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 회: 연합의 초대 -->
“...이렇게 그들은 제국을 모욕하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었고 결국 저는 아무런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귀국하게 되었사옵니다. 위대하신 폐하의 명을 이루지 못해서 정말로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아니, 그런 천하의 되먹지 못한...”
“어찌 대륙의 군주이신 황제 폐하의 대리인을 그토록 대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음, 여론은 점점 나빠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곧 쳐 죽일 악당들이 되었고 여론은 전쟁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딜런 공작을 비롯한 몇몇 귀족파는 황제파의 권력이 강해질 것을 두려워하면서 전쟁을 반대했지만 한 번 기울기 시작한 여론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애초에 황제파와 귀족파의 차이가 너무 나서 말이지.
“흠, 진정하도록 하라.”
장인어른(이 말을 했다가는 나를 패죽이기 위해서 달려들겠지만)...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좀 쑥쓰러우니 아저씨라고 계속 부르자.
아무튼 아저씨가 한 마디 하자 모든 귀족들이 입을 다물었다.
“리온 백작은 계속 말하도록 하라, 그들의 분위기는 어떠하였느냐? 정말로 전쟁을 원하던 분위기였나?”
“제 짧은 소견으로는 잘 알 수 없었사옵니다. 하지만 제 느낌으로는 확실히 그들은 카터 왕국을 내주느니 연합 전체의 힘을 모아서 전쟁을 하겠다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흠... 그런가...”
아저씨는 의자를 손으로 톡톡 두들기며 생각에 빠져들었다.
아저씨가 눈을 감고 생각하고 있을 동안은 아무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다들 앞에 놓은 차와 다과를 조금씩 먹으면서 기다렸다.
한 10분 쯤 지났을까? 아저씨가 눈을 떴다.
“리온 백작, 그대가 말하기를 카터왕국을 가장 웅호하는 곳이 엘리니아 왕국이라고 했었나?”
“예, 그렇습니다. 엘리니아 왕국의 사신은 처음부터 카터 왕국의 외교부상서 옆에 바로 붙어서 목소리를 높일 정도였습니다. 나머지 왕국들의 부상서들은 처음에는 나서지 않고 눈치만 볼 뿐이었는데 말입니다.”
“그렇군, 결국 이 일에는 카터왕국과 엘리니아 왕국이 중심에 있는 것이로군.”
“무슨 뜻입니까? 폐하”
“알려주십시오,”
귀족들이 머리를 숙이고 요청을 하자 나도 대세(?)를 따라서 머리를 숙이고 알려달라고 외쳤다. 대세는 거스르면 피곤하기만 해져.
뭐, 나도 어느 정도는 눈치를 깠지만.
그런데 내 얼굴을 살짝 보던 아저씨의 얼굴에 사악한 미소가 그려졌다. 뭐지 저 얼굴은? 뭔가 불안한데?
“흠, 짐이 설명하기 전에 아이언스 후작이 먼저 설명해 보라. 얼굴을 보아하니 그대도 생각이 있던 것 같은데.”
제길! 빌어먹을! 여기서 입을 잘못 놀렸다가는 귀족 사회에서 매장을 당할 것이다. 저 아저씨는 나에게 기회와 동시에 위기를 주었다.
여기서 아저씨의 생각을 제대로 읽어내면 귀족들이 나를 다시 보겠지만 만약 틀리면 역시 평민의 핏줄 어쩌고 하면서 여론이 나빠질 것이다.
하지만 황제가 지명한 이상 신하로서는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 모 아니면 도다!
나는 예의를 갖추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위대하신 아저...씨가 아니라 황제폐하에게 제 짧은 소견을 밝히기가 부끄럽습니다.”
이젠 아주 줄줄 나오는구만.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귀족생활 삼 년이면 아부가 입에 달라붙는구나. 아, 물론 나는 듣는 쪽.
“괜찮다. 어디 한 번 말해보거라.”
저 눈빛, 먹잇감을 노리는 하이에나의 눈빛이다(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먹잇감을 노리는 하이에나의 눈빛을 본 적은 없다. 이곳에는 하이에나가 없으니까, 하이에나 대신에 놀이 있지).
어쩔 수 없이 나는 내 생각을 말하기로 하였다. 그래, 설마 틀린다고 해도 뭔 일 생기겠어?
“흠흠, 알겠습니다. 제 생각에는 저를 암살하기 위해서 카이텔 백작가를 사주한 나라는 카터왕국과 엘리니아 왕국이 연합을 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카터 왕국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자신들도 끌려 들어올 수 있으니 적극적으로 카터 왕국을 돕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호오, 재밌군. 그럼 다른 나라의 외교부상서들이 자신들의 나라가 공격당할 명분을 주면서까지 그들을 돕는 이유는?”
“아무래도 카터 왕국과 엘리니아 왕국이 반 레펜하르트 연합의 주된 전력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저희 제국에게 멸망을 당하면 연합의 다른 국가들은 돈이나 병장기는 있어도 실질적인 무력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돈이 있다면 나라를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그들이 카터 왕국과 엘리니아 왕국을 돕는 이유는?”
저 아저씨가! 자기도 알면서 뭘 저리 꼬치꼬치 캐묻는 거야!
하지만 힘 없는 내가 뭘 어쩌겠냐. 까라면 까야지.
“폐하도 아시다시피 나라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군사력과 경제력이 필수입니다. 하지만 반 레펜하르트 연합의 주된 군사력은 카터 왕국의 용병들과 엘리니아 왕국의 마법사들입니다. 이들이 사라지게 된다면 국가 차원의 전쟁 용병이나 마법사들을 돈을 주고도 구하기 힘들어집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미래를 보고 침략을 당해서 힘없이 무너지느니 차라리 군사력이 보존되어있는 지금 결판을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어느 쪽이든 결과는 국가의 패망으로 이어지니까요.”
“그러니까 이번 한 번에 모든 힘을 쏟아부어서 나라를 지키겠다? 어차피 미래가 같다면 그나마 가능성이 높은 곳에 걸겠다는 뜻이군?”
“예, 그렇습니다.”
내 말에 아저씨는 만족스러운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언스 후작의 말이 맞다. 짐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느니라. 짐이 그들의 입장이 된다면 짐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로 전력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현재의 상태에서 전투에 임할테니까.”
“무의미한 발악일 뿐이옵니다.”
“그렇습니다. 레펜하르트 제국의 전력은 흑마법사와 네크로맨서, 다크나이트들의 합류로 훨씬 강해졌습니다. 그들이 무슨 계략을 꾸미든 저희 제국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확실히 그렇겠지. 명분이 있는 이상 이 정도의 호기는 없으니까.”
아저씨는 귀족들을 말을 한 동안 계속 듣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허리에 차고 있던 보검을 빼들었다.
검신이 통째로 미스릴로 되어있고 손잡이는 오리하르콘으로 되어있는데다가 검신에는 수 많은 보석들이 박혀있다.
아니, 저건 여신의 물방울이잖아? 시가가 천만 골드가 넘어간다는 대륙 최고의 물방울 다이아몬드. 역시 제국의 황제의 보검이다,
저 검만 팔아도 일억 골드는 가뿐하겠군.
“짐은 대륙의 협약을 깨고 제국의 후계자를 암살하려고 했던 카터 왕국과 엘리니아 왕국을 용서하지 않겠다! 또한 그들에게 동조하는 다른 왕국들도 같은 죄를 물을 것이다!”
“황제 폐하 만세! 만만세!”
“귀족들이여! 그대들은 영지로 돌아가서 전쟁을 준비하라! 기사 단장! 그대 역시 기사들을 전쟁 전까지 제국을 수호하는 검들을 날카롭게 갈아놓도록 하여라!”
“알겠사옵니다!”
황실 직속 근위 기사의 단장이 공작님이 오른손을 심장 위에 올리고 목례를 취했다.
그 때 전쟁이라는 말에 흥분한 귀족들과 기사들 위로 찬물을 붓는 이가 있었다.
“잠시만요!”
그게 바로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