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회: 파티장에서 생긴 일 -->
여자들이 창밖을 바라보니 밝은 태양이 보인다. 좋아 이럴 때 부르는 노래가 있지. 푸른 하늘~ 푸른 하늘 꿈이~ 드리운 푸른 언덕에~
아... 이렇게 정줄 놓은 생각을 해도 현실은 바뀌지 않겠구나.
아무튼 황녀에 성녀에 최강의 성기사에 하이엘프에 다크 엘프 퀸에 드래곤에 흑마법사에 정령까지. 수만 무려 8명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도대체 신의 농간인지(혹은 작가의 농간인지) 나와 인연을 맺었던 여자들이 모두 범상치 않은 신분이 되어서 돌아왔다.
그보다 왜 나 같은 놈이 좋다는 것인지..
얼굴도 평범하고 재산도 없고 직위는 정식귀족은 커녕 준귀족인 기사도 아닌 평민인데.
뭐, 내가 소설에 나오는 둔탱이도 아니고 그녀들이 나를 좋아하는 이유는 알고 있다.
그녀들은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동경’하는 것이다.
마치 중학생이 고등학생이 되어서 일진이 되고 싶은 것처럼, 고등학생이 대학생이 되어서 꿈같은 캠퍼스 생활과 연애를 하고 싶은 것처럼, 대학생이 직장인이 되어서 결혼을 하고 싶은 것처럼...
그녀들이 어렸을 때 보았던 나를 그런 영웅으로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성인이 될 때까지 같이 있지 못하고 중간에 헤어졌으니 머릿속의 나를 더더욱 동경하게 되었으리라.
만약 내가 원한다면 그녀들은 나를 받아들여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자 아이들의 치기어린 마음을 이용해서 여자를 탐할 정도로 나쁜 놈은 아니다. 그러니 그녀들을 말려야 한다.
내 분수에 맞는 여자는 잘해봐야 작은 영지를 가진 남작의 영애 정도이다.
그녀들 같이 나와 차원이 다른 여자들을 얻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닌 것이다.
좋아. 결정했다. 나는 그녀들에게 내 마음을 확실히 밝힐 것이다. 아니, 거짓말을 해서라도 때어놔야겠지.
그것이 그녀들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좋으리라.
그렇게 결심하고 열쇠로 수갑을 풀고 밖으로 나서려는데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루이나가 들어왔다.
좋아 말하자. 일단 루이나에게 먼저 말하자.
“저기 루이나...”
“오빠, 연회 준비해놓았어요. 식사부터 하세요.”
“연회! 앗싸!”
앗! 나도 모르게 그만!
요즘 만찬을 먹은 지 하도 오래되어서 나도 모르게 기쁨에 난리를 쳤다.
루이나는 그런 나를 웃으면서 바라보았다.
아, 쪽팔려. 하지만 일단 밥부터 먹자.
밥부터 먹는다고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겠지? 이것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은 아니지만 아무튼 먹고 살아야지.
나는 일단 할 말을 가슴에 묻어두고 루이나가 팔짱을 끼자 한 숨을 내쉬고 그녀를 따라서 파티장으로 갔다.
근데 보니까 파티장에 어마어마한 인원이 들어와 있었다.
하나같이 범상치 않는 고급스러운 옷에 반지나 목걸이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여기 모여있는 사람들이 모두 귀족인 것 같았다.
오늘 무슨 축제라도 있는 것인가?
이런 자리를 영 불편한데.
아무래도 평민과 귀족이 확실하게 나눠져 있는 이 세계에서 살다보니까 나도 귀족을 대하는 것이 불편해졌다.
잘못 입을 놀렸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테니까.
“오빠, 이거 받으세요.”
루이나는 내게 금으로 만들어진 패가 달려있는 목걸이를 주었다. 나름 비싸 보이는 물품이었다.
“응? 이건 왜?”
“헤헤. 그게 지금 이 파티의 출입증이거든요.”
“아, 그래?”
확실히 제국의 황녀인 루이나가 초대를 해줬어도 레더 아머를 입고 있는 나는 누가 봐도 용병처럼 보일 것이다.
귀족들이 평민보다 천하다고 여기는 용병을 보는 것이 확실히 곱지는 않을 것이다. 그럴 때를 대비해서 미리 정식 초대 손님이라고 이 패를 준 모양이다.
황녀인 루이나가 계속 내 옆에 붙어있을 수는 없을 테니까.
“네, 일단 지금은 가봐야 하니까 식사하고 계세요. 그럼 좀 있다 봐요.”
“응, 잘 가.”
루이나에게 손을 흔들어준 뒤 나는 바로 음식이 쌓여있는 곳으로 향했다.
확실히 제국의 파티를 증명하는 것인지 맛있는 냄새가 나는 고급스러운 음식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음 맛있겠다.”
에잇! 음식을 자리에 가져가서 먹는 시간도 아까워!
나는 바로 음식 앞에 자리를 깔고 앉아서 음식을 마구 퍼먹기 시작했다.
눈물나게 맛있다. 방금 먹은 고기는 양념이 잘 배어있는데다가 육즙이 뚝뚝 흐르며 쫄깃쫄깃하고 지금 입에 넣은 새우는 탱탱해서 입안에서 튀어 오르는 느낌이다.
근데 주변에서 음식을 퍼먹는 나를 보는 눈이 곱지 않았다.
“어머, 저 남자는 누구지? 어떤 집안의 아들이길레 저렇게 비천하담?”
“큭, 저 남자 너무 추해서 보기가 힘들어.”
흥! 상관없어!
어차피 난 태생이 너희가 천하게 생각하는 평민에 용병이라고!
보니까 귀족들은 대부분 포도주를 마시면서 다른 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다.
나처럼 음식을 즐기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그것도 모두 자리에 앉아서 우아하게 즐겼다.
원래 파티의 목적이 서로 친분을 다지는 것이고 음식은 예의상 차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안 먹으면 아깝잖아! 애초에 용병인 내가 예의 같은 것 따지게 생겼어!
나는 남의 시선은 무시하고 계속 음식을 퍼먹었다. 기절하고나서 시간이 꽤 흘러서 그런지 배가 무지하게 고팠다.
중간에 몇 번이나 근위병이 와서 내 정체를 확인하려고 해서 그 때마다 루이나가 건네주었던 패를 보여주었더니 금방 물러갔다.
귀족들에게 욕을 먹으며 닭다리 하나를 입에 물어뜯은 순간, 갑자기 파티장에 불이 나갔다.
그리고 단상위에만 불이 켜지더니 은발을 가진 초 미소녀. 루이나가 올라왔다.
뭐야? 할 일이 저거였나?
하긴 제국의 황녀니까 저런 것을 해야겠지. 이렇게 보면 황녀도 좋은 자리는 아니야.
근데 단상 위에 올라오는 사람이 루이나 뿐만이 아니었다. 루이나를 시작으로 아이린과 아르엔, 리엘과 프레이나, 루엔과 실피리아, 루셀이 모두 아름다운 옷을 입고 자리에 올라갔다.
모두 올라가자 불이 다시 켜졌다.
주변을 둘러보니 온갖 귀족들이 루이나들의 아름다운에 빠져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중이었다.
“오오... 저런 아름다움이라니...”
“모두 황녀님에게 꿇리지 않는 미녀들 뿐이야.”
“저런 미녀들이 어디서 나타난거지?”
“저것 봐. 엘프와 다크 엘프도 있어.”
“앗! 저분은 성녀님과 성녀님을 지키는 최강의 방패 성기사 아르엔님!”
역시 모두 너무 아름답다보니까 너무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루이나만큼 유명한 아이린도 주목을 받았다.
한 때 같이 살았던 오빠로서 참 자랑스럽구나. 눈물이 날 정도로.
근데 재내들이 왜 저런데 올라가 있는 거냐?
그 의문 중 루이나가 대표로 나와서 음성 증폭마법이 걸린 마이크에 입을 대었다.
만약 저 마이크가 경매로 나온다면 몇 천 골드라도 귀족들이 사려고 안달이 날 것이다.
“이곳에 모인 분들은 모두 저와 동등한 직위를 가지고 있는 높으신 분들입니다.”
“황녀님만큼?”
“도대체 누구길래?”
“우선 가장 왼쪽부터 소개를 해드리겠습니다. 우선 여러분도 잘 아시는 주신님을 모시는 신관들을 통솔하는 성녀년...님과 성녀님을 수호하는 최강의 방패 아르엔님이십니다.”
너무 작은 소리라서 다른 사람들은 못 들었겠지만 나는 들었다. 방금 루이나가 아이린을 향해서 년이라는 험한 말을 붙인 것을.
아아... 루이나와 아이린의 사이가 나빠지면 안 되는데.
하지만 다른 귀족들, 특히 남자들은 환호하기 시작했다.
하긴 그럴만도 한 게 성녀는 신의 대변인. 그녀의 말이 신의 말인 것이다.
애초에 성녀가 뽑히는 기준이 신이 정한거니까 반론은 있을 수 없다.
만약 그녀와 결혼한다면 교황이 될 자격과 신전의 성기사들, 특히 9서클과 마찬가지로 전설중의 전설인 소드 엠페러의 자리에 오른 최강의 성기사 아르엔을 다룰 수 있는 자격이 생기니까 제국의 황제 부럽지 않은 권력을 쥘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나도 권력이 싫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너무 과한 권력은 너무 부담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