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새-51화 (51/62)

눈물을 마시는 새.

14. 셋은 부족하다 - 2

적대적인 공기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지만  칸비야 의장은 북부군의 진

중에 며칠 체류하겠다고 말했다. 그것은 시모그라쥬 수비군의 퇴각과 수

호자들의 퇴거를 보증하기 위해 스스로  볼모가 되겠다는 세련된 배려였

지만, 북부군의 병사들에게 또다시 혼란과  유혹을 선사하는 배려이기도

했다. 괄하이드는 거의 고민하지 않은 채 륜 페이에게 칸비야 고소리 의

장을 보호하도록 명령했다. 더 이상의 선택은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칸비야 고소리 의장은 아스화리탈의 발치에 앉은 채 그 거체를 안전하게

올려다볼 수 있는 드문 행운을 얻게 되었다.

그녀는 감탄하며 닐렀다.

[대단하구나. 이 용이 하늘치를 잡아먹는다는  이야기를 믿고 싶어지는

데.]

[퀴도부리타처럼 사랑한다면 모를까, 잡아먹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의

장님. 의장님께서는 하늘치를 목격하신 적이 없군요.]

[그래. 없었다.]

륜은 자신이 보았던 하늘치의  모습들에 대한 기억들을  의장에게 보냈

다. 칸비야는 또다시 감탄했다.

[그렇게 커?]

[하실 니름이 있으시면 듣겠습니다. 본격적인 대화로 곧장 들어가도 상

관없습니다.]

함께 긴 시간을 보낸 북부군의 장수들조차  익숙해지지 못한 륜의 예민

함은 칸비야를 당황시켰다. 륜은 시선을 약간 떨군 채 그녀가 이해할 때

까지 기다렸다. 칸비야는 겨우 이해했다.

[그러니까, 내가 조금 거론하기  어려운 이야기에 들어가기  앞서 다른

잡담들을 꺼내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는 것이구나?]

[그렇습니다.]

[정말 놀랍구나.]

륜이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올려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뭐? 놀랍다는 것-]

[아니오. 제가 당신의 니름을 오해할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안심

하시고 계시는군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칸비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아니냐?]

[맞습니다. 제가 의장님의 니름을 오해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의

장님 스스로가 자신을 오해하지 않는 이상은. 하지만, 사람들은 제 능력

의 본질에 대해 깨닫게 되면 보통은 입을 닫습니다. 우리 식으로 표현한

다면 정신을 닫는다고 해야겠군요. 의장님께서는 특이하시군요.]

[이 나이가 되도록 의장질을 하며 쓸데없는 니름들을 쏟아내며 얻게 것

이라곤, 두 사람 이상이 완전히 동의할 수  있는 니름 같은 것은 세상에

없다는 짜증스러운 결론이란다. 하지만  나는 오늘 처음으로  내 니름을

오해하지 않을, 그리고 오해한  척하지도 않을 사람을  만난 것 같은데.

그래서 단어의 의미 하나하나에 고심하며 니르려 애쓰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닌가. 내-]

[-생각이 맞습니다.]

칸비야는 정신적 웃음을 터뜨렸다. 륜은  노부인에 대해 나가들이 가지

게 되는 일반적인 경외감보다 약간 더 짙은 경이감으로 시모그라쥬의 평

의회 의장을 바라보았다.

칸비야는 웃음을 거두고 진지하게 닐렀다.

[단도직입적으로 묻지. 여신은 어디에 계신 거냐?]

[의장님의 추측이 맞습니다.]

짙은 실망감 - 단속되고 억제되었지만  - 이 칸비야로부터 흘러나왔다.

칸비야는 우울하게 닐렀다.

[반대의 대답을 몹시 원했다는 것을 니르지 않아도 아는 거지?]

[압니다.]

칸비야는 다시 아스화리탈을 올려다보았다.

[상식적으로 그런 대답밖에 있을 수  없었지. 우리들만큼이나 북부군도

여신의 해방을 원할 것은 분명한 일이야. 여신의 힘을 다루는 무서운 신

랑들 때문에. 그런 북부군이 곧장  하텐그라쥬로 향하고 있다면, 여신의

배신자가 누구인지 또한 분명해지지. 하지만  정말 그랬던 것이라니. 내

게 증거를 보여줄 수 있니?]

륜은 잠깐 생각한 끝에 하인샤 대사원에서  일어났던 일의 기억을 칸비

야에게 보내었다. 칸비야는 주의 깊게 그 기억들을 받아들였다. 그 기억

에는 칸비야가 알지 못하는 장소와 사람들,  그리고 감정들이 많이 포함

되어 있었고 그래서 륜은 몇 가지 간단한 해석을 덧붙였다. 칸비야는 알

게 된 사실들에 대해 고려했다.

[하텐그라쥬에서 수호자들이 신체를 붙잡은 것이군. 그건 누구지?]

[그건 저도 알지 못합니다. 심장탑에 있을 거라는 사실 외에는.]

[그렇군. 알았어. 여신의 구출자는 사실  북부군이었던 것이군. 우리의

구원자 역시.]

[북부군은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 그러는 겁니다.]

[길에서 돈을 주으려면 최소한 발 아래는  살펴야 한다지. 북부군이 돈

을 줍기 위해 그런 거라도, 덕분에 쓰러져있던 나가를 밟지 않았다면 고

마운 일이지.]

칸비야가 보여주는 이상한 활용에 륜은  미소를 머금었다. 칸비야 의장

은 계속 말했다.

[내가 중립을 결정한 이유 중에는  수호자가 의심스럽다는 생각도 포함

되어 있어. 아, 너는 이미 알겠구나.]

[압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스스로  니르거나 말하며 자기  생각을 정리

할, 혹은 스스로에게 찬성을 보낼 필요가  있다는 것도 압니다. 제가 이

미 아는 사실을 닐러 저를 귀찮게 하는 거라는 우려는 하지 않으셔도 됩

니다. 니르십시오.]

[정말 고맙군. 그렇다면 마음놓고 니르지. 시모그라쥬의 의원들은 페로

그라쥬와 악타그라쥬가 끝내 버티지  못하고 무너진 것  때문에 내 중립

결정에 찬성을 보냈지. 물론  내가 그렇게 유도했어.  하지만 내 본심은

조금 달랐지. 이미  닐렀듯이 나는 수호자들이  의심스러웠다. 배신자와

구원자의 역할이 사실은 알려진 것과 다르지  않을까 의심했던 거지. 그

래서 양자 모두에 대해 무관해지기로 했어.  내게 중요한 것은 시모그라

쥬니까. 그리고 이미 그런 결정을 내린  이상, 나는 북부군을 도와줄 수

도 없다.]

[그 니름을 하시는 이유를 압니다. 한계선  이남에서 중립 집단을 발견

한 것만으로도 이미 북부군의 불신자들은 놀라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들

에게 자신의 여신을 구하기 위해 발벗고 나서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는 것에 대해 마음 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보다 냉정해진 후 그들은 우리를  욕하겠지. 왜 자신들을 도와

주지 않느냐고. 나가들의 여신을  구출해주기 위해 온  자들을 도와주지

않는 거냐고.]

[북부군은 인실롭과 다릅니다.]

칸비야는 충격을 억누르기 위해 애썼다. 륜은 부드럽게 닐렀다.

[그 이름이 느껴지는군요. 그는 누구… 아, 네. 이제 알겠습니다. 그런

니름을 했던가요. 북부군 또한 도와주지 않으면 적이라는 사고 방식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니르기는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북부군은 지금 의장

님께서 걱정하시는 일은 저지르지 않을 겁니다. 북부군이 발벗고 도와주

지 않는 시모그라쥬의 태도에 실망을 느낀 나머지 공격을 감행하지 않을

까 하는 우려는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 자신이 니르는 것보다 더 정확하게 그녀의 걱정을 닐러주는 륜을 보

며 칸비야는 감탄했다.

[믿어도 되겠니? 지금 괄하이드 대장군은  시모그라쥬의 중립에 고마워

하는 것 같더군. 하지만 앞으로도 그럴까?]

[그들은 한계선 이남에서 지지세력을 얻는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한 채

왔습니다. 중립 선언에도 놀라는 그들을 보셨잖습니까.]

[그건 나가도 마찬가지야. 인실롭이 얼마나  놀라고 화를 냈는지는, 알

지?]

[네. 그러니 지지세력이 될  수 있으면서도 그러지  않는 시모그라쥬에

대해 화를 내는 북부군의 모습은,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칸비야는 고요한 눈으로 륜을 바라보았다.

[정말 고맙구나. 내 질문, 내 걱정 모두를 어떤 부채감도 느낄 필요 없

이 해결해주는 네 능력은 필시 용인의  능력이겠지. 하지만 도구는 도구

일 뿐이지. 한 자루의  사이커가 어떤 때는 누군가를  죽이는 칼이 되고

어떤 때는 누군가를 살리는 칼이 될 수 있는 것처럼. 그러니, 나는 용인

의 능력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 능력을  사용하는 륜 페이 너에게 고마워

하겠다. 고맙구나.]

륜 또한 칸비야를 마주보았다. 그녀의 진심을 오해할 수 없는 륜은, 그

렇기에 진심의 무서움 또한 예민하게 느꼈다.  가장 명백한 사실 앞에서

도 의심하고 주저할 수 있는 능력은  진실에의 접근을 막지만 동시에 진

실의 가혹함에서 사람을 보호한다. 륜에게는 그런 보호의 수단이 결여되

어 있었다.

륜은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다고 생각했다.

륜이 고개를 떨구는 것을 보며 칸비야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 때 누군

가가 그녀를 향해 말했다.

"네가 칸비야라는 그 여자냐?"

칸비야는 주의를 기울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인지 의아해 하며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런 사

소한 문제를 완전히 망각했다.

시우쇠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 보는 것이고 자기 소개를 받지도  않았지만 칸비야는 그것이 시우

쇠임을 알 수 있었다. 다른 것일  수가 없었다. 작열하는 화염을 뿜어내

며 시우쇠는 다시 말했다.

"질문했는데."

칸비야는 떨림을 억누르려는 시도를 포기하고 말했다.

"그렇습니다. 질문하시는 분은, 틀림없이 시우쇠님이시겠군요."

열기를 느낀 륜이 고개를  들었다. 시우쇠를 확인한 륜은  곧 칸비야와

시우쇠, 그리고 곁에 있던 아스화리탈까지도  놀라게 했다. 륜은 황급히

몸을 움직여 칸비야의 앞을 가로막았다.

어이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시우쇠가 말했다.

"그 여자 죽일 일은 없다. 륜 페이."

"그렇습니까?"

"그래."

"저는 당신이 유해의 폭포를 죽인 이유도 아직 모릅니다."

시우쇠는 불꽃으로 웃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화신은 손짓으로 륜

에게 비키라는 신호를 보냈다.  단순하고 어찌 보면  불량스럽기까지 한

동작이었지만, 그것은 신의 의지를 담고 있었다. 륜은 비늘을 세우며 옆

으로 물러났다. 칸비야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직접 뵈니 듣던 것보다 더 놀랍군요."

"너는 아직 나를 못 봤다. 앞으로도 그럴 테고."

정확한 의미를 알지 못했지만 칸비야는  시우쇠의 말을 이해했다. 그것

은 특이한 말이었다. 시우쇠는 그녀가 그  특이함에 대해 생각해볼 여유

를 주지 않은 채 말했다.

"너희 도시는 중립을 선언했다던데."

"그렇습니다."

"좋아. 부탁 하나 하지."

"무슨 부탁입니까?"

시우쇠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불꽃으로 그르릉거렸고 칸비야는 그것

이 위협이 아닌가 겁이 났다. 그녀의  두려움을 느낀 륜이 [생각을 정리

하시는 겁니다.]라고 닐러주어 칸비야는 겨우 안도했다.

"짐작이 안 가는군. 어떤 모습일지. 어쨌든 아마도 레콘일 테지. 이봐.

언젠가 너희 도시로 어떤 레콘이 찾아올 거다."

"레콘이라고요?"

"그래. 어떤 레콘일 거다. 화신이지."

륜이 놀라서 외쳤다.

"모든 이보다 낮은 여신!"

"맞아. 슬슬 도착할 거야."

시우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턱에서 불티가 튀어올랐다. 륜은 다급하

게 말했다.

"수탐자들이 성공한 겁니까? 어떻게 아십니까?"

"그렇게 될 거라는 것을 아니까."

륜은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도통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도무지

무슨 이야기인지 짐작할 수 없던 것은 칸비야 또한 마찬가지였지만 그녀

는 한 가지 사실에 대해서는 두려움을 느꼈다.

"또다른 화신이 저희 도시에 오시는 겁니까?"

"그래. 올 거야. 그 레콘이 오면, 내 말을 전해줘. 빛이 탄로났다."

"예?"

"그렇게 전하면 돼. 빛이 탄로났다. 너무 길어서 외울 수 없는 건 아니

겠지?"

농담처럼 말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시우쇠의  압박감은 사람을 질식시

킬 지경이었다. 칸비야는 황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시우쇠는 만족하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 거침없는 태도로 걸어갔다.

확 다가온 열기가 사라진 것은 시우쇠가  사라지고도 한참 뒤의 일이었

다. 칸비야는 중단했던 호흡을 겨우 내쉬며  비늘이 일어선 팔을 쓰다듬

었다.

[듣던 것 이상이구나. 륜 페이. 여신은 틀림없이 구출되실 것 같군.]

[예? 예. 예. 그럴 겁니다.]

륜을 만난 이후로 칸비야는 처음으로 륜의  예민하지 못한 모습을 보았

다. 그리고 그러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칸비야의 양해 속에서 륜

은 방해받지 않고 한참 동안 시우쇠가 사라진 방향만을 정신없이 바라볼

수 있었다. 하지만 용인의 어떤 능력으로도 륜은 시우쇠의 말이 무슨 뜻

인지 알 수 없었다.

칸비야가 북부군에 체류한지 사흘이 지났을  때, 륜은 시모그라쥬에 주

둔하고 있던 다섯 개 군단과 수호장군이 모두 하텐그라쥬 방향으로 떠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라수 규리하는  시모그라쥬를 무혈 통과하게 된

것에 대해 즐거워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상대해야 할  수호자들이 더

늘어난 것에 대해서는 우울한 낯빛을 띄었다.

그리고 북부군의 이동이 시작되었다.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기 위해 북부군은 시모그라쥬의 외곽을 통해 도시

를 우회했다. 나가의 도시에는 교외의 농장지대  같은 것이 없기에 그리

먼 길을 돌지는 않았고 우회는 반나절만에 종료되었다. 시모그라쥬 남쪽

20 킬로미터 지점에 도달했을 때 괄하이드 규리하는 북부군에게 야영 준

비를 명령했다. 그리고 그 때까지 북부군과  동행한 칸비야 고소리 의장

에게 다가갔다.

"의장님. 덕분에 서로에게 유익한 결과를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의장님

이 내린 어려운 용단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겠습니다."

칸비야 의장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무운을 바란다고 말하는  것은 아무래도 우습겠지요.  다만, 다음에는

보다 유쾌한 상황에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괄하이드는 또 만날 기회가 올지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별 내색

없이 감사를 표했다. 그 때 륜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대장군님. 제가 고소리  의장님을 시모그라쥬의  저택까지 모셔드리고

와도 되겠습니까."

라수가 불 맞은 고양이 같은 기세로 고개를  홱 돌렸다. 괄하이드는 난

처한 표정으로 칸비야와 륜을 번갈아 바라보았고 칸비야 또한 당혹했다.

륜이 설명했다.

"의장님처럼 지체 높으신 여인이 아무런  호위자도 없이 도시로 들어가

는 것은 그 품위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남자가 호위

를 해야 합니다. 그러니 제가 호위해드리고 오겠습니다."

"위험하지 않겠소? 저 도시에 이제 수호자는 없지만, 당신은 심장을 가

지고 있소."

"저는 예민합니다. 그리고 시모그라쥬의 시민들이  저를 해하여 지척에

있는 북부군을 불러들일 정도로 무지하지는 않을 겁니다. 위험은 없습니

다."

라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당신이 없어지면 떠나갔던 수호자들이 혹 되돌아올 경우 그것

을 감지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남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머지 않아 밤이 될 텐

데, 밤에 돌아오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 이곳에는 시우쇠님과 아스화

리탈이 남게 될 겁니다."

"아스화리탈을 놔두고 갈 거요?"

"예. 도시에 데리고 가기엔 덩치가 너무 크니까요. 도저히 예의도 아니

고."

괄하이드는 또다시 칸비야  의장과 륜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단호하게 말했다.

"좋소. 나는 나가의 예법에 대해서는  무지하오. 그러니 당신에게 얼마

의 시간이 필요한지는 모르겠소. 우리는 내일  아침 일출에 맞춰 출발할

거요. 그 때까지 돌아오길 바라오."

괄하이드는 그 때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출발  방향은 반대쪽이 될 거라

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륜은 말하지 않아도 들을 수 있으며, 칸비야 의

장에게 불쾌함을 줄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륜은 괄하이드와 라수, 그리

고 당황을 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장수들에게도 인사를 보낸 다음 칸비

야 의장과 함께 왔던 방향으로 출발했다.

그들의 모습이 사라지자마자 빌파 삼부자가 괄하이드에게 달려왔다. 대

장군 앞에 도달하자 코네도는 외치다시피 말했다.

"저희들이 공작님을 호위하겠습니다!"

"그대들이?"

"예. 공작님은 저희를 느낄 수 있으시겠지만  다른 나가들은 저희를 못

볼 겁니다. 저희들이 그 분을 따라다니며 호위하겠습니다."

괄하이드는 그것이 괜찮은 생각인지 고민했다.  그러나 라수가 먼저 말

했다.

"그럴 필요 없다."

"네?"

"그런 것이 필요했다면 공작께서 먼저 요청하셨을 거다. 혹 들통이라도

나는 경우 오히려 공작님의  처신이 곤란해진다. 첩자를  데려온 거라는

누명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르니. 그리고,  어차피 저 도시에서는 전부 니

름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을  텐데 누군가가 공작에게  죽이겠다고 외친다

하더라도 그대들이 알아들을 수는 없잖나."

"누군가가 불손한 마음을 먹고 다가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습니다."

"공작님은 그런 자의 접근을 그대들보다 훨씬 더  잘 알 수 있다. 그러

니 그냥 이곳에 있도록."

빌파 삼부자는 실망과 불안을 지우지  못한 얼굴로 밀림을 바라보았다.

다른 장수들도 몇 마디 거들었지만 라수는 그 모든 의견을 물리쳤다. 괄

하이드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두 사람만이  남게 되었을 때

입을 열었다.

"코네도의 제안도 괜찮은 것 같은데. 라수."

라수는 야영 준비를 하는 병사들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 아무 반응도 보

이지 않았다. 괄하이드는 라수가 듣지 못한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대답

하기 싫은 건지 알 수 없었다. 괄하이드가 한  번 더 말하려 했을 때 라

수가 말했다.

"코네도 빌파가 따라가면, 륜  페이는 물론 그의 존재를  깨달을 거야.

그리고 돌아와야 한다는 사실을 계속 일깨우게  되겠지. 나는 이것이 하

나의 시험이 되도록 하고 싶군."

"시험이라니?"

"륜은 그곳에 남을 수 있어. 동족들 곁에. 만약 더 이상 우리와 싸우는

것이 싫다면 말이지."

라수의 옆얼굴을 지긋이 바라보던 괄하이드가 말했다.

"잔인하군. 라수."

라수는 고개를 돌려 사촌형을 바라보았다.

"잔인하다?"

"라수. 물론 네가 나보다 훨씬 똑똑해. 네가 하면 무엇이든 쉬워보이는

것에 대해 나는 항상  감탄했어. 하지만 전쟁에 대해서라면  내가 좀 더

많이 경험했을 거다. 노병의 말을 한 번  들어봐. 너는 적과, 적이 될지

도 모르는 자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것 같아.  얼마 전 나는 극연왕이 남

긴 말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베미온 마립간이 육형제 탑에서 읽었던 내

용을 중얼거렸거든. 극연왕은 자기가 적에 대해서만 생각한 끝에 오라비

를 잃었다고 말하셨더군. 나는 그런 증상을 안다. 전쟁터에서는 살기 위

해 적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적을 죽이기 위해 살게 되는 병사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어. 그들은 자신이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살아남

을 방법을 지나치게 골몰한 끝에 그렇게 되어버리지. 하지만, 전투도 결

국 사는 방식의 하나야. 먹고 자는 것처럼  살기 위해 하는 다른 일들과

똑같아. 하지만 그걸 용맹이라고 부르면서, 병사들은 전투 그 자체를 목

적으로 바꿔버리지. 실제로 지휘관들은 그걸  충동질하기도 해. 나도 그

렇지. 엔거에서 내가 말했지. 적이 여기  있으니 그들은 너를 따라올 거

라고. 봐. 라수. 그들은 그렇게 했어."

라수는 가시 돋힌 말투로 말했다.

"형도 마찬가지 아냐? 형도 이 거창한 장례 행진의 일원이 되어 죽으러

가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나는 달라. 나는 이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에 이 길

로 온 거야. 적을 죽이기 위해 죽이는 것과 내가 살기 위해 죽이는 것은

겉모양만 같을 뿐 전혀 다른 일이야. 이 길의 끝에 죽음이 있겠지만, 그

건 내가 사는 방식이야.  왕의 변경백으로서 사는  방식이지. 그 때문에

나는 전쟁에 얽매어 있어도 전쟁에서 자유롭다."

"전쟁에 얽매어 있어도 전쟁에서 자유롭다고?"

"그래. 나는 자유롭기 때문에 옷에 단추를  주렁주렁 매달지도 않고 부

하의 목을 단검으로 찢어버리지도 않아. 그리고, 적이 될지 모른다는 의

심의 눈으로 동료를 바라보지도 않고."

라수는 고개를 숙인 채 한참 동안 침묵했다.

칸비야와 륜은 둔덕길을 따라 시모그라쥬로  향했다. 둔덕 옆으로 아름

다운 습지가 펼쳐져 있었다. 잎사귀 넓은  수상식물들 때문에 물은 상당

부분 가려져 있었지만 드러나 있는 수면은 비스듬히 드리우는 햇빛을 받

아 흩뿌려진 금편처럼 빛났다. 황혼의 하늘 아래 도요새가 습지 위를 한

가롭게 날아다녔다. 고마리와 여뀌를 떨게 만드는 가느다란 바람은 둔덕

길 가운데를 따라 걸어가던 두 사람에게 습지의 풍부한 향취를 퍼다날랐

다. 칸비야가 습지를 바라보며 닐렀다.

[륜 페이. 내가 호위자도 없이 처량하게 도시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 기

분 나빠했었니? 그랬던 기억은 없는데. 혹시 나도 모르게 그렇게 생각한

건가?]

[그런 적은 없으십니다. 그저 제 마음이 편하고자 하는 겁니다. 용단으

로써 도시를 지킨 당신이 호위자도  없이 도시에 돌아가신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괴로울 것 같은데. 나가들은  너를 '백안시'할 지도 몰라.  내 표현이

맞는 건가?]

[맞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상관없습니다. 저는 제가 한 일을 압니다.]

[분명히 너는 내가 아는 나가들 중에 가장 많은 나가를 죽인 사람이지.

하지만 그것은 여신을 구하기 위한 일이었지.]

륜은 대답하지 않았다. 습지 가운데에서 젖은 통나무가 반짝거렸다. 그

위에 똬리를 튼 뱀이 저물어 가는 태양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가서 너 자신을 변호하겠니? 내가 도와줄까?]

[아니오.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도 괜찮아?]

[괜찮습니다.]

[내 마음이 편하지 않구나.  여신의 구원자인 네가  나가살육자 취급을

당해야 하다니. 그건 옳은 일이 아니야.]

[나가살육자는 만나본 적이 있지요.]

[정말이야?]

[예. 무서운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이라고?]

[예. 어떤 인간입니다. 나가에 대해 누구보다 더 큰 증오를 가진.]

둔덕길이 끝나는 지점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그곳에 시모그라쥬가 석양

을 받으며 서있었다. 넓은 습지와 흩어진  수풀들 사이로 심장탑은 가느

다란 바늘처럼 보였다. 륜은 칸비야 의장을 쳐다보았다.

[그럴 리가 있냐니,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내가 그렇게 생각했니? 음. 그래.  이상한 일이야. 나가살육자의 이야

기는 아주 오래 전부터 전해내려온 이야기야.  내가 할머니께 그 이야기

를 들었던 것처럼, 내 할머니께서도 당신의  할머니에게 그 이야기를 들

었던 그런 이야기지. 하지만 인간이 그렇게 오래 살 수가 있나.]

륜은 약간 놀랐다. 칸비야의  지적은 그에게는 새로운  것이었다. 륜은

나가살육자의 이야기가 오래된  것이라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 그것이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는 명확하게 알지 못했다. 그것이 칸비야의 말대

로 몇 세대 전부터 계속되어온  이야기라면 케이건 드라카는 나가살육자

일 수 없다. 칸비야는 닐렀다.

[키탈저 사냥꾼처럼 대를 이어서 나가살육자라는 이름을 받는 건가?]

[글쎄요.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때 시모그라쥬의 모습은 이미 풍경의  일부에서 생활의 공간으로 바

뀌고 있었다. 도시를 바라본 칸비야는 그  사실을 깨닫고는 비늘을 약간

세웠다.

[벌써 다 왔군.  륜. 지금이라도 힘들  것 같다면 그냥  여기서 돌아가

렴.]

[저는 도시 내에서 필요가 되어드리기 위해 왔습니다. 들어가시죠.]

갈로텍이 말에서 떨어졌을 때 그것을 가장  먼저 깨달은 사람은 놀랍게

도 포로인 데오늬 달비였다.

대나무 군단의 군단병들은 데오늬 달비가 갑자기 달리기 시작해도 제지

하지 않게 된지 오래였다. 그래서 군단의 뒤편에 있어야 할 포로 데오늬

가 군단의 중간, 혹은 전위에서 발견되는 상황이 왕왕 발생해도  병사들

이 어떤 다급한 조처를 취하는 일은 없었다. 내버려두면  당황한 키베인

이  그녀를 데리러 달려오거나, 혹은  그녀 스스로 왔던 방향으로  다시

달려가 - 다가 넘어지 - 기 때문이다.

그 때 데오늬는 군단의 앞쪽에서 달리다가 숨이 턱에 닿아 쫓아온 키베

인에게 "습지입니다! 대수호자님!"이라는 대답을  하여 대수호자를 상당

한 지적 모험에 밀어넣고 있던 도중이었다.

"습지에서의 구보 속도가 궁금해진 겁니까?"

"누가 말에서 떨어졌습니다. 대수호자님."

"습지니까 누가 말에서 떨어져… 예?"

데오늬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달려갔다. 키베인은 또다시 그녀의 뒤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데오늬가 뒤쪽이  아니라 앞쪽으로 달려가는, 지

금까지와는 다른 상황에 군단병들은 놀랐다.  그리고 데오늬가 달려가는

방향을 보곤 기겁하며 사이커를 뽑아들었다.

데오늬는 무릎을 꿇은 채 땅바닥에  엎드린 대장군을 내려다보았다. 뒤

이어 도착한 대수호자는 놀란 표정으로  갈로텍과 데오늬를 번갈아 바라

보았다. 그 때 사이커를 뽑아든 수호장군들과 군단병들이 대수호자의 옆

을 지나쳐 달려갔다. 대수호자는 기겁하며 닐렀다.

[그만! 그만둬요!]

수호장군들과 군단병들은  다행히도 대수호자를  대장군만큼 존중했다.

그래서 데오늬를 향해 겨누어지려던 사이커는  허공에서 멈췄다. 데오늬

는 그런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갈로텍을 내려다보

고 있었다. 대수호자는 설명을 요구하는 병사들의 시선을 무시하며 그들

사이를 헤치고 데오늬와 갈로텍에게 다가갔다. 그가 몸을 구부리자 데오

늬가 말했다.

"이 분이 갑자기 낙마하셨습니다. 대수호자님."

"소리를 들은 것이군요. 알겠습니다. 제가 닐러보겠습니다. 기다리십시

오. 달비 부위."

[대장군? 대장군. 어떻게 된 겁니까? 왜 떨어지셨지요?]

대답 대신 괴로운 신음이 돌아왔다. 키베인은 갈로텍이 낙마 때문에 괴

로워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극도로 긴장하여 바라보는 시

선들에 거북함을 느끼며 키베인은 조심스럽게  갈로텍을 똑바로 눕혔다.

그리고 키베인은 비늘을 세웠다.

[이런, 허물벗기로군!]

그에게 집중되던 시선들의  성격이 바뀌었다. 보라크  군단장이 정신을

점잖게 유지하려 애쓰며 닐렀다.

[그렇군요. 비늘이 일어나고 있군요.]

좋은 상황 설명이라 하기도 어렵고 대안 제시는 절대로 아닌, 별 볼 일

없는 니름이었다. 대수호자는 고민하다가 문득  데오늬가 아직까지 걱정

스러운 얼굴로 주위의 나가들을 둘러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바로 그 때

키베인은 데오늬가 여자임을 떠올렸다. 그리고,  자신이 그런 사실을 떠

올릴 수 있다는 것에 대해 황당함 비슷한 감정까지 떠올렸다.

그러나 그의 입은 벌써 움직이고 있었다.

"달비 부위. 지금 대장군은 허물벗기를 하려 하고 있습니다."

"살갗이 벗겨지는 겁니까, 대수호자님?"

"그렇습니다. 당신이 좀 도와주면 좋겠는데요."

"제가 요리를 잘 한다는 것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대수호자님?"

완전히 멍해진 대수호자는 힘겹게 데오늬에게 질문했고, 가까스로 데오

늬가 매우 독창적인 상상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데오늬의 머리 속

에서 대수호자의 요청은 대략 다음과 같은 변화를 일으켰다. '나가가 허

물을 벗는다. - 도와달라고 했으니 누군가가  그 허물을 벗는 것을 도와

주는 것이다. - 그 나가는 아마도  박피전문가 등으로 불리는 사람일 것

이다. - 대나무 군단에는 그 박피전문가가 없는 것이다. - 그런데, 대신

인간 포로가 있다. - 인간은 요리를  해서 먹으니 동물의 껍질을 다루는

것에 익숙할 것이다. - 따라서 인간은  박피전문가의 대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요리를 잘 하는 데오늬 달비여, 도와주오.'

키베인은 어지러운 머리를 감싸쥐고 싶은 것을 참으며 말했다.

"놀라운 상상이지만, 아, 정말 놀랍군요. 그런데 우리에게는 그 박피전

문가라는 것이 없습니다. 허물은 자기가 알아서 벗습니다."

"그러면 제가 무엇을 도와드리면 됩니까, 대수호자님?"

"갈로텍에게 말을 걸어주세요."

데오늬는 멍한 표정으로 키베인을 바라보았다. 차츰, 그녀의 얼굴에 뚜

렷한 결심이 떠올랐다. 데오늬는 갈로텍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당당하

게 말했다.

"안녕! 잘 생긴 오빠. 저랑 놀아볼래요?"

"…달비 부위. 그게 아닙니다."

"아닙니까, 대수호자님?"

"그거 아마 유혹인 것 같은데, 그게 아닙니다.  그가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여인이 되어주십시오."

"아, 네! 알겠습니다. 대수호자님."

데오늬는 밝은 표정으로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갈로텍에게

말했다.

"이제야 밝히지만, 사실은 내가 네 어머니란다."

갈로텍이 혹 그런 반생물학적인  고백을 믿어주지 않을까  공상해 보던

키베인은, 자신이 데오늬에게 꽤 물들었음을 깨닫고는 두려움에 빠졌다.

다행히도, 혹은 불행히도 키베인은 자신의 발상을 - 최소한, 그것이 합

리적인 경우 - 쉽게 포기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대나무 군단 내의 여자

병사들 중 누구라도 데오늬의 대신이 될 수  있다. 동족이고 니를 수 있

으니 그 점에서는 데오늬보다 오히려 낫다.  하지만 키베인은 장점이 지

나치게 크다는 사실을 경계했다. 키베인은 갈로텍의 적이 누구인지 아직

몰랐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그 적이  같은 수호자의 일원이거나 대가문

의 일원인 어떤 여자일 수는 있어도  데오늬 달비일 가능성은 극히 적었

다. 게다가 데오늬는 대나무 군단의 나가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장점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키베인은 그것을 질문했고 긍정적인 대답

을 얻게 되었다. 데오늬는 말을 탈 줄 알았다.

그래서 키베인은 데오늬를 말에 태운 다음 갈로텍을 그 앞쪽에 앉혔다.

수호장군들은 당황하여 대수호자의  행동을 바라보았지만 그들  중 말을

탈 줄 아는 이는 없었기에 모두 잠자코 도와주었다. 간신히 갈로텍을 말

에 태운 키베인은 데오늬에게 계속 말을  걸라고 부탁했다. 쾌히 부탁을

받아들인 데오늬는 갈로텍에게 끊임없이 '모든 일이 잘 될 거다, 기운내

라, 그 대금 소리 괜찮았다, 노을이  하늘 가운데서부터 진다면 그 모습

이 어떨지 상상이 되냐' 등의 말을 쏟아내었다. 키베인은 청력에서 주의

를 배제한 후 보라크 군단장에게 질문했다.

[점잖게 일을 치르려면 가까운 도시로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시모그라

쥬가 이 근방이지요?]

[우리 앞쪽에 있습니다. 시모그라쥬의 중립 선언 덕분에 다행히 북부군

은 없을 겁니다.]

[뱀부리미를 통해 시모그라쥬로 연락을 보내세요.  북부군이 완전히 지

나갔는지 물어보고, 그리고 대장군이 급히 몸을  쉴 저택도 하나 수배하

라고 전하세요.]

보라크 군단장은 다시 행군할 것을 명령한 다음 수레를 향해 달려갔다.

대수호자는 말의 고삐를 쥐었다. 그리고 말의  고삐를 쥐는 일이 천하다

거나 하는 관념이 없는 수호장군들은  대수호자가 대장군을 잘 보살피는

것으로만 해석했다.

데오늬가 도대체 무슨 말을 저렇게 끊임없이  쏟아내고 있는 것인지 궁

금해진 키베인이 청력에 다시 주의를 기울였다가, 그녀가 대폭 생략해대

는 중간 과정을  더듬던 끝에 현기증이  나서 급히 그  주의를 배제했을

때, 보라크 군단장이 그들에게 돌아왔다.

[좀 웃기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연락을 받은 시모그라쥬의 수호자는 자

신이 시모그라쥬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있으며 지금 하텐그라쥬로 이동

하는 중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시모그라쥬의 고소리  의장은 완전한 중립

선언을 위해 도시 내의 수호자들도 모두  인실롭 군단장과 함께 보낸 모

양입니다. 어쨌든 저쪽의 수호자는 북부군이 그곳을 지나갔을 거라고 대

답하더군요.]

[그렇다면 몇 명의 걸음 빠른  병사들에게 소드락을 복용하고 시모그라

쥬로 달라가라고 하세요. 그들이 저택을 수배하도록.]

[알겠습니다.]

보라크 군단장은 다시 일을 처리하기  위해 떠나갔다. 대수호자는 다시

다른 병사에게 데오늬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당황하고 있을 북부

군 포로들에게 사실을 설명해주라는 명령을 내린  다음, 고요 속에서 생

각에 잠겼다.

키베인은 어쩌면 그들이 문전박대를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고소리 의장의 중립 선언이 수호자들마저  도시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라

면, 분명히 대나무 군단과 그 수호장군들의  도시 진입을 달가워하지 않

을 수도 있었다. 어쩌면 수호자 갈로텍을 도시 내에 수용하는 것마저 거

부할지 모른다. 그 가정에 대한 대처 방안을 고민해 보던 키베인은 결국

대장군이 아니라 허물벗기를 하러 찾아온  남자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해

석해달라고 조르기로 결정했다.

마침내 야트막한 야산에 선 그들이 산  아래로 시모그라쥬의 모습을 보

게 되었을 때 먼저 출발했던 병사들이  그들에게 돌아왔다. 그들은 키베

인이 우려하던 대답을 가지고 돌아왔다. 시모그라쥬는 중립 선언을 엄정

히 준수하기 위해 어떤 나가 병력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대답을 보내어

왔다. 보라크 군단장을 비롯한 수호장군들이 거센 분노를 보였지만 키베

인은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보라크 군단장. 군단과 함께 이곳에서 대기하십시오.]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대수호자님?]

[제가 달비 부위와 함께 대장군을 모시고  가겠습니다. 저는 신명을 사

용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갈로텍 대장군 또한  짝을 찾아볼 수 없는 영

웅이지만 지금은 병력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달비 부위 또한 나가

의 병력이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 세 사람은 시모그라쥬가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나가의 병력이라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 세 사람이 여행

자의 자격으로 시모그라쥬에 들어가겠습니다. 시모그라쥬는 그것까지 거

부하지는 않을 겁니다. 칸비야 고소리 의장은 합리적인 인물이라고 들었

습니다.]

[어떻게 세 분만 보낼 수 있습니까.]

[별 일 없을 겁니다. 북부군은 이미 저곳을 지나갔으니까요. 그리고 저

는 키보렌의 대수호자잖습니까. 갈로텍 대장군이 허물벗기를 끝내는대로

돌아오겠습니다.]

보라크는 키베인의 끈덕진 설득에 결국 그 요청에 동의했다. 그는 군단

에게 야영 명령을 내리면서 동시에 언제든 돌격할 준비도 갖추라고 명령

했다. 키베인은 그들에게 잠깐  동안의 작별을 고한 다음  말을 끌고 산

아래로 내려갔다. 짧은 일몰이 소녀와  대수호자, 그리고 대장군을 비추

다가 사라졌다.

시모그라쥬에 들어섰을 때 칸비야 고소리 의장은 통행자가 별로 없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녀는 파괴적인  방법으로만 나가의 도시를  대할 수

있었던 륜이 좀 더 편하게 도시를 볼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륜의 눈

치를 살피던 칸비야는 결국 닐렀다.

[내가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 알지?]

륜은 빙긋 웃었다. 칸비야는 계속 닐렀다.

[그리고, 무엇 때문에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도?]

[파괴할 필요가 없는 고향을  제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으신 거

죠. 하지만 제 고향은 하텐그라쥬입니다.]

[이곳도 나가의 도시잖아.]

[하긴 니름 대로군요.  기분이 묘하다는 것을  인정하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예전에는 이곳 또한  사람들이 꿈을 키워가며  살아가는 도시라는

것을 몰랐다, 그래서 그토록 파괴할 수  있었다. 내 잘못을 뉘우친다'는

식의 고백을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마세요.  저는 그걸  알고 있었습니

다.]

[그렇겠군. 그러고보니 페로그라쥬와 악타그라쥬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군?]

[예. 파괴 대상으로만 보기 때문에  그 도시들의 아름다움이나 소중함,

그 시민들의 애정 따위는 무시하는… 그런  능력은 제게 없습니다. 저는

전부 압니다.]

[너를 동정해. 륜 페이.]

[괜찮습니다. 저는…]

륜 페이의 니름이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칸비야는 어리둥절하여 주

위를 둘러보았다. 낮의 열기를 아직 잃지 않은 건물들이 어둠 속에서 아

름답게 떠오르고 있었지만 위험스러운 장면은  보이지 않았고 그들을 예

의주시하는 통행자도 없었다. 칸비야는 륜을 돌아보았다.

[륜?]

[어떤 여행자들이 이 도시에 들어섰습니다.]

[그래? 그런데?]

[나가가 두 명입니다. 그리고 인간과 말이 포함되어 있군요.]

칸비야는 깜짝 놀랐다.

[말이라니? 그리고, 인간이라고?]

[예. 그런데 나가 중 한  명은 전에 한 번  만났던 수호자군요. 분명히

누님과 함께 있어야 할 텐데…!]

다음 순간 륜은 빠르게 걸어갔다. 칸비야는 당황하며 그 뒤를 따랐다.

데오늬 달비는 주변의 건물들을 감탄  속에서 바라보았다. 나가들의 도

시는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다만 조명이 거의  없기에 데오늬는 많은 부

분을 볼 수 없는 것에 애석해 했다. 반면,  그녀 자신은 말과 함께 나가

들에게 뚜렷하게 보였다. 데오늬는 듣지 못했지만 무수한 니름이 그들에

게 다가왔고 키베인은 그 모두에 정신없이 대답했다.

그 때 갑자기 갈로텍이  고개를 들어올렸다. 데오늬는  기뻤다. 그녀는

갈로텍이 드디어 자신의 말에 대답할 거라  믿었다. 하지만 갈로텍은 그

녀의 소망을 무시하며 전방을 응시했다.

[저게 뭐지?]

말고삐를 쥐고 걸어가던 키베인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대장군! 괜찮은 겁니까? 우리는 당신이 허물벗기를 할 수 있도록 시모

그라쥬에 들어온 겁니다. 인간과 말에 대해  꽤 놀라긴 했습니다만 그들

은 결국 당신이 허물벗기를 하는 동안  체류를 허락했습니다. 지금 괜찮

아 보이는 저택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도, 질문들

에 대해 해명하는 것도 이제 힘들어지려는 판국이군요.]

[저건… 저건…]

키베인은 그제야 앞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놀랐다. 그들의 앞쪽에는

심장을 가진 나가가 서있었다. 키베인은 그 심장을 뚜렷하게 볼 수 있었

다. 갈로텍은 비늘을 부딪치며 전방을 응시했다.

[나는 저 자를 알아.]

키베인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데오늬 또한 마찬가지였다. 데오늬는 반

갑게 외쳤다.

"공작님! 공작님이시군요!"

아직 뜨거운 석조 건물들 사이에서, 륜 페이는 뜨거운 심장을 불태우며

그들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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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드려놓고 보니 마지막 장면은 마카로니 웨스턴을 연상시키는군요.

좋은 밤 되세요.

제  목:눈물을 마시는 새.  14-3.                        관련자료:없음  [57066]

보낸이:이영도  (jin46   )  2002-08-04 01:53  조회:7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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