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 회: 나, 이제 시작이야~ 내정을 -->
“하? 아까와 말이 다르잖소. 아무리 사고로 위장을 한다고 해도 드래곤과 그 흑마법사가 있으면 위장자체가 무리일 텐데? 정신계 마법은 물론이고 기사들이나 병사들이 그를 죽이고 자살한다해도 흑마법사라면 죽은 영혼을 소환하는 것이 간단하잖소. 막말로 7서클인 당신도 가능한 일을 드래곤이 불가능하겠소?”
루엔은 헤츨링에서 막 성룡이 된 새끼 드래곤이기는 하지만 성룡이 된 것 자체가 드래곤에게 있어서 9서클을 마스터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더군다나 루엔은 가장 난폭하고 강하기로 소문난 레드 드래곤.
그것만으로도 이미 인간은 대항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의 자랑인 물량공세는 드래곤에게 전혀 통하지 않으니까.
바로 드래곤의 피어 때문이다. 피어를 내뿜으면 일정 이하의 힘을 지닌 상대는 그대로 무력화 되기에 인간의 자랑인 물량이 전혀 통하지 않는 것이다.
카터의 말에 엘리니아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아, 내 말을 오해하지 말고 들으시오. 내가 그것을 모르겠소? 그러니까 그 ‘사고’를 수행하는 수행자들도 그것이 아이언스 히로 그 자를 살해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게 해야지요.”
엘리나의 말에 모든 국왕들이 그럴듯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심지어는 엘리니아와 사이가 좋지 않은 교황 세인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수행자들도 하는 일이 암살이라는 것을 모른다면 그 어떤 마법으로도 진실을 밝혀낼 수 없을 것이다.
그들조차도 하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는데 어떻게 하겠나?
그들은 사고라고 단정 지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그 배후를 계속해서 캐낼 수도 있으니 왕국 전체에 같은 명령을 내린 뒤 영주들이 그 명령을 행하다가 히로를 죽게 만들면 증거도 남지 않는다.
가령 산적으로 여겨지는 자들을 모조리 토벌하고 토벌에 박차를 가할 때마다 푸짐한 포상을 내린다. 그럼 영주들은 폭주 할 것이고 산적이 아닌 히로의 일행도 산적으로 여기고 죽일 것이다.
그야말로 완벽한 계획이라 할 수 있다.
“그럼 이 계획을 실행하는 것으...”
“잠깐!그럼 누가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기겠습니까? 일단 그 자가 살해당한 곳을 책임지고 있는 국왕은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을텐데요.”
엘리니아의 말을 가로채면서 입을 연 것은 8개의 동맹 중 가장 발언권이 떨어지는 루안 왕국의 국왕이었다.
8개의 동맹 중에서 나라의 힘이 가장 떨어지는데다가 레펜하르트 제국 바로 옆에 붙어있어서 그들과 상당히 친하게 지내는 그이기에 다른 나라의 국왕들은 조금 불편한 얼굴을 지었다.
8개의 동맹이 결성된 후 그가 입을 연 것은 처음이었다. 사실 루안 왕국은 8개의 동맹에 포함되기는 하지만 거의 중립적인 위치를 고수하는 편이었다.
자신의 의견에 토를 단 그를 향해 엘리니아가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뜻이요?”
“하아... 막말로 히로 그 자를 죽였다고 칩시다. 하지만 그를 죽인 나라는 증거가 없더라도 레펜하르트 제국에 명분을 주게 됩니다. ‘자신들의 황제가 될 남자를 제대로 대접하지 못하고 죽음으로 이끈 왕국에게 철퇴를 내린다... 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뭐, 그것은 어쩔 수 없지요. 그래도 히로라는 구심점이 사라진다면 다크니스 왕국과 레펜하르트 제국은 다시 옛날처럼 서로를 견제하게 될 것이니 우리에게 전력을 쏟아 부을 수 없지 않겠습니까?”
콰앙!
“지금 장난하십니까!”
루안 국왕은 탁자를 강하게 내리치면서 고함에 가까운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아이언스 히로 그자가 죽는다면 다크니스 왕국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국왕의 남자가 바로 그 아이언스 히로인데! 더군다나 다른 이종족들의 수장들도 우리를 향해서 진격을 할 것이 분명합니다!”
루안 국왕의 고함에 다른 국왕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닫았다. 할 말이 없던 것이다. 자신들은 그를 죽이면 이종족들은 자신들의 땅으로 돌아가고 다크니스와 레펜하르트의 사이가 다시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그들을 한심한 눈초리로 쳐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엘프들의 특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라고 믿겠습니다. 그들의 특성은 한 명을 사랑하게 되면 자신들이 죽는 그 순간까지 사랑하고 하이엘프의 말에 절대 복종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하이엘프의 남자가 죽으면 그녀는 분명 복수를 위해서 모든 엘프들을 이끌고 진격할 것입니다. 그것은 드래곤과 다크엘프 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말에 국왕들은 더욱 할 말이 없는지 딴청을 부렸다. 거의 드래곤 로드에 가까운 수준의 힘을 지닌 하이엘프가 개개인이 전부 정령사이며 전사라고 할 수 있는 엘프들을 이끌고 진격한다?
그것은 공포를 넘어서 절망이라고 할 수 있었다.
“휴우... 그럼 그를 암살한다는 계책은 무리라는 말인가?”
“동맹을 위해서 자신의 나라를 희생해 주실 분이 계시면 가능하겠죠.”
루안 국왕의 뼈가 담긴 말투에 다른 국왕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동맹을 위해서라지만 자신의 나라를 버리겠는가? 솔직히 레펜하르트 제국에 순순히 항복을 하면 국왕은 후작급의 작위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동맹을 맺으면서까지 레펜하르트에 복속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국왕의 자리를 지키고 싶어서였다. 그런 그들이 다른 왕국을 위해서 자신을 사지로 내몬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저는 더 이상 여기 있을 필요가 없을 것 같군요. 저는 이만 가겠습니다. 만약 다른 일이 있다면 부르도록 하십시오, 하지만 아이언스 히로 그 자를 죽이는 일에 대해서는 우리 루안 왕국은 빼주십시오. 그로 인한 패널티는 어느 정도 받겠습니다.”
루안 국왕이 자신의 기사를 이끌고 밖으로 나서자 다른 왕국의 국왕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루안 국왕은 이제 믿을 수 없소.”
“그렇습니다. 우리 동맹에도 별로 열의를 가지지 않는데다가 레펜하르트 왕국과 친하게 지내니 말이요.”
루안 국왕의 반론에 할 말을 잃고 있던 엘리니아 국왕이 갑자기 얼굴을 밝게 폈다.
“후후, 좋은 생각이 났소. 잘 하면 한 번에 두 마리의 오크를 잡을 수도 있겠소.”
엘리니아의 말에 관심이 모였다. 아까 루안 국왕의 반론에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이 바로 의견을 낸 엘리니아였다. 그런 그가 얼굴을 펴다니. 무슨 좋은 생각이 난 것이 틀림없었다.
“무슨 생각이오? 빨리 말해보시오.”
“후후, 그 보다 저 루안 국왕, 아니. 루안 왕국이 우리 동맹에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시오?”
“그야... 5%? 그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카터의 말에 다른 나라의 국왕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루안 왕국이 레펜하르트 제국과 동맹의 완충제 역할을 하는 것은 틀림없지만 그것 외에는 별로 없었다.
카터 왕국처럼 강력한 군사력이(사사로이 쓸 수는 없지만) 있는 것도 아니고 엘리니아나 세인트처럼 전쟁에 꼭 필요한 인력을 배출하는 것도 아니다. 자유무역 국가처럼 돈을 지원하는 것도 아니면 타이푼 왕국처럼 질 좋은 병장기를 동맹에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
동맹에 있어서 루안 왕국은 그야말로 계륵이라고 밖에는 표현이 되지 안 되는 나라였다.
“후후, 그렇습니다. 그 만큼 그들의 영향력을 짧죠. 아니, 오히려 우리를 배신할 수도 있습니다.”
“짧게 하쇼.”
“그러죠. 그러니 아까 했던 암살 모의를...”
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루안 왕국에게 덮어씌우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