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8화
“까, 까만 고블린?”
정확히는 일반 고블린보다 더 덩치가 큰 상위 계체.
“예. 블랙 홉 고블린입니다.”
“블랙 홉 고블린···.”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내가 한 말을 따라서 중얼거리는 김장훈.
허나,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었다.
한 계체만 등장해도 철저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면 한 소대를 전멸시킬 수 있는 것이 리빙 아머다.
더욱이 부대와 부대 사이에 끼어있는 야산에 몬스터가 출현한 것도 그리고 그 몬스터가 갑주를 입고 있었다는 것도 지금의 그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일 테니까.
“많이 당혹스러우시겠지만, 우선 절 따라주시겠습니까.”
“그, 그래. 하아아. 후우우우.”
내 한마디에 고개를 끄덕이며 곧바로 마음을 추스르는 장훈.
분명 입장은 맞선임과 맞후임인데, 그는 일전부터 내 말을 퍽 잘 들어주었다.
애초에 내가 박태진에게 4소대 일이병만 모아 배수로 작업을 보내달라 했던 이유가 이것이었다.
‘지금 필요한 건, 전투능력이 뛰어난 헌터가 아니라 이병에 불과한 내 말을 군말 없이 따라줄 인원이다.’
나와 장훈은 곧바로 전진했다.
목표는 블랙 홉 고블린이 산에서 내려오던 그 방향.
얼마 가지도 않았음에도 자연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광경이 우리 두 사람을 맞이해주었다.
“마, 마공학 철조망이 어떻게···!”
내구성이나 여타 다른 것들은 몰라도, 형식과 순서에 맞춰 제거하지 않으면 인근 부대에 비상벨을 울리는 시스템만큼은 확실한 것이 군부대에서 사용하는 마공학 철조망이다.
허나, 이게 울리지 않았다는 건, 한 가지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누군가 끊은 겁니다. 몬스터가 아니라 인간이요.”
“인간···. 사람이? 군부대에 몬스터를 보내다니 그, 그건 테러잖아!”
“예. 그리고 몬스터를 무장까지 시켜서 보낸 걸 보면, 계획적인 일인 것 같습니다.”
“그, 그런 일이···!”
장훈은 당혹스러운 듯 커진 눈을 감질 못했다.
그래, 이 시대는 아직 ‘빌런’에 대한 명확한 단어조차 정립되어 있지 않은 시대다.
인류의 적을 오직 몬스터라고만 생각하던 이 시기에, 인간과 몬스터가 함께 어떠한 계획을 세우고 협동을 한다는 게 이해가 안 가겠지.
“김 일병님. 시간이 없습니다. 우선 계속 가겠습니다.”
“그, 그래.”
휑하게 뚫린 철조망 밖으로 나오니, 이전 정말 안전 구역이라곤 없는 새카만 야산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나무가 빽빽해 어둑한데, 비까지 계속 내리니 무언가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다.
허나, 그렇다고 불을 켰다간 블랙 홉 고블린의 밥이 될 것이다.
일기예보에는 없던 이 억수 같은 비도 실은 새카만 피부의 고블린을 숨겨주기 위한 것이었고 말이다.
-절걱.
이윽고 나와 김 일병의 탐색이 효과가 있었는지, 눈앞에는 아까와 같이 갑주를 입은 홉 고블린이 나타났다.
허나, 이번에는 이전처럼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어기적거리는 것이 아니었다.
-타탓!
나와 마주하는 순간, 빠른 속도로 경사진 비탈길을 뛰어 내려오는 갑옷.
“뭐, 뭐야!”
장훈은 갑자기 등장한 홉 고블린 나이트의 급습에 놀라 목소리를 높였지만, 내 반응은 변하지 않았다.
-파지지직!
물이라는 매질과 완벽에 가까운 ‘제어력’을 통해 아주 조금의 전력 소실도 없이 나의 섬광은 나아갔다.
그렇게 전기의 선이 링크된 그 순간, 나는 200Wh가량의 전기를 쏘아 강한 ‘자기력’ 갑주에 부여했다.
그러자 열심히 움직이던 녀석의 사지는 자신의 흉갑을 중심으로 찌그러지듯 모여들었고 녀석은 자신의 속도에 그대로 바닥을 굴러 비탈길 저 밑으로 굴러떨어졌다.
아마, 보고를 받고 출동한 후속 병력들이 처리해 주리라.
“대, 대체 건우 넌···.”
순발력 있게 움직이던 홉 고블린 나이트를
단숨에 제압하자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장훈.
허나, 나는 전투 상황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태평한 그를 일갈하며 손끝에 전기를 모았다.
“잡담은 금물입니다! 더 옵니다!”
-파지직!
방금이 번쩍이는 갑주를 두른 홉 고블린이었다면, 이번에 다가오는 것은 새카만 피부의 블랙 홉 고블린, 어둠을 무기 삼아 다가온 것이다.
-크라아아아아악!
정확히 장훈의 머리 위로 수직 낙하하는 블랙 홉 고블린을 전깃불로 지져버리자 이번에는 내 뒤에서부터 ‘위기 감지’ 신호가 경종을 울려왔다.
-스르릉!
야습을 위한 것인지, 새카만 검날의 단검을 내게 휘두르려는 블랙 홉 고블린.
허나, 나는 오늘을 위해 챙겨둔 군용 단검을 꼬나쥐고는 등 뒤를 습격하는 녀석의 새카만 검날을 막았다.
-크라라라락!
곧바로 놈은 양손으로 단검을 쥐더니 큰소리로 외치며 힘을 더 주었지만,
“흠?”
-크르륵? 크라라락!?
생각보다 약했다. 이번에는 내가 꼬나쥔 손 그대로 팔에 힘을 주어 밀어내자 블랙 고블린은 당황하는 소리를 연신 내뱉었다.
‘생각보다 내 근력이 더 강해졌다.’
설마 상위 계체와의 단순 힘 싸움에서 이렇게 쉽게 이길 줄은 나도 몰랐다.
“거, 건우야!”
내가 놀라는 틈에 무장이라고는 삽자루 하나뿐인 장훈을 향해 달려드는 블랙 고블린.
이내, 나는 침착함을 되찾고 고블린이 들고 있던 새카만 단도와 내 군용 단도 사이에 강한 ‘척력’을 부여했다.
이어서, 급박한 상황임에도 침착하게 조준하여 발사.
-휘이익!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척력으로 추진력을 얻은 고블린의 흑색 단도는 같은 고블린의 목을 정확히 꿰뚫었다.
-푹!
섬뜩한 소리와 함께 목이 꿰뚫린 고블린은 쓰러졌고, 장훈은 십 년은 감수했다는 표정이었다.
“이걸로 우선 몬스터는 없는 것 같습니다.”
“...정말?”
“예. 비 덕분에 더 넓은 범위까지 탐색할 수 있었습니다. 이젠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리 장훈을 안심시키며, 천천히 주위에 전기를 흩뿌리며 이 일대를 탐색하던 나는 드디어 내가 목표로 하던 ‘물건’을 발견하고는 미소를 지었다.
“김 일병님, 저쪽으로 쭉 가시면 무슨 오르골 같은 게 있을 겁니다. 혹시 그것 좀 가져와 주시겠습니까?”
“오, 오르골? 음, 알겠다.”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냐는 듯한 표정. 허나, 그는 군말 없이 내 지시를 따라주었다.
이윽고 내가 풀숲을 헤치며 나아간 곳에는 기분 나쁘게 생긴 오르골과 그 중앙에 박힌 새빨간 보석, 월혈석(月血石)의 파편이 있었다.
‘더러운 피를 머금은 돌.’
이 시대에도 이미 존재하는 무장 테러 단체이자 사이비 종교. ‘휴거교’에서 사용하는 제사 도구였다.
‘하지만, 잘만 정제한다면 이건 아주 순도 높은 마나를 머금은 영약이 되지.’
쓸만한 솜씨의 연금술사를 나는 알고 있다.
거기에 이번에 받은 포상 휴가와 박태진이 ‘협조’해준 돈까지.
재료는 모두 모였다.
사실, 갑옷을 두른 블랙 홉 고블린이 시선을 끌고 블랙 고블린이 어둠 속에서 기습하는 이번 테러는 퍽 효율적인 성과를 자랑했었다.
전생에는 우리 소대장 남궁연의 스킬. ‘섬광’으로 어둠을 해결하기 전까지 사상자가 계속해서 나올 정도였으니까.
허나, 이번 테러에서 ‘휴거교’가 간과한 점이 하나 있다면, 그들이 어둠을 만들기 위해 선택한 ‘비’가 오히려 내 능력 효율을 올려주었다는 점이었다.
‘예상보다 더 쉬웠다.’
역시 사방에 물기가 널려 있는 환경은 내게 상당한 도움이 된다.
“건우야!”
그리고 지금 저 멀리에서부터 나를 발견하고 달려오는 일병 김장훈 역시, 국내에 몇 없는 물 능력자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렇게 내 말을 잘 듣는데,
‘잘만 키워내면 분명 도움이 되겠어···.’
나는 지금껏 계속 해왔던 고민을 끝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장훈이 가져온 오르골과 내가 하나 더 찾은 오르골까지 총 셋, 나에게는 무려 세 개의 영약이 생긴 셈이었다.
그렇게 일이 다 마무리되어갈 때쯤.
-피이이이이!
부대 방향에서부터 기다란 빛줄기가 하늘로 치솟더니 허공에 수 놓여 땅을 대낮처럼 밝게 비추기 시작했다.
‘저건, 중대장이 애용하는 섬광탄.’
드디어 1대대에서는 대대적인 준비를 마치고 출동한 모양이었다.
준상급 언데드 리빙 아머가 다수 포착되었다고 했으니, 이 정도의 준비 시간이 걸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물론,
‘예상대로 시간은 넉넉했군.’
이는 내가 유도한 그대로였다.
-저, 저건 리빙 아머다···! 모두 도망쳐!
최초에 블랙 홉 고블린을 발견하고 그렇게 말한 건 다름 아닌 나였으니까.
***
1대대에서 백마법에 능한 헌터들을 모으고 이들을 보조해줄 인원을 차출해 대테러전담팀을 만드는데 걸린 시간은 단 20분이었다.
1중대의 중대장 박동협은 일이병들의 보고와 동시에 출동하려는 5대기까지 막아 세웠다.
‘어차피 5대기는 등급의 구분 없이 모인 오합지졸이다!’
인명피해는 그 즉시 진급 평가에 연관되는 중요 항목이었다.
위험도가 매우 높은 리빙 아머의 다수 출현.
사태가 사태인 만큼 박동협은 인명피해를 줄이고 A급 헌터들을 전면에 내세워 일을 마무리할 셈이었다.
-우선 긴급 주조팀이라도 먼저 보내야 합니다! 중대장님! 저희 소대원들이 아직 거기에······!
그 과정에서 어서 출동해야 한다고 다그치는 4소대장 남궁연과 차질이 조금 발생하기는 했으나, 박동협에게 낙오된 D급 병사 둘은 큰 문제가 아니었기에 묵살했다.
이윽고, A급 병사만 모으느라 시간이 좀 걸리긴 했다만, 아주 완벽한 대응책을 마련한 팀은 곧장 출동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마주한 현실은 정말 기이했다.
은빛의 반짝이는 갑주를 입고는 있으나, 어째서인지 어기적거리며 한곳에 뭉쳐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몬스터들.
-타당! 타다당!
안전하게 사살 후 접근하자, 그건 리빙 아머가 아니었다.
“홉 고블린이잖아. 아니, 그런데 왜 피부색이······.”
이어지는 광경은 더 심했다.
바닥을 나뒹굴고 있는 블랙 홉 고블린 네 마리와 갑주를 착용한 고블린이 다시 여섯.
밑에 굴러다니던 고블린까지 합하면 합계 열세 마리의 홉 고블린이 전투 불능 혹은 완전히 사살된 상태로 비탈길에 쓰러져 있던 것이다.
“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현장에서 가까운 2대대가 출동해 먼저 사건을 정리한 건가?
박동협은 혼자서 그런 추측을 떠올려봤지만, 직후 그의 의문을 무참히 박살 내는 존재가 나타났다.
-스윽,
풀숲을 뚫고 나온 것은 몬스터가 아닌 두 명의 병사.
“충성! 중대장님! 심각한 테러 행위에 대한 증거를 찾게 되어 조사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몬스터로 인해 낙오되었다던 4소대의 D급 헌터 두 명이었다.
“아니, 으, 그 말은 너희가 이 홉 고블린들을 모두 쓰러뜨리고······. 이번 사태의 원인 규명까지 시도했다는, 그런 말인가. 이건우 이병?”
“예. 그렇습니다!”
명색의 중대장이라는 입장이 있었지만, 박동협은 말을 더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적이 위험도가 높은 리빙 아머가 아닌 홉 고블린이었다할지라도,
이 정도의 수를 상대하려면 하나의 소대, 아니 그마저도 사전에 홉 고블린이 적이라는 걸 알고 그에 걸맞은 준비를 마친 소대가 필요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갑옷을 입은 변이 계체까지 섞여 있지.’
어딜 어떻게 보아도, D급 헌터 둘이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저, 정말로 자네 둘이서 이걸···?”
당당한 태도로 말하는 이건우와 묵묵히 서 있는 김장훈.
눈앞의 펼쳐진 광경은 분명, 이곳에 있던 두 병사만이 만들 수 있는 상황일진데···.
박동협 중대장은 물론, 선민사상에 젖어 있던 A급 헌터들은 이건우 이병의 말을 곶이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질 못했다.
허나, 지금까지의 상식을 뒤집고, 당연하다 여겨왔던 이치를 거스르는 일이겠지만,
그들의 머릿속에는 공통적으로 ‘혹시’라는 의문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경악한 얼굴로 미동도 없이 서 있는, 눈앞의 이들을 바라보며 건우는 마음속으로 작게 웃었다.
‘그래. 의심해라. 너희의 그 의심이···. 어처구니없이 와해되었던 이 군의 미래를 바꿀 밑거름이 될 테니까.’
지독한 엘리트 주의에 취해있던 이들의 굳건한 편견을 깨부수기 위해선 ‘상식 밖의 일’을 주기적으로, 지속해서 보여주어야 한다고 했다.
이는 전생에 무너져가던 군을 다시 일으킨 장본인 ‘이준학’ 준장의 가르침이었다.
‘...그리고 이들의 편견을 일찍 부수면 부술수록, 빌런에 대항하는 큰 힘이 생기는 거지.’
건우는 홀로 그런 생각을 하며 차곡차곡 이루어지는 계획에 다시금 미소를 지었다.
***
잠깐의 정적 끝에 큰 체구의 남자는 입을 열었다.
“...긴급회의를 2주 만에 다시 소집한 것도 몇 년 만에 일인지 모르겠는데······. 보고 받은 내용은 그것보다 더 신기하군. 그렇지 않나?”
그의 자리 앞에 놓인 명패에는 정확히 김용운 중령이라는 단어가 고풍스럽게 새겨져 있었고,
그의 질문에 어떤 무게가 있는지 아는 이들은 함부로 입을 떼지 못했다.
“그······.”
그럼에도 중대장 박동협이 어렵사리 입을 연 것은, 자신이 이 긴급회의를 열리게 만든 보고를 올린 당사자였기 때문이었다.
“시작부터 말을 질질 끌 거면 그냥 입을 열지 말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나?”
“죄, 죄송합니다! 보고 드린 사항에 그 어떤 과장도 보탬도 없습니다. 어떻게 D급 병사가 그런 일을 해낸 것인지 저도 아직 확실한 이유를 밝혀내진 못했으나······.”
“아니지.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맹점은, 이병이고 D급이고 하는 게 아니라 바로 이 물건에 있다.”
그리 말하며 자신 앞의 테이블을 손으로 가리키는 대대장 김용운 중령.
그곳에는 일전 건우와 장훈이 찾아낸 3개의 오르골이 있었다.
“그 오르골 말씀이십니까?”
“아직 너희에게 자세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만, 최근 이 대대장은 협회의 요청을 받아 어떤 사건을 조사하고 있었다.”
그리 운을 떼며 천천히 테이블의 오르골을 집어 드는 대대장.
“그리고 나는 그 과정에서 이것과 똑같이 생긴 오르골을 몇 번이고 봐왔다. 결과, 최근 일어난 기현상들과 이 오르골에는 어떠한 연관성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
“기, 기현상이라 하심은···?”
박동협의 과감한 질문에 잠시 눈을 감는 대대장.
분명 2번째 긴급회의를 소집하기는 했으나, 이번 회의에는 전과 달리 딱 중대장 4명만 불려왔다.
듣는 인원이 줄었고, 대대장이 지금껏 숨겨왔던 사실을 공표한다.
아무리 눈치가 없는 사람이라도 곧 대대장의 입에서 나올 말이 기밀 사항이라는 것은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윽고, 대대장은 입을 열었다.
“보스가 둘, 셋을 넘는 게이트나 헌터 먹는 게이트의 출현 그리고 게이트 없이 몬스터가 갑자기 시가지에 나타나는···. 유례없는 사건·사고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그건, 지금까지의 헌터 사회를 둘러싸고 있던 ‘상식’의 틀을 깨부수는 발언이었다.
“새로운 물결이 오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리도 그에 걸맞게 새로운 대비책을 세워야겠지”
그리고 대대장이 시선을 낮춰 바라본 그곳에는, ‘이병 이건우’라는 글귀와 함께 여러 보고서가 펼쳐져 있었다.
대대 무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