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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자동보상-237화 (237/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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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화

* * *

“놀라웠습니다. 그는…….”

자칫 붕괴 직전까지 갔었던 신전의 천장 위를 힐끗 올려다본 브루파는 다행히 큰 부상 없이 서 있는 서스에게 그간 있었던 일을 전했다.

“나 역시 그랬다. 그의 개입으로 내분이 봉쇄됐고, 밀려들던 몬스터 떼로부터 최후의 경계를 지킬 수 있었지.”

말을 마친 서스는 시선을 돌려 여왕과 함께 있는 찬영을 바라보았다.

듣자하니 그는 현재 라이크 왕국에 속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토르잔의 운명을 바꾼 그.

지금에 와서 그건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다.

“정령왕의 표식을 가진 존재가 살아 숨 쉴 줄은 예상도 못했건만…….”

“그런 그가 저희를 구원하러 올 줄도 몰랐지요.”

“그러게 말이다.”

두 사람의 시선이 향로 앞에 서 있는 찬영과 여왕에게로 향했다.

* * *

여왕이 찬영에게 고개를 돌렸다.

“정령왕의 사자께서 나서 주신 덕분에 부족들은 내분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혼자서 한 일이 아닙니다. 여왕님께서 저를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신 덕분이죠. 많은 이들의 희생이 있었고…….”

“동의합니다. 우린 흘리지 말아야 할 피를 흘렸어요.”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쓰게 웃은 여왕이 부서진 신전을 둘러보며 말했다.

“오늘의 일은 다소 시간이 걸리긴 하겠지만 화합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모두가 깨달은 계기가 될 것입니다.”

여왕은 말을 마친 후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정령왕의 불꽃을 두 손에 꺼냈다.

찬영이 비켜서 줬다.

“여왕님의 몫입니다. 지금도, 앞으로도.”

정령왕의 불꽃을 지키는 소임이 그녀에게 있다는 걸 강조한 것이다.

이제 이로써 토르잔 왕국은 안정될 거다.

‘타우린도 그걸 원했겠지. 녀석을 고귀하게 여기고 기억해 줄 수많은 사람들이 평화롭게 남기를 바랐을 테니까.’

찬영은 타우린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며, 향로로 다가가는 여왕을 바라보았다.

‘드디어.’

화륵!

불꽃이 솟아오르며 어둡던 신전 안에 환한 빛이 가득해졌다.

더피 부족이 가져온 정령왕의 불꽃을 포함해 두 개의 불씨가 다시금 향로 안에 깃들게 된 것이다.

이어서 자신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왕관 회수율이 상승했습니다.

-토르잔 밀림 왕국에 흩어져 있던 왕관 조각이 모두 모였습니다.

-봉인되어 있던 나머지 대륙이 개방됩니다.

-오딘 제국의 6개 지방 라크, 판델로…… 가 복원됩니다.

그 말이 뭘 뜻하는지 모를 리 없었다.

‘혹한의 오딘 제국.’

남아 있던 모든 대륙의 조각들이 다시금, 본래의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이다.

그 변화는 당장, 눈앞에부터 나타났다.

치치칙!

향로 안에 스파크가 튀며 환한 빛이 거대한 빛의 기둥으로 돌변하기 시작한 것.

“이것은……!”

여왕마저 갑작스런 변화에 놀란 눈치였다.

찬영이 그녀의 뒤에 서며 안심시켰다.

“괜찮습니다. 잠들어 있던 대륙이 다시 깨어나는 변화일 뿐이에요.”

“사자께서는 알고 계셨습니까?”

“저 역시 방금 느꼈습니다. 대륙의 변화를…….”

거침없이 솟아오른 기둥은 신전의 천장을 통과해 하늘을 뚫을 듯이 솟구쳤다.

그동안 신전 밖에 있던 모든 부족들은 빛의 기둥에 놀라며 엎드렸다.

그들은 기둥이 대륙의 복원이 아니라 정령왕의 불꽃이 재생되었다는 계시로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왕국에서부터 대륙 복원 변화를 지켜봐 왔던 로레인과 빌로우는 기둥이 뭘 뜻하는지 금세 눈치챘다.

“또다시 대륙이 복원되는 것 같네요.”

“예, 토르잔의 복원 과정도 대륙 한가운데에 모두가 볼 수 있는 기둥이 생겼지요. 그때와 같군요.”

“이번엔 오딘 제국이겠죠?”

“그렇겠지요. 하지만 그게 좋은 일인건지는 쉽게 장담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빌로우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그건 일종의 근심.

로레인은 그 근심이 무엇으로부터 비롯되는지 잘 알았다.

“카베이 때문이군요.”

“예, 다행히 아직 그가 모습을 드러낸 흔적은 보이지 않았습니다만……. 어느 쪽이든 그는 우리의 적이 될 것입니다.”

“정황대로 그가 뉴 빌드와 관련이 있고 나아가 다시 모습을 드러낼 준비가 됐다면……. 분명히 위험한 짓을 벌이려 들 테죠.”

“맞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미 편을 정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지금처럼 하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껄껄.”

빌로우의 대답에 로레인은 찬영을 떠올렸다.

하긴…….

이미 그를 다시 만나 탈파의 재건을 꿈꿨을 때부터 자신은 선택을 한 거나 다름없다.

빌로우도 그를 통해 왕국과 필요한 거래를 청할 만큼 왕실과의 교류가 과거보다 훨씬 활발해졌다.

“그래요, 왕국과 한 배를 탄 셈이죠. 그리고 그 말은 오딘 제국의 혼란을 활용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겠죠.”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들이 만약 카베이로 인해 심각한 내분을 앓기 시작했다면 우린 그 틈을 활용해 오딘 제국의 깊숙한 곳까지 진출해야 합니다.”

“헤라클 왕실의 지원을 받으려고 하셨던 것도 그런 이유였던 거지요?”

“물론이지요!”

로레인은 빌로우에게 새삼 감탄했다.

‘그는 삼국의 정세를 빠르게 파악하고 정보 수집하는 게 탈파가 앞으로 재건을 공고히 하는 데 있어서 큰 역할을 할 거라는 걸 예상하는 거야.’

부족한 전력은 레딩이 이끄는 브라이트의 도움을 받으면 될 테고, 그건 재정 면에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빌로우가 재차 말했다.

“돛을 단 배가 순풍까지 탔는데 그쪽으로 올라타는 건 당연한 일이지 않겠습니까?”

로레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토르잔은 거점이 됐을 뿐, 빌로우가 그린 그림은 이번에 복원될 오딘 제국이 되리라.

* * *

그렇게 복원이 시작된 후, 레딩은 무척 바빠졌다.

오딘 제국의 대륙 복원이 시작된 것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하는 건 물론이거니와, 찬영으로부터 비롯된 토르잔과의 우호적 관계를 다시 재정비해야 했다.

더욱이 찬영을 통해 다시 개방된 마법 통신 문제를 한 시라도 빨리 왕에게 알려야 했던 것이다.

그의 발길이 궁으로 향한 건 당연했다.

“공작 예하, 폐하께서 들라 하십니다.”

접견실을 지키는 기사가 말했다.

“그러지.”

독대를 기다리던 레딩이 접견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왕이 해야 하는 업무를 대행하는 라이가 레딩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오셨습니까?”

“예, 왕세자 저하.”

인사를 나눈 레딩이 왕을 바라보았다.

“내 인사는 됐네, 레딩. 바쁠 터인데 용건만 간단히 하지.”

“예, 폐하.”

레딩은 고개를 숙이며 그의 뜻대로 일련의 일들을 왕에게 보고했다.

“……이로써 토르잔 왕국은 이전의 폐쇄적인 입장을 고수하기보단 본국과의 긴밀한 협조를 구해왔습니다.”

“방금 전 들어온 소식인가보군.”

“예, 대륙 복원을 알리는 기둥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폐쇄되어있던 토르잔과의 마법 통신이 다시 연결되었습니다.”

“그가 뉴 빌드가 토르잔에 숨겨 놓은 통신 방해탑까지 전부 해제시킨 모양이야.”

“맞습니다. 나머지 자세한 사항은 엘러 백작이 돌아오는 대로 듣기로 하였으니 그 이후에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알겠네, 그다음은?”

“토르잔 측에서 마법 통신 라인을 좀 더 다양한 루트로 개설하고, 양국의 긴밀한 협조를 바란다는 내용은 보내 왔습니다.”

“그들이? 무척 의외군그래.”

폐쇄성으로 따지자면 그 어떤 나라보다 자신들끼리 뭉친 나라다.

그런 나라가 먼저 친교를 다시 구축하자 제안하다니…….

키아누의 입가에 미소가 흘렀다.

“그 친구, 사고 한번 제대로 쳤군.”

“예, 불필요한 군사적 소모도 없이 그들과의 협약을 끌어냈다는 건 분명히 누구도 쉽게 해낼 수 없는 일입니다.”

“가급적 그에게 맞는 포상을 준비해 두게. 큰일을 했으면 그에 맞는 상을 받아야겠지.”

“준비해 두겠습니다.”

“그래, 동시에 토르잔 측과의 회담도 준비하게……. 내, 직접 나서지.”

왕이 직접 향한다는 말에 레딩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사절단을 보내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레딩은 뉴 빌드의 습격이 염려됐다.

하나 키아누는 단호했다.

“그들이 먼저 손을 뻗어 줬네. 혼란한 시기에 우방과의 신뢰도 향상은 각별히 신경 써야 할 일, 내가 나서지 않으면 누가 나선단 말인가?”

레딩은 결국 고개를 숙였다.

분명 위험 요소가 있긴 하지만 키아누의 결정이 옳았다.

“장소 또한 그들의 신전으로 택하겠네. 화합해야 할 시기라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 줄 때야.”

“예, 폐하. 그리하시옵소서.”

레딩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키아누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왕좌에 기댄 그의 미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찌푸려졌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대륙의 지도.

정확히는 오딘 제국을 향해 있었다.

“그럼 남은 건 오딘이로군. 레딩, 미리 세워 둔 계획들이 있겠지.”

“예, 폐하.”

브라이트의 작전 수립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면 그 전에 왕세자의 얘기를 들어 보게. 왕세자 또한 계속 생각해 둔 계획이 있더군.”

레딩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왕은 이미 들었을 얘기.

‘그걸 굳이 내게 들려주시는 거라는 건 쓸 만한 전략이라는 말씀이신데.’

레딩은 라이가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해졌다.

그 사이 라이가 펼쳐져 있는 지도 앞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언젠가 전쟁에 대해 배울 때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적의 실수는 곧 기회다.’ 해서 계속 고민해 왔습니다. 만약 내가 뉴 빌드라면 무엇을 왕국의 실수라고 생각할까?”

“시각을 달리 보셨군요.”

“적의 눈으로 봐야 훨씬 명료해지니까요.”

레딩의 미소가 짙어졌다.

라이는 어릴 때부터 타고난 왕재였다.

그리고 그건 그가 장성했음에도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인 듯싶다.

“그래서 뉴 빌드의 눈으로 봤을 때 왕국은 어떤 실수를 하고 있다 생각하시는지요?”

넌지시 묻는 레딩에게 라이가 힘주어 말했다.

“우린 매번 뉴 빌드가 벌인 일을 정리하면서 그들의 이동 경로만 따라갔지요. 한데 지도를 좀 보십시오.”

라이가 지휘봉으로 그동안 뉴 빌드의 행적들을 하나둘 짚어 갔다.

“현재 어쩔 수 없이 각 지방에 병력들이 분산되어 있고, 앞으로 추가적으로 투입 예정입니다. 그 덕분에 급한 상황에 유기적으로 사용할 예비 병력들이 90% 이상 사용되었지요.”

“하지만 왕국의 내부 안정이 필요한 게 사실입니다.”

“예, 이해합니다. 워낙 흉흉한 시기가 지났고 곳곳에 서식지를 둔 몬스터와의 대대적인 전투들이 필요하단 것도 알지요. 이것이 최선이라는 것도…….”

“하지만 단점은 명확하군요.”

그간 왕국의 내부 정비를 깊이 관여해 온 레딩은 객관적인 시각으로 라이의 말에 응했다.

자신의 계획을 나무라는 것이니, 기분이 나쁠 만도 하건만 둘은 학자처럼 현재 상황을 논의하기 시작한 것이다.

라이는 그 부분에 고마워하며 말을 이었다.

“포진된 병력으로 인해 북동쪽 부근의 엔드 요새에 지원할 추가 예비 병력은 10%에 불과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현재로써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전방에 강을 끼고 있는 엔드 요새는 적은 병력으로도 큰 병력을 상대할 수 있는 요충지이죠. 거기다 이곳을 빼앗기면…….”

“오딘과 대치되어 있는 전선戰線이 깊숙이 뚫립니다. 국경 수비대가 주둔하고 있는 요새까지 하루 거리가 되지요.”

“그다음은요?”

“왕성입니다.”

“뉴 빌드는 저희와 토르잔 모두를 점령하지 못했고, 자신들의 거점 지역으로 삼지 못했습니다. 그럼 그들이 눈을 돌릴 유일한 곳이 어디겠습니까?”

레딩은 대답 대신 오딘 제국을 바라보았다.

“해서, 왕세자 저하께서는 어떤 계획을 수립하셨습니까?”

“토르잔과의 연합군 창설을 도모하시지요. 시기가 시기인 만큼 대비해야 합니다.”

라이의 제안에 레딩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사실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

특히 이렇게 우호적 관계가 된 토르잔에게는.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토르잔 또한 자국의 병력이 온전치 않다는 것이지요.”

“음…….”

“말씀드렸다시피 그들은 얼마 전 내분을 겪었습니다. 큰 전쟁까지는 막았다고는 하나 분명히 피해가 없다고 말할 순 없을 것입니다.”

“하하, 공작 예하.”

“예.”

“실제로 병력을 채워 넣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당장 서로 공존에 대한 어떤 회담도 이뤄지지 않았는데, 현실적인 연합군 창설을 제안한 게 아닙니다. 그렇게 보이자는 거지.”

“그렇게 보이자?”

레딩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이제 라이가 뭘 하려는 건지 알 것 같다.

“토르잔이 동의한 이상, 대륙의 운명을 위한 대의명분은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까?”

듣고 있던 레딩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평화적 공존을 날카로운 무기로 쓰자는 것이구나……!

레딩은 이 순간 새삼 라이에게 감탄했다.

좀 더 자세한 얘기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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