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 회: 전쟁의 마무리 -->
“황제 폐하, 방금 하신 판결 중 한 명은 물려주십시오.”
내 말에 황제 아저씨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명을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는 내가 최소한의 형벌을 내린 지금 나선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 되실 것이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인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국왕들은 모두 용서가 되지만 신성교국의 교황, 그 늙은이 만큼은 용서할 수 없었다. 이미 그 늙은이는 인간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우선 카터와 엘리니아 국왕은 이미 처형이 결정났다.
그리고 자유무역 국가의 국왕은 일명 통령으로 불리며 평민들을 수탈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통령은 귀족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자유무역 국가의 상인들의 대표일 뿐.
거대한 부를 가지고 작은 상단들을 압박하기는 했지만 처형을 당할 정도는 아닌 것이다. 그리고 남은 여생을 편히 보내게 해준다고 해도 그의 재산은 모두 몰수 될 것이다.
현대로 따지면 대기업 회장의 재산을 모두 몰수하고 남은 여생동안 먹고 살 정도의 재산만 남겨주는 정도이다. 이 정도면 처벌로 충분할 것이다.
부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참을 수 없는 것은 죽는 것이 아니라 가지고 있는 모든 재산을 빼앗기는 것이니.
그리고 타이푼 왕국과 루안 왕국은 평민들을 못살게 굴었다고는 해도 국왕을 처벌할 수는 없었다. 그 나라는 국왕보다 귀족의 권력이 더 컸기 때문이다.
지금은 우리에게 잡혀서 대부분 감옥에 갇혀있는 상태지만 철로 유명한 타이푼 왕국은 광산을 가지고 있는 귀족들로부터 힘이 나오기에 왕권이 약할 수밖에 없었고 루안 왕국은 국왕이 무능했다.
어쨌거나 무능한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처형될 정도는 아닌 것이다.
또한 해적왕국이라고 악명을 떨치는 해상왕국 아쿠아도 사실은 먹고 살기 힘든 어민들이 뭉치고 뭉쳐서 생겨난 왕국이다.
이들은 말은 해적이지만 무협에서 나오는 녹림처럼 해상 뱃길을 관리하면서 통행세를 어느 정도 받는 것에 불과하다. 가끔 난폭한 해적들도 나오기는 하지만 이들은 같은 해적들에게 처단당하기 십상이다.
왜냐하면 그들 때문에 뱃길을 이용하는 상단이 사라지면 그들의 수입도 사라지고 생계가 막막해지기 때문이다. 여성들의 왕국이라 불리는 아리에나 왕국은 그나마 연합에서 백성들을 아끼고 보살피기로 유명했으니 따로 할 말도 없고.
이처럼 신성교국의 교황을 제외하면 모두 어지간하면 용서받을 건덕지가 있었다. 하지만 교황 그 늙은이만큼은 다르다.
자신이 원하는 여성을 발견하면 유부녀든 처녀든 가리지 않고 마녀라는 오명을 뒤집어 씌운다.
그리고 ‘정화’라고 지껄이면서 여자들을 강간했다. 교황만 그런 것이 아니라 교황의 모든 측근들이 그러했다.
또한 마음에 들지 않는 남자들은 베어버리거나 노예로 만들고 재산을 빼앗았다. 말로는 신관이라고 하지만 하는 행동은 인간을 제물로 바칠 당시의 흑마법사보다 더 사악했다.
아무리 내가 사람의 목숨을 존중하고 아낀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이 정도의 죄를 지었다면 이미 회개할 가능성은 제로였다. 또한 그 늙은이에게 당한 사람들의 한을 위로해주기 위해서라도 교황은 처형해야 했다.
“다른 나라의 국왕들이나 통령은 모두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해상왕국 아쿠아로 그들이 상인들에게 통행세를 받고 뱃길을 열어주었지만 그들은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어쩔 수 없던 일입니다. 오히려 배를 약탈하는 해적이 나온다면 그 스스로가 그들을 처단하였습니다.”
“그것은 안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면죄부를 줄 수는 없지만 형벌을 극도로 낮춘 것 아닌가.”
그렇다. 그들은 우리 제국의 해군으로서 2년을 복무하는 것으로 죄를 사하기로 하였다. 물론 그들의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서 월급은 충분히 지급해 주고 있는 중이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신성교국의 교황과 그의 측근들은 다릅니다. 그들은 즐거움을 위해서 죄 없는 여성들을 강간하고 재산을 몰수하며 남성들을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이미 회개를 통해서 죄를 뉘우치기에는 그 죄가 너무 깊습니다.”
나는 그 뒤에 다크 엘프들에게 부탁해서 조사해 온 교황 늙은이의 죄를 일일이 밝혔다. 그러자 황제 아저씨의 얼굴은 분노로 점점 일그러져 갔으며 교황 늙은이의 얼굴은 파랗다 못해 하얗게 변할 정도로 창백해졌다.
모든 죄를 밝히자 황제 아저씨는 조용한 분노를 뿜으면서 교황을 향해 돌아보았다.
“할 말이 있느냐?”
“.....”
교황은 두려움에 몸을 떨 뿐 변명을 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내가 가져온 자료가 그 만큼 정확했기 때문이다.
황제 아저씨는 아무런 말도 없는 교황을 바라보더니 판결을 내렸다.
“판결은 처형, 그리고 그 시체는 들개가 뜯어먹게 하고 흑마법사에게 말해서 영혼조차 남기지 말라고 전해라.”
“사...살려줘! 아니, 살려주십시오!!”
교황은 보기 추할 정도로 눈물과 콧물을 흘리면서 애걸하기 시작했다. 카터와 엘리니아 국왕은 그냥 처형이니 죽으면 영혼이 정화되어서 다시 태어날 것이다.
하지만 교황은 다르다. 흑마법사가 영혼을 처리하게 된 이상 죽더라도 고통이 끝나지 않을 것이며 마지막에 가서는 영혼이 산산히 부서지게 될 테니 두려울 것이다.
내가 죄인의 판결을 앞장서서 늘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만큼 교황 늙은이의 죄를 용서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당장 끌고 나가라!”
“옛! 폐하!”
“살려주십시오! 제발!”
황제 아저씨의 명령이 떨어지자 분노와 치욕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한 카터와 엘리니아 국왕, 애처로운 얼굴로 목숨을 구걸하는 교황을 기사들이 끌고 나섰다.
“그리고 나머지 국왕들은 방에 감금을 해두어라. 그리고 외교부상서들이 작성한 항복문서에 직인을 찍은 국왕들만 풀어주도록 하라.”
“옛!”
그렇게 전후처리도 거의 끝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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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처리가 거의 끝난 그 날 저녁, 황제 아저씨가 나를 방으로 불러 들였다. 황제 아저씨의 앞에는 고급스러운 병에 담긴 와인 한 병과 잔 두 개가 놓여있었다.
“왔나?”
문을 열고 들어간 나를 보자 황제 아저씨는 와인의 병마개를 열더니 잔에 와인을 반쯤 따랐다. 하이 엘프주에는 비견하지 못하지만 일반 엘프주는 되는 것 같다.
황제 아저씨는 나에게 한 잔을 건네주었다. 나는 그 잔을 공손히 받아들였다.
“엘프주지. 하이엘프주를 제외하고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술 중 하나다.”
“확실히 향기는 좋습니다.”
나와 황제 아저씨는 동시에 와인을 입에 머금었다. 그러자 싱싱한 과일과 숲의 향이 동시에 코에 감도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맛있습니다.”
“그렇지.”
나와 황제 아저씨는 계속 술을 마셨다.
슬슬 취기가 돌 무렵에 황제 아저씨는 진중한 얼굴로 물었다.
“이제 자네도 결혼을 해야지.”
“...그렇습니다. 이제 전쟁도 끝났으니 정식으로 루이나들에게 청혼할 것입니다.”
“후후, 루이나‘들’이라... 그 대상이 하이엘프와 성녀, 심지어 드래곤까지 껴 있으니 황족 모독죄를 물을 수도 없겠군.”
“...죄송합니다.”
분명히 황제 아저씨... 아니, 황제도 한 아이의 아버지인 만큼 루이나 하나만을 사랑해줄 남자와 결혼을 시키고 했을 것이다. 그러지 못하는 것이 미안할 뿐이다.
“아니, 되었네. 루이나 본인이 행복하다고 했으니 더 이상 긴말을 하지 않겠네.”
“감사합니다. 장인어른!”
이제 황제도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과거에 루이나에 관한 일이면 추태를 보이던 그 때와는 전혀 달라진 모습이었다.
황제 아저씨는 이제 거의 비어버린 술잔을 돌리면서 말했다.
“그래, 사실 아무리 황제라고해도 정략결혼에서는 벗어날 수는 없는 법이지. 나 역시 현재의 황권을 강화하기 위해서 사랑하지도 않던 여성과 결혼을 했으니. 사랑하던 여성은 따로 있었는데 말이야.”
“......”
“나는 사랑하던 여성을 포기했을 때 결심했지, 절대 내 자식만큼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시켜주겠다고.”
“그렇습니까?”
“그랬지. 설마 제국의 후계자이며 황녀인 루이나와 이어지는 사내에게 여자가 많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고 말이야.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아.”
“감사합니다...”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네. 오히려 감사하기도 한다네. 사실 황후의 자리에 오른 여성에게는 마음이 맞는 친구가 없을 수밖에 없지. 하지만 이미 자네라는 구심점이 생기면서 루이나에게는 마음이 많이 생겼지. 그 점은 감사하게 생각하네.”
확실히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낸 당시를 생각하면 나 말고 친하게 지낸 사람이 없었다. 그런 그녀들이 나와 해어진 이후에 제대로 된 친구를 사귀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 때 여관에서 모두 모인 것을 인연으로 그녀들은 모두 친구가 되었다. 가끔은 티격태격하기도 하지만.
황제는 마지막 남은 술을 마셔버리고 비어버린 술잔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 다음에 한 행동은 나를 너무 놀라게 하였다.
“우리 루이나를 잘 부탁하네.”
황제 아저씨가 나에게 고개를 숙인 것이다.
“이... 이러지 마십시오. 황제폐하.”
하지만 황제 아저씨는 머리를 들지 않았다.
“지금 나는 황제가 아닌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부탁을 하는 거네. 황제의 자리에 올라오면서 나는 피의 길을 걸었지. 수많은 생명이 내 손에 바스라 졌네. 그리고 나는 이성을 가진 한 남자가 아닌 황제라는 괴물로 살아왔다.”
“.....”
“하지만 이제 끝났네, 황제라는 껍질은 벗어버리고 남은 것은 한 아이의 아버지라는 것 뿐. 내 자식을 행복하게 만들어 준 자네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가 없어!”
“황제폐하...”
“정말 고맙네! 자네는 나의 은인이야! 내 목숨을 준다 한들 자네의 은혜는 다 갚을 수 없어!”
나는 고개를 숙인 황제 아저씨를 강제로 일으켰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오히려 루이나라는 보물을 저에게 주신 황제 폐하, 당신이라는 사람에게 다 갚지 못할 은혜를 입은 것이나 다름없으니까요.”
“..,정말 고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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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화가 에필로그입니다. 다음화에서 모든 히로인들을 한꺼번에 안는 장면이 나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