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새-49화 (49/62)

좋은 밤 되세요.

제  목:눈물을 마시는 새.  13-3.                        관련자료:없음  [56700]

보낸이:이영도  (jin46   )  2002-07-28 01:54  조회:7821

눈물을 마시는 새.

13. 혈루(血淚) - 3

꾸벅꾸벅 졸고 있던 사모를 깨운 것은 니름이었다. 그랬기에 사모는 정

신을 차리자마자 쉬크톨을 움켜쥐었다. 그녀에게  또다시 니름이 들려왔

다.

[대호왕 사모 페이.]

사모는 긴장했다. 대호왕이 곧  사모 페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자들은

북부군의 수뇌들 뿐이었고 그 중에서 니를 줄 아는 자는 륜 페이뿐이다.

하지만 그 니름은 륜의 것이 아니었다. 쉬크톨을  든 채 일어났을 때 사

모는 가까스로 그 조건에 해당되는 자를 하나 더 떠올렸다.

[유해의 폭포?]

사모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두억시니들의 회전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

리고 사모는 그들에게서 전해져오는 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옛날에는 그런 존재였지.]

[그렇다면 지금은 아니라는 건가?]

[지금은 아니야. 자신을 죽이는 신의 화신께서 나를 바꿔놓았지.]

사모는 뜨거운 피라미드를 바라보았다.

[시우쇠님이… 너를 불태운 건가?]

[그래.]

돌아오는 대답에는 슬픔이나 분노 같은 것이 섞여 있지 않았다. 사모는

쉬크톨을 다시 꽂아넣으며 질문했다.

[그런데, 그 사실에 대해 화내고 있는 것 같지는 않군. 괜찮은 거야?]

[나는 괜찮아. 시우쇠님은 내게 대답해주셨어.]

[대답? 두억시니가 왜 신을 잃었는지 설명해주셨다는 건가?]

[응. 하지만 그걸 네게 닐러줄 수는 없어.  시우쇠님이 그걸 원하지 않

으니까. 수수깨비도 그것을 무척 말하고 싶었을 거야. 그러니 그런 괴팍

한 장난을 친 것이겠지.  결국 모든 이보다 낮은  여신께서 그 어르신을

닥치게 해야 했지.]

사모는 유해의 폭포가 니르는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미안하지만 네 니름 중에 내가 모르는  단어들이 섞여 있는데. 수수깨

비가 뭐지?]

[수수깨비는 옛날 북부에  살았던 어르신이야. 미안하군.  이제 다시는

대화를 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아무 이야기나 하게 되었어.]

[다시는 대화할 수 없다고?]

[그래. 시우쇠님이 내게 남겨준 것은 단 한  번의 대화야. 그래서 나는

너를 기다렸어. 그 분이 내가 훔쳐쓰고 있던 것을 모두 가져가셨기 때문

에 네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어. 그런데, 무척 빨리 왔군.

나는 오랫동안 기다려야 될 거라고 생각했어. 너는 북부군과 시우쇠님을

뒤쫓아온 건가?]

유해의 폭포가 보내어오는  니름은 여전히 알아듣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 중 일부분은 사모를 놀라게 했다. 그래서 사모는 유해의 폭포의 질문

에 대답하기 전에 먼저 질문했다.

[단 한 번의 대화라니, 그게 무슨 니름이지?]

[니름 그대로야. 이 대화가 끝나면 나는 사라질 거야.]

[사라진다고?]

[정확하게 니르면 사라지는 것은 없어.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두억시

니는 여전히 남아있을 거야. 하지만 이  어두운 암흑 속에서 흘러내리며

너와 대화를 나누던 나는 사라질 거야.]

사모는 놀랐다.

[그렇다면 죽는 거잖아?]

[하긴 그렇군. 사람이  죽어도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  시체가 남으니

까.]

유해의 폭포는 그것이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사모는 그렇게 즐거워

할 수는 없었다.

[솔직히 잘 모르겠군. 만족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러면서 죽는 거라

면 그 죽음에 대해 슬퍼할 필요는 없겠지. 너는 만족하는 거야?]

되돌아온 대답은 사모를 놀라게 할 정도로 강렬했다.

[오오, 사모 페이. 나는  만족해. 더 이상  만족할 수 없을  만큼 만족

해!]

그리고 유해의 폭포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지금 나는 불쌍한  너희들에 대해 미칠 것  같은 동정심을 느

껴.]

사모는 잠시 아무 니름도 할 수 없었다.

사모 페이는 불쌍하다는 니름을 다른 자들도 아닌 두억시니에게서 듣는

다는 사실에 놀라움 밖에 느낄 수 없었다. 그녀가 아는 두억시니는 삶의

모든 기쁨을 박탈당한 자, 생을 아름답게 하는 어떤 규칙조차 구성할 수

없는 자, 신을 잃은 자들이다. 그런  자에게 동정을 받는다는 것은 사모

에겐 불쾌함보다 더 큰 놀라움을 선사했다.

꽤 긴 시간의 침묵 다음에 사모는 간신히 닐렀다.

[내 처지를 니르는 거야? 동생과 나를 얽어매고  있는 이 끔찍한 운명?

하지만, 네가 니르는 너희라는  단어는 아무래도 우리  남매를 가리키는

것 같지는 않은데.]

[물론 너와 네 동생에  대해서도 나는 동정심을 느껴.  네 동생과 네가

제발 행복해지기를 바래. 그리고 너희 남매를  동정하는 것은 세상에 오

직 나뿐이지. 아니, 그 대호와 용도 있군. 하지만 그들은 너희들을 동정

하지 않아.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원망해서는  안돼. 사모 페이. 아, 나

는 더 이상 니를 수가 없어. 하지만 모든 사실이 사실로 존재할 수 있게

될 때, 오랫동안 무시되었던 권리가 자신을  주장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셋이 하나를 상대하게 될 때, 사모. 너는 모든 것을 알게 될 거야. 내가

니른 너희가 누구인지도.]

갑자기 유해의 폭포가 보내어오는 니름에  묘한 느낌이 덧붙여졌다. 육

성을 사용하는 자들의 표현을 따른다면 숨죽여 속삭이는 것과 비슷한 방

식으로 유해의 폭포는 닐렀다.

[그리고, 사모 페이. 그들이 미처 예견하지 못했지만, 그 때 너에겐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야.]

[할 수 있는 일?]

[그래. 나는 그것을 닐러주기  위해 기다렸어. 내가 감히  이런 엄청난

일을 저지를 수 있는 것은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동정심 때문이

야. 사모 페이. 언젠가 때가 올 거야. 그 때가 오면 너는 알 수 있을 테

니 그 때가 언제인지는 니르지 않겠어. 다만  그 때가 오면 너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야 해.]

사모는 그 니름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고?]

[그래. 그걸 알아야 해. 그들은 나를 징벌할까?  그렇지 않을 거야. 나

는 사라질 테니. 하지만 이 이상 그들의  일에 참견하는 것도 부당한 일

이겠지. 사모 페이. 그 두억시니들은 끝까지 너를 따를 거야. 그리고 너

를 보호할 거야. 그 두억시니들은 너희 가엾은 남매에게 주는 내 유산이

될 거야.]

사모는 유해의 폭포가 '그 두억시니들'이라고 니른 것에 또다시 충격을

받았다. 유해의 폭포는 그렇게 표현하지 않았다. '나들'이라는 괴상하면

서도 묘하게 사실을 정확히 표현하는 단어를  사용했다. 하지만 이제 유

해의 폭포는 스물두 명의 두억시니들과 관련이 없어진, 객관적 거리감을

두는 표현을 사용했다. 유해의 폭포는 다시 닐러다.

[이제 사라져야겠어.]

[사라진다고? 잠깐. 나는 네 니름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어.]

[이해할 필요는 없어. 나는 오히려  네가 이해할까봐, 멍청한 이성으로

이해할까봐 무서워.]

사모는 더 이상 니를 수 없었다. 참으로 거대한 니름이 그녀를 향해 노

도처럼 쏟아져왔다.

[살아가, 제발. 살아가!]

거기에 애정이 있었다. 사모는 받아본 적  없는 거대한 애정에 놀랐다.

니름이 담아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애정과 관심이, 그리고 수단이 아

닌 목적인 호의가 있었다. 웃음, 즐거움, 사라지는 것에 대한 완전한 기

쁨. 사모는 이해할 수 없었다. 멍청한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러나 그녀에게 다가와 그녀를 온통  적셔버리는 환희는 사모마저도 즐거

움에 넘치게끔 만들었다. 유해의 폭포는 영원히 사라지지만 그것은 절대

로 슬픈 일이 아니었다. 정신적 홍소,  폭소라도 터뜨리고 싶은 기분 좋

은 소멸. 유해의 폭포는 마지막으로 농담처럼 닐렀다.

[제발, 자기 완성을 위해 살아간다는 자를 조심해… 하하하!]

사모는 커다란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지복에 찬 소멸이었다.

마루나래가 가볍게 울었다.

사모는 눈을 떠 주위를 둘러보았다.  두억시니들은 빙글빙글 도는 것을

멈춘 채 한쪽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마루나래  또한 그 쪽을

바라보며 긴장한 듯 어깨를 경직시키고 있었다.  사모는 그 쪽을 바라보

았다.

어둠 저편에서 뜨거움이 다가오고 있었다.  두드러지는 뜨거움은 세 개

였고 그 크기는 모두 달랐다. 그런데 사모에게 그 세 개의 서로 다른 뜨

거움은 익숙했다. 사모는 아직 채 가시지 않은 기쁨 속에서 또다른 기쁨

이 부풀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마침내 그들이  그녀 앞에 도달했고 마루

나래는 긴장을 풀었다.

"폐하?"

"케이건!"

숲 속에서 걸어나온  케이건은 의아하다는 얼굴로  사모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뒤편으로 비형과 나늬, 티나한의 모습이 보였다. 티나한과 비

형 또한 놀라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사모를 바라보았다. 케이건은 가볍게

주위를 둘러보고는 말했다.

"폐하의 종복 케이건 드라카가 문후를  여쭙습니다. 그런데 폐하, 이곳

은 키보렌입니까?"

사모는 그 질문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지만  당장은 그것에 대해 대답

하지 못했다. 그녀를 채우고 있는 기쁨의 여운은 짙었고, 그래서 사모는

앞으로 걸어갔다. 케이건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사모가 두 손을

내밀었을 때 케이건의 무표정이 약간 흔들렸지만 그 흔들림은 곧 사라졌

다. 사모는 말했다.

"다시 만나서 반가워."

케이건은 약간 지체하다가 차분하게 손을 내밀어  사모의 손을 마주 쥐

었다. 사모는 티나한과 비형과도 차례로  손을 마주잡았다. 비형은 웃으

며 말했다.

"폐하. 즐거워 보이시네요? 뭔가 좋은 일이 있으셨습니까?"

자신의 대답이 그들을 당황시킬 것을  짐작했지만, 사모는 대답할 수밖

에 없었다.

"그래. 조금 전에 친구 한 명이 죽었어."

그녀의 예상대로 되었다.

그들이 나눌 이야기는 대단히 많았다. 그리고 그곳은 그들이 겪어야 했

던 기묘한 이야기들을 나누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장소이기도 했

다.

별들이 흩뿌려진 열대의 청명한 밤은 불과 얼마 전까지 살을 에는 추위

의 세계를 떠나온 수탐자들에게 낯선 기분을 선사했다. 숲은, 밀림은 조

용한 꿈 속에 숨 쉬고 있었다. 도깨비는 일어나 커다란 도깨비불 하나를

만들어 하늘에 던졌다. 그러자 고대의 건물들이 빛 속에 되살아났다. 그

곳에서 그림자들이 피어나 까불거렸다.  그 모습은 마치  고대의 건물을

구성하는 돌들이 놀란 것처럼 보였다. 그들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들 만큼

빠른 시간의 단위를 사용하는,  거의 명멸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에 놀란 돌들이 빛과  그림자로 자신의 놀라움을  표현하는 것 같았

다. 목향에 젖은 바람은 부드러웠고 사위는 고요했다.

북부의 왕 사모 페이는 모든 이보다 낮은 여신에게 배례했다.

"거룩한 여신이여. 저희들의 부덕함으로 여신을 귀찮게 해드린 것을 진

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아기는 웃었다.

"나가의 여인이여. 그대가 걸어야  했던 길은 지나치게  험난했고 그대

어깨에 지워진 짐 또한  너무 무겁다. 불평하지  않는 여인이여. 그대는

누구를 대신하여 사과할 필요가  없다. 이 모든 일에  대해 사과할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저희 동포들이 발자국 없는 여신을 능멸했습니다."

"너희들은 그러기 어려울 거다."

사모는 옛기억을 떠올렸다.

"시우쇠님과 같은 말씀을 하시는군요. 그 분은 보다 거칠게 말씀하셨습

니다만."

"아아, 알고 있어. 세퀴라도라고 불리는 곳에서였지?"

"땅 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아시는 겁니까?  그렇다면, 여신이여.

한 가지 여쭈어도  될까요? 제 동생이  살아있는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

까?"

아기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대호왕을 바라보았다.

"그 아이는 용인의 감각과 여신의 힘, 그리고 고대에도 비슷한 예를 찾

기 힘든 강력한 용이라는 보호자와 함께 있지 않느냐."

"그리고 심장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구나. 네 동생은 살아있다."

사모의 얼굴이 환해졌다. 아기는 다시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에게  갈 것이다.  시우쇠가 그곳에  있으니. 티나

한?"

티나한은 다시 아기를 업었다. 멜빵을 고치던 티나한은 북부의 왕이 그

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것을 깨닫고는 그만 흥분해버렸다.

"왕! 왕! 너, 너 그러니까!"

"뭐?"

"그러니까, 제기랄! 야, 케이건! 나 대신 말 좀 해!"

케이건은 친절하게 티나한의 요구를 따랐다.

"보모나 유모에 관련된 농담은 티나한을 화나게 할 겁니다. 폐하."

사모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 않아. 티나한.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내 고향

에서 나는 아기를 가질 생각이 없는  여자로 알려져 있었지. 그런데, 나

는 지금 내 아기는 아니지만 아기를  데리고 그곳으로 돌아가는군. 그리

고 그 아기는 레콘이며, 모든 이보다  낮은 여신의 화신이시지. 참 기묘

하다고 생각했어."

티나한은 부리를 조금 벌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사모는 부드럽게 말했

다.

"내 아기는 아니지만, 티나한. 왕의 용감한 전사여. 그 아기를 잘 보살

펴."

티나한은 밝게 웃으며 그러겠노라 말하려 했다. 하지만 그 때 티나한은

비형이 소리 죽여 웃는  것을 보게 되었다. 문득  긴장하게 된 티나한은

곧 사모가 조금 전 보모 노릇을 잘 하라고 말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

가 자기조절이 불가능한 상태에  빠지기 직전, 사모는  쾌활한 동작으로

마루나래에 뛰어올랐다.

"가자!"

소메로 마케로우는 자신의 방에  앉아 자신을 괴롭히는  파국의 느낌을

분석해보려 애쓰고 있었다. 그리고 체념하는 기분 속에서 비아스의 대담

함이나 카린돌의 명석함이 자신에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람

들이 그녀를 어떻게 부르는지 알고 있었고 그 평가에 고마워하는 그녀였

지만, 그 순간 소메로는 덕 이외에 다른  것도 좀 가졌더라면 좋았을 거

라고 생각했다.

공회당이 건설된 이래로 가장 화려한 방법으로  입장한 비아스가 그 무

례함에 대해 어떤 처벌도 받지 않고 오히려 찬사를 받았을 때, 마케로우

가문의 일원이고 비아스의 언니인 소메로는  당연히 동생의 성공에 기뻐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를 엄습한 것은 파국의 예감

이었다. 소메로는 자신이 어떤 몹쓸 질투심에서  그런 무도한 감정을 품

게 된 것이 아닌가 의심해보았지만 그렇게 여기기엔 파국의 예감이 지나

치게 강했다. 그랬기에 소메로는, 거의  성과를 기대하지 않으면서도 다

시 한 번 제반상황들에 대해 검토해보았다.

그녀가 또다시 다 포기하고 싶은 기분을  느꼈을 때 남자들이 찾아왔다

는 전갈이 왔다. 소메로는  '방문자라면 방을 내주고  쉬도록 해주라'고

명령했지만 그 남자들은 소메로를 만나기  위해 찾아온 쥬어의 의용병이

라는 설명을 듣게 되었다. 소메로는 의아했다. 하지만 또다시 사고 활동

에 얽매이는 것이 두려웠기에 소메로는 일어나 응접실로 갔다.

응접실에서는 두 남자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어나려는 남자들에

게 손짓을 하여 도로 앉게 한 소메로는 그들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

한동안 니름없이 남자들을 바라보았다. 남자들은  그녀와 얼굴을 마주치

고 싶지 않다는, 하지만 동시에 얼굴을 마주치고 싶다는 듯한 이상한 기

색을 띄고 있었다. 소메로는 차분하게 닐렀다.

[이상한 일이군. 쥬어가 왜 나에게 따로 사람들을  보낸 거지? 나는 이

미 쥬어에게 마케로우 가문의 가주가 없다는  사실을 설명했어. 혹 마케

로우 가문에 대해 다른 것을 원한다면, 왜 비아스에게 니르지 않고 나를

찾아온 거지?]

두 남자는 서로를 잠시 쳐다보았다. 그 중 한 명이 닐렀다.

[마케로우. 저희들이 쥬어의 의용군에 속해  있긴 합니다만, 쥬어의 명

령 때문에 온 것은 아닙니다. 저희들은  자의로 마케로우님을 찾아온 것

입니다.]

[자의로? 설명해보거라.]

[먼저 옛기억을 더듬어보시길 부탁드립니다. 물론  이 저택을 스쳐지나

간 모든 남자들을 기억하실 수는 없으실 겁니다. 하지만 4년 전, 화리트

가 죽고 카린돌 마케로우께서 실종되셨을 때  이 집에 있었던 두 남자를

기억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소메로는 눈을 찌푸렸다. 그러나 곧 그녀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기억나! 너희들, 그 때 우리 집에 있었어! 이름이?]

[저는 카루입니다. 그리고 여기 제 동료는 스바치라고 합니다.]

소메로는 두 남자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옛기억들이 되살아나며 그녀

는 괴로웠던 과거를 바라보게 되었다. 모든 것은 그 날 일어났다.

전선에 나가지 않은 소메로에게 전쟁의  공포는 피상적인 것이었다. 하

지만 소메로에게 피부로 다가오는 고통은  충분했다. 가주가 실종되었고

두 명의 동생들이 사라졌다. 그리고 남은 한 명의 동생은 전선으로 떠났

다. 갑자기 가문을 떠맡게  된 소메로는, 모든  이들이 그것을 원했지만

가주처럼 행동할 수는 없었다. 그 때문에 그녀는 가주의 책임감을 두 배

로 느껴야 했다. 가주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실

종되었던 동생 중 한 명은 지척에  있는 심장탑에 냉동되어 있음이 밝혀

졌고 전선으로 떠났던 동생은 그녀가  사랑하는 사회를 뒤집어버리려 하

고 있었다. 그들 중 누구도 '마케로우  가문'이라는 소박한 것에 대해서

는 신경쓸 수도, 신경쓰지도 않았기에 그  가문은 일종의 퇴물, 쓰레기,

구차한 짐 같은 것이 되어 소메로에게  맡겨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

메로는 여전히 그것의 주인이 아니었다.

[너희들이 이 가문에 온 이후로 그 모든 일이 일어났지. 그래, 왜 돌아

온 거지?]

[죄송합니다만 육성으로 말해도 되겠습니까?]

소메로는 약간 불쾌함을 느꼈지만 선선히 대답했다.

"그렇게 해."

"감사합니다. 저희들은 나가 사회를 덮쳐오고 있는 파국에 대해 의논하

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소메로의 몸에서 비늘이 섰다. 청력에 집중하고 있던  두 남자는 그 소

리를 들었다. 소메로는 그것을 눕히려 애쓰며 말했다.

"무서운 말을 하는군. 어떤  파국이지? 나가들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더 큰 승리를 거두고  있고 전세계의 불신자들은  나가라는 이름에 벌벌

떨고 있어."

"수호자 계급과 대가문들이  대립을 넘어서 본격적인  격돌을 시작했고

모든 나가들의 목숨을 좌우할 수 있는 무서운 권한은 주인을 잃은 채 절

대로 그 권한을 제대로 사용할 리가  없는 자들의 사냥감이 되어 쫓기고

있습니다."

"…설명해봐."

카루는 쫓겨나지 않은 것에 안도하며 말했다.

"먼저, 비아스 마케로우가  최근에 저지른 실수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그녀는 심장 파괴에 대해 고발했습니다.  다시 없는 어리석은 짓입니다.

지금 대가문들은 비아스와 마찬가지로 그  힘을 이용하여 수호자들을 마

음대로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전일 근무 가능한

무보수 만능 하인인 신의  신화가 약간 변형되어  도래한 것에 불과합니

다. 생각 부족한 자들은 신은 만능이며  또한 우리를 사랑하니까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준다고 생각합니다.  가주들은 수호자들이 만

능이며 또한 그 심장을 틀어쥐면 그녀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줄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하지만 심장 적출은  22세 이상의 모든 나가들

이 받는 것입니다. 그 절대적인 규칙을 깬  사람은 제가 아는 한에는 한

명 밖에 없습니다."

"륜 페이."

"예. 그렇습니다. 그외의 다른 나가들은 모두 심장을 적출했습니다. 심

장병의 통제권을 얻는 자는 수호자들 뿐만이 아니라 모든 나가들을 위협

할 수 있습니다. 누가 그것을 가지게 될지 알 수 없지만 그것을 쥔 자는

키보렌에서 짝을 찾아볼 수 없는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됩니다. 지금 비아

스에게 협력하고 있는 가주들도 내심 모두 심장병의 통제권을 자신이 가

지길 원하고 있을 겁니다."

"그렇겠지. 그런데?"

"만일 그것이 성공한다면, 이후부터 누가 심장을 적출하겠습니까? 아무

도 그러려 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겠지. 하지만 강제로 그렇게 하게 할 수  있을 텐데. 네가 말한대

로 심장병의 통제권을 얻은  자는 무소불위의 힘을  가지니까 그 힘으로

어린 나가들을 강제로 적출하게 할 수  있어. '저 아이를 데려와서 심장

을 적출하라. 그러지 않으면 네  심장을 파괴하겠다'는 식이라면 가능하

지."

카루는 격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데, 그것이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아이가 아닙니다.  륜 페이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이미 성공했습니다."

"그건 특별한 예외…"

"그런 것이 아닙니다!"

카루는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소메로는  이 어처구니없는 무례에 격분

했지만 끝까지 들어보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고함을 지를 정도라면 뭔가

생각하고 있는 바가 있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카루는 말했다.

"우리들 사회는 엄연한 사실을 지나치게 무시하고 있습니다! 남자와 심

장 적출을 받지 않은 아이들은 아무런  권한도 가지고 있지 못하며 그래

서 당신들은 그들을 은근히 사람 축에도 들지 못하는,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장난감이나 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쥬

어를 생각해 보십시오! 륜 페이를 생각해 보십시오! 남자인 쥬어는 감히

당신들에게 남자의 가주 계승을 요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심

장 적출을 받지 않은 어린애인 륜 페이는 나가 군단의 최대의 적이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들은 그런 자들에 대해  신경쓰는 것 자체가 위엄

을 잃는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거론하지 않습니다. 엄연한 사실에 정면으

로 대응하는 대신 무시하는 겁니다! 남자와 어린애도 원한다면 얼마든지

당신들을 위협할 수 있습니다! 비에나가 같은  경우엔 심장을 적출한 당

신들 고귀한 여자들과 같은 약점도 없습니다!"

화가 치밀어오르는 것을 억누르며, 소메로는 이해심을 계속 불러일으켰

다. 카루의 말에는 분명히 새겨들을 구석이 있었다. 카루는 격한 호흡을

가눈 다음 다시 말했다.

"마케로우.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겁니다.  숲으로 도망치면 아무도 나가

를 잡을 수 없습니다.  우리들은 숲에서도 얼마든지  살 수 있으니까요.

점점 더 심장 적출을 받지 않은 비에나가가 늘어날 겁니다. 그리고 언젠

가 모든 자들이 그렇게  되겠지요. 사회구조는 붕괴되고  도시들은 텅텅

비게 될 겁니다. 모든 나가들이 야만의  시대로 돌아갈 겁니다. 그러면?

그 때 대확장 전쟁이 다시 벌어질 겁니다.  하지만 그 때는 나가들이 아

닌 불신자들에 의한 대확장 전쟁이겠지요. 곡물을 먹는 불신자들은 야만

인이 되어있는, 그리고 더 이상 불사의 몸을 가지고 있지도 않은 나가들

을 마음껏 유린할 겁니다.  우리들은 영웅왕 시대까지  후퇴해버릴 겁니

다. 그것이 나가의 파국입니다."

소메로는 한참 동안 침묵했다. 카루와  스바치는 조바심을 참기 어려웠

다. 하지만 이미 범한 무례가 카루를 걱정시키고 있었기에 카루는 더 이

상 무례하게 굴 수 없었다. 소메로가  보여주는 인내심은 놀라운 것이었

다.

겨우 소메로의 입이 열렸다.

"무서운 예언이군. 하지만 가능성이 완전히 없는 말은 아니군."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케로우."

"그래. 그런 이야기를 내게 한 것은 대책  또한 가지고 있기 때문일 거

라 생각되는군. 내 생각이  맞나? 그렇다면 그  대책에 대해 설명해주겠

나?"

카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엇다. 소메로에  대한 평을 믿었기에 찾아왔

지만 그는 솔직히 첫 번째 고비를 넘을  수 있을지 알기 어려웠다. 하지

만 이제 그 고비는 넘어갔다. 카루는 열성적으로 말했다.

"먼저, 여신이 풀려나야 합니다."

"여신이?"

"예. 수호자들이 뺏어간 그녀의  힘이 다시 그녀에게  되돌아가야 합니

다. 그렇게 되면 수호자들은 대가문의 가주들이  탐낼 만한 무기가 아니

게 됩니다. 그러면 그들은 다시 여신을  모시고 심장병을 관리하는 원래

의 역할로 돌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잠깐, 카루. 내가 제대로  이해를 했다면, 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심장병의 통제권을 얻고 싶어할 것 같은데. 그걸 가지면 모든 나

가들을 좌지우지할 수 있으니까. 최소한 수호자들에게 그런 힘을 넘겨줄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도 그것을 획득하기를 원할 것 같군. 그렇잖아?"

"맞습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십시오. 수호자들은  심장 파괴를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신의 힘도 없는 상태에서 수호자들이 함부로 심장

파괴를 휘두를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 이유는 철회하겠어. 하지만  그 통제권을 가지면 다

른 가주들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다른 가주가

그것을 가지게 될까봐 두려워서 자기가 가지려 나서게 되는 모든 가주들

을, 어떻게 말릴 생각이지?"

카루는 갑자기 빙긋 웃었다.  그리고 스바치 또한 비슷한  표정을 지었

다.

"거기에 대해서는 대책이 있습니다. 저는 진작 그런 방법이 사용되었어

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대책인지 말해봐."

"마케로우. 지금 심장탑에서는 세리스마가 농성 중입니다. 그런데 세리

스마는 왜 비아스 마케로우를 처벌하지 않을까요?"

"처벌이라고?"

"세리스마는 언제든지 비아스  마케로우의 심장병을 파괴할  수 있습니

다. 그러면 고약한  선동자를 제거하고 가주들을  두렵게 할  수 있습니

다."

소메로는 탄성을 내질렀다. 카루의 말대로였다.  소메로는 놀랍다는 듯

이 말했다.

"수호자들이 그토록이나 심장 파괴를 사용하는 것을 꺼리는 것이냐?"

"그렇지 않을 겁니다. 세리스마가 비아스 마케로우를 처벌하지 않는 것

은, 그럴 수 없어서일 겁니다."

"그럴 수 없다니, 왜 그렇지?"

"그녀의 심장병에는, 아마 먹칠이 되어 있을 겁니다."

소메로는 입을 벌린 채 두 사람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카루는 쾌활하게

말했다.

"예. 언젠가 저희들은 저 탑에 억류되었다가 탈출한 적이 있습니다. 하

지만 저희들은 탈출한 다음에도 심장 파괴를 당할까봐 두려웠습니다. 그

래서 저희들은 탈출하기 직전 닥치는대로  심장병의 이름을 지웠습니다.

마케로우. 저희들은 장차 심장 적출이 실시될  때 그런 절차가 덧붙여지

기를 원합니다. 아니, 아예 처음부터 심장병에 이름을 적지 않으면 되겠

군요. 그러면 누구도 심장 파괴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심

장 적출은 유지되면서 모든  자들이 원하는 위험한  힘은 사라지는 겁니

다."

소메로 마케로우가 행하는 사고의 중심에는 언제나 마케로우 가문이 있

었다. 그녀가 가장 관심있어 하는 것들은 가문의 복지, 평화, 안정이다.

그리고 사실 나가 여인들은 그보다 더 큰 규모의 일에 대해 생각할 필요

가 거의 없었다. 그들의 정치 단위는  도시이며 그 도시에서조차 가주들

의 회의 - 회의이지 일방적 집행이 아니라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 에

의해 간단히 처리될 수 있는 것 이상의 문제는 일어나지 않는다. 쇼자인

-테-쉬크톨이라는 무서운 해결책이 있는 상황  하에서 가문들이 정도 이

상의 대립을 일으키는 일은 없으며, 대립을  일으킬 사안조차 별로 존재

하지 않는다. 가문들이 필요로 하는  외부의 것이 있다면 남자들이지만,

거리로 나가서 남자들을 끌어들인 카린돌에게  쏟아진 악평과 사모 페이

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 없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남자들이 어느

가문을 방문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가문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들의 사회는 갈등의 요소가 배제된 사회였다.

하지만 지금 소메로는 전세계의  모든 나가들이 관련된  거대한 문제에

대해 참여할 것을 요구받고 있었다. 예전의  그녀였다면 오래 전에 물러

나버렸을 테지만, 공교롭게도 파국의 예감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던 소메

로는 그것에서 물러나는 대신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하지만 카루와 스바

치를 만족시킬 만한 접근 속도는 아니었다.

"재미있는 방법이군. 누구의 심장병인지 아무도 모른다면, 아무도 심장

파괴를 사용할 수 없겠군. 너희 말대로 진작 그런 방법이 사용되는 것이

마땅해. 왜 지금까지 그러지 않았을까."

"사용하지 않으려 조심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수호자들은 심장 파괴의

수단을 완전히 없애버리고 싶지는 않았던 거지요."

"그렇군. 그렇다면 너희들의 그 계획에 나는  어떤 식으로 포함되어 있

는 거지?"

스바치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마케로우. 당신은 마케로우 가문의 가주가 되셔야 합니다."

거의 분노를 일으키기 직전 소메로는  간신히 자신을 참아내었다. 그녀

는 싸늘하게 스바치를 바라보았다.

"참 묘한 일이군. 남자에게서 가문의 일에  대한 참견을 이렇게 정면으

로 당하고도 내가 아직 너의 입을 찢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이."

스바치는 약간 슬픈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공포를 떠올리지는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소메로는 참기  어려웠을 것이다. 소메로는 말했

다.

"계속해봐."

"감사합니다. 현재 마케로우 가문에는 가주가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이 가문의 최연장자입니다. 당신이 가주가 되는  것에는 아무 문제가 없

습니다. 그러면 비아스 마케로우는  당신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습니

다. 아무리 수호장군들이 우리 세계를 좌지우지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오

랜 전통이 4년 만에 무너지지는 않습니다.  당신이 가주가 되신다면, 당

신은 비아스에게 정찰대원이 되라고 명령하실 수도 있습니다. 사이커 한

자루 들고 밀림으로 떠나라고 할 수 있으신 거지요."

"그래서?"

"그러면 잠시 동안 심장탑에 대한 공격이 중단되겠지요. 그 때 저희 두

사람이 심장탑에 들어가서 여신을 구출하는 겁니다."

"흐음. 그리고?"

"먼저 심장탑의 세리스마가 당신에게 고마워하겠지요. 대가문과 수호자

들의 알력을 선동한 비아스 마케로우를 쫓아내신 거니. 그리고 나가들에

게 닥쳐온 위험을 일깨운  당신에게 가주들도 고마워할  겁니다. 그리고

이미 여신이 구출된 이상 아무 힘도  가지지 못하게 된 수호장군들이 돌

아오겠지요."

스바치는 말을 잠시 끊었다가 다시 말했다.

"그들에게 심장병의 관리를 맡기면 됩니다. 물론 앞으로는 심장병에 이

름을 표시할 수 없게 해야겠지요."

소메로는 스바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네가 하지 않은 말이 뭐지?"

"네?"

"수호장군들이 돌아오겠지요라고 말한 다음 네가  하지 않은 말이 있는

것 같군. 그게 뭐지?"

스바치는 갑자기 고개를 조금 돌렸다. 벽을 바라보던, 정확히 말하자면

어느 곳도 바라보지 않던 스바치는 그렇게 소메로를 외면한 채 말했다.

"갈로텍이 돌아온다면, 카린돌 마케로우의 영을  다시 카린돌 마케로우

의 육에게 돌려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군령자에

게서 한 명의 영만을 다시 빠져나오게 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는 잘 모

르겠습니다."

"여신을 구출하면서 동시에 내 동생도 살려낼 수 있을 거라는 말이군."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소메로는 과거의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고보니 4년 전, 너는 주로 카린돌과 함께 있었지. 그렇지?"

"…그렇습니다."

소메로는 스바치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은 마치 동생을 바라보는 것 같

은 시선이었다. 카루는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소

메로가 다시 말했다.

"나는 마케로우 가문의 가주가 될 수 없다."

카루는 고개를 들었고 스바치는 고개를 돌렸다. 소메로는 그 모습이 우

습다고 생각했다.

"마케로우 가문의 가주는 두세나 마케로우님이야. 그 분의 죽음이 확실

하지 않은 이상 내가 감히 그 분의 자리에 오를 수는 없어."

카루는 다급하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두세나  마케로우님이 무사하실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됩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예?"

"그렇게 생각한다고. 수호자들은  아마도 가주님을 해쳤을  거야. 그것

은, 틀림없이, 비아스의 요구에 의한 것이겠지."

소메로의 덕성스러운 얼굴에서 무서운 분노가 피어올랐다. 카루와 스바

치는 긴장했다. 하지만 소메로는 곧 차분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추측일 뿐이야.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이상 두세나 마

케로우님은 실종된 것이지 돌아가신 것이 아니야."

스바치는 불안한 얼굴로 말했다.

"마케로우. 하지만 수호자들이나 비아스 마케로우가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실이 될 수 없는데, 그들이 그것을 인정하겠습니까?"

"인정하는지 알아봐야지."

"무슨 말씀입니까?"

"수호자에게 물어봐야겠어."

스바치와 카루는 황당하다는  얼굴이 되었다. 소메로는  어떻게 그렇게

순진한 생각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는  말이 들려오는 것 같다고 생각

했다. 하지만 카루와 스바치는 소메로 마케로우를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그녀 또한 나가의 여인이었다.

"일어나. 두 사람. 나를 따라와."

두 사람은 엉거주춤 일어났다. 소메로는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걸

어갔다. 카루와 스바치는 황급히 그 뒤를 따랐다.

2층으로 올라간 소메로는 잠시 멈추지도 않은  채 걸어갔다. 그리고 어

느 방문 앞에 도달했을 때에야 걸음을 멈추고 두 사람을 돌아보았다. 옛

기억을 떠올린 스바치는 그곳이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  그의 가슴 한

구석이 저릿해졌다. 소메로는 스바치의 표정을 한번 확인한 다음 나직하

게 말했다.

"이곳은 카린돌의 방이야. 지금은 비아스가 쓰고 있지."

스바치는 격분을 숨기려 했지만 실패했다.  카루는 소메로의 주의를 자

신에게 돌리기 위해 황급히 말했다.

"왜지요? 자신의 방에 모든 연구시설이 있는 걸로 압니다만."

"그래. 비아스는 이곳에서 자지는 않아. 다른 용도로 사용하고 있지."

소메로는 품에서 열쇠 꾸러미를 꺼내었다. 가주가 아니었지만 그녀는 4

년 동안 이 저택의  주인 역할을 했었고 그래서  열쇠를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거침없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소메로를 따라 들어가려던 두  사람은 갑자기 확  풍겨오는 피비린내에

흠칫했다.

도저히 참기 어려운 탁한 공기가 복도로 흘러나왔다. 험한 일에 어지간

히 익숙해져 있는 두 사람조차도 그 안에서 풍겨나오는 공기에는 비늘이

서는 것을 느꼈다. 정신이 혼미해질 것 같은 냄새에 두 사람이 주춤거리

자 먼저 들어갔던 소메로가 말했다.

"빨리 들어와. 이 냄새를 온 저택에 퍼지게 하고 싶지는 않군."

부드러운 부탁이었지만 어쨌든 여자의 명령이었고 두 사람은 황급히 방

안으로 들어섰다. 소메로의 명령에 따라 카루는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몸

을 돌려 문을 닫았다.  그 때 카루는 스바치의  무시무시한 비명을 들었

다.

카루는 재빨리 몸을 돌렸다. 스바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당황하여

주먹을 움켜쥐었을 때 카루는 스바치가 무릎을 꿇은 것을 깨달았다.

"왜 그래, 스바치?"

스바치는 말하지도, 니르지도 못한 채 팔을  들었다. 그가 비늘이 뻣뻣

하게 선 팔로 가리키는 방향을 본 카루는 숨이  멎는 것 같은 충격을 느

꼈다.

그것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얼핏 보기에 그것은 의자에 꽁꽁 묶여 있는  나가 남자였다. 하지만 그

참혹한 꼴은 살아있는 해부도를 연상시켰다.  갈라진 배에서 쏟아져나온

내장은 무릎 위에서 썩고 있었고 그 내장 무더기에서는 구더기가 기어다

니고 있었다. 내장 무더기  아래의 두 다리는 각자  독특한 처지가 되어

있었다. 왼쪽 다리는 살을 발라내어 뼈만 남아있었고 그 뼈는 의자 다리

에 묶여 있었다. 그리고 오른쪽 다리는 모루 위에 올려져 있었고 망치로

수없이 내려친 듯 잘  다져져 있었다. 온몸에 있는  별의별 상처들을 다

거론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들을  정말 전율하게 한 것은

두 눈이었다. 그 자의 두  눈에는 안구가 없었다. 대신  꼭 맞는 굵기의

말뚝이 꽂혀 있었다. 그곳에서는 진득한 피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카루는 벽에 몸을 기댄 채 비늘을 부딪쳤다.  소메로는 꽉 잠긴 목소리

로 말했다.

"내 동생은 학자지. 그 애는 어떻게 하면  가장 큰 고통을 주는지 시험

하고 있어. 언젠가 수호자들에게 베풀어줄 신속하고 효과적인 처벌을 찾

아내기 위해서. 재생력이 좋은  나가가 시험 대상이니  재료로는 그만이

지. 어떤 짓을 하더라도  재생하니까. 나가의 몸은  썩지 않는다고 알고

있지? 여기 그 애가 올린 개가를 봐. 그 고명한 약술사가 거둔 부분적인

성공을. 내장이 썩고 있지. 오, 여신이여. 내가 왜 이런 꼴이 이 집안에

서 벌어지는 것을 좌시하고 있었습니까. 이토록 무서운 일을!"

카루는 마치 물 속으로 빠지는 사람 같았다.  계속해서 손으로 벽을 밀

어대며 카루는 간신히 말했다.

"그, 그 자는 누굽니까."

"직접 물어봐."

"살아있는 겁니까?"

"그러니까 실험을 하는 거지."

카루는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그 대신 무릎을 꿇고 있던 스바치가 힘

겹게 닐렀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놀랍게도 차분한 니름이 돌아왔다.

[수호자 보트린입니다.]

카루는 깜짝 놀라서 소메로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소메로는 그 꼴을 더

볼 수 없다는 듯이 몸을 돌려 벽을  향해 서있었다. 스바치가 다시 닐렀

다.

[우리는 스바치와 카루입니다. 우리를 기억합니까?]

[아아, 물론 잘 기억합니다. 우리에게 속았던 분들이지요?]

[그렇습니다. 도대체 어쩌다가 이런 일을  당하신 건지… 아니, 잠시만

요. 일단 당신을 풀어드리겠습니다.]

[그러지 마십시오.]

일어서서 걸어가려던 스바치는 멈춰섰다. 살아있는 해부도가 다시 닐렀

다.

[그러지 마십시오. 이건 제 벌입니다.]

[벌이라니오?]

[신부를 보호하지 않은 신랑이 받아야 할 벌입니다. 비아스는 처벌자로

서는 최고지요. 풍부한 상상력과 좋은 기술, 그리고 과감성을 가지고 있

습니다. 운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니름도 안됩니다! 이런  꼴을 당해서는  안됩니다. 풀어드리겠습니다.

재생하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러지 마십시오!]

강력한 니름에 머리가 아파올 정도였다.  스바치는 자신도 모르게 물러

났다. 보트린의 니름이 다시 부드러워졌다.

[당신들도 내게 이러고 싶지 않습니까? 나를 증오하지 않습니까?]

스바치는 할 니름이 없었다. 그는 냉동 장치  안에 갇혀 있는 카린돌을

생각했다. 카루가 닐렀다.

[여신을 가둔 당신들을 증오합니다. 하지만 이런 것을 원하지는 않습니

다. 우리는 여신을 풀어드리고 당신들이 그 분께 사과하기를 바랍니다.]

[글쎄요. 사람들의 마음은 미움으로 가득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보트린.]

보트린은 웃음에 가까운  니름을 보내어왔다. 카루는  주위를 둘러보며

닐렀다.

[왜 여신의 힘으로 저항하지 않는 겁니까?  당신은 신명을 가지고 있을

텐데요.]

[눈이 보이지 않아서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이미 닐렀다시피 이건 제

벌입니다.]

[당신이 벌을 받아야 한다면  그 벌을 주실 수  있는 것은 여신입니다!

저 미친 비아스가 아닙니다!]

[저는 그 분께 벌을 받을 자격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왕 오셨으니 부

탁 하나 해야겠습니다.]

보트린의 내장이 꿈틀거리며 비어져나왔다. 카루는 토하고 싶은 기분을

느꼈다. 보트린이 긴장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카린돌을 구출해 주십시오.]

[그렇게 할 겁니다. 먼저 당신을 구하고나서.]

[저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마십시오. 문제는 카린돌입니다.]

카루와 스바치는 왜 여신이라고  하지 않고 카린돌이라고  니르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보트린은 설명했다.

[카린돌은 임신했습니다.]

스바치의 몸에서 비늘이 사납게 부딪쳤다.

[저는 냉동 장치를 돌보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카린돌의

발 아래에서 비늘을 발견했습니다. 카린돌은  임신한 채 납치된 겁니다.

냉동 장치의 영향 때문인지 알의 성장 속도는 매우 느립니다.]

설명하던 보트린은 아예 자신의 기억을 모두 보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보트린이 보고 느낀 것을 모두 전달받았다.

[여신께서 카린돌의 육에 갇혀 계신 까닭은 그 육이 살아있으면서도 영

이 없기 때문입니다. 육 없는 영은 존재할 수 있지만 영 없는 육은 존재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임신이라는 것은 기묘한 문제입니다. 알껍질이

형성되기 전까지 알과 모체는 하나의 몸이라고 볼 수도 있고 두 개의 몸

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영은  분명히 두 개입니다. 만약 그것

이 하나의 육이라면, 임신  상태에서 여인은 하나의 육에  두 개의 영이

있는 셈입니다. 그 상황에서  카린돌의 영이 빠져나가더라도  영 하나가

남게 됩니다.]

[아기의 영!]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여신은 그  육에서 다시 빠져나오실  수 있습니

다. 힘은 그 분께 돌아갈 겁니다. 하지만 아직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

습니다.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모체와 알은 별도

의 육이라고 생각하는 것. 둘째, 아직  그 아기의 영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했다는 것. 전자라면 여신이 풀려날 방법은  카린돌을 꺼낸 다음 죽이

는 방법뿐입니다. 만약 후자라면, 아기의  영이 충분히 발달하면 여신은

풀려납니다. 그런데 그 경우 카린돌의 몸에는  아기의 영만이 남게 됩니

다. 어쩌면 사산이 일어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카린돌을 구해달라고

닐렀지만, 정확하게 니르자면 그 아기를 구해달라는 니름입니다.]

흘깃 스바치를 돌아본 카루는 그가 지독한 흥분 상태임을 확인했다. 카

루는 재빨리 닐렀다.

[가장 좋은 방법은-]

[예. 갈로텍에게서 카린돌의 영이 빠져나와 그녀의 육으로 돌아가는 방

법입니다.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만.]

[무슨 니름인지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저는 제 벌을 편히 받을 수 있겠군요.]

[안됩니다. 이런 일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보트린은 정신을 닫았다. 카루가 아무리  닐러도 그의 니름은 보트린에

게 전달되지 않았다. 보트린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그의 눈에서 끝없이

흘러나오는 혈루를 제외한다면, 그는 행복해 보이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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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터 13. '혈루(血淚)' 편 끝났습니다.

타자가 질문 메일에 답장하지 않는 경우, 그것들은 대개 독자분들의 상

상에 맡겨진 부분이거나 전개에 관련된 것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답장이

없으면 그렇게 생각해 주세요.

챕터 끝났으니 타자는 무덤으로 돌아갑니다. 좋은 밤 되세요.

제  목:눈물을 마시는 새.  14-1.                        관련자료:없음  [56966]

보낸이:이영도  (jin46   )  2002-08-02 00:47  조회:7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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