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10화 (10/175)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10화

‘머맨’은 사실 그렇게 위험한 몬스터는 아니었다.

두 다리로 육지를 거닐며, 비늘에 덮인 몸은 물속에서 자유자재의 움직임을 가능케 한다.

허나, 숱한 헌터들이 ‘머맨’에게 큰 공포를 느끼지 않는 까닭은 직접 마주해야 할 육지에서 ‘머맨’은 상당히 느린 움직임을 보이기 때문이었다.

“개체 머맨. 방금 낙하한 수는 넷, 폐건물에 추가 세력이 존재할 수도 있으니 정신 차려주시길 바랍니다!”

가장 먼저 ‘은빛채찍’이 잘 작동하는 것을 확인한 나는 뒤를 돌아 벙쪄있는 군인들을 향해 큰소리로 그리 외쳤다.

“음?”

“어어, 어엇?”

“미, 민간인 대피를 우선한다! 개인 무장이 있는 인원들은 앞으로! 나머지는 민간인에게 뛰어! 어서!”

다행히 내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것은 2대대 소속으로 보이는 여 간부였다.

방금 불붙인 담배꽁초를 그대로 집어 던지며 마력을 끌어모으는 그녀.

버스에서는 아주 당당히 자신의 자랑을 늘어놓던 김동건 일병은 그럼에도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다행히 휴가자의 절반은 간부의 고함에 정신을 차린듯했다.

다만, 그 큰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것이 비단 군인들만이 아니었다는 게 문제였다.

-그르르르르륵!

가래가 끓는 듯한 괴성과 함께 간부에게 몸을 날리는 머맨.

매지션 계열로 보이는 간부는 침착하게 캐스팅을 이어나갔지만, 문제가 있었다.

머맨이 너무 빨랐다.

스으으으!

폐건물로부터 쏟아진 물을 빙판 삼아 마치 스케이트를 타듯 질주하는 머맨.

간부의 얼굴에는 순식간에 당혹감과 공포가 서렸지만, 그때였다.

-촤악!

날카로운 타격음은 번쩍이는 은빛과 함께 들려왔다.

“흡!”

이윽고 들려오는 낮은 기합소리와 함께 시퍼런 스파크가 그대로 머맨의 등을 태워버렸다.

-파지지직!

-그륵?! 그르르르륵!

짤막한 단말마와 함께 축 늘어지는 머맨.

간부는 자신의 코앞까지 다가온 몬스터를 제압한 그 은색의 빛줄기를 따라 시선을 옮겼고, 나와 눈이 맞닿았다.

내 가슴팍의 이병 계급장을 보았는지 머맨이 빠른 속도로 다가올 때보다 더 놀라는 간부.

허나, 나는 시간이 촉박한 관계로 그녀의 안위 따위를 묻지 않고 본론을 꺼냈다.

“하사님. 머맨들은 화속성 공격에 약합니다. 유효한 인첸트 장비 혹은 스킬 보유자를 찾아주시겠습니까.”

-휘익!

그리 말하며 ‘은빛채찍’에서 마력을 회수해 길이를 줄이는 나.

회수와 동시에 다시금 거칠게 몸을 틀며 채찍에 마나를 불어넣어, 전기계 능력자들의 기본인 ‘방출’을 발현했다.

-파지지지직!

크게 휘둘러진 은색 선은 금세 나를 향해 다가오는 머맨 둘을 거칠게 휘감았고,

-팟, 파지직!

사방으로 아무렇게나 비산해야 할 ‘방출’은 전도율이 좋은 ‘은’을 타고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크르르르르륵!

-크르르락!

머맨 두 마리가 비명과 함께 마비되었음을 확인하고, 블랙 홉 고블린조차 이긴 나의 근력으로 채찍을 강하게 휘두르자,

-짜악!

채찍은 머맨의 단단한 비늘을 깨부수는 것도 모자라 그 속의 살을 아주 시원하게 찢어놓았다.

‘전생에도 생각했었지만, 이 은빛 채찍은 정말 쓸만하군.’

전기와 가장 상성이 좋은 전도체인 은. 그 은으로 만들어졌음에도 내 현재의 근력을 버틸 만큼의 내구성을 지녔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효한 전기량보단 허공으로 퍼지는 양이 더 많은 ‘방출’을 굳이 ‘제어’할 필요도 없이 조종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정말 편리했다.

‘나머지 한 개체는···.’

그렇게 추락한 넷 중, 남은 하나를 찾기 위해 고개를 돌리던 중이었다.

-쾅!

큼지막한 굉음과 함께 들려오는 소음.

시선을 돌리자 붉은 장갑을 손에 착용하고 머맨의 머리통을 ‘폭발’시킨 윤지아 상병의 모습이 보였다.

전투복 대부분이 젖어있는 걸 보니, 내가 간부를 돕고 두 머맨을 사냥하는 사이 그녀도 한 머맨과 육탄전을 벌였던 모양이다.

‘물이 있는 곳에서 머맨과 근접전을 벌이고, 이기다니.’

전생에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그녀는 내 생각보다, 유능한 헌터인 듯했다.

슥, 고개를 돌리자.

이제야 어느 정도 모양새를 갖춘 군인들과 그들을 통솔하며 부대 보고를 시행하는 간부의 모습이 보였다.

-철퍽!

-처푸덕!

허나, 안심하기에는 또 새로운 머맨들의 낙하 음이 귓가를 때린다.

최초 지상에 낙하했던 넷은 처리했으나, 블랙 홉 고블린이 그러했듯, 원인을 제거하지 않으면 이 몬스터들은 끝없이 밀려올 것이 분명했다.

“헉, 이, 두 마리를 건우씨 혼자 사냥한 거예요?”

“상성이 좋았습니다.”

뒤늦게 내 쪽으로 걸어와 놀란 표정을 짓는 윤지아 상병.

둘이 아니라 셋이지만, 굳이 언급하지 않고 답했다.

“그보다, 저기 계신 간부님과 합류해 시가지에 피해가 나오지 않도록 도와주시겠습니까?”

“그, 그거야. 당연하지만, 건우씨는요?”

“저는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호, 혼자서 어딜 가겠다는 거예요. 건우씨가 강한 건 알지만, 너무···. 위험하잖아요!”

“시간이 없습니다.”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주는 듯한 반응에 내심 놀랐지만, 말뿐만이 아니라 정말로 슬슬 시간이 촉박해지기 시작했다.

“수도가 끊긴 건물에서 이 정도의 물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특이사항이 발생했다고 판단하는 게 옳겠죠.”

“그러니까 더더욱, 부대 지원과 함께 수색해야죠!”

일반적인 시각에서 윤지아의 주장은 타당했지만, 그렇게 해서는 ‘히든 피스’를 독식할 수가 없다.

-철퍽!

마침, 나와 윤지아 근처에서 물보라를 일으키며 낙하한 머맨 하나.

나는 급하게 머맨에게 시선을 옮기는 윤지아를 보며 말했다.

“그럼, 저것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윤지아 상병님.”

“자, 잠깐! 건우씨!”

차례차례 떨어지는 머맨들은 드디어 정신을 차린 군인들이 대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멀찍이 낙하하는 머맨들 역시, 매지션인 간부와 윤지아 정도면 해결할 수 있으리라.

나는 잠시 뭔가를 잊은 듯한 감각에 빠르게 다리를 움직이면서도 김동건 일병의 모습을 찾았는데···.

“하···. 그럼 그렇지.”

버스에서는 그렇게 떵떵거리던 A급 헌터 놈은 다른 군인들이 다 정신을 차린 지금도, 팔다리를 덜덜 떨며, 구석에 숨어 있었다.

원래 등급만 믿고 설치는 헌터라는 게 대부분 저렇다.

나는 짧은 한숨을 쉬고 눈앞에 집중했다.

무한한 물을 쏟아내는 폐건물,

이미 개체 수가 두 자릿수를 넘길 만큼 많은 머맨을 쏟아낸 장소는 이 건물의 4층이었다.

나는 폐건물 입구에서, 계단을 타고 줄줄 흐르고 있는 물줄기를 발견하고는 미소를 지었다.

“운이 좋군.”

전생에서처럼, 제한된 공간에만 물을 불러일으킨 거였다면 탐색이 길어질 뻔했다.

나는 흐르는 물에 손을 뻗었고, 나 체내의 ‘생체전기’를 완전히 제어해, 내려오던 물줄기의 역방향으로 전류를 올려보냈다.

곧바로, 머릿속에 입체적으로 그려지는 폐건물의 모습.

물줄기에 발이 닿아 있는 머맨들도 어디에, 몇 마리나 존재하는지까지 모두 일순간에 읽어낼 수 있었다.

그렇게 2층, 3층을 거쳐 4층까지 나의 탐색 전류가 도달하자.

‘찾았다.’

그곳에 이 기형적 몬스터 출현을 일으킨 원흉이 있었다.

나는 다시금 그것에 도달하기 위한 최적의 루트를 탐색했고, 머릿속에 떠오른 3차원 지도가 완성되는 순간 주저는 없었다.

탓, 탓!

큼지막하게 다리를 펴고 땅을 박차는 나는, 그대로 계단을 오르며 오른손을 쭉 폈다.

-파지지지직!

전기 특유의 날카로운 소음이 폐건물을 가득 채웠고 그와 동시에 2층, 3층에서부터 수많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크르륵?!

-캬르아아악!!

-크륵!

일전에 전기를 한점에 집중해 높은 전압을 형성했던 것과 반대로 이번에는 출력을 낮추고 최대한 넓은 지형에 마비 전류를 흩뿌린 것이었다.

폐건물 안에 있던 머맨은 그 수가 무려 스물을 넘겼지만, 내가 그것에 도달하기까지 머맨들은 괴성조차 내지르지 못했다.

모두, 머맨의 힘을 상승시키기 위해 빌런이 물로 가득한 이 환경을 조성해준 덕분이었다.

“후.”

도착한 4층에서 나는 잠깐의 교전을 치렀지만, 광역 마비와 내 근력을 한가득 담은 채찍에 대항하는 머맨은 한 개체도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제대로 마주한 거대한 물방울 하나.

주변에 아무런 장치가 없음에도 그것은 허공에서 동그란 원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주저 없이 물 덩어리에 다가가 손을 뻗어 넣었고, 그 중심에서부터 강한 마력을 느낄 수 있었다.

-파직!

갑작스러운 반발력이 나를 밀어내려는 것이 느껴졌지만, 나는 생체전기를 방출해 그 마력을 밀어냈다.

-파지지직!

머맨들을 상대할 때보다 더 많은 양의 생체전기가 소모되었지만, 팽팽하게 조이던 전기 에너지를 한순간에 ‘제어’해 몰아치듯 마력을 밀어내자,

드디어 그것은 반발력을 잃고, 내 손에 쥐어졌다.

그것은 신비로운 푸른빛을 한껏 머금은 구슬이었다.

물이 없는 곳에서 물을 만든다.

그 경이로운 풍경에 당연히 무언가 신비로운 아이템이 있을 거란 것은 예상한 바였지만,

“···! 이, 이건!?”

내 손에 쥐어진 그 작은 구슬은 나의 예측을 완전히 벗어난 물건이었다.

만일, 내 생각이 틀리지 않는다면, 이건 벌써부터 이런 곳에 존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알림>

ㅡㅡㅡㅡㅡㅡㅡㅡ

*각성자 ‘이건우’는 ‘청혈옥(靑血玉)’을 발견했습니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14구역의 각성자 중 최초로 재앙, ‘태고의 흡혈귀’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곧 당신에게 선택의 기회가 찾아올 것입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

내심 틀리길 바랐다만······.

‘메시지’는 참으로 잔혹하게도, 내 생각이 맞았음을 증명해주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두 개의 단어.

메시지가 이 ‘대한민국’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14구역’과 ‘태고의 흡혈귀’.

전생의 내가 죽기 직전에야 직접 대면할 수 있었던 ‘재앙’의 호칭이었다.

-처벅

“태고의 흡혈귀······.”

나의 중얼거림과 거의 동시에 땅에 떨어진 어떠한 물체.

역시나 월혈석(月血石) 파편이 그 중심에 박힌 익숙한 형태의 오르골이었다.

“...그리고 휴거교에서 사용하는 제사도구 오르골.”

아무래도, 내 추측보다 훨씬 더 무장 테러단체 ‘휴거교’와 재앙, ‘태고의 흡혈귀’의 사이는 각별하고 또 오래된 사이인 듯했다.

“그래. 이제야 알겠군. 휴거교가 그토록 칭송하고 떠받들던 신의 정체를···.”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잠시, 생각에 잠겨야만 했다.

***

대대장 김용운 중령은 사실, 이건우 이병의 존재가 고마웠다.

건우는 물론 비범한 자이지만, 중령이라는 계급에 오르는 동안 김용운이 직접 본 비범한 헌터를 줄 세워보면 연병장 두 바퀴는 돌릴 수 있을 만큼 많을 것이다.

때문에, 김용운은 이건우 이병에게 능력적인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김용운 중령이 아직 하사 딱지를 달고 있던 먼 과거,

자신을 이끌어주고 또 참된 군인으로서의 자세를 가르쳐준 남자.

이준학 준장과 비슷한 갈망을 품고 있었기에 김용운은 다소 일찍 이건우 이병에게 마음을 연 것이었다.

그 젊은 혈기와 큰 포부 그리고 대대장의 눈앞에서도 하고자 하는 말을 조리 있게 내뱉을 수 있는 그 패기.

김용운은 요즘 같은 평화의 시대에도 이러한 젊은이가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흡족했다.

헌데,

‘머맨’의 시가지 출현이라는 비상식적 사태에, 어쩔 수 없이 직접 몸을 움직인 김용운이 목격한 현장은,

참으로 기형적인 모습이었다.

시내를 광범위하게 적실 만큼의 원인이 불명한 물은 물론,

보고에 따르면 공습이나 다름없던 ‘머맨’의 공세를 가장 처음 막아선 자는 바로 얼마 전에도 영내에 침투한 블랙 홉 고블린을 쓰러뜨린, 이건우 이병이라고 했다.

사태에 신속하게 대응한 군인들은 1대대, 2대대, 3대대의 인원들이 어지럽게 뒤섞여 있었음에도 그 목격 증언은 모두 일치했다.

이건우 이병이 홀로 몬스터가 출현하는 폐건물에 들어가 원인을 제거, 자칫 비극이 될 수 있던 이 사태를 종결시켰다는 것이다.

그것도 혼자서.

“하. 참.”

이병이 나름대로 전투 경력이 있을 간부를 오히려 구하고, 적절한 대응책을 제시했다.

제대로 된 군사훈련을 수년간 받은 군인보다, 넉 달 전만 해도 그냥 민간인이었을 이병이 더 빠른 판단력을 가졌다?

김용운이 아는 바에 따르면 이는 두 가지 경우뿐이었다.

하나는, 흔히 히트맨이라 불리우는 각성 사실을 숨기고 돈을 받아 의뢰를 수행하는 존재로 퍽 오랫동안 활동을 했었거나.

혹은, 숱한 신화를 직접 써 내려갔던 1세대 헌터들의 리더, 전 ‘육군참모총장’처럼 진정한 의미의 천재이거나.

‘둘 중, 이 이병의 진실이 어디에 더 가깝든, 내가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다.’

이건우 이병이 정말 어디까지 해낼 수 있는 존재인지. 제대로 관찰하고 판단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

-텁

그런 생각을 하며 이미 1시간도 더 전에 이건우가 직접 자신에게 전달해주었던 ‘오르골’을 들어 올리는 김용운.

참 이상하게도, 이건우 이병이 들고 온 오르골에는 묘한 마력을 내포한 붉은 수정 같은 것이 없었다.

허나, 현장에 이 물건이 떨어져 있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용도를 알 수 없는 물건이 없다는 건, 당장 큰 문제가 아니었기에 김용운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이건우, 대체 네 정체는 뭐냐.”

지금은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로 머릿속이 복잡했기 때문에···.

***

대대장 김용운에게 이번 사태 역시 ‘휴거교’와 연관되어 있다는 증거를 제출한 나는, 애당초 목적지였던 수원으로 서둘러 움직였다.

멸망 전에는 교통의 요지이니, 갈비의 명소니 이런저런 호칭이 많이 있던 수원이었지만,

현재는 대한민국 누구에게 물어봐도 같은 대답을 듣게 될 것이다.

‘장인들의 거리’

사람들의 수다 소리보다 철을 담금질하는 소리가 더 많이 들린다는 이 거리에는,

전생에 몇 년이나 내 골머리를 썩이던 ‘생체전기량’ 문제를 해결해준 연금술사가 살고 있다.

‘뇌제’라 불리기 시작한 뒤에는 거의 나를 위해서만 포션을 제조해 주던 사람이었으며,

끝까지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지는 않았으나 몬스터와 빌런을 극도로 혐오해 많은 이들에게 ‘분노의 연금술사’라 불리던 그분.

‘이모님은···. 잘 계시겠지?’

나는 그 섬뜩한 눈빛과 가히 정신병에 가까울 수준으로 몬스터와 빌런을 고문하길 즐기던 그 모습을 떠올라 잠시 속이 울렁거리는 것을 느꼈다.

나도 빌런은 모두 척살해야 한다 주장하던 강경파였지만, 이모님처럼 극단적이지는 않았다.

허나, 당시에는 수년간의 물밑작업을 마친 빌런들이 협회와 군대를 점거하고, 엄청난 인명피해를 낳은 후였기에.

‘대항군’의 대부분은 이모님의 행동에 태클을 걸지 않았었다.

“어이 형씨. 뭐 찾는 거 있어?”

그때, 장인의 거리를 한참 동안 두리번거리던 내게 누군가 말을 건네왔다.

은근히 가슴께에 달고 있는 배지를 유독 강조하는 모습을 보아하니, 이 장인 거리를 통제하고 있는 ‘조합원’인 듯했다.

마침 잘됐다.

“용병대 ‘반월’과 전속계약을 맺은 연금술사를 찾고 있습니다.”

“바, 반월? 형씨. 아무리 군바리가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고 해도 그렇지. 일개 용병대에 상품을 납품하는 연금술사에게 가겠다고?”

‘조합원’은 듣지 못할 말을 들었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분명 옷을 갈아입었는데도, 군인 티가 풀풀 풍긴 듯했다.

“그러지 말고, 우리 장인 조합에서 추천하는 연금술사는 어때? 우리 조합에는 무려, 랭커랑 직접계약을 맺은 연금술사도 있고, 협회에 물건을 납품하는 대장장이도 있다니까?”

그는 흔한 ‘조합원’들이 으레 하는 말을 내뱉으며, 나도 이미 다 알고 있는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허나, 전생에 이모님을 통해 들은바. 협회니 상회니 조합이니 하는 놈들이 다 그렇듯.

이놈들도 어떻게든 장인과 헌터 사이에 끼어들어 수수료를 떼먹는 족속이었다.

괜히 엮이면 바가지를 쓰게 된다는 소리였다.

“안내해줄 것이 아니라면 이만 가보겠습니다.”

“쳇! 형씨 그러지 말고, 내 사무실 와서 차라도 한잔하면서 얘기 나눠보는 건 어때?”

“사양하죠.”

나는 껌딱지처럼 들러붙는 그를 쳐내고는 그냥 내 갈 길을 갔다.

본디 군인들은 이 거리를 잘 찾지 않는다.

어차피 성과만 올리면 군에서 ‘전용무기’를 제작해주는 건 물론이고, 던전 내부에서 드랍한 무기가 실력 있는 장인이 벼려낸 무기보다 더 성능이 뛰어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허나, 그럼에도 굳이 군인의 신분으로 이곳에 방문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십중팔구 주머니가 두둑한 병사라는 것이 이 시대의 상식이었다.

그러니, 군인 티를 다 벗지 못한 나에게 마주치는 ‘조합원’마다 미소를 보이며 살갑게 말을 거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휴우···.”

그렇게, 3번이나 더 ‘조합원’과 입씨름을 하고 2번이나 미로 같은 이 거리의 괴상한 생김새에 길을 잃고 나서야,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건 단순히 외진 곳인 걸 넘어서···. 일부러 찾기 힘든 곳에 자리를 줬다고 봐도 무방하겠군.’

그리고 보통 이런 자리는, 실력은 있으나 ‘장인 조합’에 가입하길 거부한 장인에게 주어진다.

똑. 똑.

나는 다 닳아서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문짝에 조심스럽게 노크를 했다.

전생의 이모님은 워낙 거친 사람이었던 터라 괜히 목이 마르는 것 같았다.

허나, 노크 직후 들려온 목소리는 내 예측과는 다소 달랐다.

“네에~”

음표를 그려 넣어도 좋을 만큼 부드러운 고음의 목소리.

드르륵!

이어서 힘차게 열린 문에서 나온 것은 분명 전생에 수십 번을 봤던 이모님처럼 생겼지만,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이었다.

“어머, 멋진 군인분이시네. 어쩌다 이런 외진 곳까지 오셨데? 아, 이렇게 서 있지 말고, 얼른 들어가요. 차가 좋아요, 커피가 좋아요?”

“......예?”

얼마나 당황한 것인지 내 입에서 멍청한 소리가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아이그. 이게 얼마 만에 손님인데 아니, 아니지. 먼 길 오느라 피곤했을 텐데 마실 거라도 대접해주려는 거지. 자. 자. 들어와요.”

항상 인상을 팍 쓰고, 몬스터의 위장을 녹이는 약품을 개발했다고 좋아하던, 그 이모님···. 맞겠지?

나는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잠시 놀라 제자리에 굳어 있었는데, 내 눈과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일은 아직 끝나지 않은 듯했다.

그건 등 뒤에서 들려온 친숙한 목소리 때문이었다.

“엄마?”

이에 당황하며 내가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 서 있는 것은 휴가자 버스에서 만났던 윤지아 상병이었다.

그리고 윤지아 상병이 내뱉은 단어는 또다시 나를 혼란스럽게 했는데,

‘...엄마? 분노의 연금술사에게 애가 있었다고?’

심지어 그 애가 다름 아닌, 전생에는 이 시점에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존재. 윤지아 상병이었다니.

“어? 건우씨가 어떻게 여기 있어요?”

그리고 뒤늦게 나와 눈이 마주치자 오히려 자기가 더 놀랐다는 듯 눈을 크게 뜨는 윤지아.

나는 다시금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해야만 하는 일을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