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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자동보상-247화 (247/248)

# 247

247화

“메테오 스웜(Meteor Swarm)!”

쾅!

불길이 이글거리는 운석 수십 개.

그것들이 하늘 위에 소환되어 어마어마한 속도로 거대 지렁이를 향해 쏟아졌다.

콰콰쾅!

압도적인 압력에 휩쓸린 거대 지렁이가 비명을 지르며 땅 속을 뚫고 모습을 감추려 했다.

“어딜 감히!”

제이나는 지렁이에게 뚜벅뚜벅 걸어가며 양손으로 땅을 짚었다.

그녀가 보였던 절대영도의 빙하기가 다시 지렁이 주변에 도래했다.

파드드득!

지렁이가 뚫고 가려던 땅이 삽시간에 얼어붙으며 성 한 채만 한 얼음 송곳들이 땅 아래에서 솟아올라왔다.

콰쾅!

콰르르륵!

하지만 놈도 만만치 않았다.

거대 지렁이는 한 입에 얼음 송곳니를 흡입하듯 빨아들이며 주변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놈의 수천 개에 달하는 숨구멍 안에서 주먹만 한 지렁이들이 한 움큼씩 튀어나와 땅속을 파고들었다.

그것들이 서로 연결되어 마침내 거대 지렁이와 이어지자 마치 오래된 고목처럼 지렁이가 더욱 크기를 부풀렸다.

아까보다 3배는 커진 크기.

제이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땅은 우리에게 끊임없는 생명력을 주지.

다시 의기양양해진 놈이 이젠 자신의 머리를 땅속에 박아 넣고 수천 아니, 그 이상의 촉수들을 제이나에게 쏘아 올렸다.

쐐애애액!

지상을 전부 뒤덮으며 날아오는 촉수들.

제이나는 호흡을 후, 뱉으며 자신의 양손을 내려다봤다.

“가능할진 모르겠지만…….”

놈의 입으로 땅이 강한 생명력을 내준다고 했으니.

“시험해 보마, 네 말이 맞는지.”

제이나의 양손에서 푸른 불길이 솟아올랐다.

“영원한 불꽃, 지워지지 않는 낙인이여…….”

그녀가 하려는 건, 카오스 블레이드에 버금가는 혼돈의 마법.

단, 이번엔 수명이 아닌 그녀 자체가 매개체가 되어 그 불꽃을 유지시킨다.

즉, 그녀는 뿌리를 박아 땅의 생명력을 매개로 더욱 강력해진 선지자들을 향해 정면 승부를 내건 것이다.

자신의 생명력을 매개로 내건 혼돈의 불꽃으로.

“번 피닉스.”

마법이 완성되었다.

“땅이 마를 때까지 끊임없이 불태워 주마.”

‘누가 이길 것인지는 신만이 알겠지.’

말을 마치자 그녀의 눈동자에 일렁이던 불꽃이 전신을 거쳐 땅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 * *

“후우, 후우!”

한편 홀랜드는 한 건물 외벽에 등을 기댄 채 힐끗 골목 사이로 지나가는 거대한 발톱을 보았다.

‘어마어마하군.’

간담이 서늘할 정도의 크기.

하지만 저 날개 달린 거대한 맹수가 문제가 아니다.

그 위에 타고 있는 검은 왕관을 뒤집어쓴 존재들을 어떻게 상대하느냐가 문제였다.

꿀꺽!

홀랜드는 깊은 호흡을 다스리며 마른침을 삼켰다.

불과 얼마 전 자신을 비롯한 벡 경은 사경을 헤매다 겨우 왕성에 합류했다.

판도라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판도라가 찬영과 함께 실종되기 직전, 공주의 부탁을 받아 라이크 홉스의 생존자 수색과 치료를 해냈고, 그 때 살아남은 생존자 중 두 명이 바로 자신과 벡 경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시 전장으로 나오는 선택을 하는 데엔 조금의 거리낌도 없었다.

‘우리가 뚫리면 백성들은 모조리 살육당한다!’

그러려면 누군가는 나서야 했다.

“벡 남작.”

소곤거리며 고개를 돌린 홀랜드를 향해 나란히 벽에 붙어 있던 벡이 나직이 대답했다.

“예, 이제 준비 끝났습니다. 폭파를 시작하면 되겠습니까?”

“아니. 아직이오.”

꿀꺽 마른침을 삼킨 홀랜드는 힐끗 북서쪽 4층 건물을 쳐다봤다.

여관 건물 옥상엔 뷰로도 공작이 십안의 기사단과 함께 언제든지 그를 덮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습의 시작은 그들이 이끄는 별동대가 터트릴 트랩이 될 계획이었다.

‘조금만 더……!’

홀랜드는 건물 골목 사이로 맹수 두 마리가 지나가는 걸 기다렸다.

‘이번 골목을 지나 다음 골목에 도달했을 때……!’

그 순간 검은 왕관을 쓴 데스 나이트의 목소리가 주변에 울려 퍼졌다.

“이 일대를 전부 불태워라. 틴달로스여.”

-커헝!

맹수 틴달로스 두 마리가 울부짖었다.

뷰로도 공작은 그 피어를 듣자마자 가볍게 인상을 찡그렸다.

동시에 틴달로스들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검붉은 점액.

마치 피와 흡사한 그 브레스는 단숨에 뻗어 나가 뷰로도 공작이 매복했던 있던 건물 벽 한가운데를 송두리째 녹여 버렸다.

일이 틀렸음을 알게 된 홀랜드는 더 이상 다른 방법이 없었다.

“벡!”

“알고 있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별동대와 함께 트랩을 터트린 벡.

쾅! 쾅! 쾅!

그러자 지하 깊숙이 마나 탱크와 연결되어 있던 트랩들이 일제히 각종 마나 팽창을 일으켜 틴달로스가 디디고 있던 지상을 터트렸다.

콰르르!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지는 지반.

하나 이미 이를 눈치챈 데스 나이트들은 틴달로스를 끌어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펄럭!

그들이 날개를 펼쳐 용솟음치려던 그때.

뷰로도 공작이 무너지는 건물을 벗어나며 부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리고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 이상한 명령을 내렸다.

“귀를 막아라!”

그 순간 건물과 건물 사이에 줄지어 연결되어 있던 빛의 거미줄들이 타탁, 불꽃을 내며 일제히 허공에 돔 형태를 일궈냈다.

일전의 메테우스의 안개를 상대할 때 써먹었던 트랩에 훨씬 더 강한 공격성을 넣은 트랩.

예상 못한 기습에 틴달로스의 날개가 그 줄에 걸렸다.

기다렸다는 듯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어마어마한 전류량.

“이것으로 죽음을 피할 순 없다!”

갑작스러운 함정에 분노한 데스 나이트들이 거대한 검은 대형 낫을 휘둘러 왔다.

콰직!

4m 거대한 대형 낫에 암흑 마력이 실려 콰직, 전류가 담긴 줄들을 단숨에 끊어 냈다.

하지만 그들이 줄을 끊어내자마자 끊어진 줄들이 빠른 속도로 회전하며 마찰을 일으켰고, 그것이 강한 음파 마법이 됐다.

콰아아아!

주변 공간이 뒤흔들리는 듯한 현상을 일으킬 정도의 강한 음파가 데스 나이트들에게 향한 것이다.

동시에 발악하던 틴달로스들이 더욱 괴성을 지르며 날개를 사방으로 펄럭여 댔다.

승리가 가까운 듯싶었다.

하지만 데스 나이트들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어느새 짙은 보랏빛을 일으키며 치켜든 두 개의 낫이 암흑 마력이 깃든 소용돌이를 일으킨 것이다.

콰콰콰!

그건 단숨에 음파 트랩들을 휩쓸어버리며 연이은 기습들을 전부 무효화시켰다.

“이까짓 함정 따위로 우릴 막을 수 있다고 보았느냐!”

한층 기세가 오른 데스 나이트와 틴달로스들.

크허어엉!

이어진 틴달로스의 피어가 다시 병사들의 공포를 자극했다.

그때 거대한 틴달로스 앞으로 걸어 나온 뷰로도 공작.

그의 곁엔 왕국을 지키는 십안의 기사단, 브라이트, 콰이 기사단 등이 모두 함께 있었다.

“숫자를 믿는 것이냐?”

비웃는 데스 나이트들.

그러자 해골마를 버리고 데스 나이트 뒤를 따라나선 듀라한들이 하나둘 스멀스멀 그림자처럼 건물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키키킥! 키키킥!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를 내며 진군하는 어둠의 군대.

“이제야 다시 찾아온 멸망이 두려운가?”

그러자 뷰로도 공작이 태연하게 말했다.

“머저리 같은 것들. 난 단 한 번도 네놈들을 두려워해 본 적이 없다. 내 곁에 죽음조차 뛰어넘은 동료들이 있거늘.”

뷰로도 공작이 자신의 곁에 나란히 선 홀랜드와 벡 그리고 에머리와 수많은 기사들을 둘러보며 데스 나이트들을 노려봤다. 데스 나이트가 그를 비웃었다.

“그럼, 어디 그 용기를 시험해 볼까.”

“그거 참 즐겁겠군.”

맞장구치는 또 다른 데스 나이트.

이윽고 틴달로스 두 마리가 동시에 움직이려던 그 순간!

“뜻한 대로 시간 끌어 주어 고맙구나.”

뷰로도 공작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파밧!

이어서 데스 나이트들의 주변으로 솟아오르기 시작한 환한 불꽃.

그 불꽃은 거대한 마법진의 형태를 띠며 빠른 속도로 틴달로스의 주변을 가로막고 확장했다.

이어서 빠른 속도로 구현되는 거북이 등껍질이 촘촘히 박혀 있는 것 같은 투명한 막.

틴달로스가 날아올라 몸통을 부딪쳐도, 브레스를 뿜어도 그 막을 벗어날 수 없었다.

갇혀 버린 데스 나이트들이 외쳤다.

“시간을 번다고 달라질 것은 없을 것이다!”

“사지를 전부 짓밟고 영혼을 씹어 먹어 주마!”

발악하는 그들에게 뷰로도 공작이 호기롭게 외쳤다.

“그럴 수 있다면, 어디 한번 해 보거라. 스피릿과 마나 탱크의 마나들이 뒤섞인 초유의 마법진일 테니, 네놈도 쉽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미소 지은 뷰로도 공작이 자신의 뒤를 돌아봤다.

“전투는 이제 시작이다.”

그곳엔 결연한 표정을 지은 토르잔 밀림 왕국의 여왕이 위엄 있는 걸음을 떼고 있었고, 그 뒤로 수많은 주술사들과 전사들 삼천여 명이 매복하고 있던 건물 안에서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찬영이 메테우스에게 가기 직전 룸의 힘을 통해 어느새 그들을 머나먼 수도까지 이동시켰던 것이다.

* * *

“어, 어떻게?”

메테우스는 푸스스 부서져 나간 자신의 뼈를 애써 다시 붙이려는 듯 손을 뻗었다.

하지만 부서져나간 뼈는 방금 전과 달리 다시 재생되지 않았다.

믿기지 않는다, 모든 게 자신의 뜻대로 되고 있었는데…….

“네가 날 이길 확률은 없었다.”

찬영은 메테우스와 같은 얼굴을 한 채 그의 앞으로 날아왔다.

“그래, 그럴 뻔했지.”

하나 초월의 눈은 자신의 시간을 담보로 예지가 가능하다.

‘그 힘을 쓰는 대가로 내게 남은 건 이제 고작 이틀 정도.’

방금 전의 예지를 통해 찬영은 메테우스가 무엇을 할지 보았고, 이를 통해 그의 전략을 뒤집었다.

힘의 흡수가 가능하다는 건 곧 메테우스에게 분신이 곧 그의 영혼이며, 본체의 일부라는 것.

“……그래서 내 힘이 담긴 빛을 심었지. 심는 건 어렵지 않았어. 네가 내 힘을 흡수할 때 들어간 것이니까.”

“그렇다면?”

“내가 너를 제외하고 모든 분신을 베었을 때, 그 영혼들은 다시 네 본체와 합류해 하나가 되었지. 그리고 넌 다시 수백 개로 나뉘었어. 하지만 그 덕분에 빛 또한 수백 개로 분열되며 확장했지. 그때 빛을 폭발시켰어. 회복할 틈도 없이 일제히 영혼을 파괴한 거지.”

찬영이 손가락을 탁, 튕겼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메테우스는 점점 더 사라져 가는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봤다.

“허무하군.”

돌고 돌아 여기까지 왔건만…….

메테우스는 지상으로 추락하는 클레이모어를 내려다보다가 다시 찬영을 바라봤다.

이 순간 찬영의 모습은 눈이 부셨다.

솔직히 말하면 부러웠다.

사랑하는 이를 믿은 그가, 자신의 선택의 의심 없이 설사 의심하였더라도 계속 지켜나가려 노력하는 그가…….

“언젠가 흔들릴 것이다. 운명은 늘 고약하지.”

“알아. 늘 그랬어.”

메테우스가 대답 대신 씁쓸하게 웃었다.

어느새 목까지 번져 흩어지는 그의 형체.

찬영은 조용히 그를 바라봤다.

메테우스는 소멸에 다다르고 나서야 평온해진 것 같았다.

“편안한가?”

찬영의 물음에 메테우스는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어진 그의 한마디 당부.

“……계속 흔들리지 마라.”

선택에 실패한 한 남자의 충고였으며, 계속 사랑하는 이의 믿음을 지키지 못한 후회 섞인 남자의 부러움이 담긴 조언이었다.

찬영은 그가 완전히 흩어진 걸 본 뒤 무겁게 입을 열었다.

“흔들리기엔 너무 깊이 박혀 있거든.”

그게 무엇이든.

* * *

치열했던 전투는 찬영이 돌아온 후 삽시간에 왕국군이 승기를 잡았다.

하지만 찬영이 지원을 옴으로써 좀 더 전투가 수월하고 빨리 끝났을 뿐, 찬영은 자신이 도착하지 못했더라도 그들이 승리했을 거라 확신했다.

그만큼 그들은 치열한 고통을 지나 맹렬히 투쟁했고 자유를 강렬히도 갈망했다.

그토록 원했던 ‘삶’을 향해 한 발 다가서기 위해.

* * *

땅에 누운 거대한 지렁이를 지나 무너진 성벽 끝에 올라선 찬영은 환호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흙먼지가 가득 묻은 로브를 입은 제이나가 그 곁을 지켰다.

“……큰 고비를 넘겼네요.”

찬영은 미소 지으며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녀가 어떻게 돌아왔는지 그런 건 당장 물을 생각도 못했다.

그저 느끼고 싶었다.

그녀의 향기, 목소리를 한시도 잊어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 때 안겨 있던 제이나가 찬영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런데 느낌이 이상해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떤 느낌이요?”

“슬퍼요.”

9서클에 이른 그녀의 직감은 무척이나 날카로웠다.

찬영은 그녀의 얘기를 듣는 순간.

숨길 생각도, 숨길 수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어렵사리 입을 뗐다.

“이제 올드 원에게 가야 해요.”

“함께죠.”

“네, 함께. 하지만…….”

찬영의 어느 때보다 차분해진 목소리.

그 음성을 듣는 제이나의 눈가에서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환희의 날.

그들은 이별을 준비했다, 승전의 환호가 가득한 그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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