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13화 (13/175)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13화

프리드리히 파울라스

유럽 전역을 하루아침에 집어삼킨 ‘불사왕’.

이백만 헌터의 주검을 능멸하고,

12만 5천 7백의 군사를 손발처럼 휘두르며,

3천의 정예병을 보유했던 인류의 악몽.

인간의 몸으로 5대 재앙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괴물.

오직 그 한 명을 쓰러뜨리기 위해 동서양을 막론하고 숱한 이들이 그 명을 다했고,

오직 그 괴물을 토벌하기 위해 대한민국의 운명을 바꿨을 대영웅들이 죽어 나가야 했다.

제라르 베르트랑은 바로 그 ‘불사왕’의 열두 번째 종복으로 위세를 떨쳤던 네임드 빌런.

이곳에서, 놈의 멱을 따는 것만으로 인류는 보다 나은 미래를 맞이할 수 있다.

그러니···.

“네놈은······. 여기서 죽을 것이다.”

손대중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피이이이이이이!

창공을 찢는 독수리의 울부짖음이 하늘에 아로새겨지고, 손끝에서 터져나간 전류는 방류하는 댐처럼 놈을 덮쳤다.

싸아아아아아!

강한 전압의 반발력으로 일어난 흙구름이 사방을 뒤덮었다.

“하! 실력 있는 헌터는 한 명도 남김없이 유인했다더니···. 역시 알프레드의 말은 믿을 것이 못 된단 말입니다.”

허나, 놈은 나의 뇌광을 직격으로 맞았음에도 아무렇지 않게 입을 열었다.

흙구름이 걷히니 놈의 주변을 둘러싼 수많은 회백색 해골들이 보였다.

놈은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빙긋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정말······. 너무하지 않습니까? 이런 게 파트너라니.”

허나, 나는 거칠게 파지직거리는 눈빛으로 놈을 마주할 뿐이었다.

직감적으로 넓게 펼친 ‘위기 감지’

사방으로 날아갔던 오크 스컬레톤들은 태평한 놈과 달리, 이미 몸을 일으켜 나에게 맹 돌진 중이었다.

즉, 애써 태평한 놈의 표정은 페이크.

어느 정도 나의 공격에 위협을 느꼈다는 의미였다.

‘...유효하다.’

현재 나의 스펙으로도 놈에게 타격을 줄 수 있음이 증명되었다.

그리고 이는 다시 말해. 제라르 베르트랑 역시 내가 만났던 미래의 놈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놈은 아직···. 약하다!’

사전 조사가 끝났으니 취해야 할 행동은 담백했다.

눈을 감았다.

숨을 쉬었다.

흩날리는 흙구름은 눈과 귀와 코를 억압했지만, 사방에 퍼진 나의 ‘위기 감지’는 세상을 입체적으로 머릿속에 그려주었다.

다가오는 할버드는 여섯.

머리, 등, 옆구리, 다리, 팔 그리고 다시 한 박자 늦게 머리.

피할 수는 없다.

맞선다.

-피이이이이이이이이!

과출력된 엔진이 요동치는 소음은 나의 손에서부터 들려온 것이었다.

두근,

심장의 박동 소리가 크게만 들려왔다.

이내 내가 눈을 떴을 때.

나를 엄습하려는 여섯 개의 날붙이들은, 나의 강화 전투복조차 파고들지 못하고 허공에서 부들거리고 있었다.

척력부여,

그 전압은 무려 1000Wh.

현생에 들어 한 번도 다루어본 적 없는 네자릿수의 ‘생체전기’였다.

“무, 무슨?!”

그제야 놈이 당황하는 소리를 냈다.

고작 송곳니 부대의 공격이 한번 막힌 것만으로 당황하다니, 역시 이 시대의 놈은 아직 미숙하다.

-치지지직!

나는 전기의 출력을 올리며, 눈동자 바로 앞까지 다가온 날붙이의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지이이익!

괴상한 소음을 내며 구부러지는 할버드.

이윽고 열린 길은 제라르를 향하는 직선.

<업적>으로 단련된 나의 각력은 놈과의 거리를 단숨에 좁히는 신비를 현실화시켰다.

“소, 송곳니가!”

놈은 갑작스레 다가오는 나를 피해 뒤로 물러나며 그런 말을 외쳤지만, 나에게는 아직 카드가 더 남아있었다.

-촤악!

질주하는 은빛.

채찍은 제라르의 팔을 거칠게 휘감았다.

이어서 체크메이트를 고하려는 바로 그 순간,

“일어나라!”

놈은 회심의 미소를 띠며 그리 외쳤고, 나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푹!

-푸욱!

내 흉부와 복부에 나란히 꽂히는 칼날.

땅밑에서부터 치솟아 오르며 내게 단검을 내지른 그것들은 고블린 형태의 스켈레톤이었다···.

“큽!”

나는 서둘러 채찍에 쏟아내던 마나를 끊고 몸을 뒤로 크게 젖혔다.

-웨에에에에에엥!

그제야 위병조장이 긴급구조 버튼을 눌렀는지. 위병소부터 막사까지 광범위한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최대한 빨리 마무리를 하려 했건만······. 당신은 참 거슬리는군요.”

이윽고, 당황하던 표정은 어디로 갔는지 다시 여유로운 태도로 그리 말하는 제라르.

그래. 애초에 ‘여단 무기고 강탈’이라는 중대사에 혼자 보내어진 자였다.

그런 놈이 아직은 약할 거라고 판단하다니······.

‘나도, 많이 물러졌군······.’

피가 흐른다.

머저리보다 더 우둔한 내 판단의 결과.

나는 냉담하게 이를 받아들였고, 다시금 푸르게 눈을 물들이며 놈을 노려봤다.

피를 좀 쏟고 나니, 감각이 실시간으로 예민해져 갔다.

머리가,

점차 뜨거워지는 나의 전류와 달리 머리가 차가워진다.

“뭐가 어찌 되건, 당신은 이 자리에서 죽이고 가야겠습니다. 잘은 모르겠다만 당신의 그 눈은···. 정말 위험해 보이니까요.”

직후, 놈의 손을 따라 움직이는 스컬레톤은 무려 열하나.

여섯 번의 참격과 다섯 개의 비수가 나를 향해 날아든 것은, 정말 일순간의 일이었다.

“면목이 없군.”

진짜 뇌제가 되겠다느니,

미래를 바꾸겠다느니.

말만 번지르르 늘어놔 놓고는 방심하고, 기습을 허하는 꼴이라니···.

이래서는 나를 믿고 죽음을 택한 동료를 볼 면목이 없다.

-피이이이이이이이이익!

-쿠구구구궁!

그러니,

나는 이런 곳에서 죽을 수 없었다.

척력부여.

2300Wh.

내 육체가 허하는 모든 전기를 몸에 두른다.

이미 자기력으로 일구었던 에너지 위에 다시금 덧씌운 척력.

그저 밀어낼 뿐인 담백한 능력이지만, 내게는 그 무엇보다 익숙한 에너지의 사용법이었다.

열 한 개의 날붙이들은 시간이 정지한 듯 그 자리에 멈춰버렸고,

“흐으읍!”

나의 묵직한 기합소리와 함께 이내, 모든 것이 사방으로 날아간다.

-타다당.

-드드드득

-우당탕!

땅을 구르는 회백색의 뼈들.

그것들이 아무리 제라르의 마력을 머금고 인간을 초월하는 힘을 휘두르는 언데드일 지라도,

단기 결전을 위해 집약된 척력의 힘을 이겨낼 수는 없다.

‘생체전기’를 전부 들이부었기에 퇴로는 없다.

그럼에도 내게 허락된 시간은 불과 5분.

5분 안에 난, 저것을 죽여야만 했다.

“하하핫! 당신은 정말···. 재미있는 사람이군요.”

태평한 어조와 웃는 얼굴.

놈은 나의 굳은 결심마저도 아이의 장난을 바라보듯 비웃었지만······.

그 방심이, 내게 비장의 한 수가 되리라 직감했다.

“네놈을 죽일 것이다.”

나는 속에서부터 솟구쳐 오르는 피를 토해내며 그리 고했다.

***

2분.

막사로부터 위병소까지.

긴급 구조 신호에 잠에서 깨어난 남궁연이 개인 무장을 챙기고 현장까지 달려오는데 걸린 시간이었다.

숨을 고르고 마탄을 장전한다.

사태를 파악함과 동시에 해결책을 강구한다.

남궁연의 비상사태 대응법은 지극히 정상적이었으며 또한 냉철했다.

허나, 위병소가 보이는 길목까지 도착한 그녀의 눈에 보인 풍경은 전혀 정상적이지 않았다.

-달그락! 달그락!

-채쟁!

하늘에 떠오른 수십 개의 날붙이와 유독 거대한 할버드.

수십의 스켈레톤들은 누군가를 에워싸고는 살아있는 모든 것에 대한 분노를 표하듯 달그락거렸지만,

그 중심에 고고히 서 있는, 한 병사의 손짓 하나에 사방으로 나가떨어지길 반복하고 있었다.

사태가 생각보다 더 긴급하다고 판단했기에 남궁연은 지체없이 전신의 마력을 집약시켜 하늘에 쏘았다.

-피이잉!

스킬 ‘섬광’은 달빛조차 없는 새벽의 짙은 어둠을 걷어냈고, 남궁연은 경악을 금치 못한다.

“거···. 건우?!”

그 중심에 서 있던 이가 다름 아닌 자신의 소대원, 이건우였기 때문에.

“소대장님!”

“남궁연 소위님!”

이윽고 한바탕 소리를 내지르고 달려왔던 남궁연을 따라, 무장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달려오는 간부와 병사들.

도저히 당장 저 언데드들과 맞붙일 상태가 아니었다.

“저, 저게 뭐야!”

“스켈레톤···! 저렇게 많이?!”

“여기까지 어떻게!”

“저, 저기 사람이 있어!”

“이건우···?!”

“뭐, 뭐야!!”

수많은 병사가 잇따라 쏟아져나왔으나, 그들은 스켈레톤을 보는 것만으로도 겁을 먹고 패닉에 빠지는 이가 절반이나 되었다.

하필, 전투 경력이 많은 장교들과 임기응변이 능한 상병장들이 없는 이 시기에!

“전원 전투 준비!”

남궁연은 분명 그리 외쳤으나, 제대로 반응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그들의 눈에 담긴 죽음에 대한 공포와 언데드를 향하는 원초적 경계심.

“제발 정신 차려! 정신!”

남궁연은 병사에게 있는 힘을 다해 윽박질렀으나, 패닉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번져 사태는 더더욱 엉망이 되어갈 뿐이었다.

그때였다.

“어, 언데드가 더!”

“어···?”

“저게 무슨···.”

“저 녀석, D급··· 아니었어?”

갑작스럽게 벌써 백 명은 족히 넘어 보일 법한 인원들에게서 패닉이 사라지고, 맹렬한 경외감이 감돈다.

일순간에 일어난 너무도 극심한 변화에 남궁연도 이내 고개를 돌렸고, 이전과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의 경악에 몸이 굳었다.

지금까지는 장난이었다는 듯 땅에서 솟아오르는 수십 채의 언데드들과···.

-휘익!

-챙채재쟁!

-착!

은빛 섬광을 사방으로 휘두르며 동시다발적으로 날아드는 공격을 모조리 쳐내는 이건우.

“...거, 건우, 너는 도대체···.”

그건 남궁연마저 넋을 잃게 만드는 광경이었다.

***

“허억···!”

피로 범벅된 입가에서 숨을 쥐어 짜낸다.

심장이 요동치고 머리가 핑핑 돌았다.

시야는 이미 흐려졌다.

집중력이 흐트러진 것이 아니다.

그저 육체가 버틸 수 없는 마력을 억지로 쥐어짰기에 오는 반동일 뿐.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입과 코는 물론 눈과 귀에서도 끝내 버티지 못한 혈관들이 터져나갔고,

미약한 소리와,

한줌의 빛이 없는 공간에 나는 서 있다.

오감 따위는 내게 있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보이지 않아도 나의 생체전기가 그려준 입체적인 지도로 모든 것을 인지할 수 있기에.

“아직 몇 분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그렇게 피를 흘려대면 안 되지요!”

놈은 웃고 있었다.

광기로 물든 얼굴.

“뭐어 하는 겁니까! 춤을! 춤을 더 추란 말입니다. 하하하하하!”

제라르 베르트랑은 즐거운 것이다.

내가 수많은 언데드에 홀로 맞서면서도, 서서히 죽어가는 이 모습이 참으로 즐거운 것이다.

-콰득!

이를 꽉 깨물었다.

전생에도 놈은 이렇게 동료를 희롱했기에, 죽어서도 죽지 못하도록···.

인간을 박제하고

삶을 모독하고

존엄을 짓밟았던 놈.

놈과 나의 차이는 분명했다.

단기 결전을 결심하고도, 나는 놈과의 거리를 한보도 좁히지 못했다.

으스러뜨려도 일어서고, 보이지 않는 곳까지 날려버려도 또 새로운 죽음의 병졸이 눈앞에서 태어난다.

달그락.

그것은 나를 향하는 비웃음이었으며,

달그락.

그것은 인간 그 자체를 부정하는 끔찍한 모독이었다.

허나, 그렇기에 더더욱.

부러질지언정 굽힐 수가 없다.

-피이이이이이!

망가진 귓가를 스치는 날카로운 파열음!

망가져 가는 사지와 본래의 기능을 잃은 오감이 내 생의 경종을 미친 듯이 울려댔으나···.

-터벅!

나는 걸음을 내디뎠다.

얽히고설키며 부서지는 쇳소리.

방어는 이미 포기했다.

한번을 방어하기 위해 한 걸음을 포기한다면, 나는 결코 놈에게 닿을 수 없기에.

“하아아아아아아악!”

나는 어깨를 향해 날아드는 할버드를 피하지 않았다.

-푹!

“제, 제정신입니까 당신!”

내 행동이 예상 밖의 것이었는지.

드디어 놈의 입에서 경악스러운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찰나의 순간, 나는 생겨난 틈을 파고들어 몸을 날린다.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 날아드는 단검과 암수. 은빛채찍을 움켜쥐었다.

반보 물러나며 악을 내질렀다.

채찍은 물결치는 검처럼, 내질러진 창처럼 곧게 뻗어 나가다 이내 작용한 ‘제어력’에 뱀처럼 크게 요동친다.

-투다다닥!

-달그락!

내 시야에서 놈을 가리던 회백골들은 그 역동적인 채찍에 전부 균형을 잃었다.

그럼에도, 내게 달려드는 스켈레톤은 많다.

반격하듯 날아오는 날카로운 암수.

그것을 아찔하게 목을 스치는 간격으로 회피하며 내딛는다.

그 모든 공격과 회피가 한 호흡.

허나, 나의 손은 아직 멈출 생각이 없다.

피하는 동작에서 그대로 이어지는 연격. 내 몸에서 방출된 거대한 척력이 요동친다.

향하는 곳은 오로지 놈을 향한 일직선.

다른 스켈레톤과 수많은 날붙이 따위 모두 받아넘긴다.

1mm의 오차로 목에 베인 상처가 남는다.

어깨는 이미 너덜너덜한 상태니 반대로 방어 따위 하지 않는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공격을 피하고, 최속의 행동으로 장해물을 밀어낸다.

하하, 웃고 떠들던 놈의 입이 서서히 다물어진다.

서서히 심각해져 가는 얼굴.

놈의 시야에 내가 가득 참을 느꼈다.

놈의 홍체에 공포가 서려감을 느낀다.

감각이 옅어지고, 시야는 좁아지고, 청각은 점점 더 멀어져만 가지만···.

체단실에서 트레이너와 훈련을 할 때도,

먼 과거, 태산 같은 검을 휘두르던 거신에게 맞설 때도,

내가 해야 할 일은 지금 현재와 무엇하나 다르지 않았다.

“네놈은···. 여기서 죽을 것이다.”

고고하게 빛나는 푸른 눈동자는,

처음부터 지금껏 ‘빌런’만을 향하고 있다.

***

언데드에게 있어 최고의 무기는 공포였다.

죽여도 죽지 않는 존재.

‘불사왕’에게 직접 하사받은 스킬, ‘묘지 뒤엎기’는 분명 제라르 특유의 방대한 마나량과 만나 수많은 이에게 절망과 공포를 안겨주곤 했다.

끝없이 일어나는 스켈레톤들은, 부서져 땅을 구르면서 마저 입을 달그락거렸다.

그건, 생자의 필사적인 노력에 대한 노골적인 비웃음이었다.

살기 위한 발버둥을 비웃고,

사지가 분쇄되어 더는 움직이지 못하게 된 이를 비웃었다.

달그락, 달그락.

듣는 것만으로도 절망이 왔음을 각인시키고, 끔찍한 공포에 시달리는 인간의 얼굴을 볼 때.

제라르 베르트랑은 비로소 자신이, 그 누구보다 분명하게 살아있음을 느꼈다.

그러니, 제라르 베르트랑이 공포를 느낀다는 일은······.

그에게 있어 결코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었던 것이다.

“네놈은···. 여기서 죽을 것이다.”

그건 마치 저주와 다름이 없었다.

......덜덜덜.

제라르는 자기도 모르게 떨고 있던 자신의 손을 꽉 잡았다.

상황은 유리했다.

양팔, 양다리가 너덜너덜해져서는 지금 당장 바닥에 엎어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상태의 군인과,

그에 비해, 무려 ‘Lv. 17’을 달성하며 다시금 한 차원 더 방대한 마력을 가지게 된 제라르.

심지어 그는 아직 자신이 가진 마나의 반의 반도 소모하질 않았다.

마나만 있으면 언데드 따위 무한히 만들 수 있다.

단순한 소모전만으로도 ‘적’은 이미 죽기 일보 직전의 상태이다.

누가 봐도 분명한 우열.

헌데, 분명 그럴진대···.

‘대체 뭐냔 말이다! 저 눈으으은!’

이건우의 눈빛은 전혀 죽지 않았다.

오히려 타오른다.

인간의 것이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많은 피를 흩뿌리면서,

피로 범벅된 모습으로 계속해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건우.

“그만, 그만! 다가오지 말란 말입니다!!”

또다시 건우와 눈이 마주친 제라르는 반사적으로 그리 외쳤고,

이는 다시금. 자신이 저 보잘것없는 존재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증명이 되었다.

“뭡니까?! 도대체 왜 죽지 않는 겁니까!”

늘 자신이 들어왔던 공포와 절망의 비명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입에서 연신 터져 나왔다.

발악하듯 소리를 높이자, 자연스레 열기를 띠며 보다 거칠게 몸을 내던지는 스켈레톤들.

공세는 끊임없이 이어졌고, 가히 연격과 다름없는 할버드와 장검의 세례 속에서,

이건우는 홀로선 자신의 몸으로 똑같은 연격을 휘둘러 이를 막아낸다.

철과 철이 부딪히는 소리.

정체를 알 수 없는 힘에 밀려 흙먼지를 일으킬 정도로 강하게 나뒹구는 스켈레톤의 소리.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그 소리의 연쇄에서,

터벅,

끝없이 이어지는 발걸음 소리가 제라르를 미치게 했다.

이건우는 다가온다.

그 모습은 그야말로 귀신.

시뻘건 피를 전신에 뒤집어쓰고, 시퍼런 안광에서 살기를 풀풀 풍기는 악마와도 같은 자태로.

“아··· 아아······.”

정말로 살갗을 죄어오는 것 같은 그 시선에······ 제라르는 자신의 몸이 점점 더 돌처럼 굳어감을 느꼈다.

“주, 죽어! 제발 죽으라고!!”

최후의 발악일까.

제라르는 최정예 스켈레톤으로 언제나 마지막 한 수를 위해 남겨두던, 기다란 마검을 입에 문 하운드 스컬레톤을 땅에서 소환했다.

-푹!

아주 분명하게 들려온 고기를 찢는 소리.

이내 시선을 올리니 이건우의 복부에 정확히 꽂힌 새카만 칼날의 마검.

“돼···. 됐어. 드, 드디어······. 헉!”

그런데,

분명 찔리는 것과 동시에 기절해도 모자를 정도의 ‘격통’이 새겨진 마검에 찔렸을 텐데.

-터벅

이건우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허리에서부터 흥건하게 터져 나오는 피조차 아랑곳 않고 다가오는 한 인간을 보며,

털썩,

제라르는 도를 넘는 공포에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이내, 다가온 건우는 제라르의 안면을 꽉 움켜쥐고 말한다.

아주 작고, 섬뜩한 어조로.

“말했을 텐데, 죽는 건 네놈이라고.”

생의 마지막 순간, 제라르는 확신했다.

자신의 눈앞에 존재하는 이 인간은, 인간이 아니라고.

그는 인간의 혼을 집어삼키는 푸른 안광의 악마. 그 자체라고 말이다.

***

-피유우우웅!

새카만 하늘을 형형색색의 빛이 가로지르며 곡사로 날아간다.

-쿠구구궁!

아찔한 파열음과 열풍 그리고 새벽의 광화문 광장을 새하얗게 물들일 만큼의 큰 빛이 연신 터져 나왔다.

1대대의 자랑, 대마력 포병대의 힘이었다.

-치직, 대대장님 탐지관님의 보고에 따르면, 광장 내부에 있던 3천의 좀비 개체의 소멸을 확인하였다고 합니다. 보병들을 출발시킬까요.

무전을 통해 보고를 듣던 이는 다름 아닌 1대대의 김용운 중령. 그는 꼬나물고 있던 시가를 태우더니 이내 길게 숨을 내쉬었다.

“후우우우. 아니, 적은 좀비가 아니라 거대 게이트다. 함부로 인원들을 투입했다간 더 이상의 화력 지원이 불가해질 수 있어.”

이미 11시간째.

포격과 방위를 메인으로 게이트 내부에서 믿을 수 없을 만큼 쏟아져나오는 좀비들을 향해 화력만을 쏟아붓고 있다.

정확히 저녁 18시 52분에 열린 거대 게이트.

그 길이가 420m인데 높이마저 무려 100m에 달했다.

때문에 사령부를 시작으로 군인들을 함부로 게이트 내부에 들이지 말고, 과포화되어 튀어나오는 몬스터만을 분쇄하는 중이었다.

그러는 사이, 드디어 동이 트기 시작했다.

“우선 사격 지휘병에게 전달한 지시사항을 오늘, 저 태양이 질 때까지 반복하라 전해라. 알겠나?”

대대장 김용운의 말인즉슨, 최소 16시간은 더 방어와 포격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예. 알겠습니다.

허나, 경험 있는 병사들과 간부들은 이 역시 병들의 생존률을 올리기 위한 판단임을 알기에 군말 없이 따랐다.

김용운은 1대대 지휘소 텐트를 나와 하늘을 보았다.

아니, 하늘을 보려 고개를 들었으나 보이는 것은 오로지 시퍼런 게이트의 일렁임 뿐.

그런 거대 게이트를 노려보며 김용운은 중얼거렸다.

“...대체 뭘 숨기고 있는 거냐. 썩을 녀석.”

그 아득한 규모에 비해, 출현하는 몬스터가 너무 단조롭다.

물론 한 번에 ‘몇천’이라는 경이로운 수의 몬스터들이 튀어나오기는 했으나.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모든 몬스터가 오직 ‘좀비’뿐이니. 군 수뇌부는 오히려 이가 두려워진 것이다.

저 안에는 대체, 무엇이 있는 걸까.

서서히 올라오는 섬뜩한 감각.

그건, 대대장 김용운 중령으로서가 아닌, 헌터 김용운으로서의 직감.

“뭔가, 크게 잘못됐어···.”

이윽고 그의 직감이 사실임을 증명하듯, 아주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김용운을 향해 다가왔다.

“충성! 대, 대대장님! 여단 내부에 테러리스트가 침투했다는 보고입니다!”

달려온 간부는 대체 어찌나 놀란 것인지, 안색이 새파랗게 물들어 있었다.

역시나!

김용운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감각이 바로 그것이었다는 생각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몸을 돌려 어디론가 향하려 했으나,

그 행동에 더 놀란 얼굴의 간부는 예의를 무릎 쓰고 김용운의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그, 그런데! 그 테러리스트를 벌써 제거했다고 합니다!”

“...뭐?”

곧바로 드는 생각은 부대에 남아있는 엘리트 지휘관들의 얼굴.

놀람과 동시에 금세 이성을 되찾은 김용운이 멈춰 서자. 간부는 빠르게 다가와 보고를 시작했다.

“새벽 2시 2분경 영내에 침투한 테러리스트. 신원은 불명이었지만, 교전을 벌인 병사가 말하길 제라르 베르트랑이라는 서유럽의 범죄자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교전을 벌이고, 제거했다.

사실 여단 내부에 남아있던 인원들을 고려해보면 테러리스트를 순식간에 진압했다는 사실 자체로 박수를 받아 마땅했다.

그런데 거기까지 생각하던 김용운은 갑자기 이상한 단어 하나가 신경 쓰였다.

교전을 벌인 인원‘들’이 아니라 인원?

김용운의 작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어떠한 인물 한 명을 떠올릴 때쯤.

보고를 이어가던 간부는 말했다.

“...그리고 A급 범죄자인 제라르 베르트랑을 제거한 인원은, 이건우라는 이병이었습니다.”

“.....!”

간신히 이성을 되찾았던 김용운. 허나, 이번만큼은 도저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비장의 한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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