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11화
“포션 제조를 부탁드리려고 왔습니다.”
우선은 본론부터.
나는 선반에서 꽃무늬 티 세트를 꺼내는 이모님보다도,
자신의 방으로 뛰어 올라가 순식간에 단아한 원피스를 입고 나타난 윤지아보다도,
나는 애당초 이곳까지 찾아오게 된 계기인 본론을 먼저 처리하고자 그리 말했다.
“제조라면, 찾으시는 종류가 있나요? 회복계? 아니면 버프계열?”
그래도, 큰돈이 오갈 듯한 말을 꺼내자 곧장 서비스업 종사자 같은 미소를 풀고 내 맞은편 의자에 앉는 이모님.
이렇게 진지한 분위기가 내게는 오히려 친숙하게 느껴져 편했다.
“제조······. 라고 말씀드리긴 했지만, 실은 어떤 물건을 이미 완성된 레시피를 따라서 솜씨 좋게 만들어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
“제조에 필요한 소재는 이미 제 손에 있지만, 이것이 어떤 물건인지 알려고도, 알아내려고도 하지 말아 달라는 게 제 요구사항입니다.”
진조의 피를 머금은 월혈석(月血石) 파편은 그 존재를 아는 것만으로도 향후, 빌런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 때문에 이모님과 저쪽에 머 쩍은 표정으로 서 있는 윤지아 상병의 신변 보호를 위해서는 좀 수상쩍은 티가 풀풀 풍기더라도 이런 조건을 붙이지 않을 순 없었다.
허나, 역시라고 하면 역시 일지.
내가 슬슬 제대로 된 이야기를 시작하자 이모님의 표정은 의아함을 넘어 미심쩍다는 얼굴이 되어갔다.
이윽고, 잠시간 그대로 기다리고 있자 이모님은 무겁게 입을 여셨다.
“죄송하지만, 저희 공방은 마약류를 취급하지 않습니다. 나가주세요.”
“어, 엄마?!”
이모님의 발언이 예상 밖이었는지 윤지아 상병은 놀란 듯 목소리를 키웠다.
하지만, 허름한 공방까지 굳이 찾아와 수상한 주문을 넣는 헌터 군인.
솔직히 이는 가난을 약점 잡아 불법적인 약물제조를 강요하려는 인간들의 특징과 정확히 일치했다.
물론, 이 같은 반응 자체가 내가 유도했던 바였지만 말이다.
“이야기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거절하시다니. 칼 같으시네요.”
“칼 같던, 무 같던 저는 돈에 연금술을 팔아넘기는 조합 놈들과는 달라요. 나가세요.”
타협의 의사 따위는 개미의 눈곱만큼도 없다는 것을 증명하듯 아예 접객 테이블에서 몸을 일으키는 이모님.
이런 단호함은 전생에 보았던 그 이모님의 모습과 판박이였다.
오히려, 내 이야기를 끝까지 귀담아듣거나, 수상한 분위기에 도리어 관심을 표했다면, 나는 주저 없이 이 공방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을 것이다.
나는 아직 이 시대의 ‘분노의 연금술사’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으니까.
하지만 다행히도, 분위기가 좀 다를 뿐 이모님은 이모님이었던 모양이다.
“마약류가 아님에도, 소재와 제조 공정을 숨겨야 하는 다른 포션 종류가 있죠.”
나는 이미 접객실 문을 열고 반쯤 몸이 나가 있던 이모님에게 차분한 어투로 그리 말했다.
멈칫,
역시나 반응이 있었다.
마약류가 아님에도 이같이 비밀스러운 특징을 공유하는 포션은 딱 한 종류뿐이니 말이다.
이모님은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아직 경계심이 서려 있는 얼굴로 말했다.
“영약을 의뢰하겠다는 건가요?”
헌터의 본질적인 성장을 이끌어주는 신비의 약물. 바로 영약이었다.
“예. 그렇습니다.”
“마약류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려면······. 당신이 내게 맡기려는 그 소재와 제조법을,”
투두둑.
이모님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내가 테이블에 올려둔 것은 다름 아닌 월혈석의 파편들.
이 시대의 이모님이 내가 알고 이모님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이제 거리낄 것은 없었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나갔다.
“직접 보시고 판단해주시길 바랍니다. 이래도 거절하신다면 어쩔 수 없이 다른 공방을 알아보도록 하죠.”
내 태도가 너무나도 당당했기에 오히려 이모님은 당황한 얼굴이었다.
허나, 잠깐의 고민 후 다시 자리로 돌아온 그분은 미간에 주름을 팍 주고는 내가 올려둔 월혈석을 뚫어져라 응시하기 시작하셨다.
이윽고 전신에서 옅은 마나가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이는 장인계 각성자의 고유 스킬. ‘관찰’이 분명해 보였다.
꿀꺽.
당사자가 아님에도 괜히 바짝 긴장한 얼굴로 현장을 지켜보는 윤지아.
“하아···.”
이내 짧은 탄식 후,
고개를 든 이모님의 표정은 미심쩍다거나 거북하다는 느낌이 전혀 아니었다.
월혈석 파편에 흐르는 순도 높은 마력을 제대로 목격하셨는지, 이모님의 얼굴은 오로지 감탄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 이런 물건을 어디서···. 아니 내 정신 좀 봐. 이런 건 묻지 않는 법이죠. 그럼요.”
“알아봐 주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수원을 장악한 장인 조합 녀석들만 없었어도, 이모님은 이 거리에서 1, 2위를 다툴 만큼의 실력 있는 연금술사다.
이모님이 월혈석의 가치를 못 알아보는 불상사는 난 애초부터 고려하지도 않았다.
예상대로 척척 흘러가는 이야기에 안심한 표정이 되는 윤지아.
차후에 듣기로, 그녀는 내가 마약 같은 것을 취급할 리가 없다고 확신했고 때문에 억울하게 쫓겨나진 않을까 걱정했다고 들었다.
“그래서···. 이 물건을 어떤 공정으로 제조하길 바라시는 걸까요?”
이젠 완전히 의심을 버리고 오히려 강한 관심을 표하는 이모님.
나는 전생에서도 영약에 특히 관심을 보였던 모습을 떠올리고는 웃으며 내가 기억하는 레시피를 불러드렸다.
월혈석에 함유된 마력을 최소한의 손실로 인간이 섭취할 수 있게 연금하는 과정.
정확히는 이 시대보다 대략 5년 후, ‘분노의 연금술사’가 직접 개발하는 레시피 그대로였다.
“...서, 성함이 이건우라고 하셨죠. 헌터님.”
“예 그렇습니다.”
갑자기 호칭이 헌터님으로 변한 것은 좀 의외였지만, 내색하지 않고 답하자 이모님은 잔뜩 흥분한 얼굴로 입을 여섰다.
“혹시 이 헌터님은 대학에서 연금학을 전공하셨을까요?”
“아닙니다.”
“그, 그러면! 독학으로 이런 완벽한 아니,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독보적인 제조법을 만드셨다는 말인가요?!”
“아, 그건 뭐, 자세히 말씀은 못 드립니다만, 비슷합니다.”
이를 어찌 말할까 고민하던 내가 가장 편리한 노코멘트를 주장하자.
이모님은 이 레시피가 내게서 나온 것이라 단정 지으셨는지,
천재적인 발상이다,
세상에 둘 없을 연금학의 인재다,
끝도 없는 칭찬을 이어나가셨다.
허나, 내게는 들으면 들을수록 이모님의 자화자찬이나 다름없었기에 참 오묘한 기분이 되었다.
“그런데 이 헌터님. 사소하다면 사소한 문제이긴 한데, 저희 공방 입장에서는 쪼금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만···.”
이윽고, 흥분을 다 가라앉히셨는지. 이모님은 말을 잠시 멈추고는 뒤늦게 중요한 것이 떠올랐다는 표정으로 운을 떼셨다.
“아. 비용 문제 말씀이시군요.”
“아···. 예. 그렇죠. 아무래도 영약이니까요. 레시피도 실현하려면 도구도 사야 하고······. 그리고,”
이모님은 마지막 말을 굳이 내뱉지는 않으셨지만, 나는 무슨 말을 하려 하시는지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군인이란 것을 알기에 주머니 사정이 좋지 못하리라 생각하고 있는 거겠지.
영약은 10억에서 100억이라는 액수를 오가는 궁극의 약물이다.
아무리 장인의 거리를 찾아올 정도로 주머니 사정이 두둑한 군인이라 할지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군인의 레벨에서 부유하다는 이야기일 뿐.
몇백이 아니라 억 소리까지 나오고 나면, 이야기가 많이 달라지는 것이다.
실제로 내가 영약의 소재로 들고 온 월혈석도 그 가치를 알아보는 장인에게 팔면, 최소 파편당 8억에서 9억쯤의 돈을 받을 것이다.
물론 빌런과 엮인 귀물이기에 그 끝이 좋을 리는 없지만 말이다.
“아무래도 사정이 안 된다면··· 2년 아니, 3년 무이자 할부로 하셔도 저는 괜찮으니까요···?”
한참 동안 입을 꾹 닫고 있자. 이모님은 적잖은 오해를 하신 듯 그렇게 조심스러운 어조로 말을 꺼내셨다.
“아, 아닙니다. 돈은 있습니다.”
“예? 어, 얼마나···.”
가장 중요한 소재를 내가 직접 들고 왔고, 레시피마저 내 머리에서 나왔으니 그 값을 받지 않더라도,
과정에서 고급 기술을 필요로 하는 ‘영약 제조’는 그 의뢰만으로 최소가가 몇천에 달한다.
헌터군이 부유해도 어차피 군인.
이모님은 뒤늦게 내 주머니 사정에 대해 우려를 표하셨지만, 난 당당했다.
“최대 8천까지. 원하는 대로 사용해주세요. 부족하다면 헌터 신분으로 5천은 더 마련할 수 있고요.”
본래라면 헌터 신분증을 이용해 5천만 원 선에서 딜을 보려고 계획을 짜두었었으나,
지금의 내게는 통 큰 ‘협조자’가 건네준 통장이 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내 말을 증명하듯 통장을 테이블에 꺼냈고,
이를 본 이모님은 월혈석 파편을 ‘감정’했을 때보다 훨씬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빙긋 영업용 미소를 지으시며 말씀하셨다.
“어머, 지아야 뭐하니. 사장님 드실 차랑 케이크를 내오지 않고.”
“네? 사, 사장님요?”
“그러엄. 이건우 사장님이 먼 길 오셨는데, 시장하실 수도 있잖니? 어서 근처 베이커리에 좀 다녀오렴.”
드디어 내 호칭은 군인에서 헌터님을 거쳐 사장님이 되고 말았다.
서운한 티를 풀풀 풍기며 접객실을 나서는 윤지아 상병.
“...나도 배고픈데······.”
그녀가 뾰로통한 목소리로 남긴 중얼거림에 괜히 내가 미안해질 지경이었다.
***
‘휴거교’의 제사 도구이자 이 한반도를 집어삼키려는 대재앙, ‘태초의 흡혈귀’의 피를 머금은 월혈석.
블랙 홉 고블린 사태에서 3개, 머맨 공습 때 2개까지. 총 5개의 월혈석은 내가 먹어서 증거를 인멸할 것이니 문제는 없다.
다만, 예측을 벗어나 너무나도 빨리 내 손에 쥐어진 보옥, 청혈옥(靑血玉).
이건 단순히 그 진조 흡혈귀의 피를 받아 힘을 가지게 된 물건이 아니었다.
본래부터 영험한 힘을 가지고 있던 신물(神物)을 그 재앙이 직접 부정타락 시켜 만든 아이템으로, 전생에는 수귀(水鬼)가 사용하던 무기의 일부였다.
‘재앙의 권속이자 그 태고의 흡혈귀를 놀라게 했던 네임드 빌런, 수귀.’
놈은 점차 큼지막한 활약을 이어가던 나의 대항마로 빌런측이 계획적으로 키워낸 존재였다.
뇌제라 불리던 내가 그 어떤 고압 전류를 사방에 흩뿌려도, 우리 ‘대항군’ 측이 물에 젖은 생쥐 꼴이라면 결국 아군에게도 피해가 발생한다.
당시의 나는 영약과 내단 그리고 끊임없는 노력으로 ‘생체전기량’ 만큼은 수백만 볼트에 달했지만, ‘제어력’은 비참하게도 네자릿수를 벗어나지 못했기에 일어났던 참사.
‘제어가 안 되는 낙뢰는 아무리 위력적이라도, 양날의 검일 뿐이었다.’
이번 생 역시, 영약을 통해 ‘생체전기량’을 늘려도 당장 내일부터 ‘제어력’이 성장을 멈출 수도 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어떻게든 마련해야겠지.’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문제는 현재는 내 손에 들어온 수귀의 보옥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였다.
바로 어제, 이모님에게 정식 의뢰를 넣은 뒤. 인근의 호텔에 온종일 틀어박혀 이 수수께끼의 물건을 관찰해본 결과 한 가지의 성과는 있었다.
-파직!
손끝에 한 점으로, 새하얀 빛을 발광할 만큼의 생체전기를 응집시켜 청혈옥(靑血玉)을 자극하자.
전생에는 본 적도 없는, 특수한 메시지를 발견한 것이다.
<알림>
ㅡㅡㅡㅡㅡㅡㅡㅡ
*각성자 ‘이건우’는 ‘청혈옥(靑血玉)’에 부여된 엑스트라 퀘스트를 받을 수 있습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
<1. 수신의 길.>
*더럽혀진 수신의 신물, 청명옥(靑明玉)에서 부정한 피를 제거해야 합니다.
*진행도 (000/500)
*주의, 당장 능력치의 변화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2. 수귀의 길>
*더럽혀진 수신의 신물, 청혈옥(靑血玉)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적응도 (000/100)
*적응도가 상승할수록 능력치는 큰 폭으로 상향됩니다.
*주의, 주인의 명을 거역할 수 없게 됩니다.
그건 바로 퀘스트 알림이었다.
더럽혀진 신물을 정화하느냐, 아니면 그대로 받아들이느냐.
비교적 단순한 양자택일의 선택지를 주는 엑스트라 퀘스트.
어제 이 청혈옥을 처음 쥐었을 때 나타난 메시지에서 ‘곧 선택의 기회가 찾아오리라’라는 문구는 바로 이 퀘스트를 말한 것이 분명했다.
‘퀘스트는 정말 귀한 기회다.’
클리어시 상상을 초월하는 양의 경험치를 주거나,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전설급 무기를 주거나.
전생에도 퀘스트를 클리어해 미친 듯이 강해지는 이들은 극소수였지만 분명 있었다.
다만,
‘퀘스트에 선택지가 있다는 소리는 처음 듣는데···.’
아마, 전생에 대놓고 수귀라 불리던 ‘사사키 타다요시’는 그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
당장, 능력치를 대폭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수귀의 길>을 골랐을 것이다.
혹은 사사키 타다요시를 키워낸 ‘휴거교’에서 그걸 강요한 건지도 모르고.
허나, 오랫동안 고민을 거듭한 반면 어차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하나뿐이었다.
<수귀의 길>에 명시되어 있는 주의사항, ‘주인의 명을 거역할 수 없게 된다.’에서 말하는 ‘주인’은 안 봐도 태고의 흡혈귀일 테니까.
‘어차피 놈을 사냥해야 하는 내게 선택지 따위는 없다.’
벌써 8시간째, 이 퀘스트를 받아들일지 말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 퀘스트가 내게 어떤 변화를 떠안겨줄지를 전혀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내가 파악하고 있는 히든 피스만 모아도 전생의 나를 뛰어넘을 수 있는데, 어떤 변화를 야기할지 모르는 퀘스트를 왜 받느냐는 말이다.
한편, 굳이 위험부담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과 동시에, 나는 죽는 그 순간까지 뼈저리게 느꼈던 사실 하나가 머리를 스치는 걸 느꼇다.
‘과연 전생의 나를 뛰어넘는다고 날고 기는 그 모든 빌런들과 대항군이 총력을 기울여도 승리를 확신할 수 없던 재앙을 이길 수 있을까?’
답은 바로 나왔다.
불가능.
“하아아···.”
긴 고민에, 온종일 가슴팍에 묵혀있던 갑갑함이 한숨에 뒤섞여 나왔다.
어쩔 수 없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어차피 불가능을 가능케 할 만큼의 기적이 없고서야, 나라는 한 존재가 범지구적 운명을 뒤바꾸지 못할 거란 것을.
“어쩔 수 없지.”
나는 끝내 9시간을 꽉 채우고서야. 고민을 털어내고 손가락을 움직였다.
<알림>
ㅡㅡㅡㅡㅡㅡㅡㅡ
*각성자 ‘이건우’는 엑스트라 퀘스트 ‘수신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당신에게 수신의 가호가 함께하길.
ㅡㅡㅡㅡㅡㅡㅡㅡ
“흡···! 음?”
바짝 긴장했던 것과 달리. 메시지는 싱겁게 끝났다.
이어서 내 눈앞에 나타나는 메시지는 간략했다.
<수신의 길>
*신성한 피로 부정한 피를 씻어내라.
*진행도 (000/500)
그게 끝이었다.
‘신성한 피라···.’
좋은 일인지, 안타까운 일인지. 내 머릿속에는 그 호칭에 적합한 어떠한 인물이 떠올랐다.
그 대상은 바로, 내가 소속된 4소대의 소대장인 남궁연 소위.
그녀의 스킬 ‘섬광’은 그저 시야를 빼앗고 미미한 열을 발생시킬 뿐인 C급 최하의 스킬이었지만,
전생에서도 ‘신성한’이라는 키워드에는 그녀처럼 ‘빛’과 연관된 스킬 보유자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건, 전생을 살지 않았다면 지금으로부터 최소 7년의 세월이 더 흐른 뒤에나 밝혀지는 사실로.
지금 현재로서는 아마, 정말 극소수만이 아는 시스템의 비밀일 것이다.
그리고 나 혼자 이를 알고 있다는 건.
내게 아주 분명한 기회로 다가올 것이 분명했다.
‘그래. 한번 해보자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에 대한 계획을 조금씩 수정해나갔다.
***
고심 끝에 선택을 마친 3일 차의 아침.
나는 누군가의 초인종 소리에 일어나 문을 열었다.
“3일 내내 이 안에만 있었던 거에요?”
-달그락!
깨지기 쉬운 유리병 소리를 내며, 내 호텔방을 직접 찾아온 사람은 바로 윤지아 상병이었다.
“처리해야 할 일이 좀 있었습니다.”
나는 적당한 대답을 내놓은 뒤, 조금 놀란 얼굴로 윤지아 상병이 안고 있던 목제 상자를 보며 물었다.
“혹시, 벌써 영약이···?”
“아. 맞아요! 우리 엄마가 일할 때는 확실히 하시거든요.”
솔직히 4일 차쯤, 완성품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좀 놀랐다.
전생의 이모님은 가족, 윤지아 상병을 잃은 슬픔에 그렇게 광적인 모습을 보였으리라 추측했었는데···.
연금술 자체를 좋아하는 건, 아무래도 천성이었나보다.
“이렇게 빠를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내가 진심으로 그리 말하자. 윤지아는 자신이 다 뿌듯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능숙한 연금술사의 조수처럼 주의사항을 읊어주었다.
“하루 최대 섭취량에 따라서 영약을 소분해 뒀으니까요? 꼭 하루에 한 병씩만 마셔야 해요. 알았죠? 읏차!”
직접 호텔방에 들어와 테이블에 목제 상자를 내려두고 윤지아는 조심스럽게 내게 물었다.
“아. 그런데, 혹시 건우씨 앞으로 일정이 어떻게 돼요? 그으. 혹시, 시간이 좀 나면 저랑 같이······.”
“아. 죄송합니다. 윤지아 상병님. 아직 가야 할 곳이 더 있어서요.”
“네? 하, 하지만 호텔 프론트에서는 내일까지 예약돼 있다고 했는······. 호, 혹시, 내가 부, 부담스러워서 그런, 건가요···?”
순식간에 울상이 되어버리는 윤지아.
어째서 이렇게까지 내게 호의를 보이는 건지, 솔직히 잘은 모르겠다만, 실제로도 내게는 아주 중요한 일정이 있었다.
“그게 아닙니다. 윤지아 상병님.”
“그···. 그럼 왜 그렇게 저를 피하시는······ 건데요?”
“피한 게 아니라. 상병님. 크흠. 저도 이제 수원에서 볼일을 끝냈으니 슬슬 집에 가보려는 것뿐입니다. 영약이 내일 완성될 거라 생각해서 호텔도 내일까지 잡은 거고요.”
내가 울상인 윤지아를 달래듯 부드럽게 그리 말하자. 그녀는 갑자기 ‘아차’한 표정이 되고는 뭔가 탄식 같은 걸 내뱉었다.
“아···.”
직후, 횡설수설 뭔가 한국어 같긴 하지만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마구 쏟아낸 윤지아는, 자신이 생각해도 무지하게 민망했는지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는 도망치듯 방을 나갔다.
“후우.”
한차례 폭풍이 지나간 듯한 현장에서, 나는 잠시 한숨을 내쉬고는 정말로 짐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허나, 버스에 올라 향하는 곳은 내가 나고 자란 안산이 아니었다.
적당한 시내에서 멈춰, 소리가 밖으로 새나갈 길이 없어 보이는 고급 호텔에 나는 다시금 4박을 예약했다.
이윽고 목제 상자를 뜯어낸 그곳에는 정확히 30병의 소량 영약이 깔끔하게 고정되어 있었다.
“소분이라니···.”
‘분노의 연금술사’가 헌터를 배려하는 방식으로 영약을 만들다니.
전생이었다면 꿈도 못 꿨을 대사건이었다.
전생의 이모님은 아무래도 복수에 미쳐, 영약의 효율만을 중시한 나머지 딱, 그 헌터가 죽지 않을 정도로 영약을 농축시켜 주었으니까.
허나, 당시는 말 그대로 전쟁이 진행 중인 상황이었기에, 대항군은 이모님의 영약을 팔다리를 덜덜 떨면서도 모두 마셨다.
왜 능력치를 대폭 향상시켜주는 영약을 먹으며 그렇게 공포에 덜덜 떨었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했다.
이모님의 영약은, 정말 딱 죽지 못할 정도의 미친 격통을 헌터에게 안겨주니까.
-뽕!
-주르르륵
나는 소분되어 있던 30개의 영약을 다섯 개의 밀봉이 가능한 물병에 옮겨 담았다.
내가 가지고 온 월혈석의 파편이 총 다섯 개였으니, 이래야 한 번에 하나씩 섭취하는 것이 된다.
어차피 바보같이 영약을 그대로 들고 부대로 돌아갈 수도 없는 실정이었으니,
나는 아예 남은 휴가기한인 4박 5일 동안 이 영약들을 전부 섭취해낼 작정이었다.
“하···. 떨리네.”
솔직히 너무 오랜만에 마시는 이모님의 영약이었다.
나는 한껏 숨을 들이 내쉬며 마음을 진정시킨 뒤.
큰 물통에 들어있던 불그스름한 그 영약을 단번에 들이켰다.
꿀꺽!
허나, 위장에 닿는 것과 동시에 치솟는 격통이 내 몸을 찢어놓을 듯, 몸속에서 난동을 부렸고···.
“으으, 으아아아아아악!”
상태이상, ‘오버 클럭’의 고통을 가볍게 웃도는 격통에 나는 계속해서 비명을 지르다가 끝내 기절하고 말았다.
이윽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창밖을 환하게 비추던 정오의 태양 빛이 자취를 감추고, 새카만 밤하늘이 커튼 틈새로 보였지만,
나는 당황하지 않고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을 했다.
-뽕!
그건 바로, 경쾌한 개봉 음과 함께 두 번째 영약을 들이키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격통의 해일은 지금부터 무려 네 번이나 더 내게 휘몰아칠 테지만, 그 모든 고통을 이겨내고 나면, 어마어마한 성장이 나를 찾아올 것이다.
그렇게 나는 비장한 표정을 짓고서···.
꿀꺽!
두 번째 영약도 단숨에 들이켰다.
네놈은, 여기서 죽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