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4화
“시발, 현철아. 나보고 그 말을 믿으라고?”
이병 이건우와 같은 4소대, 그 2분대의 분대장 박태진은 인상을 팍 쓰고 언성을 높였다.
“지, 진짭니다. 박 병장님.”
그리고 그런 박 병장의 바로 옆에서 쭈그러져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문현철.
바로 어제, 훈련 중임에도 막무가내로 건우에게 시비를 걸던 바로 그놈이었다.
“돼지 배터리가 2초 신기록을 세웠다고, 그것도 맨손 격투 훈련에서···. 그리고 뭐? 번개를 떨어뜨려? 너 돌았냐?”
“그, 그게 정말로 번갯불이 번쩍, 하고······.”
“현철아! 내가 지금 그런 얘기를 하는 게 아니잖아. 이해가 안 되냐? 내가 어렵게 말하는 거야?”
“죄···. 죄송합니다.”
사실, 그 광경을 목격한 인원은 많았기에 중대원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도 진위여부 따위는 금방 알아낼 수 있다.
하지만, 박 병장이 정말 화를 내는 이유는 실상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씨바, 야. 내가 네 1등에 얼마를 건 줄 알긴 하냐?”
그건 바로 군내 불법 도박.
봉급은 많지만, 눈 씻고 찾아봐도 그 돈을 사용할 구석은 없는 이 ‘헌터군’에서,
훈련과 교육, 심지어는 실전 전투의 성과까지 돈을 베팅하는 도박판으로 여기는 병사는 생각보다 많았다.
그리고 병장 박태진은 그런 도박판을 계획적으로 주도해 돈을 따길 생의 낙으로 여기는 사람이었다.
“다, 다음에는 정말 잘하겠습니다.”
돈에 목숨을 거는 박 병장의 평소 행태를 알기에 문현철은 연신 고개를 숙이며 앵무새처럼 죄송하다는 말만 주억거릴 뿐이었다.
“됐고···.”
이에 또다시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잠시 입을 다물었던 박태진.
“씨발 현철아. 요새 그거 너무 설치는 것 같지 않냐? 그런 변수가 설치고 다니면 이 형이 돈 벌기가 쬐금 곤란해져요. 알지?”
그가 갑자기 입을 열었을 때, 문현철은 움찔 떨었지만, 박태진의 표적이 다른 곳을 향한 것을 눈치채고는 덥석 아부를 떨기 시작했다.
“그 돼지 말씀이십니까?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요전번에 트레이너 소문도 그렇고, 갑자기 운동하는 것도 그렇고······. 한번 제 스킬로 손봐둘까요?”
문현철은 양손을 파리처럼 비벼가며 박태진이 듣고 싶어 할 법한 말만 골라 말했다.
“아니, 그 새끼 전기계열이잖아. 그리고 진짜 2.26초 기록을 세웠다면 탐지도 좀 할 테니까 네 은신도 그냥은 힘들고,”
“아······. 그, 그러면!”
“입 닥쳐봐. 나 생각하잖아.”
“예! 알겠습니다.”
거친 언행과 다혈질적인 성격과는 또 다르게, 예전부터 뒤에서 이상한 계략을 곧잘 세우는 박태진.
문현철은 그런 그가 또다시 이등병을 마음껏 구타하고도, 모든 처벌을 면할 수 있는 상황을 조성해주리라 믿고 입을 다물었다.
허나, 동시에 현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 눈부신 스파크와 굉음.
잠시 떠오르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해지고 오한이 일었지만, 문현철은 작게 고개를 저었다.
‘어제는 뭔가 잘못됐던 거겠지. 그 돼지가 그렇게 될 리가 없잖아.’
새롭게 떠오르는 모습은 정확히 저번 달, 현철의 한마디에 식은땀이나 흘리고 벌벌 떨던 이병 이건우의 모습이었다.
‘그래. 이랬던 놈이 그럴 리가 없지.’
문현철은 애써 더 옛 기억을 되새김질하며 어제 봤던 건우의 그 냉랭하고 침착한 눈빛을 잊어버리려 했다.
-짝!
“야. 시발. 그게 있었지.”
그때 박 병장은 손뼉을 치며 무언가 생각난 표정을 지었다.
“현철아. 판 깔아주면 잘할 자신 있냐?”
“예.”
“하여간 대답은 존나 잘해요. 야. 우리 소대 곧 5대기잖냐.”
“예. 그렇슴다.”
“그걸 이용하자.”
“...예?”
허나, 2분대원들은 모두 벙찐 표정이었고 박태진은 그런 분대원들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고 말했다.
“어휴. 병신들아, 잘 들어···.”
불순분자들의 작당 모의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5분대기 전투부대, 일명 5대기.
내가 속한 ‘대 게이트전담부대’, 흔히 헌터군이라 불리는 이 집단에서 5대기는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게이트는 예로부터 언제나 예측 불허의 현상이었기에 군은 항시 신속 대응팀을 꾸려두어야 했다.
그 때문에 5대기 인원들은 효율적 임무 수행을 위한 분대 편제 재확립을 진행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부족한 전투력 충당을 위해 병사를 분대끼리 주고받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저희는 1분대의 막내 이건우 이병을 5대기 기간만 탐지병으로 받으면 깔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 말이 2분대 병장, 박태진의 입에서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맨손 격투 훈련이 있고 며칠 뒤,
분대 편제를 위한 회의에서 박태진은 굳이 나를 지목해 2분대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2분대와 내가 소속된 1분대는 같은 4소대 소속이지만, 사이가 좋지 못했다.
주로 능력 있는 참군인 홍진웅과 갖은 핑계를 대며 후임들을 괴롭히려 드는 박태진의 사이가 나쁜 것이었지만, 그 불똥이 주로 나나 김장훈 일병에게 튀는 것이다.
“굳이 건우를 말입니까? 박태진 병장님?”
곧바로 같은 분대원들을 잘 챙기는 홍진웅 상병이 그리 물었지만, 박태진은 이를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청산유수로 말했다.
“5대기의 편제상 1분대와 2분대는 같은 수색 1조, 2조로 나뉠 텐데, 탐지계열만 둘인 1분대의 전투 능력이 기준에 미달할 수도 있다.”
“그, 그건···.”
“그래서 우리 김 상병을 주면서 보충하겠다는 말이다. 그래서 ‘굳이’ 이병을 데려가는 거고, 홍 상병. 이해했나?”
안 그래도 으르렁거리던 사이에 타 분대 막내를 데려가겠다는 건 역시나 꺼림칙한 일이었지만,
정작 결정을 내릴 소대장이 듣기에 박 병장의 주장과 근거는 충분히 타당한 이유로 들렸다는 것이 문제였다.
두 사람은 그 후로도 계속 좁혀지지 않는 의견을 주고받았지만,
-탁!
소대장은 무의미하게 길어지는 회의에 책상을 치며 말했다.
“그래. 소대장은 이번 박태진 병장의 의견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다. 이걸로 편제 재확립은 끝이다. 이견 있나?”
““없습니다!””
훈련과 실전에 있어서만큼은 장난스러운 분위기나 시간 허비를 극도로 싫어하는 남궁연 소위.
그런 그녀의 담백한 결정에 우리 1분대를 제외한 모두가 동의해 이걸로 다른 의견은 낼 수도 없게 되었다.
‘이번 5대기 동안 2분대 소속이 되는 건가.’
그러자 홍진웅 상병은 미안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고,
이와 대조되게 박태진과 문현철은 입꼬리가 움찔거리며 웃음을 참기 바빠 보였다.
당연히 예상했지만, 뭔가를 꾸미는 얼굴이었다.
“전 괜찮습니다. 홍진웅 상병님.”
나의 그런 말에도 홍진웅은 계속 미안한 표정이었지만······.
나는 정말로 괜찮았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지.’
괜찮은 게 아니라 이건 좋은 일이었다.
애초에 이런 상황 자체가 지금껏 내가 의도해왔던 것이었으니 말이다.
‘회귀 직후에는 트레이너, 그리고 일부러 더 눈에 띄는 행동과 기록을 세워왔다.’
그러니, 나의 튀는 행동에 자극을 받은 이들이 ‘정신교육’이니 ‘군기강’이니 철딱서니 없는 것을 운운하면서 내게 접근하는 건 충분히 예상한 일이었다.
숨을 쉬는 것처럼 ‘부조리’를 일삼는 놈들.
무의미한 ‘부조리’는 나의 자유 훈련을 억압할 것이고,
그럼 나는 말단 빌런조차 되지 못하는 저 오합지졸들로 인해 ‘히든 피스’를 얻을 기회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그런 어처구니가 없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러니 저들이 내게 뭔가 수작을 부리기 위해 분대 편제를 바꾼 이번 일은······.
오히려 내게 판을 깔아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건, 좋은 기회다.’
***
편제 개편과 대대장 보고를 마치고 생활관에 돌아온 이번 5대기 소대.
4소대의 인원들은 즉각적인 합류와 빠른 출동을 위해 5대기에게 주어지는, 구형 생활관에 모였다.
“와 씨바 구형 침상은 진짜 아닌데···.”
“이래서 5대기가 싫습니다.”
“좆같은 침상, 이거 6·25 때도 쓰던 침상이라던데 구라겠지?”
“제 수통도 제작연도도 1972년으로 되어있습니다. 진짜일 수도 있슴다.”
들어오자마자 간단하게 짐을 풀며 바로 떠들기 시작하는 2분대의 인원들,
아무래도 ‘헌터군’의 5대기는 다른 군부대와 달리 실전에 투입될 가능성이 커 경력이 부족한 일이병은 극도의 긴장에 휩싸이는 일도 많다.
“건우야 너무 긴장하고 있지 않아도 된다. 알겠지?”
짐을 풀자마자 바로 내 옆으로 다가와 그렇게 말해주는 홍진웅 상병.
역시, 참군인답게 그 누구보다 먼저 분대장의 역할을 수행했다.
“괜찮습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으레 이등병이 그러하듯 당차게 말했고, 그제야 아까부터 미안해하던 홍진웅의 얼굴이 좀 풀어지는 게 보였다.
그 후,
하루가 더 지났다.
5대기는 일과를 빠지는 대신 시도 때도 없이 출동훈련을 하므로 그다지 여유 있는 시간은 없었다.
다만,
“야. 돼지야. 야전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화학무기가 날아올 수 있단 거 너도 잘 알지?”
“예. 그렇습니다.”
아주 재미있어 미치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되지도 않는 개소리를 하는 문현철.
놈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때다 싶었는지 언성을 높이며 외쳤다.
“돼지 새끼야. 알면 뭐해! 가만히 있다가 죽을 거야? 방독면 안 쓰고 뭐 해 빨리 안 움직여?”
지금은 수색 2조만 따로 움직이는 시간이기에 홍진웅 상병도 없고 소대장도 없으니 이처럼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괴롭히려는 듯했다.
방독면을 쓰고 달리게 하다니.
심지어 나를 제외한 2분대원들은 쓰려는 시늉조차 하지도 않는다.
아무리 봐도 명백한 부조리였지만, 여긴 군대다.
군말 없이 이를 따라야 한다는 게 정말 머저리 같지만, 이곳은 계급이 대부분의 명령권을 차지하는 곳이 맞았다.
“가스, 가스, 가스!”
나는 야전교본에 맞춰 구호와 동작을 취하고는 그들의 말대로 방독면을 썼다.
“와 진짜 하네.”
“풉, 가스래 아 진짜 하하핫!”
“아이고 우리 홍 상병이 잘 가르쳐 놨나 보네. 혼자 구호도 외치고”
“지랄한다 지랄. 야 이건우 뭐해! 얼른 안 뛰어?”
곧장 비웃음이나 욕지거리 그리고 바보 취급 연달아 들려왔지만,
나는 신병이라는 입장에 걸맞게 정말로 그 상태로 달렸다.
만일 전생의 나였다면 숨이 꽉꽉 막혀오는 이 상황에 얼마 달리지 못하고 쓰러졌으리라.
그리고 이들은 흙바닥에 나뒹구는 나를 보며 또 강제로 일으켜 세우고, 비웃고를 반복했겠지.
-탓, 탓, 탓!
허나, 내 달리기는 전혀 느려지지 않았다.
얼굴에는 딱딱한 가죽이 들러붙고 방독면이 내 숨통을 틀어막아 숨도 잘 쉬어지지 않았지만,
지금의 내게는 호흡이 조금 모자란 것 따위는 문제가 되지 못했다.
‘5대기 특성상, 오버 클럭을 받는 게 불가능했지.’
때문에 정말 안타깝지만, 현재의 나는 이례적으로 상태 이상을 받지 않은 상태였다.
그동안은 숨 쉬는 것만으로도 격통에 시달렸던 나다.
이 정도 부조리는 장난 측에도 못 낀다.
뒤를 돌아보니 어벙한 표정의 2분대원들이 보였다.
방독면을 썼음에도 자신들보다 한참 빠르게 달려가니, 적잖게 놀란 눈치였다.
“하···. 시발 재미있네?”
회귀 후 처음으로 변한 나를 마주한 박태진은 이런 나를 보며 분한 얼굴로 그리 중얼거렸다.
그 후에도, 따로 떨어지는 순간만 오면 나만 방독면을 쓰게 되었다.
“코에 고춧가루 넣는 건 어떠심까.”
“아니면 쟤 먹을 밥만 땅에서 좀 굴리다가···.”
“병신아 땅에 왜 굴려, 목에서 잘 넘어가라고 그리스 좀 칠해서 주면 되는 거지.”
심지어 내가 별말 없이 부조리를 다 받아 넘기자,
고작 반나절 만에 대놓고 내 앞에서 어떻게 나를 괴롭힐지에 대한 회의까지 하고 자빠졌다.
‘참···.’
처음에는 나도 2분대에서 부조리를 주도하는 것이 박태진과 문현철뿐이리라 생각했는데,
직접 2분대에 와보니 더 가관이었다.
여기 인원은 하나같이 박태진과 똑같은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던 것이다.
-팟!
나는 그들에게는 들리지 않게 전기를 조작해 건빵 주머니에 들어있던 ‘녹음기’를 껐다.
증거 수집도 이 정도면 충분하고도 남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전기계열 각성자라 미동도 없이 전자기기를 조작할 수 있는데도,
그런 것은 생각도 않고 저런 대화로 시시덕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더는 참기 힘들었다.
‘그냥 여기서 할까······.’
잠시 고민했던 나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아니야.’
오늘은 저번 맨손 격투 훈련으로부터 정확히 일주일이 되는 날.
앞으로 조금만 더 참으면 되는데, 기껏 내 준비한 것을 그르칠 필요는 없었다.
이제 곧,
‘그 사건이 일어날 시간이다···!’
첫날의 5대기 훈련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2분대 인원들은 아직도 내일은 어떻게 나를 괴롭힐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낄낄거리기 바빴지만,
홍진웅 상병이 있는 1분대는 벌써 각 잡힌 5대기의 모습이었다.
고작 하루 훈련 차이로 이 정도라니···.
박태진을 제외한 2분대 인원들이 어째서 ‘첫 빌런 야습’에서 전멸한 것인지, 한눈에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고생했다. 소대장은 옆 생활관에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이만 취침에 들어간다. 알았나?”
““예!””
그렇게 5대기의 첫날은 아무 일 없이 무사히 지나가는 듯했다.
“비상신호가 접수됐습니다! 방향은 2대대 관활의 야산!”
“5대기 기상!”
“모두 기상!!”
갑작스러운 소음에 부스스 몸을 일으키는 4소대의 인원들.
하지만, 나는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시계를 보고 있었다.
인원들을 깨우려고 생활관 문을 쾅 차고 들어온 소대장이 놀랄 만큼 빠르게 말이다.
나는 비상사태의 급박함을 빌미로 소대장을 보자마자 옆 자리에서 자던 문현철의 침낭을 거칠게 잡아 올리며 뱃심을 담아 외쳤다.
“얼른 일어나셔야 합니다아아!!”
물론 낮에 있던 부조리에 대한 복수도 조금 겸해서.
“으, 으어어어! 씨, 씨발?”
귀청이 떨어지라 소리친 내 고함에 적잖게 놀라 몸을 부르르 떨면서도 반사적으로 욕지거리를 내뱉는 문현철.
눈을 뜨고 내 얼굴을 보자마자 잔뜩 화가 난 얼굴을 지으려 했지만,
“일어났으면 가만히 있지 말고 준비! 문 일병의 욕설은 나중에 따로 묻겠다. 준비하고 나와!”
실전 상황에 있어 그 누구보다 진지해지는 소대장의 일갈이 연속해서 들어오자 문현철은 허둥지둥 제정신을 못차렸다.
그렇게 5대기는 인근 분대중에서 가장 빨리 현장으로 출동했고,
야산 중턱까지 올라온 열 대의 경찰차와 2대대의 야전 트럭 그리고 선명하게 일렁이는 푸른 빛을 목격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봐도 참, 좆같구나······.’
저 하늘의 푸른 빛을 따다 그대로 땅에 떨어뜨린 듯한 광채.
대략 보아도 3층짜리 빌라는 족히 넘어 보이는 커다란 ‘게이트’였다.
야전 트럭에서 내린 우리는 대열에 맞춰 섰다.
“우리에게 지원 요청을 보낸 부대는 우리와 같은 연대의 2대대이며, 구조신호의 종류는 ‘던전 고립’ 신호였다고 한다!”
5대기 대열에 합류함과 동시에 깔끔하게 브리핑해버리는 소대장 남궁연.
과연 그녀의 엘리트다움은 이런 실전 현장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헐, 2대대면 여군부대 아닙니까?”
그러나, 이런 상황에마저 박 병장을 보며 문현철은 잡담을 했다.
“문현철! 실전 상황에서는 사소한 잡담도 영창 사유가 될 수 있다. 알고 있나?!”
“죄, 죄송합니다!”
바로 소대장의 일갈을 받고 쭈그러들었지만, 실제로 문현철의 말대로 2대대는 여군으로 이루어진 부대였다.
“흐으윽···!”
“으윽!?”
조금 걷다 보니 보이는 광경은 선명하게 흐르는 피와 터져 나오는 신음이 뒤엉킨 ‘작전 실패’의 현장이었다.
“끄으···.”
그걸 마주하고 나서야 인상을 찌푸리며 ‘실전’을 실감한 표정이 되는 문현철.
나는 그 한심한 모습에 작게 혀를 차고는 눈앞에 집중했다.
“출발한다.”
남궁연은 냉철하게 게이트 진입 신호 보냈고 우린, 그녀의 뒤를 따랐다.
<경고>
ㅡㅡㅡㅡㅡㅡㅡㅡ
*던전입장 뒤, 던전의 근원을 제거하지 않고 탈출하려면 큰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래도 던전에 입장하시겠습니까? Y/N
ㅡㅡㅡㅡㅡㅡㅡㅡ
참 오랜만에 보는 메시지.
나는 반사적으로 올라오는 혐오감을 참고는 묵묵히 Y를 눌렀다.
“제 1목표는 어디까지나 고립된 인원의 구출이다.”
-철컥!
입장 직후 마탄을 장전하며 동시에 소대의 우선순위, 전달받은 던전 지형, 몬스터의 종류 따위를 단번에 브리핑해버리는 남궁연 소위.
동굴형 던전의 내부는 마치 개미집과 같이 갈림길이 많았고,
그 때문에 우리는 훈련 때와 같이 수색 1조, 2조, 5대기 본부로 흩어져 구출 작전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 시발, 하필 우리 소대 때 출동이 걸리냐. 운도 지지리도 없어요. 진짜.”
중앙 통로를 맡은 수색 2조,
다시 말해 2분대의 인원들은 다른 분대와 좀 멀어진 것만으로 긴장을 풀고 잡담을 떨기 시작했다.
-치익!
심지어는 담뱃불에 불을 붙이기까지 했다.
“바, 박 병장님 아무리 그래도 던전에서 담배는···.”
유일하게 겁먹은 얼굴의 문현철만 그런 말을 했으나, 박태진은 오히려 껄껄 웃으며 말했다.
“병신아 어차피 이런 초입부는 2대대 애들이 이미 싹 쓸어놔서 아무것도 없어. 브리핑 때 뭐 들었냐. 여자애들은 심부에 고립돼 있다잖냐.”
“아아······.”
“그리고 우린 움직일 필요도 없어요. 왜냐고? 우리 분대에는 엘리트 1분대 출신의 탐지병이 있잖냐. 탐지병이.”
박태진 병장의 말에 자연스레 모이는 분대원들의 시선.
당연하게도 그 끝에는 내가 있었다.
“야. 이건우.”
“이병 이건우.”
“네가 탐지병이니까. 혼자 가서 탐색 다녀와. 고립된 인원들의 위치나 몬스터가 어디 숨어있는지까지 전부 파악해 오라고.”
설마설마했는데, 실전에서도 이딴 식으로 굴 줄이야.
어째서 ‘헌터군’ 소대 단위로 움직이는 건지 따위는 관심도 없는 눈치였다.
“잘 못 들었습니다.”
“못 듣기는 시발아. 너 탐지병이잖아. 혼자 가서 탐지하고 오라니까?”
이곳은 던전.
보통 이병에게 단독 작전을 맡기는 머저리 같은 지휘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평화에 찌든 이 시대라 할지라도, 사설 용병대도 아니고 군에서 이런 녀석이 득세하고 있다니···.
-턱!
나는 드디어 참을 필요가 없어졌으니 건빵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녹음기’를 손에 들고 그들의 눈앞에서 녹음 정지 버튼을 눌렀다.
“허어? 저거 녹음기 아님까?”
“녹음기? 하, 저 이병 새끼가 돌았나.”
“야. 미쳤냐? 그거 내놔.”
곧바로 발작 버튼이라도 눌린 듯 2분대원들은 길길이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고, 나는 어벙한 신병이 아닌 대항군의 장교, 12년 차 헌터로서 무겁게 말했다.
“너희는 정말 구제 불능의 쓰레기들이구나.”
“뭐, 시발?”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수많은 배신자들의 형상.
-콰득.
자연스레, 치가 떨려왔다.
격앙된 감정은 그 즉시 내 몸에 내장돼있던 ‘생체전기’를 자극했다.
-파직! 파지지지직!
“그리고 쓰레기에게는 교육이 필요하지.”
좀, 많이 따끔한 교육이.
지옥에서 돌아왔다고 하면, 믿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