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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자동보상-221화 (221/248)

# 221

221화

“놀랍군.”

키아누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돌기가 있는 가죽이 아닌 매끈한 금속에 더 가까운 검은빛의 외관 위로 좌우로 흔들리는 육중한 꼬리와 등을 한가운데에 두고 좌우로 펼쳐진 드넓은 날개까지.

그는 하늘을 날아오르고 있는 검은 용을 올려다보며 찬영에게 물었다.

“저 용이 앞으로 왕성을 지켜줄 거란 말인가?”

“예. 폐하, 샤의 영혼이 빠진 공석을 채워 줄 것입니다.”

크오오오!

때마침 용의 울부짖음이 하늘을 가득 메웠다.

놀라운 결과가 나올 줄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그게 용일 줄은 전혀 예측 못했다.

‘예측할 수도 없었고.’

하지만 판도라는 가진 바 모든 룸을 쏟아부어 사명에 버금가는 또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하긴, 가능한 결과겠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물질들이 포함되어 있었으니.’

알데바란, 골렘의 잔재인 검은 별과 룸의 힘까지, 어떤 결과가 나와도 특별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을 거다.

‘여기에 라일라의 숨결까지 추가 했으니까…….’

판도라에게 마지막으로 건넸던 아이템이자 마스터 박스 최초 진입 보상인 라일라의 숨결.

그래, 본래 쓰임새라면 라일라의 완드를 충전하는 데 쓰이는 아이템이다.

하지만 이 아이템에 쓰인 문구 내용을 읽고 생각이 바뀌었다.

‘라일라의 숨결은 이스트마운틴의 창시자인 별의 용, 라일라의 마지막 숨결이다. 숨결만으로도 비밀스럽고 신비로운 힘을 품고 있다.’

마음을 움직인 건 ‘별의 용’이란 이름.

찬영은 이게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강한 힘의 원천은 모두 별들과 관련이 있어.’

이스트마운틴에서 비롯된 열세 번째 별부터 여신과 밀접히 관련이 있는 트레이드족에서 비롯된 아딘 암석, 이어서 사명을 다시 깨운 알데바란까지 모두 다……!

그 예상대로 판도라는 이 강대한 힘들이 룸의 힘과 밀접히 관련 있고 동기화가 가능하다고 얘기해 줬다.

‘그리고 녀석이 탄생했지.’

찬영은 날아다니는 검은 용, 요드를 바라보았다.

-별의 숨결로 탄생한 ‘요드’

-사명 귀속(사명의 의지를 따른다)

-가치 : ?

-설명 : 룸의 힘을 근간으로 한 사명의 사냥꾼이며, 그의 의지에 따른 일을 수행한다. 단, 사명의 사망 시 요드는 소멸한다.

-효과 A : 대륙에 잔존하는 열세 번째 별의 흔적 추적 가능.

-효과 B : 룸 브레스

-효과 C : 룸 실드

-효과 D : 자생 치유 가능(단, 룸 보유 시)

-효과 E : 룸 전이 가능(단, 사명과 판도라에 한해)

-효과 F : 폴리모프(유지 시 룸 지속 소모)

-현재 룸 : 42,300

“든든하군요.”

말을 보태는 라이는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찬영은 그 눈치를 보며 내심 놀랐다.

걱정도 한 게 사실이다.

왕성에 조금이라도 위협이 될 법한 존재를 마주했을 때, 그들이 경계심을 가지는 건 당연했으니까.

‘그런데 그런 눈빛이 아니야.’

말투부터 눈빛 전반부를 아우르는 분위기는 감탄과 안도감 뿐이었다.

‘이들은 온전히 나를 믿어 주는구나.’

다른 차원에서 왔다고 해서 경계하거나 배척하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무척 고마웠다.

그때쯤 상황을 조용히 주시하던 레딩 공작이 말했다.

“그럼 저 용이 그대와 의사소통이 가능한 것인가?”

“예, 제 부탁에 따라 움직여 주는 용입니다. 조금 특별한 걸 보여 드리지요.”

찬영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요드에게 의지를 보냈다.

저 멀리 상공을 날아오르던 요드가 순식간에 활강하기 시작했다.

쐐액!

위협적인 풍압이 밀어들자 왕의 곁에 있던 공작들과 기사단이 주위를 가로막았다.

그 순간, 용의 크기가 급격히 작아지며.

탁!

무섭게 추락하던 것과는 달리 사뿐한 착지에 성공했다.

“오오!”

뷰로도 공작이 감탄하자, 곁에 있던 베이콥 영주가 호탕하게 웃었다.

“보십시오. 제가 뭐라 말씀드렸습니까? 늘 볼 때마다 새로운 친구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껄껄!”

“그러게 말일세!”

호탕한 둘의 웃음소리와 함께 찬영은 슬그머니 미소 지었다.

‘그럴 만도 하시지. 폴리모프는 놀랍다는 것 말고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는 신비로운 일이니까.’

찬영은 육중한 크기를 자랑하던 요드가 남성 엘프의 외관을 가진 2m 크기로 축소된 걸 바라보다가.

“요드.”

비늘 형태로 촘촘하게 제작된 검은빛 슈트를 두른 요드를 가까이 불렀다.

다가온 요드는 찬영의 부탁대로 왕과 왕세자 앞에 예의를 갖춰 고개를 숙였다.

요드에 대한 경계심을 더 완화시키기 위한 ‘연극’ 같은 것이었으나, 공작을 비롯해 곁에 선 신하들의 표정을 보아하니 그렇게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시름 놓았어.’

찬영은 기뻐하는 키아누를 보며 곁에 있는 요드를 바라보았다.

-잘했어, 요드.

요드를 격려한 찬영은 슬슬 떠날 때를 준비하기로 했다.

* * *

그날 늦은 저녁.

찬영은 제이나와 조촐하게 저녁을 챙겨 먹으며 술잔을 기울였다.

최근 다시 재건하기 시작한 마법 병단의 일로 유독 바빠진 그녀는 이렇게 저녁 한 번 먹기도 힘든 스케줄을 소화하는 중이었다.

당연히 왕성에 있는 동안 얼굴을 자주 보고 싶었던 찬영 입장에선 아쉬운 마음이 있긴 것도 사실.

하지만 시대가 그녀를 필요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런 내색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떠나려고요?”

제이나가 물었다.

“네, 그래야죠.”

술잔을 내려놓은 찬영이 그녀에게 대답했다.

이제 왕성에 볼 일은 대부분 끝났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 사이 자신은 백작 작위까지 키아누에게 서임 받았으며, 다른 사람들 중에서도 대부분 많은 공로를 세운 이들이 이전보다 높은 작위를 이어받았다.

사실 당연한 얘기다.

내분으로 인해 왕성의 인재들이 무척 많이 사망한 이상, 그 공석을 누군가는 채워야 하니까.

그리고 자신은 이제 그 다음을 준비해야 한다.

“같이 가요.”

그때 제이나가 제안해 왔다.

예상 못 한 것도 아니다.

그녀라면…….

“제이나는 여기서 해야 할 일이 있잖아요.”

“내가 해야 할 일은 찬영이랑 같이 있는 거예요.”

“알아요. 그렇지만 아직 해야 할 일이 있는 건 사실이고, 모른 척하기 힘들잖아요.”

그녀는 그런 사람이다.

그래서일까?

그녀도 더는 함께 가잔 말을 꺼내지 못했다.

“대신 금방 돌아올 거예요. 어려운 길을 혼자 떠나는 것도 아니고, 판도라와 함께 갈 거예요.”

“걱정하는 건 아니에요. 혼자 즐거울까 봐 신경 쓰이는 거지.”

“그럴 줄 알았어요.”

그녀 농담에 웃음이 나왔다.

따라 웃으며 그녀가 또 한 번 자기 잔에 술을 따랐다.

“음, 또 마셔요?”

벌써 열 잔은 마신 것 같은데, 취한 것 같지도 않긴 하지만.

“오늘 같은 날 많이 마셔야죠.”

또 한 번 술을 홀짝인 그녀가 막 생각났다는 눈빛으로 말했다.

“아, 그런데 이제 해 줄 때 안 됐어요? 여기 도착할 때부터 들으면 깜짝 놀랄 이야기를 해 준다면서요.”

그녀는 잔뜩 기대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너무 기대하는 것 같아 걱정되는 마음은 사실 조금도 들지 않았다. 장담컨대 그녀가 기대한 것 이상의 이야기일 테니.

“왕성에 머물면서 필요한 일들을 해 왔어요. 로레인 씨가 떠난 뒤엔 왕성 도서관을 자주 다녔고, 그때마다 공주님을 많이 찾아뵈었죠.”

그녀는 헤라클 가의 수많은 비밀을 짊어진 콰이렌스니까.

“당연히 도움이 많이 됐어요. 그렇게 폴리스가의 키란 공에 대해 알게 됐죠.”

그동안 획득했던 수많은 마법 아티펙트에서 언급됐던 존재이자 한때 키란 반지의 소유자였던 키란 공.

대륙 유일 9서클 대마법사이자 현존하는 마법사 중 가장 신에 근접했다던 그녀는 어느새 자신의 곁에 머물러 있었던 거다.

“키란 공이라면…….”

“개국 공신 중 한 사람이자 대마법사였던 분이라더군요.”

“예, 알아요. 제가 들었던 수업에 늘 빠지지 않았던 분이거든요.”

“그럴 거예요. 조사해 보니 대단한 업적을 세운 분이더군요. 최초의 상아탑 구축을 추진한 분이기도 했고…….”

“네, 그러셨죠.”

제이나 말대로 왕국 곳곳에는 키란 공의 흔적이 있었고, 폴리스의 많은 구획엔 키란이 남긴 흔적이 아직 남아 있었다.

‘이때를 대비해 키란의 반지를 남겨놨지.’

찬영은 히든 퀘스트를 떠올렸다.

-키란의 반지 업그레이드로 인해 반지에 숨겨져 있던 키란의 성소(聖所) 위치가 드러났습니다. 성소에는 키란의 유산이 잠들어 있습니다. 알렉산더 첨탑에 숨겨진 103번째 방을 찾아가세요. 키란의 반지가 열쇠가 될 것입니다.

‘키란의 유산이 잠든 알렉산더 첨탑의 103번째 방.’

사실 이 문구를 푸는 게 가장 어려웠었다.

혼자였다면 힘든 시간이 되었을 거다.

‘어디까지나 혼자였다면 그랬겠지.’

그녀가 놀랄 표정을 기대하며 말을 이었다.

“그분의 흔적을 찾은 것 같아요.”

“키란 공의 유산을요?”

제이나의 눈이 큼지막해진 게 보인다.

‘벌써 놀라면 안 될 텐데……?’

그녀에게 미소 지으며 그동안 추적해 낸 흔적에 대해 차례차례 말해 줬다.

히든 퀘스트에 대해 간략이 설명해 준 후, 그곳에서 나온 문구를 추적한 과정까지.

“……당연히 처음엔 알렉산더 첨탑에 대해 조사했어요. 샤브레 공주님께도 이에 대해 여쭤봤고, 결국 공주님 덕분에 왕의 무덤 아래 숨겨져 있던 진실을 하나 알 수 있었죠.”

마법을 통해 반영구적으로 보관되어 있던 고문서 중 하나에서 알렉산더 첨탑에 관한 이야기를 찾을 수 있었던 거다.

“어떤 거였어요?”

제이나는 무척 흥미로워했다.

마법사들이 갖춘 호기심이란 게 고개를 든 모양이다.

“알렉산더 첨탑은 놀랍게도 상아탑의 건축과 함께 무너트렸다는 기록을 찾았어요. 그때부터 지금은 폐허가 된 상아탑 부지의 과거 기록들을 뒤지기 시작했죠.”

“왕의 무덤에 남아 있는 고문서들이 아니었다면 어려운 일이었겠네요.”

“네, 하지만 조사할 수 있는 충분한 정보가 갖춰져 있으니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어요.”

필요한 키워드까지 갖고 있는 상황이다.

대부분의 중요한 힌트를 손에 쥐고 시작한 것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쉽게 풀리지 않았어요. 다 왔다고 생각했는데, 103번째 방에 관한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거든요.”

“그래서요?”

“고민을 하다가 공주님께서 문득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알렉산더 첨탑은 왕성의 별관이긴 했지만 102개의 방이 있었지, 103번째 방은 존재하지 않았다고요.”

찬영의 얘기가 그쯤 됐을 때 제이나는 손에 땀을 쥐었다.

아주 어렸을 때 잠들기 전 들었던 흥미로운 전설 얘기를 듣는 기분이 들었다.

찬영은 그런 제이나의 표정이 귀여웠다.

“어떻게 됐을 것 같아요?”

“이러기에요?”

한창 기대하고 있던 그녀가 김빠진 표정을 지었다.

다음 대답을 꽤나 기대한 것 같다.

괜히 장난기가 불쑥 솟는다.

이러면 더 얘기하기 싫어지는데.

웃음을 터트린 찬영이 제이나의 술잔에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

“이쯤에서 얘기를 끝내는 게 내 입장에선 무척 즐겁겠지만, 제이나를 위해서 나머지 이야기를 들려줄게요.”

“멈췄으면 다신 안 봤을 걸요.”

“해야겠다고 마음먹길 잘 했네요.”

찬영은 마지막 힌트를 찾아낸 그때를 떠올렸다.

“마땅한 흔적을 더 찾기 힘들어지자 공주님께서는 한때 알렉산더 첨탑의 설계도를 어렵사리 찾아오셨어요. 물론 102번째 방까지밖에 없었죠. 하지만 다음 번째 설계도에서 꽤 흥미로운 문구를 봤어요.”

‘꿀꺽.’

마른침까지 삼키며 잔뜩 집중한 제이나에게 찬영이 나직이 입을 열었다.

“알렉산더 첨탑의 증축 관련, 설계도의 제목이었죠.”

제이나는 그 다음 얘길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103번째 방!”

“맞아요. 그리고 그 103번째 방은 마법으로 둘러싸인 지하 도시처럼 증축될 계획이었죠. 하지만…….”

“상아탑이 지어졌잖아요?”

“네, 그것도 알렉산더 첨탑의 증축을 주장하던 키란 공에 의해서요. 그게 무엇을 위해서였을 것 같아요?”

이 순간 제이나는 온몸의 솜털이 곤두섰다.

왕국이 보유한 수많은 비밀 중, 가장 깊숙이 자리 잡은 비밀 하나를 엿본 기분이었다.

“……그렇게 찾았죠, 가장 중요한 키란 공의 흔적을.”

찬영의 미소가 짙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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