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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자동보상-232화 (23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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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화

뿌우우우!

뿔피리 소리가 산의 능선을 타고 울려 퍼진다.

“긴장하지 마라. 우린 존귀한 정령왕의 가호 아래 여왕을 지키는 영혼의 군대이다!”

서스가 긴장한 여왕의 군대를 독려했다.

우! 우!

그러면서 서스가 입으로 늑대 울음소리를 내며 제일 먼저 발을 굴렀다.

방패, 창이 서로 부딪치며 위협적인 소리를 일으켰다.

그러자 능선을 따라 도열한 군대가 서스를 따라 함께 발을 굴렀다.

그 소리가 금세 뿔피리 소리를 잊게 만들고, 나아가 그들이 들고 있는 창과 방패 위로 은은한 백색의 빛을 모으게 했다.

‘스피릿.’

모두가 이 빛을 그렇게 불렀다.

그건 일종의 선택받은 ‘힘’이었다.

정령왕에 기도를 하며, 수많은 생명체들을 느끼고 존중해야 느낄 수 있는 ‘힘’

하지만 그걸 다루는 건 강한 육체와 정신력을 요구했고, 그렇기에 스피릿을 다루는 전사와 스피릿을 기반으로 고차원의 주술을 사용하는 샤먼은 더욱 희귀했다.

“궁수는 앞을 내다보아라!”

이어서 서스가 아래를 내려다보며 외쳤다.

금세 창을 든 전사들 뒤로 기다란 장궁을 든 전사들이 나타났다.

그들이 목표로 한 건 능선의 경사 진 언덕.

수풀이 가득한 그곳에서 뿔피리가 들렸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능선이 전선이 될 것이다.

“참을성을 가지고 기다려라! 최대한 멀리, 후방을 노려라! 그들은 철의 코뿔소들을 필두에 세울 것이다!”

철의 코뿔소.

더피가 자랑하는 난폭한 무법자들이다.

이들은 고유의 주술로 몸을 강화시킨다.

하나 스피릿은 사용할 때 육체에 큰 고통을 부여받는다.

일례로 샤먼 또한 강력한 주술을 쓰고 나면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철의 코뿔소들은 주술에 의한 고통을 감내하며 일시적으로 단시간 이를 극대화시킨다.

이게 다, 선천적으로 강력한 육체를 가진 더피 부족이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와 반대로 그자들은 투박하다.’

아즈렉은 늘 그들보다 뛰어난 무기술과 전략을 활용해 그들을 상대해 왔다.

특히 무기 제련이 뛰어난 빌라도의 도움까지 받은 지금이라면 상대할 만하다…….

유일한 약점이라면 더피에 비해 두 부족 모두 전사로 싸울 부족민이 적다는 것뿐.

콰직, 콰직!

그사이 나무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단순히 나뭇가지가 밟는 소리 따위가 아니었다.

훨씬 크고, 땅에 진동이 올 정도.

나무가 통째로 쓰러지고 있는 것이다.

“우우우!”

서스가 늑대 울음소리를 다시 내면서 두려움을 밀어냈다.

힐끗, 고개를 돌리자 늑대 탈을 쓴 전사의 활시위가 강하게 당겨져 있었다.

서스가 손을 뻗어 그의 손등 위에 손을 얹었다.

“긴장을 놓고 힘을 풀어라. 힘이 가득하면 균형이 흐트러지고 화살이 힘을 잃는다. 화살에 깃든 스피릿과 적중할 장소에 집중하라.”

“예.”

“좋아.”

가면 뒤로 빙긋 미소 지은 서스가 눈을 빛냈다.

그러자 우지끈, 도미노처럼 무너지던 나무 사이로 철로 된 뿔 투구를 뒤집어쓴 더피 전사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크크!”

붉은 소가죽과 여러 재료들을 뒤섞어 제작한 레더 아머를 온몸에 두른 전사들.

양팔에 드러난 두텁고 견고한 근육을 보이며 그들은 낮게 웃고 있었다.

‘난폭한 천성은 대를 이어도 여전하구나!’

전쟁을 즐기는 호전적인 그들.

어쩌면 그들은 이번에야말로 아즈렉을 밀어내고 새 여왕이 나올 최고의 부족이 되길 바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윽고, 이어진 팽팽한 대치.

어떤 명령도 내리지 않고 더피 전사들을 보던 서스가 산이 쩌렁쩌렁하게 울리도록 외쳤다.

“검은 소의 심장을 가진 더피의 부족장 하룬이여! 두려워말고 모습을 드러내라!”

“두려워? 누가 두려워?”

좌우로 전사들을 밀쳐 내며 언덕 위를 오르기 시작한 거구.

쿵! 쿵!

대부분 더피의 전사들 체구가 3m에 육박한다는 걸 고려했을 때, 그는 그 두 배는 됨직했다.

“두려워서 여왕 뒤에 숨어든 건 네놈이지 않으냐! 어차피 불꽃은 꺼져 버렸다!”

“불꽃은 금방 돌아올 것이다! 여왕께서 그리 신탁을 내리지 않으셨더냐!”

“흥! 그 더러운 속임수에 더는 속지 않는다! 예언을 가진 샤먼이 내게 그리 말하였다! 여왕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누군가 그대에게 거짓을 불어넣었구나!”

“아니! 그는 사라졌던 정령왕의 불꽃까지 우리에게 가져다주었느니라! 가져오너라!”

뿔피리를 매건 전사가 목갑을 가져왔다.

하룬이 이동해 목갑을 열어젖힌 그 순간.

번쩍, 새하얀 빛이 목갑 안에서 퍼져 나왔다.

모든 전사에게 익숙한 빛.

“맙소사……!”

감정 내색 없던 서스마저 반사적으로 중얼거릴 만큼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정령왕의 불꽃이 아닌가!’

전부는 아니어도 그 빛의 일부가 틀림없었다.

잿더미가 되어 버려 사라졌다는 그 빛이 더피의 손에 일부 들려 나타난 것이다.

여왕의 신전에서 소멸되어 버린 불꽃이, 하룬의 손에 들려 나타났다는 것은 정령왕의 가호가 그를 향해 있다는 것을 뜻했다.

웅성웅성!

여왕의 군대 사이에 의심이 피어올랐다. 견고하기 짝이 없던 그들의 방패가 조금씩 흔들리며 틈이 벌어졌다.

서스의 귓가에도 혼란스러워하는 부족민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곁에 있던 빌라도의 부족장, 투본이 물었다.

“서스! 어떻게 된 것입니까?”

서스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의 침묵이 이어질수록 아즈렉 및 빌라도 연합의 부족민들 또한 혼란스러워했다.

“믿을 수가 없어, 저건 분명히 정령왕의 불꽃이라고……!”

“우린 뭘 지키고 있었던 거야?”

“저들과 싸울 필요가 있는 건가?”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의구심들.

하지만 그들의 질문에 대답해 주기에 서스는 한 없이 무력했다.

‘이대로라면…….’

더피 부족은 무혈 입성하게 될 테고, 여왕의 목을 치게 될 것이다.

‘어찌…….’

서스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손이 잘게 떨려 온다.

하룬의 손에 들린 게 정령왕의 불꽃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 하나 자신은 부족장이기 이전에 한 소녀의 아버지였다.

그 소녀는 정령왕의 신탁에 선택받은 여왕이기 이전에 한 아버지의 딸이고.

“말해 봐라! 여왕 혼자 가호가 자신에게 있다며 거짓말을 친 것인가! 아니면, 너희들이 우리의 어리석음을 우롱하며 권력을 손에 쥐려 했던 것인가!”

“아니다. 아즈렉과 빌라도는 그저 여왕의 신탁을 지키려 했던 것뿐이다.”

“그럼 잘됐군. 너희들이 대항할 명분이 없지 않으냐! 크하하!”

하룬이 호탕하게 웃었고, 서스는 결단을 내렸다.

“여왕의 군대는 스피릿을 해제하고 창을 버려라! 우린 정령왕의 가호를 받는 존재를 지켜야 하지, 싸우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스가 방패를 버렸다.

그제야 그의 눈치를 살피던 아즈렉 전사들이 하나둘 무기를 땅에 던지기 시작했다.

“아즈렉과 빌라도 부족민들은 여전히 긍지와 영광이 가득하다. 그러니 더피 부족은 형제의 맹약을 잊지 말라!”

“암, 잊을 리가!”

“모두의 앞에서 뱉은 말이니 지키리라 믿는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스가 다시 자신의 방패를 집어 들었다.

방금 전 방패를 내린 시늉은 부족민들의 무기를 내리게 하려는 것이었을 뿐.

그의 목적은 따로 있었다.

“서스! 무슨 짓입니까!”

투본이 황급히 말렸지만 서스는 말 없이 하룬을 쳐다봤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보에 모두가 의아해하던 그때.

서스가 투본을 비롯한 모두에게 말했다.

“다음 대 부족장은 신전에 있을 브루파에게 맡긴다. 그리고 나, 서스는 여왕이 아닌 딸을 지키기 위해 싸울 것이다. 따르지 말라. 영광을 버리는 짓이다.”

“안 됩니다. 저희도 함께 가겠습니다!”

부족민들이 황급히 다시 창을 쥐려하자.

서스가 쓰고 있던 흰 늑대 가면을 벗었다.

“창에 손대지 말라! 이 시간부로 창에 손을 대는 자는 내 창에 꿰뚫릴 것이다.”

그 엄포에 부족민들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오열하는 부족민들을 바라보던 서스도 억지로 울음을 꾹 누르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것이 운명이라면…….’

툭.

서스는 들고 있던 흰 늑대 가면을 힘없이 놓으며 천천히 능선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호오.”

이를 지켜보던 하룬이 거대한 도끼를 어깨에 짊어지며 히죽 웃었다.

“흰 늑대가 무리를 나와 홀로 싸우시겠다? 그럼 그만한 대우를 받아야겠지. 아무도 나서지 말라. 흰 늑대는 내가 벤다!”

그의 위압감에 대항할 부족민은 없었다.

씨익.

만족스럽게 미소 지은 하룬이 성큼성큼 서스를 향해 나아갔다.

* * *

같은 시간.

“경계를 소홀히 말라.”

“예.”

브루파는 신전 주변 방어 결계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방어 결계는 트랩의 일종으로 활문活門을 걷지 않으면 악몽 등의 온갖 저주에 시달린다.

한데,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났다.

뿌연 운무처럼 주변을 뒤덮고 있는 방어 결계 바깥쪽에서 희끄무레한 그림자가 나타나기 시작한 거다.

‘벌써?’

브루파는 믿기 힘들었기에 눈을 부릅 떴다.

‘짧은 시간 동안 여왕의 군대를 무너트린 것도 모자라 결계까지 해제시켜 버렸단 말인가?’

놀라운 일이다.

방어 결계는 높은 정신력을 가진 샤먼, 라르가 직접 펼쳐 놓은 것.

‘그들의 뒤에 우리가 모르는 고위 샤먼이라도 있단 말인가?’

어느 쪽이던 신전에는 위협이 될 일이다.

“방어 태세를 갖춰라.”

브루파는 열댓 명의 전사들에게 그리 일러둔 후 스피릿을 일으켰다.

은은한 빛이 그가 쥔 창과 방패에 견고함과 날카로움을 심어 주고, 정신을 맑게 했다.

“우우!”

그렇게 그들이 늑대 울음소리로 적을 위협하며 전방을 내다보던 그때.

저벅.

안개 속을 은백색의 슈트가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저건, 뭐지?’

브루파가 눈을 빛냈다.

생전 처음 보는 갑옷이다.

견고하지만 가벼워 보인다. 얼굴을 둘러싼 저 투구는 대체 또…….

막 그 생각을 하던 무렵.

취익.

바람 소리가 빠지며 찬영이 헬멧을 일부 해제했다.

피부에 스며들며 사라진 헬멧과 함께 비로소, 브루파와 마주한 찬영.

“너는 누구냐?”

이어서 브루파의 목소리를 듣는 그 순간 찬영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입을 열었다.

“정령왕의 뜻을 가져온 자입니다.”

“닥쳐라! 어디서 처음 보는 이방인 따위가 정령왕의 뜻을 운운하느냐!”

찬영은 그의 반응을 보면서도 사실 담담했다.

당연히 예상한 반응이기도 했고 오히려 다행인 생각까지 든다.

‘아직 뉴 빌드가 끼어든 건 아닌가 보군.’

늦게 도착할 줄 알고 걱정 했는데…….

아직은 신전도 멀쩡하고, 여길 지키는 이들도 다들 무사해 보이니 다행이야.

‘하지만 시간이 많진 않겠지.’

뉴 빌드가 언제 몰려올 지 모르는 지금으로써는 썩 시간이 많아 보이지 않는다.

빠르게 그들과 거래를 끝내고 뉴 빌드를 상대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힘의 우열을 보이는 수밖에.’

찬영이 드루파를 보며 말했다.

“믿지 않겠지만, 당신들의 공멸을 원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저는 그걸 막으러 왔고요.”

“그걸 내가 어떻게 믿는단 말이냐?”

“믿으셔야 할 겁니다. 아니, 이걸 본다면 믿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아니, 무슨 짓을 해도 나를 설득할 순 없을 것이다.”

찬영은 가볍게 한숨 쉬었다.

무식하긴 하지만 지금은 완벽히 힘의 우열을 보여 줄 때다.

말해 줘야 한다, 힘이 있어도 싸울 의사 같은 건 없다고……!

“소멸.”

이윽고 찬영이 안개 속을 바라봤고, 손끝에서 휘몰아치기 시작한 미증유의 힘에 의해 신전 주변을 뒤덮었던 방어 결계가 빠른 속도로 해제되기 시작했다.

츠츠츠!

브루파는 넋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브루파 뒤에 선 전사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입을 벌렸다.

“정말 저, 정령왕의 사자라고?”

전사들 중 누군가의 중얼거림과 함께 시작된 광경은 그야말로 ‘권능’ 이었다.

돌개바람처럼 휘도는 안개들이 찬영의 손끝을 따라 휘몰아치며 흩어져 가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방어 결계는 완벽히 사라져 있었고, 결계 뒤에 있던 로레인과 빌로우, 그리고 타우린이 성큼성큼 찬영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사이 손을 거둔 찬영이 다시 브루파를 쳐다봤다.

“이래도?”

찬영의 반문에 브루파는 사실상, 할 말을 잃었다.

완벽한 힘의 우열.

방금 전 보여 준 권능만으로 찬영은 언제든 그들을 무력으로 진압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줬다.

하지만 무엇보다 브루파가 놀란 건 찬영의 뒤에 선 거대한 검은 소, 타우린이었다.

-음모오오!

타우린이 하늘을 보며 울부짖은 그 순간.

“……오셨군요.”

브루파의 어깨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황급히 고개를 돌린 브루파의 시선에 들어온 건 놀랍게도 신전 안에 있어야 할 여왕이었다.

그녀가 굳은 표정으로 찬영을 반기고 있었던 것이다.

갑작스런 환대에 놀란 건 찬영도 마찬가지.

‘……이건 예상 밖인데?’

찬영의 눈빛에 이채가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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