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체전기를 일깨워냈다.
[뇌제가 돌아왔다. 신병으로] -1화
휴거(携擧)라는 말이 있다.
예수가 세상에 재림할 때 구원받는 이들만을 공중으로 들어 올린다는 뜻의 이 말은,
생각보다 원래 종교를 믿던 사람들에게도 곧잘 사용되는 말이 아니었다.
게이트 전,
세상이 아직 상식으로 굴러가던 그 시기에는······.
“남겨진 우리는 속죄해야 합니다!”
“휴거 받은 이들을 본받아야 합니다. 하루빨리 속죄를, 하루빨리 구원을!”
본래 세상에 통용되던 상식이 무너지자 종교에 목을 매는 사람은 수없이 불어났고,
숱한 사이비 교주들과 멸망론, 음모론자들은 목소리를 키웠다.
“티켓을 사야 합니다!”
“천국으로 가는 휴거에는 이제 빈자리가 얼마 없단 말입니다!”
대놓고 천문학적인 금액에 면죄부나 천국행 티켓 따위를 팔아도 아무런 의심 없이 이를 믿는 사람들까지.
“...가관이네요.”
“멀쩡해 보이던 사회가 두 번이나 무너졌으니까···. 비각성자가 제정신을 유지하려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겠지.”
“아니 그래도···. 쯧.”
그래.
두 번,
세상을 뒤엎어버린 이 기묘한 시스템은 이미 한차례 수많은 사람을 집어삼켰지만.
헌터 사회의 정립과 함께 간신히 안정을 되찾아가던 세상을 또 한 번 망가뜨렸다.
그것도 마치 누군가가 기다렸다는 듯.
전 세계가 몬스터에 대한 경각심을 잊어버렸던 바로 그 타이밍에 말이다.
칙-!
“후우···.”
씁쓸하고 뜨거운 연기가 폐를 들쑤시자 그제야 숨을 쉬는 느낌이 났다.
“근무 중에는 금연 아니셨습니까?”
“근무는 무슨, 내일이면 우리 다 죽을지도 모르는데···. 한 대 정돈 괜찮잖아.”
“뇌제(雷帝)씩이나 되시는 분이 담배에 의존하시다니.”
좀 의외라는 듯 나를 바라보는 이서영 비서관.
그 익살스러운 표정 역시 오랜 전우나 다름없는 나를 살짝 놀리려는 것임을 알기에 그냥 쓰읍, 말없이 담배를 태우고는 말했다.
“나도 사람이다.”
“...그러네요. 그랬었죠.”
그랬었다니······.
어정쩡한 반응에 나는 잠시 눈살을 찌푸렸지만, 이내 별말 없이 우린 시선을 교환했고 약속 장소를 보았다.
발걸음을 떼기 직전, 이서영 비서관이 잠시 멈춰 서서 그녀답지 않게 측은한 눈빛으로 어딘가를 바라보았는데,
“구원을! 믿음을 가지는 이에게 구원을!”
“신께서 내려주신 기회입니다! 원죄를 씻어내고 휴거를 받아야 합니다!”
그녀의 시선 끝에는 아직도 무릎을 꿇고 양손을 치열하게 비벼가며 고개 숙인 많은 신도가 있었다.
“신은 정말로 없는 걸까요.”
당연하지만, 그녀는 이미 없다는 것을 확신하는 말투였다.
그럼에도 이런 허망한 질문을 던진 까닭은 존재하지도 않는 구원에 목을 매는 저들을 향한 연민이었을까.
“있었다면, 적어도 이 지경까지 오진 않았겠지.”
-치이익!
그리 대답하며 담뱃불을 끈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눈앞의 시뻘건 메시지를 보았다.
<경고>
ㅡㅡㅡㅡㅡㅡㅡㅡ
*제14구역 ‘대한민국’의 각성자들은 재앙의 잉태를 저지하지 못했습니다.
*재앙의 현현까지 남은 시간: 8시간 21분
<재앙으로부터 살아남으십시오.>
ㅡㅡㅡㅡㅡㅡㅡㅡ
“살아남으라니······.”
이젠 승리하라거나 막아내라고도 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남겨진 선택지는 오직 살아남기.
치졸하고 비참하더라도 살아남으라는 것.
그게 우리에게 남겨진 유일한 길이었다.
“가시죠. 준장님이 말씀하신 시간이 거의 다 됐습니다.”
어느새 감상에서 빠져나왔는지.
사무적인 표정으로 돌아온 비서관은 그리 말했고,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가자.”
종말 이후,
‘메시지’는 우리에게 있어 하나의 법칙과도 같았다.
변화한 세계의 안내자 혹은 관으로 향하는 길을 가르쳐 주는 사신일진 모르지만,
메시지를 따른 이들은 ‘생존’할 수 있었으니까.
허나, 그 절대적인 법칙과도 같았던 메시지를 우리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거슬러보려 한다.
***
*재앙의 출현까지 남은 시간: 0시간 52분
피로 그린 것 같은 메시지가 허공에 부유한다.
그 밑,
모노리스와도 같이 새카만 장벽 앞에 선 300명도 채 되지 않는 각성자들.
그들의 표정은 각양각색이었지만, 시선은 한곳에 모여 있었다.
“들어라!”
웅장함을 넘어 웅대한 목청의 소유자가 입을 열었다.
한 국가가 아비규환 상태에 접어들었음에도 침착하게 대항군을 설립해낸 남자.
이준학 준장이었다.
“우선, 도주를 택한다는 선택지가 분명히 있었음에도 대항군 전원. 이곳에 모여준 것에 진심으로 감사를 표한다!”
딱딱한 말투와 험상궂은 얼굴.
자칫 대화도 안 통하는 꽉 막힌 열혈 마초와 같은 사람으로 보일 수 있으나,
그는 실력보다는 인간성으로,
단순 스킬의 파급력보다는 냉철한 판단력으로 대항군의 대장직을 역임해낸 사람이었다.
그는 감사하다 말했지만,
사실 저 재앙인지 뭐시깽인지가 출현하면 어차피 한반도는 불지옥이 될 것이다.
삼면이 바다인 이 땅에서,
그리고 이미 멸망한 중국이 위에 떡하니 자리한 작금의 현실에 어차피 도망치는 자의 생은 길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싸우자.
차라리 죽더라도 지난 10여 년간 쌓아온 모든 것을 쏟아내고 죽자고,
우린 그리 결심해 여기 모였다.
“...그리고 분명 이곳에도 있겠지. 빌런이여. 들어라!”
한창 긴장을 고조시켜나가던 이준학 준장의 돌발적인 발언.
점차 죽음에 대해 결연한 태도를 보이기 시작하던 각성자들의 얼굴이 돌연 굳었다.
협회를 배신하고,
국가를 마비시키고,
군마저 와해시킨 더러운 배신자들.
“생존을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판 너희들일지라도, 인류 절멸의 순간에는 결국 우리와 같은 결말을 맞이할 것이다.”
대한민국에 ‘헌터’라 불리우는 사람은 많았다.
헌터들만으로 이루어진 군대가 따로 창설될 정도로.
그런데 어째서 이곳에 있는 이들은 300명조차 되지 않는 걸까.
답은 간단했다.
인류의 수호라는 숭고한 뜻을 가지고 몬스터와 치열하게 싸웠던 1세대들과 달리,
우리 대항군은 너무나 비참하게도 너무 큰 권력과 힘을 휘두르는 빌런들과 싸워야 했다.
애초에 우리가 ‘대항군’이라 불리는 이유 자체가 빌런에 대항하기 위해 모인 이들이었기 때문이고.
“오직 ‘생존’만을 갈구하는 너희들이기에 오히려 잘 알 것이라 믿는다. 지금 이 순간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생사의 갈림길임을.”
당장이라도 찢어 죽여 마땅한 쓰레기들이지만, 그 행동 원리는 언제나 자신의 ‘생존’이었다.
우리 대항군의 대장은 그런 버러지들마저 전력으로 이용하려 하는 것이다.
이윽고, 이준학 준장은 나란히 옆에 서 있던 내게 고개를 돌리더니, 강한 눈빛으로 응시하며 한쪽 팔을 하늘로 쭉 뻗고 외쳤다.
“상황은 절망적이나 우리에게는 인류의 창이라 불리우는 뇌제가 있다. 뇌제가 있는 한 우리에게 승산은 있다! 함께 싸우자. 그리고······. 함께 살아남는다! 알겠나!”
““예!””
큰 함성과 함께 고조되는 사기.
오늘 죽더라도 빌어먹을 몬스터를 하나라도 더 새카만 숯덩이로 태워버리고 죽자는 마음이 자연스레 샘솟았다.
이윽고,
시간은 흘러 저 하늘의 붉은 메시지가 움직였다.
<경고>
ㅡㅡㅡㅡㅡㅡㅡㅡ
*재앙이 현현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
“총공격!”
시퍼런 밤하늘과 새카만 모노리스 장벽.
재앙의 출현을 알리는 메시지와 동시에 울려 퍼진 이준학 준장의 목소리.
-쿠구구우웅!
그 순간,
장벽은 무너져내렸고,
내가 가장 먼저 쏘아 올린 거대한 빛줄기가 세상을 대낮처럼 밝게 물들였다.
***
문득, 정신은 각성했다.
머리가 너무 몽롱했기에 아직 꿈을 꾸는 듯했으나, 그렇지 않음을 안다.
-파직!
내 체내에 내장된 생체전기가 빛의 속도로 사방에 흩어져 이 일대의 모든 정보를 수집했기 때문이었다.
눈은 뜨지도 못했고 흩날리는 흙먼지에 코와 귀도 엉망진창이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적어도 나를 중심으로 10km 이내 생존한 ‘인간’이 아무도 없음을.
그러나, 저 멀리에서부터 천천히 다가오는 존재들이 있었다.
그건, ‘인간’과 흡사한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결코 인간이 아니었다.
오감보다도 정확한 나의 생체전기는 그것들을 이렇게 불렀다.
빌런이라고···.
끄륵.
헛웃음이 나왔다.
아니, 분명 나의 입은 움직였지만, 몸이 어떻게 된 것인지 무언가 끓는 소리만 작게 들려온다.
이윽고 어렵사리 눈을 뜨자.
나를 동그랗게 둘러싼 빌런들이 보였다.
10년이었다.
대항군을 설립하고 작금에 도달하기까지 무려 열 해.
그간 단 한 번도 배신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던 전우들 중에도 결국 빌런이 섞여 있던 것이다.
다만, 어제와 다른 것이 있다면··· 대항군 사이사이에 숨어있던 이 빌런들은 모두, ‘재앙의 현현’과 동시에 이성을 잃은 괴물이 되었다는 점이었다.
언제나 자신의 ‘생존’을 행동원칙의 제1번으로 삼아왔던 빌런들.
그들의 초점은 흐릿했고 입에는 피나 침 따위가 덕지덕지 묻어 인류의 존엄따위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누구보다 절실하게 생존을 부르짖던 빌런은 그렇게 최후의 생존자 중에서 가장 먼저 자아를 잃고 말았다.
‘빌런들은 종국에, 이렇게 이용만 당하고 버려질 운명이었군.’
어차피 이렇게 끝날 거면서······.
대체 왜 그렇게까지 아득바득 이를 갈며 같은 인류를 공격했다는 말인가.
‘고작 이딴, 허무한 끝을 위해서?’
숱한 의문과 함께 속에서 흘러넘치는 개탄스러움에 탄식하던 중,
흠칫···!
그때였다.
빌런들의 등 뒤에서 다가오는 참으로 거대한 기색.
흰 백발을 흩날리며 다가오는 거대한 존재.
“직접 마주하는 건 처음인가. 뇌제여.”
그 존재는 빙그르 웃으며 나의 이명을 친근하게 불렀다.
나는 초면이었음에도 바로 그것이, 메시지가 지긋지긋하게 말하던 ‘재앙’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얼마 남지 않은 생체전기들이 필사적으로 ‘위험감지’ 신호를 보내왔지만, 지금의 나는 미동조차 할 수가 없다.
“그대 하나 덕분에 이 작디 작은 14구역 하나를 차지하는 데 정말 오래도 걸렸어.”
그 존재가 언급하는 14구역은 메시지가 ‘대한민국’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넘버였다.
“그대의 의지를 따라서 하늘에서부터 소나기처럼 내리치던 그 수천 개의 벼락에는······. 솔직히 태고의 흡혈귀인 짐마저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지.”
핏방울처럼 순수한, 붉은 눈동자로 날 바라보는 그 존재.
그것은 스스로를 ‘태고의 흡혈귀’라 했다.
그 말인즉슨, 지난 10년간 이 한국을 침략하고,
숱한 각성자를 유혹하고,
무고한 이들을 노예로 만들어 인류의 존엄을 농락했던 장본인이 바로 이놈이라는 의미였다.
-파직! 파지지직!
감정이 격해지자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나의 생체전기.
이미 바닥을 드러낸 줄 알았던 체내 전기가 지금도 줄줄 흐르고 있는 내 피를 증발시킬 듯 사방에 스파크를 튀겨댔다.
“흐흐흐흐, 하하하하하하! 그래. 그 얼굴이야! 짐의 권속을 불태우고 군단을 감전사시키고 사도마저 숯덩이로 만들던······. 그대의 그 얼굴이 너무도 보고 싶어서 미치는 줄 알았단 말이네! 하하, 하하하하!”
재앙이 깨어난 최후의 결전마저도,
우리 대항군을 허무하게 와해시킨 것은 등 뒤에서 날아든 창날, 즉 배신자들이었다.
미래를 예지한다는 소문마저 돌던 이준학 준장도,
빌런들 전부가 재앙의 현현과 동시에 의지가 없는 괴물이 되어버리는 것은 예견하지 못한 것이다.
‘믿어서는 안 됐다······!’
빌런에게 일말의 희망을 품었던 낙관론자 이준학 준장의 방식은 끝끝내 틀렸다.
‘역시, 전부···. 하나도 남김없이 죽여야 했던 거야!’
후회는 언제나 너무 늦는 것이지만, 나는 실핏줄을 터트려가며 땅을 치고 후회했다.
그리고 그런 나를 대놓고 비웃듯.
눈앞의 진조의 흡혈귀는 말했다.
“그토록 쉽게 남을 믿고, 너무도 간단히 스스로 생각하길 포기한 머저리가 되어주어서······. 짐은 정말이지 감사할 따름이라네. 뇌제여.”
치맛자락을 들어 올리고, 고개를 천천히 숙이며 마치 진심 어린 감사를 표하는 황녀의 자세를 취하는 흡혈귀.
그 감사의 표현이 진중하면 진중할수록 내게 돌아오는 건 숱한 모멸감과 끔찍한 허탈함 뿐이었다.
한 번만,
다시 한 번만 기회가 있다면···.
“그럼 잘 가게.”
‘난 결코, 남에게 등을 맡기지 않겠다!’
직후,
칼날보다도 흉측한 다섯 개의 손톱이 내 머리로 날아들었고,
나의 세상은 암전되었다.
<재앙, ‘태고의 흡혈귀’는 당신의 죽음에 크게 감동합니다.>
***
흐릿해져 가던 의식 속에서, 참 이질적이지만 나는 너무나 선명한 메시지를 목도했다.
그리고 든 생각은······.
“감동은 무슨 개 같은···. 어?!”
나도 모르게 웅얼거린 한 마디.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피로 범벅돼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하던 내 입에서는 아주 선명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에 놀라서 눈을 크게 뜨자 낯익은 천장이었다.
“...여긴.”
정말 머나먼 기억이었지만, 나는 이곳이 어디인지 곧장 파악할 수 있었다.
내 생의 몇 안 되는, 빌어먹을 추억으로 가득한 곳이었기 때문에.
“생활관이잖아···.”
내가 군 생활을 했던 바로 그곳이었다.
“말도 안 돼.”
그러나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입을 떡 벌리며 매트리스에서 몸을 일으키자 느껴지는 육중한 무게.
팔다리가 두꺼웠다.
부었나?
아니, 이건 그런 게 아니었다.
비단 팔다리만이 아니라 온몸에 덕지덕지 모래주머니라도 달아둔 듯, 전체적으로 무게감이 느껴졌다.
장교로서도 아니고 병사로 생활했던 생활관,
내 생에 단 한 번뿐이었던 비만 체형.
이 모든 정보가 말해주는 결론은 하나였다.
“신병 때로 돌아왔다는 건가···?!”
놀라움도 잠시, 10여 년간 착실히 담금질해왔던 이성은 금세 당혹감을 억눌렀다.
이윽고 내 입가에는 비릿한 미소가 맺혔고 앞서 당황했던 것과 반대로 이번에는 거대한 환희가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내가 신병이라는 건······.”
되돌아온 시간은 무려 12년.
이때의 나는 무력하지만, 그건 빌런들에게도 마찬가지인 이야기였다.
대체 어떻게 돌아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돌아왔다면 해야 할 일은 하나뿐이다.
-파직!
손끝에서 튀기는 작은 스파크.
나의 고양된 감각은 내 몸을 타고 흐르는 생체전기를 일깨워냈다.
“이번에야말로 진짜 뇌제가 되어주겠다.”
나는 자신의 성장을 두 배, 세 배로 가속할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히든 피스’를 모조리 알고 있으니까.
잊기 위한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