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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눈물을 마시는 새. 9-3. 관련자료:없음 [54302]
보낸이:이영도 (jin46 ) 2002-05-21 03:00 조회:12587
눈물을 마시는 새.
9. 출발하는 수탐자들 - 3
하텐그라쥬의 공회당은 주로 가문 평의회를 위해 이용된다. 하지만 그
외에도 몇 가지 공적 업무를 취급하기도 하는데, 기록보관소 또한 그런
공적 업무가 취급되는 곳이다. 기록보관소는 평의회 일지를 보관하며 그
외에도 여러 종류의 기록물을 보관한다. 그리고 유언장이나 계약서 등의
중요 서류에 대한 위탁 보관을 하기도 한다. 비아스 마케로우가 공회당
의 기록보관소를 찾은 것 또한 중요한 서류를 맡기기 위한 이유에서였
다.
하지만 비아스는 기록보관소에 들어온 후 꽤 긴 시간이 지나도록 자신
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잔뜩 흥분한 기록보관소장을 향해 비아스는
약간 짜증스럽게 닐렀다.
[콘수마 발텐. 물론 니르신 것처럼 사람에게는 개인차라는 것이 있습니
다. 하지만 저 이외에 다른 약술사라도 80세 이상의 연령에게 소드락 복
용을 권하지는 않을 겁니다.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심장을 적출했는데 무슨 문제가 생긴다는 겁니까?]
[물론 저도 전쟁이라는 것을 잘 알지는 못합니다만 전쟁이라는 것은 상
당한 육체적, 정신적 긴장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소드락
을 복용한 가속 상태에서 그런 긴장을 계속 경험하는 것은 심장을 적출
한 나가에게도 무리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수호자들은 연령
제한을 두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긴장? 잘 닐렀어요. 만약 이 성전(聖戰)에 나가지 못한다면 나는 긴장
과 분노 때문에 죽고 말 겁니다!]
비아스는 성전이라는 니름에 놀라지 않았다. 하텐그라쥬에서 이미 널리
쓰이고 있는 니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니름이 내포하고 있는 바
는 다시금 비아스를 놀라게 했다.
비아스는 나가가 교조적이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신전이 어디
에 있는지도 모르며 사제 계급 또한 없는 레콘조차도 어떤 면에서는 교
조적이라 할 수 있다. 레콘들은 목숨을 바쳐서라도 이룩해야 하는 숙원
에 도전하는 것을 좋아하며, 그 숙원에 대한 타인의 이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하건 이룩하고 말겠다는 그런 태도는 실로
교조적이다. 왕을 찾길 원하는 인간이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도깨비
들의 모습 또한 교조적이라는 특성에 부합한다. 하지만 나가는 현실주의
자이며 비이성적 태도를 거부한다. 심장 적출에 의해 획득한 불사의 육
체는 다른 자들의 육체보다 훨씬 소중하며,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도
없는 일에 목숨을 걸고 도전하는 레콘과 같은 태도는 현실적인 나가에겐
도저히 불가능하다.
성전이라니! 그들의 마지막 전쟁이었던 대확장 전쟁도 실로 현실적이고
논리적인 요구에 의한 것이었다. 산 것을 먹는 나가에겐 숲이 필요했고
곡물을 먹는 불신자들에겐 개간된 땅이 필요했다. 대확장 전쟁은 대단히
현실적인 가치관의 대립이었으며 그곳에는 교조적인 태도는 조금도 존재
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이성적인 나가들이 성전을 니르고 있는 것이다.
'기적 때문일까?' 비아스는 다른 이유를 떠올리기 어려웠다. 수호자들
은 여인들에게 실제로 행사되는 기적을 보여주고 있었다. 최고의 의사결
정자인 가주를 잃고 혼란과 두려움에 빠진 여인들은 수호자들이 행사하
는 기적에 경도되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비아스는 그런 설명에 만족하
고 싶지 않았다. '두억시니처럼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일까?' 비
아스는 그 설명이 더 마음에 들었다. 소중한 불사의 육체를 잃을지도 모
른다는 두려움이 여인들을 사로잡은 것이다.
하지만 그런 설명으로는 콘수마 발텐이 보여주는 것 같은 태도를 설명
할 수 없었다. 수호자들은 성전 참가 희망자들에게 나가다운 기준을 발
표했다. 보다 전쟁에 익숙한 인간들이었다면 전쟁 경험이 풍부하다거나
무기를 잘 쓴다거나 체력이 높은 자를 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전쟁 경험
이 있는 나가들이 존재할 리 없으며 - 굳이 찾아본다면 정찰대 경험이
전쟁 경험과 가장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빗길에 미끄러진 경험
을 가지고 풍부한 항해 경험이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 불사의
몸을 가진 나가들에겐 무기 다루는 기술이 크게 중요하지는 않다. 따라
서 수호자들은 소드락의 과다복용을 감당해낼 수 있는 체력을 요구했다.
그런데 여든 살이 넘은 기록보관소장이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소드락의
과다복용을 하겠다고 나서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태도는 하텐그라쥬 전
체에 만연해 있었다.
[부탁입니다. 비아스 마케로우. 당신과 같은 우수한 약술사가 보장해준
다면 우리 연배의 사람들이 훨씬 쉽게 성전에 참가할 수 있을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수호자들이 지나치게 깐깐한 기준을 내세우고 있다고 투
덜거리고 있어요.]
[콘수마. 나가서 싸우는 것만이 전쟁은 아닐 텐데요. 어, 그러니까 저
는 언젠가 병참이라는 니름을 읽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싸워야 하겠지
만 어떤 사람들은 그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 그리고 무기 등을 공급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설명을 하면서도 비아스는 자신이 니름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는 느낌을 받았다. 나가들의 식량 수송대는 산 동물을 수송해야 할 것이
다. 차라리 적군을 잡아먹는 쪽이 나을 것이다. 무기는 대장장이들이나
만드는 일이다. 콘수마에게 대장간 일을 하라고 니르면 결코 행복해하지
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비아스는 상대방이 자신보다 더 전쟁에 대해 모
를 거라는 것을 확신하며 계속 병참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스스로를 바
보로 만드는 기분이었다. 결국 비아스는 다 포기하고는 수호자들을 만나
게 되면 한 번 언급하겠다는 약속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제야 콘수마는
만족하며 비아스의 용건을 들어주었다. 비아스는 들고 갔던 서류를 내보
였다.
[이 서류를 보관소에 맡기고자 합니다.]
[보통의 보관함으로 충분하겠군요. 잠시 기다리시죠.]
콘수마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리를 떴다. 홀로 남게 된 비아스는 자신
이 들고 온 서류를 들추었다.
양피지 열두 매로 이루어진 그 간단한 문서는 카린돌의 유언장이었다.
갈로텍에게 유언장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비아스는 그것이 협박을
목적으로 꾸며낸 가상의 유언장일 거라고 생각했다. 카린돌을 좋아해본
기억은 전혀 없지만 비아스는 여동생에 대해 알고 있었다. '멍청한 년.
꽁꽁 얼어있다고?' 어쩌면 그들은 서로 닮은 자매일지도 모른다. 카린돌
은 지금을 사는 사람이었고 자신이 죽은 다음엔 세상이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고 니를 것이다. 그 상관없다는 니름에 주의해야 한다. 그것은
세상이 박살나든, 그렇잖으면 원수들이 득세하여 행복하게 살든 '상관없
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비아스 자신이 할 법한 말이다. 그런 카린돌
이 유언장 따위를 쓸 리는 없을 것이다. 자신이 죽은 다음에 적들에게
타격을 입히느니 살아서 사이커로 찌르는 편을 택하는 것이 보다 카린돌
의 성격에 부합한다. 아마도 비아스가 현재 느끼고 있는 위화감, 즉 나
가들 사이에 만연한 교조적 태도에 대한 위화감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
을 찾아본다면 카린돌 뿐일 것이다. 그렇게 판단한 비아스는 그 유언장
이 거짓니름일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 유언장은 존재했다. 엄밀하게 니른다면 그것은 카린돌이 작
성했다고 주장하는 '공증인의 인장이 찍힌' 유언장은 아니었다. 그보다
는 유언장의 초고, 아니, 차라리 비망록에 가까운 것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갈로텍이 닐러준 것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것은 11년
전, 페이 가문에서 발생한 요스비라는 남자의 죽음에서부터 시작되고 있
었다. 자신의 목격담과 륜 페이의 정신 속에서 읽어낸 내용, 그리고 그
것에서 비롯된 추리가 모두 기록되어 있었다. 벌써 여러 번 읽었던 내용
이지만 비아스는 다시 그것을 꼼꼼하게 읽었다. 그리고 그 문서가 어떤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곰곰히 생각했다.
현재로선 심장 파괴에 대해 폭로한다고 해서 갈로텍이 니른 것처럼 다
룰 수 없을 정도로 큰 일이 발생할 것 같지는 않았다. 분노한 여인들이
수호자들을 공격하고 심장탑을 파괴하는 일은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비
아스는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를 예감했다. 즉 그렇잖아도 기적을 부리는
수호자들에게 겁을 먹고 있는 여자들이 그들에게 완전히 굴복하게 될 가
능성이 더 높았다. 어떻게 생각해 보아도 비아스는 폭로가 결코 현명하
지 못하다는 결론밖에 얻을 수 없었다.
하지만 심장 파괴는 수호자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지켜온 비밀이었다.
비아스는 그것이 결코 쓸모없는 비밀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그녀에겐
현재 수호자들에게 대항할 방법이 아무 것도 없었고, 따라서 비록 현재
로선 무용한 비밀이라도 장래에는…
비아스의 몸이 굳었다.
비아스는 자신이 은연중에 수호자들을 적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수호자들은 그녀를 속이고 이
용했다. 비아스의 몸에서 비늘이 부딪혔다.
'남자 따위가!'
비아스는 갈로텍이 왜 자신을 아직까지 죽이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
었다. 자신을 거부한 남동생을 베어죽인 여자가 끝까지 고분고분할 거라
고 믿었던 걸까? 그렇게 자신만만한 건가? 비아스라면 그러지 않았을 것
이다.
'나라면 나 같은 여자는 죽였어. 이용할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아. 그렇
게 나를 우습게 봤단 니름이지? 좋아. 그건 네 최악의 실수였어!'
비아스는 분노 속에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도시 어느 곳에 있더라도 눈
에 들어오는 심장탑을 보며 비아스는 증오를 불태웠다.
'당장은 비늘을 눕혀주지. 온순한 척하겠어. 하지만 갈로텍. 불사를 획
득하기 직전 등 뒤에서 칼을 맞았던 화리트를 생각하라고. 네 속에 있으
니 잘 알 테지. 너는 네 영광의 순간이 다가오는 걸 무서워해야 해. 모
든 것을 얻었다고 생각할 때, 갈로텍. 네 등 뒤엔 내가 있을 거야!'
콘수마는 곧 돌아왔다. 비아스는 보관함에 서류를 넣은 다음 봉인했다.
그리고 참조인 항목에 자신의 이름만을 기입했다. 이제 그 서류는 자신
만이 읽을 수 있다. 비아스는 갈로텍에게 그것을 가져다줄 생각이 없었
다. '공갈을 위한 거짓니름이었어요.' 그리고 다시 성전참가의 연령제한
을 언급하기 시작한 콘수마의 니름을 자르며 닐렀다.
[알겠습니다. 수호자들에게 실험을 제안하겠습니다. 소드락을 복용하고
모의전투라도 벌여보자고 니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어떤 자들이
성전에 종사할 수 있는지 객관적인 통계를 얻을 수 있겠지요.]
콘수마는 그 제안에 열렬히 찬성을 보내었다. 비아스는 웃으며 닐렀다.
[그런데 통계라는 니름에서 떠올랐습니다만, 평의회 일지를 참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제가 안내해드리지요. 따라오십시오.]
콘수마 발텐은 손수 비아스를 안내하여 평의회 일지가 보관되어 있는
보관소로 향했다. 그리고 그녀의 요청에 따라 11년 전의 평의회 일지를
꺼내었다. 비아스는 곧 원하던 기록을 찾아낼 수 있었다. 11년 전, 하텐
그라쥬에 기묘한 전염병이 발생했다는 보고가 있었지만 발병자는 남자
한 명뿐이었으며 따라서 전염병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는 기록이 있
었다. 하지만 평의회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발병자의 소지품과 사체
를 모두 소각하는 처치를 내린 것으로 되어 있었다. 비아스는 카린돌이
가상의 사망 사건을 꾸며낸 것은 아니라는 - 비아스는 그럴 가능성도 배
제하지 않았다. - 결론을 얻었다. 11년 전 페이 가문에서는 실제로 요스
비라는 남자가 의문사를 했던 것이다. 비아스는 그 사건이 이렇듯 단순
하게 취급된 것을 이상하게 여겼다. 심장을 적출한 나가가 돌연사했는데
왜 아무도 신경쓰지 않은 걸까?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어야 하는 것 아닐
까? 그 때 그녀의 곁에 있던 콘수마가 웃으며 닐렀다.
[아아, 그 기록을 보십니까?]
[예? 아, 그렇습니다. 11년 전 전염병으로 누군가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것이 제 일에 관련된 것이 아닐까 해서 조사해보고 싶었습니
다.]
콘수마는 정신적 웃음을 터뜨렸다. 비아스는 어리둥절해졌다.
[전염병이라니, 우스꽝스러운 니름이군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만 이렇게 기록이…]
[이 사건을 기억합니다. 죽은 남자는 지커엔 가주를 화나게 했어요. 그
가문의 아이 중 하나를 공공연하게 아들이라고 불렀지요.]
[아들이오? 불신자들이 말하는 그…?]
[그렇습니다. 그 남자, 제정신이 아니었을 겁니다. 지커엔 가주는 대단
히 화가 났지요. 그리고 갑자기 그 남자가 '전염병'으로 죽은 거죠.]
콘수마는 전염병이라고 니르며 동시에 그 니름을 절대로 믿지 않는다는
감정을 덧붙여 보였다. 비아스는 그제야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지 짐
작할 수 있었다. 당시의 나가들은 지커엔 페이 가주가 정신 나간 방문자
를 해치운 거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커엔 가주를 존중하여 '소
각' 처분을 내린 것이다. 즉 지커엔 가주는 그것이 진짜 전염병이라고
믿었고 다른 자들은 지커엔 가주가 전염병을 빙자해서 남자 한 명을 태
우길 원했다고 믿은 것이다. 그리고 친절하게도 피투성이가 된 남자를
태운 것이다. 비아스는 그것을 확인했다.
[확실히 소각했습니까?]
[물론이죠.]
콘수마의 니름에 담긴 의미는 분명했다. 전염병이 무서워서 태운 것이
아니라 재생하지 못하도록 태웠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요스비는 그 때
그들의 생각과 달리 실제로 죽은 상태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실제로 심장 파괴를 실시한 수호자들, 그리고 그것을 목격
한 륜과 카린돌 뿐이다.
[알겠습니다. 그다지 조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는군요.]
[제 생각에도 그렇습니다.]
콘수마는 저명한 약술사인 비아스가 전염병이라는 니름을 믿었다는 것
이 재미있다는 듯 계속 웃었다. 비아스는 적당히 부끄러워 하는 척하며
콘수마에게 작별을 고했다. 기록보관소를 나오며 비아스는 11년 전, 그
일을 알게 된 나가들이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했다.
[아들이라고? 미친 녀석이었군. 그 녀석은 어디에서 그런 황당한 개념
을 얻은 거지? 불신자들과 사귀기라도 한 건가?]
비아스의 걸음이 갑자기 멈춰졌다. 비아스는 몸을 돌려 기록보관소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자신이 조금 전 떠올렸던 생각을 다시 되짚어 보았
다.
갑작스러운 충격이 그녀를 엄습했다. 비아스는 고개를 홱 돌렸다. 이번
에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은 심장탑이었다. 그녀의 머리 속에 개념들이
떠올랐고 비아스는 그것을 연결지었다. 그러자 차츰 뚜렷한 의미들이 떠
오르기 시작했다. 비아스는 정신없이 그 의미에 빠져들었다. 하텐그라쥬
의 대로를 지나던 여인들은 굳어버린 듯 멈춰서서 얼굴을 계속 일그러뜨
리는 그녀를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았지만 비아스는 그것도 깨닫지 못했
다.
스바치는 방문을 두드렸다. 무의미한 짓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스바치는
계속 문을 두드리며 닐렀다.
[빨리! 빨리 열라고! 어서 이 문을 열어!]
밖에서 수호자의 짜증스러워 하는 니름이 들려왔다. 시간은 한밤중이었
고 수호자는 그런 시간에 깨어나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그러는 거야?]
스바치는 다급하게 닐렀다.
[카루가 허물을 벗으려고 해! 나를 다른 곳에 가둬줘. 그렇잖으면 카루
를 다른 곳에 옮기든가!]
[뭐? 허물 벗기?]
반문하는 니름에는 놀라워 하는 감정이 섞여 있었다. 스바치는 호통을
쳤다.
[그래! 제기랄, 어서 이 문을 열어!]
밖에서 들려오던 니름이 멈췄다. 스바치는 초조하게 문을 바라보며 계
속 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다시 날카로운 니름이 들려왔다.
[문에서 물러서! 문에서 보이는 벽에 몸을 붙이고 앉아!]
스바치는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바닥에 누워있는 카루를 조심스럽게
돌아간 스바치는 맞은편 벽에 등을 붙이고 앉았다. 문이 열렸지만 누가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았다. 스바치는 사이커를 쥔 몇 명의 남자들이 문
바깥쪽에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스바치는 황급히 손으로 바닥에 있는
카루를 가리켰다.
[젠장, 보라고!]
사내들은 스바치와 카루가 모두 시야에 들어오는 것을 확인하고는 조심
스럽게 안으로 들어왔다. 들어온 것은 모두 네 명이었고 두 명은 카루의
곁에, 그리고 다른 두 명은 스바치에게 다가와 사이커를 겨누었다. 그리
고나서야 문쪽에 수호자가 나타났다.
수호자는 방 안의 광경에 위험이 없음을 확인하고는 천천히 안쪽으로
들어섰다. 스바치를 한 번 바라본 수호자는 허리를 숙여 카루를 내려다
보았다. 스바치의 니름대로였다. 카루는 힘없는 표정으로 누운 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그 얼굴에서는 윤기를 잃은 비늘들이 피부에서 분
리되고 있었다. 수호자는 탐탁찮은 표정을 지었다.
[허물 벗기가 맞군. 그래서 어쩌라는 거야?]
[당연하잖아! 혼자 있게 해줘!]
[갇혀있는 주제에 별 걸 다 원하는군. 너희들의 편의를 위해 감방을 두
개로 늘이라는 거냐?]
감방을 두 개로 늘이려면 방을 또 하나 비워야 했다. 심장탑은 감옥이
아니며 방을 마련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감시할 인원도
늘어나야 했다. 수호자는 그것 때문에 짜증을 느꼈다. 스바치는 경악하
여 닐렀다.
[그럼 이곳에서 허물을 벗으라는 거냐?]
[네가 눈 감고 있으면 되겠군.]
[이런 짐승 같은 놈아! 인정머리도 없는 거냐!]
수호자는 다른 남자들이 동요하는 것을 느꼈다. 그들은 수호자나 수련
자가 아니었고 수호자들에 의해 급히 모집된 남자들이었다. 따라서 수호
자가 그런 가혹한 처사를 했다는 것이 밝혀지면 그들은 실망하고 분노할
가능성이 높았다. 수호자는 자신이 선택할 길이 제한되어 있음을 깨달았
다.
[그래, 좋아. 다른 곳으로 옮겨주지.]
[나를?]
수호자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스바치를 바라보았다. 허물 벗기 때
문에 힘이 빠져 있는 카루를 옮기는 것이 훨씬 안전한 것은 당연했다.
[내가 그렇게 멍청한 줄 아나? 너희 둘. 그 녀석을 들어올려.]
카루의 좌우에 있던 자들이 사이커를 칼집에 꽂아넣었다. 그리고 카루
를 조심스럽게 일으켜세웠다. 힘이 빠진 카루는 자꾸만 쓰러지려고 했고
그래서 두 사람은 카루를 양쪽에서 붙잡았다. 그러나 카루는 한 발짝도
떼지 못하고 다시 뒤로 휘청했다. 두 사람은 그만 카루를 놓치고 말았
다.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난 카루는 그대로 몸을 뒤집었다.
그리고 카루는 양손에 든 사이커로 스바치의 좌우에 있던 남자들의 눈
을 찔렀다.
[으아아악!]
남자들은 고통에 찬 니름을 토하며 쓰러졌다. 카루를 부축하던 남자들
은 기겁하여 자신의 허리를 내려다보았고 칼집이 비어있음을 깨달았다.
카루는 홱 몸을 돌려서는 그대로 수호자를 향해 돌진했다. 허물 벗기 때
문에 카루가 꼼짝도 못할 지경일 거라 생각했던 수호자는 의외의 상황에
미처 대처하지 못했다. 카루의 두 사이커는 한치의 벗어남도 없이 수호
자의 눈을 찔러들어갔다. 돌격의 속도와 매서운 증오 때문에 두 자루의
사이커는 그대로 수호자의 머리를 관통했다.
[안돼!]
사이커를 뺏겼던 두 남자가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그 때 바닥에 앉아
있던 스바치가 벌떡 일어나 자신의 좌우에 있던 남자들의 사이커를 뽑아
들었다. 두 남자를 포위한 스바치와 카루는 그대로 둘을 쓰러뜨렸다. 그
리고나서 스바치는 허물어지듯 주저앉았다.
카루는 쓰러진 다섯 남자를 난도질한 다음에야 스바치를 바라보았다.
스바치가 기대어 있던 벽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카루는 얼굴에 붙어있
던 비늘들을 조심스럽게 떼어냈다. 그것은 카루가 스바치의 등에서 뜯어
낸 피부였다. 맨손으로 그것을 뜯어내는 것은 지독하게 힘들었다. 물론
스바치의 고통은 말할 것도 없었다.
[괜찮아?]
스바치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다리가 비틀
거렸다. 스바치가 쓰러지기 직전 카루는 재빨리 그를 부축했다. 그리고
계획을 실행하기 전부터 주장했던 것을 다시 주장했다.
[미안하지만, 스바치. 역시 도망쳐야겠어.]
[안돼! 카린돌을 구해야 해! 그러면 모든 사태를 끝낼 수 있어!]
[그곳에도 지키는 자들이 있을 거야. 그 몸으로 싸울 수는 없어.]
[등가죽 좀 벗겨진 건 아무렇지도 않아!]
[스바치. 여기 이 녀석은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당한 거야. 하지만 다른
수호자들은 여신의 힘을 쓸 거야. 정상적인 몸이라도 그런 자들과는 상
대가 될 수 없어. 도망쳐야 해!]
[…제기랄, 도망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어! 우리 심장은 이곳에 있
어. 수호자들은 간단히 우리를 죽일 거라고!]
카루는 스바치의 지적에 놀랐다.
[그렇군. 그렇다면 심장병을 가지고 도망치면 되지 않을까? 내 심장병
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아. 자네 것도. 여기 오르내리면서 본 적이 있어.
여기서 멀지 않아.]
[카루! 심장병이 심장탑을 떠나도 상관없다면, 왜 여자들이 이곳에 놔
두겠어? 자기 집에 놔둬도 되지. 심장병은 심장탑에 있어야 해. 그렇잖
으면 소용이 없어.]
카루는 자신의 학식이 부족하다는 사실에 염증을 느끼지는 않았다. 그
럴 여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숨가쁘게 고민했다. 심장병을 가지고
떠날 수도 없고, 놔두고 간다면 심장 파괴를 당하니 소용이 없었다. 카
루는 잠깐 동안 수호자들의 심장병을 모조리 깨어버리면 어떨까 하는 유
혹을 느꼈다. 하지만 200 미터나 되는 심장탑을 오르내리며 오르내리며
수호자들의 심장병만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게다가 그들이 이름을
알지 못하는 수호자들도 많았다. 카루는 문을 닫으며 닐렀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군. 일단, 자네. 이 수호자 친구의 옷
을 입어. 나도 다른 녀석의 옷을 입겠어.]
[무슨 생각이야?]
[더 니를 시간이 없어. 우리는 도망쳐야 해. 빨리 옷 갈아입어!]
스바치는 카루를 노려보다가 결국 고개를 떨구었다. 그는 수호자의 옷
을 벗겼다. 카루 또한 남자들의 옷 중 피가 적게 묻은 것들을 골라 입었
다.
다음 날 아침, 대금을 가지러 자신의 방으로 올라가던 갈로텍은 기괴하
기 짝이 없는 광경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그는 눈앞에 있는 어처구
니 없는 광경을 바라보았지만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
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갈로텍은 비늘을 부딪히며 계단을 달려내려갔
다. 카루와 스바치가 갇혀있던 방에 도달한 갈로텍은 방 앞을 지키고 있
던 자들이 없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갈로텍은 황급히 문을 열었다.
그리고 갈로텍은 문을 쾅 닫았다. 문에 기대어선 갈로텍은 고개를 숙인
채 헐떡거렸다. 그의 입에서 비명에 가까운 신음이 터져나왔다.
세리스마는 감탄하며 닐렀다.
[먹으로 지웠다고?]
갈로텍은 세리스마처럼 감탄할 수 없었다. 분노 때문에 제자리에 앉아
있기도 힘들었던 갈로텍은 방 안을 왔다갔다 하며 닐렀다.
[예. 심장병의 이름들을 먹으로 뭉개어놓았습니다. 모두 몇 개나 되는
지 모르겠습니다. 밤새도록 심장탑을 오르내린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탑 아래쪽 근방에 도달해서는 손바닥에 먹을 묻혀 손에 잡
히는대로 뭉개버렸습니다. 도망치기 직전이라 그렇게 했겠지요. 아마 그
중에는 틀림없이 자기들의 심장병도 포함되어 있겠지요.]
[그리고 수호자들의 심장병도 포함되어 있겠지. 대단한 재치군. 역시
내가 가려뽑을만한 놈들이야.]
[지금 수호자들의 이름을 우선으로 어떤 이름이 남아있고 어떤 이름이
없는지 대조 작업을 벌이고 있습니다만,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습
니다. 제기랄, 그 놈들이 제 심장병을 깨버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비늘이 빠질 지경입니다!]
[아마 도망치는 데 방해가 될까봐 그랬겠지. 자네가 갑자기 죽으면 무
슨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할 테니까.]
[그렇잖으면 그냥 제 심장병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기 때문일 수도 있겠
지요. 어쨌든 지금 쯤이면 벌써 밀림 속으로 들어가버렸을 겁니다. 그렇
게 된다면 추적할 수가 없습니다!]
세리스마는 잠시 고개를 숙인 채 생각했다. 곧 그는 눈을 번득이며 닐
렀다.
[아니,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
[네?]
[그 녀석들은 우리가 여신을 감금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 여자들
에게 그것을 말하고 도와달라고 요청하지 않을까?]
갈로텍의 걸음이 멈췄다. 세리스마는 빠르게 닐렀다.
[대조 작업 따위 집어치우고 모두 하텐그라쥬를 수색하도록 해. 어쩌면
그것까지도 예상하고 정말로 밀림으로 도망쳤을 수도 있지만, 위험을 감
수할 수는 없어. 녀석들이 밀림으로 도망쳤다는 것이라도 확인해야 해!]
대답은 없었다. 갈로텍은 이미 달려나간 후였다.
그러나 그날 하루, 그리고 그 후 사흘 동안 계속된 수색에서도 두 사람
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밀림으로 도망친 것이 분명했다.
세리스마와 갈로텍은 그 사실에 기뻐해야 할지 분노해야 할지 알 수 없
었다.
괄하이드 규리하는 얼굴을 붉힌 채 찻잔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앞쪽에
앉아있던 중년 남자는 빙글빙글 웃으며 말했다.
"정말 그렇게 말했어?"
"두 번씩 확인해야 되나."
"형을 가리켜 산에게 부동심을 가르칠 수 있다고 나불거리던 자들이 그
광경을 봤으면 정말 당황했을 텐데. 혹 자신이 스무살짜리 청년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변경백은 불편한 헛기침을 했다.
"좀 감정적으로 말한 것은 인정하지만 내가 말했던 것은 모두 솔직한
진심이다. 라수."
괄하이드 규리하의 사촌동생 라수 규리하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하긴 형에게 서신을 쓰며 그런 모습을 기대했지. 다른 자들이 뭐라고
하든 나는 형을 알거든. 산사에 틀어박혀 사는 것이 지루해졌고, 그래서
내 광대를 불러야겠다고 결심했지. 그래도 내 광대가 이 정도까지 나를
즐겁게 해줄 줄은 몰랐어."
규리하 변경백령의 강대한 지배자를 광대라고 부르는 처사에 직면했지
만 괄하이드가 보여준 반응은 쓴웃음을 짓는 것뿐이었다. 라수 규리하가
그를 아는 것처럼 그 역시 라수 규리하를 알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본
변경백은 방 안의 모습 또한 라수의 개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고 생
각했다.
방 안은 웬만큼 대범하다고 자부하는 사람이라도 자신이 결벽증 환자가
아닐까 의심하게 될 꼬락서니였다. 사방의 벽은 그 앞에 쌓여있는 무수
한 책에 의해 7할 이상 감춰져 있었고 천장 또한 보통 것보다 월등히 길
고 넓은 시렁에 의해 감춰져 있었다. 그 시렁에는 온갖 물건들이 어지럽
게 얹혀져 있어 아래쪽에 앉아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문득문득 목을 움츠
리게 만들고 있었다. 라수는 '떨어져도 아래에 있는 사람을 죽이지는 않
을 물건만 얹어놓았다'고 장담하긴 했지만. 방바닥은 주로 집필 공간으
로 사용되는 듯했다. 그 말은 엉망으로 구겨진 이불과 파지들, 그리고
벼루와 먹, 붓들이 방바닥을 점령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방 안에 서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큼직한 서탁에는 황당하게도 큼직한 콩나물 시
루가 얹혀져 있었다. 라수는 그것이 '관상용'이라고 설명했고 괄하이드
는 왜 화분이나 수반을 놔두지 않느냐고 묻지는 않았다. 어쨌든 서탁이
그 지경인지라 라수는 방바닥에 엎드려 글을 쓰는 듯했다. 그 외에도 도
대체 무엇에 사용되는 물건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이 방을 가득 채우고 있
어 방 안에는 한 사람이 더 들어오기 힘들 정도였다.
괄하이드의 시선을 따라 자신의 방 안을 둘러본 라수는 이렇게 아름다
운 방도 없을 거라는 듯한 표정을 짓고는 말했다.
"그래서, 왕놀음에 참가할 작정이야? 나가를 데리고? 사람들은 형이 노
환으로 분별을 잃었다고 생각할지도 몰라."
"사람들의 말에 신경써 본 적은 없어. 그리고 케이건 드라카가 지명한
여인은 분명히 우리의 왕이야."
"아무래도 형은 800년 쯤 시기를 잘못 타고 태어난 것 같단 말이야. 그
나가는, 글쎄. 아마 왕이긴 할 거야."
괄하이드는 고개를 번쩍 들어 사촌동생을 바라보았다.
"지금 그 말 네 본심이냐?"
"역시 그게 목적이었군?"
"뭐?"
"그녀가 왕이라고 믿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것만으로는 뭔가 불안
해서 자기보다 똑똑한 것이 분명한 사촌동생에게 확인을 받고 싶어서 온
것 아냐?"
라수의 악의섞인 농담에 괄하이드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확인해주겠어?"
라수는 결국 자신이 사촌형을 존경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
다. 괄하이드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가 그렇게 틀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
하며 라수는 차분하게 말했다.
"여러 가지로 재미있는 타개책인 것은 분명해. 사람들은 왕을 원하지만
제왕병자는 경멸하지. 물론 제왕병자들에게 환호를 보내는 자들이 있기
에 그 희극적인 자들의 전통이 단절되지 않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실
제로 힘을 가진 자들, 예를 들어 형과 같은 인물들은 제왕병자들을 싫어
하지. 얼마나 싫어하냐 하면, 어떤 인간이 왕이 되겠다고 말하면 그 자
가 실제로 그럴 만한 능력이 되더라도 일단은 제왕병자라고 판단해버릴
만큼."
"그 말은 인간은 왕이 되기 어렵다는 뜻인가?"
"인간의 경우 제왕병자로 오인될 위험이 있다는 거지. 주퀘도 사르마크
처럼 힘으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보일 수 있는 자는 자주 등장하는 것
이 아니야. 사모 페이라는 그 나가에게는 그런 위험이 없지. 그리고 두
번째로, 그녀는 신왕조의 개조가 될 수 없어. 짝이 없으니까."
"그건 나쁜 점이잖아?"
"일반적인 경우라면 왕에게 후계자가 없다는 것은 문제가 되지만 이 경
우에는 그렇지 않아. 북부의 왕권이 영원히 나가의 손에 장악되는 것은
아니라는 보증이 되니까. 그 점은 그녀 스스로 말한 한시성에 대한 담보
가 되지. 그녀가 죽은 다음에, 혹은 그녀 스스로 말한 것처럼 여신이 해
방된 다음에 왕권은 다시 인간, 혹은 레콘, 정말 가능성이 없지만 도깨
비에게 올 수도 있지. 북부인들은 영웅왕의 시절에 이미 그런 경험을 했
어. 이것은 그녀의 후계자가 되고 싶은 야심가들을 솔깃하게 할 장점이
지."
괄하이드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 말은 그녀가 왕이 될 경우 스스로를 사냥감으로 만든다는 의미잖
아. 그녀의 야심만만한 신하들은 그녀를 죽이고 그 왕좌에 앉고 싶어할
테니까."
"왕은 언제나 제물이고 사냥감이고 희생양이야.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
볼 수도 있는 문제지. 그들은 다른 누군가가 국왕 시해를 시도하지 못하
도록 서로를 견제하게 되겠지. 그리고 그녀에게는 매수할 수 없는 수호
수와 용을 데리고 있는 동생도 있잖아?"
괄하이드는 동의했다. 라수는 계속 말했다.
"그러니 형에게는 세 부류의 사람에게 줄 것이 있어. 왕이 되고 싶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그것을 삼가고 있는 자들에겐 없는 것을 만들어내기보
다 이미 만들어진 것을 얻는 쪽이 더 낫다는 것을 주지시켜. 왕이 존재
하지 않는 북부에서 왕을 만들어내는 것보다는 왕이 있는 북부에서 그
왕좌를 - 후계자도 없고 왕좌의 주인도 그것을 한시적으로만 맡겠다고
주장하는 - 얻는 것이 편하지."
"흐음. 두 번째 부류는 뭐지?"
"왕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왕이 돌아오기를 원하는 형과 같은 자
들. 그 자들에게 줄 것은 이미 케이건 드라카가 준비해줬지. 왕의 상징
인 흑사자의 모피를 가진 채 북부로 온 사람. 대호가 따르는 사람. 이
정도면 웬만한 제왕병자들은 꿈도 못꿀 장점들이지. 거기에 덧붙여 나가
인 그녀가 우리가 경멸해야 마땅할 제왕병자일 리는 없다는 점을 강조할
수 있겠군."
괄하이드는 라수의 말을 깊이 생각했다. 그리고 한참 후에 말했다.
"세 부류라고 했지. 마지막은 어떤 부류지?"
"제일 다루기 까다로운 부류인데, 왕이 되고 싶은 생각도 없고 왕의 귀
환에도 별로 관심이 없지만, 나가가 어떻게 왕이 되느냐고 화를 낼 수는
있는 부류지. 공교롭게도 숫자는 제일 많을 거야."
"그렇군. 그 자들에게 뭘 주지?"
"나가가 아니라고 해."
"뭐?"
"왜 얼굴을 공개해야 하지? 가면을 쓰게 해."
"가면이라니. 만민의 신뢰를 얻어야 하는 왕이 어떻게 가면을…"
"오, 고결한 이상주의자여. 사람들은 진실에 관심이 없어. 멋진 가면을
더 좋아해. 지배자가 솔직하게 자신 또한 울고 웃는 한 명의 사람에 불
과하다는 것을 고백하면 사람들은 오히려 충격을 받을걸. 규리하를 다스
리는 형도 그 정도는 알 텐데."
"물론 나도 사람들 앞에서 더욱 나 자신에게 엄격하게 행동하지. 네가
말하는 가면이 그런 의미라면, 그래. 나도 사람들 앞에서 가면을 쓴다고
할 수 있어. 하지만 네가 말하는 것은 얼굴을 감추는 가면이잖아?"
"상관없어. 그 기막힌 목소리만으로 신뢰감은 충분히 얻을 수 있어."
"아아, 그 목소리."
"그래. 가면 뒤에서 그런 목소리가 흘러나온다고 생각해봐. 그녀가 나
가라는 사실은 이곳에 모인 자들만 함구하면 돼."
"그런 비밀이 지켜지겠어?"
"조금씩 흘러나가면 더 좋지. 얼마나 흥미진진하겠어. 많은 사람들은
나가가 말을 아예 못 한다고 믿어. 그런데 가면을 쓴 우리의 여왕은 목
소리를 내는 거야. 그들은 믿어 마땅한 상식과 귓속말로 들은 소문 사이
에서 흥분하겠지. 왕은 사람들에게 그런 여흥거리도 줘야 해. 아, 그렇
군. 그 가면은 나늬 같이 아름다운 여왕의 용모에 사람들이 상사병으로
죽어나가는 것을 막는 도구라고 말해. 역시 사람들을 즐겁게 할 설명이
되겠군."
괄하이드는 탄복하면서도 꺼림칙한 표정으로 사촌동생을 바라보았다.
"라수. 항상 느끼는 거지만, 너와 노닥거리고 있다 보면 내가 정말 교
활한 악당이라도 된 것 같아."
라수 규리하는 싱긋 웃었다.
"그런 악당의 감각을 기대하고 온 거잖아?"
사모 페이는 륜의 설명을 들으며 웃었다.
"그거 정말 재미있게 되었군."
"재미있다고요?"
"그래. 케이건 드라카는 내게 왕이 되어서 눈물을 마신 다음 죽으라고
말했지. 그런데 내가 왕이 되려면 케이건은 내게 용의 수호를 맹세해야
하지. 용의 수호를 맹세한다면 케이건은 내가 죽게 내버려둘 수가 없군.
그렇다면 케이건은 내게 왕이 되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고, 그러면 내게
용의 수호를 맹세할 필요가 없지. 케이건은 정말 난처한 모순에 빠져있
군. 키탈저 사냥꾼들이 좋아한다는 그 모순 말이야."
두 사람은 주위에서 듣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육성을 이용하고 있
었다. 사모의 이야기를 들은 비형은 당장 매혹에 빠졌다. "맹세하면 왕
이 되게 할 수 없고, 왕이 되지 않으면 맹세할 필요가 없고…" 세 명의
이야깃꾼에 당한 듯한 모습으로 혼수 상태에 빠져버린 비형은 곧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되었다. 티나한은 벼슬을 긁적거리며 말했다.
"이봐, 사모. 케이건이 용의 수호를 맹세하지 않으면 왕이 안 될 거
야?"
사모는 미소지었다.
"용의 수호가 어떤 건지 들으니 더욱 받고 싶어지는데. 티나한. 날더러
죽으라고 말하는 사람은, 나를 위해 죽을 준비도 되어야 하는 것이 타당
한 것 같지 않아?"
륜은 죽는다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말하는 사모를 착잡한 표정으로 바
라보았다. 그의 무릎 옆에 누워있던 아스화리탈은 륜의 몸이 굳는 것을
느끼고는 그 머리를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륜은 한숨을 내쉬며 용의 머
리를 쓰다듬었다. 티나한은 수염볏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어쩐지 케이건이 하는 말과 비슷하군. 케이건은 거꾸로 말하지만."
"거꾸로?"
"케이건은 자신이 상대방을 죽이니 상대방도 자기를 죽일 수 있다고 말
하지."
"공평한 성격이군."
사모는 웃으며 마당 저편을 바라보았다.
마당 저편에서는 케이건과 오레놀, 그리고 쥬타기 대선사가 돗자리 위
에 앉아서 뭔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두억시니들은 요근래 그러했던
것처럼 더위에 슬퍼하며 그들 주위에 쓰러져 있었다. 대단히 살벌한 회
담 장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꽤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지만 여름의 긴 오후는 아직도 한창이었다. 이야기는 꽤 진지한 듯
했고 마루에 앉아있는 자들은 오레놀과 쥬타기 대선사가 놀라는 표정을
짓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케이건을 바라보던 륜이 닐렀다.
[누님. 정말로 왕이 될 생각이십니까?]
[몇번째 니르는 건지 모르겠군. 륜. 우리 두 사람의 힘만으로는 여신을
구출할 수 없어. 그리고 내가 곧장 죽는다고 생각하지는 마. 그들은 북
부의 왕이 나가라는 사실을 알면 일단 대화해보려고 할 거야. 간단히 북
부를 얻게 되는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
[대화가 결렬되면 어떻게 하죠?]
[그 다음엔? 케이건의 말대로 되길 바라는 거지. 나는 죽고 남은 자들
이 여신을 구출하는 거지.]
[누님!]
사모는 웃으며 륜을 바라보았다.
[륜. 나도 죽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아.]
륜은 자신을 위해 죽으려 했던 사모를 보며 몸을 떨었다. 륜의 마음을
짐작한 사모는 황급히 닐렀다.
[아니, 네가 미안해할 필요는 없어. 나는 스스로 조심할 거라는 의미로
니른 거야. 내 정체를 쉽게 밝힐 필요는 없겠지. 내가 사모 페이라는 것
을 모른다면 그 자들이 나를 어떻게 죽이겠어?]
[북부에 있는 나가는 저와 누님뿐입니다! 그 자들이 왜 모르겠습니까?]
[그렇다면 너라고 생각하겠지. 네가 여신의 힘으로 북부의 멍청이들을
누르고 왕이 되었다고 생각할 거야. 그것이 보통 할 수 있는 생각이잖
아.]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누님을 죽일지도…]
[그들은 내가 암살을 포기했다는 것을 몰라. 너를 죽일 자로서 내가 필
요하다고 믿을 거야.]
륜은 일이 그렇게 잘되기만 할 수는 없다고 니르려고 했다. 그 때 돗자
리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일어났다.
쥬타기 대선사와 오레놀은 그대로 오솔길을 통해 떠났다. 남아있던 케
이건은 그들을 향해 걸어왔다. 케이건이 축대 위에 올라오자마자 비형은
조바심을 내며 질문했다.
"어떻게 되셨습니까? 무슨 이야기를 나누셨지요?"
케이건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루 위에 올라오지도 않았다. 케이
건은 축대 위에 선 채 사모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사모는 그 시선에 의
아해했다.
"사모 페이."
"응?"
"북부의 왕이 될 각오가 되어 있나?"
륜은 비늘을 곤두세웠다. 사모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다른 자들이 모두 동의하고, 거기에 덧붙여 네가 내게 용의 수호를 맹
세한다면."
"맹세하겠다."
자연스러운 대답에 비형과 티나한은 깜짝 놀랐다. 사모 또한 얼굴의 웃
음을 거두며 케이건을 바라보았다.
"내가 그 맹세를 받아들여 왕이 된다면, 그렇다면 너는 당장 죽을지도
모르는 자를 목숨 걸고 보호하겠다는 것이 되지. 그래도 괜찮겠어?"
"너를 죽음의 길에 밀어넣으려면 나 또한 죽음을 각오해야겠지."
조금 전 자신이 했던 말이기에 사모는 미소를 짓고 말았다. 케이건은
그 미소에 고개를 갸웃했다. 사모는 부드럽게 말했다.
"할 필요 없어."
"응?"
"내게 용의 수호를 맹세할 필요는 없어."
륜과 비형, 그리고 티나한은 화들짝 놀라서 사모를 바라보았다. 케이건
은 눈을 가늘게 뜬 채 사모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왜지?"
그의 목소리는 약간 잠겨 있었다. 하지만 놀란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했
다. 사모는 천천히 말했다.
"그건 요스비의 제안일 뿐이야. 그리고 나는 그 전에 이미 왕이 될 생
각을 하고 있었고."
"하지만 너는 그걸 조건으로 내세웠는데."
"그 때는 용의 수호라는 것이 뭔지 몰랐으니까. 그것이 네 목숨을 위협
할 정도의 중대한 맹세라면, 사양하겠어." 그리고 사모는 장난스럽게 덧
붙였다. "여자가 왜 남자의 보호를 받아야 하지?"
케이건은 한번에 정의내리기 어려운 표정으로 사모를 바라보았다. 그렇
게 사모를 바라보던 케이건이 갑자기 앞으로 한 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그것뿐, 케이건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정지한 채 사모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은 기묘하게 많은 침묵을 불러일으켰다. 티나한과
비형, 그리고 륜마저도 아무런 말도, 아무런 니름도 꺼내지 못한 채 케
이건을 바라보았다.
케이건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케이건은 옆을 보며 말했다.
"잘됐군."
사모는 빙긋 웃었다.
"기쁜 모양이지?"
"아니. 다른 일을 말하는 거다."
"다른 일?"
케이건의 몸이 고개를 따라 돌아갔다. 케이건은 다른 사람들에게 등을
돌린 채 말했다.
"용의 수호를 맹세하면 나는 네 곁에 붙어있어야 한다. 하지만 대사원
에서는 지금 한 가지 일을 추진할 생각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건, 나를
길잡이로 필요로 하는 일이 될 거다."
길잡이라는 말에 비형은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티나한도 벼슬을 빳빳
하게 세우며 외쳤다.
"무슨 일이냐, 그건?"
"셋이 하나를 상대하오."
"응? 어, 그건 요스비라는 자가 했던 이야기 말하는 거야? 그러고보니
묘한 결론을 얻었다고 했는데, 도대체 어떤 결론이지?"
케이건은 다시 몸을 돌렸다. 사람들을 쳐다보는 케이건의 얼굴은 그들
에게 익숙한 담담한 얼굴이었다.
"간단한 거요. 발자국 없는 여신의 힘을 상대하려면 모든 이보다 낮은
여신, 자신을 죽이는 신, 그리고 어디에도 없는 신의 힘을 손에 넣어야
한다는 의미지."
"엑?" 티나한은 그렇게밖에 대답할 수 없었다. 비형은 당황하여 외쳤
다.
"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다는 말입니까? 나가들이야 신체를 감금해서
그렇게 했습니다만, 우리도 그런 일을 하자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럴 수는 없소. 그럴 능력도 없고. 다른 사제들은 발자국 없는 여신
이 그녀의 신랑에게 준 것과 같은 신명을 받지 않았소."
"그러면 어떻게?"
"화신을 찾아야 하오."
륜과 비형이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화신!"
"그렇소. 신체의 내면에 있는 신이 겉으로 드러난 화신. 나는 세 명의
화신을 찾아낼 작정이오. 그것이 여신의 힘을 손에 넣은 수호자들을 억
압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하면서 확실한 해결책이오. 셋이 하나를 상대하
니까."
비형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하, 하지만 화신을 어디에서, 어, 어떻게 찾습니까?"
"쉬운 일은 아닐 거요. 지금으로선 일단 바우 머리돌 성주를 찾아볼 생
각이오. 밤의 다섯째 따님이 뭔가 조언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 물론
혼란, 매혹, 감금, 은닉이 나를 방해할지도 모르지만."
"거기서 조언을 얻지 못하면?"
"다른 방법도 몇 가지 생각해두었소만, 어쩌면 기나긴 수탐이 될지도
모르오."
티나한이 외치듯 질문했다.
"가능성이 있기는 한 거냐?"
"없지는 않다는 대답밖에 할 수 없을 것 같소."
"그렇다면 됐어!"
티나한이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축대에 뛰어내렸다.
"대적자 여기 있다!"
케이건은 티나한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티나한. 그건 가혹할 정도로 긴 시간을 필요로 할지도 모르오. 당신에
겐 숙원이 있소. 하늘치 유적에 올라가야 하고, 부인들을 얻어야 하잖
소."
"젠장. 북부가 모두 나가 손에 들어가면 내 숙원도 소용 없어. 그리고
모르는 일이잖아? 화신을 찾으러 다니다가 부인감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케이건은 어이없다는 듯이 웃을 수는 없었다. 비형이 눈을 빛내며 일어
났기 때문이다.
"요술쟁이 없이 어디를 갈 겁니까?"
티나한은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케이건은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가
로저었다.
"비형. 당신은 바우 성주의 몸종이오."
"즈믄누리로 가실 거죠? 거기 가서 한 번 물어보죠. 어때요?"
케이건은 그 상황을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낯설지는
않다는 느낌 또한 들었다. 케이건은 언제 이와 같은 기분을 느꼈는지 생
각해 보았고 그것이 대충 15년 전의 일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또한
800년 전의 일이기도 했다.
결국 케이건은 말했다.
"함께 가준다면 기쁠 거요."
비형과 티나한이 만세를 외쳤다.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케이건은
문득 사모의 시선을 느끼고는 고개를 돌렸다. 사모는 그를 바라보며 웃
고 있었다.
사모를 바라보던 케이건은 천천히 축대 위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놀란
티나한과 비형이 그를 바라보았고 사모와 륜도 당황하여 엉거주춤 일어
났다. 케이건은 사모에게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바로 떠나야 할 테니 폐하의 대관식에 참석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왕이여. 그러니,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라짓 전사 케이건 드라카가
세 화신을 찾아 떠나는 것을 허락해주십시오. 그리고 그 수탐에 폐하의
축복을 내려주십시오."
사모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비형이 굴러떨어지는 속도로 축대 옆에 내
려가서는 케이건 옆에 무릎을 꿇었기 때문이다. 비형은 사모를 올려다보
며 웃었다.
"위대한 사모 페이 폐하. 이렇듯 긴 시간 끝에 북부로 돌아오신 폐하의
손에 축복을 받는다면, 세상에 그 보다 더 광영된 일이 어디 있겠습니
까? 제 주인이신 바우 머리돌 성주님께서는 이미 폐하를 지지할 것을 약
속하셨고 제 주인의 왕이신 당신은 저의 왕이기도 합니다. 부디 저희들
의 수탐에 하해와 같은 축복을 내려주시길 바라겠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비형은 티나한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소리 없이 포효하며 벼슬
을 붙잡아뜯던 티나한은 결국 항복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케이건 옆에 무
릎을 꿇었다.
"이런, 썅. 좋아. 왕! 축복해줘!"
사모는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무릎을 꿇은 세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사모는 동생을 돌아보았다. 륜은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의 얼굴을 한 채
세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모의 눈길을 느낀 륜은 천천히 고개를 돌
려 사모를 바라보았다. 사모는 부드럽게 닐렀다.
[륜?]
륜은 가까스로 닐렀다.
[누님은 저들의 왕인 것 같군요.]
사모는 세 남자를 향해 말했다.
"그대들을 축복한다. 그대들의 수탐이 부디 성공하여 모든 사람들의 세
계를 구할 수 있게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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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터 9. '출발하는 수탐자들' 편 끝났습니다.
챕터 끝났으니 타자는 무덤으로 돌아갑니다. 음, 월드컵 끝날 때까지는
무덤에서 못 나올 것 같습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