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자동보상-241화 (241/248)

# 241

241화

* * *

어둠이 내려앉은 밤.

여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무슨 일이에요?”

잠에서 일어난 푸른 머리 청년이 갈색 로브를 갖춰 입으며 물었다.

그를 깨운 동료, 네무가 검을 챙기며 말했다.

“로일시에서 용병 길드들을 대거 고용했어. 우리 역시 마찬가지고.”

용병 길드.

3국이 갖가지 혼란에 휩싸이며 나라를 운영할 힘을 잃자, 수많은 상단들의 상로 또한 막히기 시작했다.

그들의 파산은 당연한 일.

그때 도미노처럼 연쇄 타격을 입은 건 용병 길드였다.

상단들을 호위하며 돈벌이를 해 왔기에 가장 큰 수입원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하지만 최근 왕국이 재건 사업을 시작하였다.

그러자 수많은 용병들이 이곳으로 몰렸다.

왕국의 지원으로 상단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고, 그들이 다시 용병들의 수입원이 되어 준 것이다.

용병들은 정규 군대가 닿지 못하는 장소들을 대신 도맡아 지키거나 혹은 정규군에 합류해 몬스터 소탕을 도왔다.

니유가 속한 ‘블루 카운터’ 길드 또한 그 중 하나였으며 주 활동 지역은 라쿤 마을이었다.

그런데 로일시로 합류하라는 임무라니……?

“갑자기요? 당장 내일 해야 할 의뢰도 있었잖아요?”

니유가 지팡이를 들며 물었다.

그는 2서클 마법사.

상아탑의 폭발 사건으로 마법사가 귀해진 대륙에서 마법사란 존재는 용병 못지않게 급부상했다.

특히 용병인 마법사는 더욱 더 그랬다.

“그 일은 다른 용병 길드에서 대신 맡아 주기로 했고, 마법사가 속한 우리 길드는 반드시 로일시 정규군에 합류하라는 전갈이야.”

“왜요?”

“글세, 우리 단장은 꽤나 큰 전투가 있을 거라고 예감하던데?”

“큰 전투요?”

“오딘 제국 부근에서 왕국 요새들이 대거 무너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거든. 아무래도 그것과 관련 있는 게 아닌가 싶어.”

“그럼 설마……?”

“위명이 자자한 갓피스 그 친구 역시도 뜻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거겠지. 젠장, 도대체 이 전쟁은 언제 끝나는 거야?”

투덜거리며 먼저 밖을 빠져나가는 네무.

한동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니유는 굳은 표정으로 여관의 창밖을 쳐다봤다.

‘별일 없으신 거겠죠?’

자신은 아직도 감옥에서 나가자고 했던 그의 모습이 선하다.

그는 마을 사람들을 구해 줬고, 희망이 아직 남아 있다는 걸 온몸으로 보여 줬다.

본래 가문 대대로 이어져 온 마법서로 2서클 마법사로서의 역량이 충분했음에도 죽는 게 두려워 항거하지 못했던 지난날을 후회하게 만들어 준 존재.

‘당신 덕분에 새로운 삶이 시작됐어요. 그러니 포기하지 마세요.’

니유는 간절히 기원했다.

자신이 건네준 목걸이가 그에게 행운을 조금이나마 가져다주길.

* * *

“커헉!”

찬영은 입에서 피를 토했다.

갖춰 입었던 알데바란은 만신창이가 된 상태.

자신을 도우러 활강했던 요드조차도 메테우스에 의해 거대한 몸을 땅에 뉘고 있었다.

이젠 날개조차 들지 못하는 요드를 보며 찬영은 이를 악물었다.

‘이렇게까지……?’

설마했지만 그의 무력은 압도적이었다.

인정해야 한다.

‘그는 완성되어 있어.’

그에 반해 자신은 미완성의 상태다.

어떤 게 완성형인지 알 수 없으나 이제껏 받아온 퀘스트들을 통해 직감할 수 있다.

특히 최근 겪었던 다른 갓피스들의 힘을 흡수했던 상황을 떠올려 본다면……?

찬영은 다시 룸의 칼날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살아 있을 때의 이야기.

메테우스가 검을 늘어트린 채 물어 왔다.

“계속 버틸 수 있다고 보나?”

“퉤!”

찬영은 대답 대신 입안에 가득한 피를 뱉은 후 눈을 빛냈다.

“어렵겠지. 오래 버티는 건..”

“현실적이군.”

“안 되는 걸 된다고 믿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으니까.”

“그거다.”

메테우스의 눈빛이 방금 전보다 훨씬 부드러워졌다.

“이제야 내가 했던 말을 이해했나 보군. 대의라는 건 그저 허상일 뿐인 것이다. 그러니…….”

메테우스가 검을 거두고 손을 뻗었다.

“마지막으로 제안을 하나 하지.”

“제안? 그런 협조적인 걸 하기엔 너나 나나 너무 많이 건너온 것 같군.”

찬영이 피 묻은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메테우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내 하수인이 되어라. 그럼 네가 지키고 싶은 것을 지키게 돕지. 네가 싸우는 이유가 대륙을 위해서냐, 아님 네가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지 위해서냐?”

그 질문을 던진 순간 찬영의 눈빛이 흔들렸다.

무시하기엔 달콤한 제안.

“네가 뭘 약속할 수 있지?”

“올드 원으로부터 네가 사랑하는 것들을 보호해 주지.”

“그걸 믿으라는 건가?”

“믿음의 정도를 따지자면 네가 이길 확률에 거는 것보다 말도 안 되는 도박은 없지. 너는 사명임에도 불구하고 올드 원과 거래를 마친 나에게 닿지 못하고 있지 않으냐.”

아프지만 메테우스의 말이 조금도 틀린 게 없다.

그는 맞는 말만 하고 있었다.

아직 올드 원이 어떤 전지전능한 힘을 갖고 있는지 감도 잡히지 않고 있다.

‘나는 메테우스조차 넘어서지 못하고 있으니까.’

그는 같은 우스 동력기를 근간으로 만든 장비, 열세 번째 힘, 잊힌 별에서 힘을 받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올드 원에게 그만한 권능을 부여받은 것 같았다.

‘소멸도 통하지 않아.’

신체 일부가 흩어지는 모습만 보일 뿐, 다시 재구성되어 모습을 구현해 낸다.

일전에 상대했던 차원의 지배자들조차 당해 내지 못했던 소멸의 권능까지도 그에게 무력화된 것이다.

“받아들일 텐가?”

“이해가 안 돼.”

“무엇이?”

“내 패배가 확실해지고 있는데 나를 왜 제거하지 않지?”

“올드 원은 너를 원한다.”

“죽이길 바란 것 아닌가?”

“아니, 산 채로 가져오라더군.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이런 제안을 하는 건가?”

“글쎄, 그래 보이던가?”

메테우스는 복잡한 눈빛으로 먹구름 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자신의 제안에 대해 어떠한 부연 설명도 덧붙이지 않았다.

하지만 마주한 찬영은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는 여전히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믿고 싶어한다.

메들린을 죽인 것에 대한 정당성을 자신의 선택을 통해 찾을 수 있다면 조금이나마 덜 죄책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일까?

‘그밖에 모를 일이지.’

그사이.

콰쾅!

주변 일대에 몰리기 시작한 비구름.

조금 있으면 폭풍이 몰아칠 것만 같다.

하늘을 올려다본 메테우스가 말을 이었다.

“기상 이변은 너와 나의 충돌로 인해 시작됐다. 너와 나, 둘 모두 대륙을 흔들어 놓을 권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 그 일례로 너는 소멸되어 가고 있지 않으냐?”

찬영은 눈만 치켜떴다.

‘그걸 어떻게?’

판도라에게밖에 얘기하지 않은 비밀이다.

찬영은 메테우스의 말에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지만, 오히려 침묵이 대답이 됐다.

“차원에는 저마다 보유할 수 있는 힘의 한계가 있지. 대륙은 너를 실체로 구현할 수 있는 한계치에 다다른 것이다. 너는 점점 대륙이란 차원에 녹아들겠지.”

“그래서 그 전에 올드 원과 거래를 하라는 건가?”

“아니, 나와 거래를 하라는 거다. 어차피 올드 원은 이곳으로 건너오지 못하지. 올드 원이 전능함을 가지고도 대륙을 넘어오지 못하는 이유가 궁금하지 않았느냐?”

“설마……?”

“네가 생각하는 그대로다. 네가 이제껏 상대한 올드 원이 되고자 하는 맹수 새끼들인 ‘레퀴엠’들 또한 마찬가지였지.”

찬영은 글라투와 이그 등을 떠올리며 마른침을 삼켰다.

올드 원과 거래를 했던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 이상의 진실들을 알고 있었다.

‘이게 사실이라면……!’

표정이 딱딱하게 굳은 찬영이 물었다.

“그들이 대륙과 지구로 건너오지 못하는 이유가 두 곳 모두 그들의 힘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인 건가?”

“그래, 그리되면 이곳으로 연결되어 있는 차원 다리가 무너진다. 그들은 너의 고향과 대륙에 하수인인 몬스터조차 보낼 수 없지. 하지만 허락받은 존재들은 가능하다. 사명, 너와 갓피스들이지.”

“대체 누가 정한 거지?”

“그들 상위의 존재겠지. 나 역시 알 순 없다. 그저 가늠만 할 뿐이지.”

찬영은 조용히 눈을 빛냈다.

‘잊힌 별들과 올드 원조차 거스를 수 없는 룰을 만든 상위의 존재라…….’

찬영은 그와 대면하고 싶었다.

그와 대면할 수만 있다면, 어쩌면 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가능할까?’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쳐간 그때.

메테우스가 다시 말을 걸어왔다.

“나는 영혼만 손상받지 않으면, 언제든 되살아날 수 있는 아크 리치가 됐다. 영혼을 담은 라이프 베슬이 깨지면 소멸되어 버리는 리치 따위와는 비교가 안 되지. 내가 소멸될 네 자리를 대신 지켜 주마. 올드 원의 하수인들이 건너올 때마다 죽여 주지.”

“그전까지는 네게 협조하라?”

“그들은 모두 틀린 선택을 한 대가를 받을 자들이다. 어려운 일은 아닐 터인데?”

찬영은 대답 대신 룸을 눈덩이처럼 일으켰다.

얼마 남지 않은 룸이 희미하게 손에 휘감긴다.

쐐액!

이어서 찬영이 있는 힘껏 룸을 집어던졌다.

가볍게 덩어리진 룸을 베어버린 메테우스.

그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거절인가?”

“그래, 하지만 흔들렸다.”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수많은 희생을 담보로 자신이 지키고 싶은 것들을 지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제이나는 이런 선택을 원하지 않았을 거야.’

그녀뿐 아니라 자신의 곁에서 함께해 왔던 누구든, 이 달콤한 제안을 거절했을 것이다.

“목숨 바쳐온 이들이 원한 결과들은 네가 말한 게 아니었어.”

“……의미 없는 대의 따위를 지키느라 전부 죽어도?”

“안 죽어.”

“죽게 될 것이다.”

“그게 지금 너와 나의 차이야. 난 무기력하게 쓰러질지라도 내 의지대로 움직인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은 내가 그리 하길 바랄 테니까. 장담컨대…….”

찬영이 말을 이었다.

“네가 사랑했던 메들린은 네가 그따위 선택을 하길 바라지 않았을 거다. 메테우스.”

“권주를 버리겠다면야, 말리지 않으마.”

협상이 결렬된 이 순간, 메테우스의 표정이 마치 지옥의 악귀처럼 사납게 일그러졌다.

순식간에 진공을 가르며 쇄도하는 메테우스.

찬영은 심연의 눈동자를 사용해 봤지만 그저 흐릿한 잔영만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언제 다가오는지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쐐액!

어느새 나타난 클레이모어가 찬영의 등을 향해 휘둘렸다.

찬영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등을 지고 있었다.

메테우스의 입술이 달싹였다.

“끝이다.”

마침내 검 끝이 등에 닿던 그때.

우두커니 서 있던 찬영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오히려 메테우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찬영의 눈빛에서 묘한 위화감을 느낀 것이다.

‘대체, 무슨 생각…….’

그걸 묻기도 전에 메테우스의 검은 정확히 찬영의 어깨 대부분을 갈라 버렸다.

툭.

단숨에 갈라져버리며 부서진 포스알데바란과 함께 떨어져나간 찬영의 왼쪽 팔.

찬영은 고통으로 울부짖으며 눈을 들었다.

아찔한 고통이다.

덩달아 눈앞이 희미해졌다.

하지만 덕분에 메테우스와의 간극이 좁아졌다.

‘놓쳐선 안 돼.’

사력을 다해 해내야만 한다.

‘타키온!’

한 발을 내디뎌 그와 훨씬 더 가까워지고.

‘소멸!’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온힘을 다한 소멸의 힘에 아크리치인 놈마저 눈 깜짝할 새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 사이로 반짝이는 물건.

찬영은 남은 마지막 왕관 조각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할 수 있을까?’

의심과 걱정.

싸우는 내내 계속 됐지만 떨쳐 버렸다.

‘늘 그랬던 것처럼!’

지금은 걱정보다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중요했다.

“으아아아!”

핏발 선 눈을 부릅뜬 찬영이 안간힘을 다해 왕관 조각을 낚아챘다.

탁!

‘됐다!’

하지만…….

“어림없다.”

분노한 메테우스의 권능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소멸로 실체가 흩어진지 몇 초 되지 않아 다시 본래의 모습을 되찾으며 복원된 것이다.

단숨에 왕관 조각을 쥔 손의 손목을 잡힌 찬영.

팽팽히 대치한 메테우스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왕관 조각을 모두 모은다고 해서 나조차 이기지 못하는 네놈이 올드 원을 이겨 낼 수 있을 것 같으냐? 더구나 넌 여길 벗어날 수 힘 따위 남아 있지 않을 텐데?”

울컥.

찬영이 피를 토해 내면서 말했다.

“패자의 조언은…….”

파지짓!

서서히 메테우스의 눈앞에 솟아오르기 시작한 뇌정을 담은 엘리야의 날개.

벼락을 사방에 일으키기 시작한 아티팩트가 강렬한 바람을 일으키며 메테우스와 찬영의 머리를 사방으로 흩날리게 했다.

“한 귀로 흘리는 편이라……!”

말을 잇는 찬영의 손과 발, 그가 흘리는 피들이 서서히 메테우스의 손을 빠져나가 고운 입자가 되기 시작했다.

메테우스가 빠져나가는 찬영을 한 번 더 자신에게 강하게 끌어당기며 이를 갈았다.

“이게 끝이 아니다. 그저 시간을 번 것뿐이지.”

“너만큼 잘 알고 있어. 하지만…….”

찬영이 쓰게 미소 지었다.

“난 안 되는 걸 믿는 어리석은 쪽이라.”

“그럼 자비를 거절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것도 알 것이다! 네가 보는 모든 것들이 지옥이 될 테니까!”

뒤이어 메테우스가 소리쳤다.

하나 이미 찬영은 그의 목소리가 닿지 않는 곳으로 사라져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