의 자랑은 철혈검희를 필두로 한, 최강의 검사대였다.

즉, 실제 보병의 진격이 시작되기 전까지 2대대는, 대대의 메인 전투력이 전부 놀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에 반해 1대대는 바로 이 시점에 큰 공을 세워두어야 하는 상황, 사실 김용운 중령과 철혈검희 중 자리를 비운다는 행위가 더 가능한 쪽은 단연 철혈검희 쪽이었다.

“만에 하나라도 자네가 없는 사이 돌격명령이 떨어진다면···?”

“그럴 일 절대 없습니다. 중령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이번 작전 총지휘관이 누군지······. 뭐 그래도 불안하시면 내기를 해도 좋습니다.”

확신하는 2대대장.

게다가 십년지기 전우인 김용운 중령의 눈에, 지금 철혈검희의 눈동자에는 ‘이건우’라는 인물에 대한 흥미가 샘솟는 것이 보였다.

그녀가 다른 이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 또한, 참으로 드문 일이었기에 김용운은 그만 백기를 들고 말았다.

“하아···. 알겠네. 자네가 자리를 비운 동안 2대대 지휘는 내가 맡지. 처음부터 이걸 부탁하려고 했던 게지?”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몸을 휙 돌리는 철혈검희의 입은 조금이지만, 웃고 있는 것 같았다.

***

내가 눈을 떴을 때, 참 기이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군의관에게 벌써 이틀이나 시간이 흘렀다는 말을 들었던 것도 물론 놀라웠지만, 정작 날 놀라게 한 것은 따로 있었다.

“충성! 이병 이건우의 진료를 마친 군의관 송명호! 지금 복귀하겠습니다!”

나무늘보보다 나태하기로 유명했던 군의관이 바짝 긴장해서는 칼각을 잡고 일어나 옆 침대를 향해 경례한 것이다.

이어서 들려온 목소리는 내게 있어 다소 친숙한 목소리였다.

“그래. 가봐.”

“예!”

떠나는 군의관, 다가오는 한 인물.

키는 작고 몸집은 왜소했지만, 등에 지고 있는 ‘검’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 7여단, 최강의 검사.

철혈검희 이서영.

그녀는 최후의 전쟁에서마저 살아남은 실력자였으며 끝까지 대항군을 배신하지 않은 최고의 조력자이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는 내가 뇌제라 불리우던 전생, 나의 비서관직을 맡아주던 사람이었다.

“안녕?”

“충···. 읏!?”

놀라는 것과는 별개로 현재의 나는 이병. 어서 빨리 거수경례를 시행해야 했다.

하지만 팔을 들어 올리는 일조차 극심한 고통에 막혀 불가능했다.

그때, 한보를 더 내딛기 위해 방어를 포기했고 결과 스켈레톤의 묵직한 할버드를 정통으로 맞은 팔이 바로 그 팔이었다.

“가만히 있어. 평생 팔을 못 쓰게 될지도 모르니까.”

“아······. 감사합니다.”

걱정스러운 기색 따위는 전혀 없는 배려를 받으며, 내가 다시금 기울어진 침대에 몸을 기댔다.

그러자 이서영은 나와의 대화를 위해 천천히 내 시선이 닫기 좋은 곳으로 이동했고 눈을 마주 보지··· 못했다.

그녀가 너무 작았기 때문이다.

“...!”

이에 놀란 이서영이 옆에 있던 작은 상자를 끌어왔고, 그걸 밟고 올라서서야 드디어 시선이 맞았다.

이서영은 크흠, 괜히 목을 가다듬더니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음음, 우선 자네는 지금 여단 내에서 테러리스트와의 연관성을 의심받고 있네. 알고 있나?”

억울한 일이다.

목숨을 걸고 피를 사방에 흩뿌려가며 싸워 간신히 이기고 나도 쓰러졌다.

그 상황에 지휘관이라는 작자가 나타나, 공식적으로 하는 첫마디가 저것이라니.

허나, 그녀는 별칭부터가 철혈검희.

전생에 장교였던 내가 병사들을 거칠게 다루던 것이 다 저 사람의 영향일 정도로 철혈검희에게는 손대중이라는 것이 없었다.

“서유럽의 A급 테러리스트를 이병에 D급 병사인 자네가 쓰러뜨렸다. 이걸 여단 본부의 사람들에게 보고하면, 자네의 공을 치하하기보다 우선 자네를 구금하고 고문하려 들게야. 그쪽 사람들은 겁쟁이가 많으니까.”

사실, 철혈검희가 방금 이야기한 바는 나 역시 예측했던 바였다.

제라르 베르트랑은 인류의 악몽이라고도 불렀던 ‘불사왕’의 종복.

다른 빌런이면 몰라도, ‘불사왕’의 종복은 애초부터 그 궤를 달리하는 테러리스트들이었다.

D급 병사인 내가 그를 쓰러뜨렸다고 한다면 이전처럼 불신과 무반응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 내가 테러리스트들과 한통속인 아닌지부터 의심하고 보는 것이다.

군인을 돕고, 군인에게 심문을 받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봐도 정말 심한 대접이 아닌가 싶지만, 이 미련하고 비효율적인 방식이 바로 군대라는 집단의 특징이었다.

“그리고 2대대장인 나 역시, 이야기를 듣자마자 자네를 의심했네. 그리고 상황이 어떻든 자네를 심문해 제대로된 진실을 고하게 할 심산으로 여기까지 왔지.”

그야 철혈검희 이서영은 그런 사람이니까. 나는 잘 움직이지 않는 고개에 애써 힘을 주어 억지로 끄덕이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이서영의 말은 그녀와 적지 않은 시간을 함께했던 나조차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하지만, 어제 아침에 도착하자마자 봤던 네 상태를 보고 확신했어. 너는 최소한 테러리스트들과 한편이 아닐 거라는 걸.”

내 처참한 몰골이 그녀의 마음을 흔든 것일까.

공식적인 말투를 사용하던 그녀는 갑자기 기운을 확 빼더니 내 편을 들어주었다.

아니, 이성의 화신인 그녀에게 마음의 흔들림은 판단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

즉, 그녀는 내 전신에 남은 수많은 상처들과 현장의 처참한 핏자국 그리고 백 명이 넘는 목격자들의 일관적 진술을 토대로 판단한 것이리라.

내게는 혐의가 없다고 말이다.

“여단 겁쟁이 놈들에게는 내가 잘 말해둘 테니 넌 쉬고 있어. 이번 작전이 끝나면, 바빠질 거야.”

“예. 감사합니다.”

가장 이성적인 철혈검희가 내 편을 들어주었다.

다행히도 내가 테러리스트들의 첩자일지 모른다는 귀찮은 의문은 생겨나지 않을 듯했다.

그런데 여기서 드는 의문이.

무려 어제 아침 이곳에 도착했었다는 철혈검희는 어째서 나의 무고를 확인한 뒤, 곧바로 돌아가지 않았냐는 점이다.

심지어 아직도 눈높이를 맞추기 위한 상자 위에서 나를 응시하고 있는 이서영.

“혹시 제가 아직 해야 하는 진술 같은 게 남은 겁니까.”

“아니다.”

“그러면······.”

왜 계속 이러고 계십니까.

라는 말이 턱밑까지 올라온 바로 그 순간 돌연, 이서영 대령은 고개를 푹 숙였다.

“우리 2대대원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워준바. 대대장으로서 그리고 검사로서도 진심 어린 감사를 표한다. 정말 고맙다.”

나는 이병이고 그녀의 현재 계급은 대령.

단순히 그 차이를 숫자로만 세어봐도 절대 고개 숙여 인사를 받을 만한 관계는 절대 아니었다.

허나, 그녀는 이렇게 진심 어린 자신의 감사를 표해주었고···.

나는 이 모습에서 눈앞의 그녀가 전생의 이서영과 동일인물이라는 것을 제대로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럼.”

그녀는 정말로 그 감사 인사만을 위해 이곳에 남아있던 것인지, 그 길로 바람처럼 게이트 작전 지역으로 향했다.

예나 지금이나··· 정말 마이페이스인 사람이었다.

***

그렇게 이틀이 더 지났다.

주기적으로 남궁연 소위가 찾아와 말벗이 돼주었고, 거대 게이트 공략 현황도 들을 수 있었기에 지루할 틈은 없었다.

게다가 처음에는 팔을 들어 올릴 수도, 제대로 설 수도 없던 반면, 지금은 이틀 만에 목발도 없이 천천히 걷는 일까지는 가능해졌다.

이렇게 빠른 회복에는 내 전투를 직접 목격했던 여단 군의관의 노력과 1대대, 2대대에 소속된 군의관, 연금술사, 치유사들이 찾아와 나를 집중 케어해준 덕이었다.

역시 미리미리 대대장 김용운 중령의 눈에 들어둔 것이 제대로 효과를 보는 듯했다.

“그나저나···.”

아무리 예측하지 못한 네임드 빌런의 출현이었다 할지라도, 너무 아슬아슬했다.

은빛채찍은 범용성이 뛰어나고 유동적인 움직임이 장점이었지만, 제라르와 교전을 벌였을 때 내게 부족했던 것은 묵직한 한방이었다.

당장 떠오르는 것은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단 무기고’에서 주인 없이 잠자고 있을 나의 애검.

‘아직은 먼 훗날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었지만, 제라르 베르트랑을 마주하고 나니 알겠다···.’

쓸 수 있는 모든 수를 전부 활용하지 않으면, 뭔가를 이뤄내기도 전에 내 명이 먼저 다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여단 무기고를 열기 위해선 이 7여단의 여단장. 최중철 소장의 눈에 들어야 한다.’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픈 군대이지만, 현실적으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무력집단은 단연코 군대다.

당연히 다양한 사건 사고와 엮일 일도 많으며, 내가 아는 ‘히든 피스’들도 앞으로 군이 겪게 될 사건 사고와 많이 연관되어 있다.

‘취할 건 다 취하고 나가야지.’

더 가파른 성장세와 더 많은 ‘히든 피스’에 자연스럽게 접근할 비책을 떠올리기 위해 나는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허나, 그렇다고 내가 이번 일로 얻은 것이 아예 없는 것은 또 아니었다.

“이터널 패인(Eternal Pain)”

오늘에 이르러서야, 어느 정도 회복된 마력을 담아 작게 이름을 부르자.

내 어깨에서부터 홀연히 뿜어져 나오는 검붉은 안개. 이윽고 그것은 새카만 검신을 가진 마검의 형태를 갖췄다.

이름 그대로 ‘영원한 고통’의 저주가 깊게 각인된 마검.

이 검은 궁지에 몰린 제라르 베르트랑을 몇 번이고 놓치게 만든 원인이었으며,

인간이 체감할 수 있는 극한의 고통을 검의 주인이 목숨을 다하는 그 날까지 느끼게 만드는, 아주 끔찍하고 기괴한 능력의 마검이었다.

솔직히 나로서는, 운이 좋았다고 볼 수 있다.

평소에는 ‘오버 클럭’,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이모님의 영약을 통해 위가 구워지는 고통을 무려 닷새간 느껴야 했다.

덕분에 마침 ‘고통’에 대해서 만큼은 만성이 되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환경이었다.

그 덕에 놈의 기습에 복부가 관통당하고도 정신을 유지할 수 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제, 내 비장의 한 수가 될 거다.’

나는 사용하기에 따라서 신화급 무기보다 더 효과적인 성능을 보일 수 있는 마검을 보며, 빙긋 미소를 지었다.

***

어떻게 더 많은 ‘히든 피스’와 가파른 성장을 이뤄낼지를 고민하며, 밤을 지새운 그다음 날 아침.

비책······까지는 아니지만, 전생에도 나와 알고 지냈던 한 유능한 존재가 제 발로 내 앞에 나타났다.

“내 이름은 조보영. 탐정이죠.”

환자라고는 나밖에 없던 병실에 들어오는 것과 동시에, 아주 해괴망측한 동작과 괴상한 말을 내뱉는 ‘헌터 협회의 정보원’.

조보영은 그 괴상한 동작 그대로 내가 어떠한 반응을 보이길 원하는지 계속 쳐다보고 있었지만, 내 반응은 담백했다.

“누구십니까.”

“아이고! 이 이병은 옛날 만화 영화도 안 봤나요? 아니면 센스가 없는 건가요.”

우당탕 소리를 낼 정도로 과장되게 넘어지더니 이내 일어서며 핀잔을 날리는 협회의 엘리트 정보원.

나는 그녀가 누구인지 잘 알지만, 이 시대의 그녀는 나에 대해 잘 모를 것이다.

허나, 그럼에도 내게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협회의 정보원인 조보영이 현재 우리 대대의 대대장인 김용운 그리고 철혈검희 이서영과 함께 ‘휴거교’의 추적이라는 극비 임무를 수행 중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나에 관한 이야기를 몇 번인가 들었겠지.

“이곳은 민간인 출입 금지 구역입니다.”

“안타깝게도, 제가 민간인이 아니라서요.”

-텁

조보영이 아무렇지 않게 내게 건네준 그것은 남들은 갖고 싶어 군침을 흘린다는 ‘협회 사원증’이었다.

“협회 분이셨군요. 길을 잃으셨다면, 저기 밖으로 나가셔서 의무병 아무나 붙잡고 길을 물어보시면 될 겁니다. 보시다시피 저는 환자라서요.”

“아. 이건 센스가 없는 게 확실하네요. 치료 중에 미안하지만, 이 이병님. 저는 당신을 찾아온 겁니다. 이건우 이병. 당신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는 내게 조보영은 도끼눈을 뜨더니 가까운 곳에 있던 의자를 끌어와 거기에 앉으며 말했다.

“고아원에서 평가도 적당하고, 학교에서 성적도 평범하죠. 군대에 오기 전에는 나름 사회활동도 했지만, 흔한 아르바이트였고 특출난 뭔가는 없고 그냥 각성과 동시에 입대했죠.”

그리고는 서류가방에서 뭔갈 꺼내 줄줄 읽는데, 듣자마자 나의 이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그냥 평범한 사람인 증거 뿐이라 사실 포기하려고 했는데, 이번에 A급 범죄자를 제압한 군인이 당신이라는 소식을 듣자마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줄 알았잖아요.”

“......그랬습니까.”

“그랬습니까? 협회 정보원이 당신 뒤를 캐고 있다는데 그게 답니까? 더 반응 같은 거 없어요?”

“...”

“히야. 이거 자신감이 넘치는 건지. 아니면 심각성을 모르는 건지 잘 구분이 안 되네요. 됐습니다. 내 사연 풀이는 이 정도로 하고. 정보원으로서 뭐 좀 묻겠습니다.”

날카롭게 눈을 뜨고 한차례 숨을 들이켜는 조보영. 이윽고 그녀는 다짐한 듯 말했다.

“당신 대체 뭡니까? 어떻게 건전지 충전이나 하던 각성자가 A급 범죄자를 잡는 거냐고요.”

과감한 질문이었다.

내가 빌런이었다면, 그녀에게 역으로 가짜 정보를 퍼트려 이용할 수 있을 만큼.

허나, 나의 답변은 간략했다.

“말해드릴 수 없습니다.”

사실상 조보영이라는 정보원에게, 내게는 의심할 만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주장한 게 아니었다.

“말할 수 없다······. 아무것도 없다는 게 아니라 굳이 말할 수 없다고 한 거···. 맞죠?”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다행히도 정보원 조보영은 내 의도를 제대로 캐치하고는 작게 되물었다.

“중령님 말대로, 정말 더 윗선에 뭔가 엮여 있나 보죠?”

“말해드릴 수 없습니다.”

“네. 그렇겠죠. 5급 정보원이 주제넘게 뭘 듣겠어요. 예상대로네요.”

나의 꽉 박힌 반응에 뭔가 체념한 듯 말을 중얼거리는 조보영.

허나, 이대로 정보국 에이스의 관심이 내게서 떠나는 것 역시 내게 득이 되는 상황은 아니었기에 나는 서둘러 그녀를 자극할 떡밥을 던졌다.

“제가 뭔지를 말씀드릴 순 없지만, 제가 뭘 원하는지는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내가 누군지 보다는, 내 목적이 무엇인지에 더 초점을 맞추도록 유도한다.

조보영은 충분히 유능한 정보원이지만, 생각보다 궁금증을 못 참는 성격이니까. 이를 자극한 것이다.

“뭘··· 원하는지···. 그래요. 뭐 말할 수 있다면 한번 해보시죠? 정보원으로서 들어는 드릴게요.”

어정쩡한 반응과 시큰둥한 목소리. 허나, 그녀의 눈은 당장이라도 불이 붙을 것처럼 나를 강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딱 한 마디다.

정보국 에이스의 관심을 이용할 수도 있고,

내가 테러리스트 혹은 빌런들과 엮여 있지 않았음을 증명하며,

내 존재가 이들에게 득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마디’로 심어주어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다행히도 난 그 무엇보다 눈앞의 정보원을 자극할만한 ‘한 마디’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저는 휴거교의 파멸을 원합니다.”

“...뭣. 휴, 휴거···?”

믿을 수 없는 말을 들은 사람처럼, 눈이 위아래로 커지는 조보영.

이 시대에 휴거교는, 이미 10년도 더 전에 ‘종교와의 전쟁’으로 사실상 사라진 종교다.

그런데 그 세력이 건재함을 알고 있고 또한,

그 휴거교가 멸망하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한 것이다.

이는 즉, 조보영에게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다.

‘혀, 협회장님과 직접 관련된 존재라는 건가···!’

이로써 나는 군에서도, 협회에서도 주의를 기울이는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걸, 철두철미하게 이용할 것이다.

2달 만에 이룩해낸 거대한 성장.

허나, 나는 지금부터 더 높은 경지로 향하기 위해 제대로 박차를 가해볼 생각이었다.

인류의 절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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