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새-48화 (48/62)

좋은 밤 되세요.

제  목:눈물을 마시는 새.  13-2.                        관련자료:없음  [56661]

보낸이:이영도  (jin46   )  2002-07-27 00:39  조회:6954

눈물을 마시는 새.

13. 혈루(血淚) - 2

비약에 가까운 단순화를 적용시킨다면  하늘치의 등에 오르는  것과 말

등에 오르는 것은 비슷한  일이다. 어쨌든 둘 다  살아있는 동물의 등에

오르는 것이니까. 그리고 그런 단순화는 오레놀과  다른 세 사람에게 아

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그들은 눈앞에 펼쳐진 전인미답의 풍경을 바라보며 넋을 잃었다.

언덕과 구릉. 매우 평범하고  편안한 단어들이지만, 그들  근처에 있는

언덕과 구릉은 모두 살아있는 생명체의 일부였다.  그래서 그 평범한 단

어의 느낌은 매우 기묘한  것으로 바뀌었다. 네 사람  모두 시선을 돌려

아래쪽에 있는 진짜 언덕과 산을 보는  것이 좋은 생각일 거라 여겼지만

그들 중 누구도 가장자리쪽으로는 다가가지 않았다. 점점 가팔라지는 하

늘치의 허리에서 갑자기 미끄러지는 일이  발생할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

다. 그래서, 별천지라고 해야 할 그  풍경 속에서 그들에게 익숙한 것은

그들 자신들 뿐이었다. 결과적으로 오레놀은 갑자기 동료들에 대한 관심

이 증대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오레놀은  그들의 이름을 아직 모른다

는 사실도 깨달았다. 오레놀의 질문에 사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보니 급하게 설치느라 통성명도 못했군요.  스님. 저는 킬소 펜

이라고 합니다."

"막타드 신뷰레입니다. 슈라도스 출신입니다."

"주키 네미입니다. 발케네에서 왔지요. 그리고 제 고향 풍습에 따라 하

늘치 유적의 유물을 훔쳐볼 작정입니다."

오레놀은 당황하여 주키  네미를 바라보았고 주키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제야 오레놀은 상대가 농담을 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통성명을 마친

네 남자는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별로 나아진  것은 없었다. 풍경은

여전히 압도적으로 이국적이었다. 결국 킬소 펜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올라오기 전에, 저는 일단  이곳에 발을 디디면  하늘치에게 말이라도

한 번 걸어보려고 작심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래가지고서야… 땅에

대고 말을 거는 기분일 것 같은데요. 스님. 움직이는 느낌이 있습니까?"

다른 세 사람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분명 하늘치는 느리게 움직이고 있

을 테지만 그들은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킬소는 어깨를 으쓱였

다.

"유적 쪽으로 가봐야겠지요?"

"그럽시다. 그런데 어느 쪽이지요?"

그들은 지느러미에 가까운 등쪽에  있었고 그곳의 전망은  그렇게 좋은

것이 되지 못했다. 또한 하늘치의 등  위는 완전한 평면이 아니었다. 생

명체이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하늘치의 등에는  구릉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합할 듯한 요철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들은  유적을 볼 수 없었다. 살

아있는 생명체의 등 위에서 길을 찾아  헤맨다는 사실에 그들은 다시 충

격을 받았다. 막타드 신뷰레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흐음. 특별한 경우는 아닙니다. 벼룩은 아마 개  털 속에서 어느 쪽이

머리가 있는 쪽인지 가끔 헷갈리겠지요.  제 기억이 맞다면 저쪽입니다.

저쪽에 지느러미가 있으니. 하지만 저 언덕,  아니, 육봉이라고 해야 하

나? 어쨌든 저 위로 올라가 보면 시야가 좀 더 확보될 것 같습니다."

방향이 정해지자 세 사람은 오레놀의  연을 신속하게 해체했다. 오레놀

이 보고 있는 가운데 세 사람은  연살을 구성하고 있는 막대기들을 뽑아

밧줄 사리에 끼웠다. 주키와 막타드가  그것을 어깨에 목도처럼 매었다.

그리고 킬소는 연을 구성하고 있던 천을 차곡차곡 접어 봇짐처럼 만들어

어깨에 매었다. 꽤나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그들을 보며 오레놀은 그들이

많은 시간을 준비했음을 알 수 있었다.  킬소는 남아있는 자질구레한 물

건들을 운반하기 좋게 묶어 오레놀에게 건넨 다음 일행을 출발시켰다.

하늘치의 몸 위를 걸어가며 오레놀은 계속  머리를 떠나지 않는 질문을

건네었다.

"그런데, 내려갈 때는 정말 밧줄 하나에 매달려 내려가는 겁니까?"

킬소는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스님. 방금 올라왔는데 벌써 내려갈  생각을 하십니까? 내려가는 것은

좀 천천히 해도 될 겁니다. 일단 아래쪽에서 몇 사람이 보급품을 가지고

올라올 겁니다. 우리가 끌어올려야 하지요.  처음에는 한 사람이 또다른

밧줄을 가지고 올라올  겁니다. 그리고 차차  다음 단계로  넘어갈 겁니

다."

오레놀은 그제야 롭스가 끌어올려 달라고 말했던 것을 떠올렸다.

"하늘치는 계속 움직이는데요?"

"롭스는 이 하늘치가 어떻게 움직일지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 지상의

동료들은 열심히 짐 챙겨서 다음 접선  지점으로 움직일 겁니다. 우리는

준비를 많이 했습니다. 음. 이런 건  생각 못해보셨겠지요? 후발대가 가

지고 올라올 것 중엔 분뇨 자루도 있습니다.  우리는, 험, 하늘치 등 위

에 변을 남겨두는 문제에 대해 좀  고민했지요. 그리고는 역시 그래서는

안된다는 결론을 내렸지요. 저라도 누가 제  등에 변을 무더기로 싸놓고

가면 기분이 좋을 것 같지는 않거든요."

오레놀은 당연히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며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

였다. 발굴대가 많은 준비를 한 것이 분명하기에 오레놀은 더 이상 질문

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그런 추측은 잠시  후 주키가 꺼낸 말에 의해

확인되었다. 주키는 발 아래를 보며 말했다.

"역시 이 녀석은 간지럼을 안 타. 그렇지?"

킬소와 막타드는 씩 웃었다.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  없었던 오레놀은

질문했고 막타드가 대답했다.

"아, 우리는 이 녀석이 우리 때문에 간지럼을 타서 몸을 뒤채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요."

생각하는 것만으로 오레놀은  소름이 돋았다. 막타드는  그를 안심시켰

다.

"물론 이렇게 거대한 녀석이  간지럼을 탈 리도 없거니와  만약 그렇게

예민하다면 새나 구름 따위와 부딪혀도 견디기 어려웠을 겁니다."

오레놀은 발굴대가 별의별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고려했음을 확신하며

안도했다. 그러는 동안 일행은 목표했던  육봉의 꼭대기에 도달했다. 네

사람은 그곳에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오레놀은 자신이 등뼈 쯤에 해당하는 부위에 도달했다고 생각했지만 시

야 들어오는 풍경은 그의 추측이 완전히 잘못된 것임을 가르쳐주고 있었

다. 하늘치의 등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광활했고 주위에는 그들이 올

라선 것과 비슷한 언덕이 잔뜩 있었다. 약간의 당황 속에서 오레놀은 자

신들이 하늘치의 여드름에 해당하는 부위에 올라선 것이 아닌가 하는 생

각을 해보았다. 물론 그것은 지나친 과장이다. 그들은 곧 유적을 발견했

다. 일행은 그쪽으로 방향을 잡아 걸어갔다. 킬소는 걸어가며 계속 설명

했다.

"밧줄은 유적에 묶어야 합니다. 이 친구의 등 위에는 밧줄을 묶을 장소

가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이 친구의 몸에  못을 박을 수도 없는 노

릇이고요. 하지만 저 유적은 수천년 동안 이 위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버

틴 것이니만큼 충분히 견고할 겁니다."

"저 유적에 묶고도 밧줄이 아래까지 닿을까요?  저는 한참 동안 걸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충분히 닿습니다. 롭스는 넉넉하게 잘랐습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사

람이 네 명 필요한 겁니다."

다시 질문하려던 오레놀은 자신이 뒤쳐져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세 사

람은 어느새 빠른 속도로  걸어가고 있었다. 오레놀이  그들에게 보조를

맞추었을 때 그들은 빠른 걸음과 느린  달리기의 중간쯤 되는 속도로 이

동하고 있었다. 오레놀은 그들의 흥분을 이해했다. 그리고 대덕 또한 조

금씩 흥분되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수천년 동안 그들을 기다려온 유적

이 이제 몇 걸음 앞인 것이다.

그리고 갑자기 그것이 나타났다.

일행은 급격하게 멈춰섰다. 눈 앞에는 언덕이 있었지만 유적의 높은 부

분들은 언덕 너머까지 보였다. 일행은 서로를 돌아보았지만 아무도 입을

열지는 않았다. 킬소는 손짓만으로 일행을 다시 전진하게 했다. 네 사람

은 두려움마저 느끼며 언덕을 올랐다.

일행이 언덕 위에 올라섰을 때, 유적은 모든 모습을 드러내었다.

아름다웠다.

그것은 폐허였다. 하지만 그 짝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폐허

였다. 그것은 반 정도만 남아있는 지붕들, 이가 빠지듯 군데군데 부러진

열주들, 기묘한 모습으로  무너진 벽과 담장들로  이루어진 예술이었다.

일행은 감격에 말문이 막혔다. 오레놀은 폐허가 그토록 아름답다는 사실

에 기이함을 느꼈다.

그리고 잠시 후, 오레놀은 그것이 정말 기이한 폐허임을 깨달았다.

오레놀은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다른 사람들도  당혹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들은 이해할 수 없는  형태의 폐허를 마주하고 있

었다. 예를 들어, 오레놀은 왼쪽에 있는  반쯤 무너진 박공 지붕이 참으

로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것은 오레놀이 예전에 한 번도 보지 못

한 형식이었고 따라서 박공 지붕이라는 말은 그저 인상이 그러하다는 의

미일 뿐이다. 그런데 그 박공 지붕은 겨우  세 개의 기둥에 의해 받쳐지

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둥들은 일반적인  경우라면 도저히 지붕의 무게

를 지탱할 수 없는 형태로 배열되어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기둥

중 하나가 가운데 부분이 없는 상태라는 점이다.  그 세 번째 기둥의 윗

부분은 천장에 붙어 있었고 아랫부분은 땅을, 아니, 하늘치의 등을 단단

히 디디고 있었지만 중간  부분은 부러지기라도 한  것처럼 사라져 있었

다. 그런데 오레놀이 보기에 그 기둥이 세 기둥 중 가장 많은 무게를 받

는 기둥이었다.

그 뒤편에 있는 탑 또한 매한가지였다. 아름답다는 점에서도, 당혹스러

운 형태라는 점에서도. 그 탑은 진작에 무너졌어야 마땅한 탑이었다. 기

단에 해당하는 부분이 구 할 이상  파괴되었다면 그렇게 되는 것이 당연

하다. 하지만 그 탑은 약간의 기울어짐조차 없이 꼿꼿하게 서있었다. 여

기저기를 둘러본 네 사람은 곧 그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이치에 맞지 않

는 장면들을 꽤 많이 찾아낼 수 있었다.  주키는 그 장면을 꽤 재치있게

표현해내었다.

"무너진 폐허가 아니라  군데군데 지워져… 뒷배경이  보이는 풍경화를

보는 것 같은데. 물론 진짜 풍경화는  지워진다고 해서 뒷배경이 보이지

는 않지만."

세 사람은 주키의 말에 동감했다. 그런 모습들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

은 두 가지 뿐이었다.  건물들이 상상하기도 어려울만큼  강인한 재료로

만들어져 있다거나, 혹은 무게가 거의 없는 소재로 이루어졌다는 것. 두

가지 이론 모두 상식을  상당히 괴롭히는 이론이었다.  고심하던 킬소가

말했다.

"저기 광장에 늘어서 있는 기둥들,  저게 상당히 튼튼해보이는군요. 저

기에 밧줄을 묶으면 될 테니 짐은 모두 저곳에 내려놓고 좀 가볍게 돌아

다녀보지요."

킬소는 기둥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기둥이 아니었다.  열주처럼 늘어서

있지만 그것은 원래 건물의 일부를 받치거나 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

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광장 가운데를 가로질러 나란히 배열되어

있었다. 발굴대는 왜 건물을 받치지도 않는  기둥들을 야외에 죽 늘어세

웠는가에 대해 의아해 했지만 오레놀은 그것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었

다. 그것은 기념비였다.

"고대풍이군요. 저 기둥들에는 중요한 역사적 사실들이, 아마 그림이나

글로 새겨져 있을 겁니다.  판사이의 육형제 탑과  비슷한 겁니다. 물론

그 탑들은 건물 안쪽 벽면에 부조가 있고 저건 바깥쪽에 있다는 점이 다

릅니다만."

"그런가요. 안쪽에 있는 것이 비바람 따위에 안전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그 대신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없지요. 그래서 그런

형태일 경우에는 좀 비밀스러운 내용들이  선택되지요. 판사이의 육형제

탑에 있는 내용은 아무나 볼 수 없었잖습니까.  지금은 아무도 볼 수 없

게 되었지만. 어쨌든 저 기둥들은 공개되어  있는 것이니, 이 유적의 건

설자들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레놀은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이 유적을 누가 만들었는지, 왜 만

들었는지,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알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대덕은 기둥

에 그림이 아닌 글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기둥에 새긴 그림이 아

름답기는 하지만, 글 쪽이 더 많은 정보를 전달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레놀은 기둥에 뭔가 글자처럼  보이는 것이 새겨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기쁨을 느꼈다.

그러나 잠시 후 오레놀은 큰 실망을 느꼈다.  롭스가 자격 요건을 말해

주었기 때문에 오레놀은 다른 세 사람도  실망하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

다. 20 미터는 족히  넘을 것 같은 기둥들에는  정교한 솜씨로 글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읽을 수 없는 글자였다.

네 사람은 막막한 심정으로 기둥들을  바라보았다. 오레놀은 이제 차라

리 그림이었다면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그림이라면  최소한 이해할 수는

있으며, 따라서 이토록 막대한 정보를 눈 앞에 둔 채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환장할 꼴은 겪지 않아도 되니까. 주키는 마치 계속 노려보면 글

자들 속에서 문법의 신비가 떠오르기라도  할 것처럼 기둥들을 노려보았

고 킬소는 머리를 계속  움직이며 입 안으로  뭔가를 웅얼거리는 모습이

글자 수를 세는 것 같았다. 모두들 읽을 수 없는 글 앞에서 당혹한 것이

다. 하지만 막타드는 빨리 체념한 듯 들고  온 사리에서 밧줄 끝을 찾아

내어 풀어내고 있었다. 오레놀은 그에게 다가갔고  킬소 또한 포기한 듯

걸어왔다. 세 사람이 밧줄 끝을 붙잡고 기둥 쪽으로 다가갔을 때 그들은

주키가 기둥에 얼굴이 닿을 듯한  모습으로 글자들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킬소가 말했다.

"가까이서 보면 모르던 글 알게 되냐?"

주키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세 사람을  돌아보았다. 그 표정이 묘했다.

세 사람이 들고 오는 밧줄을 본 주키는 웃음, 혹은 울음을 터뜨릴 것 같

은 얼굴로 말했다.

"그 밧줄 여기에 묶으려고?"

"그래."

"정말 그럴 거야?"

"당연하잖아.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 생각에는, 그럴 필요가 없는 것 같은데."

세 사람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주키를  바라보았다. 주키가 혹 어떻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 오레놀이 말했다.

"왜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인지 설명해주겠습니까?"

주키는 오레놀의 요구를 따랐다. 뒤이어  터져나온 오레놀의 비명은 하

늘치의 머리끝에서 꼬리끝까지 울려퍼졌다.

수레는 요동치고 있었다. 뱀부리미는 뱀단지들이 쏟아지지 않도록 선반

에 줄을 묶는 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수레가 흔들릴 때마다 갈로텍의 몸

또한 흔들렸다. 탁자 곁에  서있던 갈로텍은 탁자에  매달리다시피 해야

했다.

태풍 한가운데 있는 그들의  처지도 그다지 곱다고  말하긴 어려웠지만

뱀들이 전해오는 소식 또한  끔찍한 것이었다. 갈로텍의  몸에서 비늘이

부딪치는 소리가 우레 같았다. 갈로텍은 무한한  독기를 품은 눈으로 탁

자 위의 뱀들을 노려보았다.

'비아스 마케로우, 비아스 마케로우! 이 은혜도 모르는 년!'

뱀부리미가 바빴기에 갈로텍의 의사는 상대편으로 전달되지 못했다. 어

차피 내용이 내용인지라  갈로텍은 뱀부리미에게 그것을  보여줄 생각도

없었다. 수레의 진동 때문에 계속 움직이면서도  뱀들은 간신히 읽을 수

있는 사어를 형성했다.

'빨리 하텐그라쥬로 돌아와주게.  비아스는 대가문들과  완전히 결탁했

어. 심장병을 가지게 되면 우리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게 된다는 거지.

그녀들에게 상당히 많은 수의 심장병의  이름들이 먹으로 지워졌다는 것

을 닐러줘서 지금은 잠시 소강 상태야.  하지만 그녀들은 그것이 거짓니

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심장병 하나를 깨버려요! 이름이 지워지지 않은  것 중 하나를 골라서

파괴하라고요! 본보기를 보여주십시오! 그러면  아무도 비아스를 따르지

않게 될 겁니다!"

아무도 듣지 않는 말이 수레 안에 울려퍼졌다. 뱀들의 움직임은 계속되

었다.

'그 도깨비 같은 비아스가  설마 가장 중요한 비밀을  닐러버릴 정도로

생각 없는 여자일 줄은 정말 몰랐어.  젠장! 도대체 지성이라는 것이 있

는 걸까? 도대체 뭘 생각하는 걸까?  그녀의 계획이 성공하면 뭐가 남는

건 줄 모르는 걸까? 이제 아무도  심장을 적출하지 않으려들 거야. 모든

나가들이 이성적일 수는 없단 말이야. 갈로텍. 이젠 북부 정복이 문제가

아니야. 갈로텍. 우리는 하텐그라쥬를 공격해야 돼!'

강렬한 충격에 갈로텍은 무릎이 풀리는  기분을 느꼈다. 사어의 준엄함

은 공포스러웠다.

'알겠나? 다시 반복하겠어. 우리는 하텐그라쥬를  정복해야 돼. 그래서

다른 나가들의 도시까지 심장 파괴의 비밀이  전해지는 것을 막아야 돼.

그러지 못하면 나가는 끝장이야! 천오백 년  전으로 돌아가게 되는 거라

고! 최대한 빨리  하텐그라쥬로 돌아와. 그리고,  알겠나? 하텐그라쥬의

나가들을 제압해.'

그 명령이 암시하는 바는 명확했다.  세리스마는 친절하게도 그 암시까

지 설명했다.

'북부군과 협력하게.'

"오, 제기랄." 갈로텍은 한 번 더 말했다. "제기랄!"

'여신을 풀어주겠다고 약속하고 북부군과 손을 잡아. 거짓니름이 아냐.

륜 페이는 용인이니까 거짓니름을 알아볼 거야. 우리는 진심으로 그렇게

해야 돼. 여신의 힘을 포기해서라도 심장  적출만은 지켜야 해. 만약 자

네와 북부군이 실패한다면, 나는  이 심장탑의 모든  심장병을 깨버리고

죽겠어. 미안하지만 자네 심장병을 보호하겠다는 약속은 못하겠군.'

필사적인 조사에도 불구하고 이름이 지워지지 않은 심장병 중에는 갈로

텍의 심장병이 없었다. 그의 심장병은 어느 것인지  알 수 없게 된 상태

였다. 탁자 위의 뱀들은 불길함을 표현했다.

'더 이상 니르지 못하겠군.  또 공격이 시작되었어.  이만 가봐야겠어.

갈로텍. 나는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지  않아. 그러니, 제발 성공하

게! 북부군과 손을 잡고 이 도시를 점령해!'

뱀의 움직임이 멎었다. 하지만 갈로텍은 탁자를 움켜쥔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태풍은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4년 전, 손에 넣은 힘의 가공함에 전율한 이래로 갈로텍은 그것의 이용

에 대해 어떤 감정적 어려움도 느껴보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근시안적

인 얼간이가 저지른 추악한 실수 때문에  갈로텍은 다른 도시도 아닌 냉

혹의 도시를 상대로 그 힘을 사용해야 하는 처지에 빠져 있었다. 판사이

를 수장시킨 그조차도 그런 일을 무감각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나가들에게 심장 적출을 필요불가결한 것으로 인식시킬 방법이 없을까?

심장 파괴를 절대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엄숙한 맹세를 한다면? 회의적이

었다. 갈로텍은 나가들의 이성을 믿었지만, 바로 그렇기에 제2의 비아스

나 제3의 비아스가 등장하리라는 것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여신의

힘은 신명을 가진 수호자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힘이다. 하지만 심장 파

괴는 병을 깰 수 있는 힘만 있으면 사용할 수 있는 힘이다. 모든 자들이

심장병의 통제권을 원하게 될 것이며, 바로  그렇기에 모든 자들은 심장

적출을 거부할 것이다. 갈로텍은 그런 모순을  해결할 방법을 떠올릴 수

없었다.

뱀단지들을 고정시켜둔 뱀부리미가 그의 눈치를 살피다가 탁자 위의 뱀

에 손을 뻗었다. 갈로텍은 뱀부리미가 일을 할 수 있도록 탁자에서 물러

났다. 그 때 수레가 또다시 진동했다. 폭언이 튀어나오는 것을 억누르며

갈로텍은 수레 밖으로 걸어나왔다.

대장군이 수레 밖으로 나오는 것을 보자 보라크 군단장와 수호장군들이

반가워하며 달려왔다. 그러나 갈로텍은 강렬하게 닐렀다.

[니름 걸지 마! 도대체 아직까지 이 태풍 하나 어쩌지 못하나!]

보라크 군단장과 수호장군들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대장군을 바라보았

다. 육상에서 발생한 이 황당한 태풍은  나가들에겐 익숙하지 않은 것이

다. 만약 기적적으로 살아난  선인장 군단의 세키리  군단장이 그들에게

합류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어디에도 없는 신의 화신이 출현한 것이 아닌

가 하는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세키리 군단장은  여섯 개 군단

몰살과 악타그라쥬 파괴의 비보 이외에도 이 태풍이 륜 페이와 시우쇠가

집중시킨 열의 잔재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가르쳐주었다. 두  개의 인공

태양이 뿜어낸 열과 륜 페이가 강제로 끌어내린 뜨거운 수증기는 태풍을

발생시키기에 충분했다.

보라크는 자존심의 반란을 억누르며 닐렀다.

[대장군님. 저희들의 힘으로는 이 태풍을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내버려둬! 4년 동안  물을 다뤄왔으면서도 물에  대해 모르나?

열을 보관하는 것은 물이다. 바다가 아닌  이곳에서는 태풍에게 열을 공

급해줄 수 있는 거대한 물이 없어. 여기  나타났다는 그 가짜 태양도 없

어진 마당이니 태풍은 곧 사그라들 거다!]

수호장군들은 군령자가 뿜어대는 지식의  급류에 힘겨워했다. 보라크는

고심 끝에 다시 닐렀다.

[하지만 군단병들은 몹시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대수호자님과 마호가니

군단의 수호장군들이 도와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 분들은 현재 신명이

묶여서…]

[잠깐! 자네 지금 뭐라고 닐렀나?]

[예? 아닙니다. 저는  대수호자님의 위엄을 깎아내리려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니른 겁니다.]

그리고 보라크는 한참 동안 횡설수설했다.  그의 니름에 따른다면 보라

크는 대수호자 없는 세상은 상상조차 할 수 없으며 만약 그런 세상에 내

팽개쳐졌다가는 죽어버리고 말 대수호자의 첫째 가는 추종자임에 틀림없

었다. 하지만 갈로텍은 보라크의 니름을 듣지 않았다.

갈로텍은 자신이 처해있는 끔찍한 상황을  타파할 수단을 찾아내었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그 끔찍한 상황이란 당연히  태풍 따위를 니르는 것은

아니다.

만약 키보렌의 대수호자에게 모든 심장병의  통제권을 넘기겠다고 니른

다면?

타협과 야합, 그리고 견제의 산물이긴 하지만 어쨌든 중첩된 우연의 결

과로 대수호자 키베인은 현재  키보렌의 그 누구보다  높은 권위를 가진

자가 되어 있다. 실제로 키베인에겐 단순한 돌출 행동만으로 하텐그라쥬

와 지도그라쥬의 두 도시를 긴장하게 만든  전력이 있다. 만약, 그 키베

인의 권위라는 것이 감히 여신의  신랑을 사도구화하려는 발칙한 생각을

할 수 있는 대가문의  가주들의 권위마저 넘어서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대가문의 가주들은 감히 키보렌의 대수호자를 상대로 심장병의 통제권을

주장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대수호자는 현재 신명이 묶여 무력하

기 짝이 없는 상태다. 갈로텍은 점점  빨라지는 사고의 속도에 현기증을

느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이런 생각들을 할 수 있게 된 거지?'

갈로텍은 문득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다른  누군가가 - 예를 들

어, 정치 감각을 가지고 있는  어떤 군령이 -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기분을 느꼈다. 그 느낌은 기묘했다. 자신에게 존재하지 않는

재능이 발휘되는 것을 바로 곁에서, 아니,  그 내부에서 바라보는 느낌.

갈로텍은 혼란스러웠다. 그가  혼란스러워하자마자 곧  사고가 흐트러졌

다. 그래서 갈로텍은 다시 사고의 흐름에 집중했다. 주의력을 여러 군데

로 분산시켜도 무방한 상황이 아니었다.

지금껏 그는 자신의 힘이 아닌 힘을 자유롭게  써왔다. 다른 군령의 재

능을 이용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라  상각하며 갈로텍은 키베인에게 집중

했다. 가장 강대한 자이며, 동시에 가장 무력한  자, 그리고 그의 손 안

에 들어와 있는 키보렌의 대수호자. 갈로텍은  머리 속에 계획이 정리되

는 것을 느끼며 그 느낌에 푹 빠져들었다.

막타드 신뷰레는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스님. 정말 대단한 목청이십니다. 하늘치가 놀라면 어쩌려고 그러십니

까?"

오레놀은 뻣뻣하게 굳은 모습으로 발  아래를 바라보았다. 킬소가 대덕

을 안심시키기 위해 말했다.

"그럴 리는 없습니다. 스님. 그러면 천둥이 칠 때마다 하늘치가 놀라는

모습이 목격되었을 테니까요. 막타드는 농담을 한 것입니다."

오레놀은 원망이 담긴 눈으로 막타드를 바라보았고 막타드는 웃으며 사

과했다. 오레놀은 다시 주키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는 아직까지 두

근거리는 가슴을 손으로 누른 채 말했다.

"저는 당신 팔이 잘린 줄 알았습니다. 어떻게 알아차렸습니까?"

"글자를 만져보려고 하다가 알게 되었습니다."

주키는 오레놀을 돌아보지 않은  채 대답했다. 그리고 주키는  조금 전

오레놀을 기겁하게 한 행동을  다시 취했다. 손을 앞으로  쑥 내민 것이

다. 오레놀은 홀린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마치 물 속에 담그는 것처럼 주키의 팔은  기둥 속으로 사라졌다. 주키

는 팔을 이리저리 흔들었지만 그 팔은  어디에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기둥의 모습은 여전했다.

팔을 도로 뺀 주키는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낯선 것을 바라보는 눈으

로 손바닥을 들여다보던 주키가 투덜거렸다.

"이 유적의 이상한 점들이 설명되는 것 같은데.  아까 그 탑 같은 것이

왜 안 무너진 건지 알겠군. 하지만 작은  의문이 큰 의문으로 바뀐 것뿐

이야. 도대체 이게 뭐지? 뜨겁지 않으니 도깨비불은 아닌 것 같은데. 물

론 온도를 최대로 낮춘 도깨비불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도깨비불은 아니야. 나는 이렇게 정교한 가짜를  만들어낼 수 있는 도

깨비가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

"정말 이상하군. 우리 네 사람이 동시에 환상을  볼 리도 없거니와, 환

상에는 보통 그림자가 없어야 하는 것 아니야? 하지만 이 기둥에는 그림

자가 있는데."

주키의 말대로 기둥들은 훌륭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그 때 막타

드가 앞으로 걸어갔다. 주키는 그림자를 보라는 듯 손으로 가리켜보였지

만 막타드는 그 쪽을 보지 않았다. 대신 막타드는 태양의 방향을 확인했

다. 태양은 어느새 꽤  높아져 있었지만 아직 하늘  중앙에서는 먼 곳에

있었다. 태양의 위치를 파악한 막타드는 오른손을  쫙 펴서 기둥 근처로

가져가 흔들었다. 다른 세 사람은 침묵한  채 막타드의 동작을 바라보았

다.

막타드의 손이 기둥에 닿는 태양빛을 몇  번이나 가렸지만 기둥에는 막

타드의 손 그림자가 생기지 않았다. 막타드는  손을 흔들던 것을 멈추고

는 기둥의 그림자를 가리켰다.

"저 그림자도 가짜야. 이 기둥처럼."

주키는 맥풀린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렇게 힘들게 찾아온 것이  허상이란 말이군. 수천년  동안 사람들을

속여온 허상이라? 흐음."

미소는 거기까지였다.

주키는 갑자기 기둥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그 주먹은 어디에도 부딪

히지 않았다. 주키는 근처의 유적들에게 닥치는대로 주먹을 휘두르고 발

길질을 했다. 금방이라도 주키의 뼈가 부서지고 살이 으깨질 것 같은 기

분에 오레놀은 깜짝깜짝 놀랐다. 하지만 주키의 손발은 벽과 계단, 기둥

을 통과할 뿐이었다.

"젠장! 딱딱한 건 하나도 없는 거냔 말이다! 이게 도대체 뭐야!"

그리고 주키는 괴성을 지르며 몸을 날렸다. 꽤나 멋진 동작으로 날아올

라 벽을 걷어찬, 아니, 차려 했던 주키는 그대로 벽 저편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주키는 벽을 통해서 당황하는 세 사람에게 돌아왔다. 킬

소 펜이 한숨을 내쉬었다.

"티나한 대장은 좋아할 것 같군. 환상 폐허라니. 사람들 몰려오는 발소

리가 들려오는 것 같지 않아?"

주키는 킬소처럼 체념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는 증오에  찬 눈으로

유적을 둘러보았다.

"나는 이게 뭔지 알고 싶었어. 만져보고 느껴보고 싶었다고. 그런데 이

꼴이라니. 에라이!"

주키는 또다시 주먹을 휘둘렀다.

주키는 자지러지는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허탈한 심정으로 주키를 바라보던 세 사람은  깜짝 놀라 주키에게로 달

려갔다. 주키는 주먹을 움켜쥔 채 눈물이  그렁해진 눈으로 벽을 바라보

았다. 상당한 통증을 느끼는 듯했지만 그의 표정은 고통보다는 놀라움을

드러내고 있었다.

"뭐, 뭐가 있었어! 내 주먹이 부딪혔어."

주키는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세 사람도 주키가  후려친 벽 앞에 모여

섰다. 막타드가 먼저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실망스럽게도 막타드의 손은 벽을 통과했다. 막타드는 어이없는 표정으

로 주키를 돌아보았다. 주키 또한 당황함이  역력한 얼굴로 손을 내뻗었

다. 그런데, 그의 손은 벽에 닿아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킬소는 화

를 버럭 내었다.

"그게 재미있냐!"

"장난 치는 것 아냐! 젠장. 내 손등을 밀어봐."

킬소는 그렇게 했다. 그리고는 당황한  얼굴로 막타드와 오레놀 대덕을

돌아보았다.

"어, 진짜 안 움직이는데?"

오레놀과 막타드도 번갈아 그렇게 해보았다.  주키의 손은 확실히 벽에

붙어있는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손은 그 벽을 그대

로 지나쳤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들은 주키의 손이 닿았던 자리를 시

험해보았지만 여전히 벽은 다른 자들의 손을  통과시켰다. 세 사람은 이

제 주키를 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주키  또한 자신이 의심스럽다는 표

정을 짓고 있었기에 그를 변호해줄 자는 아무도 없었다.

주키는 도저히 못 믿겠다는 듯이 벽 여기저기를 더듬었다. 놀랍게도 그

런 현상은 벽 전체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조금  전 뛰어서 통과할 수 있

던 그 벽이 이제는  주키의 몸을 완전히 거부하고  있었다. 주키가 다른

특별한 대책이 떠오르지 않아서 무턱대고 고함이나 한 번 질러보면 기분

이나 풀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떠올렸을 때였다.

갑자기 오레놀이 주키의 곁으로 다가갔다.  입술을 깨문 대덕의 표정은

진지했다. 가벼운 흥분상태임이 분명했다. 벽  앞에 선 오레놀은 목소리

를 가다듬고는 또렷하게 말했다.

"나는 만지고 싶다. 느껴보고 싶다."

킬소와 막타드, 주키의 눈이 커졌다. 오레놀은 차분하게 손을 뻗었다.

그의 손은 더 이상 벽을 통과하지 않았다.

네 남자는 번갈아가며 오레놀과 같은 시도를 해보았다. 벽은 그들의 소

망대로 변했다. 오레놀과 같은 방식으로 벽을 만지는데 성공한 막타드는

주저하며 말했다.

"나는 만지고 싶지 않다."

막타드는 다시 벽을 통과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에 놀라는 사람들

가운데서 킬소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는 이 벽을 보고 싶지 않다."

그리고 킬소는 깜짝 놀랐다.  다른 세 사람은 킬소의  놀라움에 참여할

수 없었는데, 그들의 눈에는 여전히 벽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킬소

는 벽이 보이지 않는다고  맹세했다. 킬소를 따라해 본  세 사람은 그의

말이 사실임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더 이상 벽을 볼 수 없었다. 그들은

황급히 "나는 벽을 보고 싶다!"고 외쳤다. 유적을 파손한다는 느낌이 들

었기 때문이다. 다시 벽을 보게 된 네  남자는 두려움 속에 뒤로 물러났

다. 그리고 서로에게 입을 열어보라는 눈짓을 보내었다. 결국 킬소가 입

을 열었다.

"일단 한 가지 확실히 해두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확실치 않은 상태에

서 아무 거나 소망하지 말도록 합시다. 저  벽이 사라졌을 때 저는 정말

놀랐습니다. 수천 년 동안 이곳에 있었던  것을 제가 없애버렸다고 생각

하자 눈앞이 캄캄해지더군요."

"하지만 그 때 제 눈에는 여전히 벽이 보였습니다."

오레놀의 지적에 킬소는 동의했다.

"그렇군요. 똑같은 벽이 어떤 사람은 통과시키고 어떤 사람은 통과시키

지 않기도 했지요. 아무래도  소망한 당사자에게만 결과가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킬소의 설명에 오레놀은 충격을 느꼈다.

"그렇…군요. 정말 조심해야겠군요."

오레놀의 표정은 심각했다. 킬소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대덕을 바라보았

다.

"무슨 말씀입니까?"

"벽이 바뀐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은 통과하고 어떤  사람은 통과하지

못하게 된 것이라면, 그렇다면 소망의 말이  변화시키는 것은 유적이 아

니라 소망한 사람 자신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어, 농담으로라도 자기

가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면 그대로 될지도 모르겠군요."

세 사람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러나 오레놀은 다시 말

했다.

"아니, 아닙니다. 어쩌면 바뀌는 것은 이 유적과 우리의 관계라고 말하

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군요. 하지만  만약 우리 자신이 바뀌는 것이라

면… 확인해봐야겠는데요."

"어떻게 확인합니까?"

오레놀은 갑자기 고개를 숙여 발 아래를 바라보았다.

"내 발 앞에 곡차 한 동이가 나타나기를 원한다."

킬소와 주키, 막타드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며  오레놀의 발 앞을 바

라보았다. 그들의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주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스님. 나타났습니까?"

오레놀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멋쩍은 듯이 말했다.

"변하는 것은 이 유적과 우리의 관계입니다.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세 남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좀 웃을 수 있게 된 막타드는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스님. 겨우 곡차 한 동이가 뭡니까. 저라면 금편 백 상자라고

말했을 겁니다."

오레놀은 멋적게 웃으려다가 주키와 킬소가 몹시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는 폭소를 터뜨렸다. 킬소는 분통이 터진다는 듯이 말했다.

"이런, 젠장! 차라리 변하는 것이 우리였으면  좋겠군. 금편 백 상자라

고?"

주키 또한 비슷한 표정이었다. 그 때 주키가 갑자기 오레놀에게 달려왔

다.

"어, 잠깐. 스님. 이 유적과 우리의  관계가 변한다고요? 만지고 싶다,

만지고 싶지 않다? 보고 싶지 않다. 보고  싶다? 그러니까 이 유적을 대

상으로 하는 소망은 된다는 거지요?"

"예? 음. 그런 것 같습니다만."

"나는 이 벽이 황금으로 이루어진 것이면 좋겠다!"

주키의 고함에 세 사람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들은 황급히 벽을 바

라보았다. 그 벽은 조금 전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주키는 완전히

얼빠진 발케네 사내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른 자들이 조바심을 참지

못하게 되었을 때 주키는 비로소 환호를 내질렀다.

"금! 금이다! 황금벽이다!"

"진짜야? 금이라고?"

"그래! 금이라고! 오, 맙소사!"

킬소와 막타드는 황급히 똑같은 소망을  외쳤다. 그리고 그들은 황금으

로 만들어진 벽을 보게 되었다. 눈이 부셔 똑바로 바라보기도 힘든 막대

한 황금이었다. 햇빛을 가리는  것이 별로 없는 하늘치의  등 위에서 그

황금벽의 광채는 엄청났다. 환호를 내지르던  막타드는 오레놀이 빙그레

웃고 있는 것을 보았다.

"스님! 스님도 한 번 해보시죠?"

"아뇨. 저는 됐습니다. 그런데 혹 그 금을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주키가 기세좋게 외쳤다.

"물론 가져가야지요! 유물은 유적 발굴자의 것 아닙니까."

"기념품은 되겠군요."

"예? 기념품이라니오? 스님. 저는 황금을 기념품  삼을 만큼 대범한 사

람이 아닙니다."

오레놀은 다시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주키.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군요. 아마도 부자가 되셨다고 좋아하

시는 것 같은데, 정말 죄송합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이 그걸 떼어

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그건 당신에게만 황금입니다. 다른 사

람에겐 그냥 벽돌로 보일 겁니다."

충격이 이해로, 그리고 이해가 실망으로 바뀌었다.  주키는 그만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었고 킬소와 막타드 역시 정도는 다르지만 실망감을 감추

지 못했다. 주키는 포기하기 힘들다는 듯이 '그러면 다른 사람들도 이것

이 황금이기를 소망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반론을  펼쳤지만 오레놀은

'누구 하나라도 그것이 벽돌이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그 사람에겐 벽돌이

될 텐데, 그런 물건은 보물로서 가치가 없다. 또한 하늘치의 등 위를 벗

어나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날 거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는 논리로써

주키의 반론을 간단히 격파했다. 주키는 눈 앞에 있는 수천 톤의 금덩어

리가 똥덩어리로 바뀐 것을 본 사람의 표정을 지었는데, 사실 그에게 일

어난 일이 바로 그런 일이었다. 주키는  최후의 수단으로 '이 벽이 모든

자에게 황금인 황금벽이 되길 원한다!'고 외친 다음 기대감에 차서 킬소

와 막타드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킬소와 막타드는 고개를 가로저을 수밖

에 없었다. 오레놀은 다시 웃었다.

"재미있군요. 물론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소망을 품을 수야 있지만,

그 소망이 모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요.  상대방도 같은 소망을 품어

야만 가능하지요. 정말 재미있는데요."

"스님. 속물이라 하셔도 할  말 없습니다만, 저는 하나도  재미 없습니

다."

주키는 볼멘 목소리로 말했다. 킬소는  미소를 지었고 막타드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 그래도 이 정도면 그 고생을 감수하고  올라와 볼만하군. 정말 놀

라운 유적 아니야? 자기가 원하는대로  바뀌는 유적이라니. 아쉽게도 그

변화를 다른 사람과는 공유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이지만, 나는 만족감

이 드는데."

주키 또한 곧 미소를 지었다. 그 역시  이곳에 올라와 유적을 느껴보는

것이 소망이었던 유적 발굴자로 빠르게 되돌아왔다.

"네 말 맞다. 막타드. 정말 올라와 볼만한  곳이야. 흐음. 이거 아무래

도 계속 티나한 대장 좋은 일만 되는 것 같지 않아? 티나한 대장의 사업

은 잘 될 것 같군.  하지만 만족감에 대해서는, 나는  아직 그렇지가 못

해.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지를 아직 모르거든."

"그거라면 내가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오레놀과 주키, 그리고 막타드는 킬소를 돌아보았다. 킬소는 뭔가 비밀

을 간직한 표정으로 세 사람을 차례로  돌아보고는 손을 들어 말없이 그

들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그리고 킬소는 걸어갔다.

킬소가 도착한 곳은 광장 가운데의 기둥들이었다. 킬소는 기둥을 한 번

올려다보고는, 씩 웃으며 오레놀을 돌아보았다.  오레놀 또한 킬소가 무

슨 일을 할 작정인지 깨닫고는 탄성을 질렀다.

"이 기둥에는 스님 말씀대로  중요한 역사적 사실들이  적혀 있겠지요.

물론 자기 자랑에 불과한  별 볼 일 없는  내용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이렇게 광장 한가운데 서있는 물건에  새빨간 거짓말을 새겨넣지는 않았

겠지요. 따라서 우리는  이 기둥에 있는  내용을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

다."

오레놀은 기대감 속에 말했다.

"그렇게 될까요?"

"시험해봐야지요."

그리고 킬소는 기둥을 향해 말했다.

"나는 이 기둥의 글을 읽기를 원한다."

오레놀과 주키, 막타드의 눈에  기둥은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킬소는 탄성을 지르며 기둥을  정신없이 바라보았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떠올린 다른 세 사람은 앞다투어 같은 소망을 말했다. 그러자 다

른 세 사람도 그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정신없이 기둥의 글을 읽었다.

대수호자 키베인이 자기 자신을 정의하기 위해 사용하는 단어들 중에는

호의적인 것이 별로 없다. 멍청하기 때문에 대수호자가 되었다고 간단히

인정해버리는 키베인의 성격은, 그러나 자기 혐오나 패배주의 같은 것과

는 상관이 없다. 자칫 그런 경향으로 넘어가버릴 수 있지만 그러지 않는

것은 그가 재미를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재미를 아는 자는 패배

주의자가 될 수 없다.

따라서 키베인은 갈로텍으로부터 그가 위대하고  현명하고 어쨌든 가로

세로 재어보기도 힘들 만큼 잘났다는 평가를  받게 되자 그런 평가에 도

취되는 대신 흥미를 느꼈다. 키베인은 왜 갈로텍이 형용사를 낭비해가며

스스로도 믿지 않는 사실을  위조해내려 애쓰는 것인지  정말 궁금했다.

그리고 마침내 갈로텍이  그에게 모든 나가들의  생사여탈권을 주겠다고

닐렀을 때조차 키베인은 그것을  어떻게 쓰겠다는 생각이  아닌, 그것을

왜 주는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했다.

대답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갈로텍에게는 대수호자라는 지위에 나가

들의 생사여탈권이라는 막강한 권능까지 가진 초월적인 지도자가 필요해

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초월적인 지도자는 막강한 적이 있기 때문에 필

요한 것이다. 그 막강한 적은, 초월적인 지도자가 하텐그라쥬 출신이 아

니라 지도그라쥬 출신이라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만큼 위험한

적이다. 키베인은 거기까지 추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갈로텍에게

도대체 어떤 적이 생긴  거냐고 묻는 대신 생각  좀 해보겠다고 닐렀다.

그것이 더 재미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갈로텍은 집요하게 달려들었고

그래서 키베인은 신명을 잃은 수호자의 슬픔을 연기해보여야 했다. 갈로

텍은 대수호자가 상실감 때문에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 무엇 하나도 제대

로 결정하기 힘든 상태라고 판단하고는 일단 물러나기로 했다.

갈로텍이 떠나고나서 키베인은 제자리에 앉아서 생각에 잠겼다. 키베인

은 심장병의 통제권이라는 것에는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재미를

아는 자는 힘의 노예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키베인이 주로 생각

한 것은 갈로텍에게 어떤  적이 생긴 것인지, 그리고  왜 갈로텍이 전대

대수호자의 장례식을 주관하고 차기 대수호자의  자리에 오르지 않는 것

인지에 대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둘 다 쉽게 해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들

이었다. 주의력을 잃은 키베인은 멍한 기분  속에서 갈로텍에게 모든 심

장병의 통제권을 넘기는 일이 재미있을 것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그의 시야 한구석에서 뜨거운 것이 움직였다.

키베인은 그곳을 바라보았다. 그 뜨거운 것은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

었다. 키베인은 별 생각 없이 말해보았다.

"달비 부위?"

뜨거운 것이 방향을 바꿨다. 키베인은 자신의 추측이 맞은 것에 즐거워

했다. 잠시 후 그의 눈앞에 데오늬 달비가 나타났다.

"부르셨습니까, 대수호자님?"

"예. 왜 그렇게 뛰어다니고 있는 거죠?"

"삭정이를 모으고 있었습니다. 대수호자님. 저희들은 요리를 해야만 먹

을 수 있습니다. 대수호자님."

"아아, 그렇지요. 그런데 삭정이를 모으기  위해 그렇게 뛰어다녀야 합

니까?"

"태풍 때문에 나무들이 젖어 있습니다. 대수호자님."

데오늬는 그 정도면 훌륭한 설명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키베인은 아무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조금 생각한 후에야 키베인은 '나무들이 젖어있

다. 젖어있지 않은 나무를 찾으려면 많이 돌아다녀야 한다. 많이 돌아다

니면서도 식사 준비가 늦지 않으려면  달려야 한다.'라는 일련의 논리를

떠올릴 수 있었다.

"아, 저는 당신이 병사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뛰어 다니는 줄 알았습니

다."

"눈을 피한다고 하셨습니까, 대수호자님?"

"어, 당신들이 나무를 태우는 것에 대해 병사들이 싫은 눈치를 주지 않

던가요?"

"눈치를 준다고요, 대수호자님?"

키베인은 슬슬 그만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뛰어다니느라 눈치

볼 새도 없나 보다고 생각하고는 키베인은 손을 내저었다.

"아뇨, 됐습니다. 가보십시오. 방해가 되었군요.  아, 참. 그런데 말입

니다."

"예. 대수호자님."

키베인은 싱긋 웃었다.

"데오늬 달비. 만약 당신에게 모든 인간들의 목숨을 좌우할 수 있는 능

력이 생기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모든 인간의 목숨을  좌우할 능력이요? 그것이  무엇입니까, 대수호자

님?"

"그런 능력이 있다고 치고 그게  손에 들어온다면 어쩌시겠냐는 질문입

니다."

데오늬는 고개를 왼쪽으로 조금 기울였다. 잠시 후 데오늬는 고개를 똑

바로 들었다. 대답을  기다리던 키보렌의 대수호자는,  데오늬의 고개가

오른쪽으로 기우는 것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데오늬는  한참 후에야

입을 열어 말했다.

"그건 죽은 자를 살아나게도 할 수 있는 능력입니까, 대수호자님?"

"아니오. 제가 말을 잘못했군요. 정확하게  말하자면 모든 자를 간단히

죽일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해야겠군요."

"그렇다면 아무 쓸모가 없는 능력이군요, 대수호자님?"

"제 생각에도 그렇습니다만, 음. 달비 부위.  그런 능력이 있다면 당신

을 해치려는 자를 먼저 제거할 수도 있잖습니까?"

데오늬는 자신없는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키베인은 약간의 조바심을

느꼈다.

"그렇지 않습니까, 달비 부위?"

"모르겠습니다. 대수호자님. 누가 저를 해친다면, 제가 죽습니다. 그래

서 그를 먼저 해친다면, 그가 죽습니다.  어느 경우에도 한 사람은 죽습

니다. 하지만 그 사람에게 그러지 말라고  설득하면 아무도 죽지 않습니

다."

키베인은 어떻게 병사가 설득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인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글쎄요. 달비 부위. 그러면 좋겠지만, 지금  저와 당신이 참가하고 있

는 이 전쟁처럼 사람들의 대립에는 화해나 공존이 불가능한 경우가 있습

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소망을 품는 거야  얼마든지 가능합니다만

그 소망은 이루어지는 경우 만큼이나  이루어지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

다."

데오늬는 또다시 자신없게 고개를 끄덕였다.  문득 키베인은 자신이 무

의미한 짓을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의 고민을 같은 나가도 아닌 인간

과 나눌 수는 없는 노릇이다.  키베인은 물러가보라고 말했다. 데오늬는

인사하고 달려갔다.

홀로 남은 키베인은 다시 생각에 잠겼다. 조금  전과 달라진 것이 있기

는 했다. 키베인은 이제 누구의 도움도 없이  홀로 그 문제에 대해 생각

해보기로 결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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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태풍이 성장하기엔 약간 무리가 있을 겁니다. 바다라면 바다 그 자

체가 태풍에게 숨은 열을 공급해주지만 땅에서는 그렇지 못하지요. 하지

만 발생은 어느 정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습한 공기와 강력한 열, 그리

고 륜이 열기를 끌어내렸으니 일종의 저기압 상태일 테고 시우쇠와 수호

장군들이 대치하고 있었으니 대기도 상당히 불안하겠지요. 이상, 키보렌

의 날씨를 알려드렸습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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