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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자동보상-229화 (229/248)

# 229

229화

찬영은 르리에에 있는 자신의 오두막 앞에 앉아 있었다.

변화한 신체에 적응할 기간이 필요하기도 했지만, 여러모로 복잡한 생각들도 정리하기 위해 왕에게 휴가를 내 달라 했던 것이다.

‘그러는 동안 많은 게 변했지.’

주변의 지인부터 그랬다.

찬영은 문득 본래의 삶으로 되돌아간 글로리를 떠올렸다.

이제 그는 다시 위험천만한 전투를 겪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며 좋아했지만 자신을 무척 걱정했다.

로레인도 갓피스로서의 직무를 벗어던진 대신 탈파의 길드장으로서 자신을 돕겠다고 말하며 떠났다.

그리고 몇 가지 일들이 스친다.

‘왕은 사절단과 조우해 협약서를 논의 중이고…….’

V.O.에서는 지수를 통해 자신에게 재단의 명예직을 권했다.

기꺼이 그 뜻을 받아들였다.

V.O.가 신성 왕국 내에 설립할 전쟁고아를 대상으로 한 비영리 교육 재단이기도 했지만, 이를 이규복이 직접 나서서 준비해 온 일이었다는 걸 지수를 통해 들었기에 동의한 것이다.

그 외엔 시대적 흐름에 따른 변화들이 보였다.

하나 이제 시작에 불과할 뿐.

‘전쟁이 끝난다면 교류가 더 많아지고, 변화도 큰 폭으로 늘어나겠지.’

찬영은 미소를 지으며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변화는 지인들에게만 있었던 게 아니다.

자신의 변화가 가장 컸다.

룸의 크기부터 나아가 고도로 발달하게 된 감각들이 하나둘 일어난다.

‘재구성된 육체라…….’

알고, 직접 느끼고 보니 그 말이 뜻하는 의미는 굉장히 포괄적이었다.

상세 데이터의 변화만 봐도 그렇다.

근력, 마나, 신성력, 손재주 등의 것들이 사라졌다.

대신 시스템 창이 굉장히 단출해졌다.

-양찬영(사명)

-종합 신체 능력 : S

(S란 무한대의 수치를 뜻합니다. 사명의 육체는 끊임없이 성장할 수 있는 그릇이 되었습니다.)

-특수 능력 : 창조, 소멸, 타키온, 심연의 눈

(룸은 잊힌 별들의 권능을 뜻합니다. 하위 능력은 당신에게 해를 끼칠 수 없습니다.)

-현재 룸 : 190,420

(룸의 성장으로 차원의 돌까지 흡수가 가능합니다. 흡수된 차원의 돌은 룸과 동일한 수치로 환산됩니다.)

(차원의 돌의 위치는 미니 맵으로 파악 가능합니다.)

이 모든 수치를 이해하면서 꽤나 많은 것들을 느꼈다.

수치상의 능력이 가치 측정의 평가로는 구분 짓기 힘든 수준이 되어 버렸다는 걸.

그도 그럴 게 확정적 평가를 내리기엔 너무나 큰 성장이 있었다.

‘경이로울 정도야.’

시간을 두고, 스스로의 능력을 되돌아보고 사용해 보는 시간을 가졌는데도 아직 어느 정도까지 성장했는지 쉽게 가늠하기가 힘들다.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느낄 정도니까.’

하나 행운이라고만 생각되진 않는다.

‘갑자기 이뤄진 변화가 아니야.’

그래, 이건 네 장의 소울 카드의 주인들이 가지고 있던 능력들이 완벽히 동화되면서 가져온 변화이며, 앨범에 있던 예비 갓피스들의 힘을 흡수한 결과다.

‘그들의 희생을 통해 가져온 결과지…….’

그러니 소중히 여겨야 한다.

사명으로서 이 유일무이한 기회를 살려서 올드 원에게 다가가야 한다.

그리고 그때를 준비해야 한다.

‘내 힘은 무한적인 게 아니니까.’

이를 테면 ‘창조’나 ‘소멸’같은 권능은 룸이 기반이 되어 있기에, 룸이 없으면 사용 자체가 불가능하다.

즉 신이나 다름없는 올드 원과의 싸움을 위해 룸의 상승은 반드시 필요한 일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차원의 돌의 활용성이 늘어난 건 내게 득이 된 일이지.’

적들이 사용하던 차원의 돌을 이젠 룸의 성장으로 인해 ‘룸으로의 환산’이 가능해졌다.

‘여기에 차원의 돌 위치 파악이 가능해진 지금…….’

룸의 상승은 당연한 일이 되었고, 뉴 빌드 잔당도 뿌리째 뽑을 수 있게 될 거다.

‘돌아가는 즉시 움직인다.’

이미 라이크 홉스들은 레딩과 함께 차원의 돌 회수를 시작하고 있다.

곧바로 그들에게 합류할 생각이다.

그 후엔 당연히…….

‘왕관 조각의 회수겠지. 우선 왕국 내부에 숨겨진 왕관 조각을 회수시키고…….’

지도상에 보이는 나머지 왕관 조각 두 개는…….

‘혼자 찾으러 간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왕관 조각 두 개의 위치가 왕국의 손이 닿는 장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토르잔 밀림 왕국.’

이번에 개방된 쿠스코, 올멕, 추픽의 지방 중, 왕관이 위치한 곳은 추픽과 쿠스코.

왕국군을 대규모로 이끌고 움직일 경우, 이건 개인의 일이 아니라 대규모 전쟁이 된다.

‘그러길 원치는 않아.’

그러니 그들의 동의를 얻어 일을 진행해야 했다.

협조적일지, 협조적이지 않을지 확신할 수 없지만…….

‘해내야 해.’

생각을 정리한 찬영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러자 멀리서 다가오는 도타와 타우린.

이제 작별 인사를 할 때가 온 모양이다.

* * *

르리에에서 돌아온 찬영은 공유의 인장을 통해 판도라를 단숨에 찾아갔다.

판도라는 퓨어에 위치한 구호소에 있었다.

그녀는 샤브레 공주의 지원 아래 모인 신관들과 함께 백성들을 보살피는 중이었다.

“데미아 님의 고향은 혼란으로 가득하더군요.”

구호소 천막을 지나며 판도라가 말했다.

“한편으론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이곳에 남은 것이 더 나은 선택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왜죠?”

“남아 있던 덕분에 데미아 님의 고향에 존재하는 생명을 하나라도 더 살릴 수 있었으니까요.”

찬영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럴지도…….’

룸은 잊힌 별의 힘의 근원.

당연히 갓피스처럼 차원과 차원 사이를 통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그와의 싸움에서 룸의 힘을 다루는 요드와 판도라를 데리고 가지 않은 건, 판도라와의 의논 끝에 혹시 모를 만약을 대비해서였다.

수비 병력이 턱없이 부족한 열 개 장벽에서 또 다시 대규모 몬스터라도 출몰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으니까…….

그리고 판도라 말대로 그녀가 남아있으므로 살아남은 생존자들도 많을 것이다.

룸의 힘은 죽어 가던 생명의 불씨를 다시 일으켜 세울 만큼 강력하니까.

“……이곳에 있으면서 많은 걸 느꼈나 보네요.”

“데미아 님의 수많은 경험들과 지식들을 일부분 이어받은 것과는 별개로, 스스로 체감하는 경험들은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었으니까요.”

“그런가요?”

“예, 마냥 약했다고 생각했던 이들마저 때론 그 어떤 존재보다 더 견고한 강인함을 보여요. 부모는 아이를 지키기 위해, 전쟁 통에 부모를 잃은 형제는 또 다른 부모 잃은 아이들을 돕기도 하죠. 어쩌면…….”

은은한 빛이 흐르는 판도라의 눈동자에 이채가 흘렀다.

“데미아 님이 고향을 지켜 달라고 말씀하셨던 이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제껏 안개처럼 가려져 있던 것들이 느껴져요. 그저 객관적으로 보기만 하던 그들의 무수히 많은 감정들이…….”

“피부에 와닿은 거군요.”

“맞아요.”

찬영은 대답하는 그녀를 보며 어쩌면…… 데미아가 원했던 게 다른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판도라가 대륙의 일원이 되길 원했던 건 아니었을까?’

홀로 외롭게 영원의 삶을 살아갔을 판도라가 이제는 수많은 종족들 속에서 자신의 또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다.

찬영은 판도라가 보이기 시작한 변화에 그녀를 찾아온 이유를 그냥 거두기로 했다.

저벅.

그때 갑자기 걸음을 멈춘 판도라가 조용히 찬영을 바라봤다.

“……사명.”

“네.”

“저는 한동안 이곳에 머물러야 할 것 같아요.”

“압니다, 제가 봐도 그래야 할 것 같아요.”

사실 그녀를 찾아온 이유는 그녀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였다.

그녀가 있다면 왕국의 영역 안에 위치한 왕관 조각을 찾는 일을 훨씬 단축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그녀의 힘이 필요하긴 하나, 이 순간 그녀는 자신의 힘이 닿는 또 다른 곳에서 제 역할을 찾아 가고 있다.

자신의 삶을 이뤄 가고 있는 그녀를 방해하고 싶지 않다.

‘그럴 권한도 없어.’

찬영은 굳이 얘기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말했다.

“판도라.”

“네, 사명.”

“어쩌면 데미아 님도 판도라가 데미아 님의 선택을 위해서가 아닌, 언젠가 스스로의 길을 따라 자신의 삶을 꾸리길 바라지 않으셨을까요?”

그 질문에 판도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고민을 했던 건지 아니면 동의해서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저 그녀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선 채 생각에 잠겼다.

“갈게요.”

찬영은 그런 그녀를 두고 자리를 떴다.

* * *

그다음으로 찬영이 향한 곳은 레딩의 접견실이었다.

라이크 홉스가 도맡는 대부분의 임무와 결정들엔 레딩이 늘 왕의 중개인으로 나섰다.

찬영도 급한 일을 처리할 땐 그게 나았다.

폐하 또한 용인하셨고, 선 조치 후 보고가 가능했으니까.

“돌아왔다는 얘기를 듣고 업무도 내팽개치고 왔네.”

레딩이 찬영에게 찻잔을 내밀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그래, 들게.”

찬영은 그가 내준 차를 향과 함께 홀짝였다.

잠깐의 고요를 깬 건 레딩.

“그래서 휴가는 잘 보냈는가?”

“예, 여러모로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랬겠지. 그럼 이제……?”

“변화한 것들에 어느 정도 적응이 끝난 것 같습니다.”

“외관상 보기에는 크게 달라진 것 같진 않군. 몸이 조금 커진 거야 이전에 봤고. 하지만 실전에서는 큰 차이가 있겠지?”

“예, 그러리라 예상합니다.”

“좋군.”

레딩이 미소 지은 후 몸을 앞으로 숙이며 눈을 빛냈다.

“그럼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지. 현장으로 복귀해야 할 것 아닌가?”

“예.”

“자네가 떠나기 전, 내게 건네준 지도 중 세 곳을 급습했네.”

미니 맵에 적힌 차원의 돌 위치를 말하는 거다.

“뉴 빌드가?”

“그래, 있었네. 라이크 홉스를 필두로 하나도 빠짐없이 잔당들을 소탕했지. 자네가 말한 차원의 돌도 일부 회수했고……. 자네 공이 커.”

“아닙니다. 그저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뿐인데요.”

“겸손은 그쯤 듣고.”

씩, 웃은 레딩이 말을 이었다.

“그러던 중 특별한 일에 대해 보고를 받았네.”

“어떤 것입니까?”

“몇몇 잔당들이 복원된 대륙으로 이동한 모양이더군. 그 중에 우리 쪽에서 예의주시하고 있던 인물이 하나 속해 있었네.”

레딩이 날카로운 눈빛을 보이며 마저 말했다.

“말론을 기억하나?”

찬영의 눈동자가 싸늘하게 식었다.

‘어떻게 잊을까? 로레인의 마을을 이리저리 휘젓고 다닌 놈인데.’

“그가 아직 안 죽었습니까?”

직접 시신을 보진 못했지만 선지자 중 하나까지 소멸된 마당에 놈이 왕성 전투에서 살아남아 돌아갔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음, 그런 모양일세.”

“하지만 더는 왕국에 위협적인 존재가 되진 못할 겁니다.”

“그렇긴 하지. 그들의 주력 무기였던 검은 별의 설계도가 우리 손에 들어와 있으니. 무엇보다 우리에겐 그대가 있지 않은가? 하나…….”

눈을 가늘게 뜬 레딩이 심각한 표정로 덧붙였다.

“놈의 흔적과 함께 또 다른 선지자의 흔적을 찾았네. 놈은 대륙 복원과 함께 다시 나타난 또 다른 선지자를 찾아간 거지.”

“그럼, 그들이 또다시…….”

“우리 왕국에서 벌였던 일과 동일한 짓을 토르잔에서 벌인다면?”

“전면전으로 확산되겠군요.”

“그래, 그럴 것이네. 애초 놈들은 우리 왕국을 전초기지로 삼아 다른 나라들을 종속시키려 했지 않나?”

“이번에도 그러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겠군요.”

“그래, 바로 그것일세.”

레딩의 말을 듣고 나니 썩 좋지 않은 상황이라는 게 짐작된다.

“이미 내부가 장악된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맞네. 하지만 토르잔은 마법이 발달된 나라가 아닐세. 하지만 적어도 그들의 수도에서는 통신 마법이 구축되어 있었는데 말이야.”

“되지 않나 보군요.”

“그곳 수도의 상황을 파악하려 보냈던 부하들과의 통신이 닿지 않고 있네. 대륙이 복원됐는데도 말이야.”

“통신 차단……!”

“그래, 확실히 뉴 빌드가 그곳에 암약하고 있는 게 틀림없네. 그래서…….”

“예, 제가 가겠습니다.”

“그래, 그래야 할 것 같네. 필요한 군사 증원은?”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럴 줄 알았네. 하지만 토르잔 왕국의 전문가는 필요할 거야. 주술을 숭상하는 나라이니 잘못 행동했다간 적대적인 반응을 끌 수 있네.”

“알겠습니다.”

레딩의 조언은 옳다.

전문가가 함께 간다면 꽤나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럼 누가 갑니까?”

그 질문에 레딩이 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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