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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자동보상-242화 (242/248)

# 242

242화

* * *

“커헉!”

찬영은 워프가 끝나자마자 피를 토해 냈다.

쏟아지는 피와 함께 팔에 힘이 빠졌다.

쿵!

룸 소모 없는 워프를 사용하긴 했지만, 워프 특성상 공간을 뛰어넘는 기술은 육체적으로 많은 중압을 견뎌 내야 한다.

견딜 수 있을지 걱정했지만 다행히…….

‘도착은 했어.’

희미해지는 시야를 들었다.

이곳은 스피릿 마운틴에 위치한 정령왕의 신전.

핏물로 얼룩진 천장이 보인다.

정확히 말하면, 눈에 흐르는 핏물이겠지만.

‘더는 눈을 못 뜨겠어.’

몇 차례 눈을 깜빡인 후 손을 들려 했다.

하지만…….

‘들리지 않아.’

등과 왼쪽 팔에서 느껴지는 화끈거리는 감각도 서서히 그 느낌이 사라져 간다.

의식이 흐릿해져 가고 있다.

룸 소모까지 바닥을 친 마당에 스스로 치유를 시작할 여유 같은 건 있지도 않았다.

그 사이 신전에 있던 아즈렉의 부족 전사와 여왕, 달라이가 놀란 얼굴로 달려오는 게 보였다.

하지만 자신이 기다리는 건 그들이 아니다.

시야가 점점 좁아지며 의식까지 몽롱해져 가던 그때.

지잉!

하얀 빛이 남은 시야를 뒤덮기 시작했다.

‘왔다!’

찬영은 그제야 안도했다.

* * *

얼마 후 다시 왼팔을 복구한 찬영이 지쳐 있는 판도라를 부축했다.

현재 상황에 대한 설명은 여왕에게 충분히 한 후였다.

“일어날 수 있어요?”

“아뇨, 조금만 이렇게 있어야겠어요. 잠이 오네요.”

판도라는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도 그럴 게 판도라는 가진 모든 룸을 사용해 자신의 회복을 도왔다.

“그래요, 조금 쉬고 있어요.”

“네.”

“정말 고마워요, 판도라.”

메테우스에게서 도망치던 그때, 자신을 구할 수 있다고 여긴 존재는 오로지 단 한 명 판도라뿐이었다.

‘공유의 인장.’ 그것이 위기에서 자신을 구해낸 것이다.

“아니에요. 사명을 돕는 게 이곳을 지키는 거니까…….”

“하지만 전 죽을 위기까지 겪었어요. 걱정되지 않나요? 어쩌면 패배할지도 모릅니다.”

“사명은 신이 아니에요. 늘, 위험은 도사리고 있었죠.”

“판도라…….”

“이 순간 미래를 읽을 수 없다는 건 축복이겠죠. 모르기에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니까요. 사명 역시 그렇지 않은가요?”

찬영의 눈빛이 세차게 흔들렸다.

‘신이 아니다.’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러네요.”

한계치 이상의 위기를 늘 겪어왔지만, 신체 일부가 훼손될 정도의 위기는 처음.

어쩌면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각오는 했지만 막상 겪어 본 순간에는 흔들리기 마련이니까.’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강박이 끊임없이 걱정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그럴 필요 없어.’

판도라의 말대로 결과에 대한 걱정 같은 건 결과를 본 후에 해도 늦지 않다.

그러니 그 생각들 대신 있는 힘껏 사력을 다해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거다.

“다녀올게요.”

찬영은 판도라를 뒤에 둔 채 걸음을 옮겼다.

저벅저벅.

제단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던 달라이가 다가왔다.

“또 다시 멸망이 오고 있군요.”

찬영이 걸음을 멈춰 세운 후 그녀를 바라봤다.

“예, 메테우스는 그러고도 남을 존재입니다.”

“기도해야겠군요.”

“아뇨,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실 겁니다. 오딘 제국을 점령한 그들은 전부 왕국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럼, 왕국 다음은 어디가 될까요?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저희 왕국이 되겠군요.”

“왕국에서 막지 못한다면 그리될 겁니다. 그러니 부탁드립니다. 잠시 오랜 선조의 땅을 두고, 왕국과 협조 아래 그들과 함께하세요.”

“그럴 순 없습니다.”

찬영은 그녀의 부정적인 대답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너무 많이 바란 것일까?’

토르잔은 폐쇄 국가다.

현재 왕국과의 수교를 위한 전진만 하더라도 그들은 많은 것들을 포기한 것일 터.

아무리 또 한 번 대륙의 위기가 다가왔다고 한들, 그들은 자신들의 터전을 버리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해한다.

하지만 알았으면 좋겠다.

“왕국은 사력을 다해 싸울 겁니다. 그리고 저 역시, 그들과 함께 서서 돕겠습니다. 기도가 최선이라면……. 예, 부탁드립니다.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 주세요.”

찬영이 진심을 다해 그 말을 남긴 뒤 제단 위에 있는 향로를 향해 다시 걸음을 옮기려 했다.

그때 침묵하고 있던 달라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오랜 선조의 땅을 그냥 버리고 갈 순 없다고 했지, 우리가 대륙의 운명을 건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하진 않았습니다.”

찬영이 놀란 눈빛으로 다시 그녀를 뒤돌아봤다.

“여왕님……!”

“이미 치료하는 동안 세 부족의 모든 전사들과 주술사들을 소집해 두었어요. 라이크 왕국과 긴밀히 협조해 함께 싸울 생각이에요.”

“하면 여왕님께서는 이곳에 남으시려는 겁니까?”

“부족민들은 오랜 세월 이곳에서 살아왔고 적응해 왔어요. 그들에게 갑자기 떠나라는 건 많은 걸 삶을 포기하라는 것과 같죠. 나는 그리 하지 않을 겁니다.”

“부족민과 운명을 함께하시겠다는 거겠지요.”

“맞아요.”

어린 나이이나 많은 위기를 겪어온 그녀는 나이 대에서 나올 수 없는 기품과 강인함을 함께 보였다.

‘달라이란 정말, 나이를 초월한 존재를 말하는 건지도…….’

찬영은 새삼 달라이가 가진 상징성이 괜히 오랜 세월 이어져 내려온 게 아니란 생각을 하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 세월 지켜온 터전이 무너지지 않게……. 사력을 다해 돕겠습니다.”

“부디, 그래주세요.”

찬영은 미소 지으며 다시 계단을 향해 걸어갔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갈수록 부담감과 중압감이 밀려온다.

자신에게 걸린 목숨은 한 두 사람이 아니라 대륙 전체.

하지만 판도라와 얘기하며 마음먹었던 대로 자신은 묵묵히 앞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그러기 위해 이곳에 왔고.

저벅.

단숨에 향로 앞에 선 찬영은 이를 올려다보았다.

손에 꽉 쥐고 있던 빛이 찬영의 손바닥 안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왕관의 마지막 조각.’

그토록 찾아 헤맸던 잊힌 별의 조각이 자신의 손안에 있었다.

메테우스와의 싸움에서 왕관 조각을 노렸던 것도 바로 그 이유.

‘한 걸음 더 성장할 수 있어.’

예상대로라면 자신은 메테우스를 넘어설 수 있다.

“아직 전부 끝난 게 아니니까.”

나직이 읊조린 찬영의 목소리와 함께.

-빛의 왕관 조각이 모두 회수되었습니다.

왕관 조각이 왕관으로 구현됩니다.

구현된 왕관은 위그드라실에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섯 번째 차원 다리로 향하는 빛의 문이 개방됩니다.

이어지는 창들.

쿠쿠쿵.

신전 천장이 흔들리며 찬영의 주변으로 강풍이 휘몰아쳤다.

동시에 향로에서 솟아오른 빛의 물결이 찬영의 앞으로 쏟아져 나와 하나의 원 형태의 게이트를 구현해 내기 시작했다.

‘이것이 빛의 문……!’

이제 이 관문만 넘어서면 자신은 오랫동안 차원 구석구석에 숨어들어 있던 잊힌 별들의 힘을 깨워 낼 수 있을 것이다.

‘베아트리체가 염원했던 일을 완성하는 거지.’

수많은 희생이 깃들어야 했던 지난날이 헛된 일이 아니게 되리라.

‘하지만, 아직은 아니야.’

찬영은 멈칫하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한 때 홉스의 기억들을 통해 이 문 너머, 글라투와 같은 레퀴엠들이 대거 자리 잡고 있다는 걸 안다.

‘그들과 싸우려면 더 큰 힘이 필요해.’

찬영은 기다렸다.

잊힌 별들의 힘은 임무를 완수하고 나면 강한 힘을 거래 하듯 내주었다.

‘이번에도.’

예상은 다르지 않았다.

-란테고스가 각성합니다.

시작은 완벽히 각성하지 못했던 공주부터.

-다섯 번째 차원 다리가 개방됨에 따라 란테고스를 제외한 갓피스 앨범에 존재하는 나머지 갓피스 당신의 룸으로 환산됩니다.

-‘사명의 완성 2’ 업적을 달성하였습니다.

-사명의 두 번째 걸음으로 인해 별들의 속삭임을 추가로 들었습니다. 그로 인해 별들의 속삭임이 9/10가 되었습니다.

-별들의 속삭임을 들은 후 신체가 완전히 재구성됩니다.

순간 시야가 어두워졌다.

변화가 찾아온 게 틀림없었다.

* * *

-이제 마지막 길에 다다랐구나. 오랜 시간 기다려온 사명이여.

이 목소리.

처음 들어 낯선 게 당연하건만.

오랜 시간 가까이 지내온 것처럼 친숙하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목소리는 하나가 아닌 여러 명이었다.

“당신들은 누구지?”

질문을 하면서 엄마 뱃속 안에 태동하는 아이처럼 어둠 속을 부유했다.

대답은 없었다.

대신 어딘가로 이끌어지고 있었다.

그동안 서서히 걷혀지는 어둠.

그 사이로 햇살 같은 빛들이 하나둘 어둠 사이를 헤집고 스며들기 시작하며, 어둠 한 가운데 부유하던 찬영의 눈을 부시게 했다.

이건 이제껏 겪어 온 잊힌 별들의 기억들이 아니었다.

과거의 기억이 아닌 뿔뿔이 흩어진 잊힌 별들의 일부가 모여 모습을 드러낸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은 듯.

그들의 의지가 마치 미완성의 번역기처럼 띄엄띄엄 전해졌다.

-우린 오랜 세월 잊힌 별.

-별은 영원하지 않지.

-하지만 끊임없이 태어나고, 창조하며, 혼란해하며, 소멸한다. 그리고 다시…….

-창조된다.

-너는 우리의 오랜 잠을 다시 일깨웠다.

-되찾아온 별의 숨결은 이제 마지막 불씨를 기다린다.

찬영은 그들을 바라보았다.

제대로 눈 뜨기 힘든 빛.

하지만 안간힘을 쓰고 눈꺼풀을 들었다.

그들을 똑바로 마주본 채 해야 할 말이 있었다.

“난 조금 있으면 내가 소멸될 걸 알아. 하지만 알면서도 당신들 뜻대로 여태껏 버텨 온 건 내가 사는 세계가 유지되길 바라기 때문이야.”

대답이 없다.

그들은 정작 자신들의 재건에만 관심이 있는 건가?

찬영은 그들의 의중을 알고 싶었다.

다시 되살아난 그들이 앞으로 무엇을 할지…….

“당신들 또한 나와 같다고 생각해. 올드 원처럼 세계를 망가트리고 싶어 하지 않으니까. 그랬다면 나를 돕지 않았겠지.”

-잊힌 별들은 엘더 갓의 율법대로 향한다.

-올드 원은 율법을 파괴하고 영원한 두려움에 휩싸여 있다.

-잊힌 별들의 의지는 그대와 함께한다.

그들의 대답은 충분했다.

‘엘더 갓.’

올드 원조차 두려워하는 메테우스가 말했던 더 큰 상위의 전능한 존재.

찬영이 빛을 향해 소리쳤다.

“……그를 부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당신들을 깨우기 이전에 그를 부른다면, 이 사태를 정리할 수 있어!”

-엘더 갓은 심연의 존재.

-그는 오랜 잊힘에 모습을 감추었다.

-잊힌 별들과 올드 원은 엘더 갓의 존재를 찾지 못한다.

“결국, 당신들이 유일한 해답이라는 얘기군.”

-잊힌 별들을 깨울 열쇠여.

-그대를 위해 승전의 나팔을 불 것이다.

-엘더 갓의 율법이 그대를 가호하리라.

-기다릴 것이다……….

‘더는 버틸 수 없겠어.’

마침내 눈으로 쏟아지는 빛을 더 견디지 못하고, 결국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깊은 수렁에 빨려들었다.

항거할 수 없이 끊임없이 떨어지는 육체.

존재를 잊고, 망아忘我 속에 끊임없이 휘감겨지던 그때.

잊혀졌던 감각과 함께 익숙한 소리들이 들렸다.

웅웅!

‘이건…….’

눈을 부릅뜬 찬영은 익숙한 신전의 광경과 함께 팔목을 내려다보았다.

먼지 한 올 없이 깨끗한 백색의 얇은 일체형 슈트.

‘달라졌어.’

포스 알데바란의 외관이 완벽이 바뀌어 있었다.

은백색이던 색이 하얀 백색으로 변형된 것이다.

하지만 이건 일부의 변화일 뿐.

찬영은 눈앞에 뜬 수많은 창을 올려다보았다.

-캘린더 30회 보상 받기가 완료되었습니다. 보상으로 룸 20,000이 상승합니다.

-네 번째 캘린더가 완성되었습니다. 캘린더가 종료됩니다.

-소울 카드가 개봉됩니다.

네 번째 캘린더가 완성된 건 둘째 치고, 눈앞에 놓인 건 31회 보상으로 인해 나타난 또 다른 소울 카드였다.

‘시간이 그사이 흐른 건가?’

시간마저 잊은 채 변화에 휩싸였으니 얼마나 흘렀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나 중요한 건, 간절히 원했던 대로 자신의 다음 성장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힘이 몸속 안에 충만히 휘돌고 이전과 다른 변화들이 느껴진다.

띄워진 창을 통해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신 안에서 잊힌 별들이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지닌 박스들이 잊힌 별들의 힘을 회복하는 데 추가 사용되었습니다.

-당신은 현 시간 부로 엘더 갓의 율법을 지키는 수호자가 됩니다.

‘엘더 갓의 수호자라…….’

찬영은 천천히 향로를 보고 있던 자리에서 뒤를 돌아보았다.

기다리던 이에게 돌아갈 시간이 된 것이다.

‘2차전이다, 메테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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