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6
216화
-‘이그’의 강림 앞에 저항은 무의미하다!
선지자의 의기양양한 목소리가 들린다.
‘언제까지 그럴 수 있나 보자.’
순간 하늘이 꼬리의 그림자로 가려질 만큼 수천 개의 꼬리가 해일처럼 주위를 가득 메웠다.
쐐애액!
이어서 암흑 마력이 깃든 광선이 놈들의 꼬리 끝에서 일직선으로 뻗어 나왔다.
치지지직!
땅을 뒤엎으며 날아오는 보랏빛 광선.
저것들의 목표는 찬영이었다.
특히 저 광선 하나하나에는 단숨에 상대를 소멸시킬 막대한 양의 암흑 마력이 응축되어 있을 것이다.
‘물론 그게 통할 상대여야 하겠지만.’
찬영은 사명에 달린 문구 중 하나를 떠올렸다.
-완전하지 않은 암흑 마력은 피격 피해 무효화.
이 말이 뭘까?
의문이 남아 있었으나 아론, 선지자와 대면하며 확신이 하나 생겼다.
‘여신에게 빌린 신성력처럼 놈들 또한 올드 원에게 힘을 빌리는 존재들이란 거지.’
그 말은 즉, 놈들이 아무리 용을 써도 놈들은 올드 원과 동등한 자격을 얻을 수 없을 거란 얘기다.
‘그걸 시험해 볼 순간이야.’
확신하며 룸을 통해 카이트 실드 형태의 빛의 방패를 일으켰다.
콰콰쾅!
그 위로 보랏빛 광선이 시야를 뒤덮은 건 순식간.
츠츠츠!
하나 찬영은 전혀 밀려나지 않았다.
룸의 방패는 온전한 형태를 유지한 채 견디고 있었고, 예상 했던 것 이상으로 광선은 강력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강한 스파크가 튀는 정도가 전부였다.
‘예상이 옳았어!’
놈은 완전하지 않다.
그 권능 역시 완성되지 못했고!
‘나는 다르다!’
사명이 인정했듯, 몸의 일부가 되었다.
테스트는 끝났다.
터벅터벅.
그때부터 한 걸음씩 광선을 뚫고 걸음을 옮겼다.
광선의 힘에 의해 강한 압력이 쏟아졌지만, 계속 나아갈수록 몸에 쏟아지는 광선의 압력이 점점 감소됐다.
그리고 광선의 범위를 완벽히 빠져나왔을 때, 수천 개의 꼬리가 해일처럼 쏟아져 내리는 게 보였다.
자신이 광선 범위 안에서 빠져나오길 기다린 모양이다.
하지만 찬영은 조금도 주춤거리지 않았다.
놈에게 줄 선물이 있는 건 자신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
‘분해 Lv. 2.’
손을 뻗자마자 제일 먼저 닿은 꼬리가 반으로 ‘쩍’ 하고 갈라졌다.
꼬리 안에 든 핏물과 수백 개의 분열된 촉수들이 다시 분열 성장하려고 꿀렁이며 날뛰었다.
하지만 촉수들이 서로 연결되어 더욱 크기를 부풀어가려던 그때!
-분해가 완료되었습니다.
방금 전보다 두 배 커진 꼬리가 일순간 ‘펑!’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 나며 터져 버렸다.
후두두둑!
바닥에 흩어져 버린 핏물과 꼬리의 파편들.
하지만 분해는 한 물체를 끊임없이 절단하고 가르고 해부한다.
이 앞에 한낱 재생력과 분열 따윈 어떤 형태도 갖출 수 없다.
-이그의 권능을 인간 따위가?
“너 역시 인간이었을 텐데?”
그릇이 되어 차원 너머 존재에게 힘을 빌리는 일도 벌어지는 판이다.
그깟 권능…….
“나라고 사용 못 할까?”
그때부터 찬영의 걸음이 빨라졌다.
저벅, 펑! 저벅, 펑!
그리고 한 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날아오는 꼬리가 하나둘 부푼 풍선처럼 터져 버렸다.
펑! 펑! 펑!
찬영의 시야에 빠르게 사방의 전경이 스쳐 갔다.
꼬리들이 터져 나가 그 파편들이 부르르 떨며 바닥에 축 늘어지는 게 보인다.
놈의 본체 앞까지 열 걸음을 남겼을 때쯤 뒤에 쌓인 꼬리의 파편들이 놈에게 남아 있는 꼬리보다 훨씬 많아져 버렸다.
“더 해 봐도 똑같을 거다.”
끊임없이 공격적이던 놈이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
꼬리들도 더는 다가오지 않고 제자리만 지키며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다.
-이럴 리 없다, 이럴 리가!
선지자는 직면한 현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하긴.’
수많은 세월 동안 계획해 온 일이 이렇게 허무히 끝날 줄은 몰랐을 터.
하지만 놈은 이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끝났어!”
그러니 한 발짝, 더 앞으로 나아간다.
찬영이 막 놈에게 손을 뻗으려던 그때.
-아직, 아직은 아니니라!
놈의 눈에 광기가 실린 게 보였다.
갑작스레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꼬리들과 꼬리 사이에 파묻힌 수백 개의 얼굴들.
-키에엑!
-안 돼!
그 얼굴들이 울부짖는다.
마주한 찬영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폭발이다.’
주저할 것 없이 날아오는 놈의 꼬리를 분해시키며 룸을 있는 대로 개방시켰다.
그오오!
그러자 찬영이 느끼지 못한 사이, 그의 몸 주변에서 새하얀 백광이 터져 나왔다.
쿵! 쿵!
수십 개의 기다란 빛의 봉들이 빠르게 선지자 주변에 내리꽂혀 빠르게 놈을 감싸 안는 빛의 감옥을 이뤄 갔다.
감옥 안에서 들려오는 놈의 발악.
-네 영혼까지 집어삼켜 주마! 네놈에게 통하지 않는다면 네놈이 아끼는 모든 것을 파괴할 것이다……!
그 순간 해 주고 싶은 대답이 하나 있었다.
하지만 입을 떼기 직전, 폭발이 시작됐다.
* * *
“……넌 내게서 아무 것도 가져가지 못해.”
찬영은 작은 입자로 분해 소멸되어 버린 놈을 향해 나직이 중얼거렸다.
걱정했던 폭발의 여파는 없었다.
룸을 통해 일으킨 빛의 감옥은 정확히 놈의 폭발력을 차단했고, 그 폭발에 휩쓸린 건 선지자 한 명뿐이었으니까.
저벅저벅.
찬영은 놈이 남긴 차원의 돌 조각들을 내려다보았다.
빛을 대부분 잃어버린 조각들.
하지만 남아 있는 수치를 채우기에는 충분하다.
-네 번째 차원 다리까지 개방도 100%
완성되었다는 창이 나타났다.
“드디어…….”
찬영은 ‘100%’라는 단어를 보며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꼈다.
글라투, 정령계를 거쳐 네 번째 차원 다리까지…….
힘겨운 시간을 지나 드디어 대륙 복원의 마지막 단추가 등장한 것이다.
-네 번째 차원 다리가 개방되었습니다. 세 번째 차원 다리를 통해 진입하시겠습니까?
하지만 찬영은 고개를 저은 후 돌아섰다.
‘아직은 아냐.’
뭐가 기다리고 있을지는 모르나 지금은 왕국의 운명을 건 마지막 전투가 더 중요하다.
‘이 일을 끝낸 후에 마지막 단추를 완성시켜야겠지.’
사명으로서 주어진 임무에 끝이 다가오고 있음이 느껴진다.
펑!
하늘을 올려다보던 찬영이 순식간에 적들을 향해 날아올랐다.
* * *
난전 상황의 한가운데.
갓피스들이 합류한 수뇌부는 D의 군단과 지친 기색으로 대치 중이었다.
제이나가 왕을 판도라에게 맡긴 후 타우린, 글로리와 함께 뷰로도 공작에게 합류해 후크를 견제한 것이다.
또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의 플로딘은 버켄과 클레인의 보조를 받은 그라스와 지수, 샤브레 공주가 상대하는 중이었다.
그 외 나머지 D 군단의 일부는 다른 수뇌부들과 치열한 공방전을 시작했으니…….
왕성 전투의 승패는 이제 이들의 전투로 결정짓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빛을 잃은 첨탑과 함께 ‘이그’의 힘이 강림된 선지자가 소멸된 상황 이후라면 더욱더 그랬다.
“말도 안 된다! 어떻게 이럴 수가!”
계속 의기양양해하던 후크 백작의 눈동자의 절망이 실렸다.
저 멀리 보이던 선지자의 소멸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본 것이다.
당혹스러워하는 후크 백작을 향해 제이나가 타우린의 옆에서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너희는 실패했어.”
그녀 말대로 전장은 레딩이 이끄는 왕성 병력까지 증편되어 승리를 확실시할 만큼 사기가 드높아져 있었다.
모두가 느낄 수 있는 전장의 변화.
“그럼 내게 투항하라는 것이냐?”
잠시 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보던 후크 백작이 넌지시 물었다.
“그럴 건가?”
제이나의 반문에 후크 백작이 고개를 저었다.
“큭큭, 그럴 리가 있느냐? 받은 건 조금이라도 대갚음해 줘야겠지! 이제부터는 방금 전과 다를 것이다!”
제이나는 대답 대신 툴챠를 치켜들었다.
사실 그의 강력한 7서클 마법과 강대한 암흑 마력을 계속 상대해 온 건 오로지 툴챠의 지원 덕분이었다.
광휘의 벽으로 그가 일으키는 마법을 막아 온 것이다.
‘하지만 이젠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하나 제이나는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옆을 돌아봤다.
‘혼자가 아니야.’
그의 공세를 막아온 건 자신뿐만이 아니다.
동료들이 있었다.
“공작님.”
그녀가 뷰로도 공작과 시선을 부딪쳤다.
뷰로도 공작은 오래 전부터 그녀의 아버지와 막역했던 사이.
“오냐, 준비되어 있다. 설마 왕국의 소드 마스터를 걱정하는 게냐?”
씩 웃은 뒤 다시 검을 집어든 뷰로도 공작.
그 옆으로 타우린이 돌을 다시 일으켰고, 글로리가 타우린에 올라탄 채 크투가를 정조준했다.
“그럴 리가요.”
제이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타우린이 돌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매섭게 달렸다.
기다렸다는 듯 글로리의 손을 잡아 타우린의 등에 올라타는 뷰로도 공작.
두두두두!
동시에 크투가의 공세가 후크 백작을 향해 쏟아졌다.
“어림없다!”
해골 말을 타고 마주 달리던 후크 백작이 양손에 암흑 마력 방패를 일으켜 날아오는 신성 포탄을 차단했다.
콰콰쾅!
당연히 글로리의 크투가만으로는 그를 묶어 둘 수 없다.
시간을 끌수록 그는 또 한 번 강력한 암흑 마법을 일으키리라.
“이노옴! 후크!”
뷰로도 공작이 이를 막기 위해 달리는 타우린의 등 위에서 훌쩍 뛰어올랐다.
쐐액!
순식간에 하늘을 날아올라 그대로 검을 내려찍는 뷰로도 공작.
후크 백작도 그를 무시하지 못했다.
소드 마스터의 오라는 결코 만만한 게 아니니까.
검 끝을 지나쳐 높이 솟아오른 강력한 오라가 푸른 매의 형상을 띄며 검압을 일으켰다.
콰콰콰!
해골 말이 더는 견디지 못하고 검압에 휩쓸린 순간, 후크가 말을 버리고 날아올라 연기처럼 사라졌다.
‘망령의 안개.’
“놈이 벗어났다!”
뷰로도 공작의 외침과 함께 후방에서 이를 주시하고 있던 제이나가 눈을 번쩍 떴다.
“위쪽이에요!”
어느새 다시 나타난 후크 백작을 발견한 제이나.
츠츠!
그녀는 준비하고 있던 마법을 지체 없이 쏟아부었다. 그녀가 아는 6서클 마법 주문 중 가장 강력한 마법이며, 그녀가 오늘을 위해 오랜 시간 갈고 닦은 마법.
‘기가 라이데인Giga Lighthein.’
수만 볼트의 어마어마한 전류가 벼락처럼 상대에게 내리꽂힌다.
‘지금!’
쾅!
그들의 완벽한 호흡은 후크에게 마법 주문을 외울 시간조차 주지 않은 빠른 전개를 가져왔다.
당연히 벼락 또한 정확히 후크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번쩍!
눈이 부신 빛에도 불구하고, 아랑곳하지 않고 하늘을 올려다보던 뷰로도 공작이 기도하듯 중얼거렸다.
“끝났는가……?”
하나 그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빛이 사라진 하늘엔 새카맣게 탄 검은 갑옷을 벗어던진 후크의 모습이 보였다.
“재롱은 여기까지다!”
이글거리는 눈동자를 보이며 자신의 주문을 완성한 후크.
“잘 가거라.”
그가 마지막 캐스팅을 완성하려던 그때.
무언가가 그의 앞으로 날아왔다.
서걱!
그가 그게 무엇인지 알아보기도 전에 이미 그가 보고 있던 하늘과 땅은 정반대로 빙글빙글 뒤집어지고 있었다.
‘어, 언제?’
마지막으로 붙잡고 있던 의식 속에서 후크의 질문은 오로지 그것뿐.
쐐액! 쾅!
목이 잘린 후크가 땅으로 추락한 순간.
난전을 거듭해 왔던 모두가 눈을 부릅뜨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곳엔 은백색의 슈트를 입은 찬영이 엘리야의 날개를 펼친 채 체공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흐른 고요한 정적.
꿀꺽.
이 순간 단 한 사람만 침을 삼킨 게 아니었다.
소드 마스터인 뷰로도 공작조차도 할 말을 잃은 채 찬영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저게……. 제이나 네가 말한 그 자더냐?”
뷰로도 공작이 제이나에게 물었고 제이나가 자랑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예, 그렇습니다. 공작 예하.”
그녀의 대답과 함께 찬영은 착지할 새도 없이 D의 군단에게 향했다.
쐐액!
이를 본 제이나가 확신했다.
“전쟁은 끝났습니다.”
* * *
그녀의 말이 맞았다.
순식간에 D의 군단 한 가운데 착지한 찬영.
“네놈은 누구…….”
D의 군단에 속한 존재가 입을 떼자마자, 빛의 칼날이 허공을 수놓았다.
서걱!
상대가 누구건 상관없었다.
검은 투구를 쓰고, 해골 말을 탄 존재들은 어김없이 빛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서걱! 서걱!
그들의 목은 투구째로 잘려 나갔고 함몰된 갑옷과 함께 허공으로 튕겨 나간 자도 있었으며, 해골 말을 탄 몇몇 적들은 말과 함께 두 동강 나서 바닥에 허물어졌다.
그의 걸음걸음마다 허물어지기 시작하는 D의 군단.
당연히 그들 역시 이 모든 광경을 넋 놓고 지켜보진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을 노린 적들을 버리고, 찬영에게 달려갔다.
모든 걸 쏟아부은 공세.
하나 그럴수록 D의 군단은 무력감을 느꼈다.
마법도, 암흑 마력도 아무 것도 통하지 않는 마치 철옹성과도 같은 상대.
D의 군단이 혼란에 빠지는 건 당연했다.
그리고 그 혼란이 가져오는 여파는 ‘전멸.’
상황의 심각성을 느낀 플로딘은 부하 하나와 함께 대치하고 있던 적을 피해 반대편으로 달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자신을 쫓아오는 은백색의 슈트를 피해서였다.
“……놈이 다가옵니다! 대비하셔야 합니다, 플로딘 님!”
거친 숨결과 함께 묻는 부하에게 플로딘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사방이 온통 적들뿐이다.
그리고 더 이상 자신은 포식자가 아니었다.
“어, 어서 명령을…….”
그 순간 막 입을 뗀 부하의 목이 뎅강 잘려 나가며 빛의 칼날이 모습을 드러냈다.
“허억!”
플로딘은 너무 놀라 달리고 있던 말에서 떨어져 내렸다.
헛바람을 들이켠 그의 앞으로 해골 말을 갈라 버린 찬영의 은백색 슈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걱정 마라.”
츠츠츠.
양손에 빛의 검을 쥔 찬영이 하얗게 질린 플로딘을 향해 나직이 입을 열었다.
“넌 지금 죽이지 않을 테니까.”
“어, 어째서지?”
반문하는 플로딘에게 찬영이 손을 뻗으며 대답했다.
“곧 알게 될 거다.”