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2화
날밤을 새웠다.
하룻밤 내내 나는 앞으로 있을 사건이나 꼭 얻어야 할 히든 피스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자잘한 사건·사고는 제외했다.
그래서 굵직굵직한 사건들만 정리했는데도 이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빠- 빠- 빠빠빠-
다행히도 어느 정도 정보의 갈무리가 끝나갈 때쯤 기상나팔이 울렸다.
“어? 막내야. 오늘은 일찍 일어났네?”
소리와 함께 몸을 탁 일으키고는 몸을 풀고 있는 덩치 큰 남자.
다른 분대원들은 몰라도 이 사람만큼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나와 함께 ‘대항군’으로 활약했던, 홍진웅 대령.
아마 이때 계급이······.
“편안한 밤 되셨습니까. 홍진웅 상병님”
나는 순간적으로 관물대에 붙여둔 계급장을 확인하고 힘있게 아침 인사를 건넸다.
“응?”
분명 아무 문제도 없을 텐데 홍진웅 상병은 묘한 장면을 목격한 사람처럼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뭐가 이상하기라도 했던 걸까.
“아니, 음. 건우가 오늘은 컨디션 좋은가 보네. 말도 안 더듬고.”
말을 더듬는다니.
아, 듣고 보니 생각이 난다.
이때의 나는 목소리도 작고, 말도 자주 더듬었으며 행동이 소극적이라 악질 선임들의 표적이 되곤 했었다.
그리고 그걸 뒤에서 커버쳐줬던 것이 바로 눈앞의 홍진웅 상병이고.
그는 나와 전생에 인연 깊은 편이었다.
“됐고, 얼른 커튼 좀 걷자.”
“예.”
“너희도 그만 자고 일어나! 나가자.”
이 시대에도 잘 없는 ‘참군인’ 스타일의 홍진웅은 상병임에도 가장 먼저 준비를 끝 맞췄고 우리 분대는 아침 점호를 위해 움직였다.
-전방을 향해 5초 함성 발사 실시!
국가가 와해된 이후,
하루하루가 워낙 급박해 대항군에서는 점호를 시행하지 않았었다.
이렇게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면서도 어디선가 빌런이 듣고 있진 않을까 걱정을 표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
아침 점호를 하고 있다 보니 새삼 내가 정말 과거로 돌아왔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애국가도, 복무 신조도, 조국 기도문도 대략 10년 만이다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리고 뜀 걸음은 딱 열 바퀴만 돌자.
“으으.”
“뭔 아침 댓바람부터 열 바퀴야”
“아 지랄이야 진짜···.”
당직 사령의 말을 들은 주위의 중대원들은 곧장 앓는 소리나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태평하기는······.’
아무 걱정 없이 체력을 단련할 수 있다는 이 환경 자체가 얼마나 값진 것인지, 그 지옥도를 보고 돌아온 나는 안다.
게다가 나는 나름 뜀 걸음을 좋아하는 편이었기에 오히려 마음 편히 달릴 기회가 생긴 것이 좋았다.
“헉, 헉,”
허나, 그런 내 생각은 참으로 무참히 박살 나고 말았는데···.
“흐억! 허억!”
고작 연병장 세 바퀴를 돌았을 무렵부터 숨이 턱턱 막혀오고 팔다리가 저릿저릿하기 시작하더니,
아홉 바퀴째에는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듯 후들거렸다.
히든 피스고 뭐고,
이 빌어먹을 몸뚱이부터 어떻게 해야지, 정말 안 되겠다.
***
21일,
바로 오늘을 기준으로 했을 때, ‘히든 피스’를 손에 쥘 수 있는 가장 빠른 기회는 정확히 3주 뒤에 찾아온다.
전생의 내가 캘랜더에 뭘 메모하는 습관이 없었다면 이토록 자세하기 기억하지는 못했겠지만······.
아무렴 어떤가.
알고 있다면 이제 활용할 일만 남은 거지.
“...그보다.”
일과를 끝내고 체력단련실(이하 체단실)에 내려가겠다고 했을 때, 홍진웅 상병의 대답이 압권이었다.
‘어······. 막내야. 혹시 무슨 고민 있니?’
운동하겠다고 했을 뿐인데 고민이 있냐니.
참, 전생의 내가 이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확실히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체단실에 들어가 나는 가장 먼저, 한 기기 앞에 섰다.
‘오랜만이네.’
마나 공학으로 개발된 전자동 훈련 지원 AI.
부대마다 꼭 하나씩은 있지만, 사실상 그 난이도가 너무 높아 잘 사용되지 않는 훈련기기, 일명 ‘트레이너’였다.
-위이이잉.
내가 주저 없이 전원 버튼을 누르자.
먼지 쌓여 있던 엔진이 작지 않은 소음을 발생시켰고 곧바로 이목이 쏠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야 저거 봐.”
“트레이너를 켰다고? 저 새끼 누구냐?”
“누구긴 신병이겠지. 어떤 놈이 돌았다고 트레이너를 켜.”
“심지어 뚱보놈이.”
푸하하핫.
비웃는 소리가 다 들려왔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앞으로 3주 내로 ‘그것들’을 쓰러뜨릴 수 있는 몸을 만드는 거지.
저런 인간들 하나하나를 신경 쓰는 게 아니었으니까.
-난이도를 설정하시겠습니까.
나는 들려오는 질문에 최고 난이도를 나타내는 ‘최상급’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반응은 더 격해졌다.
-최상급을 선택하셨습니다. 준비된 패턴을 로딩합니다.
“와, 저 뚱보새끼 아무것도 모르고 최상급을 하네.”
“푸하핫, 야. 너무 뭐라고 하진 마. 원래 신병이 깡이라도 있어야지”
“저거 두 대도 못 버틴다에 PX 5만원”
-로딩······ 52퍼센트···.
“두 대는 무슨, 하나도 못 해 최상급이잖아.”
“야! 좋은 말로 할 때 그거 꺼라. 너 다친다.”
“누구라도 저 새끼 한 대라도 버틴다에 걸 놈 없어? 역배가자. 역배!”
“있겠냐! 푸하핫. 너부터 걸던가.”
주변은 점점 더 소란스러워졌고, 이젠 대부분이 아예 자기 운동을 멈추고 이쪽을 보고 있는 것 같았지만···.
“쓰으읍. 후우우.”
나의 의식은 점차 눈앞의 트레이너,
그리고 나 자신에게로 고정되어갔다.
집중을 해내자 현재의 내 상태를 더더욱 잘 알 수 있었다.
[생체전기량]: 400Wh
[제어력]: 60Wh
내 능력의 근간이자 핵심인 ‘생체전기’.
현재 내 몸은 방출하고 흡수할 수 있는 전기량이 고작 400Wh에 불과했다.
심지어 제어력도 60Wh뿐이라,
한 번에 400Wh 전체를 뿜어내더라도 실제 전술적 운용이 가능한 전기량은 60Wh에 지나지 않았다.
60Wh라니.
당장 그걸로는 열을 발생시킬 수도,
금속 따위에 자성을 부여하기에도 너무 미약했다.
즉, 당장의 나는 비각성자나 다름이 없다.
분명, 지금 나를 쳐다보는 저들의 머리에는 그런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로딩······ 98퍼센트···.
호흡.
트레이너의 기계음에 나는 더 집중했다.
호흡으로 오르내리는 흉부.
그 중심에서부터 뜨겁게 일렁이는 줄기를 ‘제어’했다.
느릿하지만 완전한 집중으로 모여드는 손끝의 마나.
-로딩이 완료되었습니다.
로딩이 끝났다는 기계음과 거의 동시였다.
트레이너에 부착된 죽도가 정확히 내 머리를 노리고 날아든 것이, 그리고
-파직!
내 쏘아낸 전기가 빛의 속도로 뻗어가 트레이너의 검술 경로를 정확히 예측해낸 것이 말이다.
-후우웅!
가히 둔기를 휘둘렀다 해도 믿을 법한 묵직한 소음이었다.
허나, 나는 정말 미세한 움직임으로 그 강습을 피해냈다.
전생에도 내 생에 가장 먼저 터득했던 스킬, ‘위험감지’였다.
“허어?”
“피, 피한 거냐? 저놈이 최상급을···?”
“아니, 거의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트, 트레이너가 빗맞힌 거겠지.”
“그래 오류겠지. 군에서 쓰는 기계가 다 그렇지 뭐.”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
허나, 아직 내가 준비한 쇼는 시작하지도 않았다.
-휘이익!
뒤이어 트레이너로부터 날아드는 얇고 기다란 형태의 죽도.
아까보다 속도는 더 올랐으며 정면으로 맞았다간 그대로 베인 상처까지 남을 정도의 날카로운 일격이었지만,
-파직!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나는 반걸음만 옆으로 움직여 그것도 피했다.
“헐”
“저 새끼 신병 맞아?”
“마, 맞다니까 4소대 1분대에 그 뚱보!”
“근데···. 보고도 못 믿겠네.”
보통 트레이너의 ‘최상급’ 난이도는 상병급은 되어야 제대로 훈련에 써먹을 수 있다.
그것도 너무 인정사정없는 공격에 괜히 상처가 생길 수 있어 잘 쓰지도 않는데.
그것을 막아내는 것도 아니고 회피했으니, 놀라는 것은 당연했다.
-파직!
-후우우웅!
지금의 내게는 60V라 할지라도 운용할 수 있는 ‘생체전기’가 있고,
10년간의 끝없는 담금질로 숙달된 ‘마이크로 컨트롤’이라는 나만의 특기가 있다.
-파직!
-쐐에에엑!
숙달된 군인의 사격능력은 헌터의 스킬과도 같다던 전생 이준학 준장의 말처럼.
어제까지의 나는 주변에 한심한 뚱보, 철없는 신병일 뿐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파직!
-휘이익!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다르니까.
나는 하루라도 더 빨리. 강해질 것이다.
훈련이 끝났을 때,
정신 사납게 떠들고 비웃기 바쁘던 선임들은 모두 조용해져 있었다.
아니, 조용해졌다기보단 다들 입을 다무는 법을 까먹기라도 한 것인지.
하나같이 입만 떡 벌리고 경악한 표정으로 이쪽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
트레이너의 공격을 피하는 건 총 6번이 한계였다.
현시점, 내가 제대로 ‘제어’할 수 있는 60Wh의 전기량을 백분 활용한 결과였다.
“우선 60Wh만으로도 ‘위험감지’가 똑바로 작동하는지는 확인했다.”
지금 내 생체전기량의 총량은 400Wh, 만약 부족했던 20Wh만 더 있었어도 한 번은 더 피할 수 있었을 거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삽시간에 날아든 트레이너의 6연격.
허나, 실제 흘러간 시간으로 따지면 고작 15초 남짓에 불과한 잠깐이었다.
‘15초 만에······. 생체전기량이 바닥나다니.’
예상은 했지만, 역시 실전에서 활용할 수 있는 레벨은 아니었다.
15초 만에 극심한 피로감을 느끼는 몸도 몸이지만, 바닥을 드러낸 전기량은 더 심각한 문제였다.
‘또 전기량인가······.’
전생에도 최대 생체전기량은 항상 내 발목을 잡았었는데, 이번에도 역시 그게 문제였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군 수뇌부에서나 얻을 수 있는 내단이나 영약 따위가 있었지만···.
‘그런 걸 D급 헌터에 고작 병사 신분인 내게 순순히 내줄 리가 없다.’
......역시, 어쩔 수 없나.
정말 심하게 무식한 방법이긴 하지만, 내게는 단기간에 최대 전기량을 상승시킬 비책이 있었다.
리스크가 좀 크긴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스으윽,
고민을 끝마친 나는 아주 조용히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드르러엉!
-쿠우울.
마침 귀가 밝은 홍진웅 상병은 야간근무 초번초라 생활관이 없었다.
자세히 기억나는 건 아니지만, 내 기억이 올바르다면 다른 분대원들은 한번 잠들면 잘 일어나지 않는 성격이었다.
‘거참······.’
저녁 점호 시간에는 체단실에서 있었던 일로 그렇게 떠들어대며 수상하다는 시선으로 나를 쳐다봤으면서, 잠은 잘도 잔다.
“후우.”
나는 최대한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내 관물대에 있던 물통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향하는 곳은 생활관 TV.
정확히는 그 뒤에 늘어져 있는 전선과 콘센트 쪽이었다.
-주르륵.
충분히 물로 적신 손을 콘센트에 가져가 심호흡을 했다.
이 시점, 내 전기 내성의 단계는 분명 ‘최하’일 것이다.
전기 내성이 패시브 스킬로 내게 존재하는 이상, 나는 감전으로 죽을 걱정은 없는 존재이긴 했지만,
이 무식한 방식은 정말···.
정말로 끔찍하게 아프다.
‘최하’단계에서는 아직 고통까지 줄여주진 않으니까.
“하아아. 후우우우.”
살이 타들어 가고, 머릿속이 통째로 뒤틀리는 그 고통···.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치고 식은땀이 흘렀지만, 동시에 떠오르는 것들이 있었다.
대항군의 얼굴들.
장교시절 친했던 전우들.
서서히 뇌제라는 호칭으로 불리기 시작하던 시기, 나를 대신해 불구덩이에 몸을 던진 숭고한 동료들.
“그래.”
더한 것도 견뎌내지 않았나.
겨우 이런 일로 멈춰선다면 저승에서 나를 기다릴 동료들을 볼 낯이 없다.
“하자.”
심장으로부터 흘러나오는 파동.
그것을 손으로 모으는 ‘제어력’.
이윽고 손가락 끝에 맺힌 나의 생체전기는···.
콘센트 내부에 흘러넘치는 전류의 파도를 향해 나아갔다.
-파지지직!
생각보다 큰 소리가 났지만, 그런 것에 신경을 쏟을 틈은 없었다.
“으윽···!”
손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치솟는 미칠듯한 전류.
그것들은 마치 내 몸을 태워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전신의 근육을 자극해 당장 죽어버릴 것만 같았지만,
나의 스킬, ‘전기 내성’은 그마저도 허락지 않았다.
그저 내 몸을 최상급 전도체 삼아 휘몰아치는 전류의 파도.
격한 경련이 끝도 없이 밀어닥쳤다.
이윽고,
언제 기절했는지 내가 정신을 차리자.
정말 다행히도, 내 무모한 계획의 성공을 알리는 한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라 있었다.
<주의>
ㅡㅡㅡㅡㅡㅡㅡㅡ
*각성자 ‘이건우’는 한계치를 상회하는 전기량을 흡수했습니다.
*상태 이상, ‘오버 클럭’이 부여됩니다.
*상태 이상 해제까지 남은 시간: 17시간 20분.
ㅡㅡㅡㅡㅡㅡㅡㅡ
<각성자 ‘이건우’의 생체전기량이 상승합니다.>
[생체전기량]: 430Wh
[제어력]: 61Wh
한 번의 감전으로 얻은 전기량이 무려 30Wh. 심지어 제어력도 미세하지만 상승했다.
“끄으윽···!”
몸을 움직이려 하자. 다시금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의 고통이 밀려들었다.
지난 10년간 담금질한 정신력으로도 비명을 간신히 참아내는 게 고작일 정도로 엄청나게.
이 고통의 원인은 앞선 메시지에서 언급했던 상태 이상, ‘오버 클럭’이었다.
오버 클럭은, 때에 따라 다용도로 활용할 수도 있는 상태 이상이었다.
전기 능력자에게는 두 손, 두 발을 다 자르는 것이나 다름없을 만큼 치명적인 페널티.
‘전기 보충’이 불가능해지는 대신,
단순무식한 ‘전기 방출’의 출력은 몇 배로 증폭되는 효과가 붙어 있기 때문이었다.
허나, 까놓고 활용이고 자시고 하는 문제는 작금의 내가 직면한 과제가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정신을 놓았다간, 일순간에 내 정신을 저 멀리 날려버릴 듯 날뛰는 ‘고통’.
우선 원초적인 페널티를 어떻게 해야만 한다. 다른 건 그다음에 일이다.
‘최소 그 사건을 통해 첫 번째 히든 피스를 얻는다면 마땅한 방법을 모색할 수 있지만, 그 전까지는······. 그저 참는 수밖에.’
눈앞에 떠 있는 잔혹할 정도로 냉정한 메시지.
*상태 이상 해제까지 남은 시간: 17시간 14분.
즉, 난 앞으로 ‘오버 클럭’이 해제될 거라 명시된 17시간 동안에는 그냥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계속 고통을 맛보아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렇지만, 최소한 이런 몸으로도 이 성장방식이 가능하다는 걸 확실히 확인했다···!’
그러니······.
나는 앞으로 매일 밤 이걸 반복하면 되는 것이다.
피식,
미소가 지어졌다.
그건 자신의 스펙 상승에 대한 기쁨의 미소임과 동시에,
최소 3주간은 이 지옥과 계속 함께할 거라는 사실에 대한 ‘공포’.
그걸 잊기 위한 미소이기도 했다.
전류를 컨트롤 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