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새-41화 (41/62)

눈물을 마시는 새.

11. 땅의 울음 - 3

륜과 시우쇠는 피라미드로 걸어갔다.

륜은 자신이 어떻게 피라미드까지 걸어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바늘

로 짠 옷을 입고 가시덤불을 헤치며 걷는 것 같은 날카로운 감각의 시간

들을 살아온 륜 페이에게 주위를 망각한  경험은 낯설었다. 어렴풋이 기

억나는 경험들은 한결 같이 황당한 것들이었다. 륜은 자신이 진흙탕에서

미끄러질 뻔한 경험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그것은

물을 감지할 수 없는, 그리고 용인이 아닌  자라도 밟기 힘들 정도로 뚜

렷하게 보이는 진흙탕이었다. 비슷한 경우로 눈  바로 앞에 있는 나뭇가

지에 이마를 부딪힌 일도 있었다. 결국 륜은  마치 눈을 감고 밀림을 달

린 것 같은 초라한 모습이 되어 피라미드의 도시에 도달했다.

퇴락한 유적을 가로지르고 피라미드를 걸어올라가는  모든 과정이 꿈속

의 일처럼 흐릿했다. 도시의  모습에는 변화가 없었고  피라미드 내부의

복잡한 모습도 그대로였다. 그러나 멍한 상태에 있는 륜도 느낄 수 있을

만큼 뚜렷한 차이가 있었다.  미로는 더 이상  미로가 아니었다. 지독한

예민함으로 륜은 모든 통로의 차이를 구별해버렸다. 화신의 뜨거운 발자

국이 돌 위에 남겨질  때마다 륜은 돌의 생김새와  마모된 정도, 그리고

돌들의 배치를 읽었다. 그것은 륜에게는 뚜렷하게 표시된 기호나 다름없

었다.

피라미드 중간 쯤에 이르렀을 때 처음으로 두억시니가 나타났다.

그것은 평범한 두억시니였다. 그러니까, 매우  특이하게 생겼다는 의미

다. 통로 가운데 서있는 두억시니는 세 개의  팔을 가지고 있었고 네 개

의 어깨를 가지고 있었다. 두억시니는 모든  어깨에 팔이 있기를 원하는

듯했고 그것이 두억시니의 문제였다. 두억시니의 첫  번째 팔이 두 번째

팔을 뽑아 비어있는 네 번째 팔의 자리에  붙였다. 그러자 두 번째 팔의

자리가 비게 되었다. 네 번째 팔이 된 두 번째 팔은 세 번째  팔을 뽑아

두 번째 팔의 자리에 붙였다. 그러자 세 번째 팔의 자리가 비게 되었다.

두 번째 팔이 된 세 번째 팔은 첫 번째 팔을 뽑아  세 번째 자리에 붙였

다. 그러자 첫 번째 팔의 자리가 비게 되었다.  그래서 세 번째 팔이 된

첫 번째 팔은 네 번째 팔이 된 두 번째 팔을 뽑아  첫 번째 팔의 자리에

붙였다. 그러자 네 번째 팔의 자리가 비게 되었다.  그것이 계속되었다.

륜은 홀린듯이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시우쇠는 무심히 두억시니

의 곁을 지나쳤다. 두억시니는 팔을 붙였다 뗐다 하느라 바빠서 륜과 시

우쇠에겐 눈길도 주지 않았다. 륜은 시우쇠의 뒤를 따라가면서도 자꾸만

두억시니를 돌아보았다.

몇 명의 두억시니가 더 나타났다. 하지만 지난  번 륜이 지나갔을 때보

다 현격하게 적은 숫자였다. 륜은 유해의  폭포가 자신들의 접근을 알아

차리고 다른 두억시니를 비켜나게 한 것이 아닐까 추측했다.

깊은 수직 통로가 나타났다.

어둠 속에서 뿜어져나오는 음울한 열에 의지하여  보던 지난 번과는 달

랐다. 륜은 유해의 폭포에 함유되어 있는 습기를 민감하게 느끼며 그 전

체적인 모습을 보았다. 놀랍도록 슬픈 모습이었지만 륜은 그것이 흥분하

고 있음 또한 예민하게 느꼈다.

[오는 것을 봤다. 륜 페이. 옆에 계신 분이 바로 시우쇠님이시겠지?]

륜은 대답할 수 없었다. 그는 시우쇠의  앞을 막아섰다. 화염의 화신은

작렬하는 눈으로 내려다았다.

"정말 태우실 겁니까? 대답을 듣기  위해 천년을 기다려왔는데? 당신에

게 그 시간은 별 것이 아니겠지만 제겐 그렇지 않습니다."

"대호왕이 위험해져도 괜찮은 건가?"

"그 이유뿐입니까? 다른 이유는 없는 겁니까? 아까 당신은 제게 관련된

이유가 좋겠다고 하셨지요. 그렇다면 저와는 관련이 없는 이유도 있다는

겁니까?"

"그래."

"그건 어떤 이유입니까?"

"너와는 관련이 없어."

"그래도 말씀해주십시오."

륜에게 다시 유해의 폭포가 니름을 걸어왔다.

[륜 페이. 방해하는 것이라면 미안한데,  뭐가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건가? 그렇다면 기다리겠어.]

[잠시만 그래주십시오.] "그 이유가 뭡니까?"

"설명하지 않겠다. 비켜."

"제가 비키면 태울 생각이군요. 그렇지요?"

"그래."

륜은 비늘을 세우며 신의 명령을  거부하는 행위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것은 그로 하여금 신을 감금한 수호자들의 행위를 연상케 했다. '나가

는 이런 종족인 것일까?'

"설명해주십시오. 그러지 않으면 비켜드릴 수 없습니다."

시우쇠는 고개를 약간 기울이며 웃었다.  그가 내뿜는 코웃음은 불길이

었다.

"나에게 대적하겠다는 거냐?"

"설득하려고 애쓸 겁니다."

"왜 설득하려는 건지부터 설명해봐. 페로그라쥬의 파괴자."

시우쇠가 사용하는 호칭들은 언제나 단순하지  않았다. 그리고 '페로그

라쥬의 파괴자'라는 호칭이 의미하는 바는 '갇힌 여신의 신랑'보다 훨씬

적대적이었다. 륜은 요란하게 부딪히는 비늘을 눕히려 한참 동안 애써야

했다. 시우쇠는 빙긋 웃으며 그런 륜을 바라보았다.

륜은 시우쇠를, 그리고 통로를 바라보았다.  시우쇠의 몸에서 흘러나오

는 열기는 피라미드 내부의 차가운 공기를  격렬히 춤추게 했다. 팔짱을

낀 채 가만히 서 있었지만 륜의  눈에 보이는 시우쇠는 끝없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저에겐 아버지가 없습니다."

륜의 목소리는 나직했다.

"15년 전, 아버지는 제 눈 앞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심장 파괴를 당하신

겁니다. 저는 사람이 쉽게 죽지 않는 세상에서 자라났습니다. 가족이 죽

을까봐, 친구가 죽을까봐, 자신이 죽을까봐  매순간 두려워할 필요가 없

는 세상에서 자라난 나가입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도저히 심장을 적출할 수 없었습니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심장 적

출은 불사를 담보받는 것이었지만 제겐 그  반대였습니다. 제게 심장 적

출은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친구가 죽

었습니다. 그 날 저는 제  세상에서 도망쳤습니다. 비에나가가 되었습니

다. 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륜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손가락 끝의 거센 맥박을 느꼈다.

"거룩한 신이여. 당신들이 우리를 '먹는  존재'로 만들었다고 하셨습니

까? 그렇군요. 생명은  유지입니다. 지속입니다. 생명의  틀이 깨어지지

않도록 틀 밖의 것을 파괴하는 것이  생명입니다. 그것이 '먹는' 것이군

요. 사는 것은 먹는 것이군요. 잘 알겠습니다."

륜은 손을 펴 가슴을 만졌다.  그 느린 동작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무의미한 동작이었다. 륜은 울음을 터뜨렸다.

"왜 이 이야기를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왜 당신을 설득하고 싶

은 것인지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설명할 수 없나?"

시우쇠는 주의깊은 태도로 질문했다. 그의  본성에 어울리지 않는 일이

었다. 륜은 그 목소리가 마치 잘 떠올려보라고 부드럽게 권유하는 것 같

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륜은 떠올릴 수  없었다. 은루로 얼굴을 적신 채

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못하겠습니다."

시우쇠는 턱을 만지작거렸다. 손가락과 턱 사이에서 불꽃이 튕겼다. 그

는 결심한 듯 말했다.

"한 가지 정도 네게 줄 것이 있다. 다른 것을 더 원하지는 마. 내가 저

눈물처럼 흐르는 죽음을 태우는 것은 어떤  자를 구출하기 위해서다. 갇

혀 있기에 그 힘을 타인에게 빼앗기고 있는 자를."

륜은 기겁하여 시우쇠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여신과 저 유해의 폭포가 무슨 관계가 있는 겁니까?"

"더 원하지 말라고 했다. 륜  페이. 용인인 너는 돌아갈  길을 다 알고

있겠지. 돌아가라."

륜은 항변하려 했다. 그러나 시우쇠는 신의 음성으로 말했다.

"돌아가라."

거부가 불가능한 명령이었다. 륜은 고개를 떨구었다. 시우쇠의 옆을 지

나친 륜의 발걸음이 서서히 빨라졌다. 마침내 륜은 정신없이 달려갔다.

홀로 남겨진 시우쇠는 유해의 폭포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당황하고 있

었다. 긴긴 세월의 기다림 끝에 답을 줄 수 있는 자가 도래했지만, 그의

말을 전해줄 통역자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언젠가처럼 그 폭포는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유해의 뱀으로 바뀐 폭포는 시우쇠를 바라보며 안타까움

이 담긴 여러 동작들을 취해보였다. 허리에 손을  얹은 채 그 모습을 바

라보던 시우쇠가 갑자기 표현했다. 유해의 뱀은 깜짝 놀랐다.

[니르실 수 있군요!]

시우쇠는 표현했다. 유해의 뱀은 온몸을 진동시키며 격렬하게 닐렀다.

[아니라고요? 아니, 상관없습니다. 의미를 알  수 있으니까. 대답해 주

십시오, 대답해 주십시오, 대답해 주십시오! 두억시니가 왜 신을 잃었습

니까?]

[네? 잃지 않았다니, 그게 무슨 뜻입니까?]

[연결을 끊으라고요?]

유해의 뱀은 대호왕의 곁에 있는 스물  두 명의 두억시니들과의 연결을

끊었다. 다음 순간 유해의 뱀은 다시 연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

다. 시우쇠는 표현했다.

[묶였다고요?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연결을 끊었으니, 가

르쳐주십시오. 잃지 않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시우쇠는 가르쳐주었다.

티나한이 뛰쳐나가며 열어젖힌 문이 바람에  흔들렸다. 거친 바람은 방

안의 물건들을 닥치는대로 흔들고 쓰러뜨렸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비

형은 일단 문부터 닫기로 했다. 문을 닫고 돌아온 비형은 케이건을 바라

보며 말했다.

"글쎄요. 왁! 하고 놀래키는 것과 비슷한  거라고 생각되기는 한데, 그

런 취미가 있으십니까?"

"티나한을 불러오시오."

"당신이 몸 닦고 옷을 갖춰입기 전에는 절대로 돌아오지 않을 텐데요?"

케이건은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몸을 닦았다.  하지만 마음이

성급했기에 케이건은 제대로 닦지  않은 채 바지에  다리를 끼워넣었다.

당연히 젖은 다리에 바지가  달라붙어 케이건을 쩔쩔매게  했다. 비형은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당신을 만난 이후로 처음  보는 광경인 것 같군요.  왜 그렇게 침착을

잃으신 겁니까?"

티나한도 마찬가지 의견인  듯했다. 멀리 도망가지  않았는지 바깥에서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동감이다! 도대체 왜 갑자기 목욕탕에서 뛰쳐나오고 난리인 거냐?"

"바깥에 있는 거요, 티나한? 잘됐군. 주인에게 가서 개썰매를 준비해두

라고 하시오. 우리는 최후의 대장간으로 돌아가야 하오. 당장!"

어처구니가 없는 것인지, 혹은 케이건의  말을 따르기 위해 달려가버린

것인지 밖에서는 아무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비형은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쓰며 말했다.

"뭔가 급한 일이 있는 모양이군요. 하지만  개썰매로 가려면 시간이 많

이 걸릴 텐데요. 제가 날아서 가는 편이 빠르지 않겠습니까?"

웃옷에 팔을 끼워넣으려 애쓰던 케이건은 멈칫하며 비형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곧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신은 안되오. 티나한이 달려간다면… 아냐. 역시 우리 셋이 함께 가

야겠소."

"왜 제가 가면 안되지요?"

"어쩌면 피를 볼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대답을 끝낸 케이건은 자신이 방 안에 홀로 남겨진 것을 알게 되었다.

바라기와 다른 짐까지 챙겨들고 밖으로 나온 케이건은 기대하던 개썰매

대신 부풀어오른 티나한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에 실망했다. 마당 한가

운데서 기다리고 있던 티나한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비형에게 이상한 말을 들었는데, 너 혹시  최후의 대장간을 상대로 전

쟁이라도 벌이겠다는 거냐?"

"정신 나가지 않고서야 도대체 누가 그런 짓을 벌이겠소?"

"그렇다면 비형에게 한 말은 도대체 무슨 의미야?"

"그건 말 그대로의 의미요. 하지만 폭력적인 사태는 절대로 없을 거요.

시간이 없소. 티나한. 우리는 신체를 찾았소."

티나한과 비형은 깜짝 놀랐다. 티나한은 말까지 더듬었다.

"시, 신체를? 신체를 찾았다고?"

"그렇소. 조금 전 갑자기 깨달았소. 그  사금파리는 틀리지 않았소. 신

체는 최후의 대장간에 있었던 거요. 당신과 싸웠던 그 여인 기억나시오?

그 여자가 왜 거기 왔겠소?"

불쌍한 티나한은 완전히 넋이 나갔다.

"남편 암살할 여자…! 그 여자가?"

이번에는 케이건이 넋이 나가버렸다.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티나한

을 바라보던 케이건은 곧  자신을 돕기로 결정했다.  케이건은 개썰매를

준비하기 위해 달려갔다. 케이건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티나한과 비형은

허둥지둥 자신의 짐을 챙기기 위해 달려갔다. 불과 몇 분도 지나지 않아

티나한과 케이건은 대단히 전격적인 동작으로  라호친을 떠났다. 그리고

라호친 시내를 뛰어다니며 보급품을 구입한  비형은 조금 늦게야 출발했

다.

시구리아트 관문요새의 은밀한 방에서, 데오늬 달비는 초조하게 왔다갔

다 하고 있었다. 반 시간 가까이 그러느라  방의 폭이 열일곱 걸음에 해

당한다는 것을 알게 된 데오늬는 문득 달린다면 몇 걸음일까 궁금해하게

되었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바르사 돌  교위는 자신이 뭔가 새로운

것을 익히기엔 너무 나이를 많이 먹었다는  식의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

다. 그리고 그런 믿음은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 아무런 경고가 없었음에

도 불구하고 바르사는 데오늬가 달리기를  시작하자마자 벽에 등을 붙였

다. 그의 앞을 지나치던 데오늬는  감탄하며 교위를 바라보았다. 바르사

는 그만 외면하고 말았다.

잠시 후 바르사는 그녀에게 걸어갔다. 옆을 보고 달리느라 벽을 들이받

고 쓰러진 데오늬에게 손을 건네며 바르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참견하고 싶진 않지만, 되도록 앞을 보며 달리게."

"감사합니다, 교위님!"

"별 말을. 그런데 '이번에는' 왜 달린 거지?"

데오늬의 설명을 들은 바르사는 우울한 표정이 되었다. 5분 전, 그러니

까 갑자기 달리기를 시작한 데오늬가 바르사의 발을 밟고 지나가는 사건

이 벌어졌을 때 설명을 요구받은 그녀는 '방 안의 온도가 높아지지 않을

까 하여' 그렇게 했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바르사는 기특한 생각이지만

무리할 필요는 없다고 말해줄  수 있었다. '하지만  방의 폭이 얼마인지

궁금해졌다는 부하는 어떻게 다뤄야 할까?' 바르사는  알 수 없었고, 그

래서 별 지시를 못내리고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방 가운데를 바라보았다.

방 가운데는 탁자가 놓여있었고 그 위에는  다섯 명의 수호장군들이 누

워있었다.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배  위에 천이 덮여 있었다. 그리고

그 천은 탁자 옆으로 늘어져 물독에 담겨 있었다.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장치였다.  천은 물독에서 물을  빨아들여 계속

젖어있게 된다. 그럼으로써 수호장군들의 체온을  낮게 유지한다. 이 추

운 곳에서는 그런 정도의 조치로도  수호장군들을 가사 상태에 빠트리는

것이 가능했다. 그것은 그들을 물독에 집어넣어 익사의 위험을 감수하는

것보다 훨씬 안전한 방법이기도 하다.

다른 네 수호자는 그런 식으로 잠들어 있었다.  하지만 한 명의 수호장

군에게서는 천이 제거되어 있었다. 그들은 그 수호장군이 의식을 회복하

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호장군이 눈을 떴다. 바르사는 눈짓을  보내었고 대기하고 있던 북부

군 병사들이 작살검을 뽑아들었다. 수호장군은  서서히 정신을 차리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르사는 그가 상황을  이해할 시간을 주었다. 마침

내 수호장군이 입을 열었다.

"깨운 것을 보니 대나무 군단이 지나갔나 보군요. 그런데 왜 나만 깨운

겁니까?"

"그들은 다시 돌아왔소. 키베인.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

소?"

키베인은 가사 상태의 후유증 때문에  약간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냉기

에서 해방된지 얼마 되지 않은 몸에는  아직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입을

움직여 목소리를 만드는 것에도 과도한 노력이 필요했다. 키베인은 한참

동안 바르사의 말을 생각해보고나서야 대답했다.

"그러고보니 춥긴 하지만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의 날씨군요. 갈로텍 대

장군이 가까이 있나 보군요?"

"그렇소. 그리고 이 요새와 전투 중이오. 지금은 잠시 물러나 있지만."

"대장군이 다시 돌아왔다면 당신들의 속임수가 탄로났나 보군요."

"그런 것 같소. 당신네들은  우리 생각보다 더  도깨비불에 익숙해졌나

보오."

"알겠습니다. 그런데 왜 나를 깨운 겁니까? 내게 뭘 바라는 겁니까?"

"당신들의 대장군이 벌이고 있는 이상한 일 때문이오. 어르신들의 보고

에 의하면 대나무 군단은 지금 나무를  닥치는대로 잘라서 대형 공성 병

기를 만들고 있소. 나는 믿을 수 없었소."

키베인은 놀랐다.

"나무를?"

"음? 아, 그렇소. 나무를  자른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군.  하지만 내가

놀란 것은 당신들에게 그런 것을 제작할  기술이 있다는 사실이었소. 그

런데 알고 보니 당신들의 대장군은 군령자더군. 어떻게 나가가 군령자가

될 수 있는 건지는 여전히 모르겠소만. 혹시 알고 있으시오?"

"나가가 군령자가 된 것이 아니라 군령자가  나가를 선택한 겁니다. 어

떤 군령자가 한계선을 넘어왔습니다. 나가로 사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

각에. 그리고 만난 것이 갈로텍 대장군입니다. 이로써 당신은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다 알게 되었습니다."

"흐음… 알겠소. 그들에게 그럴 능력이 있다는 것은 이해했지만, 그 의

도는 여전히 짐작이 가지 않소. 당신들은 나무를 베는 것을 그다지 좋아

하지 않지요? 그런데 지금 대나무 군단은 그렇게 하고 있소."

"이상한 일이군요."

"나는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소. 설명할 방법이 있거든."

키베인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바르사를 바라보았다. 바르사는  씩 웃었

다.

"나가들이 어떤 희생을 하더라도 구출해야  하는 대단히 중요한 인물이

당신들 다섯 명 중에 있다고."

키베인은 긴장했다. 바르사는 손을 들어 그를 가리켰다.

"그리고 그 자는 아마 당신일 거요. 당신들 다섯 명 중 항상 당신이 대

표로 이야기하더군."

"물론 내겐 나 자신이  중요하지만, 글쎄요. 당신은 뭔가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군요."

"시치미떼 봐야 소용없소. 키베인. 나가들이  나무를 찍어 베어내다니,

어처구니 없는 소리지."

"그들에겐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겁니다."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소. 당신을 구하려는 거지.  그러니, 제안 한

가지 하겠소."

키베인은 잠자코 듣기로 했다. 바르사는  창밖을 가리키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우리는 빨리 즈믄누리로 돌아가야 하오. 그런데  밖에 저렇게 나가 군

단이 버티고 있으니 이곳을 떠날 수가 없소. 그래서 우리는 당신을 그들

에게 돌려주고 대신 길을 얻을 작정이오."

"길을 얻는다고?"

"그렇소. 이곳에서 좀 떨어진 곳에 도로왕의  옛길이라 불리는 곳이 있

소. 산맥을 넘는 옛날 길인데, 지금은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서 대규모

인원이 다가오긴 힘들지. 우리는 오늘밤 그 길로 해서 산맥을 넘어갈 거

요. 그 동안 대나무 군단은  요새에서 볼 수 있는 곳에  모여 있어야 하

오. 만일 대나무 군단이 사라진다면 유료도로당의 당원들이 즉각 당신을

처형할 거요. 무슨 말인지 알겠소? 우리가  다 넘어간 다음 당신을 풀어

줄 거요. 그러면 그들은 당신을 데리고 천천히 산맥 옆을 돌아서 이곳을

떠날 수 있겠지."

키베인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에겐 다행스럽게도 바

르사는 그에게 대답할 시간도 주지 않았다.

"몸을 좀 녹이면서 기다리도록 하시오. 잠시  후 당신을 요새 꼭대기의

창문으로 데려가겠소. 그곳에서 내가 말한대로 전달하시오. 어르신을 보

내어 전해도 되겠지만 당신이 직접 말하는 편이 더 호소력이 있겠지. 알

겠소?"

그리고 바르사는 데오늬와 함께 방을 나갔다. 작살검을 든 병사들은 방

안에 남아서 키베인을 감시했다. 자신의 처신에 대해 고민하던 키베인은

머리가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요새의 복도를 걸으며 데오늬는  자꾸만 달려가고 싶은  것을 억누르려

애썼다. 이야기를 하면 좀  나아질 거라고 생각한  데오늬는 바르사에게

말을 걸었다.

"교위님. 질문이 있습니다."

"하게. 데오늬."

"조금 전의 추리에 정말 감탄했습니다. 그런데 키베인 수호장군님이 어

떤 분이기에 나가들에게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요?"

바르사는 데오늬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고개

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녀석은 다른 수호장군들과 똑같은 정도로 중요하겠지."

데오늬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바르사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씀입니까? 그 분이 중요하기 때문에  다른 나가들이 나무를 베

면서까지 하면서 구출하려고 애쓰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 않아. 저 녀석들이 이 요새를  통과하려 애쓰는 것은 키베인이

나 다른 수호장군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빨리 남쪽으로 돌아가기 위

해서다. 북부군이 하텐그라쥬로 향하고 있으니  갈로텍은 빨리 남쪽으로

돌아가 그들을 상대해야겠지. 그래서 공격을 서두르고 있는 거다."

"그러면 교위님께서는 왜 키베인 장군이 중요 인물이라고 하셨습니까?"

바르사는 빙긋 웃었다.

"달비 부위. 조금 전  그들이 남쪽으로 가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그런

그들에게 이 산맥을 넘는  다른 길이 있다고  알려준다면 어떻게 행동할

까? 내 생각이지만 오늘밤 갈로텍은 군단  전체를 이끌고 도로왕의 옛길

에 나타날 거다. 그리고는 키베인을 중요  인물이라고 믿고 있는 우리의

멍청함을 비웃으며 산맥을 넘어가려 하겠지."

데오늬는 미간을 찡그린 채 바르사의 말을  생각하다가 곧 탄성을 질렀

다. 바르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구리아트 유료도로당의 당원들이 가르쳐줬다. 그 길은 상태가 좀 좋

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끊어져  있어. 레콘들도 당의 유료도로를

이용할 정도이니, 뻔하잖아? 하지만 갈로텍은 그것을 모르지. 우리는 그

들이 요새 앞에서 사라지면 저기로 나가서 그들의 뒤를 따라가다가 끊어

진 길에 대나무 군단을 모두 몰아넣은 다음 기습하는 거다. 갈로텍은 날

씨 조절하느라 꼼짝도 못할 거다. 우리를 공격하기 위해 날씨 조절을 포

기해버리면 나가들이 얼어붙을 테고. 갈로텍이  남쪽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 만큼이나 우리는 그들을 보내줄 수 없어. 갈로텍이 절대로 시구

리아트 산맥을 벗어날 수 없도록 해야 해. 알겠나?"

"잘 알겠습니다!"

키베인은 결국 바르사의 요청대로 요새  꼭대기에 올라가야 했다. 바르

사는 미리 어르신을 보내어  갈로텍으로 하여금 요새  가까이로 오게 했

다.

북부군 병사들에게 포위당한 채 키베인은 창문 앞에  섰다. 잠시 후 먼

곳, 길이 굽이치는 곳에서 갈로텍이 말에  탄 채 나타났다. 키베인은 갈

로텍이 가까이 다가옴에 따라 날씨가 더  따뜻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

았다. 물론 갈로텍 자신이 열원이거나 한  것은 아니기에 그것은 키베인

의 착각이었다.

갈로텍은 쇠뇌의 사정 거리 안쪽까지 들어오는 호기를 보였다. 그가 도

로 가운데 멈춰섰을 때 키베인은 그를 향해 닐렀다. 키베인은 되도록 간

략히 니르자고 결심하고 있었다. 인질이 되어있는 것도 모자라 정체까지

탄로났다는 사실이 창피했기 때문이다. 바르사는 창문 옆에 서서 키베인

과 갈로텍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갈로텍은 잠자코 키베인의 니름을 들었다. 그리고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키베인이나 바르사 돌, 그리고  데오늬가 초조함을 이기지 못하

고 어쩔 줄 몰라할 때 갈로텍은 대답했다. 그런데, 그것은 육성이었다.

"무슨 속임수를 쓰려는 것이냐? 이 산에 사람이  넘을 수 있는 길은 이

길 외에는 없다."

키베인은 어리둥절하여 바르사를 쳐다보았다.  해명을 요구하는 눈빛이

었지만 바르사는 그 요구를 들어주는 대신 놀란 표정으로 갈로텍을 바라

보았다. 갈로텍의 말은 계속되었다.

"도로왕의 옛길은 끊어져 있지. 당원이  분명히 가르쳐줬을 거야. 그런

데 그런 길로 넘겠다니? 그렇다면, 흐음.  그렇군. 이중의 속임수군. 우

리를 그 끊어진 옛길로 몰아넣으려는 것이군.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머리

를 꽤 쓰는 친구가 있는 모양인데."

바르사는 이를 갈며 속삭였다.

"제기랄! 저 녀석 군령자라더니 당원의 영도 가지고 있는 건가?"

주퀘도가 관문요새를 향해 외치는  동안 갈로텍은 키베인을  향해 닐렀

다.

[대수호자님. 죄송합니다만 당신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이야기

하겠습니다. 만일 당신이 키보렌의 대수호자라는  것이 밝혀지면 저들에

게 큰 화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저들도 당신이 대단한 인물이라고 생각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조금 전 이곳의  지리를 잘 아는 사르마크 상

장군과 의논해본 바 저들은 이중의 속임수를 쓴 것입니다.]

그리고 갈로텍은 바르사의 계략을 간략하게 정리해서 들려주었다. 키베

인은 감탄의 니름을 보내었다. 그 속 편한 반응에 비늘이 부딪힐 지경이

었지만 갈로텍은 꾹 참으며 닐렀다.

[꼭 구출해드리겠습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저들이 당신에게 크게

신경쓰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아무 걱정 마시고 기다리십시오.]

주퀘도는 비아냥을 잔뜩 섞은 어투로  바르사의 계략을 떠벌렸다. 바르

사는 미간을 찌푸린 채 그것을 들으며  대응을 고심했다. 그런데 주퀘도

의 말이 점점 그 대상을 바꿔갔다.  바르사, 혹은 북부군을 겨냥하여 외

치던 말은 어느새 유료도로당을 향해 있었다.

"이 짐승의 굴 같은 요새에 기대어 만인에게  오만을 부리는 짓에도 이

제 고별을 해야 할  것이다! 너희들의 수의는 오래  전에 결정되어 있었

다. 너희들은 산양의 가죽에 싸인 채 계곡에 버려질 것이다!"

요새의 다른 부분들에서 당원들의 거친  욕설과 저주가 터져나왔다. 그

것은 북부군과 나가들의 일, 즉 여행자들  간의 일이었고 거기에 참견하

는 것은 유료도로당의 정신에  맞지 않았지만, 주퀘도의  폭언은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주의 방에서  창문을 통해 아래를 내려다보

던 케이 보좌관은 나가임에 분명한 자가 토해내는 증오에 미심쩍은 기분

을 느꼈다.

요새에서 들려오는 폭언에 주퀘도는 사납게 웃었다.

"개자식들. 250년 전 내게 은편 열 닢을 받아낼 때의 그 거만함은 어떻

게 된 거냐?"

당원들과 북부군은 엉뚱한 숫자에 당황했다.  그러나 케이 보좌관은 섬

뜩한 기분을 느꼈다. 그는 눈을 비비며  나가를 바라보았다. "설마?" 그

때 주퀘도가 목이 터져라 외쳤다. 나가의 목을 빈 그 목소리는 처절하면

서도 아름다웠다.

"이 산적놈들아, 귀를 씻고  잘 들어라! 죽음을 뛰어넘어  내가 돌아왔

다! 주퀘도 사르마크가 시구리아트 관문 요새에 돌아온 것이다!"

바르사 돌은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는  창턱을 짚으며 비명처럼 외

쳤다.

"죽음의 거장!"

유료도로당의 당원들도 충격 때문에 침묵했다.  죽음의 거장은 그 침묵

에 만족하며 오른손을 높이 들어올렸다. 그러자 하늘 저편에서 돌덩이들

이 폭풍처럼 날아왔다. 대수호자를 구출하기 위한 일념으로 나가 병사들

이 슬픔을 억누른 채 만든 투석기들이 일제히 발사된 것이다.

머리 위로 수천 개의 돌덩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날아갔지만, 주퀘도는

꿈쩍도 하지 않은 채 무한히 차가운 미소를 흘렸다.

최후의 대장간의 계단에서, 시루는 눈을 찌푸린 채 빙원을 노려보고 있

었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비형 스라블이 어쩔 줄 모르는 모습으로 서있

었다. 비형은 그 자리가  거북했다. 다른 두  사람보다 먼저 도착했지만

아무 것도 설명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비형은 주저하며 말했다.

"곧 올 것 같은데… 한 번 더 날아가볼까요?"

"됐네. 저기 오고 있으니까."

비형은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과연 시루의 말처럼  무엇인가가 언덕을

넘어오고 있었다. 잠시 후 그 무엇인가는  완전히 지쳐버린 레콘과 인간

으로 바뀌었다. 꼴이 말이 아니었다. 개썰매는 티나한이 끌고 있었고 그

자리에 있어야 할 라호친가히들은 케이건과 함께 썰매에 실려있었다. 물

어보지 않아도 대충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최후의 대장간 앞에 도달하자마자 티나한은 쓰러졌다. 그리고 케이건은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로 힘겹게 썰매에서  걸어나왔다. 화를 내어주리라

마음먹고 있던 시루는 그 모습에 차마 언성을 높일 수 없었다.

"정말 오늘 도착할 줄은 몰랐네. 닷새만에 오다니. 고생 많이 했겠군."

케이건은 얼굴에 붙은  얼음조각들을 떼어내느라 말을  제대로 못했다.

시루는 어눌하게 말했다.

"정말 미안하지만 대장간에는 들어갈 수 없네."

놀란 티나한은 피로에도 불구하고 벌떡  일어나 앉았다. 하지만 비형은

놀라는 대신 빙원 한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큼직한  얼음집이 있었

다. 라호친 사람들이 만드는 반구형의  얼음집이었다. 시루 역시 그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밖에 얼음집을 만들어 두었네.  저곳에서 머물도록 하게. 보기에

는 을씨년스럽지만 그래도 꽤 지낼 만하다네. 비형은 이미 지난 밤 저곳

에서 머물렀네."

비형은 지난밤에 저 안에서 도깨비불 피워놓고 자보았더니 꽤 괜찮더라

는 식으로 시루를 거들었다. 묵묵히 듣고 있던 케이건은 간신히 입을 열

어 잔뜩 쉰 목소리로 말했다.

"들어갈 거요."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그럴 수가 없네."

케이건은 쉰 목소리로 말했다.

"이해하오."

"뭐? 이해하다니, 무슨 말인가?"

"왜 못 들어가는지 이해하오."

시루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케이건을 바라보았다.  말을 하기가 퍽 힘든

듯 케이건은 몇 번이나 숨을 몰아쉰 다음에야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런 금기도 잠시 접어두어야겠소."

"자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가?"

"그런다고 해서 마귀가 붙거나 하지는 않소.  신체에 마귀가 붙을 리도

없고."

이 대화에 참여할 수 없다는 사실에  매우 애석해하던 티나한과 비형은

시루의 반응에 놀라고 말았다. 시루는 세  배로 부풀어오른 채 케이건을

바라보았다. 시루가 분노하여 케이건을 때려죽이려 마음 먹은 것은 아닌

가 하며 긴장한 두 사람은 곧 자신들의  생각이 틀렸음을 알 수 있었다.

시루는 경악하고 있었다. 말도 못할 정도로.

"그, 그, 그럼 자네 말은…?"

"그렇소."

티나한은 결국 끼여들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지 못했다.

"케이건. 그럼 진짜 그 남편 암살할 여자가 신체인 거야?"

케이건은 힘이 쭉 빠졌다. 그가 진력이  났다는 것은 분명했지만, 티나

한이나 비형은 케이건이 화를 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의 예

상대로 케이건은 친절하게 말했다.

"티나한. 접시가 안 붙었잖소."

"그래. 그랬지. 그러면?"

"그 여인은 결혼 못한 것이 아니오. 아마 오래 전에 결혼했을 거요. 그

것도 첫째부인이겠지."

"결혼한 여자가 뭐하러 무기를 받으러 오냐?"

"받으러 오긴 했지만, 무기는 아니오. 그 여인은 아기를 받으러 왔소."

비형은 해괴한 비명을 지르며 시루를 돌아보았고 티나한은 깃털을 사정

없이 부풀렸다. 시루는 수염볏을 떨며  케이건을 보고 있었다. 케이건은

차분하게 말했다.

"진작 말해주지 않은 것에 대해 화를 낼 수도 있지만 관두겠소. 어차피

태어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던 것은 마찬가지일 테니. 사금파리는 이곳에

나타났소. 그렇소, 시루. 우리가  찾던 신체는 요즘  대장간에 못나오게

되었다는 최후의 대장장이의 태내에 있었던 거요. 지금 쯤은 나왔을지도

모르겠군. 어떻게 되었소?"

시루는 어지러운 듯 기둥을 짚었다. 케이건은 무뚝뚝하게 말했다.

"어떻게 되었소?"

"어제… 태어나셨네."

케이건은 안도했다.

"다행이군. 그러면 숯이나 준비해주시오. 대장간이니 많이 있겠지."

티나한은 신생아가 있는 집에 부득이하게 외인을  들일 경우 취해야 하

는 수단이 그렇게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시루는 케이건의 요구대로 숯을 가져왔다. 티나한은 케이건이 시키는대

로 벼슬에 숯을 문질렀다. 그리고 케이건과  비형은 각자 이마에 문질렀

다. 하지만 그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 동안 다른 대장장이가 사태를 깨닫

고 밖으로 나왔다. 그가 제기한 '소금을  몸에 뿌리지 않고 어떻게 외인

이 들어올 수 있느냐'는 주장에 케이건은 묵묵히 소금을 부탁했다. 시루

가 황급히 소금을 가지러 달려간 후에  또다른 대장장이가 나왔다. 무슨

요구를 듣게 될지 두려워하고  있던 비형과 티나한은  곧 질문의 홍수에

빠지고 말았다. '근래에 상가에 들린 적이  있느냐, 동쪽으로 흐르는 물

을 건넌 적이 있느냐, 뱀허물을 만진 적이 있느냐, 기타등등.' 대장장이

는 그 질문들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입장을  취했고, 그래서 티나한과 비

형은 성심껏 대답했다. 하지만 그들은 속으로 도대체 왜 그런 것을 알아

야 하는지를 설명해주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는  와중에 소금이

도착했고 수탐자들은 몸에 소금을 뿌렸다. 그러나 대장간 입장은 허락되

지 않았는데, 복숭아 나무로 어깨를 몇 번 두드려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

한 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시루는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으로 황급히 목

재 창고로 달려갔고 티나한과 비형은 슬슬  약이 오른다고 생각했다. 하

지만 케이건은 강철 같은  표정으로 묵묵히 기다렸다.  케이건의 냉엄한

얼굴은 어떤 고집스러운 레콘이 그런 모든 조치를 취하더라도 외인은 출

입금지라고 주장했을 때조차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티나한은  더 참지

못했다.

"제기랄, 정말 같은 레콘으로서 인간 볼 낯이 없군, 그래. 케이건은 하

라는 짓 꼬박꼬박 다 했잖소! 그런데 이제  와서 안 된다고? 젠장, 그렇

다면 전쟁이다!"

꽤나 험악한 사태가 벌어질 뻔했지만 다행히도  먼저 여러 가지 처방을

제시했던 자들이 그렇게까지 별짓을 다  시킨 다음에 못들어온다고 말하

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티나한을 거들고 나서자 고집스러

운 레콘도 한 발 물러났다.

그리하여 그들은 간신히 최후의 대장간에 들어섰다.

대장간 내부의 공기는 긴장되어 있었다. 젊은 레콘들은 모두 행동을 조

심하고 있었다. 티나한은 저들은 외인이 아니냐고 외칠 뻔했지만 그들이

일정 구역 이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깨닫고는 항의를 삼켰다. 젊은

이들은 모두 숙소 근방에만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수탐자들은 보다 내

밀한 곳까지 안내되었다. 주위의 엄숙하기까지 한 분위기에 비형은 목소

리를 낮추었다.

"그런데 케이건. 물어볼 것이  있는데요. 왜 시간이 없다고  하신 겁니

까?"

"무슨 말이오?"

"급히 이곳으로 오자고 하셨잖습니까. 하지만 그  아기가 어디로 갈 리

도 없잖습니까?"

"바로 그게 문제요."

"예?"

"그 아기는 어디로 갈 수가 없소. 방금 태어난 신생아를 그 어미에게서

떼내어 전쟁터로 데리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오. 하필이면 신생아라니,

기박하다고 할 밖에."

듣고 있던 티나한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비형 또한 걱정스러운 얼굴로

케이건을 바라보았다.

"내가 서두른 것은 그 아기보다 다음 신체 때문이오. 그 아기가 북부군

에 아무런 도움이 못 될 가능성이 있는  이상, 빨리 접시를 복구한 다음

어디에도 없는 신의 신체를 찾아나서야 하오.  그리고 그 수탐이 이루어

지는 동안 그 아기가  걸을 수나 있게 되기를  바라야겠지. 레콘은 빨리

크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겠소."

"그렇군요. 그런데 어떻게 최후의 대장장이가  임신 중이라는 것, 그리

고 그 아기가 신체라는 사실을 추리해내신 겁니까?"

케이건은 잠시 침묵했다가 말했다.

"1년 만에 목욕을 하던 중 인간의 신생아 또한 1년 가까이 모친의 태내

에 있다가 나와서 씻겨진다는 사실이 떠올랐소.  그러자 모든 사실을 알

게 된 거요."

비형은 탄복하려 했다. 그러나 그 때 그들을 안내하던 레콘들이 걸음을

멈췄다. 그들이 안내된 곳은 응접실 같은 곳이었다. 수탐자들은 방 안에

앉았고 레콘들은 떠났다. 잠시 후 시루가 그들에게 왔다. 시루는 사금파

리들을 담아둔 상자를 내보였다.

"여기서 기다리게. 최후의 대장장이께서 아기를 데리고 오실 걸세."

"고맙소. 그런데 다른 것 하나를 더 부탁하고 싶소만."

"뭔가?"

케이건은 필요한 것을 말했다. 시루는  의아해하다가 곧 케이건이 요청

한 것을 가져다주었다. 그것은 물이 담긴 작은 주전자였다. 시루가 물러

간 다음 케이건은 상자와 주전자를  방바닥에 내려놓고는 피로를 떨쳐내

기 위해 애썼다. 티나한 또한 어디에도  없는 신의 신체를 찾아나서기는

커녕 그대로 쓰러져 이틀 쯤 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상대적으로

덜 피로한 비형만이 조바심을 내며 기다렸다. 그 때 몽롱한 표정으로 앉

아있던 티나한이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그런데 아이 아버지가 누구지?"

케이건은 피로한 눈을  들어 티나한을 바라보았다.  티나한은 수염볏을

비틀며 말했다.

"아기가 생기려면 아버지가 있어야 하잖아.  그런데 최후의 대장장이가

결혼했을 리가 없지. 결혼을 했다면 대장장이 일을 할 리가 없으니."

케이건은 어쩔 수 없이 약간 심드렁한 어조로 말했다.

"티나한. 꼭 결혼해야 아기가 생기는 것은 아니오."

티나한은 큰 충격을 받은 얼굴로  케이건을 바라보았다. 그가 케이건의

부도덕한 말에 대해 준엄한 질책을 하려  마음 먹었을 때 문가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그 말에 동의해."

수탐자들은 강보에 싸인 아기를 품에 안은 채 방 안으로 들어서는 레콘

여인을 발견했다. 수탐자들은 일어서려 했지만  최후의 대장장이는 고개

짓으로 앉아있도록 한 다음 자신 또한 방바닥에 앉았다.

비형은 거의 1년만에 보는 최후의  대장장이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았

다. 산고 때문인지 약간 피로해 보였지만 억센 팔뚝과 강인한 어깨는 여

전했다. 다른 모든 대장장이들의 동의를 얻어  최후의 대장장이가 된 그

녀의 위대한 경력은 쉬 지워지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을 가

득 채우고 있는 것은 어머니가 된 여인의 충만한 기쁨이었다. 한편 티나

한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최후의 대장장이를 바라보았다.

최후의 대장장이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 티나한. 무기를 받으러 왔던 어떤 젊은  레콘이 이 애의 아버지

야."

티나한은 수염볏을 뻣뻣하게 세웠다. 최후의  대장장이는 부리를 딱 부

딪혔다.

"나는 아기를 가지고 싶었다."

"아기를 가지고 싶으셨으면 결혼을 하셨으면 될 거 아닙니까."

"하지만 숙원도 소중했지. 최후의 대장장이가 되겠다는 숙원."

티나한은 수염볏을 붉히며 다시  항의하려 했다. 그 때  이야기를 늘일

생각이 없었던 케이건이 불쑥 끼여들었다.

"내가 아는 어떤 레콘도 숙원과 결혼을 모두 달성하겠다는 야심을 갖고

있었소."

티나한은 그만 할 말이 없어졌다. 그 레콘이  누군지 짐작한 최후의 대

장장이는 다시 웃으며 티나한을 바라보았고  티나한은 헛기침을 하며 외

면했다. 케이건은 상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축하드립니다. 아드님이오, 따님이오?"

"딸이야."

"이야기는 다 들으셨습니까?"

"들었다."

"잘됐군요. 그럼 시험해봐도 되겠소?"

최후의 대장장이의 얼굴에서 기쁨이 사라졌다. 그녀는 불안한 표정으로

강보에 싸인 아기를 내려다보았다.  깃털 대신 솜털로 덮여있는 그 어린

것은 깊이 잠들어 있었다.

"내가 낳은 것이… 정말 모든 이보다 낮은 여신이라는 거냐?"

"당신이 낳은 것은 레콘이오. 먼젓번 신체였던 자가 죽기 직전 그 신체

에 깃들어 있던 모든 이보다 낮은  여신이 당신의 따님에게로 전령한 것

이오. 물론 이것은 내 추측이 맞다는  전제 하의 이야기지만, 나는 맞을

거라고 생각하오. 하지만 확인해봅시다."

"먼저 말해줘. 만약 이 아기가 신체가 맞다면,  너희들은 이 아기를 화

신으로 바꿀 거지?"

"아마도 그렇게 될 것 같소."

"나는 평범한 도깨비였던 시우쇠가 너희들을 만난 다음 괴물 같은 자가

되었다고 들었다. 미안해, 도깨비. 하지만 시우쇠에 대해 들려오는 것은

모두 험악한 이야기들이었다."

비형은 수긍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후의 대장장이는 케이건을

노려보며 말했다.

"내 아기도 그렇게 변하는 거냐?"

"변하긴 할 거라 생각되지만, 어떻게 변할지는 나도 모르오."

"이 아이가 더 이상 내 아기가 아니게 된다는 것이군?"

케이건은 짙은 피로감을 느꼈다. 그는  신체를 찾을 각오가 되어있었지

만 신체의 어머니를 설득할 각오는 해두지 않았다. 그는 지금 이 순간에

도 나가에게 살해당하고  있는 북부인들을 생각해보라고  말하지는 않았

다. 그리고 대의(大義)와 운명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최후

의 대장장이를 지나치게 모욕하는 행위였다.

대신, 케이건은 속삭이듯 말했다.

"미안하오."

케이건은 자신이 세계를, 신을, 운명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

었다. 하지만 너무 빨리 자식과 헤어져야  하는 어머니가 원하기에 잠시

그들을 대신했다. 그녀 또한 케이건이 그들을  대신하여 사과할 수 없다

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대역을 용인했다.

최후의 대장장이는 긴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일어나라."

케이건은 상자와 주전자를 들고 일어섰다. 최후의 대장장이는 수탐자들

을 데리고 방을 나왔다.

그녀는 대장간의 가장 비밀스러운 장소로 수탐자들을 인도했다. 대장장

이들이 그들을 보며 놀라거나 혹은 다가서려는 몸짓을 했지만 최후의 대

장장이는 그들의 접근을 허락치 않았다. 얼마  후 그들은 대장간의 중심

부에 도달했다. 대장장이가 아닌 자들은 들어올 수 없는 곳이다.

비형과 티나한은 경외감에 사로잡힌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들이 들어선 곳에만 벽이 있었다. 다른 벽들은  모두 수십 미터에 달

하는 얼음이었다. 비형은  그것이 얼음산의 일부임을  깨달았다. 천장은

까마득한데다 투명한 얼음으로 되어 있어 높이를 짐작키 어려웠다. 바닥

또한 매끄러운 얼음이었다.

그 중심부에 별빛로가 있었다.

얼음으로 만들어진 로였다. 상식을 완전히  깨트리는 그 로의 내부에는

불이 피워지지 않는다. 대신 천장과 얼음벽을  통해 미끄러져 들어온 별

빛이 모여든다. 그곳에서  최후의 대장장이는 강철을  제련한다. 그리고

그 강철은 대장장이들의 손을 거쳐 천년이라도 버티는 레콘의 무기가 된

다. 최후의 대장장이는 수탐자들을 돌아보았다.

"이곳이 어디인지 짐작하겠지. 그래. 이곳에서 철은 별철로 바뀐다."

최후의 대장장이는 한팔로 강보를 받쳐들며 다른 손으로는 별빛로를 쓰

다듬었다.

"내 딸이 변하는 모습을 보기엔 가장  좋은 장소라고 생각되는군. 시작

해라."

케이건은 상자를 들고 앞으로 나섰다.

"바닥에 앉아주시겠소?"

최후의 대장장이는 그렇게 했다. 케이건은  그녀의 무릎 앞에서 상자를

열고 꾸러미를 펼쳤다. 그러자 사금파리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사금파리들이 달그락거리며 움직였다.

티나한과 비형은 숨을 죽인 채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몇 년 전 시우쇠

앞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사금파리들은 서로의 깨진 면을 찾아 움직였다.

하나둘씩 엉겨 큰 조각을 이루던 사금파리는 마침내 접시의 모습을 이루

었다. 최후의 대장장이는 슬픈 미소를 지었다.

"맞는 거냐?"

"그 아이는 신체요."

최후의 대장장이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케이건이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오."

"뭔가가 더 남았느냐?"

케이건은 가져왔던 주전자를 접시 위로 가져갔다. 그리고 하나가 된 접

시에 조심스럽게 물을 부었다. 최후의 대장장이는 약간 흠칫하는 모습을

보였고 그래서 케이건은 안심시키듯 말했다.

"시우쇠 앞에서도 이렇게 했소. 그러자 접시에  있던 액체는 다른 액체

로 바뀌었소. 도깨비들이  가까이 하기  싫어하는 어떤  액체로. 아시겠

소?"

최후의 대장장이는 가벼운 탄성을 질렀다. 비형은 그 날의 기억을 떠올

리며 진저리를 쳤다. 물이  붉은 기를 띠다가 마침내  피로 바뀌었을 때

비형은 질겁하며 도망쳤다. 하지만 그 때까지 평범한 도깨비였던 시우쇠

는 홀린 표정으로 접시를 내려다볼 뿐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케이건

의 요구에 따라 그 피를 마시고 화신으로 바뀌었다.

케이건은 주전자를 내려놓고 기다렸다. 하지만  한참 동안 기다려도 물

은 그대로였다. 케이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소. 시우쇠 앞에서  도깨비가 싫어하는 어떤

액체로 바뀌었으니, 같은 맥락에서  이번에 나타나야 하는  것은 레콘이

싫어하는 액체일 가능성이 있소. 그런데 레콘이  싫어하는 것은 바로 이

액체지."

최후의 대장장이는 자제력을 잃지 않은 채 질문했다.

"그걸 어쩔 생각이냐?"

"따님에게 마시게 할까 합니다만."

"알았다."

티나한은 당황하지 않는 그녀에게 놀랐다. 최후의 대장장이는 티나한에

게 웃었다.

"대장장이는 불만 다루는 것이  아니야. 담금질을 하려면  물도 필요하

지."

최후의 대장장이는 아기를 조심스럽게 깨웠다. 아기는 칭얼거리다가 눈

을 크게 떴다. 최후의 대장장이는 손수  접시를 들어올려 다시 티나한을

놀라게 한 다음 그것을 아기의 부드러운 부리로 가져갔다. 아기는 몇 번

도리질을 쳤지만 최후의 대장장이는 차분하게 아기를 달랬다. 마침내 아

기는 접시에 담긴 물을 받아마셨다. 최후의  대장장이는 빈 접시를 내려

놓고는 흥분과 불안에 휩싸인 눈으로 아기를 내려다보았다.

부리를 몇 번 부딪히던 아기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대장장이는 극

도로 불안한 표정으로 아기를 내려다보았다. 티나한과 비형은 아기의 울

음이 세상에서 가장 진귀한 소리라도 되는  양 주의깊게 들었다. 아기는

점점 더 크게 울었다. 불안에 떨리던  대장장이의 눈이 어느덧 놀라움으

로 바뀌었다. 아기의 울음은  끝을 모르고 커졌다.  그것은 곧 계명성의

수준을 뛰어넘었다. 더 견딜 수 없었던  비형과 케이건은 귀를 틀어막으

며 뒤로 물러났다. 조금 후에는 티나한마저 주춤하며 뒤로 물러났다. 아

기의 울음은 끝을 모르고 커졌다. 최후의  대장간이 통째로 진동하는 것

같은 거대한 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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숯은 정화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요. 숯과 함께 금줄에 사용되는 고추는

그 붉은색 때문에 축귀의 힘을 가지고 있고… 그러니 풋고추를 사용하면

안되겠지요. 하하.

좋은 밤 되세요.

제  목:눈물을 마시는 새.  11-4.                        관련자료:없음  [56009]

보낸이:이영도  (jin46   )  2002-07-13 02:56  조회:8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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