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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자동보상-222화 (222/248)

# 222

222화

폐허가 된 상아탑.

아직 폭발 여파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이곳은 폴리스의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었다.

“폐하께서 이곳의 재건 계획을 밝히셨지만, 좀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하게 되겠죠.”

제이나가 부서져 있는 건물 잔재 위를 걸으며 옆에서 걷는 찬영에게 말했다.

“A.U.의 지원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재건축은 금방 시작될 거예요.”

찬영은 문득 현대 도시와 신성 왕국 문화가 조화롭게 이뤄진 건물 숲을 떠올려봤다.

‘많은 게 변화하는 시대가 되겠지.’

이미 지구에서는 ‘마나’의 발견이 새로운 대체 에너지로의 희망으로 이어지는 실정이다.

대륙은 지구 개척자들의 합류로 금방 변화할 거다.

“다 왔어요.”

마침 제이나가 가지고 온 설계도를 살피며 말했다.

“그럼 여기가……?”

“네, 이곳이 알렉산더 궁의 증축을 위해 쓰일 뻔했던 부지예요.”

“그렇군요.”

“그런데…….”

제이나가 폐허가 된 주위를 둘러보며 걱정스럽게 말을 이었다.

“상아탑이 파괴되며 유산에도 영향이 가진 않았을까요?”

그녀의 질문은 당연한 거였다.

찬영도 그렇게 생각하긴 했지만 그때마다 든 생각이 하나 있었다.

“키란 공은 처음 103번째 방을 설계했을 때 작은 지하 마을 규모를 계획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생각을 바꿔 상아탑을 그 위에 세워 뒀죠. 이유가 뭘까요?”

“뭔가를 지키기 위한 거였을 확률이 높겠네요.”

“제 생각도 그래요. 감추고 싶었던 게 있었던 것이거나 혹은 지키고 싶은 게 있었을 확률이 높죠. 그러자면 가장 중요한 건…….”

“방어.”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쉽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이미 이 계획은 왕에게 전달됐고 키아누는 찬영에게 이번 임무의 성패를 맡겼다.

그래서 찬영이 부탁한 건 두 명의 병력 지원.

그 중 한 명이 제이나였고 남은 한 사람은…….

분지가 된 폐허 지대의 언덕 아래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벡 남작을 불렀군요?”

“네, 트랩에 관해선 그보다 뛰어난 이를 본 적이 없으니까요.”

“맞아요.”

제이나도 벡의 실력을 인정했다.

하긴, 벡의 실력은 오히려 그녀가 더 잘 알 것이다.

알폰 지방 일대에서 오랫동안 함께 싸워 왔으니까.

그 사이 벡이 인사를 건네왔다.

“축하드립니다. 양찬영 백작님. 아니지 엘러 백작님이라 불러드려야 합니까?”

‘엘러’는 찬영이 이번에 왕으로부터 직접 하사 받은 이름이었다.

“됐어요, 부르던 대로 부르세요.”

작위를 내려 준 왕에게 고맙긴 하나, 백작님이란 호칭은 여간 적응이 안 된다.

손사래 치는 반응이 웃겼던지 벡이 크게 웃었다.

“제이나 백작님도 함께 오셨군요.”

“와 줘서 고마워요, 벡.”

“아닙니다.”

미소 지으며 인사를 마친 벡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보이는 건 온통 폐허.

‘대체 여기서 키란 공의 유산을 어떻게 찾겠다는 것인지……?’

여전히 양찬영의 생각은 쉽게 읽을 수가 없다.

‘하긴 사람, 어디 안 가지.’

피식 웃은 벡이 찬영에게 넌지시 물었다.

“자, 이제 또 누가 옵니까?”

설마 세 명이 끝이라고 생각 못한 벡의 질문.

“안 옵니다.”

“예? 제가 전부라는 겁니까?”

“네.”

할 말을 잃은 듯 보이는 벡에게 말했다.

“벡 남작은 진입 후 발생할 트랩을 고려해 주시면 됩니다.”

“진입 후라면…….”

“물러나 계세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찬영이 손을 세워 땅을 가리켰다.

츠츠츠.

의지에 따라 일정 형태를 구현하기 시작하는 룸.

곧이어 하얀 빛의 칼날이 팔을 타고 솟아오른다.

부족하다.

‘조금 더.’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백색의 칼날에 스파크가 튀며 어마어마한 속도로 자라났다.

꿀꺽.

지켜보던 벡이 깜짝 놀라며 물러섰다.

“이, 이건……!”

“놀라지 말아요.”

제이나는 벡을 안심시키며 마법으로 그의 중량을 가볍게 만들었다.

그녀는 찬영이 뭘 할지 사전에 들었기에 조금도 놀라워하지 않았다.

“웨이트 드랍 중첩重疊. 플라이!”

동시에 허공으로 함께 떠오른 두 사람.

쩌저적!

그런 그들의 발아래로, 폐허였던 일대 지대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반으로 갈라져 가고 있었다.

쿠쿠쿵!

찬영은 빛의 칼날에 더욱 룸을 주입시켰다.

이제 이 칼날은 지상 더 깊은 곳으로 더욱 더 깊이 파고들게 될 것이다.

쿠쿵!

그때 디디고 서 있던 땅이 크게 울렁이며 갈라진 틈바구니로 빠르게 추락했다.

균열은 당연했다. 그리고 충분히 예측한 일이다.

츠츠!

찬영은 제때 엘리야의 날개를 일으켜 체공을 유지했다.

힐끗, 나락으로 떨어져 내리는 폐허의 잔재들이 보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뭐든 집어삼킬 것 같은 저 아래에 자신이 원하는 키란 공의 유산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유산이 드러나려면 일종의 자극이 필요할 거라고 판단했다.

이유?

제이나에게 말했듯, 이 아래에는 키란 공이 세워놓은 방어 체계가 있을 것이고 그건 마나로 이뤄진 게 분명할 터.

‘룸은 마나 등의 하위 단계를 지배한다.’

마나로 이뤄진 방어 체계는 룸의 상대가 못 된다.

그리고…….

화르륵!

저 아래에서 빛의 칼날에 뭔가 걸리는 게 느껴졌다.

‘마나 파동!’

룸은 자신과 연결되어 있는 ‘힘’

휘몰아치는 마나량이 어느 정도인지 확연히 느껴진다.

‘솟아 올라온다.’

콰콰쾅!

예상과 함께 어마어마한 양의 마나 소용돌이가 시야를 가득 채웠다.

순간 호흡이 멎은 느낌이 들만큼 아찔했으나, 호흡은 금세 제 컨디션을 찾았다.

손을 더듬자 어느새 목 주변을 따라 전신 위를 덮은 포스 알데바란이 느껴진다.

‘그래, 그래야지.’

알데바란 덕에 한결 여유가 생겼고, 빛의 칼날 주위로 몰려든 마나 폭풍을 바라보았다.

마나 폭풍은 거대한 빛의 칼날 주위를 감싸고 빙글빙글 회전하고 있었다.

‘나타났구나.’

이건 키란 공이 세워둔 첫 번째 방어선이자, 관문일 것이다.

하지만 상대를 잘못 봤다.

-효과D : 하위 단계 지배(신성력, 마나, 완전하지 않은 암흑 마력은 피격 피해 무효화)

‘됐어.’

아래에 있는 마나 폭풍이 빛의 칼날과 부딪쳐 모든 힘을 폭발한 지금이야말로 적기이다.

츠츠츳!

있는 힘껏 빛의 칼날을 위로 세웠다.

땅 아래에서 휘돌던 마나 폭풍은 더는 제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칼날의 이끌림에 따라 함께 솟아올랐다.

완벽한 지배.

룸의 힘에 이끌려 강제로 뻗어져 나온 폭풍이 보인다.

그럼 이제…….

‘소멸해라.’

빛의 칼날을 타고 하늘 위로 뻗어 오른 마나 폭풍이 용오름처럼 하늘 위로 빠르게 흩어져갔다.

쩌저저적!

원하던 바였다.

저 멀리 흩어진 마나 폭풍이 구름 위를 번쩍 거리는 푸른 벼락이 되어 분해되는 게 보인다.

‘끝났어.’

룸을 거둔 후 고요해진 구덩이를 내려다보았다.

마나 폭풍이 사라진 자리엔 못 보던 것이 생겨나 있었다.

1차 방어선을 깬 덕분인지, 어둡기만 하던 구덩이로 돔 형태의 푸른 반구가 생긴 것이다.

그것도 갈라진 구덩이를 가득 메운 채.

“괜찮아요?”

때마침 제이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미리 계획을 말했는데도 꽤나 걱정한 눈치.

“그럼요. 예상했던 대로 진행됐으니까요.”

“다행이에요.”

안심하는 그녀에게 시선을 돌려 벡을 쳐다봤다.

벡은 갈라진 땅 아래를 내려다보는 중이었다.

“맙소사, 대체 저 아래에 뭐가 있는 거지?”

“음, 방금 전 마나 폭풍 뒤에 숨겨져 있던 입구겠죠. 키란 공이 남겨 놓은…….”

“그, 그건 그런 것 같습니다만. 이 일 꼭 제가 가야 합니까?”

벡 남작은 방금 전 마나 폭풍이 꽤나 인상적이었나 보다.

“아뇨, 꼭 그렇진 않습니다. 다만 트랩에 관해선 벡 남작을 따라갈 분이 없어서 부탁드린 거죠.”

본인이 원하지 않는다면 강제로 그를 데려갈 이유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다, 제이나와 단 둘이 갈 수 밖에.

그때 주저하던 벡이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제가 거절 안 할 줄 미리 예상하셨지요?”

“그럴 리가요. 언제라도 빠지셔도 됩니다.”

“됐습니다. 이미 부르셔 놓고…….”

‘쩝’ 하고 입맛을 다신 벡이 아래를 배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썩 내키진 않지만…… 어쨌든 함께하겠습니다. 이 일 끝나면 저한테 빚지신 겁니다.”

“이를 말입니까.”

대답과 함께 찬영이 순식간에 두 사람을 끌어안으며 날개를 펼쳤다.

키란 공의 다음 관문으로 나아갈 차례다.

* * *

“……여긴가?”

찬영은 감았던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방금 전 일이 빠르게 스쳤다.

돔에 내려서자마자 엄청난 인력이 자신을 포함한 일행을 순식간에 돔 안쪽으로 끌어당겼다.

‘강한 인력이었어.’

동시에 순간적인 어둠이 눈을 덮었으나 크게 저항하지 않았다.

뭐가 됐던 돔 안에 키란 공의 유산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눈을 떠보니 이곳이었다.

‘왕성과는 조금 덜 발전된 도시 같은데…….’

키란 공이 살던 시대는 아주 오래 전의 시대고, 자신이 온 건 그가 사라진 이후의 시대.

건축물을 보니 제대로 찾아온 게 맞는 것 같다.

이 일대를 탐색하기 위해 우선 근처에 보이는 건물 높은 곳에 올라 주위를 둘러봤다.

저 멀리 북쪽, 계단이 나 있는 고층 신전을 중심으로 이뤄진 마을 같다.

‘가장 특별하게 지어진 곳으로 보이는데…….’

뭘 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우선은 제일 먼저 탐색해 봐야 할 곳같이 보인다.

그렇게 주위를 둘러보고 돌아왔을 때쯤, 때마침 정신을 잃었던 일행들이 깨어났다.

상황을 설명하자 벡이 말했다.

“……음, 어쨌든 제단이 있는 고층 신전으로 이동한단 말씀이신데. 그 전에 확인해야 할 게 몇 가지 있습니다.”

그러더니 벡이 주위를 둘러보며 덧붙였다.

“자, 처음 마주했던 첫 번째 트랩은 무시무시한 양의 마나 폭풍이었고, 그 다음 진입을 통해 주변의 공간이 달라졌습니다. 저는 그게 일종의 마법 트랩이라고 봅니다.”

“그럴 가능성이 높겠네요. 벡의 말대로라면 우리가 봤던 그 푸른 반구형의 막은 일종의 마법진 역할만 했을 거라는 거죠?”

“예, 맞습니다. 트랩의 처음과 끝은 교란이니 말이지요. 그저 그것이 광범위하게 펼쳐졌을 뿐입니다.”

듣고 있던 찬영은 벡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어떤 걸 확인하신다는 건지요?”

“단순하지만 쉽게 생각하기 힘든 것이죠.”

벡이 대답과 함께 등에 걸어 둔 활을 꺼내 특수 제작된 화살을 쏘아올렸다.

슈융!

파지짓!

날아올랐던 화살이 일정 높이에 닿자마자 강한 전류가 튀며 천장 일대에서 어마어마한 뇌전이 피어올랐다.

쾅! 쾅! 쾅!

그리고 그 뇌전이 일정 장소에 굉음을 일으키며 내려 꽂혔다. 다행히 그들이 있는 장소는 아니었다.

“마법이군요.”

제이나의 중얼거림과 함께 찬영이 벡에게 물었다.

“그럼, 우린 트랩에 들어온 겁니까?”

“좋은 지적이십니다.”

“맞다는 뜻이군요. 그럼 아까처럼 마법을 해제시키면…….”

“아뇨, 그러시면 안 됩니다.”

그러자 벡이 손을 좌우로 저었다.

찬영은 그 얘기를 듣고 뭔가 생각난 게 있었다.

‘설마…….’

문득, 방금 봤던 벼락들이 떠오른 것이다.

분명히 위협적인 마법.

그리고 위협은 보통 이성을 마비시킨다.

보통이라면 그 마법을 해체시키기 위해 움직이게 될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 위협이 트랩이라면?

“방금 본 트랩이 교란을 위한 트랩일 수도 있겠군요.”

“네, 오히려 저희를 속이기 위한 트랩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적어도 제 판단에는요.”

“그럼 섣불리 마법을 해체시켜선 안 되겠군요.”

“현재 생각으로는 그런 판단이 듭니다. 어쩌면 이 마을을 가로 지르는 게 유일한 선택지일 수도 있겠지요.”

제이나가 덧붙였다.

“그게 오히려 또 다른 트랩일 수도 있고요.”

벡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습니다.”

“그럼 다른 방법이 없겠습니까?”

“음……. 제게 시간을 조금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얼마든지요.”

찬영의 대답과 함께 벡이 다시 한 번 활을 쏘아올렸다.

콰쾅!

그러자 또 다시 전류가 흐르며 벼락이 쳤다.

아까와는 또 다른 장소.

동시에 벡이 인상을 썼다.

“흐음.”

그리고 다시 한 번 그가 활을 쏘려 활시위를 당기려 한 그 순간.

구구궁!

그들이 디디고 있는 땅이 울리기 시작하며, 갑자기 마을 주위를 가득 두르고 있는 공동空洞 곳곳에서 네모난 구멍이 열렸다.

츠츠츠!

그리고 새어나오기 시작한 짙은 회색 연기.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매캐한 연기가 솟아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뜨겁고 붉은 것이 뚝뚝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용암이에요.”

찬영이 대답 대신 벡을 쳐다봤다.

“벡.”

“예, 압니다. 하지만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찬영이 생각에 잠긴 벡의 곁에 서며 말했다.

“목숨이 붙어 있을 때까진 기다려 드리죠.”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진 모르겠지만…….

찬영은 건물 위로 올라가 빠르게 마을을 삼키기 시작한 용암을 바라보았다.

산 넘어 산이 따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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