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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자동보상-220화 (220/248)

# 220

220화

“대체 이건……?”

샤브레 공주는 할 말을 잃었다.

갑자기 나타난 건틀릿이 눈앞에 둥실 떠 있었던 거다.

“갓피스의 장비입니다. 공주마마.”

로레인이 덧붙여 설명했고, 제이나가 그녀를 안심시키며 미소 지었다.

“저희가 모두 겪은 일이니 너무 심려치 마세요. 공주마마.”

샤브레는 고개를 끄덕인 후 찬영을 바라봤다.

“내 예상이 맞았군요. 여러분들에게 이 지도를 보이는 게 제 소임이었던 거예요. 그리고 그게 각성의 조건이었을 테죠.”

찬영은 눈앞에 떠 있는 창을 읽은 뒤 대답했다.

“예, 하지만 아직 완벽한 각성은 못하신 것 같습니다. 이제 첫 번째 각성이 시작되었을 뿐인 것이지요.”

공주가 물었다.

“첫 번째 각성? 그게 무슨 뜻이죠? 그대들도 그랬나요?”

글로리를 포함한 일행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영문을 모르는 게 당연했다.

그들은 그렇지 않았으니까.

“아뇨, 저희들과 달리 공주님께서 겪어야 할 각성은 추가 과정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래요? 어떤 것이죠?”

“네 번째 차원 다리 수복과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동시에 찬영은 자신이 마주한 창들이 설명한 것들을 그녀에게 전달해 줬다.

샤브레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그간의 정황을 놓고 생각을 이어갔다.

“성녀의 몸을 빌려 여신께서 제게 주신 임무는 어쩌면 지금의 일들을 위해 준비된 것인가 보군요.”

“예, 그럴지도.”

찬영은 대답과 함께 샤브레의 눈을 통해 허공에 투영된 지도를 바라보았다.

“로레인 씨, 이 지도가 어디를 가리키는 지 혹시 아는 바가 있습니까?”

찬영은 여러 정보에 능한 로레인에게 혹시나 싶어 물어봤지만 모른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그러자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대륙 지도에 없는 지역이다.

대륙에 숨겨진 땅일 수도 있으나, 다른 차원일 확률이 더 높았다.

정황상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다.

‘공주 마마가 우리에게 지도를 보여준 것과 각성이 맞물려 이뤄졌고, 그 마지막 조건으로 네 번째 차원 다리 수복이 정해졌어.’

하나 이 전제가 맞아 떨어지려면 누군가 지금의 일을 예측이라도 했어야 가능하다.

‘베아트리체는 그 많은 사람들 중 하필, 공주 마마를 택했으니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 순간 방금 전 공주가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지금의 일들을 준비했다라?’

막연히 그럴 거라 생각하며 대답했지만 그게 정말이라면?

‘베아트리체는 여신의 힘을 빌려 미래를 봤던 게 아닐까? 만약 그녀가 하려던 일의 첫 단추가 나를 부르기 위한 거였다면?’

갑자기 솜털 하나하나가 전부 곤두서는 것 같다.

‘그녀가 홉스를 구축한 것도, 홉스가 전부 사라져 버린 것도, 모두 여신의 힘을 빌린 베아트리체의 뜻이라고?’

아직은 확신할 수 없지만 찬영은 그런 생각이 강렬히 들었다.

그리고 이 추측들이 맞아 떨어진다면…….

‘성녀 혹은 여신이 우릴 이곳으로 부르고 있다.’

그때 공주가 말했다.

“그럼 다섯 번째 차원 다리까지 나아갔을 때 우린 많은 걸 알게 될지 모르겠군요.”

“예, 그럴 것 같습니다.”

찬영은 힘주어 말하며 ‘메테우스’라는 이름까지 떠올렸다.

당연했다.

멸망 직전 성녀와 다른 지점에 서 있던 그는 별들의 속삭임을 통해 처음 이름과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별들의 속삭임이 그를 보여줬다는 건 그가 자신이 궁금해하는 일들의 열쇠일 수도 있다는 얘기.

하지만 이제껏 공주, 왕과 레딩 모두에게 대화가 끝날 때쯤 그 이름을 언급했지만.

‘아무 것도 들을 수 없었어.’

많은 정보를 갖고 있다는 콰이렌스인 그녀조차 이를 모른다면 결국 그에 대한 건 오로지 남은 별들의 속삭임, 혹은 소울 카드를 통해서 알아갈 수밖에 없다.

‘……차차 알게 되겠지.’

결국 대답은 단순하다.

당장은 네 번째 차원 다리로 향하는 것뿐.

“공주 마마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때가 되면 저희가 알고 싶어 하는 진실들이 드러나겠지요.”

“그래요.”

미소 지은 공주가 이어서 건틀릿을 조심스럽게 잡아 들었다.

그러자 더욱 강렬한 빛을 일으키다가 이내 빛이 잦아들어 가는 건틀릿.

한동안 건틀릿을 쓰다듬던 샤브레가 찬영에게 물었다.

“한번 살펴보겠어요? 어쩌면 그대와 이 건틀릿 사이의 숨겨진 비밀이라도 있을지 모르니까요.”

서로의 인연이 단순히 우연이 아닌 필연이라고 새삼 증명된 오늘.

공주는 사소한 것 하나라도 확인하려는 듯 했다.

“예, 그럼.”

-생명의 박동 ‘란테고스’

-부활 전용

-부활이 착용하지 않을 시 효과 사용 불가(단, 다섯 번째 차원 다리 개방 시 사용 가능)

-가치 : ?

-효과 A : 소유자의 1년 생명을 감소시켜 상대에게 완전한 치유를 부여한다.(1회 사용 시 30일 동안 사용 불가)

-효과 B : 소유자의 생명을 소멸해 사망한 1명의 생명을 살린다.

당연히 손에 쥐자마자 나타난 ‘창’

찬영은 문구를 읽은 후 순간 표정이 굳었다.

이제 그녀는 이 건틀릿을 착용하는 즉시, 건틀릿의 능력이 각인될 테고, 언젠가 이 능력을 사용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녀라면 이 건틀릿의 능력을 알고 주저 없이 사용하려 들겠지.’

그렇기에 다가가면서도 수많은 생각이 든다.

‘차라리 그녀가 이 장비의 힘을 모르는 게 낫지 않을까?’

하지만 찬영은 멈칫하던 걸음을 다시 내딛었다.

이 순간 자리에 모인 모두는 여태껏 목숨을 걸고 싸웠다.

‘바보 같은 고민이야.’

이규복의 죽음처럼 누군가는 죽은 이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계속 나아가야 한다.

‘이 모든 게 끝날 때까지.’

이윽고 생각을 정리한 찬영이 공주에게 건틀릿을 다시 건네며 말했다.

“아쉽게도 다른 변화는 없는 것 같군요. 그리고…….”

찬영이 공주에게 진심을 다해 말했다.

“함께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공주마마.”

그렇게 운명을 받아들인 또 한 명의 갓피스가 깨어났다.

* * *

“이제 왕궁 내부의 일들은 얼추 정리가 된 것 같으니……. 슬슬 떠나야겠어.”

공주와의 접견을 끝내고 돌아온 로레인이 운을 뗐다.

찬영은 대답 대신 벽에 등을 기댄 채 주위를 둘러봤다.

‘그래야겠지.’

현재 제이나는 왕실로 불려가 새로운 왕실의 마법 병단 구축을 위해 떠나 있었고, 지수는 V.O. 본사의 일로 왕실 인사들과 조우하는 중이다.

그라스는 왕실과 새로운 협약을 맺고 자신의 종족과 함께 터전에 관한 약조를 받았으며, 머지않아 A.U.의 사절단이 왕실로 올 거다.

검은 별은 왕실을 지키는 무기로 탈바꿈하기 위해 공학자들에 의해 ‘샤의 영혼’ 과 연결된 새로운 무기로 개조되는 중이었고.

에머리를 비롯한 홀랜드 등 이제껏 왕실을 위해 싸워 온 수많은 기사들은 십안의 기사단에 합류했다.

“그래서 로일 영주님이 다시 영지로 돌아가실 때 그 행렬에 합류할 생각이야.”

이미 결정한 눈치다.

‘하긴, 그러는 편이 낫겠지.’

로레인은 로일 영지에 다시 탈파를 구축 중이다.

가장 중요했던 왕실과 뉴 빌드 간의 싸움에서 승리한 이상, 다시금 탈파를 세우는 게 그녀에겐 새로운 삶의 목표가 됐다.

‘도우면 도왔지, 방해할 필요는 없겠지.’

그러면서 로레인이 덧붙였다.

“탈파의 일을 하는 동안 그쪽이 부탁한 일들을 하면서 때를 기다릴게.”

그녀가 말한 ‘때’는 네 번째 차원 다리로 향하는 싸움.

찬영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러는 편이 낫겠군요. 가끔은 숨고르기도 필요하니까요.”

“그래, 그래야지.”

대답과 함께 일어난 로레인은 일행들을 보며 말했다.

“또 보자고.”

곧바로 일별과 함께 자리를 바람처럼 사라진 로레인.

찬영은 이제 남은 일행을 돌아봤다.

생각에 잠긴 글로리와 휴식을 마치고 다시 정상 컨디션을 되찾은 판도라가 보였다.

판도라야, 딱히 행선지를 물어볼 필요가 없다.

그녀는 이 싸움이 완벽히 끝나기 전까지 자신과 함께 할 터.

이 잠깐의 휴가에 대해 물어볼 이는 이제 글로리밖에 안 남았다.

“글로리는요?”

“나? 글쎄, 나 역시 내가 머물던 차원으로 돌아가서 다음 여행이 시작될 때까지 조금 쉬어 둬야겠지. 그러는 그대는?”

“우선 레딩 공작님을 좀 도와드릴 생각입니다. 아직 연락이 닿지 않은 지역들을 돌면서 통신 상황을 복구해 주고, 대륙에서 몬스터들을 몰아내야죠. 그리고…….”

찬영은 자신에게 남아 있는 숙제들을 돌아봤다.

‘떠나기 전에 이것들을 마무리해야 하지 않을까?’

하나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기꺼이 해야 할 듯싶다.

* * *

“휑하네요.”

노을 지는 저녁, 찬영은 방금 전까지 글로리가 앉아 있던 자리를 보면서 말했다.

판도라가 미소 지었다.

“허전한가요?”

“아뇨, 다시 모일 텐데요. 그보단 그들이 이 시간 동안 푹 쉬었으면 좋겠어요.”

왕국이 내부적으로 다시 기틀을 다지고, 지구의 조직들과 새로운 시대를 위한 청사진을 그릴 이 잠깐의 시간만이라도 말이다.

“그런데 아까 했던 이야기들이 궁금해요.”

“어떤?”

“다음 싸움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 간다는 거죠?”

“음…….”

찬영은 판도라에게 현재 자신이 가진 히든 퀘스트들에 대해 설명했다.

아직 완성되지 못한 인라의 퍼즐 조각과 바이런의 흔적 및 카린의 유산과 브뤼셀의 렌즈 등.

“룸의 흡수에 도움이 될 만한 일들은 전부 해 볼 생각이에요.”

“그렇군요.”

“예, 사실 그러는 동안 판도라에게 부탁할 일이 하나 있기도 해요.”

“어떤 거죠?”

찬영은 그동안 사용하지 않고 가지고 있던 9급 마스터 박스의 결과물을 떠올렸다.

‘마스터 박스 최초 진입 보상과 9급 박스에 나온 보상들.’

둘 모두 초호화였으나 전투에 사용할 만한 것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룸 흡수를 해 버리는 것보단 다른 효율적인 선택을 하는 게 낫다 싶은 아이템들이었다.

사명 역시 그런 식으로 창조된 물건이니까.

‘특히나 룸으로 창조의 힘을 다루는 판도라의 도움을 받는다면, 그편이 훨씬 나은 선택이 될 거야.’

그 생각에 이른 찬영은 곧바로 인벤토리에 넣어 둔 첫 번째 아이템을 꺼냈다.

“이건 판도라를 만나기 전 내가 수집했던 골렘이란 거예요.”

지잉!

검은 구슬로 쪼개지는 ‘분열’의 힘까지 가지고 있었던 엘프 골렘이 판도라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잘만 쓴다면 어디에든 도움이 될 거야.’

이 생각을 하게 된 건 왕실을 지키는 ‘샤의 영혼’을 마주한 뒤였다.

‘샤의 영혼’ 같은 어마어마한 골렘처럼 또 다른 골렘이 왕국에 자리 잡는다면?

왕국의 방어는 훨씬 더 강화될 거다.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앞으로의 싸움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고…….

‘하지만 문제는 이건 겨우 껍데기에 불과하단 거지.’

이제까지는 그랬었다.

하나 사명 완성 이후에 생각이 바뀌었다.

‘녀석을 새로 변형시킬 차원의 돌에 버금가는 동력만 발견할 수 있다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가 된 거지.’

그러나 우스 동력기는 이미 사명 장비를 제작하기 위해 사용됐고, 전설 속에 사라져 버렸다는 마지막 한 개를 제외하고는 더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만큼의 동력은 아니더라도 그 힘에 가까운, 적어도 근사치에 도달할 만한 동력을 구했어.’

찬영은 판도라에게 그 동력과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며 마스터 9급 박스에서 나온 결과물을 꺼냈다.

-알데바란의 원석

-가치 : ?

주먹만 한 돌.

하지만 찬영은 이미 겪었다.

알데바란이란 물질이 얼마나 강한 힘을 보유하고 있는지…….

한때 우스 동력기를 제작했던 케노가 제련했다던 그 원석의 일부와 같은 종류인 게 틀림없다.

“알데바란…….”

이를 익히 아는 판도라가 두 손으로 돌을 받아들었다.

“난 데미아 님의 숨결이 닿은 우스 동력기의 물질을 통해 창조됐어요. 물론 우스를 상대하실 때와는 차원이 다른 진화된 우스 동력기였죠. 하지만 그 근간에 알데바란이 있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죠.”

“……그 말은?”

“어쩌면 생각한 것 이상의 결과가 나올지도 몰라요.”

창조의 힘으로 태어난 또 다른 창조물.

‘이성을 가진 골렘이라도 나올 수 있다는 건가?’

아니, 그건 더 이상 골렘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전 창조의 비밀을 엿본 데미아 님이 아니랍니다. 그저 창조의 권능이 깃들어 있는 룸의 힘을 활용할 뿐이죠.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측할 수 없어요.”

“하지만 가능은 하겠죠.”

“네.”

“그럼, 해 보죠. 그리고…….”

찬영은 남은 한 가지 물건을 더 꺼냈다.

최초 진입을 통해 얻게 된 또 다른 아이템이었다.

이게 그녀가 좋은 결과물을 내는 데 큰 도움이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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