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자동보상-225화 (225/248)

# 225

225화

* * *

열세 번째 별 중 자색별은 이제껏 봐 왔던 염왕권 등의 기술 같은 게 아니었다.

눈 위로 또 다른 거울을 통해 사물을 들여다보는 것만 같았다.

그는 얘기했다.

‘심연의 눈’은 진리를 좇으며 세상 모든 것을 관통한다고……!

그리고 그 말은 정말이었다.

-전승된 심연의 눈

-룸 소모 시 발동

-가치 : ??

-효과 : 숨겨진 것들을 드러내게 한다.

지금처럼.

쿠쿵!

벽을 손으로 짚자, 굉음과 함께 절벽 사이에만 휘돌던 폭풍이 잦아들기 시작한다.

심연의 눈이 아니었으면 쉽게 찾지 못했을 트랩.

바람이 소멸된 후 주위를 둘러봤다.

방금 전까지는 가질 수 없었던 여유다.

날개로 허공에 몸을 띄운 채 트랩 해체를 해야 했으니까.

‘……사용하면서도 놀랍네.’

브뤼셀의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숨겨진 모든 것들이 심연의 눈을 통해서 완벽히 드러났다.

트랩은 말할 것도 없고.

‘그 덕에 절벽에 머물던 폭풍이 사라졌지.’

찬영이 힐끗 밑을 보자 폭풍으로 가려져 있던 절벽 아래가 훤히 드러나 있다.

심지어 이건 그냥 폭풍이 아니었다.

얇은 실 같은 칼날이 바람에 섞여 매 순간 방향을 바꿔 가며 변화무쌍하게 불어 닥쳤다.

하지만 바람을 들여다볼수록 흐름이 느껴졌다.

찬영은 바람이 어디로 불지 예측할 수 있었고, 이 바람의 시작과 끝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아냈다.

그리고 트랩을 해체한 것이다.

‘덕분에…….’

탁.

반투명한 계단이 깊은 절벽 아래까지 생겨났다.

그 길을 따라 걸으며 그동안의 여정이 떠올랐다.

이곳은 정확히 심연의 눈 획득 후의 세 번째 장소.

하나 그동안 몇 가지, 아니 몇 명의 수확이 있었다.

놀랍게도 요드가 발견되지 않은 열세 번째 별 중 전승을 마친 열세 번째 별의 일원 두 명을 찾아 준 거다.

‘데이크, 짐머.’

이 둘은 각각 회색 별과 녹색 별의 주인이었고, 스스로의 능력을 각성 중에 있었다.

데이크는 알폰 남쪽에 난 리바이 지방을 지키는 샹브르 가의 기사였고, 짐머는 평민 출신으로 동쪽에 위치한 포멜 가의 행정관이었다.

그들에게 열세 번째 별에 대해 자세히 일러 준 후 라이크 홉스로의 스카우트를 제안했다.

열세 번째 별은 같은 뿌리이며 서로의 능력에 강한 끌림과 보완이 될 것이란 생각이 있었으니까.

둘 모두 그 자리에서 결정하진 않았지만 깊이 고민해 보겠다고 답해 주었다.

‘하지만 머지않아 오게 될 거야.’

둘 모두 자신들이 왕국을 위해 뭘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충신들이었다.

특별함을 알았다면, 그 특별함에 맞게 힘을 사용하고 싶은 욕심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툭.

그 사이 원형 계단의 끝에 도달했다.

‘여긴 누구의 것일까?’

마지막 계단을 지나며 주변을 둘러봤다.

쉽게 어떤 것을 판별하기 힘든 암흑이다.

‘하지만 보여.’

룸의 힘을 쓰지 않았는데도 그렇다는 건 성장하는 스텟의 능력 때문도 있겠지만, 역시나…….

‘심연의 눈.’

그 힘에 새삼 감탄하며 빠르게 주위 환경을 판별했다.

그 때 예상치 못한 창이 갑작스럽게 나타났다.

-히든 퀘스트 : 바이런의 흔적을 찾아라.

-섬뢰보의 초대 주인 바이런의 흔적을 찾으세요.

-첫 번째 흔적을 찾았습니다.

-바이런의 신속 부츠를 획득하였습니다.

-바이런의 시험이 열립니다.

-신속 부츠는 시험을 통과하는 데 쓰일 것입니다.

이어진 문구들을 보고 ‘아’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여기였구나!’

그간 로레인에게 알아봐 달라고 요청해 놨던 히든 퀘스트, 바이런의 흔적 1, 2, 3.

그것들이 바로 이 절벽 아래 깊은 심연 속에 고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하나 요드는 이곳이 열세 번째 별과 관련이 있다고 했다.

‘즉 섬뢰보의 바이런이 곧 열세 번째 별이란 얘기겠지.’

이제껏 열세 번째 별의 분류는 인물, 혹은 유산.

이번엔 유산일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는데, 퀘스트 조건 충족 발동으로 인해 확신할 수 있게 됐다.

‘이곳이 유산이야.’

확신하며 문구에서 시선을 뗐다.

첫 번째 트랩이었던 칼날 바람은 그저 시작에 불과했을 터.

‘어떤 게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해지는군.’

찬영은 거침없이 어둠 속으로 걸어갔다.

다음 트랩이 뭐든 이미 심연의 눈은 빠르게 진실 이면의 것을 들여다보고 있었으니까.

* * *

“……그래서 여행은 즐거웠나?”

레딩의 질문에 의자에 앉아 있던 찬영은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위험한 순간도 있었지만 큰 수확이 있었습니다.”

“어떤 수확? 그 열세 번째 별이라는 것 말인가?”

“예.”

레딩에게 말한 대로 바이런의 퀘스트는 완료하게 됐고, 그의 세트 아이템은 룸으로 흡수했다.

더불어 흑색별의 후예였던 바이런에게 그가 죽기 전 얻은 깨달음을 통해 남긴 유산.

공간을 통과한다는 ‘타키온’을 전승 받았다.

타키온은 놀랍게도 룸으로 사용되는 기술이었다.

찬영은 그가 죽기 전 룸의 세계로 진입했다는 걸 은연중에 느낄 수 있었다.

타키온은 사명의 워프보다 한 번에 이동할 수 있는 거리가 한정적인 대신에 한정적 거리에선 워프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무한정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말하자면…….

“진화한 블링크를 얻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런가?”

“예.”

고개를 끄덕인 찬영은 조용히 레딩을 바라보았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에게 집중하자 작은 목소리들이 조금씩 들리기 시작한다.

-그는 갈수록 강해져 가는군. 위험하게 느껴질 정도야.

-왕국의 작위를 받았다는 게 다행이군.

-적이었다면 상상하기조차 싫은 일이 일어나겠어.

-제이나가 사라진 이곳에 그가 남으려 할까?

레딩의 마음 속 이야기들.

원하지 않으면 듣지 않을 수도 있기에 더는 그에게 들려오는 마음의 목소리들을 끊었다.

‘그의 생각까지 들여다보고 싶지 않아.’

자신은 신이 아니다.

정말 필요한 순간이 아니라면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볼 이유나 명분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어쩌면 듣고 싶지 않은 말까지 들을지 모르니까.’

그런 면에서 보면 모든 일에 장단점이 있듯.

‘심연의 눈 역시 그런 것 같아.’

그렇기에 이 능력에 관한 얘기는 누구에게도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레딩 공작님처럼 이미 내 존재에 대해 위협적으로 느끼는 이들이 왕궁 내에 많을 거야.’

권력을 빼앗길까 봐 두려울 수도 있고 혹은 자신들을 침략할까 걱정할 수도 있다.

굳이 그런 불필요한 걱정을 하나 더 얹어 주고 싶지 않다.

그저 말해 주고 싶다.

자신이 원하는 건 이 싸움을 끝내는 것, 단 하나라는 것을.

“원하는 여정을 마쳤으니 제가 해야 할 일을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열세 개의 별을 모두 얻진 못했고 네 개의 별이 더 남았으나, 요드는 자신을 바이런 이후의 장소로 안내하지 못했다.

봉인이 풀리지 않은 다른 대륙에 그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일 터.

해낼 수 있는 대부분의 힘을 획득한 것이다.

‘싸울 준비는 끝났어.’

다음 차원 너머의 지배자가 어떤 존재일진 몰라도 자신을 쉽게 생각하진 못할 것이다.

‘잊힌 별들의 힘들이 내 손에 있으니까.’

그 생각에 이르자 잠깐 생각에 잠겨 있었던 레딩 공작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전의 필립이 전해 준 얘기를 듣고 언제쯤 자네가 찾아올까 기다리고 있었지. 예상보다 시기가 빠르긴 하지만 각지의 조짐을 보면, 더 늦추긴 힘들 것 같군. 자, 그래서…….”

레딩 공작이 눈썹을 힘 있게 들어 올리며 말을 이었다.

“단 네 명으로 그 일이 가능하겠나?”

레딩 공작이 묻는 네 명은 글로리, 로레인 그리고 자신과 공주.

“이제껏 그래 왔습니다.”

처음엔 홀로 싸웠고 두 번째는 제이나와 글로리의 도움을 받았다.

제이나의 빈자리가 크긴 하지만 그녀가 돌아올 때까진…….

‘버텨야 해.’

그녀와 약속한 대로.

“해내겠습니다. 아니, 해내야만 한다는 걸 압니다.”

“알겠네. 그 외 필요한 건 이미 레인에게 받았겠지?”

“예.”

“레인 그 아이가 내게 와선 자네에 대한 지원은 전부 완료됐으니 걱정 말라고 자신만만해하던데……. 정말인가?”

“믿으셔도 됩니다. 정말 부족한 것 없이 꼼꼼하게 챙겨 줬으니까요.”

룸을 사용하는 자신의 입장에선 딱히 필요 없는 물건들이나, 갓피스로서 불완전한 각성을 한 공주, 그리고 로레인이나 글로리의 입장에서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는 게 맞다.

이미 레인을 통해 그 준비는 충분히 갖출 만큼 갖췄고…….

“떠나기만 하면 되겠군. 그 전에 폐하를 알현하세.”

레딩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끼익!

문이 열린 왕성의 회의장.

미리 와 기다리고 있던 공주와 왕세자를 포함한 수많은 신하들이 좌우로 줄지어 선 채 찬영과 일행이 들어서는 걸 지켜보았다.

전보다 훨씬 왕실의 예의에 능숙해진 일행들이 공손히 고개를 숙인 후 한쪽 무릎을 꿇었다.

“다들 예법이 능숙해졌군. 라이, 네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으냐?”

“예, 폐하. 노력이 느껴집니다.”

“그렇다는군.”

키아누의 미소에 찬영은 더욱 고개를 숙였다.

“과찬이십니다.”

곁에선 그 모습을 미소 지으며 바라보던 샤브레 공주가 레딩을 바라봤다.

“이제 때가 된 것 같군요. 공작께서도 동의하신 걸 보니 말이에요.”

“예, 공주마마. 저 역시도 엘러 백작과 같은 생각입니다. 하여 폐하께 청을 드리고자 함께 왔습니다.”

레딩 공작의 요청에 키아누는 무릎 꿇고 있는 찬영을 포함한 세 명의 면면을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왕세자는 날 따라오라.”

“예, 폐하.”

왕이 이끄는 대로 함께 계단을 내려간 라이는 찬영 일행 앞에 선 후, 왕에게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그들의 얼굴을 잊지 말고 모두 기억해 주거라. 이제 머지않아 왕국을 다스려야 할 네가, 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예, 폐하.”

키아누는 그러면서 한가운데 있는 찬영을 내려다보았다.

“그들의 이름을, 그들의 모습을, 그들이 해낼 업적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하고 후세에 얘기해 주어야 한다. 그들의 희생을 우리들이 잊는다면…….”

키아누가 찬영의 손을 잡아 그를 일으키며 말을 이었다.

“시간은 그들의 고귀한 희생을 삼켜 버릴 테지. 그러니 고개를 들라. 왕국의 영웅들이여. 그대들을 내가 잊지 않게……!”

이 순간 왕을 비롯한 왕성의 신하들은 전부 찬영의 일행들에게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공작, 백작 등 작위 따윈 아무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왕이 고개 숙이고 기억하는 영웅들에게 그들은 고마움과 함께하지 못하는 미안함을 표현한 것이다.

그들의 진심에 로레인은 감복했고, 글로리는 보람을 느꼈으며, 찬영은 제이나를 떠올리며 확신했다.

약속을 지켜 가고 있다고…….

그 후 따로 진행된 연회는 없었다.

멸망에서 벗어나 재건을 향해 나아가는 게 최근 일이다.

왕을 비롯해 신하들은 아직도 그 때의 일을 잊지 못하고 긴장된 채 불철주야 업무에 매진하고 있다.

찬영 일행도 출정식과 다름없던 알현 이후 곧바로 차원 다리를 향해 떠났다.

모두가 왕국 주변에 보이기 시작한 멸망의 조짐들을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 * *

일행은 정령계를 거쳐 빠르게 네 번째 다리로 향하는 문 앞에 섰다.

츠츠츠!

샤브레 공주와 로레인은 조금 긴장된 기색이었다.

그도 그럴 게 두 사람은 차원 다리 전투가 처음이었고, 어떤 존재들이 나타날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여기로 들어가면?”

평소와 달리 말수가 줄은 로레인이 마른침을 삼키며 찬영에게 물었다.

찬영은 고개를 끄덕인 뒤 일행에게 말했다.

“각자 장비를 꺼내세요. 독부터 시작해서 레인이 챙겨 준 장비들이 도움이 될 겁니다.”

일행들은 레인이 챙겨준 여러 장비들을 몸 구석구석에 착용한 후 찬영을 두고 나란히 섰다.

“토끼 양반, 아까 뭐라고 그랬지? 뭐든지 녹이는 괴물이 글라투라고 했던가?”

“그자는 죽었소. 지금은 그자가 아닌 다른 자를 걱정할 때지.”

“대체 어떤 놈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까?”

잔뜩 걱정하는 로레인에게 찬영이 먼저 네 번째 차원 다리로 앞장서며 말했다.

“너무 걱정 말아요.”

“안 하게 생겼어?”

“그건 그렇지만…….”

찬영이 차원 다리 입구에 발을 반쯤 집어넣은 후 눈을 빛냈다.

“그들도 우리를 걱정해야 할 겁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